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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사잣밥 훔쳐 먹은 거지, 저승사자 앞에 끌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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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41자)
삼십 년을 초상집만 돌며 사잣밥을 훔쳐 먹고 산 늙은 거지 칠복이. 마을 사람들은 저 늙은이 죽으면 지옥 불구덩이라며 손가락질했지요. 마침내 명이 다해 저승 관아에 끌려가니, 삼십 년을 굶은 저승사자 셋이 내 밥 내놓으라며 달려듭니다. 헌데 이 영감, 겁도 없이 이러지 뭡니까. 그 밥 내가 안 먹었으면 쉬어서 버렸을 것 아니오. 그런데 염라대왕이 저승 장부를 펼치는 순간, 관아 안이 발칵 뒤집힙니다. 대체 뭐가 적혀 있었을까요?
※ 1: 사잣밥 도둑 칠복이
조선 팔도 어느 고을에, 칠복이라는 늙은 거지가 하나 살았더랍니다.
이름은 칠복이. 복이 일곱이나 들었다는 뜻이지요. 헌데 정작 그 삶엔 복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부모도 없고, 처자식도 없고, 집이라곤 마을 뒷산 자락에 짚단으로 얼기설기 얽어놓은 움막 하나가 전부였지요. 나이는 예순을 훌쩍 넘겼는데, 등은 활처럼 굽고 무릎은 삐걱대고. 그야말로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칠복이 영감에게는, 온 고을이 다 아는 별난 버릇이 하나 있었어요. 뭐냐 하면. 초상집만 났다 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것도 조문하러 오는 게 아니에요. 사잣밥을 훔쳐 먹으러 오는 겁니다.
사잣밥이 뭔지 아시지요. 사람이 숨을 거두면, 그 집 대문 밖에 상을 하나 차려놓는 풍습입니다. 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 엽전 몇 닢. 망자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 셋이 요기하고 가시라고, 노잣돈이나마 챙겨 가시라고 차려놓는 상이지요. 부디 우리 아버지 험하게 다루지 마시고, 저승길 곱게 인도해 주십사 하는 산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상입니다.
헌데 칠복이 영감이 그 상을 노리는 겁니다. 상주들이 곡소리 내며 안으로 들어가고, 대문 밖이 잠잠해지는 그 틈을 타서. 슬그머니 다가가 밥 세 그릇을 싹싹 긁어 먹고, 짚신은 제 발에 꿰고, 엽전은 허리춤에 챙겨 넣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었지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이게 무려 삼십 년입니다. 삼십 년을요. 고을에 초상만 났다 하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사잣밥을 싹 비워놓고 갔더랍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십 리 밖 초상집이라도 지팡이를 짚고 기어이 찾아갔지요. 오죽하면 마을 사람들이 이런 말을 다 했겠어요. "우리 고을에 저승사자는 안 와도 칠복이는 온다." 참 기가 막히죠.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윗마을 박 진사 댁에 초상이 났는데, 상주가 단단히 벼르고 사잣밥 상 옆에 하인을 세워두었더랍니다. 칠복이 오면 몽둥이질을 하라고요. 그런데 이 영감이 어떻게 했느냐. 밤새 담벼락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하인이 꾸벅꾸벅 조는 새벽녘에 살금살금 다가가 밥그릇을 싹 비워놓고 사라졌다지 뭡니까. 다음 날 아침 하인이 텅 빈 상을 보고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당연히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저 늙은이가 사람이 아니여. 죽은 사람 밥까지 뺏어 먹다니." "저승사자 밥을 훔쳐 먹으면 저승 가서 그 값 다 치른다는데. 저 영감 죽으면 지옥 불구덩이여." 마을 아낙들은 칠복이만 보면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쫓아냈고, 아이들은 뒤에서 돌멩이를 던지며 "사잣밥 도둑! 사잣밥 도둑!" 하고 놀려댔지요.
그럴 때마다 칠복이 영감은 어땠느냐. 화도 안 냅니다. 그저 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어요. "허허, 그 밥 안 먹으면 쉬어서 개나 줄 것을. 내가 먹어치워 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아, 뻔뻔하기가 아주 그냥.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더 열이 뻗쳤더랍니다. 도둑질을 해놓고 고마워하라니, 이런 넉살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삼십 년이 흘렀습니다. 칠복이는 늙고, 마을 사람들도 늙고. 사잣밥 도둑이라는 별명만 고을에 짱짱하게 남았지요. 아무도 칠복이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밥 한술 나눠주는 이도 없었고, 병들었다고 들여다보는 이도 없었어요. 초상집 대문 밖의 그 밥 세 그릇이, 칠복이가 아는 유일한 밥상이었더랍니다.
헌데 참 이상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요. 칠복이 영감은 사잣밥만 먹고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었어요. 그 초상집 근처를 며칠씩 어슬렁거렸더랍니다. 밥 훔쳐 먹고 튀는 도둑치고는, 참 굼뜬 도둑이었지요. 사람들은 그저 "저 늙은이가 또 뭘 훔쳐 갈까 싶어 어슬렁거리는구먼" 하고 혀만 찰 뿐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해였지요. 칠복이 영감이 그해 겨울 들어 부쩍 기력이 쇠했습니다. 기침이 잦아지고, 걸음이 자꾸 휘청거리고. 움막에서 며칠씩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어요. 헌데 그러다가도 초상 소식만 들리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지팡이를 짚고 나섰더랍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아랫마을 김 첨지 댁에 초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칠복이가 눈길을 헤치고 내려갔지요. 대문 밖에 사잣밥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세 그릇에, 새 짚신 세 켤레. 칠복이가 늘 하던 대로 슬그머니 다가가 밥그릇에 손을 뻗는데.
