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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의 첫 번째 관문, 객귀문(客鬼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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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 저승으로 들어가지도, 이승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영혼들이 서성이는 캄캄하고 시린 경계, 객귀문(客鬼門).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해 차가운 구천을 떠돌게 된 한 사내가 피눈물로 써 내려간 탄원서가 마침내 염라대왕의 무서운 심판을 깨웁니다.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고 산 자의 죄를 묻는 통쾌하고도 가슴 벅찬 명판결, 지금부터 그 장엄한 저승의 문이 열립니다.

    ※ 1: 안개 낀 저승의 경계, 닫혀버린 거대한 무쇠 문

    이승의 시간이 끝나는 곳, 산 자의 숨결이 멎고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 때, 홀로 남은 영혼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캄캄하고 스산한 경계가 있습니다. 해와 달이 뜨지 않아 언제나 잿빛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고, 발밑으로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차가운 망각의 강물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곳. 그 적막하고 기이한 길의 끝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게 솟아오른 무쇠 문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문짝에는 기괴한 악귀들의 형상이 수백 개나 부조되어 튀어나올 듯 꿈틀거리고, 문고리는 수천 근의 쇠사슬로 겹겹이 동여매어져 있어 그 어떤 힘으로도 열리지 않을 듯한 위압감을 뿜어내는 곳. 바로 억울하게 죽은 자들과 제 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영혼들이 이승을 떠나지도, 저승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서성인다는 슬프고도 무서운 관문, 객귀문(客鬼門)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자욱한 안개를 살짝 밀어내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한 사내의 영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갑수. 이승에서 소금을 지게에 지고 팔도강산을 누비며 늙은 홀어머니와 갓 태어난 어린 딸을 먹여 살리던, 법 없이도 살 만큼 순박하고 부지런한 소금장수였습니다. 갑수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자신의 반투명해진 두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심장이 뛰어야 할 가슴팍에는 시뻘건 핏자국만이 흉터처럼 선명하게 얼룩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왜 이 낯설고 무서운 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지 기억을 더듬으려 애쓰던 갑수의 머릿속으로,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번개처럼 내리꽂혔습니다.

    '그래... 나는 죽은 것이다. 믿었던 그놈의 손에 처참하게 개죽음을 당한 것이야...!'

    갑수의 뇌리에 피비린내 나는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며칠 전, 갑수는 십 년 지기 의형제나 다름없던 봇짐장수 판달이와 함께 큰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갑수의 전대에는 몇 달 동안 밤낮없이 소금을 팔아 모은 은전 백 냥이 두둑하게 들어 있었고, 이 돈이면 고향에 웅크리고 있는 어머니의 약값을 대고 딸아이에게 따뜻한 솜옷을 지어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갑수의 발걸음은 몹시도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인적이 끊긴 가파른 절벽 길에 다다랐을 때,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판달이의 눈빛이 탐욕스러운 짐승처럼 번뜩였습니다.

    "갑수야, 형님아. 어차피 이 험한 세상, 네가 그 돈을 가져가 봐야 가난을 면치 못할 터. 차라리 내게 그 은전을 넘기고 너는 여기서 그만 편히 쉬거라!"

    "판달아, 네가 갑자기 무슨 실성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 돈은 내 어미의 목숨줄과 다름없는..."

    갑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판달이의 손에 쥐여 있던 커다란 돌덩이가 갑수의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내리쳤습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갑수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고, 바닥에 쓰러진 갑수의 허리춤에서 전대를 잔인하게 낚아챈 판달이는 피를 철철 흘리는 갑수의 몸뚱이를 발로 걷어차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허공을 가르며 추락하던 그 찰나의 순간, 갑수의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추운 방에서 얼어 죽어갈 가여운 어머니와 핏덩이 같은 딸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판달이, 이 천인공노할 짐승만도 못한 놈! 내 뼈가 가루가 되고 내 피를 말려 너를 먹여 살렸거늘, 어찌 내 목숨을 끊고 내 가족의 생명줄마저 빼앗아 간단 말이냐!'

    객귀문 앞에 엎드린 갑수의 영혼은 기억이 되살아나자 견딜 수 없는 원통함에 피를 토하듯 절규했습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거대한 객귀문의 쇠창살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 쾅쾅 두드리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문안에 누가 있소! 저승의 사자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아직 이곳에 올 사람이 아니오! 내 명줄이 아직 남아 있거늘, 저 간악한 도적놈의 돌에 맞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소!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소! 이대로는 절대로 저승의 강을 건널 수 없단 말이오!"

