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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의 지옥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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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어르신들, 혹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흔히 지옥이라 하면 그저 펄펄 끓는 가마솥과 무시무시한 도깨비들만 가득한 아수라장을 떠올리시겠지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묘한 이야기 책, '천예록'을 들여다보면 저승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옥에도 엄격한 계급 사회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염라대왕을 정점으로 한 저승의 관료제는 조선시대 양반 사회보다도, 아니 지금의 어느 관공서보다도 훨씬 더 치밀하고 체계적이었습니다. 서류 한 장, 직급 하나에 영혼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숨 막히는 저승의 행정 시스템! 오늘은 우리 조상들이 굳게 믿었던 지옥의 놀라운 구조와, 그 정점에 군림하는 염라대왕의 진짜 모습을 생생한 이야기로 파헤쳐보겠습니다. 귀를 기울이시고, 서늘하고도 흥미진진한 저승길 동행에 나서보시지요.
※ 1: 갑작스러운 병환과 검은 도포를 입은 불청객들의 방문
조선 숙종 치하, 한양 땅 남산골에는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선비 최상위가 살고 있었다. 쉰을 갓 넘긴 나이에도 허리 한번 굽은 적 없고, 겨울에도 찬물로 세수를 할 만큼 강골을 자랑하는 사내였다. 평생을 사서삼경과 벗하며 꼿꼿하게 살아온 그는 이승의 이치와 양반의 법도에는 누구보다 밝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나 사후세계의 이야기는 그저 어리석은 백성들이나 믿는 삿된 미신이라 치부하며 콧방귀를 뀌곤 했다. 그날 저녁에도 최선비는 마당을 쓰는 하인의 빗자루질이 성에 차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고는, 냉수를 한 사발 들이켜고 서재로 들어와 책을 폈다. 창밖으로는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만이 적막한 밤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글귀를 읽어 내려가던 최선비의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질 즈음이었다. 갑자기 가슴 한가운데를 시뻘겋게 달궈진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덮쳐왔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가슴이... 숨, 숨을 쉴 수가 없구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흉부를 짓누르는 듯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지 않았다. 온몸의 핏기가 가시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손발은 차가운 얼음장처럼 식어가는데, 방안을 밝히던 촛불이 기괴하게 푸른빛을 띠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내 방안의 온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열렸다.
서늘한 음풍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선 것은 세 명의 장대한 사내들이었다. 칠흑같이 검은 도포를 두르고, 밀랍처럼 창백한 얼굴에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서늘한 눈빛을 한 자들. 그들의 걸음에는 아무런 발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운데 선 사자의 손에는 붉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낡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고, 양옆의 사자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명패와 검은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최선비는 평생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왔으나, 죽음의 문턱에 선 영혼의 본능은 그들이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성부 남부 남산골에 거주하는 양반 최상위, 갑자년 생이 맞느냐."
가운데 선 사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 웅장하면서도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어, 듣는 이의 혼을 쏙 빼놓을 지경이었다. 최선비는 공포에 질려 입술을 달달 떨면서도, 양반의 체면을 세우려 애써 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그, 그렇소이다만... 당신들은 대체 뉘시오? 어찌 사대부의 규방에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신발을 신고 들어온단 말이오!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오기로 버티는 최선비의 호통에도 사자들의 표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을 지키고 서 있던 사자가 품에서 작은 장부를 꺼내더니 사무적으로 응수했다.
"우리는 명부의 명을 받고 온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다. 너의 양기가 다하여 명부에 적힌 수명이 오늘 자시를 기해 끝이 났으니, 지체 없이 우리를 따라 명부전으로 가야겠다. 양반이고 상놈이고 명부의 기한 앞에서는 다 똑같은 망자일 뿐이니, 잔말 말고 어서 채비를 하라."
'수명이 끝이 나다니? 내 나이 고작 쉰을 넘겼을 뿐인데! 아직 다 읽지 못한 경전이 산더미 같고, 장가보내지 못한 막내아들이 눈에 밟히거늘... 게다가 내 평생 큰 병치레 한번 한 적 없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최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버둥을 치며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오직 그의 혼만이 육신을 빠져나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방 한구석에는 파리하게 질려 쓰러진 자신의 시신이 보였고, 어느새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이 나며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여보시오, 사자 나리들! 무언가 단단히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오. 나는 평생 남을 해코지한 적도 없고, 나라의 법도를 어긴 적도 없소. 평생 책만 파고든 선비란 말이오! 부디 그 장부를 다시 한번, 딱 한 번만 다시 살펴봐 주시오! 내 전 재산을 다 주어도 좋으니 제발 살려주시오!"