"저 도둑놈! 또 왔네!" 마침 나오던 상주가 그걸 딱 본 겁니다. 상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집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요. "이 늙은이가 오늘은 아주 작정을 했구먼!" "우리 아버지 저승 가시는 길에 재수 옴 붙게 할 셈이여!" 사람들이 칠복이를 마당 밖으로 떠밀고, 등짝을 때리고, 눈밭에 밀쳐 넘어뜨렸습니다.
눈밭에 나동그라진 칠복이 영감. 그 늙은 몸으로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지요. 사람들은 침을 탁 뱉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칠복이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눈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냈어요. 그러곤 어땠느냐. 그냥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도로 그 집 담벼락 뒤에 쭈그리고 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기다리는 것이었지요.
'아직이야. 아직 멀었어.' 칠복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팔로 제 몸을 감쌌습니다.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다 해진 무명옷 하나로 그 추위를 버티고 있었지요. 대체 이 영감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그저 밥 한술이 그리도 아쉬웠던 걸까요. 매를 맞고 눈밭에 나뒹굴고도 돌아가지 않는 그 고집이, 참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칠복이는 결국 그 담벼락 밑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김 첨지 댁 상여가 나갈 무렵. 칠복이 영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그 도둑놈이 밤새 뭘 훔쳐 갔나" 하고 집 안을 뒤졌지만, 없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랍니다. 다들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잊어버렸지요.
그리고 사흘 뒤. 움막에 돌아온 칠복이 영감은 자리에 눕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삼십 년 사잣밥 도둑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더랍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밤에, 칠복이 영감은 난생처음 저승사자와 얼굴을 맞대게 되지요. 삼십 년간 밥상만 훔쳐 먹던 그 저승사자들과 말입니다.
※ 2: 마지막 밤, 세 손님
움막 안은 얼음장 같았습니다.
불씨는 진작에 꺼졌고, 찢어진 문틈으로 눈발이 들이쳤지요. 칠복이 영감은 다 해진 거적때기를 목까지 끌어당기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기침을 할 때마다 온몸이 들썩였어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 한 모금 떠다 줄 사람도, 이마 짚어줄 사람도. 삼십 년을 그렇게 혼자 살았으니, 죽는 것도 혼자였지요.
칠복이는 흐려지는 눈으로 움막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요. '허허, 이제 갈 때가 됐구먼. 참 오래도 버텼다.' 원망도 없고, 서러움도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죽는 게 그리 서럽지 않은 모양이었어요. 하기야, 살아서도 늘 혼자였으니까요.
다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듯 눈을 몇 번 껌뻑이더니 이렇게 덧붙였지요. '아랫말 김 첨지 상여는… 누가 메주려나. 그 집 아들이 하나뿐인데.' 그러곤 또 한참을 뒤척이다 중얼거렸습니다. '뒷산 그 무덤들도 봄 되면 풀을 베어줘야 하는데. 이제 누가 하려나.'
죽어가면서 남의 집 상여 걱정에, 웬 무덤 풀 걱정이라니. 참 알 수 없는 영감이지요. 그러곤 스르르, 칠복이 영감의 숨이 잦아들었습니다. 그렇게 삼십 년 사잣밥 도둑의 생이 끝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순간, 칠복이가 눈을 번쩍 떴어요. 이상했습니다.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거든요. 굽었던 등이 쭉 펴지고, 삐걱대던 무릎도 멀쩡했지요. 벌떡 일어나 앉은 칠복이가 어리둥절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저 아래 거적때기 밑에, 웬 늙은이 하나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겁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제 얼굴로요.
"어이쿠. 이게 나로구먼." 칠복이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죽었다는 것을요. 헌데 이 영감, 놀라지도 않아요. 오히려 제 시신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지요. "허어. 꼴이 말이 아니구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놈아." 제 몸뚱이한테 인사를 다 하는 겁니다. 참 넉살도 좋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움막 문이 벌컥 열리더니, 찬 바람이 훅 밀려들었어요. 문가에 시커먼 그림자 셋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검은 갓을 눌러쓰고, 검은 도포를 걸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그렇습니다. 저승사자 셋이었지요.
가운데 선 사자가 두루마리 하나를 척 펼치더니 목청을 돋웠습니다. "이 고을 뒷산 움막의 칠복이. 명이 다하였으니 순순히 따르라." 목소리가 어찌나 서늘하던지, 웬만한 혼백이면 그 자리에서 오금이 저렸을 겁니다. 실제로 이 소리 한 번에 울고불고 매달리는 혼백이 열에 아홉이라지요. 살려달라, 하루만 더 달라, 자식 얼굴이라도 보게 해달라. 저승사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칠복이 영감은요. 이 양반이 그 저승사자 셋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대뜸 이럽니다. "허, 오랜만이구먼. 자네들 얼굴 참 여전하네." 저승사자 셋이 어리둥절해서 서로 마주 보았지요. 오랜만이라니. 초면인데 무슨 소리랍니까.
