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아는 놈인가 했더니 , 염라대왕을 움직인 단 한 마디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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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어이, 거기 최 부자! 갈 때 되니 그 많은 돈 다 짐일세 그려."
평생 돈만 알던 구두쇠 최 부자가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니 명부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이미 상여는 나가고 관뚜껑에 못질까지 끝났는데, 과연 최 부자는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염라대왕과 담판 짓고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기막히고도 통쾌한 저승 여행기! 오늘 밤, 여러분을 기이한 체험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한양의 억만금 부자 최 씨.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가 어느 날 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저승사자들의 손에 이끌려 황천길을 떠납니다. 험난한 저승길을 지나 당도한 염라대왕의 심판대. 헌데, 저승의 서기가 실수를 했다? "잡아와도 엉뚱한 놈을 잡아왔구나!" 호통치는 염라대왕과 억울한 최 부자, 그리고 난처해진 저승사자들의 웃지 못할 소동!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들려주는 저승의 풍경과 그가 다시 살아나 베풀게 된 사연까지. 웃음과 감동이 있는 고품격 야담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 천하의 구두쇠 최 부자, 돈 세다 말고 저승사자를 맞닥뜨리다
옛날, 조선 한양 땅 운종가에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최 부자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어찌나 돈을 아끼는지 굴비 한 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뜨고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두 번 쳐다보면 "짜다, 물 켜라!" 하며 자식들을 나무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재산이 기와집 수십 채에 논밭이 천지사방에 널렸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팔자였지요.
어느 가을밤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독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는데, 최 부자는 아랑곳 않고 사랑방 문을 걸어 잠근 채 엽전 꾸러미를 세고 있었습니다. "하나, 둘, 셋... 어허, 이놈의 돈 냄새는 맡아도 맡아도 질리지가 않는구먼. 이것만 있으면 정승 판서도 부럽지 않고, 늙는 것도 서럽지 않아." 촛불 아래서 번들거리는 엽전을 쓰다듬는 최 부자의 얼굴에는 탐욕스러운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가슴 한복판이 맷돌에 눌린 듯 턱 하니 막혀오더니, 눈앞이 핑 돌며 촛불이 두 개로 보였다가, 네 개로 보였다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이쿠, 이게 무슨 일인가. 점심에 급하게 먹은 떡이 체했나?' 최 부자는 가슴을 탕탕 치며 숨을 고르려 했지만, 웬걸요. 숨은 점점 가빠오고 손발이 차갑게 식어가는데,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갔습니다. 방금까지 세던 돈 꾸러미가 와르르 무너지며 바닥에 흩어졌습니다. 그 짤랑거리는 소리가 마치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소리처럼 들렸지요. 최 부자가 헉헉거리며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닫힌 방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리더니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 둘이 방 안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기가 밀가루 반죽 같고, 입술은 팥죽색인 것이 산 사람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들. 바로 저승사자였습니다. "게 누구냐!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최 부자가 호통을 치려 했으나 목소리는 모기 소리만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 하나가 명부를 펼쳐 들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읊조렸습니다. "한양 사는 최달수, 금년 나이 예순하나. 자, 때가 되었으니 가세나." 그 말 한마디에 최 부자는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아, 아니오! 나는 못 가오! 내 돈이 저렇게 산더미인데, 내가 이걸 두고 어딜 간단 말이오! 아직 쌀값도 다 못 받았고, 아랫마을 김 서방한테 꿔준 돈도 받아야 한단 말이오!"
