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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무녀와 진짜 염라대왕

@염라야담 2026. 10. 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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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무녀와 진짜 염라대왕

    테그

    #가짜무녀, #염라대왕, #저승재판, #해학, #사이다, #공덕, #신령사칭, #꿀잼, #반전, #황천길, #오디오드라마, #조선시대, #야담, #전설,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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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신령님은 다 아신다!

    한양 도성 밖, 비좁은 골목길 가장 구석진 곳에는 밤낮으로 매캐한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허름한 신당이 하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초가집이지만, 이곳은 요즘 장안의 아녀자들 사이에서 용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복화 보살’의 거처입니다. 방 안에는 시장통 불화 가게에서 헐값에 사 온 짝짝이 눈을 한 장군신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촛불 두어 개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제법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화려한 오방색 무구로 온몸을 치장한 복화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신내림은커녕, 무당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희대의 사기꾼입니다. 그저 어릴 적부터 눈칫밥 먹고 자라며 터득한 기가 막힌 눈썰미와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화려한 언변 하나로 이 바닥을 평정했을 뿐입니다.

    "아이고, 보살님! 제발 우리 집안 좀 살려주십시오! 이러다가 정말 가문이 망하게 생겼습니다요!"

    최고급 비단옷을 걸쳤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한 김 대감네 마님, 박 씨 부인이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박 씨 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양에서 제일가는 부자이면서도 동시에 제일가는 구두쇠로 소문난 인물입니다. 곡식 창고에 쌀이 썩어나가도 흉년에 굶어 죽는 이웃에게 좁쌀 한 톨 내어주지 않는 지독한 구두쇠 중의 구두쇠지요. 복화는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옳거니, 오늘 아주 제대로 된 호구가 굴러들어왔구나. 저 화려한 금비녀에 비단옷을 보아하니, 오늘 복채는 두둑하게 챙길 수 있겠어.'

    복화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 앞에 놓인 놋쇠 방울을 집어 듭니다. 찰랑, 찰랑, 찰랑! 방울 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요란하게 채우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눈을 하얗게 뒤집어 까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며 입에서 정체 모를 쇳소리를 뱉어냅니다.

    "어허! 어딜 감히! 이 무지몽매한 인간아!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박 씨 부인은 기겁을 하며 어깨를 움츠립니다.

    "아이고, 장군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부처님께 공양도 잘하고, 남편 뒷바라지, 자식 뒷바라지 한 죄밖에 없습니다요!"

    복화는 속으로 혀를 끌쯧 찹니다.

    '쯧쯧,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자기 죄를 알 리가 있나. 어디 한 번 혼쭐을 내주마.'

    복화는 더욱 핏대를 세우며, 마치 신령이 빙의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를 한껏 깔고 위압적으로 소리칩니다.

    "시끄럽다! 네년의 집구석 곡간에는 썩어가는 쌀통이 산더미인데, 네 집 문 앞을 지나다 굶어 죽은 원귀들이 수십 명이다! 그 배고픈 원귀들이 똘똘 뭉쳐서 네 아들놈 과거 길을 꽉 막고 앉았는데, 어찌 과거에 급제를 하겠느냐! 올해도 또 낙방이다, 낙방! 아니, 낙방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조만간 그 원귀들이 네 남편의 명줄까지 갉아먹을 것이야!"

    그 말에 박 씨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립니다. 실제로 그녀의 아들은 벌써 오 년째 과거에 낙방하고 있었고, 남편인 김 대감은 최근 들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복화가 이미 저잣거리 소문을 통해 꿰뚫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박 씨 부인에게는 그저 소름 끼치도록 용한 신령의 공수로만 들릴 뿐입니다.

    "아이고, 보살님! 아니, 장군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찌하면 좋단 말씀입니까! 시키시는 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요!"

    박 씨 부인이 치맛자락에서 황급히 묵직한 은도끼 두어 개를 꺼내어 신당 앞에 바칩니다. 은도끼가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둔탁하고도 영롱한 소리에 복화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커지지만, 그녀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쯧쯧,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신령님께서 이르시기를, 당장 내일부터 한 달 동안 네 집의 곡간을 활짝 열고, 시장통의 굶주린 거지와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라 하신다! 그것만이 원귀들의 원한을 달래고 네 아들의 앞길을 트는 유일한 방법이니라! 만약 하루라도 거르거나 아까운 마음을 품는다면, 네 집안은 삼 대가 멸망할 것이야!"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곡간을 열고 쌀을 풀겠습니다요! 감사합니다, 장군님!"

    눈물 콧물을 쏟으며 물러가는 박 씨 부인의 뒷모습을 보며, 복화는 마침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립니다.

    '푸하하! 내가 진짜 신내림을 받았으면 이보다 더 용할까? 저렇게 겁을 주면 곡간을 열지 않고 배기겠어? 내 덕분에 가난한 백성들도 배불리 먹고, 내 주머니도 두둑해졌으니 이것이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느냐!'

