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의 49일 저승 생존기 , 죽을 운명 아닌데 끌려간 남자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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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약 300자)
만약, 저승사자가 당신을 실수로 데려갔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오늘 이야기는 염라대왕의 명백한 실수로, 아직 명이 한참 남은 한 사내가 저승에 끌려가 겪는 49일간의 기막힌 사투입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몸으로 7개의 지옥을 모두 거쳐야 하는 기구한 운명. 그는 과연 살아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어우야담'이 기록한 가장 황당하고도 서늘한 저승 체험기. 지금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약 300자)
아직 수명이 20년이나 남았는데, 염라대왕의 실수로 저승에 가게 된 사내. 이미 육신은 사라져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49일간의 저승 시련을 통과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어우야담'에 실린 이 기묘한 이야기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망자가 7개의 지옥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과연 그는 이 부당한 운명에 맞서 무사히 시련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 갑작스러운 죽음과 저승사자와의 만남
조선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김천명이라 불리는 글공부하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하늘의 명'이었으나, 그의 삶은 가난하고 소박했다. 허나 천명은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에게는 현명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천명은 낡은 서책을 펼쳐 들고 글을 읽고 있었고, 아내는 마당에서 절구질을, 아이는 그 곁에서 흙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늘 천, 따 지..." 천명의 나지막한 글 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갈 무렵, 별안간 사방이 싸늘해졌다. 여름날의 볕이 무색하게 등줄기로 차가운 한기가 스몄다. 천명은 고개를 들었다. 방안에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가 아니었다.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사내 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승사자였다. 천명은 입을 열려 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이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다. 사자 중 하나가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때가 되었다. 가자." 쇠사슬이 날아와 천명의 몸을 옭아맸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 소리는 이승의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아니, 왜... 내가 왜...!" 마당의 아내와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사자들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육신에서 영혼이 뽑혀 나오는 고통과 함께, 그의 눈앞이 암전 되었다. 사방은 안개로 자욱했고, 발밑에서는 수많은 원혼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춥고, 배고프고, 두려웠다. 앞서가는 사자들은 단 한마디의 말도, 한 번의 뒤돌아봄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그를 끌고 갈 뿐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강, 황천을 건넜을 때, 저 멀리 거대하고 위압적인 문이 나타났다. '시왕전'. 저승의 문이었다. 천명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낯선 곳에 떨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며 절망했다.
※ 명부가 뒤바뀐 충격적인 실수와 절망
시왕전의 문을 통과하자, 거대하고 음산한 법정이 나타났다. 수많은 망자들이 심판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었고, 옥졸들이 그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법정 가장 높은 곳, 불꽃이 이글거리는 옥좌에 거대한 형체의 왕이 앉아 있었다. 바로 염라대왕이었다. 그의 눈은 지옥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고, 목소리는 천둥과 같았다. "다음! 경기도 양주 땅의 김천명! 앞으로 나오라!" 천명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옥좌 앞으로 끌려 나갔다. 그는 고개를 들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 들었다. 그것은 이승에서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명부였다. "네 이놈, 김천명. 갑자 생으로, 금일 을축 일에 명이 다하여 이곳에 왔느냐." 천명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대답하려던 찰나,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는 갑자생이 맞았으나, 자신이 태어난 곳은 양주가 아니라 이웃 마을인 파주였다. "대왕님! 소인의 이름은 김천명이 맞사오나... 소인은 양주가 아닌 파주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염라대왕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뭐라고? 파주?" 대왕은 옆에 있던 판관에게 눈짓했다. 판관이 거대한 책, 생사부를 황급히 뒤지기 시작했다. 