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같은 날 같은 마을에 오는 저승사자
매년 동짓날이면 전라도 산골 마을에 나타나 한 노파의 집 앞을 서성이는 저승사자. 마을 사람들은 사신(死神)이라 두려워하지만, 실은 그가 이승에서 노파의 아들이었고, 저승사자가 된 뒤에도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던 것. 노파가 천수를 다해 편안히 눈을 감을 때, 아들이 직접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저승의 좋은 곳으로 안내하는 이야기 <출처: 동패낙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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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어둠이 짙게 깔리는 동짓날. 전라도의 한 깊은 산골 마을에는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길한 손님이 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흑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창백한 얼굴을 푹 눌러쓴 거대한 그림자. 바로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간다는 저승사자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사신이 나타날 때면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숨죽여 떨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저승사자는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기는커녕, 마을 어귀에 쓰러져가는 낡은 초가집 앞을 밤새도록 서성이기만 하다 새벽이슬과 함께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 초가집에는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홀로 늙어가는 가엾은 노파가 살고 있었죠. 사람들은 사신이 노파의 명줄을 노리고 있다고 수군거렸지만, 그 무서운 사신의 정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프고도 따뜻한 비밀을 품고 있었습니다. 과연 매년 동짓날 밤마다 노파의 집 앞을 찾아온 저승사자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요?
※ 1: 마을에 찾아온 검은 그림자
매서운 칼바람이 문풍지를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 전라도의 어느 깊은 산골 마을.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음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동짓날이 찾아오면, 이 마을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잡귀와 액운을 쫓아내는 평범하고도 따뜻한 풍습 대신 숨 막히는 짙은 공포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해가 짧아져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노을이 일찍 자취를 감추고 칠흑 같은 어둠이 계곡을 덮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을 어귀의 굽이진 서낭당 고갯길을 넘어오는 기이하고 불길한 형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결코 산 사람의 온기나 기운을 품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키는 보통의 장정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더 컸으며, 먹물을 통째로 뒤집어쓴 듯한 시커먼 도포 자락이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도 스산하게 펄럭이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습니다. 챙이 넓은 까만 갓 아래로는 잿빛보다 더 창백하고 핏기 없는 낯빛이 어스름한 달빛에 언뜻언뜻 비쳤고,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소복하게 쌓인 눈에서는 뽀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조차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짐승들마저 본능적으로 그 죽음의 기운을 알아채고 헛간의 개들은 꼬리를 만 채 낑낑거렸고, 겨울 산의 올빼미조차 숨을 죽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문틈으로 그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형상을 훔쳐보고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웅크렸습니다. 저승의 명부를 들고 이승을 떠도는 자, 산 자의 숨통을 끊어 혼을 거두어간다는 무자비한 사신, 바로 저승사자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그 끔찍한 사자가 마을에 나타났던 해에, 사람들은 마을에 끔찍한 역병이 돌거나 누군가 피를 토하며 횡사할 것이라며 극도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집집마다 서둘러 대문에 굵은소금을 뿌리고 붉은 주사로 쓴 부적을 덕지덕지 붙였으며, 우는 아이들의 입을 거친 손으로 틀어막고 뜬눈으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밤새 벌어졌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마을로 내려온 저승사자는 부잣집 기와집이나 건장한 젊은이들이 사는 집을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마을 가장 구석진 음지에 자리한 다 쓰러져가는 낡은 초가집 하나만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 초가집은 겨울의 거친 바람만 불어도 썩은 지붕의 이엉이 날아갈 듯 위태로웠고, 진흙이 떨어져 나간 벽 틈으로는 삭풍이 그대로 스며들었으며, 굴뚝에서는 온기를 짐작할 만한 매운 연기조차 제대로 피어오르지 않는 가난하고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사자는 그 초가집 사립문 앞에 우뚝 멈춰 서서는 굳게 닫힌 낡은 방문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영혼을 낚아채지도 않고, 명부에 적힌 누군가의 이름을 세 번 부르지도 않은 채, 그저 차가운 겨울밤의 매서운 서리와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돌부처처럼 굳건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달이 중천을 지나 서쪽 산마루로 기울고, 새벽을 알리는 첫닭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계곡을 타고 메아리칠 때쯤이 되어서야 사자의 짙은 그림자는 아침 안개처럼 스르르 허공으로 흩어져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기이한 방문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눈이 내리는 동짓날 밤마다 어김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야 할 사신이 왜 한 사람의 생명도 거두지 않는 것인지, 마을 사람들의 공포는 점차 풀리지 않는 의구심으로, 그리고 묘한 호기심으로 변해갔습니다. 왜 하필 무시무시한 저승사자가 저토록 비루하고 냄새나는 초가집 앞만 지키다 돌아가는 것일까. 사신의 무거운 발걸음마저 떼지 못하게 만드는 저 낡고 허름한 문 안에는 도대체 어떤 기구한 사연이 숨 쉬고 있는 것일까. 어둠이 짙어질수록 마을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어 갔습니다.