하지만 저승사자가 어디 사람 사정 봐주는 존재들이던가요. 한 사자가 쇠사슬을 쩔그렁거리며 다가와 최 부자의 손목을 낚아채는데, 그 손길이 어찌나 차가운지 뼈가 시릴 정도였습니다. "어허, 이 양반아. 갈 때는 빈손이라네. 억만금이 있으면 뭐 하나. 저승 가는 노잣돈 한 푼 못 가져가는 것을." 최 부자는 바닥에 흩어진 엽전 하나라도 쥐어보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그의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와 허공에 붕 떠 있었습니다. 방바닥에 엎어진 자신의 시체와 그 옆에 흩어진 엽전들. 그리고 뒤늦게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고, 대감마님!" 하며 통곡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모습이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 내 돈! 내 집!" 최 부자의 비명은 산 사람들의 귀에는 닿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천하의 구두쇠 최 부자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사 먹고, 차가운 저승 바람을 맞으며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 "공수래공수거라!" 가시밭길 지나 삼도천 건너는 고단한 여정
대문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한양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짙은 안개가 자욱한 낯선 길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에는 해나 달도 없이 칙칙한 회색 구름만 잔뜩 끼어있고, 발아래는 뾰족한 돌부리와 가시덤불이 무성한 거친 흙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황천길이었습니다. 최 부자는 맨발로 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가마 타고 다녔을 길을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이 찢어지고 피가 났지만, 저승사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걸을 뿐이었습니다. "여보시오, 사자 양반들. 내 집에 가면 금덩이가 궤짝으로 있소. 나를 좀 놓아주면 내 그 금덩이를 몽땅 드리리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시오."
최 부자는 걷는 내내 사정하고 애원하고 회유해 보았지만, 저승사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사자가 귀찮다는 듯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보시오 최 씨. 저승에서는 이승의 돈이 아니라, 이승에서 쌓은 덕(德)이 곧 노잣돈이오. 댁은 평생 돈만 모았지 덕은 쥐뿔만큼도 안 쌓았으니, 갈 길이 험할 수밖에." 그 말에 최 부자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평생 배고픈 거지에게 식은 밥 한 덩이 준 적 없고, 소작농들 등골이나 빼먹었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앞에 검붉은 물이 넘실대는 거대한 강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삼도천이었습니다. 강물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고, 물 위로는 갈 곳 잃은 영혼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룻배 한 척이 스르르 다가오는데, 뱃사공의 얼굴은 뼈만 앙상했습니다. 배에 오르려는데, 사공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노잣돈을 내시오." 최 부자는 버릇처럼 품속을 뒤졌지만, 그가 입고 있는 것은 주머니 하나 없는 수의(壽衣) 뿐이었습니다. 평생 그토록 아꼈던 돈은 한 푼도 없었지요. "아이고, 내가 돈이 없소. 외상이 안 되겠소?" 최 부자의 말에 사공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저승에 외상이 어디 있소? 돈이 없으면 저기 저 가시밭길을 돌아 맨몸으로 강을 건너시오."
결국 최 부자는 배를 타지 못하고, 다른 죄인들과 함께 차가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물속에 사는 독사들이 다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사람 살려!"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는데, 옆에서 같이 걷던 할머니 한 분은 옷이 젖지도 않고 물 위를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저 할망구는 뭣 때문에 저리 편하게 가오?" 최 부자가 억울해서 묻자, 저승사자가 혀를 차며 답했습니다. "저 할머니는 평생 가난했지만 콩 한 쪽도 이웃과 나눠 먹던 분이라, 그 공덕으로 꽃길을 걷는 것이오. 댁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강을 건너자마자 이번에는 칼날이 솟아있는 검수산(劍樹山)이 나타났습니다. 뾰족한 칼날 위를 걸어야 하는데, 최 부자는 한 걸음 뗄 때마다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이승에 두고 온 따뜻한 아랫목과 쌀밥, 그리고 곳간에 쌓여있을 비단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그 많은 재산 다 쓰고나 죽을 걸. 이렇게 개고생할 줄 알았으면 동네 사람들한테 술이라도 한 잔 살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아니, 저승 배는 떠난 뒤였지요. 그렇게 찢어지고 터진 몸을 이끌고 간신히 저승 관아 앞에 도착했을 때, 최 부자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웅장하고 거대한 기와집 대문 위에는 '명부전(冥府殿)'이라는 현판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고, 그 안에서는 천둥 같은 호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염라대왕을 마주할 시간이었습니다.
