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낸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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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모두 저승의 적패지 한 장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붉은 종이에 이름이 적혀 이승으로 내려오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도 사흘 안에 숨이 끊어졌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무서운 적패지를 들고 내려와야 할 까마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저승사자가 그만 흰 비둘기에게 그 일을 맡기고 말았습니다. 비둘기가 어찌 까마귀의 일을 알겠습니까. 그 한 번의 실수가, 한 마을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게 되지요. 오늘 「염라야담」이 들려드릴 이야기는, 하늘조차 잠시 한눈을 팔았던 그날의 기이한 사연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 1: 적패지에 적힌 한 사람의 이름
옛날 옛적, 하늘과 땅 사이에 저승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저승에는 염라대왕이라는 무서운 분이 계셔서, 사람의 목숨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스리셨지요.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이 정해 준 수명이 다하면, 염라대왕께서는 한 장의 붉은 종이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적패지였지요.
적패지에 이름이 적히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적패지가 이승으로 내려가 그 사람의 집 문 앞에 떨어지면, 그 사람은 사흘 안에 반드시 숨이 끊어졌지요. 아무리 천하의 명의가 와도, 아무리 귀한 약을 먹어도,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적패지는 그렇게 무서운 종이였지요.
그 적패지를 이승으로 가져다 떨어뜨리는 일은, 저승사자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승사자가 직접 모든 적패지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하루에도 수백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염라대왕께서는 한 가지 묘안을 내셨습니다. 까마귀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이지요.
까마귀는 본래 저승의 새였습니다. 깃털이 까맣고, 울음소리가 음산하며, 무엇보다 죽음의 냄새를 가장 잘 맡는 새였지요. 그래서 까마귀는 적패지를 입에 물고 이승으로 내려와, 정확히 그 사람의 집 마당이나 지붕 위에 떨어뜨리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까마귀가 사람의 집 위를 까악까악 울며 지나가면, 그 집안에서는 누군가 곧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었지요. 옛 어른들이 "까마귀가 울면 초상이 난다"고 하셨던 것도, 다 이런 까닭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저승의 한 모퉁이, 적패지를 보관하는 서고 앞에서 한 저승사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요. 그날따라 이승으로 내려보내야 할 적패지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오랜 병으로 누워 있던 노인들이 한꺼번에 수명이 다하고 있었거든요.
저승사자는 적패지 한 장 한 장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늘은 일감이 참으로 많구나. 까마귀를 한시도 쉬게 할 수가 없겠어."
그러면서 그는 적패지를 한 장 한 장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고을, 어느 마을, 어느 집의 누구. 정확하게 분류해 두지 않으면, 까마귀가 엉뚱한 집에 적패지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요. 그것은 곧 저승의 큰 사고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적패지 가운데, 한 장이 유난히 저승사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사는 한 늙은 과부의 이름이 적힌 적패지였지요. 저승사자는 그 종이를 잠시 들여다보며 혀를 찼습니다.
"허허, 이 사람은 참으로 가엾구나. 평생 남편 없이 외아들 하나만을 의지해 살아온 사람이로구나. 그런데 아직 그 외아들이 장가도 들지 못했는데, 어미부터 데려가야 한단 말인가. 하늘의 뜻이 참으로 야속하도다."
그러나 저승사자라고 해서 적패지의 이름을 함부로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염라대왕의 명이었으니까요. 저승사자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 적패지를 따로 한쪽에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늘 그러하듯, 까마귀를 부르려 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까마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요.
"까마귀야! 까마귀야! 어디로 갔느냐! 어서 나오너라!"
저승사자가 아무리 불러도 까마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2: 하필 그날, 까마귀가 자리를 비운 까닭
사실 그날 까마귀에게는 까마귀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저승의 까마귀라 하여도, 결국은 새는 새인지라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아야 했지요. 그런데 그날 아침, 까마귀가 이승의 어느 골짜기를 지나다가 그만 한 가지 진귀한 것을 발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느 부잣집 잔치에서 흘려놓은 고기 한 덩어리였지요. 까마귀가 그것을 보자마자 입에 침이 고였습니다. 저승의 까마귀는 평소 인간이 제사상에 올린 음식이나, 산짐승의 시체 같은 것만 먹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갓 잡은 짐승의 신선한 고기 한 덩어리가 눈앞에 놓여 있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습니까.
