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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할미와 저승사자의 대화

    나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에게 도끼를 쥐여주었다" 백 살 산신할머니가 하늘이 내린 오십 년의 수명마저 거절한 기막힌 사연

    태그:

    #오디오드라마, #조선야담, #전래동화, #산신할머니, #저승사자, #옛날이야기, #한국설화, #전통민담, #인생지혜, #유쾌한이야기, #감동실화, #수명연장, #권선징악, #라디오드라마, #잠자리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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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로: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조선시대, 태백산맥의 깊고 깊은 골짜기에 무려 백 살을 넘기도록 정정하게 홀로 살아가는 신비로운 노파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온갖 약초에 통달하고 산짐승들과도 말을 섞는 듯한 이 할머니를 가리켜 산신할머니라 부르며 공경했지요. 그러던 어느 가을날, 백 년의 수명을 다 채운 할머니의 초가집 마당에 카리스마 넘치는 저승사자가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공포에 떨며 살려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던 할머니가 오히려 저승사자의 빈속을 걱정하며 밥상부터 차려내면서, 저승 개국 이래 가장 황당하고도 유쾌한 사흘간의 동거가 시작되는데요. 죽음 앞에서도 유머와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산신할머니와 원칙주의자 저승사자가 펼치는 기묘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지금 함께 떠나보실까요.

    씬표:

    씬1: 백 살 산신할머니의 눈치 빠른 손님맞이: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가는 백 살 노파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두려워하기는커녕 정성껏 다과상을 차리며 저승사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장면입니다.
    씬2: 카리스마 저승사자의 굴욕과 뜻밖의 다과상: 위엄 있게 등장해 명부를 들이민 저승사자가 할머니의 태연한 환대와 구수한 감잎차, 그리고 달콤한 곶감 대접에 당황하며 체면을 구기고, 마을 아이들의 약을 지어주기 위해 사흘의 유예를 달라는 할머니의 청을 들어주는 장면입니다.
    씬3: 산짐승들과의 작별 인사와 엉겁결에 약초 캐는 저승사자: 사흘간의 유예 기간 동안 할머니를 감시하기 위해 초가집에 머물게 된 저승사자가 산짐승들의 기묘한 병문안에 놀라고, 할머니의 은근한부탁에 못 이겨 검은 도포 자락을 걷어붙이고 함께 약초를 캐며장작까지 패는 유쾌한 장면입니다.
    씬4: 가마솥 약 달이기와 밤하늘 아래의 철학 문답: 할머니가 달인 약초 냄새를 맡고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지켜본 저승사자가, 마지막 밤 마당에 앉아 할머니와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큰 깨달음을 얻는 장면입니다.
    씬5: 천상 신선의 강림과 꽃비 속에 떠나는 가장 아름다운 소풍: 넷째 날 새벽,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할머니의 덕행을 칭송하며 수명을 늘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할머니가 겸손하게 거절하고, 마침내 젊고 아름다운 영혼으로 변해 저승사자와 함께 웃으며 하늘로 소풍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 1: 백 살 산신할머니의 눈치 빠른 손님맞이

    태백산맥의 깊고 깊은 골짜기, 흰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득한 산자락에 나지막한 초가집 한 채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고 계셨는데, 나이가 무려 백 살을 훌쩍 넘겼음에도 허리는 꼿꼿하고 눈빛은 가을 하늘의 별빛처럼 총총하게 빛났습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노파를 가리켜 김씨 할머니라는 본명 대신 산신할머니라고 부르며 극진히 따랐습니다. 할머니의 손길이 닿는 텃밭마다 파릇파릇한 나물이 사철 내내 자라났고, 다리를 다친 노루나 날개 꺾인 산새들도 할머니의 초가집 마당에 와서 사흘만 머물면 멀쩡하게 나아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할머니는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싸리비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고, 대나무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채 뒷산으로 약초를 캐러 올라갔습니다. 찬 서리가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약성이 오른 도라지와 더덕을 캐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산 아랫길에서 헐레벌떡 뛰어 올라온 마을의 젊은 나무꾼 돌쇠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넓적하게 절을 올렸습니다.