※ "이 놈이 아니다!" 염라대왕의 호통과 명부의 치명적인 실수
명부전의 문턱을 넘어서자, 그곳은 세상의 모든 빛과 어둠이 뒤섞인 듯 기묘하고도 엄숙한 공간이었습니다. 붉은 기둥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도깨비 문양의 기와에서는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법정 중앙, 높은 단상 위에는 호랑이 가죽을 깐 의자에 염라대왕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거대하고 위압적인지, 눈빛은 번개 같고 수염은 쇠줄 같아 감히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양옆으로는 판관들이 산더미 같은 장부를 쌓아놓고 붓을 놀리고 있었고, 소 머리를 한 옥졸(우두)과 말 머리를 한 옥졸(마면)이 창을 들고 죄인들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죄인 최달수, 대령하였느냐!" 판관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최 부자는 무릎이 꺾여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아이고, 대왕님!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열심히 돈 모은 죄밖에 없습니다요!" 최 부자가 읍소했지만, 염라대왕은 쳐다보지도 않고 명부(저승 장부)를 휘리릭 넘겼습니다. "어디 보자... 한양 운종가에 사는 최달수라... 금년 육십하나..." 염라대왕의 굵은 손가락이 장부 위를 훑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딱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대왕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보게, 판관. 여기 적힌 최달수는 생년월일이 갑자생인데, 지금 잡아 온 이 놈 관상을 보니 을축생이 아니더냐?" 염라대왕의 예리한 지적에 옆에 있던 판관이 허둥지둥 장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판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습니다. "어... 어라? 가만 보자. 주소는 한양 운종가가 맞는데... 아뿔싸!" 판관이 무릎을 탁 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대왕마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명부에 적힌 놈은 한양 운종가 아랫동네에 사는 '최달수(崔達壽)'이고, 지금 잡아 온 이 놈은 윗동네에 사는 '최달수(崔達秀)'이옵니다! 이름 소리만 같고 한자가 다릅니다요!"
순간 법정 안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염라대왕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천둥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멍청한 것들을 보았나!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더냐! 어찌 산 사람을 잡아와서 저승 법정을 어지럽히느냐! 당장 가서 제대로 된 놈을 잡아오지 못할까!" 대왕이 벼루를 집어 던지자 옥졸들이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최 부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뭐야? 내가 아니라고? 그럼 나... 안 죽어도 되는 거야?'
죽다 살아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공포에 질려 있던 최 부자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는 무릎으로 기어가 염라대왕 앞에 넙죽 절을 올렸습니다. "아이고 대왕님! 역시 공명정대하십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저는 윗동네 사는 알부자 최달수입니다요! 제가 비록 돈 욕심은 많아도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받아야 할 빚이 서른 군데나 됩니다요!" 저승의 실수라는 기막힌 상황 앞에서, 최 부자는 억울함을 토해내며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난처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쓸어내렸습니다. "허어, 이거 곤란하게 되었구나. 이미 저승 문턱을 넘어왔으니 명부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어. 게다가 이승에서는 벌써 장례 준비를 하고 있을 터인데..."
※ 이승으로 보내주시오! 저승사자와 벌이는 목숨 건 뇌물(?) 협상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제가 내 놈들... 아니, 저승사자님들 노잣돈도 넉넉히 챙겨 드리고, 대왕님께도 금송아지를 바치겠습니다!" 최 부자는 본능적으로 장사꾼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 뇌물을 운운하다니,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놈 보게. 저승에서는 이승의 금은보화가 돌멩이보다 못한 것을 아직도 모르느냐? 네가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면, 재물이 아니라 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덕이라뇨? 그런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 아닙니까?" 최 부자가 되묻자, 염라대왕은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습니다. "네놈의 창고에는 쌀이 썩어나가는데, 네 집 담장 밖에는 굶어 죽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네가 만약 다시 살아돌아간다면, 그 썩어가는 쌀을 풀어 빈민들을 구제하겠느냐? 그리하겠다면 내 특별히 차사들을 시켜 돌려보내 주겠다만." 이것은 거래였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선행의 계약. 최 부자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 아까운 쌀을...' 하지만 당장 칼산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야 쌀독을 비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겠습니다! 하고말고요! 쌀은 물론이고 제 옷가지까지 다 벗어 주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빨리 좀 보내주십시오!"
염라대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판관에게 명했습니다. "이 놈의 이름을 명부에서 지우고, 수명을 30년 더 늘려 주어라. 단, 약속을 어길 시에는 즉시 잡아와 혀를 뽑아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아까 그 저승사자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너희들의 실수이니, 너희가 책임지고 이 자를 다시 이승의 육신으로 데려다 놓거라. 가는 길에 절대 딴 길로 새지 말고!"