    갑수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잿빛 안개를 찢고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쇠창살을 두드리고 피눈물을 흘려도, 거대한 무쇠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문 너머에서는 갑수와 같이 억울하게 죽은 수천수만의 원귀들이 내지르는 처절하고도 소름 끼치는 곡소리만이 바람을 타고 메아리처럼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갑수는 문고리를 부여잡은 채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보다, 굶주림에 죽어갈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배신자를 향한 끓어오르는 증오가 그의 투명한 영혼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승의 한을 풀지 못한 자는 결코 윤회의 길로 들어설 수 없는 법. 억울한 원귀가 되어버린 갑수의 기나긴 저승에서의 사투가 시작되는, 참담하고도 한 서린 객귀문의 밤이었습니다.

    ※ 2: 객귀들의 통곡 바다, 피눈물로 적어 내린 탄원서

    무쇠로 만들어진 객귀문의 굳게 닫힌 문고리를 부여잡고 피눈물을 쏟아내던 갑수의 귓가로, 스스슥 하는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쇳덩이가 바닥에 끌리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이 들려왔습니다. 갑수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짙은 잿빛 안개를 가르고 거대한 체구를 가진 저승의 존재가 서서히 그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키가 아홉 척은 족히 넘어 보이고, 시커먼 도포 자락을 발끝까지 늘어뜨린 채, 한 손에는 죄인의 영혼을 베어버린다는 서슬 퍼런 반월도를 쥐고 있는 자. 바로 이 무서운 객귀문을 지키고 관리하는 수문장 사자였습니다. 사자의 얼굴은 짐승의 뼈를 깎아 만든 듯한 섬뜩한 탈로 가려져 있었고, 그 탈의 텅 빈 눈구멍 너머에서는 푸른 도깨비불 같은 광채가 소름 끼치게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이승의 망자여. 아무리 쇠창살을 두드리고 통곡을 한들, 명부가 허락하지 않은 자는 결코 이 객귀문을 넘을 수 없다. 네놈의 울부짖음이 저승의 고요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당장 뒤로 물러나 다른 객귀들처럼 잠자코 네놈의 업보를 탓하며 엎드려 있거라!"

    수문장 사자의 목소리는 벼락이 치는 듯 웅장하고도 날카로워, 갑수의 투명한 영혼마저 산산조각 낼 듯한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사자가 손을 들어 객귀문 주변의 안개를 걷어내자, 갑수의 눈앞에 믿을 수 없이 처참하고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굳게 닫힌 문 앞의 끝없이 넓은 공터에는 갑수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탐관오리에게 억울하게 몰매를 맞아 죽어 피투성이가 된 선비, 독약을 먹고 억울하게 토혈하며 죽은 젊은 아낙네, 흉년의 굶주림에 지쳐 숨을 거둔 어린아이들까지. 제 명에 죽지 못하고 비명횡사하여 이승에 피 끓는 원한을 남긴 수만 명의 객귀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땅을 치며 처절하게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눈물과 피로 이루어진 비통한 슬픔의 바다였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갑수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가족들의 얼굴과 판달이의 비열한 웃음이 떠오르자 두려움을 집어삼키고 다시 사자의 발밑으로 다가가 엎드렸습니다.