칠복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왜, 나를 모르겠는가? 삼십 년을 자네들 밥상 앞에서 마주쳤는데." 그 말에 저승사자 셋의 낯빛이 확 변했습니다. 왼쪽에 선 젊은 사자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지요. "네 이놈! 네가 바로 그 사잣밥 도둑이렷다!"
아, 그렇습니다. 저승사자들도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고을에만 오면 사잣밥 상이 늘 텅텅 비어 있었으니까요. 밥은커녕 짚신 한 짝, 엽전 한 닢 남아 있질 않았지요. 저승사자들도 이승 길이 멀어 요기를 해야 하는데, 삼십 년을 그 고을에서만 쫄쫄 굶고 다녔던 겁니다. 오죽하면 저승 관아에서 이 고을을 두고 "밥 없는 고을"이라 불렀다지 뭡니까.
가운데 선 사자가 어이없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고을에 올 때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느냐. 상주가 정성껏 차렸다는 상에 가보면 밥그릇이 싹싹 긁혀 있고, 짚신 놓인 자리엔 흙 발자국만 있고. 처음엔 이 고을 인심이 그리 야박한 줄로만 알았다."
오른쪽 사자가 이를 부득 갈며 말했습니다. "네 이놈. 우리가 이 고을에 올 때마다 어찌나 배가 고팠는지 아느냐. 짚신이 다 해져 발이 부르텄어도 갈아 신을 것 하나 없었다. 이게 다 네놈 짓이었어!" 세 사자가 우르르 몰려들어 칠복이를 둘러쌌습니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지요.
헌데 이 칠복이 영감. 겁을 먹기는커녕 손사래를 치며 이럽니다. "아이고, 이 사람들. 죽은 사람 앞에서 밥 타령이 웬 말인가. 나도 이제 막 죽어서 정신이 없구먼." 그러곤 슬그머니 딴청을 피우는 겁니다. 세 사자가 기가 막혀 말문이 다 막혔지요.
가운데 사자가 겨우 숨을 고르고 말했습니다. "좋다. 여기서 따질 일이 아니다. 저승 관아로 가자. 염라대왕 앞에서 네 죄를 낱낱이 밝히겠다." 그 말에 칠복이 영감이 오히려 반색을 하는 겁니다. "허허, 잘됐네. 나도 그 어른 얼굴 한번 뵙고 싶었구먼. 자, 가세 가세."
세 사자가 어이가 없어 서로를 쳐다보았지요. 저승 관아에 끌려가면서 신나 하는 혼백은 삼백 년 만에 처음이었으니까요. 왼쪽 젊은 사자가 분해서 씩씩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저놈, 필시 지옥 맛을 못 봐서 저러는 게야. 어디 두고 보자."
그렇게 칠복이 영감은 저승사자 셋에 둘러싸여, 눈 내리는 움막을 떠나게 됩니다.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네 사람을 감쌌지요. 칠복이는 안개 속에서도 여전히 태평했습니다. 오히려 사자들에게 이런 말까지 붙였어요. "그나저나 자네들, 짚신은 좀 갈아 신었는가? 발 시리겠구먼." 사자들이 그 말에 더 열이 뻗쳤지요. 누구 때문에 못 갈아 신었는데 말입니다.
칠복이는 사라지기 직전, 문득 고개를 돌려 제 움막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그러곤 나직이 중얼거렸어요. '삼십 년 신세 졌구먼. 잘 있거라.' 그 목소리가 어쩐지 쓸쓸했지요. 그리고 다음 순간, 칠복이 영감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서슬 퍼런 저승 관아 앞에 서 있었더랍니다.
※ 3: 저승 관아의 소란
저승 관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잿빛 안개가 자욱한 뜰에, 하늘을 찌를 듯한 붉은 대문이 우뚝 섰지요. 문 안으로 들어서니 시퍼런 관복을 입은 저승사자들이 양옆으로 빽빽하게 도열해 있고, 그 한가운데 높다란 단상 위에. 진홍빛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이가 떡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부리부리한 눈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그야말로 위엄이 하늘을 찌르는 어른. 바로 염라대왕이었지요.
여느 혼백 같으면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려 벌벌 떨었을 겁니다. 그런데 칠복이 영감은요. 이 양반이 관아 안을 두리번두리번 구경을 하는 겁니다. 기둥도 만져보고, 천장도 올려다보고. 그러더니 감탄을 하며 이러지요. "허어, 저승 살림이 참 대궐 같구먼. 이런 데서 일하면 밥은 안 굶겠어."
가운데 사자가 기가 막혀 칠복이의 뒷덜미를 잡아챘습니다.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이를 놀리느냐!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칠복이가 못 이기는 척 무릎을 꿇었지요. 헌데 그러면서도 슬쩍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을 빤히 쳐다보는 겁니다. 아이고, 저 뻔뻔한 영감 좀 보세요.
