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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가 그린 저승 일곱 나라」 — 공주가 본 황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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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바리데기〉 서사무가(敍事巫歌) — 전국 무속 의례 가운데 죽은 이를 천도하는 오구굿·진오기굿·씻김굿에서 구연되어 온 우리나라 대표 무속 신화.
국가무형유산 서울새남굿·진도씻김굿·동해안별신굿 등의 전승본과, 김태곤 《한국무가집》, 서대석 《한국무가의 연구》, 이능화 《조선무속고》 등에 채록·정리된 여러 이본(異本)을 바탕으로 각색.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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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46자)
딸이라는 이유로 갓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버려진 일곱째 공주. 그러나 자신을 버린 부모가 죽을병에 들자, 그는 원망을 가슴에 묻고 산 사람은 결코 갈 수 없다는 저승길로 홀로 발을 내딛습니다. 칼산과 불바다, 얼음의 나라를 지나 일곱 저승 나라를 건너야만 닿는 생명의 약수. 버림받은 막내딸은 과연 그 약수를 길어 부모를 살리고, 마침내 만신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음 너머의 일곱 세계를 그린 우리 무가, 〈바리공주〉가 지금 펼쳐집니다.
※ 1: 버려진 일곱째
아주 먼 옛날, 서천 서역 너머에 불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를 다스리던 오구대왕은 백성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어진 임금이었으나, 한 가지 근심만은 좀처럼 마음에서 가시지 않았다. 보위에 오른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곁에서 종묘를 함께 받들 왕비가 없었던 까닭이다. 임금의 자리는 높았으나, 텅 빈 내전을 바라보는 밤이면 그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기만 하였다.
보다 못한 신하들이 길대부인이라는 어진 규수를 천거하였다. 임금은 그 단정하고 너그러운 됨됨이를 한눈에 어여삐 여겨, 곧 혼례 날을 받으려 나라 안에서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들였다. 그런데 점괘를 짚어 보던 점쟁이가 한참을 망설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상감마마, 올해 안에 혼인을 올리시면 일곱 공주를 보실 것이옵고, 한 해만 더 참고 기다리셨다가 내년에 혼인하시면 일곱 왕자를 보실 것이옵니다. 부디 한 해만 미루소서."
임금은 그 말을 듣고도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 해가 어찌 그리 길단 말이냐. 어진 사람을 곁에 두고 어찌 헛되이 세월을 흘려보내랴. 혼인은 올해 안에 치를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은 그해가 다 가기 전에 길대부인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두 사람의 금실은 더없이 도타웠고, 머지않아 왕비의 몸에 태기가 들었다. 온 나라가 왕자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열 달 뒤 세상에 나온 것은 어여쁜 공주였다.
'괜찮다. 첫아이가 딸이면 다음은 아들이라 하지 않더냐.'
임금은 너그럽게 웃으며 첫째 공주를 품에 안았다. 이태 뒤에 태어난 둘째도 공주였고, 그 뒤로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가 줄줄이 태어났으되 하나같이 어여쁜 딸이었다. 임금의 얼굴에서는 해가 갈수록 웃음이 걷혀 갔다. 대를 이을 왕자가 없으니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며, 조정 대신들의 수군거림도 날로 깊어 갔다. 일곱 번째로 왕비가 또 태기를 보이자, 임금은 이번만큼은, 하고 밤마다 종묘에 들어 빌고 또 빌었다.
마침내 산기가 다다른 날, 궁 안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기다렸다. 이윽고 산실 방문이 열리고, 늙은 상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를 아뢰었다.
"상감마마… 또… 공주 아기씨이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임금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하였다. 일곱째마저 딸이라니. 임금은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용상의 팔걸이를 내리치며 노성을 터뜨렸다.
"일곱 번을 빌었거늘 일곱 번이 다 딸이라! 이 아이는 필시 우리 왕가의 복을 끊으러 온 아이로다. 더는 보기도 싫으니 당장 내다 버려라!"
왕비가 산고로 핏기 없는 몸을 이끌고 일어나 임금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렸다.
"마마, 그것만은 아니 되옵니다. 제 배 아파 낳은 핏줄이옵니다. 아무 죄 없는 핏덩이를 대체 어디로 버리란 말씀이옵니까. 차라리 이 못난 소첩을 벌하소서."
"왕가의 대가 끊기는 것이야말로 조상께 짓는 가장 큰 죄요. 더는 짐을 막지 마시오."
임금의 노여움은 끝내 꺾이지 않았다. 갓 태어난 일곱째 아기씨는 자그마한 옥함 속에 뉘어졌다. 왕비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길로 아기의 저고리 깃 안쪽에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었다. 버려진 아이라 하여, '바리데기'라 하였다. 그것이 어미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왕비는 마지막으로 옥함을 끌어안고 오열하였다. 어미의 눈물 한 방울이 잠든 아기의 뺨 위로 떨어져 또르르 흘렀다. 임금 또한 차마 그 광경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한번 내뱉은 어명을 거두지는 않았다. 그날 임금이 흘려보낸 것은 한낱 핏덩이가 아니라, 훗날 제 목숨을 구해 줄 단 하나의 자식이었음을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옥함은 곧 깊고 푸른 강물 위에 띄워졌다. 물살을 따라 한없이 떠내려가던 함은, 며칠 밤낮을 흘러 강 하류 외딴 기슭에서 늙은 부부의 손에 건져졌다. 자식 하나 없이 늙어 가던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였다. 떨리는 손으로 함을 열어 본 두 노인은, 그 안에 새근새근 잠든 갓난아기를 보고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여보, 이게 웬일이오. 하늘이 우리 같은 늙은이에게 점지해 주신 자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두 노인은 아기를 친손녀처럼 거두어 길렀다. 깊은 산골에서 산나물을 캐어 멀건 죽을 끓이고, 다 해진 옷을 몇 번이고 기워 입혔으되, 그 정성만은 어느 대궐의 호사보다 따뜻하였다. 바리데기는 그 가난한 산골에서 봄풀처럼 무럭무럭 자라났다. 제 몸에 흐르는 피가 어느 나라 임금의 핏줄인지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두 늙은이를 친부모로 알고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산에서 약초를 캐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먼저 노부부의 입에 넣어 드렸고, 추운 겨울밤이면 제 몸으로 두 노인의 찬 발을 녹여 드렸다. 두 늙은이의 굽은 등을 주물러 드리며 옛이야기를 졸랐고, 봄이면 들꽃을 꺾어 와 방 안을 환히 밝혔다. 그 착하고 어진 마음씨에 산골 이웃들도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저 댁 손녀는 어디서 저런 효녀가 났는고. 필시 전생에 큰 공덕을 쌓은 아이일 게야."
