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난 염라대왕 조선시대 임종 전 경고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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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내외)
"자네는 아직 올 때가 아니야." 꿈속에서 염라대왕을 만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기이한 꿈을 꾸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 단순한 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생생했던 그날의 기록! 오늘, 조선시대 역사서에 숨겨진 염라대왕과의 기묘한 만남, 그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어르신들을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우리의 옛 이야기 속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이들이 꿈에서 저승의 왕, 염라대왕을 만났다는 기록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본 영상은 조선시대 실록과 야담집에 기록된 '염라대왕 현몽 설화'를 바탕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와 삶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시니어 시청자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 평생의 업보, 저승사자를 부르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옛이야기 속 지혜를 찾아 떠나는 '조선 야담'입니다. 오늘은 살면서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법한, 하지만 누구도 겪고 싶지는 않은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바로 저승의 왕, 염라대왕을 만나고 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숙종 시절, 평안도 용강현이라는 고을에 김 진사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평안도 용강현의 소문난 부자 김 진사. 대대로 물려받은 너른 땅과 곳간에 가득 쌓인 재물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으나, 그의 성품은 참으로 고약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애원은 찬 서리처럼 매섭게 외면했고, 없는 이들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그 집안을 통째로 거덜 내기 일쑤였죠. 힘없는 백성들은 김 진사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지만, 그의 서슬 퍼런 위세 앞에 누구 하나 싫은 소리 한번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는 하루도 마를 날이 없었고, 그의 곳간은 억울한 이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에헴! 어디 감히 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뜬단 말이냐! 당장 꺼지지 못할까!” 사람들은 등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저러다 언젠가 큰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허나 김 진사는 그런 말들에 코웃음만 칠 뿐, 하늘의 심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악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 풍성한 수확에 기뻐하며 또 다른 욕심을 채울 궁리를 하던 김 진사가 그만 원인 모를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기침과 열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건만,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값비싼 약재를 아무리 달여 먹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의 몸은 시든 무청처럼 말라갔고, 밤낮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신음만 토해낼 뿐이었습니다. “아이고, 여보! 정신 좀 차려보시오!” “아버님!” 온 가족이 그의 곁에 매달려 울부짖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마침내 그의 숨소리마저 희미해지던 그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고, 촛불이 푸른빛을 띠며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방문이 스르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 문틈으로 들어선 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창백하다 못해 시퍼런 얼굴을 한 사내 둘.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손에는 차가운 쇠사슬과 명부가 들려 있었습니다. 바로 저승의 사자였습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김 진사는 본능적인 공포에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몸부림치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목구멍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저승사자 중 하나가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명부를 펼쳐 보이며 나직이 말했습니다. “평안도 용강현 거주 김 아무개. 네 수명이 다하였으니, 우리를 따라 염라대왕 전으로 가야겠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운 쇠사슬이 그의 양팔을 옭아맸습니다. “컥…! 여…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이…이놈들이 누군데 감히 양반의 몸에 손을 대는가! 이거 놔라! 놓지 못할까!” 그의 비명은 더 이상 이승의 가족들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의 혼을 육신에서 거칠게 끌어냈고, 순식간에 그의 몸은 가벼운 짚단처럼 끌려 나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길 위로. 사방에서는 정체 모를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스칠 뿐, 자신이 평생을 의지했던 재물도, 호통으로 다스리던 하인들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차가운 쇠사슬의 감촉과 뼛속까지 스미는 공포만이 함께할 뿐이었습니다.