    "사자 나리!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제 업보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피를 나눈 형제 같았던 자에게 은전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둔기에 맞아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제가 이대로 이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버리면, 늙고 눈먼 제 어미와 말도 못 하는 어린 딸자식은 이 추운 겨울에 굶어 죽고 맙니다! 제발... 제발 저 문을 열어 저를 염라대왕님 앞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대왕님께 제 이 억울하고 피 끓는 사연을 낱낱이 고하고, 저 간악한 살인귀를 벌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갑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목에서 피가 넘어올 듯 처절하게 애원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객귀들의 억지 섞인 변명과 원망을 들어왔던 수문장 사자였으나, 자신의 억울함보다 이승에 남겨진 가족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며 절규하는 갑수의 그 순수하고도 지독한 한(恨) 앞에서는, 사자의 차가운 탈 너머 푸른 눈빛도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사자는 쥐고 있던 반월도를 거두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갑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승의 인연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 덧없이 잘려 나가는 것이거늘, 어찌 그리도 미련하게 산 자들의 삶에 집착한단 말이냐. 염라대왕님이 계신 명부전은 너 같은 일개 객귀가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허나... 정 네놈의 억울함이 하늘을 찌르고 남을 만큼 깊다면, 단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사자의 말에 갑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기둥에 몸을 던지라 하시면 기꺼이 던질 것이며, 혀를 뽑으라 하시면 당장 뽑아 바치겠습니다! 제발 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저승의 법도에 따르면, 객귀문 앞을 떠도는 망자 중 그 원통함이 가장 깊고 진실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짜내어 대왕님께 직접 '혈서의 탄원(血書 歎願)'을 올릴 수 있다. 네가 입고 있는 그 망자의 수의자락을 찢고, 네 영혼의 손가락을 깨물어 흘러나오는 원귀의 피눈물로 네 사연을 낱낱이 적어내거라. 만약 그 사연에 단 한 치의 거짓이라도 섞여 있다면 탄원서는 잿더미로 변해버릴 것이나, 그것이 백백 진실이라면 저승의 매서운 바람을 타고 지옥의 불길을 건너 염라대왕님의 용상 앞까지 가닿을 것이다. 해보겠느냐?"

    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하얗고 낡은 수의의 넓은 소매 자락을 거칠게 찢어 바닥에 펼쳤습니다. 육신은 이미 죽어 사라졌으나, 영혼의 고통과 한은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갑수는 원한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꽉 깨물었습니다. 뚝, 뚝. 산 자의 붉은 피가 아닌, 억울한 원귀의 짙고 검푸른 피눈물이 손가락 끝에서 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갑수는 떨리는 손끝으로 찢어진 수의 자락 위에 끔찍했던 배신의 순간과, 억울하게 죽어간 자신의 사연,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을 가족들을 굽어살펴 달라는 애끓는 호소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씨를 써 내려갈 때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지만, 갑수는 이를 악물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글자까지 피눈물로 채워진 탄원서가 완성되자, 놀랍게도 잿빛 안개 속에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갑수의 혈서를 허공으로 낚아채어 굳게 닫힌 객귀문 너머로 날려 보냈습니다. 억울한 자의 지독한 한이 저승의 장벽을 넘어, 마침내 염라대왕을 향해 쏘아 올려진 처절한 순간이었습니다.

    ※ 3: 불타오르는 염라대왕의 진노, 업경대에 비친 추악한 진실

    갑수의 검푸른 피눈물로 쓰인 탄원서는 객귀문의 거대한 무쇠 문을 뚫고 들어가, 저승의 깊고 깊은 심연을 날아올랐습니다. 무시무시한 지옥의 유황 불길과 칼바람이 부는 빙산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곳은, 죽은 자들의 모든 죄업을 심판하고 저승의 무거운 법도를 관장하는 곳, 바로 명부전(冥府殿)의 거대한 대전이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붉은 기둥들 사이로, 사람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오르는 푸른 지옥불이 대전을 으스스하게 밝히고 있었고, 양옆으로는 망자의 죄를 기록하는 수십 명의 판관과 저승사자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전의 가장 높은 곳, 거대한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어좌 위에는 우주를 호령할 듯한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는 저승의 절대자, 염라대왕이 좌정하고 있었습니다.

    대왕의 짙은 수염과 형형하게 빛나는 부릅뜬 두 눈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모든 거짓을 단숨에 꿰뚫어 볼 만큼 매섭고도 날카로웠습니다. 그때, 허공을 가르고 날아온 갑수의 수의 조각이 마치 붉은 불새처럼 대전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고, 염라대왕의 손바닥 위로 스르르 내려앉으며 맹렬한 불꽃으로 타오르며 그 속에 담긴 원통한 사연의 글자들을 허공에 뚜렷하게 쏘아 올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어느 망자가 감히 명부전의 고요를 깨고 피 끓는 혈서를 날려 보냈단 말이냐!"

    염라대왕의 벼락같은 호통이 명부전을 뒤흔들자, 대전에 엎드려 있던 판관들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웅크렸습니다. 대왕은 허공에 떠오른 갑수의 핏빛 탄원서를 매서운 눈으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배신당한 자의 절망, 늙은 어미와 어린 딸을 향한 끊어질 듯한 애절한 슬픔, 그리고 자신의 목숨과 재물을 앗아간 살인귀 판달이를 향한 짐승 같은 저주. 탄원서에 담긴 갑수의 영혼의 절규가 귓가를 찢을 듯 명부전을 가득 채우자, 염라대왕의 굵은 미간이 무섭게 일그러졌습니다.