    기분이 한껏 달아오른 복화는 그 길로 시장에 나가 가장 크고 먹음직스러운 인절미를 한가득 사들고 돌아옵니다. 방 안에 홀로 앉아 은도끼를 만지작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주먹만 한 인절미 하나를 통째로 입에 쑤셔 넣습니다.

    "음, 역시 돈 벌고 먹는 떡이 세상에서 제일 꿀맛이라니까! 내일은 고기를 좀 사다가 구워 먹어야겠어. 이 돈이면 한 달은 거뜬히..."

    그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떡을 탐한 탓일까요? 끈적하고 커다란 인절미가 복화의 기도를 턱 하니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컥! 커어억...!"

    숨통이 막힌 복화는 두 눈을 부릅뜨고 목을 부여잡은 채 방바닥을 뒹굴기 시작합니다. 손을 뻗어 물그릇을 찾으려 했지만, 손끝에 닿은 촛대가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만 낼 뿐입니다. 그녀는 온몸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며 뻐끔뻐끔 숨을 헐떡입니다. 희대의 사기꾼 무녀 복화의 마지막은, 자신이 모시던 가짜 장군신 그림 앞에서 인절미에 목이 막혀 생을 마감하는 참으로 어이없고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 2: 어서 와, 저승은 처음이지?

    "어라? 내가 왜 방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있는 거지? 저기 자빠져 있는 저 예쁜 얼굴은 분명 나인데...?"

    공중으로 둥실 떠오른 복화는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육신을 멍하니 내려다봅니다. 떡을 먹다 목에 걸려 숨이 막혔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상황 파악이 덜 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방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며 서늘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끼이익- 하고 낡은 문이 열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도포를 두르고 창백한 얼굴을 한 두 명의 사내가 방 안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듯 들어옵니다. 그들의 손에는 시뻘건 글씨로 이름이 적힌 명부가 들려 있습니다.

    "한양 땅에 사는 무녀 복화, 명운이 다하여 부르니, 어서 나오라."

    얼음장같이 차갑고 쇳소리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화의 귀를 때립니다. 저승사자였습니다. 평소 숱하게 신령과 저승사자를 들먹이며 사람들을 속여왔던 복화였지만, 막상 진짜 저승사자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십 년 차 무녀(?) 아닙니까. 그녀는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특유의 뻔뻔함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듭니다.

    "어머머! 사자님들,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요! 저는 하늘의 명을 받고 이승의 중생들을 구제하는 대단한 무녀 복화라고 합니다! 제가 아직 구해야 할 중생들이 이승에 널려있는데, 벌써 저를 데려가시면 옥황상제님께서 크게 노하실 것입니다요! 저기 바닥에 널브러진 육신에 제 혼을 쏙 다시 집어넣어 주시면, 제가 평생 사자님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겠습니다요!"

    하지만 저승사자들은 복화의 화려한 언변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묵묵히 소맷자락에서 붉은 오라를 꺼내어 복화의 손목을 단단히 포박해버립니다.

    "잔말 말고 따라오라. 염라대왕께서 네년의 죄악을 친히 심판하실 것이다."

    포박당한 채 질질 끌려 나온 복화의 눈앞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하고 스산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발밑으로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끝없는 황무지가 이어지고, 핏빛처럼 붉은 하늘 아래로는 처량하게 우는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황천길이었습니다. 길 양옆으로는 피안화라 불리는 새빨간 꽃들이 스산하게 흔들리며 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듯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황천길을 터덜터덜 걷던 복화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꼼짝없이 지옥 불에 떨어지겠다는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신령 사칭죄'라니, 그동안 속여 먹은 사람들의 복채만 모아도 지옥불에서 천 년은 튀겨질 죄목이 분명했습니다. 그녀는 굴러가는 머리를 팽팽 돌리며 저승사자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갑니다.

    "저기... 사자님들. 먼 길 오시느라 다리도 아프고 출출하시지요? 제가 가만히 사자님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두 분 다 요즘 관절이 쑤시고 피로가 안 풀리시는 상이십니다. 제가 이승에서 엄청나게 용한 보살로 이름 좀 날렸거든요. 제가 두 분의 앞날을 기가 막히게 점쳐 드릴 테니, 우리 여기서 쿨하게 타협을 보는 건 어떨까요?"

    저승사자 중 한 명이 걸음을 멈추고 복화를 빤히 내려다봅니다.

    "앞날을 점친다고?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저승사자의 앞날을 네가 어찌 안단 말이냐?"

    복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털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모르시는 말씀! 귀신도 다 급이 있고 승진이 있는 법 아닙니까! 제가 딱 보아하니, 오른쪽 사자님은 이번에 승과에 급제하여 판관으로 승진하실 운세이시고, 왼쪽 사자님은 조만간 옥황상제님의 눈에 띄어 호위무사로 발탁될 기운이 펄펄 넘치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좋은 기운을 꽉 잡으려면 약간의 정성이 필요한 법이지요. 제가 제 신당 방바닥 밑에 은도끼 열 개를 고이 숨겨두었습니다. 저를 딱 반나절만 이승으로 보내주시면, 그 은도끼를 몽땅 파와서 사자님들 노잣돈으로 팍팍 쏘겠습니다요! 어떠십니까, 구미가 훅 당기시지요?"