※ 꿈인가 생시인가, 염라대왕 앞에 서다
얼마나 끌려왔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어둠의 길이 끝나고, 김 진사의 눈앞에 거대하고 위압적인 문이 나타났습니다. 문이 열리자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와 함께, 수많은 비명과 신음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김 진사의 혼은 저도 모르게 벌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이곳이 정녕 저승이란 말인가? 꿈이다. 필시 끔찍한 악몽일 게야.’ 하지만 온몸을 옥죄는 공포와 싸늘한 기운은 이것이 현실임을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들에게 끌려 도착한 곳은 넓고 높은 전각의 한가운데. 저 멀리 거대한 옥좌에 산처럼 거대한 인물이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고, 온몸에서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위엄과 서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바로 저승의 시왕 중 으뜸인 염라대왕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좌우로는 죄인의 업보를 기록하는 판관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사람의 일생의 모든 행적을 비춘다는 거대한 거울, 업경대(業鏡臺)가 서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김 진사는 그 앞에 무릎 꿇려지자마자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습니다. 염라대왕이 지옥 전체를 울리는 듯한 깊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고개를 들라. 네가 바로 평안도 용강현의 김 아무개냐.” “예… 예, 그러하옵니다만… 대왕님. 소인,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낯선 곳까지 끌려왔는지요. 필시 무슨 오해가…”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김 진사의 말은 염라대왕의 서릿발 같은 한마디에 그대로 끊겼습니다. “오해라 하였느냐. 좋다. 네놈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해주마. 저 업경대를 보아라!”
염라대왕이 손짓하자, 업경대의 표면이 흐려지더니 이내 한 장면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한 가족이 눈물로 애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사 나리, 제발 며칠만 말미를 주십시오. 이 가을걷이만 끝나면 빌린 쌀을 몇 배로 갚겠습니다.” 그러나 거울 속의 젊은 김 진사는 비웃으며 그들을 매몰차게 내쫓았습니다. “시끄럽다! 약조한 날이 지났으니, 약조대로 네놈의 밭은 이제 내 것이다!”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땅을 빼앗긴 농부의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절망, 굶주린 아이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김 진사의 심장에 그대로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습니다. “아…악!” 화면이 바뀌자, 이번에는 병든 노모의 약값을 빌리러 온 과부에게 흑심을 품고 겁박하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과부의 수치심과 공포가 생생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이어서 소작료를 속여 백성의 등을 친 일, 힘없는 이웃을 억압하고 거짓으로 모함한 일 등, 까맣게 잊고 살았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평생의 악행들이 파노라마처럼 업경대 위로 펼쳐졌습니다. 그가 외면했던 눈물과 그가 만들었던 한숨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그저 용서를 빌 뿐이었습니다. “대왕님! 잘못했습니다! 소인이…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그의 울음 섞인 애원은 텅 빈 전각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 "네게 기회를 주겠다"
김 진사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거대한 염라전(閻羅殿)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지만, 염라대왕은 미동도 없이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에 김 진사의 영혼은 남김없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치욕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만 있을 때, 지옥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갑고 장엄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네놈의 죄는 마땅히 살아생전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인 죄로 혀를 뽑히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져야 할 것이며,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재물을 빼앗은 죄로 날카로운 칼날의 산을 영원히 걸어야 하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 후에도 네놈의 업보는 다 씻기지 않을 터.”