세 사자가 앞으로 나와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이 늙은이는 삼십 년간 사잣밥을 훔쳐 먹은 죄인이옵니다. 산 사람이 저희를 위해 차려놓은 상을, 단 한 번도 남김없이 싹싹 비워 갔사옵니다. 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 노잣돈까지 몽땅요!"
왼쪽 젊은 사자가 억울해 죽겠다는 듯 목청을 높였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은 그 고을에 갈 때마다 굶었나이다! 이승 길이 멀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밥상이 매번 텅 비어 있으니 얼마나 서러웠겠나이까!" 오른쪽 사자도 질세라 제 발을 내밀며 아뢰었지요. "이것 좀 보시옵소서! 짚신이 다 해져 발가락이 다 나왔사옵니다! 이 모든 게 저 늙은이 짓이옵니다!"
관아 안이 웅성웅성했습니다. 도열해 있던 저승사자들도 저마다 수군거렸어요. "사잣밥을 삼십 년이나?" "저런 죄인은 처음 보네." "저건 뭐, 지옥행이 뻔하지." 다들 혀를 끌끌 차며 칠복이를 손가락질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지요.
염라대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칠복이라 하였느냐. 삼십 년간 사잣밥을 훔쳐 먹은 것이 사실이냐." 그 목소리가 천둥처럼 관아를 울렸습니다. 웬만한 혼백이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렸을 만한 위엄이었지요.
그런데 칠복이 영감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아주 태연하게 이러는 겁니다. "예, 사실이옵니다. 한 그릇도 안 남기고 싹싹 다 먹었나이다." 어이쿠, 이 영감이 아예 대놓고 인정을 해버립니다. 세 사자가 오히려 당황했지요. 보통은 발뺌부터 하고 보는 법인데 말입니다.
염라대왕의 눈썹이 꿈틀했습니다. "허어.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죄를 인정하면서 어찌 그리 떳떳하냐. 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러자 칠복이 영감이 기다렸다는 듯 무릎을 세우고 앉더니, 이렇게 되받아치는 겁니다.
"대왕마마. 소인이 여쭙겠나이다. 그 사잣밥, 소인이 안 먹었으면 어찌 되었겠나이까?" 염라대왕이 눈을 껌뻑였지요. "그야… 저 사자들이 먹었겠지." 칠복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아니옵니다. 여기 계신 사자님들께 여쭤보십시오. 살아생전 사잣밥을 잡숴본 적이 정말 있으신지."
세 사자가 흠칫했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했지요. 사실이 그랬거든요. 저승사자는 혼백이라 이승의 밥을 실제로 먹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정성을 받는 것이었으니까요. 상에 차린 밥은 그대로 남아 있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쉬어버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칠복이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밥, 사흘이면 쉬어 문드러집니다. 그럼 그걸 어찌하겠나이까. 개를 주거나 두엄에 버리지요. 산 사람이 정성 들여 지은 하얀 쌀밥을 말입니다!" 칠복이의 목소리가 관아에 쩌렁쩌렁 울렸어요. "소인은 그 밥을 감사히 먹었나이다. 한 톨도 안 버리고, 상 앞에서 절 한 번 하고 먹었나이다. 정성을 버리는 것과, 정성을 감사히 받는 것. 어느 쪽이 더 죄이겠나이까?"
와, 이거 참. 말문이 턱 막히는 소리 아닙니까. 저승사자 셋이 벙어리가 되어 서 있고, 도열한 사자들도 웅성거림을 뚝 그쳤습니다. 도둑놈 주제에 어찌 저리 말이 청산유수인지, 다들 얼떨떨했지요.
염라대왕이 한참을 말없이 칠복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곤 나직이 웃음을 흘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어, 이놈 봐라. 뻔뻔한 줄만 알았더니 제법 말재간이 있구나." 그러자 가운데 사자가 발끈해서 아뢰었지요. "대왕마마! 저놈의 말재간에 넘어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도둑질은 도둑질이옵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옳은 말이다.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남의 것에 손을 댄 것은 죄지." 그러곤 옆에 선 관리에게 명하였지요. "저놈의 저승 장부를 가져오너라. 삼십 년 죗값을 낱낱이 따져보겠다. 장부 앞에서는 그 어떤 말재간도 통하지 않을 터."
칠복이 영감이 그제야 조금 움찔했습니다. 아무리 말재간이 좋아도, 저승 장부 앞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윽고 저승사자 둘이 낑낑대며 커다란 장부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헌데 그 장부가 어찌나 두툼하던지, 웬만한 이불 두께만 했지요. 관아 안이 다시 술렁였습니다.
"허어, 죄가 얼마나 많길래 장부가 저리 두꺼운가." "저건 지옥 백 년 감이구먼." "아니, 사잣밥 훔친 것만으로 저리 두꺼울 리가 있나?" 다들 그리 수군거렸지요. 세 사자는 이제 됐다는 듯 흡족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 두툼한 장부를 받아 첫 장을 척 펼쳤습니다. 그러곤 눈으로 글자를 훑어 내려가는데. 어라. 염라대왕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부리부리하던 눈이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수염이 부르르 떨렸지요.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려 나왔습니다. 관아 안의 모든 이가 숨을 죽였지요. 그 두툼한 장부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 빼곡히 적혀 있었더랍니다.