※ 2: 홀로 남겨진 노파의 슬픔과 먼저 떠난 아들
그 낡디낡은 초가집에 살며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를 홀로 견뎌내는 이는 일흔을 훌쩍 넘긴 백발의 쇠약한 노파였습니다. 허리는 무거운 짐을 진 듯 활처럼 굽어 땅과 닿을 듯했고, 얼굴은 오랜 가뭄에 갈라진 마른 나무껍질처럼 깊게 패어 그녀가 홀로 견뎌온 모진 세월의 풍파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노파의 이름은 막순이. 그녀는 본래 산 너머 이웃 고을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내로 시집을 왔으나, 남편을 일찍 산사태로 잃고 피붙이라고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칠성이 하나만을 하늘처럼 바라보고 살아온 불행하고도 강인한 여인이었습니다. 칠성이는 마을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소문난 효자 중의 효자였습니다. 자신은 주린 배를 차가운 우물물로 채우면서도 늙고 병든 어머니의 밥상에는 어떻게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술이라도 올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뼈가 부서져라 남의집살이를 하고 험한 산을 타며 땔감을 구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어머니가 행여 비를 맞을까 자신의 낡은 적삼을 벗어 덮어주었고,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이면 꽁꽁 언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으며, 피가 나도록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밤새 어머니가 누우실 아랫목의 군불을 따뜻하게 데우는 심성 고운 청년이었습니다. 노파는 비록 지독한 가난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아들만 보면 사흘을 굶어도 배가 부르다며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그들 모자의 소박하고 눈물겨운 행복을 그리 오래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칠성이가 갓 스무 살이 되어 청년의 티를 벗던 해, 마을에 지독한 흉년과 함께 원인을 알 수 없는 끔찍한 괴질이 무서운 속도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건장하고 힘센 청년들도 아침에 멀쩡하다가 저녁이면 검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어나가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먹여 살리기 위해 무리하게 며칠 밤을 새워 이웃 마을까지 품팔이를 다니던 칠성이는 결국 그 지독한 괴질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자리에 앓아눕고 말았습니다. 노파는 하나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험한 산을 맨발로 헤집고 다니며 온갖 약초를 캐어다 달였고, 마을 어귀 돌부처 앞에서 이마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도록 수천 번의 절을 올리며 차라리 늙고 쓸모없는 자신의 목숨을 대신 거두어 가시라고 하늘을 향해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칠성이는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의 거칠고 마른 손을 두 손으로 꼭 쥐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어머니... 저를 두고 가시어 평생 불효만 저지르는 이 못난 자식을 부디 용서하셔요. 다음 생에는 기필코 지체 높은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 우리 어머니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평생 호강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가슴 미어지는 유언을 끝으로 칠성이는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금쪽같은 아들을 하루아침에 앞세운 노파의 슬픔은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필설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참혹했습니다. 눈물은 말라 붉은 피가 되어 흘렀고, 미친 듯이 가슴을 쳐대던 두 손은 멍이 들어 시퍼렇게 죽어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동정 어린 도움으로 아들을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고 돌아온 날, 노파는 무덤 앞에서 며칠을 꼬박 식음을 전폐하고 실신해 있다가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살아 숨 쉬는 산송장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십수 년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칠성이의 이름이 완전히 잊혀갈 때도, 노파의 멈춰버린 시간은 오직 아들이 흙으로 돌아간 그해 겨울의 춥고 시린 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특히 아들이 죽기 며칠 전 붉은 팥죽이 먹고 싶다고 그토록 조르던 것을, 가난하여 끝내 끓여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씻을 수 없는 피맺힌 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밤이 가장 길어지는 동짓날이 되면 노파는 산과 들을 헤매며 삯일로 얻어온 귀한 팥을 정성스레 삶아 솥 가득 붉은 팥죽을 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크고 이가 빠지지 않은 온전한 그릇에 팥죽을 꾹꾹 눌러 가득 담아 방문 앞 차가운 토방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는, 밤이 새도록 낡은 문지방을 쓰다듬으며 짐승처럼 소리 없는 오열을 토해냈습니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칠성아. 저승의 바람이 얼마나 차가운데 춥지는 않느냐. 밥은 굶지 않고 다니느냐. 어서 와서 이 늙은 어미가 정성껏 쑨 뜨뜻한 팥죽 한 술 크게 뜨고 가려무나." 노파의 애달프고 처절한 혼잣말은 매서운 동장군마저 숙연하게 만들 만큼 깊고 어두운 핏빛 슬픔을 가득 품고 산골짜기를 떠돌았습니다.