까마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곧 저승사자께서 나를 부르실 텐데… 허나 잠깐이면 되겠지. 저 고기 한 덩어리를 잽싸게 물고 와서 먹고 가면, 한 식경도 걸리지 않을 게야.'
그렇게 까마귀는 그 고기 덩어리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미처 몰랐던 것이 있었지요. 그 고기 덩어리는 사실, 어느 사냥꾼이 산짐승을 잡으려고 놓아둔 덫의 미끼였던 것입니다. 까마귀가 부리로 그 고기를 물자마자, 옆에 숨겨져 있던 그물이 휙 하고 덮쳐 왔지요.
"까악! 까악! 이게 무슨 일이냐! 까악!"
까마귀는 그물에 발이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날개를 퍼덕여도, 아무리 부리로 그물을 쪼아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지요. 그제서야 까마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저승사자께서 나를 찾으실 텐데. 일감이 산더미일 텐데. 어쩌자고 내가 이 미끼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까마귀가 발버둥을 칠수록 그물은 더욱 단단히 조여 왔습니다. 까마귀의 까만 깃털이 여기저기 빠지고, 다리에는 피멍이 들었지요. 그렇게 한나절을 그물에 갇혀 있었으나, 사냥꾼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점점 절망에 빠졌지요.
한편, 저승의 서고 앞에서는 저승사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놈의 까마귀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적패지를 이렇게나 쌓아 놓고, 한시가 급한데! 까마귀가 한 시각만 늦어도, 이 사람들의 수명이 한 시각씩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저승의 장부가 모두 어긋나 버리는데!"
저승사자는 안절부절못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서고 앞 처마 끝에 앉아 있는 한 마리 흰 새를 발견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흰 비둘기 한 마리였습니다.
이 흰 비둘기는 본래 저승의 새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길을 잃고 저승까지 흘러 들어온, 그저 평범한 이승의 비둘기였지요. 깃털이 눈처럼 희고, 눈은 동그랗고 맑았으며, 무엇보다 성품이 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비둘기를 가만히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지요.
"옳거니! 까마귀가 없으면 저 비둘기에게 시키면 되지 않느냐! 새는 새이고, 날개는 날개이니, 적패지 한 장 떨어뜨리는 일이야 어렵지 않을 게야."
그러나 저승사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평생 저승에서 자란 새라 적패지의 일을 잘 알고 있었지만, 흰 비둘기는 적패지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새였다는 것이지요. 저승사자는 비둘기를 손짓으로 불렀습니다.
"비둘기야, 이리 오너라. 너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느니라."
흰 비둘기는 영문도 모른 채 푸드덕 날아와 저승사자의 어깨에 앉았습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저승사자를 바라보았지요. 저승사자는 적패지 한 장을 비둘기의 부리에 물려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승으로 내려가거라. 이 적패지에 적힌 사람의 집 마당에 정확하게 떨어뜨리고 오너라. 알겠느냐?"
흰 비둘기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저승사자가 빨리 가라며 손을 휘두르자, 비둘기는 푸드덕 날개를 펴고 이승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승의 큰 사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지요.
※ 3: 영문도 모르고 적패지를 받아든 순한 새
흰 비둘기는 부리에 붉은 적패지를 문 채, 푸른 하늘을 날아 이승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엾은 비둘기에게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지요. 적패지에 적힌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까마귀였다면 저승의 글자를 익혀, 어느 마을 어느 집인지 정확하게 알고 날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그저 새장에서 벗어난 새 한 마리에 불과했지요.