    "최 판관은 듣거라! 당장 명부를 뒤져 이 탄원서를 올린 갑수라는 자의 수명과 업보를 확인하여 내 앞에 고하라! 이 자의 말이 단 한 치라도 거짓이라면 당장 그 영혼을 끌고 와 화탕지옥에 던져버릴 것이나,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내 이승의 썩어빠진 악귀를 결단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최 판관이 황급히 두꺼운 가죽 장정의 명부를 펼쳐 들고 이승의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최 판관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바닥에 엎드려 고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망자 갑수의 호소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옵니다! 갑수의 본래 수명은 여든이 넘도록 장수하며 가난 속에서도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할 운명이었사오나, 며칠 전 그와 동행하던 판달이라는 악독한 자가 짐승만도 못한 탐욕에 눈이 멀어 갑수의 뒤통수를 돌로 쳐 죽이고 은전을 빼앗아 달아났사옵니다! 제 명을 채우지 못한 갑수는 이승을 떠돌다 원귀가 되어 객귀문에 도달한 것이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염라대왕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분노의 불꽃이 튀었습니다. 아무리 이승의 일이 인간들의 몫이라 하더라도, 하늘이 정해준 수명을 잔혹하게 끊어내고 억울한 원귀를 만들어낸 것은 저승의 법도를 정면으로 농락한 대역죄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짐승만도 못한 악귀가 있단 말이냐! 여봐라, 당장 업경대(業鏡臺)를 대전 한가운데로 대령하여라! 그 간악한 살인귀 판달이라는 놈이 지금 이승에서 어찌 지내고 있는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대왕의 명이 떨어지자, 거대한 청동 거울인 업경대가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대전 중앙으로 밀려 나왔습니다. 살인자 판달이의 이승의 모습을 비추라는 대왕의 호통에, 업경대의 맑은 표면에 물결이 일더니 이내 생생한 이승의 풍경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판달이의 모습은 실로 참담하고도 분통 터지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는 갑수를 쳐 죽이고 빼앗은 피 묻은 은전 백 냥으로, 장터에서 가장 번화하고 커다란 기와집을 사들여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판달이는 기생들을 양옆에 끼고 기름진 고기와 비싼 술을 퍼마시며 흉악하고도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거울의 한쪽 구석에는 갑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냉방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갑수의 늙고 눈먼 어머니와, 뼈가 앙상하게 마른 어린 딸이 흙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 극명하고도 잔인한 대비를 목격한 염라대왕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좌를 쾅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내 비록 산 자의 수명에 함부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하늘의 엄격한 율법이라 하나, 저토록 간악하고 썩어빠진 악귀가 무고한 자의 피를 밟고 서서 호의호식하는 것을 어찌 저승의 왕으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있단 말이냐! 저 악귀가 이승의 법을 비웃고 있다면, 내 친히 저승의 매서운 철퇴를 내려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저승사자들은 듣거라!"

    염라대왕의 분노에 찬 외침에 저승사자들이 일제히 엎드려 명을 받들었습니다.

    "객귀문 앞에서 피눈물을 쏟고 있는 원귀 갑수에게 이승으로 돌아갈 사흘간의 유예를 허락하노라! 갑수의 영혼을 이끌고 이승으로 올라가, 그의 고향 마을에 새로 부임한 의롭고 강직한 사또의 꿈자리로 갑수를 인도하여라! 사또의 지혜를 빌려 저 살인귀 판달이의 추악한 죗값을 낱낱이 파헤치고, 억울하게 죽은 자의 피 끓는 원한을 시원하게 풀어주어라!"

    명부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염라대왕의 장엄한 판결이 떨어지자, 객귀문 앞에 엎드려 있던 갑수의 영혼을 감싸고 있던 쇠사슬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기적처럼 끊어져 나갔습니다. 복수의 칼날을 품은 원귀가 염라대왕의 특별한 윤허를 받아, 마침내 억울함을 풀고 악당을 단죄하기 위해 이승으로 되돌아가는 소름 끼치고도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 4: 이승으로 돌아온 원귀, 새로 부임한 사또의 꿈자리