※ 3: 이승의 어머니를 지키다
노파가 차가운 방 안에서 먼저 떠난 아들을 그리며 피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밖에서 매서운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서장승처럼 서 있던 저승사자. 그 무시무시하고 서늘한 사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승을 먼저 떠난 아들 칠성이었습니다. 괴질로 고통 속에 눈을 감고 저승의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던 칠성이는, 이승의 그 낡은 초가집에 홀로 남겨진 늙고 병든 어머니 걱정에 휩싸여 망자들이 이승의 기억을 잊고 건넌다는 저승의 강, 삼도천 앞에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저승의 험상궂은 옥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가며 마침내 무시무시한 염라대왕의 심판대 앞에 꿇어앉게 된 순간에도, 그는 펄펄 끓는 지옥의 형벌이나 자신의 다음 생이 짐승이 될지 벌레가 될지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칠성이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짐승처럼 오열하며 대왕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습니다. "대왕님! 부디 비천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단 한 번만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눈이 어둡고 다리가 성치 않은 제 어머니는 저라는 지팡이 없이는 단 하루도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가엾고 불쌍한 노인입니다. 차라리 저를 펄펄 끓는 구리 가마솥 지옥에서 천 년을 태우시거나 얼음 지옥에서 만 년을 찢기게 하셔도 좋으니, 제발 어머니가 천수를 다하시고 눈을 감으실 때까지만 어머니 곁에 머물며 보필하게 해주십시오!" 칠성이의 피 맺힌 절규와 뼛속까지 시린 지극한 효심은 차갑고 냉정한 저승의 철칙마저 흔들어 놓았고, 얼음장 같은 염라대왕의 마음마저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왕은 칠성이의 갸륵한 효심에 크게 감복하였으나, 삼라만상의 이치상 이미 끊어진 명줄을 억지로 이어 이승의 사람으로 되돌려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깊은 고심 끝에 염라대왕은 칠성이에게 전례가 없는 특별한 직책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은 자들의 혼을 거두어들이는 무시무시한 사신, 즉 저승사자가 되는 임무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임무를 군말 없이 충실히 수행하는 대가로, 매년 일 년에 단 하루, 음기가 가장 강해 영혼이 이승의 기운과 닿을 수 있는 동짓날 밤에만 이승으로 내려가 어머니의 집을 찾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각별한 특권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얼굴빛을 잃고 저승의 서늘한 검은 도포를 입고 무자비한 사신이 된 칠성이는, 매년 팥죽을 쑤는 동짓날이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쏜살같이 이승의 전라도 산골 마을로 내려와 어머니의 초가집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비록 산 사람들의 눈에는 영혼을 갉아먹으러 온 끔찍한 사신으로 보일지라도, 칠성이는 행여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저승의 음기가 늙고 쇠약한 어머니의 명줄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두려워 차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차디찬 흙바닥의 문밖에서 문풍지 틈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어머니의 떨리는 숨소리와 밭은기침 소리를 들으며 소리 없이 뜨거운 피눈물을 삼킬 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토방에 내어놓은 붉은 팥죽 그릇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칠성이는 차가운 눈밭에 무릎을 꿇고 그 온기만을 가슴 깊이, 아주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낡은 초가집 주위를 빙빙 돌며 밤새 혹여라도 혼자 사는 어머니의 쇠약한 기운을 노리고 몰려드는 이승의 잡귀들이나, 수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영혼을 앗아가려는 다른 악랄한 저승사자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며 완벽한 결계 역할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셔가려는 죽음의 사자가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하늘이 내린 수명이 온전히 다하는 그날까지 어둠 속의 모든 위협을 막아주는 가장 든든하고 강력한 저승의 수호신이었던 것입니다. 날이 밝아와 하늘의 법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저승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면, 칠성이는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찢어지는 가슴으로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어머니... 부디 이 못난 자식이 없는 세상에서도 명을 길고 건강하게 누리소서. 이 불효자가 지옥의 문지기가 되어서라도 어머니의 남은 생을 그 어떤 악귀도 범접하지 못하게 평안히 지켜드리겠습니다.'