그 말에 김 진사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염라대왕의 말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허나, 기이한 일이로다.” 염라대왕이 나직이 읊조리자, 옆에 있던 판관 하나가 두루마리 명부를 황급히 펼쳐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판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시여, 명부를 살핀바 이 자의 이름이 오늘 거두어들일 망자(亡者)의 목록에는 올라와 있지 않사옵니다. 이 자의 명은 아직 사흘이 더 남아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나이다.” 그 말에 김 진사는 희미한 희망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굽어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네놈의 목숨이 아직 경각에 달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벌써 저승의 문턱을 넘어왔는가. 필시 네놈의 악업이 하늘에 닿아, 정해진 명을 채우기도 전에 그 죄의 무게가 너의 육신을 먼저 짓눌렀음이로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김 진사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마치 그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본래대로라면 너는 남은 사흘을 병석에서 고통받다 죽어, 마땅한 형벌을 받아야 할 터. 하나, 네놈의 운명이 아직 이승에 끈을 남겨두고 있으니, 내 특별히 기회를 한번 주고자 한다.” “예? 기…기회라 하셨사옵니까?” “듣거라. 너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돌아가거든, 네게 남겨진 시간 동안 지금까지의 삶을 참회하고, 네놈의 재물을 풀어 굶주린 이를 먹이고 헐벗은 이를 입히거라. 네가 흘리게 한 눈물을 네 손으로 닦아주고, 네가 무너뜨린 이들을 네 힘으로 일으켜 세워라. 평생에 걸쳐 쌓은 악업을 남은 생 동안 선행으로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一丝의 온기도 없었지만, 그 말은 김 진사에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빛과 같았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이마를 찧으며 외쳤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반드시, 반드시 그리 하겠나이다!” 그러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서늘하게 깔렸습니다. “명심하거라. 이것은 은혜가 아닌 마지막 경고이니라. 만약 네가 이 약조를 어기고 이전과 같은 탐욕스럽고 악한 삶을 단 하루라도 반복한다면, 그 즉시 내 저승사자를 보내 네놈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그때는 정해진 명도, 심판의 절차도 없을 것이며, 네놈의 혼은 이 지옥의 가장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너를 위한 두 번째 기회란 다시는 없을 터이니.” 그 서슬 퍼런 경고에 김 진사의 영혼은 다시 한번 얼어붙었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대왕님의 경고를 뼛속 깊이 새기고 살겠나이다!” 그 대답에 염라대왕은 마침내 만족한 듯,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가보거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김 진사의 몸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찔한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었습니다.
※ 다시 얻은 삶, 새로운 시작
“으아아아악!” 김 진사는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자신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찢어지는 비명을 들으며 눈을 떴습니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지옥의 유황 냄새가 아닌, 익숙한 약초 냄새와 방 안의 묵은 먼지 냄새였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저승의 바닥이 아닌, 제 몸에 익은 따뜻한 비단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비명에 깜짝 놀란 아내와 자식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습니다. “여보! 정신이 드시오?” “아버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아이고, 아버님!” 며칠 밤낮으로 의식 없이 누워있던 그가 깨어나자, 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부여잡았습니다.
하지만 김 진사의 얼굴에는 기쁨의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눈은 극심한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으며, 사지를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익숙한 방의 풍경, 애타게 저를 부르는 가족들의 얼굴, 창호지 틈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모든 것이 분명 이승의 것이었지만, 그는 혹시라도 방구석 어둠 속에 시퍼런 얼굴의 저승사자가 서 있을까 두려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제 얼굴과 팔, 가슴을 더듬었습니다. 살아있었습니다. 분명히 살아있는 육신의 감촉이었습니다. “꿈… 꿈이었나? 그저 지독한 열병이 만들어낸 악몽이었을 뿐인가?”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던 찰나, 염라대왕의 서늘했던 목소리가, 업경대에 비치던 억울한 얼굴들이, 차가운 쇠사슬의 감촉이 뇌리를 다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공포와 감각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분명 죽음의 문턱을 넘어 저승에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이전의 공포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업경대를 통해 보았던, 자신이 평생 동안 짓밟고 외면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산 것이냐…” 그는 더 이상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처럼 목놓아 울며 자신의 어리석고 악했던 삶을 통렬하게 후회했습니다. “내가 사람이 아니었구나.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어… 이 죄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이냐…” 그의 통곡에 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지만, 그 눈물이 단순한 병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깊은 참회에서 비롯된 것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진사는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을 그쳤을 때, 그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평생을 가득 채웠던 탐욕과 오만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깊은 회한과 함께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맑고 굳은 결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과의 무서운 약속, 그리고 다시 얻은 삶의 무게를 깨달은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 참회와 선행의 나날들
그날 이후, 평안도 용강현의 김 진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변화는 다음 날 아침, 온 집안 식구들과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곳간 열쇠를 관리하는 마름을 불러들였습니다. 마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령하자, 김 진사는 핏기 없는 얼굴에도 형형한 기운을 담아 명했습니다. “장부책을 모두 가져오너라. 내게 빚을 진 모든 이들의 이름이 적힌 그 장부 말이다.” 마름과 가족들은 그가 병세에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여겨 말리려 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장부를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작년에 흉년을 이기지 못해 내게 밭을 넘긴 최 서방. 당장 사람을 보내 그를 모셔오너라. 아니, 내가 직접 가야겠다.”