※ 4: 장부에 적힌 것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염라대왕이 장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습니다. 관아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요. 저승사자 셋은 영문을 몰라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죄가 너무 많아서 저러시나?' 왼쪽 젊은 사자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흡족해했지요. 그런데 염라대왕의 다음 말이, 관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 장부에 적힌 것은… 죄가 아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들고 좌중을 둘러보았습니다. "공덕이다. 죄목은 딱 한 줄, 사잣밥을 취한 것뿐이고. 나머지 천 장이 죄다 공덕이야."
"예에?" 세 사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열해 있던 저승사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지요. "공덕이라니?" "저 도둑놈이?" "뭔가 잘못 적힌 것 아닌가?" 관아 안이 온통 시끌시끌해졌습니다. 정작 칠복이 영감은 무릎을 꿇은 채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어요. 저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얼굴로요.
염라대왕이 장부를 한 장 넘기며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무술년 삼월. 이 고을 아랫마을 최 서방 초상. 상여 멜 사람이 넷밖에 없어 새벽까지 발이 묶였는데, 칠복이가 나서서 상여채를 메었다. 십 리 산길을 맨발로 넘었다."
관아가 술렁였습니다. 염라대왕은 다음 장을 넘겼지요. "기해년 유월. 장맛비에 무덤이 무너져 관이 드러났는데, 상주가 타지에 있어 손쓸 이가 없었다. 칠복이가 사흘 밤낮 흙을 퍼 나르며 무덤을 다시 쌓았다."
또 한 장. "경자년 동짓달. 홀로 살던 노파가 죽었으나 염해줄 이가 없었다. 칠복이가 제 손으로 시신을 닦고 옷을 갈아입혀 곱게 뉘었다." 또 한 장. "신축년 정월. 어린아이가 죽어 상여도 못 나가는데, 칠복이가 지게에 지고 뒷산까지 올라 묻어주었다."
또 한 장을 넘겼습니다. "임인년 시월. 큰비에 개울이 넘쳐 상여가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칠복이가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 사흘을 서서, 사람들이 딛고 건널 징검돌을 하나하나 놓았다." 또 한 장. "계묘년 섣달. 상주가 어려 구덩이를 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칠복이가 언 땅을 곡괭이로 이틀 밤낮 찍어 자리를 냈다. 손이 다 갈라져 피가 흘렀다."
읽으면 읽을수록 관아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까까지 혀를 차던 저승사자들이 이제는 입을 다물었지요. 장부는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었습니다. 상여를 멘 것이 백 번이 넘고, 무덤을 손본 것이 이백 번이 넘고. 시신을 닦아준 것만 해도 수십 번이었어요. 염라대왕이 읽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소리 내어 읽기를 그만두고 말없이 장을 넘길 뿐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장부를 덮고 칠복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칠복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고 다녔느냐." 그러자 칠복이 영감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러는 겁니다. "아, 그거요? 그거야 밥값이지요."
"밥값?" 염라대왕이 되물었습니다. 칠복이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지요. "소인이 밥은 훔쳐 먹었어도, 거저 먹지는 않았나이다. 얻어먹었으면 갚는 게 사람 도리 아니겠나이까. 헌데 소인은 가진 게 없으니, 갚을 게 몸뚱이밖에 없었지요."
칠복이가 제 손을 펴 보였습니다. 굳은살이 두껍게 박이고 손톱이 죄다 갈라진, 험한 손이었습니다. "초상집이라는 게 참 손이 많이 갑니다. 상여 멜 사람도 있어야 하고, 구덩이 팔 사람도 있어야 하고. 헌데 다들 슬픔에 겨워 정신이 없으니, 그런 궂은일은 손이 모자라기 마련이지요. 소인은 어차피 갈 데도 없는 몸이니, 그 자리를 메웠을 뿐이옵니다."
칠복이가 껄껄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소인은 그 일이 싫지가 않았나이다. 남들은 궂은일이라 꺼리지만, 소인 같은 놈한테는 그게 유일하게 쓸모 있는 순간이었거든요. 상여채를 어깨에 메고 있으면, 그 짧은 동안만큼은 소인도 이 마을 사람 같았나이다."
가운데 사자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습니다. "허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모르지 않느냐. 다들 너를 도둑이라고만 알던데." 그 말에 칠복이가 껄껄 웃었습니다. "허허, 그야 밤에 했으니 모르지요."
"밤에?" "예. 상여야 대낮에 나가니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비쳤지만, 나머지 일은 죄다 밤에 했나이다." 칠복이가 태평하게 말을 이었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사잣밥 훔쳐 먹는 도둑놈이 낮에 얼쩡거리면 몽둥이질부터 당하지 않겠나이까. 그러니 사람들 다 자는 밤에 슬금슬금 나가서, 구덩이도 파고 흙도 나르고 했지요."