    자신의 말솜씨에 스스로 감탄하며 야심 차게 던진 뇌물 공세. 그러나 저승사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칠 뿐입니다.

    "네 이년! 끝까지 세 치 혀를 놀려 사기를 치려 드느냐! 저승에서는 이승의 은붙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덩이에 불과하거늘! 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어서 걸어라!"

    사자비가 날아와 복화의 등짝을 후려칩니다.

    "아얏! 아니, 안 통하면 안 통한다고 말로 할 것이지 왜 때리고 난리람!"

    결국 복화는 입을 삐쭉거리며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덧 안개가 걷히고, 거대한 쇠창살로 이루어진 저승의 문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 양옆에는 소의 머리를 한 우두마찰과 말의 머리를 한 마두나찰이 시뻘건 창을 들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망자들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 압도적인 공포에 복화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맙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인절미 하나 잘못 먹고 이게 무슨 꼴이람. 염라대왕 앞에서 대체 무슨 구라를 쳐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복화의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 육중한 철문이 끼기기긱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 3: 염라대왕 앞에서의 심판

    저승의 중심, 명부전. 천장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검은 기둥들과 그 사이를 맴도는 푸르스름한 도깨비불들이 숨 막히는 위압감을 조성합니다. 바닥은 흑요석으로 갈아 만들어 거울처럼 망자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전각 끝에는 구름에 가려질 만큼 거대한 옥좌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옥좌 위에는 붉은 용포를 입고 얼굴의 반을 덮을 만큼 길고 덥룩한 수염을 기른 명계의 절대자, 염라대왕이 좌정해 있습니다. 염라대왕의 양옆으로는 집채만 한 크기의 명부(망자의 기록을 적은 책)를 든 판관들이 붓을 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다음 죄인, 이승에서 신령을 사칭하고 백성들을 기만한 죄인 복화를 끌어내라!"

    우렁찬 호령과 함께 도깨비 졸개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복화가 명부전 한가운데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집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진 복화는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기 시작합니다.

    "네 이년! 네가 바로 이승에서 하늘의 신령을 모신다며 새빨간 거짓말로 순진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짠 가짜 무녀 복화가 맞느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명부전을 쩌렁쩌렁 울립니다. 그 거대한 음파에 복화의 고막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오른쪽 판관이 커다란 돋보기를 들이밀며 죄부가 적힌 두꺼운 책장을 펄럭펄럭 넘깁니다.

    "대왕마마! 이 자의 죄질이 아주 고약하옵니다. 신령이 내린 척 눈을 까뒤집고 쇳소리를 낸 것이 무려 삼만 육천 번이오며, 부적을 써준다며 받아 챙긴 복채가 은자만 오천 냥, 쌀이 삼백 석에 달하옵니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조상신을 들먹이며 멀쩡한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고, 있지도 않은 액운을 막아준답시고 가짜 부적을 남발하여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힌 중죄인이옵니다!"

    판관의 낱낱이 파헤쳐지는 죄목 낭독에 복화는 식은땀을 줄줄 흘립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미 죽었지만 지옥 불에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승에서 수많은 위기를 넘겨온 그녀의 사기꾼 기질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합니다. 복화는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쥐어짜 내며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대왕마마! 억울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신명께서 굽어살피시는 명부의 법도에 어찌 오차가 있겠습니까마는, 소인의 사정은 겉보기와는 많이 다릅니다요!"

    염라대왕이 콧방귀를 뀌며 수염을 쓸어내립니다.

    "오호라? 죄상 기록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네년이 감히 발뺌을 하려 드느냐? 어디 한 번 네 그 화려한 세 치 혀를 놀려 보거라."

    복화는 가슴을 치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대왕마마! 저기 이승을 한 번 굽어살펴 보시옵소서. 백성들의 삶이 어찌나 고단하고 팍팍한지, 그들은 그저 기댈 곳 하나, 위로받을 곳 하나가 필요했을 뿐이옵니다. 소인이 비록 신내림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희망찬 앞날을 점쳐주며 마음에 평안을 안겨주었사옵니다! 자식이 아파 잠 못 이루는 어미에게는 '곧 털고 일어날 것이니 걱정 마라' 다독여 주었고, 장사가 안되어 죽으려 하는 아비에게는 '내년에는 대운이 들어온다'며 살아갈 의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소인이 받은 복채는 사기 친 돈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치료해 준 정당한 심리 상담료(?)였단 말씀이옵니다!"