그렇게 세월은 물처럼 흘러, 바리데기가 어느덧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두 노인은 그 곱고 의젓한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하면서도, 어쩐지 한구석 가슴이 시렸다. 이 귀한 아이가 본디 제 핏줄이 아님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저 멀리 불라국 궁궐에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소리 없이 드리우고 있었다.
※ 2: 저승 약수를 찾아
그해 가을, 불라국 궁궐에 까닭 모를 병이 들이닥쳤다.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이 같은 날 밤 같은 꿈을 꾸고는, 이튿날 아침부터 자리에 누운 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의 꿈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옥함에 담겨 강물에 띄워진 한 아이를 가리키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용하다는 어의들이 번갈아 들어 진맥하였으나,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맥이 잡히지 않으니 무슨 병인지조차 짚어 내지 못하였다. 진귀한 약재를 천하에서 구해 달여 올려도 차도가 없고, 명의가 침을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임금과 왕비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고, 낯빛은 백지장처럼 핏기를 잃어 갔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으나 누구도 그 병의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늙은 점쟁이가 궁문을 두드렸다. 어의들이 모두 물러난 어두운 침전에서, 점쟁이는 산통을 흔들어 점괘를 짚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침전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병은 사람의 약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병이옵니다. 두 분 마마께서는 하늘이 점지하신 자식을 까닭 없이 버리신 죄로, 그 업이 병이 되어 돌아온 것이옵니다. 이 병을 고치려면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사옵니다."
"그 길이 무엇이냐. 무엇이든 좋으니 어서 말하여라."
임금이 다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점쟁이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서천 서역, 산 사람은 결코 갈 수 없다는 저승의 일곱 나라를 모두 건너, 그 끝에 있는 신비한 약수를 길어 와야 하옵니다. 그 저승 약수 한 모금이면 죽은 목숨도 되살아나거니와, 그것을 길어 올 수 있는 이는 오직 마마의 핏줄, 그중에서도 가장 지극한 효심을 지닌 자식뿐이옵니다. 허나 저승으로 드는 일곱 나라는 칼산이 솟은 나라, 불바다가 들끓는 나라, 살을 에는 얼음의 나라가 차례로 가로막고, 그 너머에는 검은 강과 끝 모를 어둠의 들이 있어, 예부터 산 사람으로서 그 길을 무사히 건넌 이가 없사옵니다."
임금은 곧 여섯 공주를 차례로 불러들였다.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첫째 공주가 들어오자 임금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얘야, 이 아비를 살릴 약수가 저승에 있다는구나. 네가 가서 그 약수를 길어 올 수 있겠느냐."
첫째 공주는 새파랗게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아바마마, 어찌 산 사람이 저승엘 간단 말이옵니까. 소녀는 시집갈 몸이라 그 먼 길을 갈 수 없사옵니다."
둘째 공주는 "소녀는 갓 시집을 갔으니 어찌 친정일로 저승까지 가오리까" 하며 물러났고, 셋째 공주는 "소녀는 몸이 약하여 대궐 문턱조차 넘기 버겁사옵니다"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넷째 공주는 길이 험하다 하고, 다섯째 공주는 무서워 못 가겠다 하며 한결같이 등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여섯째 공주마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울먹였다.
"아바마마, 소녀를 용서하소서. 저승길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어찌 발을 들이겠사옵니까. 차라리 다른 방도를 찾으소서."
여섯 딸이 모두 등을 돌리자, 임금은 그만 베개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였다.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늙은 신하 하나가 조심스레 아뢰었다.
"상감마마, 송구하오나… 십오 년 전에 강물에 띄워 보내신 일곱째 아기씨가 어디엔가 살아 계실지도 모르옵니다. 그 아기씨를 찾아보심이 어떠하올는지요."
그 말에 임금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곧 충직한 신하 한 사람이 그 옛날 옥함이 떠내려간 강줄기를 따라 길을 나섰다. 묻고 또 물어 강 하류 깊은 산골에 이르니, 과연 비리공덕 노부부와 함께 사는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신하가 그 처녀의 저고리 깃 안쪽을 살피니, 빛바랜 글씨로 '바리데기'라 또렷이 적혀 있었다.
신하는 그 자리에 엎드려 절하며 처녀의 출생 내력을 모두 일러 주었다. 제가 본디 불라국의 일곱째 공주였으며, 갓난아기 적에 아버지의 손에 강물로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리데기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가슴속에서 원망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솟구쳤으나, 이내 두 노인을 돌아보고는 그 마음을 가만히 눌렀다. 곁에서 듣고 있던 두 노인도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우리가 네 친부모가 아니란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만… 이리 귀한 핏줄일 줄이야."
바리데기는 두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린 뒤,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버린 아버지라 하나, 그래도 나를 이 세상에 나게 하신 분이다. 자식 된 도리로 어찌 부모의 죽음을 모른 체하랴.'
떠나는 길, 두 노인은 바리데기의 손에 정성껏 지은 무명옷 한 벌과 미투리 한 켤레를 쥐여 주었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부디 네 착한 마음만은 잃지 말거라." 바리데기는 두 노인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신하를 따라 궁궐로 향하였다. 다 죽어 가는 임금과 왕비 앞에 선 그는, 원망 한마디 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불효녀 바리데기, 아바마마 어마마마를 살릴 저승 약수를 소녀가 길어 오겠나이다. 비록 산 사람으로 저승 일곱 나라를 건너야 하는 길이라 하나, 부모를 살리는 일이라면 소녀는 천 번이라도 죽어 다시 살겠나이다. 부디 소녀가 돌아올 그때까지 숨을 놓지 마소서."