비둘기는 하늘 위를 빙빙 돌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 종이를 어디에 떨어뜨리라고 하셨을까. 나는 도무지 모르겠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가을바람이 비둘기의 흰 깃털을 흔들었습니다. 비둘기는 점점 지쳐 갔지요. 부리에 문 적패지가 이상하게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본래 적패지란, 사람의 한평생 무게가 담긴 종이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모르고 받아 든 비둘기에게는, 그 무게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짐이 되어 갔지요.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던 비둘기는, 마침내 어느 산골 마을 위에 다다랐습니다. 마을 한쪽으로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노란 벼가 익어 가는 들판이 펼쳐져 있는 그런 평화로운 마을이었지요.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서당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그 서당의 지붕 위를 한 바퀴 빙 돌았습니다. 그 마을이 바로 적패지에 적힌 그 늙은 과부가 사는 마을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비둘기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비둘기는 그저, 너무 지쳐서 어디든 잠시 내려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요.
마침 그때,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비둘기가 깜짝 놀라 부리에 힘을 풀었지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부리에 물고 있던 붉은 적패지가, 살짝 비둘기의 부리에서 벗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앗!"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 다시 적패지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지요. 가을바람이 휙 하고 불어오자, 그 붉은 종이는 마치 단풍잎처럼 빙글빙글 돌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비둘기는 다급히 그 종이를 따라 내려가려 했지만, 마침 마을 어귀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오는 바람에 차마 가까이 갈 수가 없었지요.
비둘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당 옆 큰 느티나무 가지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고는 동그란 눈으로 떨어진 적패지를 내려다보았지요. 그 붉은 종이는 하필이면, 서당 마당 한가운데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에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말이지요.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저승사자께서 분명 어느 사람의 집 마당에 떨어뜨리라 하셨는데. 저기는 서당이 아닌가. 저것은 사람의 집이 아닌데.'
비둘기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서당의 글 읽는 소리가 마당 가득히 울려 퍼졌습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서당에서는 마침 한 늙은 훈장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마을의 일고여덟 살 사내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목청껏 천자문을 따라 읽고 있었지요. 그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일곱 살의 어린 사내아이였지요.
이 아이는 다름 아닌, 적패지에 이름이 적힌 그 늙은 과부의 단 하나뿐인 손자였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늙은 할머니의 손에 자란 가엾은 아이였지요. 그러나 어찌나 영민한지, 또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천자문을 떼었고, 글씨도 가장 반듯하게 잘 썼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셨지요.
"저 아이는 분명 큰 인물이 될 것이오. 저렇게 영민한 아이가 어찌 그 가난한 집에서 났단 말이오."
그날도 그 어린 손자는 서당에서 가장 열심히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늘 말씀하셨거든요.
"아가야, 너는 이 할미의 마지막 희망이란다. 부디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훗날 큰사람이 되어다오. 그래야 이 할미가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있단다."
그 말씀이 어린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던 아이였지요. 그런데 바로 그 아이가 글을 읽고 있던 서당 마당에, 다름 아닌 그 할머니의 적패지가 뚝 떨어졌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한 번 한눈을 판 그 사이에, 또 다른 하늘의 뜻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 4: 서당 마당에 내려앉은 붉은 종이
천자문 읽는 소리가 한참 이어지다가, 마침내 훈장님께서 잠시 쉬어 가라 하셨습니다.
"얘들아, 잠시 마당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오너라.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머리가 굳는 법이니라."
아이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마당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곱 살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곧장 뛰어놀지 않았지요. 그 아이는 마당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붉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게 뭘까. 누가 떨어뜨리고 갔을까.'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종이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종이는 보통 종이가 아니었지요. 색이 핏빛처럼 새빨갛고, 결이 두텁고, 무엇보다 종이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한겨울의 찬바람 같은 그런 서늘한 기운이었지요.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이상한 종이네. 이런 종이는 처음 보는걸. 만져도 될까.'
그러나 일곱 살 아이의 호기심을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 붉은 종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종이를 펼쳐 보니, 그 안에는 검은 먹으로 어떤 글자들이 적혀 있었지요. 그러나 아이가 보기에는 이상한 글자들이었습니다. 천자문에서 배운 글자들과는 어딘가 모양이 달랐거든요.