    복화의 당당하고도 뻔뻔한 논리에 명부전 안의 모든 이들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짓습니다. 도깨비 졸개들조차 갸웃거리며 고개를 끄덕일 뻔했습니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네 이년! 어디서 감히 명계의 법정을 모독하느냐! 거짓으로 희망을 판 것은 사기요, 불안을 조장하여 재물을 갈취한 것은 도적질이니라! 네년의 그 얄팍한 변명은 죄를 가중시킬 뿐이다! 당장 저 입술을 꿰매버리고, 거짓말을 일삼은 혀를 길게 뽑아내는 발설지옥(拔舌地獄)으로 처넣어라!"

    "아이고, 대왕마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제발 지옥만은 안 됩니다!"

    염라대왕의 호령에 덩치 큰 옥졸들이 무시무시한 집게를 들고 복화에게 다가옵니다. 복화가 체념한 채 질끈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였습니다. 명부전의 육중한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말단 서기 귀신 하나가 양손에 눈부시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꺼운 장부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옵니다.

    "대, 대왕마마! 잠시만 형 집행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여기, 이 죄인의 공덕부(功德簿)를 발견하였사옵니다!"

    모두의 시선이 서기 귀신이 들고 온 장부로 향합니다. 죄인의 선행을 기록하는 공덕부. 그런데 서기 귀신이 들고 온 복화의 공덕부는 웬만한 성인 남성의 몸통만큼이나 두껍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스러운 황금빛이 명부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판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안경을 고쳐 쓰며 소리칩니다.

    "아니, 이럴 수가! 평생 사기만 치고 산 가짜 무녀의 공덕부가 어찌 이리도 두꺼울 수가 있단 말이냐? 기록에 착오가 생긴 것이 분명하옵니다!"

    염라대왕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옥좌에서 몸을 앞으로 쑥 내밉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어서 그 공덕부를 펼쳐 안의 내용을 낱낱이 읽어보거라!"

    지옥으로 끌려가기 일보 직전이었던 복화는 멍한 표정으로 옥졸의 손아귀에서 풀려납니다. 그리고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자신의 거대한 공덕부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킵니다. 과연, 가짜 무녀 복화의 엉터리 공수 뒤에는 대체 어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요?

    ※ 4: 죄부와 공덕부의 미스터리

    명부전 안은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듯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령 사칭죄를 들먹이며 당장이라도 가짜 무녀를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 던질 듯 서슬 퍼런 으름장을 놓던 염라대왕마저도 옥좌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채 굳어버렸습니다. 그의 시선은 말단 서기 귀신이 덜덜 떨며 들고 온, 눈부신 황금빛을 찬란하게 뿜어내는 거대한 장부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평생을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고 달콤한 거짓말로 사기만 치며 살아온 엉터리 무녀의 공덕부가, 저승 건국 이래 손에 꼽힐 정도로 두껍고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니! 이는 명계의 그 어떤 지혜로운 판관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거칠게 쓰다듬던 염라대왕이 마침내 헛기침을 하며 명부전을 뒤흔드는 묵직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습니다.

    "에헴! 서기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그 장부를 펼쳐 그 안에 도대체 어떤 해괴한 공덕이 적혀 있는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낱낱이 고부하거라! 만약 장부의 내용에 한 치의 거짓이 있거나, 누군가 감히 명부의 기록을 조작한 흔적이 발견된다면, 네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라!"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서기 귀신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공덕부의 첫 장을 조심스럽게 넘겼습니다. 두꺼운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촤르륵 하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금가루 같은 영롱한 빛무리가 명부전의 어두운 허공으로 흩뿌려졌습니다. 서기 귀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장부에 적힌 내용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어… 그러니까, 신축년 삼월 보름의 기록이옵니다. 한양 땅에서 제일가는 구두쇠로 소문난 박 씨 부인이 찾아왔을 때, 죄인 복화는 가짜 장군신이 빙의한 척하며 '당장 곡간을 열지 않으면 원귀들이 들러붙어 집안의 삼 대가 멸망할 것'이라며 무시무시한 협박을 가하였사옵니다. 이 엉터리 공수로 인하여 평생 남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던 지독한 구두쇠 박 씨 부인은 공포에 질려, 그날부터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시장통에 쌀을 풀었사옵니다. 그 덕분에 유독 길었던 춘궁기에 굶어 죽을 뻔했던 거지와 백성 무려 백오십 명의 목숨을 구했사옵니다! 백오십 명의 아사자를 막은 이 엄청난 생명 연장의 공덕이 모두 죄인 복화의 입방정, 아니, 가짜 공수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천지신명께서 이를 매우 높이 사시어 대공덕으로 기록하셨나이다!"