그 말에 임금과 왕비는 야윈 손을 마주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버린 자식이 도리어 효녀가 되어 돌아온 그 밤, 궁궐의 등불은 밤새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등불 너머 깊은 어둠 속에는, 산 사람이 결코 발을 들인 적 없는 저승 일곱 나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3: 저승 일곱 나라로 · 칼산·불바다·얼음
이튿날 새벽, 바리데기는 무명 적삼에 미투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궁궐을 나섰다. 길을 떠나기 전, 그는 부모의 머리맡에 무쇠 지팡이 하나와 무쇠 신 한 켤레를 청하여 받았다. 저승 가는 길이 험하고 멀어, 예사 짚신으로는 한 발짝도 떼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까닭이다.
"이 길이 어디로 닿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나 부모를 살리려는 한 가지 마음만 잃지 않으면, 길은 스스로 열릴 것이다."
바리데기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며칠을 걷자, 사람 사는 마을은 점점 멀어지고 새소리마저 뚝 끊긴 적막한 벌판이 나타났다. 해는 떠 있으되 빛이 흐릿하고, 길섶의 풀빛은 잿빛으로 바래 있었다. 발밑의 흙은 차고 축축하였으며, 어디선가 멀리서 종소리 같은 것이 아련히 울려왔다. 산 자의 땅과 죽은 자의 땅이 맞닿는 경계, 이른바 황천길의 어귀였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음산한 기운에 그대로 발길을 돌렸으련만, 바리데기는 부모의 야윈 얼굴을 떠올리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서, 바리데기는 흰 빨래를 하는 한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빨래를 희게 빨고 있었다.
"길 가는 처녀야, 이 빨래를 모두 희게 빨아 주면 저승 가는 길을 일러 주마."
바리데기는 두말없이 소매를 걷고 빨래터에 앉았다. 손이 부르트고 손톱이 깨어져 물이 핏빛으로 물들도록, 검은 빨래가 눈처럼 희어질 때까지 정성을 다하였다. 다른 길손 같으면 끝 모를 빨래에 진작 손을 놓았으련만, 바리데기는 단 한 필도 허투루 빨지 않았다. 사흘 밤낮이 꼬박 지나 마지막 한 필까지 눈처럼 희게 빨아 내자, 노파는 흐뭇하게 웃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서쪽 하늘 끝을 가리켰다.
"착하고 부지런한 아이로구나. 저 검은 산 너머가 저승으로 드는 첫 번째 나라다. 가거든 무엇을 보아도 놀라지 말고, 누구를 만나도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거라. 이 꽃 세 송이를 품에 지니면 험한 고비마다 너를 지켜 줄 것이다."
노파가 건넨 것은 빛깔이 서로 다른 꽃 세 송이였다. 붉은 꽃은 불을 다스리고, 푸른 꽃은 물을 다스리며, 흰 꽃은 죽은 넋을 잠재우는 신비한 꽃이라 하였다. 바리데기는 그 꽃을 가슴 깊이 품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검은 산을 넘자, 과연 첫 번째 나라가 나타났다. 온 들판에 시퍼런 칼날이 풀처럼 빼곡히 솟아 있는 칼산의 나라였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발목이 베일 듯하였다. 들판 곳곳에서는 살아생전 모진 말로 남의 가슴을 찌른 넋들이, 맨발로 칼날 위를 걸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바리데기는 절로 몸서리를 쳤다.
'살아생전 함부로 내뱉은 모진 말 한마디가, 죽어서는 이리 시퍼런 칼이 되어 제 발을 베는구나. 사람의 말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던가.'
바리데기가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자, 품속의 붉은 꽃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닿는 자리마다 칼날이 스르르 풀잎으로 변하였다. 바리데기는 칼산을 건너며, 길섶에서 신음하는 넋들을 위해 가만히 손을 모아 빌어 주었다. 그 정성에 넋들의 울음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칼산을 지나자 두 번째 나라가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바다가 넘실거리는 화탕의 나라였다. 시뻘건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고, 그 속에서 살아생전 남을 속이고 재물을 탐한 넋들이 뜨거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에 바리데기의 무쇠 신마저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품속의 푸른 꽃이 맑은 빛을 발하였다. 꽃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나 불바다를 양옆으로 가르니, 그 사이로 한 가닥 좁은 길이 트였다. 바리데기는 그 물길을 따라 조심조심 불바다를 건넜다. 양옆에서 불길이 무섭게 일렁였으나, 그는 한눈팔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건너는 동안에도 그는 고통받는 넋들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으며, 부디 그 무거운 죄가 한 푼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 모습은 벌을 받는 자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같은 슬픔으로 함께 우는 자의 모습이었다.
두 나라를 건너고 나니, 어느새 살을 에는 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세 번째 나라, 온 천지가 시린 얼음으로 뒤덮인 한빙의 나라였다. 입김마저 그대로 얼어붙고, 눈썹과 머리카락에 하얀 서리가 맺혔다. 그곳에서는 살아생전 남의 어려움을 차갑게 외면한 넋들이, 얼음 속에 갇힌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바리데기는 무쇠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미끄러운 얼음 벌판을 나아갔다. 흰 꽃을 꺼내 들자 은은한 온기가 번져 길섶의 넋들이 잠시나마 떨림을 멈추었다. 멀리서 누군가 그를 지켜보는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으나, 바리데기는 두려움을 꾹 누르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세 나라를 건너온 처녀의 발은 이미 성한 데가 없이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처음 길을 나설 때보다 오히려 더 또렷하고 깊어져 있었다. 무서운 벌의 나라들을 지나오는 동안, 바리데기는 한 가지를 마음 깊이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쌓은 그대로를 죽어서 거두는구나. 그러니 살아 있는 날 동안 한 번이라도 더 어진 마음을 베풀어야 하리라.'