    "산신할머니, 이 새벽에 또 산에 오르셨습니까요! 지난번에 할머니께서 달여주신 감초 달인 물을 마시고 우리 노모의 기침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나저나 할머니께서는 올해로 백 수를 넘기셨는데도 어쩌면 이리도 걸음이 날래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시는지, 그 장수의 비결이 도대체 무엇입니까요?"

    돌쇠의 순박한 물음에 할머니는 호미 자루를 짚고 서서 인자하고도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습니다.

    "허허허, 이 사람아. 장수의 비결이 따로 있겠는가. 그저 사람 마음속에 욕심 주머니를 비워두면, 세월도 그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깜빡 잊은 채 그냥 지나쳐 가는 법이라네. 욕심이 없으니 화낼 일이 없고, 화낼 일이 없으니 늙을 틈이 없는 것이지."

    "아이고, 말씀은 그리 쉽게 하셔도 그게 어디 보통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요. 아무튼 할머니께서는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우리 마을 뒷산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계셔주셔야 합니다!"

    돌쇠가 인사를 꾸벅하고 산을 내려간 뒤, 할머니는 양지바른 바위턱에 걸터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습니다. 가을 단풍이 오색 비단처럼 물든 산자락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문득 할머니의 귀에 평소와는 사뭇 다른 산의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인데도 어디선가 서늘하고 묵직한 기운이 솔바람을 타고 스며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머리 위의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잘게 떨렸고, 아침 내내 요란하게 지저귀던 직박구리와 산까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허어,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것을 보니 저 멀리 구름 너머에서 아주 귀하고도 까다로운 손님이 오시는 모양이구나. 백 년 동안이나 내 이름을 잊고 계시더니, 염라대왕님께서 드디어 낡은 장부 귀퉁이에서 내 이름을 찾아내신 게로군.'

    할머니는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마치 먼 시골에서 오랜만에 올라오는 조카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약초 바구니를 챙겨 들고 산을 내려오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느릿느릿했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삶과 죽음이란 그저 계절이 바뀌고 낙엽이 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도 반가운 순리였기 때문입니다.

    초가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바구니를 마루에 내려놓고는 평소보다 훨씬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마당의 낙엽을 한 번 더 깨끗이 쓸어내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의 물을 펄펄 끓였습니다. 그리고는 창호지를 새로 바른 방문을 활짝 열어젖혀 상쾌한 솔향기가 방 안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에구, 저승에서 이 깊은 태백산 골짜기까지 걸어오시려면 다리도 아프고 목도 컬컬하실 텐데, 빈속에 찬물을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할머니는 벽장 깊숙한 곳에서 정성스레 말려두었던 감잎과 구기자를 꺼내어 다관에 우려내고, 접시 위에는 가을 햇살에 꾸덕꾸덕하게 잘 말린 꿀단지 같은 곶감 다섯 알과 고소한 송화 다식을 소담스럽게 담아 낮은 소반 위에 차려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장롱 문을 열어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꺼내 입던 가장 곱고 깨끗한 명주 저고리와 남색 치마로 갈아입었습니다. 은비녀까지 단정하게 꽂고 방석 위에 정좌한 할머니는 문밖으로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는 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자, 이제 집안 청소도 다 끝났고 다과상도 준비되었으니, 손님이 오시기만 하면 되겠구나. 첫인상이 좋아야 가는 길도 말동무 삼아 심심치 않게 갈 수 있을 터인데, 어떤 인상을 가진 분이 오실까 참으로 궁금하네그려."