그 글자는 다름 아닌, 저승의 글자였습니다. 이승 사람은 본래 알아볼 수 없는 그 글자가, 그날따라 어찌 된 일인지 그 어린아이의 눈에는 이상하게 또렷이 보였던 것이지요. 아마도 그 적패지의 주인이 바로 그 아이의 할머니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핏줄의 인연이 그토록 깊었던 것이지요.
아이는 그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살피다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그 글자들 중에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름 아닌, 자신의 할머니의 이름이었습니다.
'어? 이건… 이건 우리 할머니 이름인데? 왜 이런 이상한 종이에 우리 할머니 이름이 적혀 있는 거지?'
아이는 어렸지만, 어딘가 본능적으로 직감했습니다. 이 붉은 종이가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마을의 늙은 어른들이 가끔씩 하시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옛날 옛적에는 말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 까마귀가 붉은 종이를 물어다 그 집 마당에 떨어뜨린다고 했지. 그 종이가 떨어지면, 사흘 안에 누군가 반드시 죽는단다."
그 말씀이 어린 가슴을 쿵 하고 내리쳤습니다. 아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지요.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안 돼. 안 돼. 우리 할머니가 죽으면 안 돼. 우리 할머니가 안 계시면 나는 어떡해. 우리 어머니는 어떡해.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이의 어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것은 한낱 일곱 살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의지였지요. 아이는 결심했습니다. 이 무서운 종이에서 할머니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말이지요.
아이는 적패지를 품에 꼭 안고, 조용히 서당의 한쪽 구석으로 갔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마당에서 시끄럽게 뛰어놀고 있었고, 훈장님께서는 안에서 잠시 차를 드시고 계셨지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작은 벼루와 붓을 꺼냈습니다. 평소에 글씨 연습을 하던 그 작은 붓이었지요. 그러고는 벼루에 정성껏 먹을 갈았습니다. 어린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요.
먹이 진하게 갈리자, 아이는 붓에 듬뿍 먹을 묻혔습니다. 그러고는 적패지를 펼쳐, 할머니의 이름이 적힌 그 자리 위에 검은 먹을 듬뿍 칠해버렸지요. 한 번, 두 번, 세 번. 글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새까맣게 그 이름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아이는, 그 위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좋은 글자를 한 자 적어 넣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목숨 수壽 자였지요. 천자문에서 배운 그 글자가, 어린 마음에 가장 귀한 글자로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 이제 안 돌아가실 거예요. 제가 할머니 이름을 지웠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목숨 수 자를 써넣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오래오래 저랑 같이 사세요.'
아이는 그 적패지를 가만히 접어, 자신의 품속 깊이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마당으로 나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천자문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 순간, 저승에서는 거대한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 5: 글씨를 지워버린 한 어린아이의 손끝
그 무렵, 늙은 과부의 집에서는 아무 일도 모른 채 조용한 저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늙은 과부는 부엌에서 손자가 서당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저녁밥을 짓고 있었지요. 며느리는 시냇가에서 빨래를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그저 보통의 어느 가을 저녁이었지요.
그런데 이 늙은 과부에게는 사실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자꾸 가빠지는 증세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며느리에게도 손자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늙어서 그러는 게지. 가난한 집에 의원을 부른들 무슨 소용이겠나. 그저 견디는 게지.'
그녀는 그렇게 혼자 속으로 삭이고 있었지요. 사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가난과 고생 속에 살아온 사람이라,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거든요. 다만 그녀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린 손자였습니다.
'그 아이가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가 가면, 그 아이는 누가 키워 주나. 며느리 혼자서 어찌 그 영민한 아이를 큰사람으로 키워 낼까. 하늘이여, 부디 한 해만 더, 한 해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시옵소서. 손자 녀석이 열 살이라도 되는 것을 보고 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녀는 매일 밤 그렇게 빌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한 듯,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요. 그녀는 점점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손자가 서당에서 돌아왔습니다. 평소와 달리 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지요. 손에는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저 다녀왔어요!"