최선비가 바닥에 엎드려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지만, 사자들의 태도는 매몰차기 짝이 없었다. 마치 매일같이 반복되는 업무와 야근에 지친 관아의 아전들처럼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승의 벼슬아치들이나 뇌물에 흔들리지, 명부의 법도는 추호의 오차도 없는 법이다. 전 재산? 저승 가는 길에 노잣돈 몇 푼 외에 이승의 재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우리는 그저 서류에 적힌 대로 집행할 뿐이니 억울한 것이 있다면 염라대왕님 앞이나 판관들 앞에서 따져라. 네가 이리 지체하면 우리만 시말서를 쓰고 문책을 당한단 말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자 한 명이 최선비의 목에 차가운 쇠사슬을 척 걸치더니 거칠게 잡아당겼다. 쇠사슬이 영혼에 닿는 순간, 이승에 대한 모든 미련과 가족들의 곡소리가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오직 사슬에 끌려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강박적인 본능만이 남았다. 이승의 따뜻한 불빛은 점점 멀어지고,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와 음산한 기운 속으로 최선비의 영혼은 속절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거센 음풍이 불어올 때마다 이름 모를 혼령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평생을 부정해왔던 끔찍하고도 차가운 저승길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 2: 이승과 저승의 경계, 초군문을 넘어 마주한 거대한 관청
사자들의 걸음은 무섭도록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발밑은 분명 거친 흙바닥이었으나 한참 걷다 보면 어느새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강물 위를 걷고 있었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다 보면 또다시 피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이승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진 그곳에서, 최선비는 무거운 쇠사슬에 끌려가며 그저 가쁜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살아생전 가마나 타고 다니던 양반의 다리로 험난한 저승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고역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며칠이 지났는지 몇 달이 지났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무렵, 끝이 보이지 않던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 너머로, 이승의 어떤 궁궐이나 도성보다도 웅장하고 거대한 잿빛 성문이 위압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성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좌우로 아득하게 뻗어 있었고, 문의 꼭대기에는 붉은 피로 쓴 듯한 '초군문(初君門)'이라는 세 글자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망자들이 저승의 심판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그 거대한 성문 앞에는 최선비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이승 각지에서 끌려온 수만 명의 영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 있었다.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고관대작부터, 남루한 삼베옷을 입고 맨발로 끌려온 촌부, 아직 젖내도 가시지 않은 핏덩이를 안고 통곡하는 여인까지. 이승에서의 신분과 나이, 부귀영화는 초군문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그저 두려움에 떨며 심판을 기다리는 가련하고 평등한 망자들일 뿐이었다.
'이곳이... 이곳이 정녕 지옥의 입구란 말인가. 어찌 이리도 수많은 이들이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고 이곳으로 끌려온단 말인가.'
최선비가 두려움 섞인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였다. 초군문의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양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거대한 기와집과 전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곳은 무시무시한 뿔이 난 도깨비들이 쇠몽둥이를 들고 영혼들을 찢고 괴롭히는 아수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양의 육조거리나 의금부를 수백, 수천 배 크게 지어놓은 듯한 정교하고 삼엄한 관청의 모습이었다.
"자, 다들 떠들지 말고 줄을 맞춰라! 밀지 말고, 사자들에게 받은 명패의 번호를 확인하고 각자 배정받은 창구로 이동해! 갑자년 생부터 신미년 생들은 좌측 제3번 접수처로 가고, 갑작스러운 사고나 횡사로 온 자들은 우측 제5번 임시 대기소다! 서류 확인 안 된 자들은 절대로 앞으로 나오지 마!"
문지기나 아전처럼 보이는 험상궂은 관원들이 단상 위에 서서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수만 명의 혼령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어른 키만 한 거대한 명부와 두꺼운 장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쉴 새 없이 붓에 먹을 찍어가며 혼령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이승에서의 직업을 대조했다.