    염라대왕의 특별하고도 지엄한 윤허를 받아 이승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찰나의 시간을 허락받은 갑수의 영혼. 그는 저승사자의 인도 아래 칠흑같이 어두운 장막을 뚫고,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뼈에 사무치게 원통해하던 고향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가장 먼저 자신의 낡은 초가집으로 달려간 갑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방바닥에서 굶주림에 지쳐 새우잠을 자고 있는 눈먼 어머니와 가여운 어린 딸의 야윈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는 피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원귀의 몸으로는 그들에게 따뜻한 온기 한 줌 전해줄 수 없었고, 만질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갑수는, 이내 눈물을 거두고 복수의 칼날을 번뜩이며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관아의 동헌을 향해 원한에 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무렵, 마을에는 조정에서 새롭게 임명한 젊고 강직한 성품의 사또가 부임해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사또는 늦은 밤까지 등잔불을 켜두고 마을의 밀린 장부와 백성들의 고충이 담긴 문서들을 살피다, 피로에 지쳐 책상에 엎드린 채 깜빡 선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깊은 침묵과 어둠이 깔린 동헌의 밤공기 속으로, 스산하고 기괴한 바람이 훅 불어오더니 사또의 방안을 감싸던 등잔불이 파르르 떨리며 꺼질 듯 일렁였습니다.

    '으스스하구나. 방문이 열렸는가...'

    사또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며 하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개 한가운데에서, 시뻘건 피로 얼룩진 수의를 입고 머리가 처참하게 깨진 반투명한 사내, 갑수의 영혼이 서서히 그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또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마치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 가위에 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 사또 나리... 의롭고 명석하신 사또 나리... 부디 제 억울하고 원통한 이 피눈물을 닦아주시옵소서..."

    갑수의 영혼이 피 칠갑이 된 이마를 방바닥에 쿵쿵 찧으며 절절하게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귀의 목소리는 마치 쇳덩이가 긁히는 듯 소름 끼쳤지만, 그 속에 담긴 처절한 슬픔과 간절함은 사또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습니다. 사또는 공포를 억누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네 이놈! 억울하게 죽은 원귀인 듯한데, 감히 관아의 신성한 구역에 나타나 무슨 억지 사연을 늘어놓으려 하느냐! 네 정체가 대체 무엇이며, 무엇이 그리 원통하여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맴돌고 있단 말이냐!"

    "저는 이 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소금을 팔던 갑수라는 놈이옵니다. 제 죽음은 발을 헛디딘 실족사도, 흉악한 도적 떼를 만난 것도 아니옵니다! 십 년을 친형제처럼 믿고 따랐던 '판달'이라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 제가 모은 피 같은 은전 백 냥에 눈이 멀어 으슥한 절벽에서 제 뒤통수를 돌로 쳐 죽이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사옵니다!"

    갑수의 폭로에 사또의 눈이 커다랗게 부릅떠졌습니다. 갑수는 원한에 사무친 목소리로 사건의 전말과 판달이의 추악한 배신을 낱낱이 고해바쳤습니다.

    "저 간악한 판달이 놈은 제 피가 묻은 그 돈으로 장터에서 가장 좋은 기와집을 사서 기생을 끼고 호의호식하며 세상을 기만하고 있사옵니다. 반면 제 늙은 어미와 핏덩이 같은 딸은 냉방에서 굶어 죽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사오니, 사또 나리! 제발 저 악마 같은 놈을 잡아 능지처참하여 주시고, 제 가여운 식구들을 살려주시옵소서! 염라대왕님께서 사흘의 시간을 주셨사오니, 내일 밤 자정까지 저놈의 죗값을 묻지 못하면 저는 영원히 무간지옥을 떠도는 객귀가 되고 맙니다!"

    절규를 마친 갑수의 영혼은 다시 짙은 안개 속으로 스르르 흩어지며 사라졌고, 사또는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헉... 허억... 꿈이로구나... 헌데, 이토록 생생하고 소름 끼치는 꿈이라니."

    사또는 떨리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방바닥에는 방금 전 갑수가 머리를 조아렸던 그 자리에, 시커먼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억울한 원귀가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자신에게 복수를 청원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사또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내 비록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토록 썩어빠진 살인마가 내 관할 구역에서 백성의 피를 빨며 활개 치는 것을 놔둘 수는 없다. 반드시 갑수의 한을 풀고 저 짐승 같은 판달이를 단죄하리라!"