※ 4: 사신의 저주라 믿은 마을 사람들
하지만 무지하고 겁 많은 마을 사람들의 눈에 비친 진실은 너무도 기괴하고 끔찍하게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십 년이 훌쩍 넘도록 매년 동짓날이면 눈보라를 뚫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낡은 노파의 집 앞을 밤새도록 서성이는 검은 저승사자의 존재는, 이 조용하던 산골 마을의 가장 큰 골칫거리이자 숨통을 조이는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우물가에서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악의에 찬 쑥덕거림을 시작했습니다. "보게나, 저 흉측한 늙은이가 죽기 싫어서 사신에게 무슨 요사스럽고 끔찍한 방술을 부려 발목을 잡은 게 틀림없어. 사신이 노해서 우리 마을에 걷잡을 수 없는 역병이나 재앙을 내리면 어찌한단 말인가." "맞아, 필시 저 허름한 집구석에 지독한 원귀나 뱀 귀신이 들러붙어 저승사자마저 길을 헤매게 만드는 것이여. 저러다 사신이 화가 나서 우리 아까운 자식들 목숨까지 단체로 앗아가면 대체 누가 책임질 텐가!" 막연한 두려움은 곧 맹목적인 미움과 집단적인 광기로 번져나갔고, 마을 사람들은 가엾은 노파를 마을에 닥친 모든 불행의 원흉이자 역병 덩어리 취급하며 잔인하게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힘겹게 나물을 캐고 돌아오는 노파를 마주치면 길에 침을 뱉고 돌팔매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고, 마을 공동 우물물조차 길어가지 못하게 물동이를 걷어차고 길을 막아섰습니다. 노파는 그저 사람들이 왜 자신을 그리 벌레 보듯 미워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소매 끝으로 서러운 눈물만 훔칠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참다못한 마을 촌장과 건장한 장정들은 쌀가마니를 모아 고을에서 가장 신기가 매섭고 방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용한 무당을 거액을 주고 불러들였습니다. 노파의 집에 들러붙은 불길한 사신을 무력으로 쫓아내고 마을의 다가올 액운을 막아내겠다는 단호한 명목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기괴한 무복을 차려입은 무당은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병풍처럼 이끌고 노파의 좁은 초가집 마당으로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들이닥쳐 커다란 굿판을 요란하게 벌였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돼지머리를 삶아 상에 올리고,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마당 한가운데 대령했으며, 찢어질 듯 날카로운 놋방울 소리와 고막을 울리는 징 소리가 고요했던 겨울 산골 마을의 하늘을 무참히 찢어놓았습니다. 무당은 희번덕거리는 눈을 번뜩이며 마루에 웅크린 노파를 향해 방울을 흔들며 매몰차게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이 독하고 요망한 늙은이가 제 명을 다 살고도 목숨을 추하게 연명하려 저승의 엄격한 법도를 어지럽히고 있구나! 당장 썩 물러가라! 사신의 눈을 가리는 악귀야 썩 물러가라!" 영문도 모른 채 험상궂은 장정들의 손에 이끌려 차가운 겨울 마당 한가운데 짐승처럼 끌려 나와 꿇어앉은 노파는, 공포에 질려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습니다. 바로 그 위태로운 찰나였습니다. 징 소리가 미친 듯이 빨라지고 굿판이 절정에 달해 무당이 입에 칼을 물고 시퍼런 작두 위로 막 올라서려는 순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겨울 밤하늘에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뱀처럼 몰려들더니 집어삼킬 듯 매서운 회오리 돌풍이 마당을 무자비하게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돌풍은 굿상에 올려진 돼지머리와 제물들을 사방으로 박살 내어 흩뿌렸고, 무당이 미친 듯이 흔들던 놋방울은 밧줄 같은 끈이 툭 끊어지며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쇠 같은 힘이 교만한 무당의 목을 강하게 옥죄는 듯, 무당은 허공을 향해 두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검붉은 피거품을 왈칵 토해내고는 작두 아래로 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히 늙고 가여운 자신의 어머니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자들을 결단코 용서할 수 없었던 저승사자 칠성이의 걷잡을 수 없는 폭발적인 분노였습니다. 비록 인간의 아둔한 눈에는 형체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지옥의 살기가 굿판 전체를 순식간에 박살 내버린 것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공포에 혼비백산한 무당은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명을 지르며 줄행랑을 쳤고, 독기가 등등하던 마을 사람들도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사색이 되어 어둠 속으로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 끔찍했던 굿판이 벌어진 날 이후,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노파의 집 근처 반경 수십 미터 안에는 감히 얼씬도 하지 못했고, 가엾은 노파는 더욱 지독하고 처절한 침묵의 고독 속에서 차가운 겨울을 홀로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 5: 흐르는 세월과 노파에게 찾아온 마지막 동짓날