저승으로 드는 일곱 나라 가운데 이제 겨우 셋을 지났을 뿐이었다. 그 앞에는 산 자도 죽은 자도 함부로 건너지 못한다는 검은 강과, 끝 모를 어둠의 들, 그리고 생명의 약수를 지키는 무서운 문지기 무장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4: 검은 강과 어둠의 들
한빙의 나라를 벗어나자, 발밑에 가시덩굴이 빼곡히 엉킨 네 번째 나라가 펼쳐졌다. 검붉은 가시가 사람 키만큼 자라 길을 가로막은 가시밭의 나라였다. 그 속에서는 살아생전 남의 것을 빼앗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던 넋들이, 가시에 온몸이 찔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바리데기의 무명 적삼을 찢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바리데기는 멈추지 않았다. 가시에 찔려 흐른 피가 길 위에 점점이 떨어졌으되, 그는 도리어 가시밭에 갇힌 넋들에게 다가가 엉킨 덩굴을 손수 풀어 주었다. 제 손이 찢기는 것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넋들이 흐느끼며 길을 비켜 주니, 빽빽하던 가시덩굴이 스스로 길을 열었다.
"이 어린 처녀가 우리를 가엾이 여기는구나. 우리가 살아서는 누구도 가엾이 여기지 않았거늘…."
가시밭을 지나며 바리데기의 무명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온몸에는 가시에 긁힌 상처가 붉게 번졌다. 그러나 그는 제 아픔보다 갇힌 넋들이 풀려나는 것을 더 기뻐하였다.
가시밭을 지나자, 이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강이 앞을 가로막았다. 죽은 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건너야 한다는 황천강이었다. 물빛은 먹물처럼 검고, 물 위에는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넋들이 안개처럼 떠돌고 있었다. 강가에는 다 삭은 빈 배 한 척만이 매여 있을 뿐, 노를 저어 줄 뱃사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리데기가 강가에 서서 막막해하고 있을 때, 물안개 속에서 백발의 뱃사공이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산 사람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 강은 산 자가 건널 수 있는 강이 아니다. 정 건너고자 한다면, 강을 떠도는 저 외로운 넋들을 먼저 달래어 편히 보내 주어야 하리라."
바리데기는 강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떠도는 넋 하나하나를 향해 정성껏 빌기 시작하였다. 부모를 그리다 죽은 넋에게는 그 그리움을 위로하고, 한을 품고 죽은 넋에게는 그 한을 다독였다. 품속의 흰 꽃을 꺼내 강물 위에 띄우니, 꽃잎이 닿는 자리마다 안개가 걷히고 넋들이 하나둘 빛이 되어 강 너머로 건너갔다. 떠돌던 넋들이 모두 평안을 찾자, 뱃사공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리데기를 빈 배에 태워 검은 강을 건네주었다.
"고맙다, 어진 처녀야. 네가 오늘 달래어 보낸 넋들이, 언젠가 반드시 너를 도울 것이다. 부디 그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가거라."
바리데기는 깊이 고개를 숙여 뱃사공에게 인사한 뒤,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강을 건너자,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라가 한데 이어진 깊은 어둠의 들이 나타났다. 해도 달도 없고 별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짓눌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낭떠러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살아생전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제 욕심만 좇던 넋들이, 길을 잃고 끝없이 헤매며 울부짖고 있었다.
바리데기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발을 옮기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빛이 없으니 한 발도 뗄 수가 없구나. 여기까지 왔는데 끝내 길을 잃는단 말인가. 허나 여기서 멈추면 나를 기다리시는 부모님은 어찌 되시는가.'
바리데기가 어둠 속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그동안 칼산과 불바다, 가시밭에서 위로해 준 넋들이 하나둘 반딧불처럼 작은 빛이 되어 모여든 것이다. 수천수만의 작은 빛이 길을 따라 줄지어 늘어서니, 캄캄하던 어둠의 들에 한 줄기 환한 길이 열렸다.
"이 길로 가시오. 우리가 받은 위로를 이제 그대에게 돌려드리는 것이오."
넋들이 밝혀 준 빛의 길을 따라, 바리데기는 마침내 어둠의 들을 빠져나왔다. 그 끝에는 지금껏 지나온 어느 나라와도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메마른 저승 한가운데, 오직 그곳에만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산 자도 죽은 자도 함부로 들지 못한다는 일곱 번째 나라, 생명의 약수가 솟는 서천(西天)의 땅이었다.
그 약수터를 지키는 이는, 키가 하늘에 닿을 듯하고 눈에서 시퍼런 불을 뿜는 무서운 거인이었다. 어깨는 산봉우리 같고 목소리는 천둥 같아, 한번 보기만 하여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무장승이라 불렀다. 일찍이 그 앞에 선 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약수를 노리고 온 자들은 일곱 나라를 건너오기도 전에 모두 길에서 쓰러진 까닭이다. 무장승은 저벅저벅 걸어 나와 바리데기를 내려다보며 우레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산 사람의 몸으로 일곱 나라를 모두 건너온 자는 천 년 만에 네가 처음이다. 무엇을 구하러 이 먼 곳까지 왔느냐."
바리데기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무릎을 꿇고 또렷이 아뢰었다.
"죽을병에 든 제 부모를 살릴 생명의 약수를 구하러 왔나이다. 어떤 값이라도 치를 터이니, 부디 그 약수를 제게 나누어 주소서."
무장승은 한참 동안 바리데기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 작고 여린 처녀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으나, 두 눈만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껏 약수를 탐낸 자들은 하나같이 욕심으로 두 눈이 번들거렸으나, 이 처녀의 눈에는 오직 부모를 살리려는 간절함뿐이었다. 이윽고 무장승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약수는 거저 내어 줄 수 없다. 그 값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면, 오늘부터 이곳에 머물며 내가 이르는 일을 하거라."
그 한마디와 함께, 바리데기의 길고 긴 또 하나의 시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5: 무장승과 생명의 약수
그날부터 바리데기는 서천 약수터에 머물며 무장승이 이르는 일을 하였다. 무장승은 약수를 거저 내어 줄 마음이 없었던지, 날마다 새로운 일을 시켰다.
"먼저 삼 년 동안 이 약수터에 물을 길어 부어라."
바리데기는 군말 없이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깊은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물을 길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길을 나서 별을 보며 돌아오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어깨가 짓물러 피가 배어 나와도, 그는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한겨울 골짜기 물이 얼어붙으면 얼음을 깨고서라도 물을 길었다. 그렇게 꼬박 삼 년이 지나자 무장승이 다시 일렀다.
