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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서방이 아니라 옆집 박 영감이었다고? - 엉뚱한 사람 잡아 온 저승사자와 삼신할미의 기막힌 거래

    줄거리 요약: 한 마을에 이름도 똑같고 생년월일도 비슷한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이제 막 아내가 임신하여 삼신할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젊은 '박춘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고리대금으로 피를 빨아먹던 구두쇠 부자 '박춘삼'이었습니다. 원래 죽어야 할 사람은 악독한 부자 박춘삼이었는데, 부자가 마당에 온갖 부적을 붙이고 굿을 하는 바람에 눈이 어두워진 어리바리한 저승사자가 실수로 착한 젊은 박춘삼의 혼백을 잡아 저승으로 끌고 갑니다. 아기가 태어날 날만 기다리다 졸지에 저승에 끌려온 젊은 박춘삼은 염라대왕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대성통곡합니다. 명부를 대조해 보고 저승사자가 대형 사고를 쳤음을 알게 된 염라대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박춘삼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내가 가난한 살림에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이미 남편의 시신을 화장(또는 매장)해 버려 돌아갈 육신이 상해버린 것입니다. 그때, 이 집 아기를 점지해 주려다 애 아비를 잃게 생긴 삼신할미가 저승으로 달려와 기막힌 제안을 합니다. "대왕! 어차피 저 옆집 욕심쟁이 부자 박춘삼 놈을 오늘 잡아 와야 하지 않소? 그 부자 놈의 혼백만 쏙 빼오고, 이 착한 젊은이의 혼백을 그 부잣집 몸뚱어리에 집어넣어 주시오!" 결국 염라대왕의 허락 아래, 착한 박춘삼은 부잣집 박춘삼의 몸으로 깨어나게 됩니다. 깨어난 그는 먼저 자기 원래 집으로 달려가 슬퍼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부잣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평생 모은 악독한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삼신할미가 점지해 준 건강한 아들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통쾌한 반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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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옛날 어느 마을에 이름이 똑같이 '박춘삼'인 두 남자가 살았습니다. 한 명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새신랑 박춘삼이었고, 다른 한 명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 구두쇠 박춘삼 영감이었지요. 어느 날 밤, 악독한 부자 영감을 잡으러 내려온 어리바리한 신참 저승사자가 글쎄 부적 연기에 눈이 매워 실수로 착한 새신랑 박춘삼의 혼백을 낚아채 가고 맙니다! 졸지에 만삭인 아내를 두고 저승에 끌려간 박 서방, 그리고 애 아비를 잃게 생기자 저승 문짝을 발로 차며 달려온 삼신할미! 과연 대소동이 벌어진 염라대왕의 심판대에서는 어떤 기막힌 거래가 이루어졌을까요? 듣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유쾌하고 통쾌한 저승 대소동, 지금 시작합니다.

    ※ 1: 한 마을 두 박춘삼, 초가집의 웃음꽃과 기와집의 곡소리

    옛날 조선 땅 경기도 어느 산골에 청산골이라 불리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주 기묘하고도 재미난 인연으로 얽힌 두 사람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살고 있었는데, 글쎄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박춘삼'으로 똑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태어난 생일도 삼월 삼질날로 같았으니, 마을 사람들은 헷갈리지 않기 위해 초가집에 사는 스물여덟 살 젊은 박춘삼은 그냥 '박 서방'이라 불렀고, 고래 등 같은 아흔아홉 칸 기와집에 사는 쉰여덟 살 구두쇠 박춘삼은 '박 영감'이라 불렀습니다.

    이름과 생일은 같았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양새와 마음씀씀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달랐습니다. 먼저 초가집에 사는 젊은 박 서방은 비록 물려받은 논 한 마지기 없어 남의 집 머슴살이와 나무 장사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는 가난뱅이였으나, 마음씨가 어찌나 비단결같이 곱고 효성이 지극한지 동네에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게다가 작년에 맞이한 어여쁜 아내 이 씨가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와 오늘내일 출산을 앞두고 있었으니, 가난한 초가삼간에는 늘 깨가 쏟아지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이구, 우리 임자 배가 어제보다 더 불러온 것 같구려. 내가 오늘 장터에 가서 땔감을 팔아 기어이 미역 한 오라기하고 쌀 한 되를 사 왔소. 내일모레 우리 복덩이가 태어나면 임자한테 뜨끈한 미역국 한 사발은 꼭 끓여 먹여야지 않겠소."