    동이 트자마자 사또는 이방을 불러 은밀히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이방의 보고에 따르면, 실제로 며칠 전 소금장수 갑수가 행방불명되었고, 그의 친구였던 봇짐장수 판달이는 벼락부자가 되어 기와집을 샀다는 흉흉한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것이 원귀의 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습니다. 사또는 눈을 빛내며 진범의 숨통을 옥죌 기막힌 심리전의 덫을 치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 5: 덜미를 잡힌 배신자, 파헤쳐진 땅속의 증거

    그날 늦은 오후, 사또는 새로 부임한 것을 핑계 삼아 마을의 돈 많은 부자들과 유지들을 관아의 너른 동헌 마당으로 모두 불러 모아 성대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갑수를 쳐 죽이고 빼앗은 피 묻은 은전으로 산 화려하고 값비싼 비단옷을 쫙 빼입고 거들먹거리는 판달이도 당당하게 초대되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판달이는 천한 봇짐장수 출신인 자신이 며칠 만에 고을의 양반들과 유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또의 연회에까지 초대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하여, 기고만장하게 껄껄 웃고 떠들며 주는 술을 거침없이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사또는 대청마루 높은 곳에 앉아, 친구를 끔찍하게 살해한 그 역겹고도 비열한 광경을 매서운 사냥꾼의 눈으로 묵묵히, 그러나 예리하게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어 취기가 돌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져 갈 무렵, 사또가 갑자기 굳고 차가운 표정으로 쥐고 있던 합죽선을 탁! 하고 내리치며 음악을 멈추게 하고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습니다.

    "다들 조용히 하라! 오늘 본관이 바쁜 너희들을 이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한가롭게 술과 고기를 즐기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실은 본관이 간밤에 몹시 흉흉하고도 소름 끼치게 기괴한 꿈을 꾸었기에, 이 고을에 오래 살아온 너희들의 지혜를 빌려 몽조(夢兆)를 풀고자 함이니라."

    사또의 묵직하고도 위압적인 선언에 마당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사또의 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생과 농담을 주고받던 판달이 역시 술잔을 내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또를 쳐다보았습니다. 사또는 수많은 군중 속에서 오직 판달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어젯밤 갑수의 원귀가 피눈물을 흘리며 들려준 끔찍한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꿈속에서, 뒷머리가 깨져 뇌수가 흐르고 온몸에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끔찍한 원귀가 내 방에 나타나 방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고하더구나. 자신이 평생을 친형제처럼 믿고 의지했던 의형제에게 험하고 인적 없는 절벽 길에서 뒤통수를 커다란 돌로 무참히 맞고 죽었으며, 그 금수만도 못한 살인귀가 홀어머니와 딸을 먹일 전대를 빼앗아 벼락부자가 되어 기생들과 놀아나고 있다며 피를 토하며 절규하더란 말이다! 원귀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기를, 자신을 배신하고 잔혹하게 쳐 죽인 그 진범의 이름이 바로... 이 마을에 사는 '판달'이라고 똑똑히 고하였느니라!"

    사또의 벼락같은 말이 동헌 마당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술에 취해 붉게 달아올랐던 판달이의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를 마주한 시체처럼 하얗고 파리하게 질려버렸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비싼 도자기 술잔이 덜덜 떨리다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판달이의 교활한 머릿속은 천둥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듯 하얗게 텅 비어버렸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습니다.

    '어, 어찌 저 새로 온 애송이 사또 놈이 그날 절벽에서의 일을 그리도 소상히, 단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알고 있단 말인가! 목격자라고는 산짐승조차 없던 깊은 산속이었거늘! 설마... 설마 진짜 갑수 그놈의 귀신이 나타나 내 죗값을 낱낱이 불어버렸단 말인가!'

    극도의 공포와 찔리는 양심에 사로잡힌 판달이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사또는 판달이의 그 처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벼락같이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포졸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당장 저기 넋을 놓고 앉아 있는 흉악한 판달이 놈을 포박하여 마당 한가운데에 무릎 꿇려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장한 포졸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넋이 나간 판달이의 양팔을 뒤로 거칠게 꺾어 짐승처럼 결박했습니다. 판달이는 흙바닥에 처참하게 엎드려 마지막 발악을 하듯 변명하려 애썼습니다.

    "사, 사또 나리! 억울하옵니다! 하늘에 맹세코 억울하옵니다! 어찌 실체도 없는 꿈속에서 본 헛소리 귀신 이야기만 믿고 죄 없는 생사람을 잡으려 하십니까! 저는 제 친구 갑수를 죽인 적이 맹세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열심히 봇짐을 지고 모은 돈으로 운 좋게 집을 산 것일 뿐, 아무런 물증도 없이 어찌 저를 사람을 쳐 죽인 살인마로 몬단 말씀이십니까!"