"이름, 김돌쇠. 병인년 생. 이승에서의 직업은 백정. 음, 가축을 잡은 살생의 기록이 좀 있군. 일단 업경대 대기실로 보내서 살생의 의도를 파악해라!"
"다음! 이화월. 정묘년 생. 산후병으로 사망. 쯧쯧, 명도 짧은데 안타깝게 죽은 불쌍한 영혼이로군. 이 자는 이승에서 지은 큰 죄가 없고 서류 통과니 바로 십왕전 대기줄로 올려보내라!"
관원들의 뒤쪽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서고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다. 수천, 수만 명의 하급 관리들이 결재 서류 다발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고, 곳곳에서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 인장 찍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이럴 수가... 저승이 이토록 철저하고 거대한 관료제로 돌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이승의 조정보다도 훨씬 더 체계적이고 분주하지 않은가!'
최선비는 자신이 평생 상상했던 지옥의 모습과 눈앞에 펼쳐진 차갑고도 정교한 광경의 괴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사람을 튀기고 톱으로 몸을 써는 그런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풍경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자비할 정도로 냉정하고 기계적인 '행정 처리'가 망자들을 옥죄고 있었다. 한 영혼이 이승에서 살아온 평생의 삶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남과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그저 저 관리들의 붓끝과 서류 한 장으로 분류되어 번호표가 매겨지고 있는 것이다.
"야, 일직사자! 저쪽 영남 지방에서 큰 홍수가 나서 오늘 밤에 긴급히 처리해야 할 사망자 서류가 산더미야! 빨리빨리 좀 넘겨! 지금 접수처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아이고, 나도 죽겠소! 이승에 역병까지 도는 바람에 며칠 밤낮을 쉬지도 못하고 혼령을 잡아 왔단 말이오. 대왕님들께서 이번 달 실적 못 채우면 우리부터 지옥불에 던져버린다고 하셨어!"
사자들과 관원들이 신경질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으며, 최선비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명백한 공포를 느꼈다. 피투성이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무런 감정이나 자비 없이 오직 기록에만 의존하여 자신의 죄를 저울질하고 분류하는 저 거대한 행정 시스템이었다. 저 차가운 관청의 톱니바퀴 속에서, 자신이 이승에서 뽐내던 양반의 핏줄이나 알량한 학식 따위는 한낱 종이 쪼가리만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최선비의 등에 식은땀이 차갑게 흘러내렸다.
※ 3: 십왕전의 엄격한 관료제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지옥의 행정
초군문에서의 복잡하고도 숨 막히는 서류 심사와 1차 분류가 끝나자, 최선비를 비롯한 혼령들은 거대한 회랑을 따라 또다시 어딘가로 이송되었다. 끝없이 이어진 회랑의 벽면에는 이승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 어떤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는지 생생하게 그려진 지옥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독사들에게 몸을 뜯어 먹히는 자, 혀가 길게 뽑혀 그 위로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섬뜩하여, 걷는 내내 간담이 서늘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침내 회랑의 끝에 도달하자, 시야가 확 트이며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거대한 전각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타났다. 처마 끝마다 푸른 귀불이 일렁이고, 웅장한 흑단 기둥에는 용과 기괴한 저승의 짐승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조각되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망자들의 죄를 최종적으로 심판한다는 열 명의 대왕이 계신 곳, '십왕전(十王殿)'이었다.
"고개 들지 마라! 이 안에는 저승을 다스리시는 열 분의 대왕님들과 수천 명의 엄격한 판관들이 계시는 곳이다. 함부로 눈을 굴렸다간 그 자리에서 눈알을 뽑아 지옥견의 먹이로 던져줄 터이니, 바닥만 보고 걸어라!"
인솔하는 사자의 험악한 경고에 최선비는 얼른 시선을 바닥으로 깔았다. 십왕전의 중심 구역으로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위압감이 온몸의 뼈를 짓누르는 듯했다. 내부는 마치 거대한 산맥을 깎아 속을 파낸 듯 광활했고, 중앙을 가로지르는 넓은 통로 양옆으로는 끝도 없이 많은 책상과 문서 보관함이 층층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는 이승의 판서나 참판들이 입을 법한 화려하고 위엄 있는 관복을 입은 고위 관리들부터, 소매가 닳은 낡은 관복을 입고 안경을 쓴 채 서류에 코를 박고 있는 말단 서기들까지, 수백 계급으로 나뉜 저승의 공무원들이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이토록 방대할 수가... 눈이 돌아갈 지경이로구나. 가만 보자, 각 부서마다 팻말이 걸려 있구나. 살생부, 탐욕부, 거짓부, 불효부...'