"이번에는 삼 년 동안 아궁이에 불을 때어, 이 약수터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여라."
바리데기는 또 삼 년을 하루같이 새벽마다 일어나 불을 지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았으니, 매운 연기에 두 눈이 짓무르고 손등이 불에 데어 물집이 잡혀도, 약수터의 불씨는 단 한 순간도 꺼지지 않았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장승조차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시 삼 년이 흐르자 무장승이 또 일렀다.
"마지막으로 삼 년 동안 이 산의 나무를 해 오너라."
바리데기는 무거운 지게를 지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하였다.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지게를 졌다. 그 가녀린 어깨로 어찌 그 모진 일을 다 해내는가 싶었으나, 그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직 부모를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한 가지 마음이 그 모든 고됨을 이기게 하였다. 그렇게 무장승이 시킨 일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아홉 해가 훌쩍 지나 있었다.
아홉 해 동안 곁에서 바리데기를 지켜본 무장승은, 처음의 무섭던 마음이 어느새 깊은 정으로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네 어진 마음과 한결같은 정성에, 내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구나. 나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곳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함께 늙어 가지 않겠느냐. 그리하면 약수를 내어 주마."
바리데기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부모를 살리려면 약수를 얻어야 하고, 약수를 얻으려면 이 청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 한 몸 고생하여 부모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마다하랴.'
바리데기는 무장승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세월은 다시 물처럼 흘러, 두 사람 사이에서 일곱 아들이 태어났다. 바리데기는 낮이면 산속 살림을 도맡고 밤이면 일곱 아이를 품어 기르며, 손에서 일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날마다 약수터를 향해 정성을 올렸다. 약수를 길어 부모를 살리겠다던 처음의 다짐은, 일곱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길고 분주한 세월 속에서도 단 한 번 흐려진 적이 없었다. 도리어 아이를 품에 안을 때마다, 자식을 버린 부모일지언정 그 자식 된 도리를 다하리라는 마음만 깊어 갔다.
막내아들이 걸음마를 떼던 어느 날 밤, 바리데기는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결에 멀리 고향 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두 부모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꿈을 꾼 것이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깬 그는, 더는 한순간도 머뭇거릴 수 없음을 직감하였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장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이제 약속하신 약수를 주소서. 아무래도 제 부모님의 명이 다해 가는 듯하옵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사옵니다."
무장승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그동안 일러 주지 않았던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실은 네가 아홉 해 동안 길어 부은 그 물이 바로 죽은 목숨을 살리는 저승 약수요, 네가 삼 년 동안 꺼뜨리지 않은 그 불이 죽은 살을 돋게 하는 불이며, 네가 해 온 그 나무가 마른 뼈에 새살을 입히는 나무였느니라. 너는 이미 약수를 길었으되, 그것이 약수인 줄을 몰랐을 뿐이다."
바리데기는 그 말에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아홉 해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알고 보니 부모를 살릴 약을 짓는 정성 그 자체였던 것이다.
'고된 줄만 알았던 그 세월이, 실은 부모님을 살리는 길이었구나. 헛된 고생은 하나도 없었구나.'
무장승은 약수터에서 맑은 약수 세 병을 떠 주고, 그 곁에 피어난 신비한 꽃 세 송이를 함께 꺾어 주었다. 살을 돋게 하는 살오름꽃, 끊어진 뼈를 잇는 뼈오름꽃, 멎은 숨을 되돌리는 숨살이꽃이었다.
"이 약수와 꽃이면 이미 숨이 끊어진 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 다만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한시도 지체 말고 어서 가서 부모를 살리거라. 일곱 아이는 내가 잘 보살필 터이니 뒤를 염려 말고 가거라."
그 말에 바리데기는 무장승 앞에 깊이 절을 올렸다. 무섭게만 여겼던 이 거인이, 알고 보니 제 효심을 끝까지 시험하고 또 도와준 은인이었다. 바리데기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일곱 아들을 돌아보자, 무장승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 그러하면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네 뒤를 따라가마. 이제 이 약수터를 지킬 까닭도 없으니."
바리데기는 약수 병을 품에 단단히 안고, 왔던 길을 되짚어 서둘러 저승 일곱 나라를 거꾸로 건너기 시작하였다. 일찍이 그가 위로해 준 수많은 넋들이 길마다 줄지어 나와 그를 배웅하였다. 칼산도, 불바다도, 검은 강도 이제는 그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가는 길은 여전히 험하였으나, 부모를 살릴 수 있다는 기쁨에 그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뒤로는 무장승이 일곱 아들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 6: 환생, 그리고 만신의 왕
저승 일곱 나라를 거꾸로 건너 다시 산 자의 땅으로 돌아오니, 흐릿하던 햇빛이 점차 환해지고 끊겼던 새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바리데기는 약수 병을 가슴에 안고 불라국 궁궐을 향해 한달음에 내달렸다. 그러나 도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발걸음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저 멀리 도성 큰길로, 흰 만장을 앞세운 두 채의 상여가 구슬픈 상엿소리와 함께 천천히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상여를 뒤따르는 백성들은 하나같이 소복을 입고 통곡하였다. 바리데기가 약수를 길어 오는 그 긴 세월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이 같은 날 나란히 숨을 거둔 것이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한발만 더 빨랐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바리데기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였으나,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무장승의 말이 떠올랐다. 숨이 끊어진 이라도 때만 놓치지 않으면 되살릴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바리데기는 길을 막아선 군졸들을 헤치고 상여 앞으로 뛰어들며 목청껏 외쳤다.
"멈추시오! 그 상여를 멈추시오! 약수를 가져왔으니 부디 멈추시오!"
해진 누더기를 걸친 낯선 여인이 갑자기 길을 막아서자, 상여꾼들이 호통을 치며 그를 밀어내려 하였다. "웬 미친 여인이 상여 앞을 막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그러나 바리데기가 품속의 약수 병을 높이 들어 보이며, 제가 바로 십오 년 전 강물에 버려진 일곱째 공주임을 밝히자, 행렬은 일시에 술렁이며 멈추어 섰다. 마침 행렬을 뒤따르던 늙은 신하 하나가 그 얼굴을 찬찬히 살피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외쳤다.