법정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판관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왕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염라대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옥좌를 내리치며 포효했다. "이런 천하의 등신 같은 놈들! 당장 이놈을 잡아온 사자들을 끌고 오라!" 사자들이 끌려와 무릎을 꿇었다. 염라대왕이 생사부를 집어 던지며 호통쳤다. "네놈들이 데려와야 할 자는 양주 땅의 '김천명'이었거늘! 어찌하여 파주 땅의 '김천명'을 데려왔느냐! 이 자는 아직 이승에서의 수명이 스무 해나 더 남았단 말이다!" 천명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실수였다. 저승사자가, 염라대왕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이제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대왕님! 어서 저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 처자식이..." 그러나 염라대왕의 다음 말은 그를 다시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늦었다." 염라대왕이 허공에 손을 젓자, 거대한 거울, 업경대에 이승의 모습이 비쳤다. 천명의 집이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이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육신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네가 이곳에 끌려온 순간, 이승의 법도에 따라 네 육신은 이미 '죽은 것'이 되었다. 이미 숨이 끊어지고 염까지 마친 송장에게 네 영혼이 어찌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느냐." 천명은 절규했다. "그럼 저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무슨 황망한 일이란 말입니까!" 염라대왕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거대한 실수가, 바로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 염라대왕이 내린 49일간의 '저승 유예'라는 기묘한 제안
천명의 울부짖음이 거대한 염라의 법정을 가득 메웠다. "억울합니다, 대왕님! 수명이 스무 해나 남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를 데려간 것은 대왕의 부하들이거늘, 어찌하여 그 책임을 소인에게 지우려 하십니까!" 그 기세에 옥졸들마저 주춤했다.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일어나 법정을 서성였다. 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네 말이 옳다. 천명아. 이는 명백한 명부의 실수이며, 나의 불찰이다." 염라대왕은 실수를 저지른 사자들을 향해 손짓했다. "저놈들은 당장 쇠사슬로 묶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가두어라. 천 년간 고통받게 하리라." 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갔지만, 천명의 절망은 가시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법도는 법도다. 너는 이미 이승의 인연이 끊어진 몸. 그렇다고 아직 명이 다하지 않은 너를 심판할 수도 없다. 너는 지금 이 저승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모순된 존재가 되어버렸다." 천명은 무너져 내렸다. 희망이 없었다. 그때, 염라대왕이 결심한 듯 말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네가 비록 죄가 있어 온 것은 아니나, 저승의 문을 넘은 이상 저승의 법을 따라야 한다. 본디 모든 망자는 49일간 일곱 분의 대왕에게 심판을 받고 자신의 업을 정산받는다." 염라대왕은 천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너에게도 그 49일의 시련을 명하겠다. 7일마다 한 번씩, 7개의 지옥을 관장하는 왕들 앞을 지나야 한다. 만약 네가 그 49일의 시련을 모두 무사히 통과하여 다시 내 앞에 선다면... 그때는 내가 너를 이승으로 돌려보낼 방도를 찾으리라." 그것은 제안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살아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는 길이었다. 천명은 이를 악물었다. "시련이라 하셨습니까... 좋습니다. 허나, 저는 죄가 없으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이유 또한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는 죄인이 아니기에 형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너는 그 지옥들을 '통과'해야 한다. 죄인들이 겪는 고통을 눈앞에서 보며, 그 공포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에게 내려진 시련이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품에서 작은 나무패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이것은 나의 실수로 네가 이곳에 왔음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이것이 너를 직접적인 형벌에서 지켜줄 것이나, 지옥의 고통과 공포까지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다. 명심하거라. 단 한 번이라도 죄인의 마음을 품거나 시련 앞에서 좌절한다면, 너는 남은 스무 해의 명과 상관없이 영원히 저승을 떠돌게 될 것이다." 천명은 떨리는 손으로 나무패를 꽉 쥐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옥졸들이 다가와 그를 끌고 법정 밖으로 나갔다. 49일간의 사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죄인의 비명이 난무하는 도산지옥을 통과하다