    ※ 2: 카리스마 저승사자의 굴욕과 뜻밖의 다과상

    해가 서산 마루에 완전히 걸터앉아 초가집 마당이 검붉은 그림자로 물들 무렵이었습니다. 싸리문 밖에서부터 낙엽 밟는 소리 하나 없이, 키가 구 척은 되어 보이는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마당 한가운데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들어섰습니다. 칠흑같이 검은 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도포를 걸친 사내였습니다. 백옥처럼 창백한 얼굴에는 얼음장 같은 위엄이 서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인간들의 수명을 기록한 두툼한 생사부가 들려 있었습니다. 천하의 우는 아이도 그 이름만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저승사자였습니다.

    '음, 여기가 백 년을 살았다는 태백산 김씨 노파의 집이로군. 아무리 산신할머니 소리를 듣는 노파라지만, 내 시퍼런 안광을 마주하면 여느 인간들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방바닥을 기겠지. 얼른 혼백을 거두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황천길 초입까지 가야겠다.'

    저승사자는 헛기침을 한 번 크게 하여 분위기를 제압한 뒤, 대청마루를 향해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듣거라! 백 년의 수명을 다 채운 태백산 김씨 노파는 지금 당장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오너라! 저승의 명을 받들어 네 혼백을 거두러 왔노라!"

    바람 소리처럼 음산하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초가집 기둥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방 안에서 들려와야 할 비명이나 통곡 소리 대신, 활짝 열린 방문 너머로 노파의 반갑고도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어이구, 오셨구먼유! 내가 아까 낮부터 까치가 울길래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실 줄 딱 알고 있었지라! 마당이 찬데 거기 서 계시지 말고 어서 방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노파의 태연자약한 반응에 저승사자는 순간 턱이 덜컥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수만 명의 망자를 데리러 다녀봤지만, 저승사자를 보고 버선발로 반기며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인간은 저승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게 아닌데? 눈이 어두워서 나를 동네 보부상이나 지나가는 과객으로 착각한 것인가?'

    당황한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 자락을 한 번 더 휘날리며 마루 위로 성큼 올라서서 눈을 부릅떴습니다.

    "할머니! 눈을 크게 뜨고 내 행색을 똑똑히 보시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온 저승사자란 말이오! 내 손에 들린 이 생사부가 보이지 않소?"

    그러자 할머니는 방석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큰절을 한 번 올리더니, 주름진 얼굴 가득 봄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저승사자의 소매를 살짝 끌어당겼습니다.

    "아이고, 사자님! 내가 나이는 백 살을 먹었어도 아직 눈은 스무 살 처녀 못지않게 밝아서 사자님 그 잘생기고 위엄 있는 얼굴을 단박에 알아보았습지요. 아무리 공사다망하신 저승사자님이라도 이 험한 산골짜기까지 걸어오시느라 다리도 뻐근하고 입안도 까끌까끌하실 텐데, 찬 방바닥에 그냥 가시면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습니까. 자, 여기 따끈하게 우려낸 감잎차 한 잔이랑 내가 직접 말린 곶감 딱 한 알만 자시고 말씀하시지요."

    할머니가 내민 소반 위에서는 구수하고 달콤한 감잎차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하얀 분이 솔솔 피어난 곶감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만큼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사실 새벽부터 저승문을 나서서 쉬지 않고 산을 넘어오느라 목이 타들어 가던 저승사자는,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차 냄새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크흠! 나, 나는 인간 세상의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오! 할머니의 수명이 오늘로 끝났으니..."

    "아따, 사자님도 참! 차 한 잔 마시는 데 일각이면 충분한데, 백 년을 기다리신 분이 그 잠깐을 못 참으십니까요? 어서 드시지요. 식으면 맛이 덜합니다요."

    결국 할머니의 구수하고도 강권하는 인정에 못 이긴 저승사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방석에 걸터앉아 찻잔을 들었습니다. 따뜻한 감잎차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온몸의 피로가 눈 녹듯 풀리는 기분이었고, 할머니가 집어준 곶감 한 알을 입에 넣자 달콤하고 쫀득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저승사자의 미간이 절로 펴졌습니다.