    그 낭독을 듣고 있던 복화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던 그녀의 머릿속에서 경악과 환희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나는 그저 박 씨 부인 치맛자락에서 굴러나온 은도끼가 너무 탐나서 실컷 겁을 주고, 내친김에 신령 행세하며 선심 쓰는 척 말이나 툭 던진 것뿐인데! 그 말 한마디에 백오십 명이나 살았다고? 내가 이런 훌륭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다니, 나는 천재 사기꾼이 아니라 그냥 천재였잖아!'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서기 귀신은 이마에 맺힌 차가운 식은땀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며 쉴 새 없이 다음 장, 또 다음 장을 넘기며 낭독을 이어갔습니다.

    "다음은 임인년 오월 초사흘의 기록이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기로 악명 높은 탐관오리 이 사또가 신분을 숨기고 찾아왔을 때, 죄인 복화는 그저 관상만 대충 보고는 '마을 앞 개울에 빠져 죽은 원귀들이 사또의 목을 조르려 하니, 당장 튼튼한 돌다리를 놓지 않으면 급사할 것'이라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기겁한 이 사또는 덜덜 떨며 자신의 사재를 모두 털어 마을 앞에 무척이나 튼튼한 홍예교를 건설하였사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그해 여름, 백 년 만에 유례없는 대홍수가 났을 때 그 돌다리 덕분에 급류에 휩쓸려 죽을 뻔한 마을 사람 삼백 명의 목숨을 무사히 건졌사옵니다!"

    명부전 안은 이제 경악을 넘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도깨비 옥졸들조차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하지만 서기 귀신의 낭독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또한 계묘년 동짓달, 관아에서 수배 중이던 흉악한 도적 떼의 두목이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점을 보러 왔을 때의 일이옵니다. 죄인 복화는 그가 흉악한 도적인 줄도 모르고 그저 인상이 험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의 피눈물을 짜내면 네놈 자식의 두 눈이 멀어 평생 장님으로 살 것'이라 아무렇게나 저주를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도적 두목은 그날 밤으로 훔친 재물을 모두 가난한 자들의 집 마당에 던져 놓고, 스스로 관아에 자수하여 개과천선하였사옵니다! 이뿐만이 아니옵니다. 매점매석으로 약재를 싹쓸이했던 악덕 상인에게는 '그 약재를 병자들에게 풀지 않으면 네놈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이 독이 될 것'이라 속여, 며칠 뒤 마을에 돌았던 역병으로부터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일으켰사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찬란한 공덕의 향연에, 복화가 십 년 동안 뱉어낸 그 수많은 거짓말과 엉터리 점괘들이 묘하게도 악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공포와 일말의 양심을 자극하는 완벽한 방아쇠가 되었음이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부자들에게 뜯어낸 두둑한 복채의 일부로 시장에서 떡을 사 먹거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사치를 부리기도 했지만, 기분이 내킬 때면 동네 거지들에게 푼돈을 툭툭 던져주며 호기를 부리던 행동들까지 모두 '빈민 구제'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고 공덕부에 금빛 글씨로 또박또박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른쪽 판관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리며 염라대왕을 향해 읍소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참으로 난감하고도 기이한 일이옵니다. 이 자가 신령을 사칭하여 하늘을 우롱하고 백성들을 속인 것은 명백한 사기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중죄이오나, 그 거짓된 세 치 혀가 결과적으로 수천 명의 억울한 목숨을 구하고 악인들을 참회하게 만들었으니 이 산더미 같은 공덕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사옵니다. 비록 그 시작과 동기가 지극히 불순하였다 하나 그 결과가 이토록 훌륭하고 거룩하니, 명계의 엄중한 법도로 이를 어찌 처단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사옵니다!"

    왼쪽 판관 역시 수염을 쥐어뜯으며 다급하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사옵니다, 대왕마마! 만약 이 자의 사기죄만 물어 끔찍한 발설지옥에 떨어뜨린다면, 이 자의 엉터리 공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수천 명 백성들의 명줄과 인과율 또한 복잡하게 엉키게 될 것이옵니다. 저 깐깐하신 천지신명께서 친히 이 자의 공덕을 거대한 황금 장부로 남기시어 우리 명부전으로 보내신 데에는, 분명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아주 깊고 오묘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쥐죽은 듯 눈치만 살피던 복화는, 팽팽하게 돌아가는 머리로 상황이 자신에게 완벽하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승에서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던 희대의 사기꾼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재빨리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치고는, 마치 오랜 세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살아온 고결한 성녀라도 된 것처럼 한껏 거룩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절절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흑흑... 대왕마마! 이제야, 이제야 비로소 이 미천한 소인의 깊고도 숭고한 뜻을 헤아려 주시는 것이옵니까! 소인이 비록 신내림을 받지 못한 부족한 몸이나, 어찌 그저 얄팍한 사리사욕만을 채우려 하늘을 걸고 거짓말을 하였겠습니까!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을 꾸짖고, 그들의 썩어나는 재물을 세상의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흐르게 하려는, 참으로 뼈를 깎는 고통과 눈물겨운 희생이 담긴 철저하게 계획된 소인의 큰 그림이었사옵니다! 악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심어주어 스스로 선행을 베풀게 하려던 이 한 몸의 고결하고도 원대한 뜻이었음을, 부디 대왕마마의 넓고 크신 아량으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흑흑흑!"