천명은 염라의 법정을 나와 옥졸들에게 이끌려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었다. 염라의 법정이 그나마 질서와 위엄이라도 갖춘 곳이었다면, 그 문밖은 완전한 혼돈과 절망의 영역이었다. 사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와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발밑은 축축한 흙바닥이었는데, 이따금 피웅덩이 같은 것을 밟는 미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옥졸이 그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들어가라! 이곳이 네놈이 겪을 첫 번째 시련의 장소, 초강대왕 전이다!" 천명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절벽 위였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광활한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제1대왕인 초강대왕이 다스리는 도산지옥이었다. 살아서 짐승을 함부로 죽이거나, 칼이나 뾰족한 것으로 타인을 해친 자, 혹은 날카로운 말로 남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자들이 오는 곳이었다. 공기 중에는 쇠 비린내와 썩은 피 냄새가 진동했고, 사방에서 수천, 수만의 영혼이 한꺼번에 지르는 듯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천명의 눈앞에는 거대한 산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산이 아니었다. 흙과 바위 대신, 날카롭게 곤두선 칼과 창, 낫과 가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칼의 산', 도산이었다. 수많은 망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칼 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악! 으아악!" 그들은 산을 오르다 미끄러져 날카로운 칼날에 온몸이 꿰뚫렸고, 창날에 사지가 절단되었다. 그러면 검은 피를 쏟으며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져야 했다. 굴러떨어진 망자의 몸은 순식간에 재생되었고, 그들은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다시 칼 산을 기어 올라가야 했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절벽 위 법정에 앉은 초강대왕은 염라대왕보다 더 차갑고 냉혹한 인상이었다. 그는 천명을 흘끗 보더니, 옥졸이 내민 염라의 나무패를 확인하고는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 "흥, 염라께서 노망이 드셨나. 저런 연약한 영혼을 데리고 천 년 만의 실수를 하시다니. 죄 없는 자가 지옥이라... 좋다. 허나 법도는 어길 수 없지. 네놈, 저곳을 통과하라." 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그 칼의 산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길 역시 칼날로 뒤덮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옥졸이 천명의 등을 거칠게 밀었다. "네놈은 죄는 없으나 저 산을 넘어야 한다. 7일 안에 저 산을 넘어 다음 지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어서 가라!" 천명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저 끔찍한 곳을, 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곳을 어찌...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내... 아들아...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너희를 영영 보지 못한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첫발을 내디뎠다. "끄으으윽...!" 발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은 이승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영혼을 직접 베어내고 찢어발기는 듯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격통이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옥졸의 쇠 채찍이 날아와 그의 등을 후려쳤다. "게으름 피우지 마라! 네놈은 형벌은 받지 않으나, 시련을 포기할 권리도 없다!" 천명은 눈물을 머금고, 영혼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으며 다시 일어섰다. 그는 죄인들처럼 미친 듯이 기어오르지 않았다. 그는 죄가 없었고, 그들을 밀치고 올라갈 이유도 없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숨 막히는 고통을 참아가며 칼날과 칼날 사이의 미세한 틈을 밟으려 애썼다. 곁에서 한 죄인이 미끄러지며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는 이승에서 백정 노릇을 하며 쓸데없이 짐승의 목을 쳐 죽이기를 즐겼던 자였다. "나... 나 좀... 나 좀 살려주게! 이보게! 제발!" 그는 천명을 끌어내려 자신을 방패 삼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천명은 본능적으로 그를 뿌리치려다, 자신처럼 고통받는 영혼임을 깨닫고 잠시 망설였다. '저 자는 죄인. 나는 억울하게 온 자. 나는 다르다... 아니, 여기서 내가 저 자를 밀쳐낸다면, 나 또한 저 자와 같은 지옥의 영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천명은 그를 뿌리치는 대신, 오히려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정신 차리시오! 이렇게 남을 끌어내린다고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소!" 그 순간, 천명의 손에 쥔 염라의 나무패가 따뜻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닿자, 두 사람이 밟고 선 주변의 칼날이 아주 잠깐, 눈 깜짝할 사이에 무뎌졌다. 고통이 잠시 사라진 것을 느낀 죄인이 놀라 천명을 바라보았다. 천명은 그 틈을 타 그 죄인을 조금 더 안전한 바위틈으로 밀어주고, 다시 자신의 길을 갔다. 그는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히 고통을 주는 곳이 아니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본성, 그 선함의 마지막 한 조각을 지켜낼 수 있는지 시험받는 곳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수많은 밤낮이 흐른 것 같았다. 마침내 피투성이가 된 영혼으로 산 정상을 넘었을 때, 초강대왕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과했다. 염라의 망자라 얕보았더니만. 허나, 명심해라. 이곳은 일곱 지옥 중 가장 '쉬운' 곳에 불과하다. 다음 지옥은 너의 그 어쭙잖은 동정심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지옥으로 가라."