"틀림없는 우리 일곱째 아기씨로구나! 저승에서 살아 돌아오셨다!"
바리데기는 떨리는 손으로 두 부모의 관 뚜껑을 열게 하였다. 그 안에는 핏기 한 점 없이 잠든 듯 누운 임금과 왕비가 있었다. 바리데기는 먼저 뼈오름꽃을 두 사람의 몸 위에 얹었다. 그러자 굳었던 몸이 부드럽게 풀렸다. 이어 살오름꽃을 얹으니, 야위어 마른 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숨살이꽃을 가슴에 얹고, 그 위에 약수를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켜보던 백성들이 숨조차 죽인 그때, 죽은 듯하던 임금의 가슴이 천천히 들썩이며 길고 가는 숨이 새어 나왔다. 뒤이어 왕비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더니, 창백하던 두 뺨에 발그레한 핏기가 차올랐다. 두 사람은 마치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무겁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지켜보던 백성들 사이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죽은 임금과 왕비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내가… 어찌 된 일이냐. 분명 숨이 다하였거늘…."
임금이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것은, 누더기를 걸친 채 눈물범벅이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여인이었다. 그 얼굴 어딘가에서 십오 년 전 차마 안아 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일곱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임금은 떨리는 손을 뻗어 바리데기의 손을 붙들었다.
"네가… 네가 정녕 그때 그 일곱째란 말이냐. 이 못난 아비가 강물에 버린…."
"예, 아바마마. 소녀 바리데기, 저승 약수를 길어 이제야 돌아왔나이다."
임금과 왕비는 그 자리에서 바리데기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자신들이 버린 자식이, 여섯 딸이 모두 등 돌린 그 길을 홀로 걸어, 저승 일곱 나라를 건너 끝내 부모를 살려 낸 것이다. 임금은 백성들 앞에서 제 잘못을 뉘우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 가장 귀한 자식을 제 손으로 버렸도다. 딸이라 하여 천히 여기고 강물에 띄워 보낸 이 아비의 어리석음을, 이 아이가 제 목숨을 걸고 깨우쳐 주었구나. 자식의 귀함이 어찌 아들과 딸로 갈리겠느냐."
그 말에 둘러선 백성들도, 끝내 등 돌렸던 여섯 언니들도 모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되살아난 임금은 바리데기에게 나라의 절반을 떼어 주겠노라 하였다. 그러나 바리데기는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소녀가 바라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옵니다. 저승길을 오가며, 죽은 뒤 갈 곳을 몰라 떠도는 가엾은 넋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나이다. 소녀, 그 넋들을 저승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고 싶나이다."
버려졌던 자식이 도리어 죽은 부모를 살리고, 그 보답으로 부귀가 아닌 가엾은 넋들의 구원을 청하니, 곁에서 듣던 백성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 갸륵한 청에, 마침내 하늘이 응답하였다. 무장승이 일곱 아들의 손을 잡고 뒤따라 이르자,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영롱하게 내려와 바리데기를 만신(萬神)의 왕으로 봉하였다. 죽은 이를 저승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무조신(巫祖神), 곧 이 땅 모든 무당의 으뜸이 된 것이다. 일곱 아들은 저승의 일곱 나라를 각각 다스리는 신령이 되고, 무장승 또한 저승을 지키는 큰 신이 되었다.
그 뒤로 사람이 죽으면, 바리공주가 그 넋을 손수 맞이하여 칼산도 불바다도 없는 평안한 길로 인도해 주었다. 살아생전 아무리 외롭고 가난한 이라도, 죽어서는 바리공주의 손을 잡고 좋은 곳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막내가, 원망 대신 효심 하나로 저승 일곱 나라를 모두 건너, 마침내 죽은 이를 거두어 천도하는 신들의 왕이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이야기를 노래로 전하며, 세상을 떠난 이의 넋을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릴 때면, 가장 어질고 가장 효성스러웠던 그 이름, 바리공주를 가만히 불러 본다.
유튜브 엔딩멘트 (269자)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우리 무가 〈바리공주〉,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으나 원망 대신 효심으로 저승 일곱 나라를 건넌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자식의 귀함에 어찌 차별이 있으랴 하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죽음 너머에도 어진 마음 하나면 길이 열린다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오늘 여러분께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으로 응원해 주세요. 다음 〈염라야담〉에서 또 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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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한복 차림에 쪽진머리를 한 젊은 조선 여인이 두 손으로 푸른 생명의 약수 병과 신비한 꽃을 받쳐 든 채, 칼산·불바다·검은 강이 아득히 펼쳐진 저승 일곱 나라의 어귀에 홀로 서 있는 모습. 머리 위로는 오색 서기가 비치고, 발밑에는 안개가 깔린 황천길. 비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부드러운 수채화 번짐.
A young Joseon woman in a tattered hanbok with a jjokjin-meori chignon, holding up a blue vial of life-water and mystical flowers with both hands, standing alone at the gateway of the seven underworld realms where a mountain of blades, a sea of fire, and a black river stretch into the distance. Five-colored auspicious light glows above her; mist drifts along the path to the netherworld. Solemn yet mystical mood, soft watercolor washes. 16:9, no text.
씬1 — 버려진 일곱째
1-1. 조선 궁궐 정전에서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임금과 원삼·족두리를 갖춘 왕비의 혼례 장면, 신하들이 양옆에 도열. 화려하나 단정한 궁중 분위기.
A royal wedding in a Joseon palace hall: a king in a dragon-robe and royal cap beside a queen in ceremonial wonsam robe and jokduri crown, courtiers lined on both sides. Splendid yet dignified court atmosphere. 16:9, watercolor, no text.
1-2. 어두운 침전에서 흰 도포에 갓을 쓴 늙은 점쟁이가 산통을 들고 근심 어린 얼굴로 임금에게 점괘를 아뢰는 장면. 촛불 그림자가 일렁이는 분위기.
In a dim royal chamber, an old Joseon diviner in a white robe and gat hat holds a divination cylinder, reporting an ominous fortune to the king with a worried face. Flickering candle shadows. 16:9, watercolor, no text.