    염라대왕은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는 복화의 가증스러운 연기를 내려다보며 기가 막혀 헛웃음을 쳤습니다. 저 요망한 여편네의 시커먼 속마음이야 명경지수처럼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물증인 거대한 황금빛 공덕부가 눈앞에서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 명계의 절대자인 염라대왕으로서도 함부로 형벌을 내릴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붉은 글씨로 빽빽한 죄부와 황금빛으로 물든 공덕부의 무게를 재는 명계의 저울은, 이미 공덕 쪽으로 무섭게 기울어져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습니다. 과연 염라대왕은 이 희대의 뻔뻔한 가짜 무녀에게 어떤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릴 것인지, 명부전 안의 모든 이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염라대왕의 입술만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5: 염라대왕의 특별한 판결

    명부전의 차가운 흑요석 바닥 위로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염라대왕은 턱을 괴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깊고 깊은 장고에 빠졌습니다. 그의 커다란 손가락이 옥좌의 팔걸이를 툭, 툭 치는 소리만이 적막한 전각 안을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눈을 번쩍 뜬 염라대왕의 날카로운 시선은 바닥에 엎드려 훌쩍거리는 척 연기하는 복화와, 그녀의 곁에서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공덕부, 그리고 도깨비 옥졸이 들고 있는 붉은 글씨의 죄부를 번갈아 가며 매섭게 훑었습니다.

    명계의 질서를 엄격하게 관장하는 절대자로서, 염라대왕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기가 어찌 되었든, 사기를 치려던 마음이 발단이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하고 수많은 악당의 마음을 개과천선하게 만든 자를 차가운 지옥 불에 집어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천지신명이 공덕의 가치를 인정하여 빛나는 장부를 내려보낸 이상, 함부로 벌을 내렸다가는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인과율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성한 신령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며 세상을 기만하고, 순진한 백성들의 쌈짓돈을 우려먹은 죄를 그저 모른 척 덮어주기엔 명계의 체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길고 무성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묘수를 찾던 염라대왕이 마침내 무언가 번뜩이는 결심을 한 듯, 눈빛을 호랑이처럼 빛내며 입을 열었습니다.

    "흠! 좋다. 죄인 복화는 잔망스러운 눈물을 거두고 당장 고개를 들어 내 말을 뼛속 깊이 새겨듣거라."

    염라대왕의 벼락같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명부전 천장을 때리듯 울려 퍼지자, 복화는 바짝 얼어붙은 척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속으로는 '옳거니! 살았다! 지옥은 면했구나!'라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한없이 불쌍하고 모든 죄를 깊이 뉘우치는 억울한 성녀의 표정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네년이 감히 하늘의 신령을 사칭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기만한 죄는, 저 밑바닥 발설지옥에 떨어져 천 년 동안 거대한 집게로 혀를 뽑히고 끓는 구리 물을 마셔도 모자랄 엄청난 중죄이다. 허나! 네년의 그 요망하고 얄팍한 입방정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의도치 않게 수많은 중생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휼하였고, 썩어빠진 탐관오리들을 참회하여 바른길로 걷게 하였으니, 그 공덕이 하늘 꼭대기에 닿아 네 죄를 덮고도 남음이 있다. 천지의 이치란 본디 깊고 묘하여, 때로는 가장 악취 나는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도 가장 맑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는 법이지. 내가 네가 무심코 쌓아 올린 그 거대한 공덕을 높이 사, 너의 명줄을 다시 이어 특별히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도록 하겠다!"

    그 생명 연장의 선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화는 바닥에 이마가 쿵 소리가 나도록 깨질 듯이 절을 하며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아이고, 대왕마마!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마마의 저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승에 돌아가면 더욱더 악덕 부자들의 돈을 뼛속까지 뜯어내어, 아니, 아니지! 더욱더 헐벗고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는 데 이 한 몸 으스러지도록 바치겠사옵니다! 만세! 지혜롭고 자비로우신 염라대왕 만세! 명부전 만만세!"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내뱉는 복화의 노골적이고 속보이는 본심에, 염라대왕은 미간을 팍 찌푸리며 다시 한번 엄하게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시끄럽다! 요망한 입방정을 당장 멈추지 못할까!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 널 온전한 몸으로 이승에 돌려보내 주는 대신, 아주 엄중한 조건이 하나 있다. 네가 지금까지는 얄팍한 눈치와 타고난 말솜씨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속여 넘기며 호의호식했지만, 다시 태어난 이제부터는 진짜로 사람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달래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사리사욕만을 채우려 들거나 진심으로 과거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그 즉시 내 옥졸 사자들을 보내어 네년의 혼을 통째로 잡아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튀겨버릴 것이니라!"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경고에 복화는 목을 움츠리며 다급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옛!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요! 어찌 감히 두 번 다시 더러운 속임수를 쓰겠사옵니까! 이제부터는 오직 참된 마음으로 하늘의 이치를 전하고 사람들을 돕는, 한양에서 제일가는 진짜 보살로 거듭나겠나이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염라대왕은 붉은 용포의 소맷자락을 크게 펄럭이며 허공을 향해 거대한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러자 명부전 한가운데 떠 있던 거대한 공덕부에서 눈부신 황금빛 덩어리가 한 줄기 거세게 쏟아져 나와, 복화의 작은 몸을 마치 따뜻한 담요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안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네가 그동안 무심코 쌓았던 선행과 공덕의 성스러운 기운이다. 이 기운이 네 육신과 혼에 온전히 깃들면, 너는 더 이상 눈치로 때려잡는 가짜 무녀가 아니라, 사람들의 과거에 얽힌 업보와 다가올 미래에 드리운 얕은 그림자 정도는 어렴풋이 볼 수 있는 진짜 '신기(神氣)'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대단한 천기누설의 수준은 아니고 아주 하찮고 작은 능력이겠지만, 네가 가진 그 화려한 말솜씨와 배짱이 결합한다면 멍청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데는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잔말 말고 그만 네가 원래 있던 이승의 자리로 썩 돌아가거라!"