※ 끝없이 끓어오르는 화탕지옥의 불길
도산지옥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명은 두 번째 시련의 장소로 이끌려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제2대왕인 화강대왕이 다스리는 화탕지옥이었다. 이곳은 첫 번째 지옥과는 전혀 다른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도산지옥이 피비린내와 한기로 가득했다면, 이곳은 숨이 턱턱 막히는 유황 냄새와 살가죽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악취, 그리고 영혼마저 태워버릴 듯한 열기로 가득했다. 천명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승의 그 어떤 화산보다도 끔찍했다. 거대한 구덩이, 아니,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전체가 시뻘건 쇳물로 변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끄아아악! 뜨거워! 제발... 제발 물 한 방울만!" 수백, 수천의 망자들이 그 t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잠시 밖으로 기어 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그럴 때마다 쇠갈고리나 삼지창을 든 옥졸들이 나타나 그들의 등을 찍어 가차 없이 다시 쇳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네놈이 이승에서 훔친 재물이 바로 이 쇳물이다! 실컷 마셔라!" 옥졸들의 조롱 섞인 고함이 울려 퍼졌다. 이곳은 이승에서 남의 재물을 탐하고 도둑질한 자, 가난한 이의 것을 속여 빼앗은 자, 빌린 것을 갚지 않고 나 몰라라 한 자들이 오는 곳이었다. 옥좌에 앉은 화강대왕은 천명을 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가엾은지고. 염라의 실수로 오다니. 네놈의 손을 보니 이승에서 붓대나 잡았지, 남의 것을 탐한 흔적은 없구나. 허나 어쩌겠는가. 법도는 법도인 것을. 네가 통과해야 할 길은 저 쇳물 지옥을 가로지르는 저 외나무다리다." 대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아슬아슬하게 끓어오르는 쇳물 호수 위에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 하나가 걸쳐 있었다. 폭은 겨우 어른 발 하나가 들어갈 정도였고, 그마저도 쇳물의 열기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천명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열기만으로도 영혼의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아... 처자식의 얼굴이... 흐려진다...' 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그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조심스럽게 다리 위에 첫발을 올렸다. "앗!"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전해졌다. 염라의 나무패가 그 고통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했다.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끓어오르는 쇳물 속에서 수많은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같이 가자! 너만 편히 갈 수 없다!", "이놈도 분명 이승에서 우리 고혈을 빤 놈일 게야!" 죄인들의 원망과 저주가 담긴 손길이었다. 천명은 아슬아슬하게 그 손들을 피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이처럼 나아갔다. 다리의 절반쯤 지났을까. 그때, 맞은편에서도 한 망자가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그는 이승에서 비단옷을 입고 수만 석의 재산을 가졌던 큰 부자였으나, 소작농들의 피를 빨아 재산을 모으고, 흉년에 쌀값을 올려 폭리를 취한 죄로 이곳에 온 자였다. 그는 천명의 남루한 행색을 보더니, 다리가 흔들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이 천한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내 앞을 가로막느냐! 썩 비켜라! 네놈 같은 놈보다 내가 먼저 지나가야 한다!" 그는 천명을 거칠게 밀치고 먼저 지나가려 했다. 가느다란 다리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심하게 흔들렸다. 천명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확 낮췄다. 그 순간, 오만하게 그를 밀치던 부자가 스스로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뎌 쇳물 속으로 떨어지려 했다. "으악! 사... 살려!" 부자는 비명을 지르며 천명의 다리를 붙잡았다. 천명은 순간 망설였다. 저 자는 자신을 밀어 지옥에 빠뜨리려 한 자였다. 여기서 그를 놓아버린다 한들, 누가 자신을 탓하겠는가. '아니다. 저 자는 이미 죄인이고, 나는 시련을 겪는 자. 저 자와 똑같은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천명은 자신의 영혼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떨어지는 부자의 팔을 급하게 붙잡았다. "이... 이놈! 이게 무슨...!" 부자는 당황했지만, 천명은 온 힘을 다해 그를 끌어올려 다리 위에 다시 세웠다. "정신 차리시오! 이곳이 어디라고 아직도 이승의 오만을 버리지 못한 것이오! 여기서마저 탐욕과 분노로 자신을 버릴 셈이오?" 부자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쇳물에 살짝 데인 팔을 붙잡고, 공포와 수치심이 뒤엉킨 눈으로 천명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명은 그를 먼저 보내고, 다시 자신의 길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걸어갔다. 