1-3. 쪽진머리 왕비가 강가에서 갓난아기를 담은 작은 옥함을 차마 놓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장면, 곁의 상궁들도 고개를 숙임. 푸른 강물과 새벽안개.
A queen with a jjokjin-meori chignon weeping at a riverside, unable to release a small jade casket holding a newborn; court ladies bow their heads beside her. Blue river and dawn mist. 16:9, watercolor, no text.
1-4. 허름한 무명옷을 입고 상투를 튼 늙은 할아비와 쪽진머리 할미가 강 하류 기슭에서 떠내려온 옥함을 건져 열어 보며 놀라는 장면. 갈대밭과 잔잔한 물결.
An old couple in plain hemp clothes—the man with a topknot, the woman with a chignon—pulling a drifting jade casket from the river's lower bank and opening it in astonishment. Reeds and gentle ripples. 16:9, watercolor, no text.
1-5. 산골 초가집 마당에서, 댕기머리 소녀로 자란 바리데기가 늙은 노부부에게 약초 달인 그릇을 두 손으로 올리며 효성을 다하는 따뜻한 장면. 소박한 시골 풍경.
In the yard of a thatched mountain cottage, Bari—grown into a girl with a braided dangi—offers a bowl of brewed herbs to the elderly couple with both hands in devoted filial care. Humble rural scenery. 16:9, watercolor, no text.
씬2 — 저승 약수를 찾아
2-1. 궁궐 침전에 나란히 누운 임금과 왕비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앓고, 어의들이 근심스레 진맥하는 장면. 무거운 병색의 분위기.
A king and queen lying side by side in a palace chamber, pale and ailing, while royal physicians anxiously check their pulses. Heavy atmosphere of illness. 16:9, watercolor, no text.
2-2. 흰 수염의 늙은 점쟁이가 산통을 흔들며 임금에게 "저승 약수"의 길을 일러 주는 장면, 손끝이 서쪽 하늘을 가리킴. 신비로운 빛.
A white-bearded old diviner shaking a divination cylinder, telling the king of the path to the "underworld life-water," his finger pointing toward the western sky. Mystical light. 16:9, watercolor, no text.
2-3. 비단 한복에 쪽진머리·족두리를 갖춘 여섯 공주가 침전 앞에서 차례로 고개를 돌리거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거절하는 장면. 난색과 외면의 표정.
Six princesses in silk hanbok with chignons and jokduri crowns refusing one by one before the royal chamber—turning away or clutching their skirts. Expressions of reluctance and avoidance. 16:9, watercolor, no text.
2-4. 갓 쓴 조선 신하가 깊은 산골 초가 앞에서, 누더기 한복을 입은 처녀 바리데기를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장면. 노부부가 곁에서 지켜봄.
A Joseon courtier in a gat hat bowing low before Bari, a maiden in worn hanbok, recognizing her in front of a deep-mountain thatched cottage; the old couple watch nearby. 16:9, watercolor, no text.
2-5. 병상에 누운 부모 앞에 무릎 꿇은 바리데기가 두 손을 모아 약수를 길어 오겠다 결연히 다짐하는 장면. 희미한 촛불, 눈물과 결의의 표정.
Bari kneeling before her bedridden parents, hands clasped, resolutely vowing to fetch the life-water. Faint candlelight, an expression of tears and resolve. 16:9, watercolor, no text.
씬3 — 저승 일곱 나라로 · 칼산·불바다·얼음
3-1. 무명 적삼에 무쇠 신을 신고 무쇠 지팡이를 짚은 쪽진머리 바리데기가, 빛바랜 잿빛 벌판—황천길 어귀로 홀로 들어서는 뒷모습. 흐릿한 해, 적막한 기운.
Bari with a chignon, in a plain hemp jacket, iron shoes, and an iron staff, stepping alone into a faded gray plain—the gateway to the netherworld—seen from behind. A dim sun, desolate air. 16:9, watercolor, no text.
3-2. 황량한 벌판에서 백발 노파가 끝없이 펼쳐진 검은 빨래를 빠는 곁에서, 바리데기가 소매를 걷고 함께 빨래하는 장면. 손이 부르튼 모습.
On a barren plain, a white-haired crone washing endless black laundry while Bari, sleeves rolled up, washes alongside her, hands blistered. 16:9, watercolor, no text.
3-3. 시퍼런 칼날이 풀처럼 빼곡히 솟은 칼산의 나라를, 바리데기가 품에서 빛나는 붉은 꽃을 들고 건너는 장면. 칼날이 풀잎으로 변하는 신비한 빛.
Bari crossing the realm of the blade-mountain, where countless blue blades sprout like grass, holding a glowing red flower from her bosom; blades magically turning into blades of grass. 16:9, watercolor, no text.
3-4. 하늘까지 치솟는 불바다의 나라에서, 푸른 꽃이 뿜어낸 맑은 물줄기가 불길을 양옆으로 가르고, 그 좁은 물길을 바리데기가 조심히 건너는 장면.
In the realm of the fire-sea where flames soar to the sky, a clear stream from a blue flower parts the fire to both sides, and Bari carefully crosses along the narrow water path. 16:9, watercolor, no text.
3-5. 온 천지가 얼음으로 뒤덮인 한빙의 나라에서, 서리 맞은 바리데기가 무쇠 지팡이에 의지해 흰 꽃의 온기로 길을 밝히며 나아가는 장면. 푸른 한기.
In the frozen realm where all is ice, a frost-covered Bari leans on her iron staff, lighting the way with the warmth of a white flower as she advances. Cold blue tones. 16:9, watercolor, no text.
씬4 — 검은 강과 어둠의 들
4-1. 사람 키만 한 검붉은 가시덩굴이 우거진 가시밭의 나라에서, 바리데기가 제 손이 찢기는 것도 아랑곳없이 가시에 갇힌 넋들의 덩굴을 손수 풀어 주는 장면.
In the realm of thorns where crimson brambles grow as tall as a person, Bari, heedless of her own torn hands, untangles the vines binding trapped souls. 16:9, watercolor, no text.