    박 서방이 해맑게 웃으며 아내의 볼록한 배에 귀를 가져다 대자, 배 속에서 아기가 아비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꼬물꼬물 발길질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방 한구석 시렁 위에서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를 돌보는 삼신할미였습니다. 물론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삼신할미는 하얀 머리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박 서방 부부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허허, 착하고 기특한 것들 같으니라고. 가난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저리도 예쁘니, 내가 이 집에 아주 장군감으로 튼튼하고 복 많은 아들을 점지해 주었지. 사흘 뒤에 해산할 때까지 이 할미가 눈도 안 붙이고 옆에서 잘 지켜주마."

    삼신할미의 따뜻한 축복 속에 초가집은 봄바람처럼 훈훈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담장 하나 건너에 있는 아흔아홉 칸 기와집의 풍경은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자 박춘삼 영감은 젊어서부터 악착같이 고리대금업을 하여 마을 사람들의 피와 고혈을 빨아먹고 만석꾼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봄에 쌀 한 가마니를 빌려주면 가을에 세 가마니를 받아내고, 갚지 못하면 가차 없이 남의 집 문서를 빼앗아 길바닥에 내앉히니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모사 영감'으로 통했지요. 심지어 자기가 낳은 자식들과 마누라조차 그 지독한 구두쇠 짓과 포악한 성미를 견디지 못해 다 집을 나가버리거나 먼저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그 넓은 기와집에 늙은 하인 몇 명만 거느린 채 황금 독만 끌어안고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박 영감이 요즘 들어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길을 지나가던 도승이 박 영감의 얼굴을 보더니 "영감은 평생 지은 죄업이 태산 같아 올해 봄을 넘기지 못하고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것이오!"라고 예언을 하고 갔기 때문입니다.

    죽기가 무서워 오금이 저린 박 영감은, 평생 벌벌 떨며 아끼던 돈을 풀어 팔도에서 제일 용하다는 무당들을 불러 모아 대문 앞과 마당 곳곳에 온갖 해괴한 부적을 덕지덕지 붙이고 밤낮으로 살풀이 굿판을 벌였습니다.

    "얼씨구, 잡귀 잡신은 물러가고 저승사자도 물러가라! 이 집 주인 박춘삼 영감님 만수무강하게 해 주소서! 꽹과리를 더 세게 쳐라, 부적을 더 태워라!"

    무당들이 방울을 흔들고 징과 꽹과리를 두들겨 패는 소리에 동네 개들이 다 짖어대고, 마당 화로에서 고추씨와 유황, 그리고 노란 부적을 태우는 매캐하고 독한 연기가 담장 너머까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안방 보료 위에 앉아 있던 박 영감은 염주를 미친 듯이 굴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봐라! 대문 틈새마다 부적을 빈틈없이 다 붙였느냐! 저승사자 놈이 냄새도 못 맡고 얼씬도 못 하게 고추씨 탄 연기를 집 주변에 더 피워 올려라! 내 황금 두고는 절대 못 죽는다, 절대 못 죽어!"

    이렇게 한 마을 안에서 착한 박춘삼은 새 생명이 태어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한 잠이 들었고, 악독한 박춘삼은 저승사자를 쫓아내겠다며 온 동네에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던 어느 깊은 밤이었습니다.

    ※ 2: 부적 연기에 눈이 매운 어리바리 저승사자의 대형 사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자정 무렵, 구름 사이를 가르고 시커먼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청산골 마을 어귀에 내려선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오늘 밤 수명이 다한 '청산골 박춘삼'의 혼백을 거두러 내려온 저승사자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이 임무를 맡아 내려온 사자는, 베테랑인 강림도령이 갑자기 배탈이 나는 바람에 대타로 처음 이승 출장을 나오게 된 어리바리한 신참 저승사자 '만보'였습니다. 만보는 품속에서붉은 글씨가 적힌 저승 명부를 꺼내어 달빛에 비추어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음... 어디 보자. 경기도 청산골에 사는 박춘삼, 삼월 삼질날 태어난 사내라... 염라대왕님께서 분명히 마을 한복판 큰 기와집에 사는 박춘삼을 자시 정각에 잡아 오라고 하셨지? 첫 임무인 만큼 실수 없이 깔끔하게 해치우고 돌아가서 칭찬을 받아야겠다!"