김 진사는 병든 몸을 이끌고 몸소 최 서방의 초가집을 찾아갔습니다. 문 앞에서 그의 얼굴을 본 최 서방네 식구들은 또 무슨 행패를 부리러 왔나 싶어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그러나 김 진사는 그들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용강현 제일의 부자이자 양반인 그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는 눈물과 함께 진심을 토해냈습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소. 당신의 피눈물을 외면한 나를 부디 용서하시오.” 그는 밭문서를 그 자리에서 불살라 버리고, 원금은 물론 그간의 손해까지 몇 배로 쳐서 쌀과 베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김 진사의 기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곳간을 활짝 열어 춘궁기에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곡식을 나누어 주었고, 높은 이자로 고통받던 이들의 빚 문서를 자신의 손으로 불태웠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 영감이 병이 들더니 실성을 했나 봐.”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야. 저리 나누어 주는 척하다가 나중에 몇 배로 뜯어내려는 수작일 거야.”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그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김 진사의 선행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억울한 송사에 휘말린 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 관아를 찾아가 변론해 주었고, 사재를 털어 낡은 다리를 보수하고, 배움의 뜻이 있으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서당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는 과거의 오만과 탐욕 대신,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진심은 강물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차 감탄으로, 이내 존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욕심쟁이 김 진사’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덕망 높은 김 어르신’이라 부르며 그를 따랐습니다. 그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늘 서쪽 하늘을 향해 조용히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꿈속에서 보았던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경고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약속을 지켰노라고, 죄를 씻을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다고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 약속을 지킨 자의 평온한 마지막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탐욕으로 가득했던 김 진사의 얼굴에는 인자하고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고,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어진 어르신’이라는 칭송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남은 재산을 대부분 이웃을 위해 사용했고, 이제는 그저 소박한 전답을 일구며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염라대왕이 말했던 그의 진짜 명이 다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십수 년 전처럼 지독한 병세가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무는 해처럼, 타오르던 장작불이 사그라들 듯 자연스럽고 고요한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직감하고, 온 가족을 조용히 머리맡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자식과 손주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만, 김 진사의 얼굴에는 불가사의할 만큼 평온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십수 년 전, 죽음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눈물짓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나직이 말했습니다. “울지 말거라.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법. 애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아내가 흐느끼며 물었습니다. “여보, 정말 두렵지 않으신 게요? 어찌 그리 평온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김 진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창밖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두렵지 않다마다. 나는… 가야 할 곳으로 갈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무서운 분과 했던 약조를 지켰노라고, 떳떳하게 아뢸 수 있을 게다. 그러니 족하다. 내 평생에 이보다 더한 만족은 없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더 이상 시퍼런 얼굴에 쇠사슬을 든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 멀리서부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따스하고 환한 빛줄기만이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평생의 죄업을 씻어내고 다시 얻은 삶을 값지게 살아낸 자에게만 허락되는 평화로운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읊조렸습니다. ‘대왕이시여… 약조를… 지켰나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그 고을에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 인간의 삶이 참회를 통해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과응보의 법칙이 얼마나 무섭고도 분명한 것인지를 그의 삶을 통해 되새겼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염라대왕을 만나고 돌아와 제2의 삶을 살았던 김 진사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삶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한평생의 업보를 죽음의 문턱에서야 깨닫고, 두 번째 기회를 얻어 삶을 바꾼 김 진사의 이야기, 어떠셨는지요. 염라대왕의 무서운 경고는 어쩌면 삶을 올바르게 살라는 지혜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김 진사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영혼들은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요?
다음 시간에는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심판 아래 죄인들을 가두는 곳, '염라대왕의 옥사'. 조선시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무시무시한 저승 감옥의 종류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형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신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오늘 이야기에 대한 어르신들의 지혜로운 생각도 댓글로 꼭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