    판달이의 뻔뻔하고도 짐승 같은 발뺌에 사또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습니다.

    "증거? 네놈이 정녕 그토록 원한다면 완벽한 증거를 보여주마. 억울한 갑수의 원귀가 내게 네놈이 빼앗은 피 묻은 은전이 든 전대를 숨겨둔 곳을 똑똑히, 아주 상세히 일러주었다! 여봐라, 포졸들은 당장 저놈이 갑수의 피를 빨아먹고 새로 산 기와집의 뒤뜰로 달려가, 헛간 옆에 서 있는 늙고 굵은 감나무 밑동의 흙을 깊이 파보거라!"

    그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사또의 말에 판달이는 마지막 남은 숨통마저 완전히 끊어지는 듯한 극한의 공포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실신할 뻔했습니다. 갑수의 은전을 한꺼번에 몽땅 써버리면 관아의 의심을 살까 두려웠던 판달이가, 쓰다 남은 은전 뭉치와 차마 버리지 못한 갑수의 피가 묻은 전대를 한밤중에 몰래 땅을 파서 파묻어 둔 바로 그 정확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사또는 판달이의 미세한 동공 지진과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떠는 흉악한 얼굴을 보며, 자신이 파놓은 심리전의 함정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확신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헐떡이며 판달이의 집으로 달려갔던 포졸들이 흙투성이가 된 낡고 커다란 전대를 찾아내어 동헌 마당의 판달이 앞에 무참히 내동댕이쳤습니다. 그 전대에는 갑수가 살아생전 직접 수놓았던 '갑수'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무엇보다 전대 끄트머리와 끈에는 갑수가 절벽에서 떨어지며 피를 토할 때 묻은 검붉은 핏자국이 끔찍하게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하는 너무나도 완벽한 물증이 마당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숨죽이고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판달이를 향해 짐승만도 못한 악귀라며 끔찍한 욕설과 침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이 천인공노할 금수만도 못한 잔혹한 놈! 네놈이 십 년을 동고동락한 형제 같은 갑수의 머리를 잔혹하게 돌로 때려죽이고, 그 피가 묻은 더러운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하늘을 완벽하게 속이려 들었느냐! 원귀의 억울하고 피 끓는 한이 하늘에 닿아, 염라대왕께서 직접 네놈의 숨통을 끊어버리라 내게 명하셨다! 여봐라, 당장 주리를 틀고 저놈의 뼈를 으스러뜨려 그 흉악한 죗값을 낱낱이 받아내어라!"

    사또의 무섭고도 서슬 퍼런 명령에 형틀에 묶인 판달이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단 몇 대의 몽둥이질 만에 피를 토하며 자신의 끔찍한 범행을 낱낱이 자백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은전을 빼앗기 위해 돌로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내리친 일,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친구의 시신을 벼랑 아래로 밀어 유기한 끔찍한 만행까지. 배신자의 추악하고도 더러운 죗값이 마침내 만천하에 명백하게 드러나 통쾌하게 단죄받는, 짜릿하고도 속 시원한 권선징악의 순간이었습니다.

    ※ 6: 죗값을 치른 악당, 마침내 열리는 눈부신 저승문

    "사또 나리... 제발, 제발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가 잠시 미쳤었습니다... 은전 백 냥에 그만 눈이 멀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사지가 만신창이가 되어 피투성이가 된 판달이가 차가운 흙바닥을 비참하게 기며 짐승처럼 울부짖었으나, 사또가 그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북풍한설보다 차갑고 단 한 줌의 자비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네놈의 그 더럽고 추악한 변명과 목숨 구걸은, 지옥의 펄펄 끓는 화탕지옥 불길에 떨어져 염라대왕 앞에서나 실컷 지껄이거라! 여봐라, 저 짐승만도 못한 살인귀를 당장 사형장으로 끌고 가 참수하여 그 더러운 목을 마을 어귀에 높이 효수하고, 네놈이 살인을 저지르고 부당하게 취한 기와집과 모든 재산은 남김없이 몰수하여, 갑수의 늙고 눈먼 어미와 어린 딸에게 전부 돌려주어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주어라!"