    염라대왕의 우렁찬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복화의 시야가 눈이 부시도록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명부전을 떠받치고 있던 거대한 흑요석 기둥들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던 도깨비 옥졸들도, 위엄 넘치던 염라대왕의 모습도 모두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일그러지며 아득하게 멀어져 갔습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며 끝없는 허공으로 무서운 속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복화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아, 내가 진짜로 살아나는구나! 게다가 덤으로 진짜 신기까지 얻어서 금의환향하다니! 염라대왕님, 이 갚진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착하게, 하지만 아주 똑똑하게, 그리고 가끔은 아주 합법적으로 부자들 돈을 뜯어내며 돈을 벌어볼 테니 어디 한 번 잘 지켜봐 주십시오!'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가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뼛속까지 박힌 사기꾼다운 발상을 버리지 못한 복화의 입가에 통쾌하고 얄미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귓가를 찢을 듯 맴돌던 황천길 까마귀들의 처량한 울음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찰랑거리는 무당 방울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익숙한 목소리가 아주 아련하고 따스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짓과 탐욕으로 쌓아 올렸던 죄업이 엉뚱하게도 찬란한 공덕이 되어, 가짜 무녀 복화의 두 번째 인생이라는 참으로 화려하고 기막힌 막을 활짝 열어주고 있었습니다.

    ※ 6: 개과천선 진짜 보살

    "컥! 커어어억! 푸하아아앗!"

    한양 도성 밖, 비좁은 골목길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허름한 신당 안. 바닥에 쓰러져 핏기가 가신 채 죽은 듯 미동도 없던 복화의 몸이 갑자기 물 밖으로 튀어나온 활어처럼 거칠게 파닥거리더니, 기도를 꽉 막고 있던 주먹만 한 인절미 덩어리를 대포알처럼 맹렬하게 뱉어냈습니다. 점성이 강한 떡 덩어리는 포물선을 그리며 휙 날아가더니, 벽에 걸린 가짜 장군신 그림의 짝짝이 눈 정중앙에 찰싹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습니다.

    "허억, 헉... 쿨럭! 사, 살았다! 막혔던 숨이 쉬어져! 공기가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다니! 내가 진짜로 돌아왔어!"

    식은땀으로 등줄기가 흠뻑 젖은 복화는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코끝을 찌르는 익숙하고 매캐한 향 냄새,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이 목숨을 걸고 뱉어낸 침 묻은 인절미 조각까지. 모든 것이 그녀가 떡에 목이 막혀 꼴사납게 죽기 직전의 모습 완벽하게 그대로였습니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황천길을 걷고 염라대왕 앞에서 벌벌 떨며 살벌한 재판을 받았던 일들이 마치 아주 짧은 낮잠 속에 꾼 한낱 개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뽀얀 손목에 희미하게 남은 붉은 오라의 자국과,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묘하고도 따뜻한 알 수 없는 기운은, 그 모든 것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복화 보살님! 방 안에서 갑자기 웬 요란한 소리가 났는데, 어디 편찮으신 겝니까요?"

    밖에서 인기척을 느낀 옆집 아낙네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복채로 낼 엽전 한 푼 없는 가난하고 돈 안 되는 손님이라며, 재수 없으니 당장 나가라고 쌀쌀맞게 빗자루를 들고 쫓아냈을 복화였지만, 다시 태어난 지금의 그녀는 달랐습니다. 복화가 아낙네와 눈을 마주치는 그 짧은 순간,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낙네의 머리 위로 희미한 먹구름 같은 불길한 형상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녀의 집 부엌 아궁이 근처에 잘못 둔 마른 땔감으로 불씨가 옮겨붙어 작은 화재가 발생하는 환영이 순식간에 복화의 머릿속을 벼락처럼 스쳐 지나간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보너스로 내려준 '아주 하찮지만 진짜인 신기'가 마침내 이승에서 발동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오오! 진짜 보여! 염라대왕님 말씀대로 진짜로 사람의 앞날이 보인다고! 대왕님, 센스 한 번 기가 막히십니다요!'