아, 그래서였습니다. 초상집 근처를 며칠씩 어슬렁거리던 그 이상한 버릇이요. 밥 훔쳐 먹고 튀지 않고 굼뜨게 남아 있던 그 까닭이요. 마을 사람들 눈에는 그저 또 뭘 훔쳐 갈까 싶어 어슬렁거리는 걸로 보였지만, 실은 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염라대왕이 나직이 물었습니다. "어찌 밝히지 않았느냐. 한마디만 했어도 손가락질은 면했을 것을." 칠복이 영감이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밝혀서 뭐 합니까. 밥값 갚는 걸 생색내면, 그게 밥값이겠나이까. 빚쟁이 노릇이지요." 그러곤 히죽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소인이 도둑질한 건 사실이니, 욕먹을 짓을 한 것도 사실 아니겠나이까. 욕은 욕대로 먹고, 갚을 건 갚고. 그게 셈이 맞지요."
관아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승사자들 중 몇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어요. 조금 전까지 이 늙은이를 손가락질하던 제 손이 부끄러웠던 겁니다. 왼쪽 젊은 사자는 아까 제가 내밀었던 해진 짚신을 슬며시 도포 자락 뒤로 감췄지요.
염라대왕이 장부를 다시 펼쳤습니다. "허나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이 장부의 뒷장이 더 두꺼워." 그러곤 뒷부분을 척 펼치는데, 거기엔 앞장과는 또 다른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벌어졌지요.
"뒷산 무덤 서른일곱 기…." 염라대왕이 그 대목을 읽다 말고 칠복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칠복이. 이 무덤들은 대체 무엇이냐." 그 물음에, 여태 태평하기만 하던 칠복이 영감의 얼굴이 처음으로 조금 굳었습니다. 그러곤 나직이 대답했지요. "아… 그건, 소인의 이웃들이옵니다."
※ 5: 뒷산의 무덤들
"이웃이라니. 네게 이웃이 있었더냐."
염라대왕이 되물었습니다. 칠복이 영감은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말이 없었지요.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마마. 세상에는 죽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사옵니다."
관아가 조용해졌습니다. 칠복이가 말을 이었지요. "떠돌이 거지, 병들어 쫓겨난 문둥이, 흉년에 팔려 가다 길에서 숨진 아이. 소인 같은 것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은 죽어도 초상집이 없나이다. 사잣밥은커녕, 시신을 거둬줄 사람조차 없지요. 길가에 그대로 며칠씩 뉘어져 있다가, 들짐승이 뜯어 가거나 관아에서 대충 구덩이에 던져 넣는 게 고작이옵니다."
칠복이의 목소리가 잠기었습니다. "소인이 젊었을 적에, 함께 떠돌던 늙은 거지가 하나 있었나이다. 소인에게 처음으로 밥을 나눠준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이 어느 겨울 다리 밑에서 죽었는데… 사흘을 그대로 있었나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아서요. 소인이 맨손으로 흙을 파서 묻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지요. 내 눈에 띄는 이런 사람만큼은, 내가 묻어주자고요."
관아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칠복이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지요. "그래서 뒷산에 자리를 하나 봐두었나이다. 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으로요. 그리고 삼십 년 동안, 연고 없는 시신이 나올 때마다 그리로 업어 올려서 묻었습니다. 서른일곱이 되더군요."
"서른일곱을… 혼자서?" 오른쪽 사자가 저도 모르게 물었습니다. 칠복이가 고개를 끄덕였지요. "예. 소인 혼자였나이다. 시신 하나 업고 산을 오르는 데 반나절, 구덩이 파는 데 하루. 늙어서는 사흘씩 걸리기도 했지요."
"그 짚신은…." 왼쪽 젊은 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네가 가져간 그 짚신은 어디에 썼느냐." 칠복이가 멋쩍게 웃었습니다. "아, 그거요. 그거야 죽은 이들 발에 신겨줬지요. 저승길이 험하다는데, 맨발로 어찌 가겠나이까." 그러곤 덧붙였습니다. "엽전도요. 소인이 노잣돈 삼아 그 사람들 손에 쥐여줬나이다."
젊은 사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습니다. 제가 그토록 억울해하며 내밀었던 해진 짚신. 그 짚신 세 켤레는 도둑맞은 게 아니라, 이승에서 가장 갈 곳 없는 이들의 발에 신겨져 있었던 겁니다. 노잣돈도 마찬가지였고요. 젊은 사자가 그만 고개를 푹 숙였지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관아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저승사자 하나가 다급히 달려와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저승 이곳저곳에서 혼백들이 관아 앞으로 몰려들고 있사옵니다! 하나같이 저 늙은이를 위해 증언하겠다 하옵니다!"
염라대왕이 눈썹을 치켜올렸습니다. "들이거라." 붉은 대문이 활짝 열리자, 혼백들이 줄지어 들어왔습니다. 하나같이 남루한 차림에, 이승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이들이었지요. 떠돌이 거지, 병들어 쫓겨난 이, 어린 나이에 길에서 숨진 아이. 서른일곱의 혼백이 관아를 가득 메웠습니다.
맨 앞에 선 늙은 혼백이 무릎을 꿇고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은 삼십 년 전, 다리 밑에서 죽은 거지이옵니다. 아무도 소인을 거두지 않았으나, 저 칠복이가 맨손으로 흙을 파서 묻어주었나이다. 그 덕에 소인이 짐승 밥이 되지 않고 저승에 들 수 있었나이다."