    '허어, 이 노파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염라대왕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천도복숭아보다 이 산골 곶감이 훨씬 더 달고 맛있는 것 같다.'

    차와 다식을 순식간에 비운 저승사자는 뒤늦게 자신의 본분을 떠올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생사부를 펼쳐 들었습니다.

    "크흠, 차는 잘 마셨소. 자, 여기 생사부를 보시오. 태백산 김씨 할머니, 향년 백 세. 오늘 해가 지는 시각으로 이승에서의 연이 다하였으니 이제 나와 함께 떠나야 하오."

    할머니는 고개를 차분히 끄덕이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하늘이 정해주신 백 년의 세월을 탈 없이 잘 누렸으니, 부르시면 마땅히 따라가야지요. 헌데 사자님, 염치없는 줄은 알지만 이 늙은이가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이 세상에 마무리해야 할 숙제가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요. 사흘만, 딱 사흘만 말미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저승사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건 절대 불가능하오! 방금 차와 곶감을 얻어먹었다고 해서 인정에 끌려 법도를 어길 수는 없소.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 철칙이니 단 하루도 늘릴 수 없단 말이오!"

    "사자님, 내 목숨이 아까워서 더 살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요. 실은 아랫마을에 올가을 들어 고약한 열병을 앓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여럿 있고, 겨울이 오기 전에 관절통 약을 지어주기로 약속한 노인들이 계십니다요. 사흘 동안 뒷산에서 약초를 캐다 약을 달여 그분들에게 나눠주고, 평생 내 말동무가 되어준 산속의 새와 짐승들에게 작별 인사만 나눌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 목숨보다 그 불쌍한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훨씬 더 급하고 소중한 일이라서 그럽니다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리사욕이 티끌만큼도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남겨질 이웃과 생명들을 향한 넓고 깊은 자비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영혼을 거두어 보았지만, 자신의 죽음 코앞에서 남의 아픈 아이들을 먼저 걱정하는 인간은 처음 보았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저승사자가 무심코 손에 들린 생사부를 내려다보았을 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의 이름 옆에 시커먼 먹물로 또렷하게 적혀 있던 '백 세 사망'이라는 글자가 마치 안개에 휩싸인 듯 스르르 흐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염라대왕의 친필로 적힌 생사부의 글자가 저절로 흐려지다니! 하늘조차 이 노파의 갸륵한 마음에 감응하여 말미를 주라는 뜻인가!'

    저승사자는 크게 놀라 눈을 껌뻑이더니,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사부를 덮었습니다.

    "허어,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로군. 좋소! 생사부의 글자가 흐려진 것을 보니 하늘도 할머니의 사정을 봐주라는 뜻인 모양이오. 딱 사흘의 유예를 드리겠소. 하지만 내 임무가 막중하니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고, 사흘 동안 이 집 마루에서 머물며 할머니를 지켜보다가 넷째 날 첫닭이 울기 전에 반드시 모셔갈 것이오!"

    "아이고, 사자님!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요! 사흘이면 약을 달이고도 남을 시간이지요. 대신 사흘 동안 이 늙은이가 사자님 삼시 세끼 밥상은 기가 막히게 차려드릴 테니 편히 쉬고 계십시오!"

    이렇게 해서 천하의 호랑이 같은 저승사자가 백 살 노파의 초가집에 사흘간 하숙생으로 눌러앉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 3: 산짐승들과의 작별 인사와 엉겁결에 약초 캐는 저승사자

    사흘간의 말미를 얻어낸 할머니는 그길로 명주옷을 벗어 개어두고 평소 입던 무명옷으로 갈아입은 뒤, 약초 바구니와 호미를 챙겨 들고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가 혹시라도 도망을 칠까 봐 의심해서가 아니라, 이 기묘한 노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호기심이 동한 저승사자도 뒷짐을 진 채 어슬렁거리며 할머니의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오른 가을 밤산은 대낮처럼 환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저승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숲속 수풀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붉은 털을 가진 여우 한 마리와 다람쥐 서너 마리, 산토끼와 노루, 심지어는 덩치가 산만 한 어미 멧돼지까지 새끼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할머니 주위로 몰려든 것입니다. 보통 산짐승들은 저승사자의 음산한 기운을 맡으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마련인데, 할머니 곁에 바짝 붙은 짐승들은 저승사자를 흘끔거리면서도 할머니의 치맛자락에 머리를 부비며 반가워했습니다.