"오냐, 우리 강아지. 오늘도 글공부 잘하고 왔느냐."
"네, 할머니! 오늘 천자문에서 목숨 수 자를 새로 배웠어요!"
"호호, 그래? 우리 손자, 참으로 영특하구나. 어디 그 글자를 한번 써 볼 테냐."
아이는 마당에 작은 막대기로 흙바닥에 정성껏 목숨 수 자를 그렸습니다. 늙은 할머니는 그 글자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지요.
"아이고, 우리 손자. 글씨가 참으로 반듯하구나. 그래, 목숨 수라… 좋은 글자로구나. 이 할미한테 가장 필요한 글자가 아닐까 싶구나."
아이는 할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요. 그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을 뿐이었습니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다 해결했어요.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그날 밤, 늙은 과부는 잠자리에 누우며 이상한 일을 느꼈습니다. 며칠 동안 그토록 답답하던 가슴이, 그날따라 한결 편안해진 것이었지요. 가빴던 숨도 고르게 쉬어졌고, 머릿속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구나. 오늘은 어찌 이리 편안할까. 내가 다시 젊어진 것도 아니련만.'
그녀는 그렇게 의아해하면서도, 모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지요. 바로 그 시각, 자신의 손자가 품속에 적패지 한 장을 꼭 안고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적패지의 자기 이름이 새카맣게 지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한편, 마을의 한 처마 끝에서는 흰 비둘기 한 마리가 하염없이 그 집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자신이 떨어뜨린 적패지가 어찌 되었는지 끝내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승사자께서 분명 어느 집에 떨어뜨리라 하셨는데. 나는 그저 서당 마당에 떨어뜨리고 말았구나. 그것도 일부러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부리에서 빠져나간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비둘기는 차마 저승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 채, 밤새 그 마을의 처마 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비둘기는 마침내 저승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요. 무서운 벌을 받게 되더라도, 사실대로 고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둘기가 저승의 문턱을 넘는 순간, 그곳은 이미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 6: 사라진 영혼을 찾아 헤매는 저승사자
그 시각, 저승의 적패지 서고 앞은 그야말로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지요.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어찌 된 일이야! 분명 어제 그 늙은 과부의 이름이 적힌 적패지를 비둘기에게 들려 보냈는데! 어찌하여 그 영혼이 저승에 도착하지 않았단 말이냐!"
저승의 법도는 매우 엄격했습니다. 이승에 적패지가 떨어진 사람은, 사흘 안에 반드시 저승으로 영혼이 올라와야 했지요. 그런데 적패지를 보낸 그날 밤이 지나도록, 그 늙은 과부의 영혼이 저승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승의 장부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지요.
저승사자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염라대왕의 귀에 들어가면, 그는 저승사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심하면 천 년의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마침 그때, 저승의 처마 끝으로 흰 비둘기가 푸드덕 날아 들어왔습니다. 깃털이 잔뜩 흐트러지고, 동그란 눈에는 잔뜩 겁이 어려 있었지요.
"비둘기야! 너 이놈,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어제 내가 너에게 들려 보낸 그 적패지는 어찌 되었느냐! 정확히 그 사람의 집 마당에 떨어뜨렸느냐!"
흰 비둘기는 부들부들 떨며, 사실대로 고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승사자 어른… 송구하옵니다. 소인이 너무 지쳐서 잠시 부리에 힘을 풀었더니, 그만 적패지가 부리에서 빠져나가 버렸사옵니다. 그것도… 그것도 어느 집 마당이 아니라, 한 서당 마당에 떨어졌사옵니다."
"뭣이라! 서당 마당이라고! 이 어리석은 비둘기 놈아! 서당이 어찌 사람의 집이란 말이냐! 그렇다면 그 적패지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것이… 그것이 마침 서당 아이들이 마당으로 뛰어나오는 바람에, 소인이 차마 다시 가서 주워 오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밤새 그 처마 끝에 앉아 살펴보았는데… 어떤 어린 사내아이 하나가 그 적패지를 주워 품에 넣고 사라졌사옵니다."
