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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을 기다린 원혼의 재판 날
억울하게 우물에 던져진 처녀의 넋이 저승 문 앞에서 삼 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심판정에 섰다지요. 증인은 그날 밤 짖다 맞아 죽은 개였고, 대왕이 그 짖음을 알아들어 진범의 이름을 불렀더랍니다. 〈출처 계열: 계서야담·청구야담 계열〉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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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혼인을 사흘 앞둔 꽃다운 스무 살 처녀가 어느 비 오는 날 밤, 뒷마당 깊은 우물 속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도 모자라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더러운 누명까지 뒤집어썼지요. 갈 곳 잃은 처녀의 원혼은 저승 시왕전 문밖 차가운 돌계단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비를 맞으며 무려 삼 년의 세월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염라대왕의 특별 재판이 열리던 날, 법정에 들어선 유일한 목격자는 그날 밤 몽둥이에 맞아 죽은 누렁이 한 마리였는데요! 과연 염라대왕은 말 못 하는 짐승의 짖음 속에서 어떻게 진범의 이름을 찾아냈을까요? 하늘과 저승이 함께 울고 웃은 통쾌한 심판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혼인을 사흘 앞둔 비극의 밤과 짖다가 맞아 죽은 누렁이
조선 후기 충청도 청주 고을의 한적한 산자락 아래에, 비록 가세는 기울었으나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스무 살 처녀 옥단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옥단이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맑고 고왔을 뿐만 아니라 길쌈과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이웃 고을의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인 진 참판 댁의 막내아들 진현 도령과 혼담이 오가 마침내 사흘 뒤면 화촉을 밝히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월 초파일이 막 지난 어느 날 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억수 같은 봄비가 마당을 때리며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홀어머니는 아랫마을 친척 집에 혼수 비단을 빌리러 갔다가 비가 너무 거세져 돌아오지 못했고, 집 안에는 옥단이 혼자 호롱불을 켜놓고 신랑에게 선물할 비단 주머니에 마지막 원앙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오냐, 이제 매듭만 지으면 다 되는구나. 사흘 뒤면 그리운 도령님과 백년가약을 맺게 되니,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하늘에서 기뻐하시겠지."
옥단이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비단 주머니를 가슴에 품어보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마루 밑에서 비를 피하며 웅크리고 있던 이 집의 일곱 살 먹은 충견, 누렁이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더니 사립문 쪽을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워르르르! 멍! 멍멍!"
평소에는 동네 아이들이 꼬리를 잡아당겨도 순하게 눈만 껌뻑이던 누렁이가 이토록 사납게 짖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옥단이가 바늘을 내려놓고 방문을 조금 열어 마당을 내다보았을 때, 도롱이를 뒤집어쓴 건장한 사내 하나가 사립문을 발로 차고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누, 누구시옵니까? 이 밤중에 남의 집에는 어인 일로 오셨사옵니까?"
사내가 우산을 접고 삿갓을 벗자, 처마 밑 등불에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신랑 될 진현 도령의 사촌 형인 스물여덟 살 난봉꾼 진태수였습니다. 진태수는 평소에도 기방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남의 유부녀까지 건드리기로 악명 높은 자였는데, 지난번 납채를 보내던 날 사촌 동생의 신붓감인 옥단이의 눈부신 미모를 훔쳐보고는 흑심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사촌 아주버님이 아니시옵니까. 어머니께서는 마침 출타 중이시온데, 이 비 오는 밤에 무슨 급한 전갈이라도 있으신지요?"
옥단이가 예의를 갖추어 마루 아래로 내려서려 하자,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진태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신발을 신은 채로 단숨에 마루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흐흐흐, 어머님이 안 계신 줄 알고 내가 일부러 이 빗속을 뚫고 달려왔지. 아우님한테는 아까운 절세미인이야. 옥단아, 사흘 뒤에 내 동생 현이한테 시집가기 전에, 오늘 밤 이 형님하고 먼저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 내가 금가락지도 주고 비단옷도 열 벌은 사주마!"
"아, 아주버님! 이게 무슨 금수만도 못한 말씀이시옵니까! 소녀는 사흘 뒤면 아주버님의 아우님과 혼례를 올릴 사람이옵니다! 당장 이 손을 놓으시옵소서!"
진태수가 시커먼 손으로 옥단이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자, 옥단이는 기겁을 하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진태수가 강제로 옥단이의 무명 저고리 고름을 잡아당겨 찢으려던 절체절명의 순간, 마루 밑에서 짖어대던 누렁이가 총알처럼 튀어 올라 진태수의 종아리를 날카로운 이빨로 꽉 물어뜯었습니다.
"으아악! 이 미친 개새끼가 감히 양반의 다리를 물어? 이거 안 놔!"