    복화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환호했지만, 겉으로는 금방이라도 신령이 강림한 듯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주머니! 지금 남 걱정하며 한가하게 서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뛰어 돌아가 부뚜막 근처를 살펴보십시오. 땔감을 잘못 두어 자칫하면 집에 큰불이 나 살림살이를 모두 태워 먹을 무서운 기운이 보입니다!"

    그녀의 서슬 퍼런 경고에 기겁한 아낙네는 헐레벌떡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장통에는 복화 보살이 신통방통하게도 집이 다 탈 뻔한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이웃의 목숨과 재산을 구해주었다는 소문이 쫘악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복화의 허름한 신당은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순전히 얄팍한 눈치와 현란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구워삶았다면, 이제는 염라대왕이 하사한 진짜 신기와 이승에서 십 년간 갈고닦은 화려한 언변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켜 장안 최고의 명물 무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하지만 복화의 영업 방식은 예전의 비열했던 사기꾼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승에서 가장 악명 높고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 최 영감이 거드름을 피우며 그녀를 찾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어흠, 보살님. 내가 요즘 밤마다 꿈자리가 아주 뒤숭숭하고 어깨가 무거워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소이다. 내 특별히 은자를 넉넉히 쳐서 줄 터이니, 악귀를 막아주는 아주 효험 좋은 부적 하나만 당장 써 주시오."

    비단옷을 걸친 탐욕스러운 최 영감의 얼굴을 보자마자, 복화의 머릿속에는 그가 가난한 서민들에게 살인적인 고금리를 뜯어내며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멀쩡한 남의 땅을 빼앗아 부를 축적한 흉악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예전의 복화 같았으면 옳다구나 하고 부적 값으로 기와집 한 채 값은 너끈히 뜯어냈겠지만, 개과천선한 복화는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놋쇠 방울을 미친 듯이 흔들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 요망한 놈! 액운을 막으려면 까짓 부적 나부랭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네놈의 그 썩어빠진 심보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네놈이 빌려준 돈의 악랄한 이자를 모두 탕감하고, 빚 때문에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 간 자들의 문서를 모조리 광장으로 가져와 불태워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창고에 쌓인 엽전들이 밤마다 독사 구렁이로 변해 네놈의 목을 졸라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복화가 최 영감만이 알고 있는 은밀하고 더러운 비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저주를 퍼붓자, 최 영감은 그예 사색이 되어 방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빚 문서를 불태우기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복화는 이렇게 돈 많고 탐욕스러운 악인들에게는 호되고 소름 끼치는 점괘를 내려 그들의 부정한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강제로 베풀도록 만들었고, 정말로 힘들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헐벗은 백성들에게는 복채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따뜻한 위로와 진짜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가짜 사기꾼이 아니라 '의적 보살', '진짜 활빈당'이라 부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습니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내려앉아 밤이 깊어질 무렵, 신당에 홀로 앉은 복화는 낮에 나쁜 부자들에게서 협박 반 조언 반으로 뜯어낸(?) 어마어마한 양의 복채를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그중 십 분의 구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바구니에 담고, 남은 십 분의 일을 자신의 옥색 비단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으며 씩 웃었습니다.

    '뭐, 나도 고기 반찬 먹고 떵떵거리며 살아야 이 힘든 진짜 보살 노릇도 오래오래 계속할 거 아니겠어? 염라대왕마마, 요 정도 앙증맞은 수수료는 애교로 봐주시지요! 어쨌든 십 분의 구는 다~ 가난한 중생들에게 돌아갈 테니까요! 호호호!'

    저승의 염라대왕도 명부전의 거울을 통해 이런 복화의 얄미우면서도 귀여운 속셈을 다 지켜보고 있었는지, 복화의 신당 지붕 위로는 유난히도 밝고 따스한 달빛이 기분 좋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가짜 공수로 사람을 낚던 엉터리 무녀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슬기롭고 유쾌한 진짜 보살로 다시 태어난 복화. 세상을 향한 그녀의 신명 나는 징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는, 오늘 밤에도 한양 도성의 밤공기를 가르며 아주 경쾌하게 울려 퍼집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의 오디오 드라마 <가짜 무녀와 진짜 염라대왕>,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엉터리 점괘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나비효과, 그리고 지옥 문턱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복화 보살의 통쾌한 사이다 행보가 꽉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신나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복화 보살처럼 재치 있고 유쾌한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화면 아래의 '구독'과 '좋아요'를 꾹 눌러주세요! 알림 설정까지 하시면 가장 먼저 새로운 조선 야담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 더 재미나고 신비로운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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