최선비는 눈을 내리깐 채 곁눈질로 훔쳐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옥의 부서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아주 세밀하게 쪼개어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었다. '살생부' 앞에서는 백정이나 무사였던 혼령들뿐만 아니라 산에서 짐승을 재미 삼아 죽인 자들까지 불려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심문을 받고 있었고, '거짓부' 앞에서는 이승에서 교묘한 말로 사기를 쳤던 장사치들이 자신의 혀를 빼앗기지 않으려 발악하며 변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랍고 소름 돋는 것은 판관들의 심문 방식이었다. 옥졸들이 무식하게 고문을 하거나 채찍질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철저한 '기록'과 '증거'에 근거하여 죄를 묻고 있었다. 최선비의 앞쪽에서 심문을 받던 한 고리대금업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승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며 가난한 백성들의 피눈물을 꽤나 흘리게 했구나. 어디 변명할 텐가? 여기 네놈이 을미년 삼월 보름 신시에 쌀 한 가마니를 빌려주고 이듬해 가을에 세 가마니를 강제로 빼앗아간 기록이 명부 제 7권 42장에 아주 명확하게 적혀 있다. 심지어 쌀을 빼앗으며 노모를 발로 걷어찬 사실까지 적혀 있군."
"아, 아닙니다 판관 나리! 억울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먼저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이고, 걷어찬 것이 아니라 제가 넘어지다 우연히 발이 닿은 것뿐입니다요!"
"시끄럽다! 감히 십왕전의 명부를 의심하고 거짓부렁을 늘어놓느냐. 업경대 영상 기록물을 틀어라!"
판관의 호통과 함께 단상 옆에 세워져 있던 거울인 업경대(業鏡臺)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내 거울 표면에 죄인이 이승에서 저지른 악행이 소리와 함께 낱낱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늙은 노모를 발로 차고 비웃는 자신의 모습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로 나타나자, 혼령은 새파랗게 질려 그저 바닥에 엎드려 통곡할 뿐이었다.
"이 자의 죄질이 매우 무겁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니, 제 4지옥인 확탕지옥(끓는 가마솥 지옥)으로 넘겨라. 형량은 이승의 시간으로 삼백 년이다. 서류에 결재 도장 찍어서 즉시 형 집행부로 넘겨라!"
판관이 큰 도장을 서류에 '쾅' 하고 찍자, 대기하고 있던 험악한 옥졸들이 달려들어 죄인의 입을 틀어막고 질질 끌고 나갔다. 모든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 단 한 치의 오차도 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최선비는 이 숨 막히는 저승의 행정 시스템에 압도되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승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권력이 막강했다 한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언행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록되어 있는 저 무시무시한 명부와 업경대 앞에서는, 한낱 발가벗겨진 나약한 죄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음! 한양 남산골 출신 최상위. 제 5전, 염라대왕님 앞으로 대령하라!"
마침내, 쩌렁쩌렁한 호명 소리가 십왕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염라대왕. 저승의 최고 권력자이자 열 명의 대왕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고 자비가 없다는 심판관. 그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최선비의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덜썩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가장 거대하고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제 5전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이제 그의 영혼과 운명은 저 높고 차가운 심판대에 올려지기 직전이었다. 바싹 타들어 가는 입술을 질근 깨물며, 최선비는 옥졸들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염라전 안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 4: 염라대왕 앞에서의 숨 막히는 재판과 명부의 진실
옥졸들의 거친 손길에 이끌려 십왕전 제5전, 염라전(閻羅殿)의 육중한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최선비는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기괴한 전율을 느꼈다. 전각 내부는 이승의 궁궐 정전을 수십 개, 아니 수백 개 합쳐 놓은 듯 끝을 알 수 없이 넓고 아득했다. 천장은 마치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처럼 까마득하게 높았고, 코끝을 찌르는 진한 묵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 그리고 무언가 타들어 가는 듯한 매캐한 유황 냄새가 한데 뒤섞여 훅 끼쳐왔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광활한 통로 좌우로는 수백, 수천 명의 판관과 서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두루마리 앞에서 쉴 새 없이 붓을 놀리며 무언가를 기록하고, 대조하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그들의 붓놀림 하나하나, 주판알 구르는 소리 하나하나에 수많은 망자들의 형량이 더해지거나 감해지는 듯, 전각 안은 팽팽한 긴장감과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간의 정중앙, 까마득히 높은 흑요석 단상 위에 한 인물이 좌정하고 있었다.