저승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명부책을 펼쳐 들고 그 마을로 내려갔지요. 그리고 그 늙은 과부의 집을 찾아 처마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승사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환히 보였지요.
저승사자는 잠들어 있는 그 늙은 과부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지요. 분명 어제 적패지를 받은 사람인데, 그 늙은 과부의 머리 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건강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지요.
저승사자는 깜짝 놀라 그 옆방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곳에서는 일곱 살 어린 손자가 작은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지요. 그 아이의 작은 가슴팍에는, 무언가 붉은 종이 한 장이 살짝 비어져 나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어제 잃어버린 그 적패지였지요.
"저것이! 저것이 그 적패지로구나! 어찌하여 저 어린아이가 저 적패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냐!"
저승사자는 가만히 그 아이의 가슴 위에서 적패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눈을 의심했지요. 적패지에 적혀 있던 늙은 과부의 이름이, 새카만 먹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위에는 어린아이의 서툰 글씨로 목숨 수 자가 한 자 적혀 있었지요.
저승사자는 한참을 말없이 그 글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요.
"허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일곱 살 어린아이가 저승의 적패지를 알아보고, 제 할머니의 이름을 지워버렸단 말인가. 게다가 그 자리에 목숨 수 자를 써넣었단 말인가.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로다. 이것은… 이것은 하늘의 뜻이 움직인 것이다."
저승사자는 그 어린아이의 잠든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지요. 마치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저승사자의 마음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뭉클하고 일어났지요.
'이 아이의 효심이… 하늘을 움직였구나. 이 아이가 알고서 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 하나가 하늘의 장부를 바꾸어 놓았구나. 이것을 내가 어찌 다시 거두어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승사자에게는 사사로이 이 일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염라대왕께 직접 고하고, 그 판결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었지요. 저승사자는 그 적패지를 다시 아이의 가슴팍에 살며시 넣어 두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저승을 향해 돌아갔습니다.
※ 7: 하늘이 한 어머니를 살린 까닭
저승사자가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실을 고하던 그 순간, 저승의 대전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습니다. 염라대왕은 한참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곁에 있던 다른 저승사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적패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저승의 가장 큰 죄였으니까요.
마침내 염라대왕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네 이놈, 적패지 한 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느냐. 그것은 한 사람의 평생이 담긴 종이이니라. 그것을 까마귀에게 들려 보내야 할 것을, 어찌 영문도 모르는 비둘기에게 맡겼단 말이냐."
저승사자는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흐느꼈습니다.
"대왕마마, 신을 죽여 주시옵소서. 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저승의 법도가 어지러워졌사옵니다.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염라대왕은 한참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씀하셨지요.
"그 적패지를 이리 가져오너라."
저승사자는 그 늙은 과부의 적패지를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습니다. 새카맣게 지워진 이름과, 그 위에 어린아이의 서툰 글씨로 적힌 목숨 수 자. 염라대왕은 그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천하의 염라대왕께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 어린아이의 글씨를 보거라! 이 얼마나 정성이 담긴 글자이냐! 일곱 살 어린아이가 자기 할머니의 목숨을 살리려 이 무거운 적패지에 글자를 쓰다니! 그 효심이 천지를 감동시킬 만하구나!"
대전의 모든 저승사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염라대왕께서 이토록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은,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거든요. 염라대왕께서는 그 적패지를 손에 들고 천천히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내가 사람의 수명을 정할 때에는, 그 사람의 평생 공덕과 그 핏줄의 인연을 함께 살피는 법이다. 이 늙은 과부는 평생 가난 속에서도 한 번도 남을 해친 적이 없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자신의 마지막 한 줌 쌀이라도 나누어 주던 사람이니라. 또한 그 며느리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도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시며 살아온 사람이고, 그 손자는 어린 나이에도 책을 좋아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아이이니라. 이러한 집안에 어찌 갑작스레 죽음의 종이가 떨어진단 말이냐."