    만보는 주먹을 불끈 쥐고 기와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기와집 근처에 다가가자마자, 만보의 코와 눈으로 무언가 숨이 턱 막히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독한 연기가 확 덮쳐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 영감이 저승사자 못 들어오게 하려고 화로 수십 개에 매운 고추씨와 유황, 그리고 개똥과 부적을 섞어 태운 연기가 집 주변에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쿨럭, 쿨럭! 아, 아이고 매워라! 이게 대체 무슨 지독한 연기람! 내 눈! 아이고,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네! 게다가 저 시끄러운 징 소리, 꽹과리 소리는 또 뭐야! 귀청이 떨어져 나가겠구나!"

    신참 저승사자 만보는 매운 고추씨 연기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기침이 터져 나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기와집 대문마다 시뻘건 경면주사로 그린 부적들이 수백 장이나 붙어 있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어리바리한 신참 사자로서는 도무지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콜록, 콜록! 아, 큰일 났네! 자시 정각까지 이제 일각도 안 남았는데, 이 매운 연기와 부적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만보가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며 기와집 담장을 짚고 비틀거리다가, 연기를 피해 옆쪽으로 몇 걸음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기와집 바로 옆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허름한 초가집 사립문 앞까지 밀려가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매운 연기가 덜한 곳으로 빠져나온 만보가 눈을 비비며 문패 쪽을 올려다보니, 마침 초가집 사립문 기둥에도 작게 '박춘삼'이라고 적힌 나무 패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라? 여기도 박춘삼이네? 아하! 저 기와집 마당에서 하도 시끄럽게 굿을 해대니까, 집주인인 박춘삼이 시끄러워서 바로 옆에 있는 행랑채 초가집으로 피신해 자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하마터면 엉뚱한 데서 시간만 날릴 뻔했네!"

    눈이 매워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 데다가 마음까지 급해진 신참 저승사자 만보는, 그 초가집이 동명이인 젊은 박 서방네 집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사립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그 시각, 초가집 안방에서는 만삭의 아내를 간호하던 삼신할미가 마침 아기 태어날 때 쓸 맑은 약수를 길어 오려고 잠시 뒷산 산신령네 우물로 자리를 비운 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박 서방은 아내 옆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지요.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선 저승사자 만보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박 서방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품에서 붉은 오랏줄을 꺼내어 박 서방의 가슴팍에 확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명부를 펼쳐 들고 외쳤습니다.

    "청산골 박춘삼은 듣거라! 네 이승에서의 수명이 오늘로 다하였으니, 염라대왕의 명을 받들어 너를 저승으로 압송하노라! 일어서라!"

    영문도 모르고 자던 젊은 박 서방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혼백이 쑥 빠져나와 오랏줄에 꽁꽁 묶였습니다. 어리둥절하여 눈을 뜬 박 서방의 혼백이 자기 몸뚱어리가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소리쳤습니다.

    "어, 어라? 당신은 누구시며, 왜 제 몸이 저기 따로 누워 있는 것이옵니까? 저기 제 만삭인 아내가 자고 있사온데 저를 어디로 끌고 가시는 겁니까요!"

    "시끄럽다, 이놈아! 저승에 가면서 말 안 듣는 망자는 네놈이 처음이로구나! 자시 정각이 다 되었으니 잔말 말고 어서 가자!"

    신참 저승사자 만보는 박 서방의 입에 재갈을 물리다시피 하여 오랏줄을 거칠게 잡아끌고는, 구름을 타고 순식간에 저승을 향해 날아올라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반 식경 뒤, 뒷산에서 약수를 길어 온 삼신할미가 초가집 방 안으로 들어섰다가 숨이 멎어 차갑게 식어 있는 젊은 박 서방의 시신과, 남편을 흔들며 까무러치게 통곡하는 만삭의 아내를 보고는 들고 있던 약수 바가지를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내가 분명히 이 아이 아비의 수명이 여든 살까지인 것을 똑똑히 보았거늘, 어떤 눈먼 저승사자 놈이 남의 귀한 애 아비 혼백을 도둑질해 갔단 말이냐! 아이고, 이 할미가 가만있을 수가 없구나!"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삼신할미는 치맛자락을 걷어붙이고는, 당장 저승 시왕전을 향해 불바람을 일으키며 쫓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 3: 발칵 뒤집힌 염라국, 수염 잡힌 염라대왕과 삼신할미의 호통

    저승의 심판이 열리는 삼엄한 염라국 시왕전. 웅장하고도 서늘한 대전 위 높다란 용상에는, 얼굴이 시뻘겋고 수염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선 염라대왕이 앉아 망자들의 죄업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첫 임무를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신참 저승사자 만보가 오랏줄에 묶인 젊은 박 서방의 혼백을 끌고 대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염라대왕님! 신참 사자 만보, 명을 받들어 경기도 청산골에 사는 박춘삼의 혼백을 정각에 맞추어 잡아 왔사옵니다!"