법정을 나오자마자 최 부자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벌벌 떨던 죄인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빚쟁이에게 호통치는 대감마님처럼 어깨를 폈습니다. "어이, 차사 양반들. 들었지? 내가 30년이나 더 살 팔자라네. 아까 나를 짐짝 취급하더니 꼴 좋구먼." 저승사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묵묵히 최 부자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최 부자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면 쌀을 나눠주긴 해야 할 텐데... 아까우니 조금만 줄까? 아니지, 염라대왕이 지켜본댔으니...'
그러다 문득, 저승사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저기... 차사 양반들. 내가 살아 돌아가면 말이오, 내 집에 있는 살르... 아니, 섭섭지 않게 대접해 드릴 테니 가는 길 좀 편하게 갑시다. 올 때처럼 가시밭길 말고, 저기 저 구름다리로 가면 안 되겠소?" 뇌물이라면 질색하던 저승사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실수로 윗선에 찍힌 마당에 최 부자의 비위를 거스르기도 껄끄러웠습니다. 게다가 이승의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지요. 사자 중 하나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흠흠. 뭐... 정 그러시다면야. 대신 약속은 지키시오. 돌아가자마자 우리 몫으로 돼지머리와 햅쌀밥을 푸짐하게 차려 올려야 하오. 안 그러면 자다가도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테니."
"아이고, 걱정 마시오! 내가 최 부자 아니오? 신용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이렇게 저승의 문턱에서 기막힌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올 때는 죄인이었으나, 갈 때는 귀빈 대접을 받으며 최 부자는 저승사자의 등에 업혀 편안하게 귀환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이승의 시간은 저승보다 훨씬 빨라서, 이미 자신의 집에서는 관 뚜껑에 못질을 하려고 망치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 돌아가는 길에 엿본 저승 풍경, 배고픈 조상님과 인색함의 대가
저승사자의 등에 업혀 룰루랄라 이승으로 향하던 최 부자, 마음이 놓이니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올 때는 공포에 질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갈 때는 보이더란 말이죠. 저승사자가 지름길이라며 데려간 곳은 '시왕전' 뒷길이었는데, 그곳에는 기이한 밥집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떤 집은 밥상이 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한데 주인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어떤 집은 밥그릇이 텅 비었는데 수십 명이 달라붙어 숟가락을 빨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보시오 차사 양반, 저기 저 사람들은 왜 빈 그릇을 핥고 있소? 보기 민망하게시리." 최 부자가 혀를 차며 묻자, 저승사자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저기 있는 저 양반들? 다 자네 조상님들이야." "예? 제 조상님들이라뇨?" 최 부자가 깜짝 놀라 다시 보니, 갓을 삐딱하게 쓴 증조할아버지, 곰방대를 문 할아버지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빈 밥그릇을 박박 긁고 계신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할아버지! 왜 거기서 그러고 계십니까!" 최 부자가 소리쳤지만 조상님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보게 최 씨. 자네가 이승에서 제사 지낼 때 어땠나? 돈 아깝다고 조기 한 마리, 사과 한 알 올리고 말았지? 자손이 이승에서 정성을 보이지 않고 베풀지 않으니, 저승에 있는 조상님들이 굶을 수밖에. 자네가 쌓아둔 그 많은 쌀, 썩혀서 버릴지언정 남 줄 생각은 안 했으니, 자네 조상님들은 저승 거지꼴을 못 면하는 걸세." 사자의 말은 뼈를 때리는 호통이었습니다. 반면, 길 건너편에는 아까 삼도천을 사뿐히 건넜던 그 할머니의 조상들이 잔칫상을 받아 놓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저 할머니는 가난해도 콩 한 쪽 나눠 먹고, 제삿날이면 동네 거지들까지 불러다 밥을 먹였지. 그 공덕이 저승까지 닿아 조상님들이 배부르게 드시는 게야."
최 부자는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돈만 많으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저승에 와보니 자신은 천하의 불효자요, 조상 굶기는 죄인이었던 겁니다. "아이고... 내가 몰랐소. 내 돌아가면 제사상에 소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잡아서 올리리다!" 최 부자가 다짐하자, 어두침침하던 길가에 웅크리고 있던 배고픈 귀신들이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렸습니다. "저 놈 보게, 살아서는 구두쇠더니 죽어서도 빈털터리로 왔구먼. 너도 곧 우리 꼴 날 게다." 그 섬뜩한 비웃음 소리에 최 부자는 등골이 오싹해져 저승사자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습니다.