4-2. 먹빛 황천강 강가에서, 흰 도포에 백발을 한 늙은 뱃사공이 다 삭은 빈 나룻배 곁에 서 있고, 바리데기가 강가에 무릎 꿇은 장면. 강 위에 떠도는 희미한 넋들.
At the bank of the ink-black netherworld river, an old white-haired ferryman in a white robe stands beside a decayed empty boat, while Bari kneels at the shore. Faint wandering souls drift over the water. 16:9, watercolor, no text.
4-3. 바리데기가 흰 꽃을 검은 강물 위에 띄우자, 꽃잎 닿는 자리마다 안개가 걷히고 떠돌던 넋들이 빛이 되어 강 너머로 건너가는 신비한 장면.
Bari setting a white flower afloat on the black river; wherever the petals touch, mist clears and wandering souls become light, crossing to the far shore. A mystical scene. 16:9, watercolor, no text.
4-4. 별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들에서, 바리데기가 위로해 준 수많은 넋이 반딧불 같은 작은 빛이 되어 줄지어 길을 밝혀 주는 장면. 따뜻한 빛의 행렬.
In the pitch-black field of darkness without a single star, countless souls Bari once comforted become tiny firefly-like lights, lining up to illuminate her path. A warm procession of light. 16:9, watercolor, no text.
4-5. 푸른 나무가 우거진 서천 약수터 앞,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문지기 무장승(조선식 거구의 수염 난 장수)이 작은 바리데기를 내려다보는 장면. 위압적이나 신령한 기운.
Before the verdant western life-spring, a colossal guardian Mujangseung—a giant bearded Joseon-style warrior—towers over the small Bari, looking down at her. Imposing yet numinous air. 16:9, watercolor, no text.
씬5 — 무장승과 생명의 약수
5-1. 깊은 산 골짜기에서 쪽진머리 바리데기가 머리에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약수터로 물을 길어 나르는 장면. 손바닥이 부르트고 지친 모습이나 단정한 자태.
In a deep mountain valley, Bari with a chignon carrying a heavy water jar on her head, fetching water to the spring. Blistered palms and weary yet composed bearing. 16:9, watercolor, no text.
5-2. 초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장작불을 지피는 바리데기, 매운 연기 속에서도 불씨를 지키는 장면. 붉은 불빛이 얼굴을 밝힘.
Bari crouched before a thatched-house furnace, tending a wood fire, guarding the embers amid acrid smoke. Red firelight illuminates her face. 16:9, watercolor, no text.
5-3. 산속 초가에서 거구의 무장승과 쪽진머리 바리데기, 그리고 상투·댕기머리를 한 일곱 어린 아들이 함께 모인 단란한 조선 가족의 장면. 따뜻한 분위기.
In a mountain thatched home, the giant Mujangseung, Bari with her chignon, and their seven young sons in topknots and braided hair gathered together—a warm Joseon family scene. 16:9, watercolor, no text.
5-4. 무장승이 맑은 약수가 담긴 병들과 빛나는 세 송이 신비한 꽃(살오름꽃·뼈오름꽃·숨살이꽃)을 두 손으로 바리데기에게 건네주는 장면. 약수터의 영험한 빛.
Mujangseung handing Bari, with both hands, vials of clear life-water and three glowing mystical flowers (flesh-restoring, bone-mending, breath-reviving). The spirit-light of the spring. 16:9, watercolor, no text.
5-5. 약수 병을 품에 안은 바리데기가 저승길을 되짚어 떠나고, 일찍이 위로받은 수많은 넋들이 길 양옆에 늘어서 그를 배웅하는 장면. 그 뒤를 무장승과 일곱 아들이 따름.
Bari, clutching the life-water vials to her chest, setting back along the netherworld road as countless once-comforted souls line both sides to see her off; Mujangseung and the seven sons follow behind. 16:9, watercolor, no text.
씬6 — 환생, 그리고 만신의 왕
6-1. 도성 큰길로 흰 만장을 앞세운 두 채의 상여가 소복 입은 백성들과 함께 나아가고, 누더기 한복의 바리데기가 그 앞을 가로막으며 약수 병을 높이 든 장면. 비통하고 긴박한 분위기.
Two funeral biers led by white banners proceeding down the capital's main road with mourners in white hemp; Bari in tattered hanbok blocks their way, raising the life-water vial high. A grievous, urgent mood. 16:9, watercolor, no text.
6-2. 열린 관 앞에 무릎 꿇은 바리데기가, 잠든 듯 누운 임금과 왕비의 몸 위에 신비한 꽃을 얹고 약수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엄숙한 장면. 영험한 빛이 감돎.
Bari kneeling before open coffins, laying mystical flowers on the king and queen who lie as if asleep and dripping life-water drop by drop. A solemn scene wreathed in spirit-light. 16:9, watercolor, no text.
6-3. 다시 살아나 눈을 뜬 임금과 왕비가, 누더기 차림의 바리데기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재회하는 감격적인 장면. 둘러선 백성들도 눈물을 흘림.
The revived king and queen, eyes newly opened, embracing the ragged Bari and weeping at their reunion. The surrounding people also shed tears. A moving scene. 16:9, watercolor, no text.
6-4. 곤룡포를 입은 임금이 백성들 앞에서 바리데기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여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여섯 언니 공주들도 고개를 떨군 장면. 참회와 화해의 분위기.
The king in his dragon-robe bowing deeply toward Bari before the people, repenting his past wrong, while the six elder princesses lower their heads. An atmosphere of contrition and reconciliation. 16:9, watercolor, no text.
6-5. 오색구름이 영롱하게 내려오는 가운데, 쪽진머리 바리공주가 신비로운 빛에 둘러싸여 죽은 넋을 인도하는 만신의 왕(무조신)으로 봉해지는 장엄한 장면. 발치에 검은 도포·갓 차림의 저승사자들이 공경하며 시립.
Amid radiant five-colored clouds descending, Bari with her chignon, wrapped in mystical light, enthroned as the queen of all spirits (ancestral shaman-goddess) who guides the dead. At her feet, netherworld messengers in black robes and gat hats stand reverently in attendance. A majestic scene. 16:9, watercolor,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