'아아... 저분이, 저분이 정녕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염라대왕이시란 말인가.'
최선비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도, 곁눈질로 단상 위를 살짝 훔쳐보았다. 민간의 잔혹한 전설 속에서 묘사되던 것처럼 이마에 뿔이 났거나 송곳니가 튀어나온 흉측하고 야만적인 괴물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옥황상제라 해도 믿을 만큼 위엄 넘치고 준수한 용모를 가진, 거대한 체구의 제왕이었다. 머리에는 해와 달, 그리고 우주의 이치가 수놓아진 눈부신 면류관을 쓰고, 몸에는 아홉 마리의 흑룡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웅장한 관복을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마치 인간의 가장 깊고 어두운 속마음, 스스로도 잊고 지냈던 수십 년 전의 찰나의 악의마저 단번에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롭고 시린 안광. 그 절대적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이승에서 아무리 고결한 척 살아왔다 한들 모든 것이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끔찍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승에서 온 죄인 최상위는 고개를 들어라."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마치 천지를 진동하는 벼락이 치듯 거대한 전각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단 한마디에 최선비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듯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옆에 험상궂게 서 있던 옥졸이 거칠게 최선비의 턱을 잡아 위로 치켜올렸다.
"대, 대왕마마! 소,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평생 글을 읽으며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했을 뿐, 남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사옵니다! 부디, 부디 명부를 다시 한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최선비는 필사적으로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애원했다. 이승에서 그토록 중시하던 양반의 체면이나 사대부의 기개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저 끔찍한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본능적이고 처절한 절규였다. 염라대왕은 옥좌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서늘한 눈으로 발밑의 최선비를 굽어보며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단상 아래 대기하고 있던 수석 판관이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두꺼운 흑색 명부를 펼쳐 들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양 남부 남산골 거주, 갑자년 생 양반 최상위. 이승에서의 행적을 고하겠사옵니다. 평소 학문을 즐겨 하였으나 그 성정이 몹시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함부로 하대하였고, 말에 가시가 있어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사옵니다. 특히 신미년 가을, 소작농 김칠복이 극심한 흉년으로 도저히 임대료를 내지 못하자, 용역들을 동원하여 곡간의 마지막 씨앗까지 모조리 압류하고 그 일가족을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내쫓은 참혹한 기록이 있사옵니다. 그때 굶어 죽어간 김칠복의 어린 딸의 원한이 명부 제 34권에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사옵니다."
'아니, 그것은 정당한 소작 계약에 의한 합법적인 권리 행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내 땅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찌 죄가 된단 말인가! 게다가 그 일은 이미 십수 년 전의 일인데, 어찌 저승의 장부에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심지어 그 딸년의 원한까지 다 적혀 있단 말인가!'
최선비는 아연실색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승의 조선 법도로는 전혀 죄가 되지 않던 일, 양반으로서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던 재산권의 행사조차 이곳 저승에서는 타인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엄중한 '죄악'으로 분류되어 너무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승의 기준과 저승의 도덕률은 완전히 달랐다. 저승의 치밀한 관료들은 오직 '타인에게 얼마나 깊은 고통과 해를 끼쳤는가'라는 절대적이고도 무자비한 저울로만 망자의 삶을 평가하고 있었다.
"어허, 듣자 하니 죄질이 아주 흉악하기 그지없구나."