"차사님, 빨리 갑시다! 빨리 가서 내 창고 문부터 열어야겠소! 내 이대로는 눈 못 감소!" 깨달음은 늦었지만 강렬했습니다. 저승길 관광(?)을 통해 인색함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낀 최 부자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서 이승의 경계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익숙한 기와집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대문 앞에는 하얀 등불이 걸려 있고, 마당에서는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왔습니다.
※ "관 뚜껑 열어라!" 장례 치르는 집으로의 질주와 필사적인 소생
최 부자의 집은 이미 초상집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문상객들이 북적거리는데 그중 절반은 술 마시러 온 동네 건달들이요, 절반은 빚 받으러 온 채권자들이었습니다. 정작 슬퍼해야 할 자식들은 상복을 입은 채 곁눈질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재산은 장남인 내가...', '무슨 소리, 막내인 내가 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곡소리에도 영혼이 없었지요.
안방 윗목, 병풍 뒤에는 칠성판 위에 최 부자의 시신이 뻣뻣하게 굳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입관(入棺)을 앞두고 염습을 막 끝낸 참이었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지붕 위에 내려앉아 최 부자의 영혼을 툭 밀었습니다. "자, 다 왔네. 얼른 들어가게. 너무 늦으면 몸이 식어서 못 들어간다네." 최 부자의 영혼은 허둥지둥 지붕을 뚫고 내려와 자신의 시신 위로 겹쳐졌습니다. 순간, 얼음장 같은 냉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답답함. 마치 꽉 끼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자, 이제 입관합시다. 시신 묶으시오!" 장의사의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장정들이 최 부자의 몸을 꽁꽁 묶기 시작했습니다. '으윽, 이놈들아! 살살 해라! 나 살아있다!' 최 부자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뻣뻣한 몸이 관 속으로 들어 올려졌고, 좁디좁은 나무 상자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쿵, 하고 관 바닥에 등이 닿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대로 뚜껑이 덮이면 영영 생매장당할 판이었습니다.
"못 가져오너라! 뚜껑 닫는다!" 탕, 탕, 탕. 망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최 부자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손가락을 까딱거렸습니다. '안 돼... 내 돈... 내 쌀... 아니, 내 목숨!' 발가락 끝에서부터 찌릿한 기운이 올라오더니, 꽉 다물려 있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으... 으어..." 하지만 밖에서는 곡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관뚜껑이 거의 닫히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최 부자의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이놈들아!!! 뚜껑 열어라!!!"
관 속에서 터져 나온 천둥 같은 고함 소리! 그 순간, 망치질하던 일꾼이 뒤로 나자빠지고, 곡을 하던 며느리는 "꺄악!"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 버렸습니다. 문상객들은 혼비백산하여 신발도 못 신고 도망가느라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귀, 귀신이다! 시체가 말을 한다!" 다들 도망가는 와중에,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지 막내아들이 떨면서 관 뚜껑을 살며시 밀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관 뚜껑이 덜컹 열리더니, 수의를 입은 최 부자가 벌떡 일어나 앉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습니다. "아이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야, 거기 물 좀 다오! 목말라 죽겠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첫 마디로 물을 찾자, 사람들은 그제야 귀신이 아님을 알고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최 부자는 멍하니 서 있는 자식들을 향해 호통을 쳤습니다. "이 녀석들아, 애비가 살아왔는데 반갑지도 않느냐? 그리고 저기 마당에 온 손님들 그냥 보내지 말고 국밥이라도 한 그릇씩 말아줘라! 돈 아끼지 말고!" 평소라면 "소금 뿌려라!" 했을 양반이 국밥을 퍼주라니, 사람들은 최 부자가 저승에 다녀오더니 실성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 관 속에서 부활한 최 부자, 곳간을 열어 쌀을 나누다
다시 살아난 최 부자는 물 한 바가지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안방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곳간 열쇠 꾸러미부터 챙겼습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마당쇠야! 돌쇠야! 대문 활짝 열어라! 지금 당장!" 하인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나으리, 몸도 성치 않으신데 어딜 가시려고요?"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오늘부로 우리 집 곳간을 다 헐어버릴 테다!" 최 부자의 눈빛은 결연했습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굳게 닫혀있던 쌀 창고의 자물쇠를 따고 문을 활짝 젖혔습니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천장까지 쌓인 쌀가마니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 부자는 직접 쌀가마니 하나를 끌어내어 칼로 찢었습니다. 