끓어오르는 불길이 그의 옷자락을 태우고, 지옥의 열기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지만, 손에 쥔 염라의 나무패가 희미하게 빛나며 그의 몸을 보호했다. 마침내 지옥의 반대편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그대로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화강대왕이 옥좌에서 그를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듯 처음으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과 분노에 눈이 멀지 않았구나. 통과했다. 허나 아직 네가 가야 할 길은 멀다. 다음으로 가라." 천명은 잠시 숨을 골랐다. 49일 중 이제 겨우 14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 거짓의 혀를 뽑는 발설지옥과 모든 시련의 통과
천명은 이후로도 끔찍한 지옥들을 차례로 통과해야 했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들이 떨어지는 한빙지옥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고, 간음한 자들이 가는 검수지옥에서는 칼날로 이루어진 숲을 헤쳐 나와야 했다. 그는 죄인이 아니었기에 직접적인 형벌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 고통을 목도하고 공포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닳아 없어지는 듯했다. 그는 오직 처자식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49일이 가까워진 어느 날, 그는 마지막 시련의 장소, 제7대왕인 태산대왕이 다스리는 발설지옥에 도착했다. 이곳은 입으로 죄를 지은 자들, 즉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험담으로 남을 해치고, 이간질로 공동체를 무너뜨린 자들이 오는 곳이었다. 법정은 의외로 조용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태산대왕은 천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염라의 망자. 너는 이승에서 글을 읽는 선비였다지. 글을 아는 자들이 가장 짓기 쉬운 죄가 바로 혀로 짓는 죄, 구업이다. 너는 어떠했느냐?" 천명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소인은 가난한 선비라 말을 섞을 이도 많지 않았으며, 그저 책 속의 성현의 말씀을 따르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태산대왕이 손짓하자, 옥졸들이 죄인들을 끌고 왔다. 그리고는 그들의 입을 강제로 벌려 혀를 길게 뽑아냈다. 그 혀를 마치 밭고랑처럼 늘어놓고, 그 위를 소가 끄는 쟁기로 갈아엎었다. 죄인들은 혀가 뽑힌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천명은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태산대왕이 말했다. "눈을 떠라. 네가 통과해야 할 시련이다. 너는 저 쟁기질 당하는 혀들 사이를 걸어가야 한다." 천명은 떨리는 발을 내디뎠다. 혀로 이루어진 밭은 질척거리고 미끄러웠다. 그는 혹시라도 그 혀들을 밟을까 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평생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그 신념이 그의 발걸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가 무사히 밭을 건넜을 때, 태산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의 혀는 깨끗하구나. 너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49일의 모든 시련을 통과했노라. 이제 염라대왕께 돌아가라."
※ 염라대왕과의 재회와 이승으로의 기적적인 귀환
마침내 49일째 되는 날, 천명은 처음 그가 왔던 염라대왕의 거대한 법정으로 돌아왔다. 7개의 지옥을 거치는 동안 그의 영혼은 수만 번 부서지고 다시 붙기를 반복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승의 그 어떤 현자보다도 깊고 단단해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억울함에 떨던 필부가 아니었다.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그를 맞이했다. 법정의 모든 판관과 옥졸들이 이 기이한 망자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돌아왔구나, 김천명. 나는 네가 도산지옥에서 포기할 줄 알았다. 아니, 화탕지옥의 외나무다리에서 미끄러질 줄 알았다. 허나 너는... 너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몸으로, 저승의 일곱 시련을 모두 이겨냈다. 이는 명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천명은 묵묵히 절을 올렸다. 그에게는 이제 염라대왕에 대한 원망도, 두려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왕님, 약조하신 대로 저를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 처자식의 곁으로..." 염라대왕은 만족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법정이 울렸다. "좋다. 너의 인내와 선함, 그리고 가족을 향한 그 깊은 마음이 너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었다. 본래 나의 실수로 너는 모든 것을 잃을 뻔했으나, 이제 너에게 합당한 보상을 내릴 때가 되었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첫째, 너를 당장 환생시켜 주겠다. 이승에서 너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무엇이더냐. 가난이었지. 좋다. 너를 조선에서 가장 부유한 대감 댁의 외아들로 태어나게 해주마. 