    "오호, 장하구나! 첫 출장인데도 시간을 어기지 않고 제때 잡아 왔으니 기특하도다. 어디, 그 극악무도한 고리대금업자 박춘삼 놈의 상판대기를 한번 볼까! 고개를 들라!"

    염라대왕이 호통을 치자, 오랏줄에 묶여 엎드려 있던 젊은 박 서방이 고개를 들며 억울함에 피눈물을 쏟았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은 고리대금업자가 아니옵니다! 소인은 남의 돈 한 푼 빌려줄 재산도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무꾼 박춘삼이옵니다! 지금 이승의 초가집에는 오늘내일 첫아이를 낳을 만삭의 아내가 혼자 남아 있사옵니다! 소인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아기 얼굴도 못 보고 죽어야 한단 말씀이옵니까! 아이고, 억울하옵니다, 대왕마마!"

    박 서방의 피 토하는 절규에, 용상 위에 앉아 있던 염라대왕의 미간이 꿈틀거렸습니다. 분명히 명부에는 쉰여덟 살 먹은 늙은 구두쇠 박춘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망자는 수염도 제대로 안 난 해맑고 순박한 스물여덟 살 청년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청년의 머리 위에는 평생 남을 돕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만 비친다는 맑고 푸른 선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라?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고? 여봐라, 판관! 지금 당장 청산골의 인명부를 다시 펼쳐 대조해 보아라!"

    염라대왕의 다급한 명에 옆에 서 있던 최 판관이 두꺼운 명부 책을 후다닥 넘기더니, 사색이 되어 아뢰었습니다.

    "대, 대왕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청산골에는 삼월 삼질날 태어난 박춘삼이 두 명이 있사온데, 오늘 잡아 와야 할 놈은 갑자년생 쉰여덟 살 부자 박춘삼이옵고, 지금 저 밑에 끌려온 자는 갑오년생으로 수명이 오십 년이나 더 남은 스물여덟 살 착한 박춘삼이옵니다! 사자 만보가 엉뚱한 동명이인을 잡아 온 것이옵니다!"

    "무, 무엇이라? 엉뚱한 사람을 잡아 왔다고?!"

    염라대왕은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져서 용상 팔걸이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습니다. 대전 기둥이 흔들릴 정도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이 천하에 멍청하고 눈먼 만보 놈아! 네놈이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길래 쉰여덟 살 늙은이하고 스물여덟 살 새파란 젊은이도 구별을 못 해서 생사람을 잡아 온단 말이냐! 염라국이 생긴 이래 이런 망신스러운 사고가 또 어디 있단 말이냐!"

    "아, 아이고 대왕마마!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그 기와집 마당에서 고추씨 태운 매운 연기가 어찌나 지독하게 나던지, 소인이 눈물이 나서 앞이 안 보이는 바람에 바로 옆집 문패에 적힌 박춘삼만 보고 그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만보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빌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시왕전의 육중한 철문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부서져라 열리더니, 하얀 치마저고리를 휘날리며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서 불을 뿜으며 대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승에서 한달음에 쫓아 올라온 삼신할미였습니다!

    "야, 이 염라대왕아! 네가 그러고도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이라고 그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느냐!"

    삼신할미의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에, 방금 전까지 호랑이처럼 날뛰던 염라대왕이 화들짝 놀라 용상에서 반쯤 엉덩이를 들었습니다. 아무리 저승의 왕이라지만, 이승의 모든 생명과 복록을 관장하는 대선배 격인 삼신할미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하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아, 아이고! 삼신할미님께서 이 누추한 저승까지는 어쩐 일이시옵니까? 고정하시고 말씀하시지요, 허허..."