그 끔찍했던 무당의 굿판이 산산조각 난 이후로도 무심한 세월은 쉼 없이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지독한 핍박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끔찍한 가난 속에서도 노파는 질기고도 가느다란 목숨의 끈을 기적처럼 이어갔습니다. 어느덧 노파의 나이는 아흔을 훌쩍 넘어 백 살에 가까워졌고, 이는 당시로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경이로운 장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 노파를 흉측한 요물이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저승사자가 매년 찾아와 문턱을 서성이는데도 결코 명줄이 끊어지지 않는 노파를 범접할 수 없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며 그녀의 주변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노파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모진 풍파와 질병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저승사자가 된 아들 칠성이의 지극하고도 처절한 보호 덕분이었습니다. 칠성이는 일 년에 한 번 이승에 내려오는 동짓날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수시로 명부를 살피며 어머니의 명줄에 갑작스러운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고, 이승을 떠도는 굶주린 악귀들이 어머니의 쇠약해진 기운을 탐하려 맴돌 때마다 저승사자의 무서운 권위를 앞세워 단숨에 혼비백산하여 쫓아버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삼라만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 노파의 고단한 육신도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서릿발처럼 하얗게 세어 한 줌도 채 남지 않았고, 세상을 바라보던 두 눈은 탁하게 흐려져 촛불의 일렁임조차 겨우 분간할 지경이 되었으며,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속에서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듯한 거친 쇳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해 겨울, 다시 한번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가 천지를 뒤덮으며 휘몰아치는 동짓날이 찾아왔습니다. 노파는 피가 식어가는 육신의 변화를 통해 본능적으로 직감했습니다. 올해가 바로 자신이 평생을 그리워한 아들에게 팥죽을 쑤어줄 수 있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뼈마디가 모조리 부서질 듯한 끔찍한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며, 노파는 며칠 전부터 언 손으로 조금씩 불려둔 귀한 팥을 가마솥에 쓸어 넣고 아궁이에 힘겹게 마른 장작을 밀어 넣어 불을 지폈습니다. 매캐하고 독한 연기가 비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워 피 섞인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노파의 굽고 갈라진 손은 쉬지 않고 무거운 주걱을 저으며 솥 밑바닥을 긁어냈습니다. "칠성아... 내 가여운 아들아... 어미가 이제 남은 기력이 모조리 쇠하여... 내년 동지부터는 이 뜨끈한 팥죽을 쑤어주지 못할 것 같구나.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라... 곧 이 어미가 널 보러 먼 길을 갈 터이니..."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껏 완성된 붉은 팥죽을 가장 온전한 그릇에 가득 담아 문밖의 차가운 토방 위에 조심스레 내놓은 노파는, 그날따라 춥고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가운 문지방에 등뼈를 기대어 가만히 주저앉았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문틈을 파고들어 몰아쳤지만, 신기하게도 노파는 뼛속까지 얼어붙는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온몸을 따뜻한 솜이불로 감싸는 듯한 포근하고 아늑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밀려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방 안 한구석을 간신히 밝히던 호롱불이 파르르 요동치다 훅 소리를 내며 영원히 꺼져버린 그 순간, 노파는 깊은 안도감 속에서 가만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토록 무겁고 아팠던 백 년의 육신적 고통이 봄눈 녹듯 씻은 듯이 사라지고,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진 영혼이 허물 같은 몸을 부드럽게 빠져나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의 길고 길었던 눈물겨운 여정이 비로소 영원한 안식으로 끝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6: 그림자를 벗고 나타난 아들