한 어린 혼백이 나서며 말했습니다. "저는 흉년에 팔려 가다 길에서 죽은 아이옵니다. 저 할아버지가 저를 등에 업고 산을 올라, 볕 잘 드는 자리에 묻어주셨어요. 흙을 덮으면서 자장가도 불러주셨어요." 그 말에 관아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또 한 혼백이 아뢰었지요. "대왕마마. 저 사람은 무덤을 만들어놓고 끝이 아니었나이다. 해마다 봄이면 올라와 풀을 베고, 가을이면 흙을 다져주었나이다. 삼십 년을 하루같이요. 제사 지내줄 자식 하나 없는 저희에게, 저 사람이 자식이자 상주였나이다."
한 여인의 혼백도 눈물을 훔치며 아뢰었습니다. "저는 병들어 마을에서 쫓겨나 산속에서 죽은 사람이옵니다. 아무도 제 곁에 오지 않으려 했는데, 저 어른만은 맨손으로 제 손을 잡아주셨나이다. 그러곤 이러셨지요. 혼자 가서 무섭겠구먼, 내가 여기까지 배웅함세, 하고요. 그 말 한마디에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나이다."
염라대왕이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부리부리하던 눈가가 어쩐지 촉촉해 보였지요. 저승을 다스린 세월이 수천 년이건만, 이승에서 가장 하찮게 여겨지던 자를 위해 이토록 많은 혼백이 제 발로 나서는 광경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정작 칠복이 영감은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이러는 겁니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그만들 하게. 내가 뭐 대단한 걸 했다고." 그러곤 염라대왕을 올려다보며 말했지요. "대왕마마. 소인은 상 받자고 한 일이 아니옵니다. 그저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안 거두면, 그게 너무 서러워 보여서 그랬을 뿐이옵니다."
칠복이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소인도 결국 저 사람들처럼 될 걸 알았거든요. 처자식도 없고 찾아올 이도 없으니, 소인이 죽으면 소인 시신도 저리 나뒹굴 것 아니겠나이까. 그러니 남 일 같지가 않았지요."
그 말에 관아 안이 숙연해졌습니다. 정말 그랬으니까요. 칠복이 영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시신을 거둬줄 사람 하나 없이 저 눈 덮인 움막에 홀로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칠복이." "예, 대왕마마." "네 죄를 묻겠다. 삼십 년간 사잣밥을 취한 것, 그것은 죄가 맞느냐?" 칠복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 죄가 맞나이다. 남의 상에 손을 댄 것이니, 어떤 변명도 없나이다. 벌을 내리시면 달게 받겠나이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엔 저승사자 셋을 향해 물었습니다. "너희 셋에게 묻겠다. 저 늙은이가 너희 밥과 짚신을 가져갔다. 너희는 저놈에게 어떤 벌을 내리기를 원하느냐." 세 사자가 흠칫하며 서로를 쳐다보았지요. 아까까지만 해도 이를 갈던 그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 6: 저승 관아의 말단 관리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까 해진 짚신을 내밀며 억울해하던 젊은 사자였습니다.
젊은 사자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이… 소인이 부끄럽나이다." 관아 안이 술렁였지요. 젊은 사자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을 이었습니다.
"소인은 저 늙은이가 제 짚신을 훔쳐 갔다고 삼십 년을 원망했나이다. 헌데 그 짚신은, 소인이 데려가야 할 혼백들의 발에 신겨져 있었나이다. 소인이 이승에 내려가 그 혼백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같이 새 짚신을 신고 있었지요. 소인은 그저 그 집안이 후하구나, 그리 여겼을 뿐이옵니다. 그것이 저 늙은이의 손에서 나온 줄은 꿈에도 몰랐나이다."
젊은 사자의 목소리가 젖어들었습니다. "소인이 편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늙은이 덕이었나이다. 헌데 소인은 밥 한 그릇 못 얻어먹었다고 저 사람을 도둑이라 불렀나이다. 벌을 내리신다면… 저 늙은이가 아니라 소인에게 내려주소서."
가운데 사자도 앞으로 나와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소인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소인이 그 고을에서 거둔 혼백들은 하나같이 편안한 낯이었나이다. 상여도 곱게 나가고, 무덤도 잘 다져져 있고. 그게 다 저 사람 하나가 밤마다 한 일이었다니…." 오른쪽 사자도 고개를 숙였지요.
칠복이 영감이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습니다. "허허, 이 사람들. 그러지 말게. 내가 자네들 밥 먹은 건 사실 아닌가. 도둑은 도둑이지." 그러곤 세 사자를 향해 넉살 좋게 이럽니다. "그러니 우리 이렇게 하세. 자네들이 삼십 년 굶은 값은, 내가 저승에서 갚음세. 어떤가?"
염라대왕이 그 말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허허허허!" 수염이 들썩이도록 시원하게 웃으셨지요. "이놈 봐라. 저승 관아 한복판에서 흥정을 하는구나. 삼백 년 만에 참으로 별난 놈을 보는구나!" 염라대왕의 웃음소리에 관아의 무겁던 공기가 확 풀렸습니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자,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관아 안의 모든 이가 숨을 죽였지요.