    염라대왕이 쩔쩔매며 수염을 쓰다듬자, 삼신할미는 단숨에 용상 앞까지 달려 올라가 지팡이로 바닥을 쾅쾅 찍으며 염라대왕의 수염이라도 잡아당길 기세로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고정하게 생겼느냐, 지금! 내가 이 박 서방네 부부가 워낙 착하고 정성이 지극해서, 사흘 뒤에 나라의 기둥이 될 귀한 아들을 점지해 주려고 미역국까지 준비시켜 놓았거늘! 어찌 네놈 밑에 있는 눈먼 사자 놈을 시켜서 사흘 뒤면 애 아비가 될 멀쩡한 젊은이를 잡아 와서 산모를 기절초풍하게 만든단 말이냐! 만일 내 산모와 뱃속의 아기한테 털끝만큼이라도 잘못이 생기면, 내 오늘 이 시왕전 기둥을 다 뽑아버릴 줄 알아라!"

    삼신할미의 서슬 퍼런 기세에 염라대왕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연신 닦아내며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할미님, 제발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소왕이 부하 관리를 잘못한 탓이옵니다. 마침 방금 잘못을 확인하였으니, 일각의 지체도 없이 저 젊은 박춘삼의 혼백을 당장 이승의 자기 몸뚱어리로 돌려보내어 다시 살아나게 하겠사옵니다! 여봐라, 판관! 지금 당장 이승의 거울인 업경을 비추어 저 박춘삼의 육신이 무사한지 확인하여라!"

    염라대왕의 명에 최 판관이 커다란 구리 거울인 업경대 앞에 서서 이승의 박석골 마을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을 들여다보던 최 판관의 얼굴이 다시 한번 하얗게 질리며 덜덜 떨기 시작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삼신할미님! 크, 큰일 났사옵니다! 박춘삼이 돌아갈 이승의 육신이... 육신이 이미 없사옵니다!"

    ※ 4: 이미 묻혀버린 육신, 삼신할미가 제안한 기막힌 거래합니다.

    최 판관의 다급한 외침에 염라대왕과 삼신할미,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젊은 박 서방까지 모두 깜짝 놀라 업경대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아니, 육신이 없다니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사자 만보가 이 젊은이를 잡아 온 지 고작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거늘, 벌써 육신이 없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

    염라대왕이 노발대발하며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이승의 풍경은 참으로 기막히고도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저승에서의 반나절은 이승에서는 이미 하루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가난한 초가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숨을 거두자, 만삭의 아내는 관을 살 돈도 없고 장례를 치를 형편도 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시신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뒷산 양지바른 곳에 서둘러 묻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날 오후에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면서 뒷산에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박 서방의 무덤이 거대한 바위와 흙더미에 쓸려 내려가 시신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상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거울 속으로 그 참혹한 광경을 본 젊은 박 서방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내 몸뚱어리가 저리 바위에 깔려 으깨어졌으니, 이제 나는 이승으로 돌아가려야 돌아갈 집이 없구나! 불쌍한 내 아내와 태어날 내 자식은 어찌하라고, 아이고, 염라대왕님! 제 몸뚱어리를 돌려주십시오, 흑흑!"

    염라대왕은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어 대머리라도 벗겨질 지경으로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허어, 이런 변이 있나! 혼백은 멀쩡한데 들어갈 육신이 상해버렸으니, 이걸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

    그때 옆에서 팔짱을 끼고 거울 속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던 삼신할미의 눈에, 산사태가 난 뒷산 아래로 아흔아홉 칸 기와집 마당에서 아직도 살풀이 굿을 하며 징을 치고 있는 구두쇠 부자 박춘삼 영감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저승사자가 자시 정각에 안 오니까, 부자 박 영감은 부적과 고추씨 연기 덕분에 자기가 저승사자를 물리친 줄 알고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꼴을 본 삼신할미의 입가에 갑자기 무릎을 탁 칠 만한 기막힌 미소가 번졌습니다.

    "옳지!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구나! 여보시오, 염라대왕!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네, 네! 할미님,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삼신할미는 지팡이로 거울 속의 기와집 부자 박춘삼을 콕 찍으며 소리쳤습니다.

    "저기 보시오! 원래 어젯밤에 이 어리바리한 만보 놈이 잡아 왔어야 할 진짜 죄인, 저 욕심쟁이 부자 박춘삼 영감 놈이 아직도 이승에서 자기 세상인 양 술 처먹고 춤을 추고 있지 않소? 어차피 저 부자 놈의 혼백은 오늘 당장 잡아다가 지옥 가마솥에 삶아야 할 놈 아니오?"

    "그, 그렇사옵니다만..."