천 근 만 근 무겁던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맑고 가벼워진 영혼으로 다시 눈을 뜬 노파의 앞에는, 평생을 굳게 닫아두었던 허름한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밖의 세상은 매섭게 휘몰아치던 끔찍한 눈보라도 모두 숨을 죽인 채 멈추어 있었고, 오직 시리도록 푸르고 영롱한 달빛만이 하얗게 눈이 덮인 마당을 은은하고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비현실적인 달빛의 한가운데, 평생을 뜬소문으로만 가슴 졸이며 듣던,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며 혐오하던 거대한 검은 그림자, 바로 저승사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신을 벗어난 노파는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사신의 형상을 마주하고도 털끝만 한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무섭고 서늘한 검은 형상에서 왠지 모를 깊고 애틋한 기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지독한 그리움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꼿꼿하게 서 있던 사자는 마루 끝에 앉아있는 노파의 맑은 영혼을 발견하고는 문턱을 향해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왔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 하나 밟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한없이 고요하고 애절한 걸음이었습니다. 노파의 발끝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자는 거대한 몸을 굽혀 눈밭 위에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승을 호령하며 생사여탈권을 쥔 무자비한 사신이 일개 인간의 힘없는 망령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천지가 개벽할 만큼 믿을 수 없는 경건한 광경이었습니다. 사자의 크고 거친 두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 오랫동안 흉측하고 창백한 얼굴을 깊게 가리고 있던 넓은 갓과 칠흑 같은 가리개를 조심스레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갓 아래로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 얼굴. 비록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서늘한 죽음의 기운이 짙게 감돌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노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가슴에 품어왔던, 두 눈을 꾹 감고도 천 번 만 번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는 바로 그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어... 어머니..."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고 쇳소리가 나는 기괴한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분명한 칠성이의 애달픈 목소리였습니다. 사자의 텅 빈 검은 눈동자에서 붉은 핏방울 같은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투둑투둑 떨어져 내려, 마당에 쌓인 순백의 눈을 붉게 적시며 녹여 내렸습니다. 노파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숨을 삼키며, 반투명해진 영혼의 두 손을 떨며 뻗어 사자의 차갑게 얼어붙은 뺨을 하염없이 어루만졌습니다. "칠성아... 아이고 내 새끼 칠성아... 네가 어찌하여 이리 무섭고 차가운 꼴을 하고 예까지 온 것이냐. 어찌 착한 네가 저승사자 같은 끔찍한 것이 되었단 말이냐..." 칠성이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머니의 투명한 손에 자신의 뺨을 비비고 또 비비며 처절하게 오열했습니다.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눈먼 어머니를 이승에 홀로 버려두고 차마 황천길의 삼도천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지옥불에 떨어져 살이 타들어 가더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곁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매년 동짓날 밖에서 어머니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피눈물을 삼키며 문고리를 잡고 울었으나, 이제야... 이제야 제 손으로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파는 엎드린 아들의 넓고 차가운 가슴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하늘을 우러러 함께 통곡했습니다. 그것은 백 년 가까운 이승의 모진 한과 서러움을 단숨에 모두 씻어내는, 슬픔을 넘어선 구원과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평생 자신을 어둠 속에서 지켜준 그 두려운 검은 그림자가, 자신을 해치러 온 악귀가 아니라 모진 세월을 견디며 자신을 수호해 준 사랑하는 아들이었음을 완벽하게 깨닫게 된 노파의 마음에는, 이제 더 이상의 억울한 회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 7: 어머니를 모시는 따뜻한 길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던 칠성이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어머니의 투명하고 가녀린 손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았습니다. 