    "오냐, 오냐. 내 귀여운 산속 친구들아, 이 밤중에 마중을 다 나왔구나. 내가 사흘 뒤면 여기 계신 멋쟁이 저승사자님을 따라 아주 먼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단다. 이 늙은 몸뚱이가 백 년이나 일했으니 이제 편히 쉴 때도 되었지. 내가 떠나더라도 사냥꾼들 덫에 걸리지 않게 늘 조심하고, 추운 겨울에 도토리랑 나무뿌리 잘 챙겨 먹으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할머니가 노루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타이르자, 신기하게도 짐승들이 할머니의 말을 다 알아들은 것처럼 구슬픈 소리로 낮게 울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심지어 다람쥐 두 마리는 어디선가 달려가더니 땅속에 숨겨두었던 굵직한 산더덕을 입에 물고 와서 할머니의 바구니 안에 쏙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승사자는 입을 쩍 벌린 채 혀를 내둘렀습니다.

    '세상에, 말 못 하는 미물들까지 저토록 할머니를 따르며 은혜를 갚으려 하다니. 마을 사람들이 왜 이 노파를 산신할머니라고 부르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할머니는 달빛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병에 특효가 있다는 산도라지와 백하수오를 정성껏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파른 바위틈에 자라난 약초에 손을 뻗던 할머니가 나뭇가지에 치맛자락이 걸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습니다. 깜짝 놀란 저승사자가 바람 같은 속도로 날아가 할머니의 허리를 덥석 부축해 세웠습니다.

    "아이고, 할머니! 백 살이나 드신 분이 어찌 이리 험한 바위틈을 타신단 말이오! 이러다 사흘을 채우기도 전에 낙상하여 지금 당장 저승으로 가시겠소!"

    "허허허, 사자님께서 이렇게 번개같이 잡아주시니 다칠 일이 없구먼유. 저기 저 바위 위에 달린 붉은 열매가 마을 이장님네 손주 아이의 열병을 고칠 오미자 덩굴인데, 내 키가 작아서 손이 닿지를 않네그려."

    할머니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바위 위를 올려다보자, 저승사자는 잠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듯 검은 도포 소매를 둘둘 걷어붙였습니다.

    "아이고, 참으로 답답하구먼! 할머니는 거기 평평한 데 가만히 앉아 계시오! 내가 키도 크고 손도 빠르니 금방 따다 드리면 될 것 아니오!"

    저승사자는 훌쩍 몸을 날려 바위 위로 올라가더니, 커다란 손으로 오미자 덩굴과 바위틈의 산삼 못지않은 굵은 도라지들을 쑥쑥 뽑아 할머니의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주었습니다. 한 번 일손을 돕기 시작하자 저승사자의 오기가 발동했는지, 나중에는 할머니의 호미까지 빼앗아 들고는 산비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약초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사자님, 거기 오른쪽 소나무 밑에 잎사귀가 넓은 것이 아주 약성이 좋은 삽주 뿌리입니다요! 그것도 좀 캐주십시오!"

    "여기 이 굵은 뿌리 말이오? 어이구, 이건 뿌리가 왜 이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오! 끙차!"