하얀 쌀알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봐라! 동네방네 소문내거라!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쌀을 가져가라고! 빚 있는 사람은 차용증 다 가져오라 해라! 내 오늘 그 빚을 다 탕감해 줄 테니!" 하인들은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나, 나으리? 정말이십니까? 쥐 오줌 묻은 쌀 한 톨도 아깝다 하시던 분께서..." "그래, 내가 미쳤었다! 죽어보니 알겠더구나. 저승 갈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이 쌀가마니가 아니라, 내가 베푼 마음뿐이라는 걸! 염라대왕님이 지켜보고 계신단 말이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동네 사람들로 최 부자의 집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최 부자는 직접 바가지를 들고 사람들의 자루에 쌀을 퍼 담아 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손이 떨려서 한 톨이라도 흘릴까 벌벌 떨었겠지만, 이제는 펑펑 퍼주면서도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헐벗은 아이에게는 자신의 비단 옷을 덮어주었고, 지팡이 짚은 노인에게는 따뜻한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자, 가져가게. 많이 가져가서 배불리 먹게. 이게 다 내 저승 가는 노잣돈일세." 쌀을 받아 가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최 부자의 진심 어린 눈물을 보고는 함께 울었습니다. "최 부자 어른이 진짜로 변하셨네그려. 오래오래 사십시오! 활불(活佛)이 따로 없습니다!"
그날 밤, 최 부자는 안방에 상다리가 휘어지게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기일도 아닌데 무슨 제사냐는 아내의 타박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우리 조상님들 드릴 밥이오. 그동안 내가 불효가 막심했소. 내가 저승 가서 보니 할아버지가 굶고 계시더란 말이오!" 그는 정성껏 술을 올리고 수없이 절을 하며 속으로 빌었습니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제 배곯지 마시고 많이 드십시오. 제가 앞으로도 쭉 이렇게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저승 갈 때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춤을 추었는데, 마치 조상님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드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대문 밖, 지붕 위에는 저승사자들을 위한 거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머리와 갓 지은 햅쌀밥, 그리고 맑은 청주까지. 지붕 위 어둠 속에 앉아있던 저승사자들도 입맛을 다시며 웃었습니다. "허허, 그 영감. 깐깐하더니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구먼. 30년 뒤에 올 때는 가마 태워 모셔가야겠어."
그 후로 최 부자는 약속된 3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30년 동안 그는 '구두쇠 최달수'가 아니라 '적선가(積善家) 최 대감'이라 불렸습니다.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고, 다리 없는 곳에는 다리를 놓아주며, 그는 자신이 가진 부를 세상에 흘려보냈습니다.
30년 뒤, 어느 화창한 봄날. 아흔한 살이 된 최 부자는 사랑방 툇마루에 앉아 졸다가, 대문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그들, 바로 30년 전의 그 저승사자들이었습니다. 최 부자는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빙그레 웃으며 일어났습니다. "어서 오시게. 내 짐작하고 있었네. 기다리고 있었어." 최 부자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의 집 앞에는 그에게 은혜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꽃상여를 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승으로 가는 길, 이번에는 가시밭길이 아니었습니다. 꽃가루가 날리고 향기가 진동하는 비단길 위에서, 최 부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풍 가듯 떠났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지만, 그의 두 손에는 '공덕'이라는 보이지 않는 황금 티켓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자, 오늘 들려드린 '염라대왕과 담판 짓고 살아 돌아온 최 부자의 기적 같은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던 구두쇠가 죽음 문턱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은 인생을 나눔으로 채워가는 모습이 참으로 통쾌하고도 훈훈합니다.
옛말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요. 갈 때는 빈손이지만, 우리가 베푼 마음만은 저승까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노잣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 곳간은 어떠신가요? 혹시 꽉 닫아두고 계시지는 않은지, 한 번쯤 열어 주변을 둘러보는 넉넉한 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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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걱정은 저승사자에게 맡겨두시고, 편안하고 따뜻한 밤 보내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