평소 망자들의 목을 옥죄던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자비했던 저승사자의 거친 손이었지만, 그리웠던 어머니의 손을 맞잡은 그 찬란한 순간만큼은 이 세상 그 어떤 따뜻한 화로보다도 훈훈하고 뭉클한 온기가 영혼을 타고 피어올랐습니다. "어머니, 이제 지독하게 고단하고 처절했던 이승의 무거운 짐은 모두 이곳에 내려놓으시지요. 남들에게 멸시받으며 춥고 배고팠던 서러운 날들은 이제 영원히 끝이 났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가장 평안한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칠성이가 남은 한 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부드럽게 가르자, 죽음의 기운으로 어둡고 쓸쓸하기만 했던 낡은 초가집의 마당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밝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휩싸였습니다. 그 성스러운 빛 속에서 말라죽어 가던 앙상한 겨울나무들은 마법처럼 일제히 생기를 되찾고 푸른 잎을 틔우더니 흐드러진 연분홍빛 복사꽃을 만발해 냈고, 바닥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눈송이들은 푹신하고 향기로운 연꽃 구름으로 변해 발밑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망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건너야 하는 저승 삼도천의 험난하고 차가운 뱃길이 아니라, 염라대왕이 지극한 효자 사신에게 칭송의 의미로 특별히 하사한, 극락정토로 곧장 향하는 찬란하고 향기로운 십리 꽃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노파는 백 년 동안 굽어 있던 허리를 꼿꼿하고 당당하게 펴고, 마치 갓 시집오던 젊은 시절의 설레는 새댁처럼 사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든든한 아들의 손에 이끌려 그 아름다운 꽃길 위로 힘차게 발을 내디뎠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이승에 남겨진 자신의 초라한 육신을 바라본 노파의 앳된 얼굴에는, 그 어떤 미련도 없는 지극히 평온하고도 아름다운 자비의 미소가 잔잔하게 번져 있었습니다. 칠성이 역시 어머니를 모시는 순간 몸을 옥죄고 있던 무섭고 칙칙한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를 스스로 벗어 던져버리자, 그의 몸은 눈부시게 하얀 명주옷으로 뒤덮였고 서늘했던 얼굴은 생전의 가장 다정하고 훤칠했던 늠름한 청년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되돌아왔습니다. 청년이 된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의 좁은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두 모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오색찬란한 빛과 흩날리는 꽃보라 속으로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불어닥친 지독한 눈보라가 걷히고 늦은 기상을 한 마을 사람들이 동짓날 밤의 불길한 공포를 털어내려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을 때, 노파의 초가집 앞에는 세상이 뒤집힐 듯 놀랍고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천지가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노파의 마당 한가운데에만 화사한 진달래와 복사꽃이 기적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낡은 문턱 앞에는 노파가 등뼈를 기대어 앉은 채로 아주 평온하게 숨을 거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녀의 앙상하고 얼어붙은 손에는 전날 밤 끓여낸 붉은 팥죽 그릇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으며, 주름진 얼굴은 마치 천국의 가장 행복한 꿈을 꾸는 듯 티 없이 환하고 아름답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목도한 순간,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지난 십수 년 동안 매년 눈보라를 뚫고 찾아오던 검은 사신이 노파의 명을 노리던 저주받은 악귀가 아니라, 불쌍한 어머니를 외로운 이승에서 끝까지 지키기 위해 저승에서부터 달려온 지극히 갸륵한 효자 아들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하고 잔인했던 어리석음을 통탄하며 눈밭에 엎드려 대성통곡했고, 앞다투어 나서 노파의 마지막 시신을 향기로운 꽃들로 덮어 정성껏 수습하고 아들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습니다. 죽음의 문턱과 저승의 철칙조차 갈라놓지 못한 이 위대하고도 눈물겨운 모자의 사랑은, 이후 수백 년 동안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전설이 되어 모진 겨울이 올 때마다 사람들의 꽁꽁 언 가슴을 따뜻하게 울렸습니다.
엔딩
오늘의 염라야담, 어떠셨나요? 무서운 사신의 그림자 뒤에 숨겨진, 죽음마저 뛰어넘은 아들의 애틋한 효심이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늘 밤은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을 떠올리며 따뜻하고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시간에도 기이하고 감동적인 옛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