    이튿날 아침이 밝아왔을 때, 태백산 초가집 마당에서는 천하의 염라대왕도 기절초풍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검은 갓을 비스듬히 고쳐 쓴 저승사자가 도포 자락을 허리춤에 질끈 묶어 올리고는, 가마솥 아궁이에 넣을 장작을 도끼로 쩍쩍 패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분명 망자의 혼백을 거두러 온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인데, 어째서 백 살 노파의 지시에 따라 산에서 약초를 캐고 마당에서 장작을 패며 아궁이 불까지 지피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기분은 참으로 상쾌하구나.'

    할머니가 부엌에서 내온 따끈한 시래기 된장국에 조밥 한 사발을 게걸스럽게 비운 저승사자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할머니가 약초 다듬는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마늘종 다듬는 일까지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 4: 가마솥 약 달이기와 밤하늘 아래의 철학 문답

    이틀째 되는 날 오후, 초가집 마당에 걸린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서는 할머니와 저승사자가 밤새 캐 온 귀한 약초들이 보글보글 끓으며 진하고 향기로운 약냄새를 피워 올렸습니다. 하얀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산골짜기를 가득 채우자, 그 구수하고도 신비로운 약초 향기가 가을바람을 타고 산 아래 마을까지 솔솔 퍼져 나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싸리문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아픈 아이를 등에 업은 아낙네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 그리고 어제 만났던 나무꾼 돌쇠까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초가집 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법이라, 대청마루 기둥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저승사자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신할머니! 아랫마을까지 약초 달이는 향기가 어찌나 향기롭게 퍼지던지 홀린 듯이 올라왔습니다요. 우리 집 막내둥이가 사흘째 열이 내리지 않아 숨을 헐떡이는데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할머니,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또 무릎 뼈마디가 쑤셔서 잠을 못 자겠습니다요."

    할머니는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한 눈빛으로 맞이하며, 가마솥에서 정성껏 달여낸 약물을 대접에 가득 떠서 아이의 입에 떠먹여 주고, 한지에 고이 싼 환약과 고약을 노인들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할머니가 달인 약물을 마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빛이 가라앉으며 새근새근 평온한 숨을 내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산신할머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약값으로 쌀이라도 한 되 퍼 올 걸 그랬습니다요."

    "허허허, 약값은 무슨 약값인가. 산이 거저 내어준 풀뿌리를 내가 잠시 불에 끓였을 뿐인걸. 자, 이 약초 주머니들을 집에 가지고 가서 겨우내 달여 드시게나. 그리고 내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대, 내가 혹여 이 산에 보이지 않더라도 늘 자연을 아끼고 이웃끼리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며 화목하게 살아가야 하네. 마음속에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면 하늘이 늘 복을 내려주실 것이야."

    할머니는 자신이 내일 새벽이면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내색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로 마을 사람들을 배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고 난 뒤, 다시 고요해진 초가집 마당에는 사흘째 되는 날의 깊은 밤이 찾아왔습니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이면 저승으로 떠나야 하는 마지막 밤, 할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대청마루에 서 있던 저승사자도 조용히 다가와 할머니의 옆자리에 나란히 걸터앉았습니다. 지난 사흘 동안 할머니의 곁에서 그녀의 삶을 지켜본 저승사자의 눈빛에는 첫날의 차가운 위엄 대신 깊은 경외심이 서려 있었습니다.

    "할머니, 내일 동이 트면 정말로 나와 함께 황천길을 떠나셔야 하오. 두렵거나 아쉽지는 않으시오?"

    할머니는 별빛이 내려앉은 은빛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고요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사자님 덕분에 사흘 동안 숙제를 다 마쳤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요. 두려움이라는 것은 앞날을 알지 못하고 집착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법이지요. 꽃이 봄에 피었다가 가을에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지는 꽃잎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더이까. 백 년 동안 이 아름다운 산천을 실컷 구경하고 떠나는 소풍길인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에게 평소 품어왔던 깊은 의문을 던졌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셨으니,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 저승사자에게 깨달음을 한 수 가르쳐 주시겠소?"