    "그러니 내 말은 이렇소! 지금 당장 사자를 보내어 저 부자 박춘삼의 혼백만 몸에서 쏙 뽑아 이곳 저승으로 끌고 오시오! 그러면 저 부자 놈의 멀쩡한 육신이 기와집 안방에 빈집처럼 남을 것 아니오? 그 빈 몸뚱어리 속에다가, 갈 곳 잃은 이 착한 젊은 박춘삼의 혼백을 쏙 집어넣어 이승으로 돌려보내란 말이오!"

    삼신할미의 기상천외한 제안에 염라대왕과 판관들은 입을 떡 벌렸습니다.

    "하오나 할미님! 이 젊은 박춘삼은 스물여덟 살 새파란 청년이옵고, 저 부자 박춘삼의 몸뚱어리는 쉰여덟 살 먹은 늙은이인데, 어찌 젊은 혼백이 늙은이 몸속에 들어가 산단 말씀이옵니까?"

    "에잉, 답답한 양반 같으니라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란 말이오? 몸뚱어리가 조금 늙었으면 어떠오! 대신 저 부자 놈이 평생 남의 피 빨아 모아놓은 기와집과 만석의 재산이 고스란히 이 착한 박 서방의 차지가 될 것 아니오! 게다가 내가 이승에 내려가서 삼신 조화의 힘으로 저 늙은 몸뚱어리에 정기를 불어넣어 주면, 반년 안에 기운도 팔팔해지고 주름살도 펴져서 마누라하고 아들딸 낳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오! 박 서방,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삼신할미가 돌아보며 묻자, 눈물을 흘리던 젊은 박 서방은 만삭의 아내와 태어날 아기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에 두 눈에 번쩍 빛이 돌며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이고, 삼신할미님! 대왕마마! 소인은 늙은이 몸이라도 좋사옵니다! 아니, 절름발이에 꼽추 몸이라도 좋사오니 제발 이승으로 돌아가 제 불쌍한 아내와 핏덩이 자식을 돌볼 수 있게만 해 주시옵소서!"

    박 서방이 간절히 애원하자, 염라대왕도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좋다! 과연 삼신할미님의 지혜는 당할 자가 없사옵니다! 여봐라, 죄인 만보! 네놈이 저지른 실수이니 네 손으로 당장 수습렷다! 지금 즉시 구름을 타고 청산골 기와집으로 내려가, 부자 박춘삼의 혼백을 뽑아 오고 그 육신에 이 착한 박춘삼의 혼백을 집어넣어라! 만일 이번에도 실수를 저지르면 네놈을 독사 지옥에 처넣을 줄 알아라!"

    "예, 예! 대왕마마! 목숨을 걸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행하겠사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저승사자 만보는 젊은 박 서방의 혼백을 옆구리에 끼고, 삼신할미와 함께 쏜살같이 이승의 청산골을 향해 날아 내려갔습니다.

    ※ 5: 구두쇠 영감의 몸으로 눈을 뜬 새신랑, 통쾌한 곳간 개방

    그 시각, 청산골 아흔아홉 칸 기와집 안방에서는 구두쇠 박춘삼 영감이 어젯밤부터 이어진 굿판에 지쳐 코를 드르렁거리며 낮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당을 지키던 무당들과 하인들도 밤새 꽹과리를 치고 고추씨를 태우느라 진이 다 빠져 마루 밑에서 세상모르게 골아떨어져 있었지요.

    바로 그때, 대낮인데도 기와집 지붕 위로 시커먼 구름 한 조각이 스르르 내려앉더니, 삼신할미와 저승사자 만보, 그리고 젊은 박 서방의 혼백이 마당 한가운데로 소리 없이 내려섰습니다.

    삼신할미가 소매를 한 번 휘젓자, 대문과 기둥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수백 장의 부적들이 후드득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습니다. 거칠 것이 없어진 저승사자 만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안방 문을 박차고 들어가, 비단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부자 박 영감의 가슴팍에 시뻘건 오랏줄을 가차 없이 내리꽂았습니다.

    "이 천하에 악독한 고리대금업자 박춘삼 놈아! 어젯밤에 고추씨 연기로 내 눈을 가려 하루를 더 살았으나, 천벌을 피할 수는 없느니라! 네놈의 죄업이 가득 찼으니 당장 지옥 불구덩이로 가자!"

    만보가 오랏줄을 확 잡아채자, 자고 있던 부자 박 영감의 몸에서 시커멓고 탐욕스러운 혼백이 비명을 지르며 뽑혀 나왔습니다.