평생 금의옥식하며, 수많은 여인과 하인을 거느리고, 네가 원하는 글공부도 마음껏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주겠다. 49일간의 끔찍한 고통에 대한 나의 보상이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승에서 지독한 가난 때문에 처자식을 고생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부자였다면... 그러나 천명은 화탕지옥에서 보았던, 재물에 눈이 멀어 자신을 밀치던 그 부자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왕님, 그 마음은 감사하오나... 소인은 화탕지옥에서 재물이 인간을 어찌 망가뜨리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부귀영화는 뜬구름과 같은 것. 원치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명하구나.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둘째다." 염라대왕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너의 원래 육신은 이미 49일이 지나 흙으로 돌아갔으니, 그 몸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허나... 오늘 너의 마을에서 명이 다한 다른 이가 하나 있다." 염라대왕이 업경대를 비추자, 한 허름한 초가집에서 노인이 기침을 하다 숨을 거두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너의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다. 평생 가난하고 병들었으며, 자식도 없이 외로이 살다 방금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놈의 사자들이 또 실수를 하여..." 염라대왕이 명부를 급히 다시 확인하더니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저 자의 몸이 아직 온기가 식지 않았으니, 너의 영혼을 그 몸에 넣어주겠다. 네가 원하던 처자식의 곁, 같은 마을로 돌아갈 수는 있으나... 너는 김천명이 아닌, 늙고 병든 노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너의 정체를 아내와 아들에게 절대로 밝혀서는 안 된다. 그저 멀리서 그들을 지켜만 보아야 한다. 어찌하겠느냐?" 그것은 어쩌면 첫 번째 제안보다 더 가혹한 형벌일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눈앞에 두고도 남편이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삶. 그러나 천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대왕님. 비록 남편이자 아버지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제 처자식이 숨 쉬는 같은 하늘 아래서, 그들이 웃고 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늙고 병든 몸이라도, 그것으로 족합니다."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너의 그 깊은 마음에 나 염라가 탄복했다. 가거라. 그리고 너에게 남은 스무 해를, 네가 증명해낸 그 선함으로 지혜롭게 살거라." 천명은 눈물을 흘리며 깊이 절을 올렸다. 염라대왕이 손을 휘젓자, 거센 바람이 불며 천명의 의식이 아득해졌다. "으윽... 콜록, 콜록!" 천명은 지독한 기침과 함께 눈을 떴다. 낯선 초가집의 흙 천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쭈글쭈글하고 거친, 영락없는 노인의 손이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이승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낯익은 고향 마을의 풍경이었다. 저 멀리, 시장에서 돌아오는 듯한 두 사람이 보였다. 수년 전보다 조금 수척해졌지만 여전히 단아한 그의 아내, 그리고 아버지 없이도 훌쩍 자라 어머니를 돕는 의젓한 아들이었다. 천명은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그들을 끌어안고 싶었지만, 염라대왕의 경고를 떠올리고는 꾹 참았다. 그는 이제 '김천명'이 아니었다. 그는 그날부터 마을의 '마음씨 좋은 이웃 노인'으로 살아가며, 멀리서 아내와 아들을 지켜보았다. 때로는 땔감을 구해 그들의 집 앞에 몰래 가져다주고, 때로는 시장에서 얻은 떡을 아들의 손에 쥐여주며, "공부 열심히 하거라"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들은 그 노인을 따르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하듯 깍듯하게 대했다. 그렇게 스무 해가 흘러, 그가 원래 죽었어야 할 바로 그날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초가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아무런 억울함이나 두려움 없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미소와 함께였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맞이하러 온 저승사자는, 49일 전과는 달리, 몹시 공손한 태도로 엎드려 절을 하며 그에게 저승의 길을 비켜주었다고, '어우야담'은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염라대왕의 실수로 49일간 지옥을 견뎌낸 사내, 김천명. 그는 비록 모든 것을 잃고 타인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남은 20년의 삶을 누구보다 소중하고 지혜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우야담'의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이, 저승의 그 어떤 부귀영화나 보상보다 값진 것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의 오늘이 평안하시기를 바라며, 저희는 다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