    할머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를 가리키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인생이란 저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지요. 처음 태어나 젊었을 때는 높은 바위산을 세차게 때리며 내려오는 계곡물처럼 열정적이고 거침이 없다가, 중년이 되면 들판을 적시는 넓은 강물처럼 깊이와 너비를 갖추게 됩니다요. 그리고 나처럼 백 살 먹은 노년이 되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처럼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다 포용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할머니께서 생각하시는 죽음이란 무엇이오?"

    "죽음은 그 넓은 바다에 이른 물방울이 따뜻한 햇볕을 받아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두둥실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요. 결코 영원한 끝이나 소멸이 아니라, 구름이 되고 다시 단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는 또 다른 시작인 셈이지요. 그러니 사자님께서 하시는 일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 무서운 일이 아니라, 바다에 닿은 물방울을 하늘 구름으로 인도해 주는 아주 고맙고 거룩한 일입니다요."

    할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밤하늘의 별빛처럼 저승사자의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의 원망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 살아왔던 저승사자는, 자신의 임무를 이토록 따뜻하고 아름답게 어루만져 준 할머니의 지혜 앞에서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며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내 수천 년 묵은 가슴의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소. 그렇다면 백 년을 사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소? 큰 재물을 얻었을 때요, 아니면 이름을 날렸을 때요?"

    "허허허, 이 산골 노파에게 재물이나 명예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행복이란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지요. 새벽녘에 창문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맑은 산새 소리, 봄날 바위틈에 처음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의 향기, 그리고 아까 낮에 내 약을 받아먹고 열이 내려 방긋 웃던 그 어린아이의 미소... 그런 작고 소박한 순간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내 백 년의 삶을 눈부시게 빛내주었답니다요."

    저승사자와 할머니의 도란도란한 대화는 동쪽 산등성이가 푸르스름하게 밝아올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 5: 천상 신선의 강림과 꽃비 속에 떠나는 가장 아름다운 소풍

    넷째 날 새벽, 마침내 멀리 아랫마을에서 첫닭이 우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고 동쪽 하늘이 붉은 비단처럼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첫날 입었던 그 고운 명주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다시 정갈하게 차려입고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저승사자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사자님, 사흘 동안 이 늙은이 일손까지 거들어 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요. 자, 이제 해가 뜨기 전에 어서 길을 나서시지요."

    저승사자는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어느새 자신의 스승처럼 느껴지는 백 살 노파를 향해 진심 어린 존경의 예를 갖추어 허리를 숙였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한 사흘은 내 수천 년 저승 세월 중 가장 따뜻하고 귀한 시간이었소. 자, 제 손을 잡으시지요. 고통 없이 가장 편안한 길로 모시겠소."

    저승사자가 할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구름 한 점 없던 새벽하늘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갈라지더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영롱한 오색 서기가 초가집 마당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향기로운 연꽃 내음이 진동하는 가운데, 백학의 깃털로 만든 도포를 입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구름을 타고 마당으로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하늘의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천상의 태을신선이었습니다.

    "잠깐 멈추거라, 저승사자야!"

    천둥처럼 우렁차면서도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신선의 음성에, 저승사자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천상의 신선님께서 어인 일로 이 인간 세상의 산골짜기까지 강림하셨나이까!"

    신선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한 미소로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천상에서 이 태백산 노파의 삶을 백 년 동안 지켜보았노라.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죽음이 코앞에 닥친 사흘 동안에도 자신의 안위가 아닌 병든 아이들과 산짐승들을 먼저 돌보았으니, 그 지극한 겸손과 자비심이 천상의 하늘을 크게 감동시켰도다. 사자야, 네 품속의 생사부를 다시 펼쳐 보아라!"

    저승사자가 떨리는 손으로 생사부를 펼쳐 보자, 놀랍게도 흐려졌던 할머니의 이름 옆에 황금빛 글씨로 '수명 백오십 세'라는 새로운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앗! 생사부의 수명이 오십 년이나 더 늘어났습니다! 하늘의 뜻이 바뀐 것입니까?"