    "으아아악! 아, 아니 내 부적이 다 어디 갔느냐! 내 황금 독! 내 땅문서 두고 나는 못 간다! 이놈들아, 살려달라!"

    "시끄럽다, 이 고약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님께 실컷 말씀드려라!"

    만보는 발버둥 치는 부자 박 영감의 입에 재갈을 물려 포대 자루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러자 삼신할미가 옆에 서 있던 젊은 박 서방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탁 밀었습니다.

    "자, 박 서방! 지금이다! 어서 저 빈 몸뚱어리 속으로 들어가거라! 이 할미가 뒤에서 생기를 불어넣어 줄 터이니 눈 딱 감고 들어가!"

    젊은 박 서방의 맑은 혼백이 방바닥에 누워 있는 부자 박 영감의 몸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습니다. 동시에 삼신할미가 지팡이를 들어 박 영감의 머리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오색 빛깔의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자, 이 할미가 네 오장육부를 스무 살 청년처럼 튼튼하게 고쳐 놓았고, 얼굴의 주름살도 하루가 다르게 펴지도록 약기운을 넣어 두었다. 이제 깨어나거든 네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복을 베풀며 살아라!"

    삼신할미와 저승사자 만보가 구름을 타고 홀연히 사라지자마자, 비단 이불 위에 누워 있던 박 영감의 몸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눈을 번쩍 떴습니다.

    "헉! 하아, 하아... 여, 여기가 어디야?"

    벌떡 일어난 박 서방이 자기 두 손을 내려다보니, 거칠고 뼈만 앙상했던 나무꾼의 손이 아니라 금가락지가 끼워진 통통하고 기름진 손이었습니다. 게다가 몸에는 눈이 부신 비단 수의 같은 고급 잠옷이 입혀져 있었고, 방 안에는 자개장과 황금 촛대가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꿈이 아니었구나! 내가 정말로 저승에 갔다가 삼신할미님과 염라대왕님의 은혜로 이 부자 박 영감의 몸속으로 들어와 다시 살아났구나!'

    박 서방이 감격하여 볼을 꼬집어 보고 있는데, 밖에서 졸고 있던 하인 김 서방이 안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영감마님! 기침하셨사옵니까? 마침 아랫말 최 서방네가 지난봄에 빌려 간 보리 두 가마니 이자를 못 갚겠다고 울고불고 매달리길래, 영감마님 분부대로 당장 그 집 황소를 끌고 오려고 밧줄을 챙기던 중이었사옵니다!"

    하인의 말에 박 서방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엇이라? 남의 집 농사짓는 황소를 끌고 오다니, 그게 무슨 천벌을 받을 짓이냐! 당장 그만두렷다!"

    "네, 네에? 아, 아니 영감마님... 어제까지만 해도 이자 안 내는 놈들은 솥단지까지 다 떼어 오라고 불호령을 내리시더니, 갑자기 왜 그러시옵니까?"

    하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쩔 줄 몰라 하자, 박 서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묵직한 무쇠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었습니다. 부자 박 영감의 몸속에 들어오니, 신기하게도 영감의 머릿속에 있던 곳간 열쇠 자리와 빚문서 숨겨둔 위치가 저절로 다 떠올랐던 것입니다.

    "여봐라! 지금 당장 마을 회관의 북을 울려 청산골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우리 집 마당으로 모이게 하라! 그리고 내 방 벽장 속에 들어 있는 빚문서 상자를 전부 마당 화로 앞으로 가져오너라!"

    영문도 모른 채 불려 온 동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기와집 마당을 가득 메우자, 대청마루에 나선 박 서방은 산더미처럼 쌓인 차용증과 빚문서들을 마당의 불타는 화로 속에다 한 아름씩 집어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들으시오! 내가 오늘 밤 꿈에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염라대왕님께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소! 지난날 내가 욕심에 눈이 멀어 여러분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죄를 씻기 위해, 오늘부로 모든 빚문서를 불태워 없던 일로 하겠소! 또한 저기 아흔아홉 칸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힐 터이니, 가난하고 굶주린 집들은 눈치 보지 말고 쌀이고 보리고 한 가마니씩 마음껏 퍼서 돌아가시오!"