염라대왕이 혀를 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승의 썩어빠진 잣대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명부의 엄정한 법도로는 타인의 가슴에 피눈물을 흐르게 한 죄가 결코 작지 않다. 양반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어 약자를 짓밟은 죄, 그 오만함과 매정함은 마땅히 무거운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판관은 들어라. 이 죄인 최상위를 즉시 제 3지옥인 한빙지옥(寒氷地獄)으로 보내, 백 년 동안 뼈와 살이 깎일 듯이 얼어붙는 고통을 겪게 하라! 그 차가운 얼음 속에서 네놈이 내쫓았던 소작농 가족의 지독한 추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대왕마마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수석 판관이 붉은 인주를 듬뿍 묻힌 거대한 결재 도장을 형 집행 서류에 '쾅' 하고 내리찍으려던 찰나였다. 최선비는 눈앞이 새하얘지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이대로 영원히 차가운 얼음 지옥에서 비참하게 고통받아야 한다니.
"대왕마마! 억울하옵니다!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단상 위 염라대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매처럼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판관이 들고 있던 명부의 한 구석에 꽂혔다.
※ 5: 서류 착오로 밝혀진 오해, 그리고 생생한 지옥 부서 유람
"잠깐. 판관, 도장을 거두고 그 서류를 내게로 가져오라. 방금 이 자의 이름 한자가 최상위(崔上位)라고 하였느냐?"
염라대왕의 싸늘하고도 무거운 물음에, 도장을 찍으려던 수석 판관이 흠칫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 대왕마마. 한양 남산골에 사는 갑자년 생 최상위가 맞사옵니다. 여기 명부에도 분명히 그리 적혀 있사옵니다."
판관이 바들바들 떨며 명부를 단상 위로 들이밀자, 염라대왕은 서류를 낚아채듯 집어 들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내 염라대왕의 분노 서린 벼락같은 호통이 거대한 십왕전을 뒤흔들었다.
"네 이노오옴! 눈을 정녕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냐! 여기 붓글씨로 적힌 한자를 자세히 보아라! 이 명부에 붉은 줄이 그어진 사망자는 높을 상(上) 자를 쓰는 양반 최상위(崔上位)가 아니라, 서로 상(相) 자를 쓰는 최상위(崔相位)가 아니더냐! 게다가 거주지도 한양 남산골이 아니라, 전라도 남원골 구석에서 소와 돼지를 잡는 백정이렷다! 동명이인에 생년월일이 같다고 하여, 거주지와 한자 이름조차 제대로 교차 확인하지 않고 애먼 산 사람의 혼을 잡아 왔단 말이냐! 명부전의 체면이 말이 아니로구나!"
불호령이 떨어지자 수석 판관을 비롯하여 십왕전 안의 수천 명의 서기들, 그리고 최선비를 이승에서 끌고 온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사시나무 떨듯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방금 전까지 기계처럼 돌아가던 지옥의 관료제 시스템이 일순간에 멈춰 서는 순간이었다.
"대, 대왕마마!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변명을 올리자면, 최근 이승 각지에서 역병이 크게 돌아 하루에도 수만 명씩 망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다 보니... 하급 서기들이 며칠 밤낮을 자지 못하고 명부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그만 주소지와 한자를 착각한 모양이옵니다! 즉각 징계하고 시정조치 하겠사옵니다!"
수석 판관이 눈물을 흘리며 변명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선비의 머릿속에서는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아... 살았다! 서류 착오라니, 오타라니! 이 완벽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던 저승에서도 저런 어처구니없는 행정 실수가 일어난단 말인가!'
최선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꽉 막혀 있던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엄격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던 저승의 관료제도 결국 폭증하는 업무량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아니 귀신적인 오류가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염라대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서류를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쯧쯧, 이승의 관리들이 썩어빠져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공평무사해야 할 명부전의 관리들마저 나사가 빠져서 수명이 남은 산 사람의 혼을 함부로 끌고 오다니! 당장 사자들을 보내 남원골의 백정 최상위를 제대로 잡아 오고, 이 끔찍한 결재 실수를 저지른 서기들과 확인 없이 혼령을 구인해 온 사자들은 감봉 3개월에, 지옥 유황불 청소 당번 한 달에 처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리고 저 엎드려 있는 자는..."
염라대왕의 무거운 시선이 다시 최선비에게 머물렀다. 방금 전까지 서릿발 같던 눈빛이 어쩐지 조금은 누그러져 있었다.