염라대왕께서는 곁에 있던 한 늙은 판관에게 그 늙은 과부의 명부를 가져오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명부를 펼쳐 한참을 살피시더니, 무릎을 탁 치셨지요.
"내 이제야 알겠노라. 사실 이 사람의 본래 수명은 더 길었느니라. 다만 지난해 그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이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 곡식을 남에게 다 나누어 주는 바람에 몸이 상하여, 수명이 줄어들었던 것이니라.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라 오히려 공덕이거늘, 어찌 그것으로 수명을 줄였단 말이냐. 이는 저승의 장부가 잘못된 것이다. 그 어린 손자가 적패지의 이름을 지운 것은, 어쩌면 이 잘못된 장부를 바로잡으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염라대왕께서는 즉시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늙은 과부의 수명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아라. 그리고 손자가 써넣은 그 목숨 수 자를, 그대로 인정하여 십 년의 수명을 더 보태어 주어라. 어린아이의 효심이 하늘에 닿았으니, 어찌 그것을 모른 척하겠느냐."
대전의 모든 저승사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그 명을 받들었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께서는 마지막으로 그 어리석은 비둘기와 죄를 지은 저승사자에게도 한마디 하셨지요.
"비둘기야, 너는 본래 저승의 새가 아니니라. 다시는 이런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승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새가 되어라. 그리고 까마귀야, 너도 이리 오너라. 네가 그날 그물에 걸려 자리를 비웠던 것이, 오히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셈이 되었구나. 그러나 다시는 이승의 미끼에 눈이 멀어 너의 본분을 잊지 말거라."
그렇게 그날의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후로 흰 비둘기는 다시는 저승의 일을 맡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화의 새가 되었지요. 까마귀는 여전히 적패지를 나르는 일을 계속했지만, 다시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늙은 과부는, 그 후로 십여 년을 더 사셨습니다. 손자가 자라 열일곱 살이 되어 과거에 급제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가셨다고 하지요. 그 손자는 훗날 큰 학자가 되어, 어려운 백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어진 관리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그 늙은 손자가 자신의 어린 손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얘야,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다고 하지만, 그 하늘도 사람의 마음에 감동하시는 법이란다. 내가 일곱 살 때 할머니를 살리려 했던 그 마음 하나가, 결국은 하늘을 움직였느니라. 그러니 너도 부디,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잊지 말거라.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적패지를 지우는 붓이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염라야담」에 전해지는 그 기이한 이야기,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낸 저승사자의 사연입니다. 하늘이 한 번 한눈을 판 그 사이에, 또 다른 하늘의 뜻이 움직였던 그날의 이야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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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염라야담」,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낸 저승사자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일곱 살 어린아이의 그 작은 효심 하나가 하늘을 움직였다는 이 옛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으신가요.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기이한 야담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염라야담」이었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문,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photorealistic 16:9 fantasy scene of an ancient Korean village courtyard at twilight. In the foreground, a small wooden Joseon-era seodang (village schoolhouse) with hanji paper sliding doors glowing softly with warm candlelight from inside. A single crimson red folded paper (적패지) lies on the dusty earthen ground, partially illuminated by the last rays of golden sunset. A pure white dove with delicate feathers hovers gracefully just above the paper, wings caught mid-flight in soft motion blur. In the misty background, a shadowy silhouette of a tall figure in a black hat and dark robe (저승사자) stands at the edge of a bamboo forest, his face obscured by shadow, watching silently. Distant mountains shrouded in mystical blue mist, scattered autumn leaves drifting through the air. Moody cinematic color grading with deep blacks, warm golden ambers, ethereal whites, and a single accent of vivid crimson red. Ultra-detailed textures, shallow depth of field, dreamlike and otherworldly atmosphere. No text, no logo, no watermark. Shot on a medium-format camera, 50mm lens, f/2.0, hyperrealistic, museum-quality Korean folklore drama st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