    타오르는 빚문서의 불길과 활짝 열린 곳간 문을 본 청산골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이내 마당이 떠나가라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 6: 만삭의 아내와 눈물겨운 상봉, 삼신할미가 점지한 복덩이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준 박 서방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쌀과 미역, 그리고 고운 비단옷을 수레에 가득 실은 뒤 자기 원래 집이었던 옆집 초가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초가집 안방에서는 남편을 산에 묻고 돌아온 만삭의 아내 이 씨가, 산사태로 남편의 무덤마저 쓸려 내려갔다는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서방님! 불쌍한 우리 서방님! 태어날 아기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어찌 그리 허망하게 가셨단 말이오! 살아생전 이팝 한 그릇 배불리 못 잡수시고, 죽어서도 산사태에 무덤까지 잃었으니 이 원통한 일을 어찌할꼬, 아이고오!"

    그 처절한 울음소리에 가슴이 미어진 박 서방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아내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습니다.

    "임자! 마누라, 울지 마시오! 나요, 나! 죽은 줄 알았던 당신 남편 박춘삼이 살아 돌아왔소!"

    갑자기 옆집의 악독한 구두쇠 박 영감이 방으로 들이닥쳐 자기 손을 잡고 '마누라'라고 부르며 울자, 아내는 기겁을 하여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 아니 옆집 박 영감님이 갑자기 남의 방에 들어와서 이게 무슨 망측한 짓이유! 우리 불쌍한 서방님이 오늘 죽어 나갔는데, 노망이 나셨수? 당장 나가시유!"

    "임자, 내 얼굴은 비록 옆집 박 영감이지만 내 속 알맹이는 당신 남편 박춘삼이 맞단 말이오!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오!"

    박 서방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젯밤 자기가 장터에서 미역 한 오라기 사 와서 아내 배에 귀를 대고 아기 발길질을 느꼈던 이야기며, 아내의 왼쪽 엉덩이에 콩알만 한 붉은 점이 있다는 부부만의 은밀한 비밀, 그리고 저승사자의 실수로 끌려갔다가 삼신할미의 도움으로 옆집 박 영감의 몸을 빌려 환생하게 된 자초지종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남편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속 깊은 이야기들과 말투,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 한없이 따뜻하고 순박한 눈빛을 확인한 아내는, 그제야 입을 틀어막으며 남편의 품에 와락 안겨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세, 세상에... 진짜 우리 서방님이 맞구먼유! 이 목소리, 이 눈빛이 틀림없는 내 서방님이유! 아이고, 서방님! 내가 서방님 영영 잃은 줄 알고 따라 죽으려고 했어유, 흑흑!"

    "울지 마시오, 임자. 이제 고생 끝났소! 삼신할미님과 염라대왕님께서 우리 착하게 살았다고 이 옆집 아흔아홉 칸 기와집과 만석의 재산을 통째로 상으로 주셨소! 자, 이제 이 쓰러져 가는 초가집은 두고 내 손 잡고 저 넓은 기와집 안방으로 가십시다!"

    박 서방은 만삭의 아내를 번쩍 안아 수레에 태우고는, 기와집의 가장 따뜻하고 화려한 안방으로 모셨습니다.

    바로 그날 밤, 아내가 산기를 느끼기 시작하더니, 보이지 않는 삼신할미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보름달처럼 환하고 튼튼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대문 앞에는 금줄이 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박 서방네 득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며칠 밤낮으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더욱 신기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삼신할미가 몸속에 불어넣어 준 신비한 약기운 덕분이었는지, 해가 갈수록 쉰여덟 살 박 영감의 육신에서 하얀 백발이 까맣게 다시 자라나고, 쭈글쭈글하던 주름살이 팽팽하게 펴지더니, 불과 일 년 만에 허리도 꼿꼿하고 기운도 장사 같은 삼십 대 장년의 모습으로 회춘을 한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착한 박 서방을 도우시어 부잣집 영감의 재산과 젊은 몸을 동시에 주셨다!"라며 입을 모아 칭송했습니다. 그 후로 박 서방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삼신할미가 점지해 준 오 남매를 낳아 기르며, 평생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재물을 나누어 주고 아흔 살이 넘도록 무병장수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어리바리한 저승사자와 호탕한 삼신할미의 기막힌 저승 거래 이야기, 유쾌하고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악독하게 재물을 모은 구두쇠는 결국 빈손으로 지옥에 가고, 평생 착하게 살아온 가난한 나무꾼은 그 몸과 재산을 물려받아 만석꾼이 되었다는 결말이 참으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편인가 봅니다. 오늘 이야기로 즐겁게 웃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한 줄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도 더욱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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