"본의 아니게 우리 명부전 서기들의 멍청한 실수로 너를 이역만리 저승까지 억지로 끌고 와 큰 고초를 겪게 하였구나. 내 명부를 다시 샅샅이 살펴보니, 너의 진짜 수명은 아직 이승의 시간으로 스무 해나 더 남아 있다. 그러니 즉시 너를 이승의 육신으로 돌려보내 주마."
"망극하옵니다, 대왕마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최선비가 연신 절을 해대자,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허나, 착각하지 말라. 네가 이승에서 양반이라는 신분을 무기 삼아 저지른 교만과 매정함, 그리고 타인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 업보는 아까 네 귀로 직접 들어서 알 터. 비록 수명이 남아 이승으로 돌아간다 한들, 네가 지은 죄악이 명부에서 지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돌아가기 전에 내 특별히 명부전의 실수를 무마하는 차원에서, 저승의 형 집행 부서들을 유람할 기회를 주마. 똑똑히 두 눈으로 보고 이승에 돌아가거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지옥의 엄정하고도 과학적인 법도를 널리 전하도록 하라."
그렇게 최선비는 염라대왕의 특명을 받은 안내 서기의 뒤를 따라, 십왕전 뒤편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형 집행 부서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곳은 초군문이나 명부전 대기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최선비가 가장 경악한 것은 그 잔혹함 속에서도 소름 끼치도록 철저한 '규율'과 '행정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 선비님. 이곳은 '탐관오리 징벌국'입니다. 이승에서 뇌물을 받고 백성들의 고혈을 짠 벼슬아치들이 형벌을 받는 곳이지요."
안내 서기가 가리킨 곳을 보자, 수백 명의 양반 혼령들이 거대한 불구덩이 속에서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옥졸들은 그들에게 펄펄 끓어오르는 붉은 쇳물을 억지로 입에 들이붓고 있었는데, 기이한 것은 옥졸들이 저울을 들고 쇳물의 양을 아주 정확하게 달아서 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기 우측의 자는 이승에서 백성들의 세금 천 냥을 착복했으니 정확히 쇳물 천 근을 먹여야 하고, 저 좌측의 자는 만 냥을 착복했으니 쇳물 만 근을 먹여야 합니다. 저희 저승의 장부에는 단 한 푼의 뇌물 액수까지도 정확하게 회계 장부에 기록되어 있어, 착복한 액수와 정확히 비례하여 형벌의 양을 계량하여 집행합니다. 아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 아닙니까? 인간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지요."
서기의 무미건조하고도 자랑스러운 설명에 최선비는 뱃속이 뒤틀리며 헛구역질을 꾹 참아야 했다. 철저하게 수치화되고 서류화된 지옥의 징벌 시스템은, 그 어떤 무차별적인 고문이나 채찍질보다도 훨씬 더 소름 끼치고 잔혹하게 느껴졌다. 죄를 지은 만큼, 남을 속이고 훔친 정확한 횟수와 액수만큼 한 치의 에누리 없이 되돌려받는 절대적인 인과응보의 공간. 그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굳게 믿었던 진짜 지옥의 모습이었다.
※ 6: 이승으로의 극적인 귀환과 남겨진 자들을 위한 깨달음
탐관오리 징벌국을 지나 유람은 계속되었다. 입술로 남을 헐뜯고 거짓말을 일삼은 자들의 혀를 길게 뽑아내어 그 위로 소가 끄는 쟁기를 밭 갈듯이 지나가게 하는 '발설지옥(拔舌地獄)', 그리고 남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비수의 말을 꽂아 대못을 박은 자들을 날카로운 칼싸라기 비가 내리는 협곡에 가두어 살점을 저미게 하는 '검수지옥(劍樹地獄)'까지. 수많은 지옥의 형 집행 부서들을 꼼꼼히 견학한 최선비의 영혼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승에서 그가 하찮게 여겼던 도덕과 양심, 그리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이곳 저승에서는 영혼의 영원한 존망과 고통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척도였음을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이다.
"자, 이제 염라대왕님께서 허락하신 특별 유람은 모두 끝났습니다. 당신의 이승 육신이 부패하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셔야 합니다."