"첫째. 칠복이가 사잣밥을 취한 죄, 이는 분명한 죄다. 남의 상에 손을 댄 것이니 눈감아 줄 수 없다." 세 사자가 흠칫했습니다. "허나 둘째. 취한 것을 제 배만 불리는 데 쓰지 않고, 짚신과 노잣돈을 갈 곳 없는 혼백에게 되돌린 것. 그리고 삼십 년간 그 밥값을 제 몸으로 갚은 것. 이는 저승 장부 천 장을 채우고도 남는 공덕이다. 죄는 한 줄, 공덕은 천 장. 저승의 셈으로는 이미 갚고도 남았다. 하여 칠복이의 죄를 사하노라."
관아 안에 나직한 탄성이 퍼졌습니다. 서른일곱의 혼백들이 저마다 손뼉을 치며 기뻐했지요. 칠복이 영감은 어리둥절해서 눈만 껌뻑였습니다. '어? 지옥 안 가는 건가?'
"허나." 염라대왕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칠복이가 움찔했지요. 염라대왕이 칠복이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칠복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다시 이승에 태어나고 싶으냐. 아니면 좋은 곳에 환생하고 싶으냐. 무엇이든 말해 보아라."
칠복이 영감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은… 소인은 저 뒷산 무덤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옵니다. 봄이 오면 풀을 베어줘야 하는데, 이제 소인이 없으니 누가 하겠나이까. 소인이 환생을 하든 말든, 저 사람들 무덤에 풀만 무성해질 것 아니옵니까."
와, 이 영감. 저승 관아에서 죄를 사면받고도 남 무덤 걱정을 하는 겁니다. 염라대왕이 또 한 번 껄껄 웃으셨지요. "허허허! 참으로 딱한 놈이로다. 제 앞가림보다 남 무덤 풀이 먼저라니." 그러곤 무릎을 탁 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다. 그럼 아예 이 일을 네 벼슬로 삼거라." "예? 벼슬이라니요?" 칠복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지요. "칠복이. 오늘부터 너를 저승 관아의 말단 관리로 삼겠다. 맡을 자리는 이것이다. 이승에서 아무도 거두지 않은 혼백, 상주도 없고 제사도 없는 혼백. 그런 이들을 저승 문턱에서 맞아 배웅하는 자리다."
칠복이 영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소, 소인 같은 거지가 벼슬을요?"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삼십 년을 이승에서 해온 일이 아니냐. 그 일을 저승에서 이어 하거라. 이제는 훔치지 않아도 밥이 나오고, 짚신도 나올 것이다. 마음껏 나눠주거라."
칠복이 영감이 그제야 실감이 났는지,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깨가 들썩이는 겁니다. 삼십 년을 도둑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영감이, 처음으로 울고 있었지요. '평생 사람 취급도 못 받았는데… 이 늙은 거지한테 자리를 주시다니.'
그날부터 칠복이 영감은 저승 관아의 말단 관리가 되었습니다. 시퍼런 관복 대신 수수한 무명 관복을 입고, 저승 문턱에 서서 갈 곳 없는 혼백들을 맞이했지요. 이승에서 아무도 배웅해 주지 않은 이들이 저승 문에 들어서면, 칠복이가 제일 먼저 나가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더랍니다. "허허, 오느라 고생했네. 자, 밥부터 한술 뜨게."
세 저승사자와도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승에 내려갔다 오면, 칠복이가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지요. "자자, 짚신 갈아 신고 밥 드시게." 그러면 젊은 사자가 웃으며 이러는 겁니다. "어르신, 이건 훔쳐 온 밥 아니지요?" "이 사람이! 나 이제 벼슬아치일세!" 그러곤 넷이 껄껄 웃었다지 뭡니까.
그리고 이승에서는요. 그해 봄, 마을 사람들이 칠복이 영감의 시신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그 도둑놈이 죽었구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헌데 시신을 옮기러 뒷산에 올라갔다가,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볕 잘 드는 자리에 정갈하게 손질된 무덤 서른일곱 기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으니까요.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한 봉분들. 누군가 해마다 다듬어온 것이 분명한 그 무덤들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한참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조용히 입을 열었지요. "이게… 그 영감이 한 짓이여?"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둘 고개를 숙일 뿐이었지요.
그날 마을 사람들은 칠복이 영감의 상여를 손수 메었습니다. 삼십 년을 남의 상여만 메어준 영감이, 난생처음 상여에 실려 나가는 날이었지요. 그리고 그 무덤 서른일곱 기 옆에, 서른여덟 번째 무덤이 나란히 생겼습니다.
상여가 나가던 그날. 대문 밖에 차려진 사잣밥 상은, 웬일인지 저녁이 되도록 그대로 있었더랍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로요. 마을 사람들은 그 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지요.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상을 비워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유튜브 엔딩멘트 (244자)
자,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삼십 년을 도둑이라 손가락질받던 칠복이 영감이, 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이를 배웅해 준 사람이었다니. 참 뭉클하지 않으신가요. 세상은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저승의 셈은 늦을지언정 틀리는 법이 없다 하였지요. 오늘 우리가 남몰래 흘린 정성도, 언젠가 어딘가에 빠짐없이 적히고 있을 겁니다. 재미나게 들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꾹 눌러주시고요. 다음에 또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본 이야기는 사잣밥 풍습과 전통 저승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한 창작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