    사또의 벼락같고도 지엄한 명 판결에, 동헌 마당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 만세를 부르며 사또의 지혜와 공정함을 칭송했습니다. 판달이는 짐승 같은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형장으로 질질 끌려갔고, 빼앗겼던 갑수의 피 같은 재산은 사또의 명에 따라 곧바로 눈먼 홀어머니와 가여운 어린 딸의 손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사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비와 관아의 곳간을 열어, 갑수 가족이 춥고 긴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는 따뜻한 솜옷과 쌀가마니까지 두둑하게 챙겨 보내어 그들의 굶주린 배와 찢어진 가슴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보듬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자정, 염라대왕이 허락한 사흘의 유예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텅 빈 대청마루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사또의 눈앞에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히 하얗고 맑은 안개가 둥글게 피어오르더니, 그 안개 속에서 갑수의 영혼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밤 사또를 찾아왔을 때의 그 흉측하고 피투성이였던 처참하고 원통한 원귀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갑수는 살아생전의 맑고 평온하며 듬직했던 소금장수의 모습으로, 깨끗하고 하얀 수의를 입은 채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은은하고 따뜻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갑수의 영혼은 사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아주 깊고 정중하게, 이마가 땅에 닿도록 세 번의 벅찬 큰절을 올렸습니다.

    "명석하고 의로우신 사또 나리... 나리의 하해와 같은 굳건한 은혜와 지혜 덕분에, 이 천한 놈이 제 억울한 죽음의 한을 씻어내고 굶어 죽어가던 제 가여운 가족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승에 대한 어떠한 미련이나 단 한 줌의 원망도 없이 몹시도 평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울한 자의 피눈물을 닦아주신 나리의 그 크신 은혜는 제가 훗날 지옥불에 떨어지더라도, 윤회를 거듭해 미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결코 잊지 않고 반드시 갚겠사옵니다..."

    갑수의 투명한 목소리는 이승의 모든 고통과 번뇌, 그리고 끔찍했던 원한을 완전히 내려놓은 듯 몹시도 맑고 평온했습니다. 사또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갑수를 향해 따뜻하고도 너른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가거라, 갑수야. 이승에서의 억울하고 맺힌 시름은 이제 모두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니, 넌 아무 걱정 말고 그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거라. 네 늙은 어미와 어린 딸은 내 관아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줄 터이니, 이제 그만 무겁고 아픈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염라대왕님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 네 선하고 맑은 업보의 보상을 받거라. 평안히 가거라."

    사또의 다정한 마지막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캄캄하던 밤하늘 구름 사이에서 눈이 시리도록 찬란하고 눈부신 황금빛 기둥이 한줄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와 갑수의 영혼을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억울함과 피눈물로 겹겹이 굳게 닫혀 있던 저승의 그 무섭고 스산했던 '객귀문(客鬼門)'이 이승의 한을 푼 망자를 위해 스스로 활짝 열리며, 원한을 씻어낸 영혼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기적 같고 숭고한 순간이었습니다. 갑수는 사또를 향해 마지막으로 눈물 고인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 따뜻한 황금빛 줄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영원한 평안과 안식이 기다리는 저승의 아름다운 명부전으로 서서히 승천하여 밤하늘 속으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부당한 배신과 참혹한 살인에 억울하게 눈감지 못하던 원귀가, 지혜롭고 강직한 명관을 만나 통쾌하게 악을 단죄하고 피맺힌 한을 시원하게 풀어낸 기막힌 저승과 이승의 복수극. 그리고 이승에 남겨진 불쌍하고 약한 자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권선징악의 눈부신 이야기는, 그날 이후 조선 팔도 굶주린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팍팍한 삶의 위로와 가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전설적인 사이다 야담으로 오래도록 훈훈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염라야담에서 들려드린 '객귀문' 이야기,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셨나요? 믿었던 형제에게 목숨을 잃고 차가운 구천을 떠돌아야 했던 억울한 원귀, 갑수. 하지만 그의 피눈물 어린 탄원이 저승의 문을 두드려 염라대왕의 분노를 깨우고, 명관의 지혜로 악당을 철저히 단죄하는 과정이 참으로 짜릿하고 통쾌합니다. 아무리 교활하게 죄를 숨기려 해도 하늘의 눈과 인과응보는 결코 피해 갈 수 없다는 권선징악의 통쾌한 진리를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네요. 억울함 없는 세상, 선한 이들이 복을 받는 훈훈한 세상을 꿈꾸며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더 신비롭고 재미있는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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