안내 서기가 다시 최선비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처음 그가 들어왔던 거대한 잿빛 성문, 초군문 앞이었다. 그곳에는 처음 그를 차가운 쇠사슬로 묶어 끌고 왔던 일직사자가 어딘지 몹시 멋쩍고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명부전 서기의 서류 착오로 인해 엉뚱한 사람을 잡아 왔다가 꼼짝없이 징계를 받게 된 사자는, 불만이 가득한 눈초리로 최선비를 쏘아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크흠, 이번 일은 전적으로 우리 명부 기록 부서의 서류 착오로 빚어진 일이니, 이승에 돌아가거든 함부로 입을 놀려 명부전의 완벽한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하시오. 관공서 실수라는 게 어쩌다 한 번쯤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괜히 헛소문 퍼뜨리면 나중에 진짜 명 다해서 올 때 아주 험한 꼴을 보게 될 것이오. 알아들었소? 자, 늦기 전에 어서 가시오!"
사자가 최선비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그 순간, 단단했던 발밑의 땅이 푹 꺼지며 최선비의 혼은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 속으로 무서운 속도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이 귀를 때리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의 귓가에는 '네가 지은 죄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빠짐없이 장부에 기록되고 있다'는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생생하게 맴돌았다.
"아아아아아악!"
얼마나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최선비는 폐부가 날카롭게 찢어질 듯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숨을 크게 헐떡이며 번쩍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하고 온몸이 굳어 움직이기가 힘들었지만, 코끝을 강하게 찌르는 짙은 향냄새와 귀를 때리는 구슬픈 곡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영감 불쌍해서 어쩌누...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아버님! 평생 책만 읽으시더니 이리 황망히 떠나시다니요! 아이고!"
어렵게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와 자식들이 거친 삼베옷을 입고 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통곡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차가운 방 한가운데 깔린 칠성판 위였고, 최선비의 몸에는 저승길에 입는다는 꽁꽁 묶인 염의(수의)가 입혀져 있었다. 한마디로 곧 관에 들어가 뚜껑이 덮이기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 여보... 예끼 이 사람들아... 곡을 멈추어라... 나 아직 안 죽었소... 목이 타니 물, 물 좀 다오..."
최선비가 쉰 목소리로 신음하며 밧줄로 묶인 염의를 간신히 뒤집어쓰고 벌떡 일어나 앉자, 방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송장이 살아 돌아왔다며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하인들, 그대로 눈을 뒤집으며 까무러치는 아내,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덜덜 떠는 아들까지.
시간이 한참 흘러 따뜻한 미음으로 속을 달래고 집안이 간신히 진정된 후, 최선비는 가족들을 모두 안방으로 모아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며칠 동안 겪었던 명부전에서의 일들,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서류로 돌아가는 저승의 행정 시스템, 염라대왕의 서릿발 같은 재판, 그리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집행되는 무시무시한 지옥의 형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영감이 미쳤거나 헛것을 보았다며 믿지 않던 가족들도, 최선비의 너무나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지옥 부서의 묘사와 여전히 두려움에 덜덜 떠는 그의 진실된 눈빛을 보며 점차 그의 말을 굳게 믿게 되었다.
그날 이후, 최선비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그토록 자랑하며 목에 힘을 주던 양반의 체면과 오만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십수 년 전 쫓아냈던 소작농의 남은 가족을 수소문해 찾아가 진심으로 사죄하며 재산을 떼어주었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곳간을 활짝 열어 구휼을 베풀었다. 책상머리에서 공자왈 맹자왈만 읊조리던 입조심을 생활화하여 하인들에게도 절대 하대하지 않았고, 매사에 타인의 마음에 작은 생채기조차 주지 않으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았다.
왜냐하면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승에서의 아주 작은 선행과 악행 하나하나,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저승 명부전 서기들의 붓끝을 통해 거대한 장부에 영원토록 기록되고 있다는 그 무서운 진실을 말이다.
저승의 차갑고도 정교한 관료제는 이승의 오만한 인간들에게 보내는 가장 뜨겁고도 서늘한 경고였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훗날 저승의 장부에서 어떻게 치밀하게 계산되어 참혹한 이자로 돌아올지, 우리는 매 순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서류 한 장으로 영혼의 운명이 갈리는 조선시대판 지옥 관료제,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서늘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심코 짓는 작은 죄들조차 저승의 장부에는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콕 찌르네요. 오늘 하루, 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훗날 떳떳하게 염라대왕님을 마주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더 기묘하고 재미있는 '염라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