    신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어깨 위에 따뜻하게 손을 얹었습니다.

    "그렇다.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하는 법이나, 이 노파처럼 욕심 없고 거룩한 마음씨는 하늘의 법도마저 움직이는 법이니라. 할머니여, 하늘이 그대에게 오십 년의 수명을 더 내렸으니, 이 땅에 더 머물며 그 깊은 지혜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보살피도록 하시오."

    보통 인간 같았으면 땅에 엎드려 만세를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상황이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고개를 조용히 가로저으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신선님, 하늘의 크신 은혜는 뼈에 사무치도록 감사하옵니다. 하오나 저는 이미 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고, 이 세상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은 어제 달여 준 약사발로 모두 다 마쳤습니다요. 모든 것에는 피고 지는 때가 있는 법인데, 늙은 고목이 자리를 비켜주어야 그 자리에 새로운 어린 묘목들이 햇볕을 받고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오십 년의 수명은 저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저는 오늘 순리대로 이 고마운 사자님의 손을 잡고 떠나고 싶습니다요."

    신선에서 내려준 오십 년의 추가 수명마저 미련 없이 사양하는 할머니의 대답에, 신선과 저승사자는 동시에 탄성을 내뱉으며 깊은 감동에 젖었습니다. 더 살기를 바라지 않는 그 완벽한 무욕과 겸손함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였기 때문입니다.

    "허허허! 과연 산신할머니라 불릴 만한 참된 성인이로구나! 그대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억지로 붙잡지 않겠노라. 대신 그대가 저승으로 가는 길에 천상의 가장 큰 축복을 내리리라!"

    신선이 지팡이를 들어 할머니의 머리 위로 한 번 휘두르자, 할머니의 구부정했던 허리와 주름진 육신은 초가집 마루 위에서 깊은 잠에 든 것처럼 평화롭게 누웠고, 그 몸에서 빠져나온 할머니의 영혼은 스무 살 시절의 가장 젊고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으로 눈부시게 변모하였습니다.

    "어머나, 내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네유! 사자님, 저 어떻습니까요? 스무 살 적 내 모습인데 꽤 봐줄 만하지요?"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 할머니가 장난스럽게 치맛자락을 들어 보이며 웃자, 저승사자도 그제야 얼음장 같던 얼굴을 완전히 풀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세상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 거절하지는 못했을 터인데, 할머니의 그 배포와 지혜에는 염라대왕님도 두 손 두 발 다 드시겠소! 자, 이제 구름 가마가 대령했으니 저승으로 즐거운 소풍을 떠나십시다!"

    신선이 하늘로 먼저 올라간 뒤, 할머니와 저승사자가 나란히 발걸음을 떼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자 태백산 전체에서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산속의 모든 산새들이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올라 두 사람의 주위를 오색 구름처럼 호위하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울렸고, 마당 주변에는 노루와 여우, 다람쥐와 토끼들이 모두 모여 앉아 하늘로 올라가는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여 배웅했습니다. 게다가 늦가을의 찬 바람 속에서도 산자락의 진달래와 들국화들이 일제히 만개하여 향기로운 꽃비를 하늘 가득 흩뿌렸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욕심을 비우고 타인을 먼저 배려했던 백 살 산신할머니와,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감화되어 친구가 된 저승사자의 뒷모습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붉고 찬란한 태백산 구름 너머로 그렇게 행복하고도 평화롭게 사라져 갔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조선시대 야담 『산신할머니와 저승사자』 이야기, 재미있고 따뜻하게 들으셨나요? 저승사자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곶감과 감잎차를 대접하며 마당 장작까지 패게 만든 산신할머니의 유쾌한 지혜가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하늘이 내려준 오십 년의 수명마저 겸손하게 사양하며 자연의 순리대로 웃으며 소풍을 떠난 할머니의 모습은, 욕심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과 응원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우리의 옛이야기를 발굴하는 큰 힘이 됩니다.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 시간에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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