진태수의 종아리에서 시뻘건 피가 솟구쳤으나, 누렁이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이빨을 놓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 틈에 옥단이는 진태수의 손을 뿌리치고 마당 뒤편의 우물가 쪽으로 맨발로 도망치며 사람 살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옥단이의 비명은 산골짜기 어둠 속으로 허망하게 묻혀버렸습니다. 눈이 뒤집힌 진태수는 부엌 아궁이 옆에 놓여 있던 굵은 참나무 장작개비를 집어 들더니, 자기 다리를 물고 있는 누렁이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렁이가 피를 흘리며 마당 진흙탕 위로 나동그라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누렁이는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뒷다리를 질질 끌며 우물가로 도망치는 옥단이의 치맛자락 쪽으로 기어갔습니다.
"이 고얀 년! 내 오늘 밤 기어이 네년의 정절을 꺾어놓고 말겠다!"
진태수가 장작개비를 던지고 우물가로 달려가 옥단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습니다. 옥단이는 우물 난간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자기 머리에 꽂혀 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인 '매화 조각 청옥 비녀'를 뽑아 들어 진태수의 오른쪽 손등을 힘껏 찔렀습니다.
"크아악! 이 독사 같은 년이 내 손등에 구멍을 내? 이 사실이 내 동생 현이와 집안 어른들 귀에 들어가면 내 벼슬길은 끝장이다! 에라, 죽어라!"
손등에서 피가 쏟아지고 옥비녀 끝이 부러져 살 속에 박히자, 이성을 잃은 진태수는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여 옥단이의 가슴을 두 손으로 힘껏 밀어 뒤뜰의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아악! 어머니!"
풍덩! 하는 물소리와 함께 스무 살 꽃다운 처녀 옥단이는 차갑고 깊은 우물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옥단이의 손에는 부러진 청옥 비녀의 나머지 반쪽이 굳게 쥐여 있었습니다.
우물 밖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누렁이가 우물 난간을 앞발로 긁으며, 진태수를 향해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세 번을 구슬프게 짖었습니다.
"멍! 멍! 멍... 끼잉..."
"시끄럽다, 이 축생 놈아! 죽으려거든 저년하고 같이 뒈져라!"
진태수는 장작개비로 누렁이의 목을 한 번 더 내리쳐 숨을 완전히 끊어놓은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자기가 흘린 핏자국을 빗물로 씻어내고는 어둠 속으로 도망쳐 사라졌습니다.
※ 2: 더러운 누명을 쓴 주검과 저승 문밖에서 시작된 삼 년의 기다림
이튿날 아침, 비가 그치고 집으로 돌아온 옥단이의 홀어머니는 마당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누렁이와 우물 속에 떠올라 있는 외동딸 옥단이의 싸늘한 시신을 발견하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통곡을 터뜨렸습니다.
"아이고, 내 딸 옥단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사흘 뒤면 시집갈 내 새끼가 어찌하여 이 차가운 우물 속에서 죽었단 말이냐! 눈 좀 떠보거라, 옥단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신랑 진현 도령 또한 옥단이의 주검을 부둥켜안고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손등에 붕대를 감은 진태수가 마을 사람들과 관아의 포졸들을 데리고 나타나더니 짐짓 점잖은 체하며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아우야, 참으로 기가 막히고 통탄할 노릇이다마는,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거라. 실은 내가 어젯밤 늦게 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웬 건장한 외간 사내 놈이 이 집 담장을 넘어 도망치고 있더구나! 내가 수상하여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니, 글쎄 저 옥단이란 년이 혼인을 사흘 앞두고 옛 정인(情人)과 방 안에서 음란한 짓을 벌이다가 들키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진 것이 아니겠느냐! 저 개도 도망치는 간부 놈한테 맞아 죽은 것이 분명하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옥단 낭자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미련한 아우야! 저년의 풀어헤쳐진 저고리 고름을 보고도 모르겠느냐! 우리 진 참판 가문의 체면이 걸린 일이다. 저런 행실이 부정한 계집이 우리 가문에 들어오기 전에 자결한 것이 천만다행이니, 당장 파혼하고 돌아가자!"
진태수의 새빨간 거짓말에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관아의 아전들마저 진 참판 댁의 권세에 눌려 제대로 된 검시조차 하지 않은 채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다 수치심에 자결한 사건'으로 덮어버렸습니다.
옥단이의 홀어머니는 딸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충격으로 두 눈이 멀어버렸고, 옥단이의 시신은 가문과 마을을 더럽힌 죄인이라 하여 공동묘지 구석에 봉분도 없이 초라하게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육신을 벗어난 옥단이의 혼백은 자신의 무덤 앞에서 피가 섞인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의 발치에는 머리통이 깨진 채로 주인을 따라나선 충견 누렁이의 혼령이 낑낑거리며 옥단이의 치맛자락을 핥아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도령님... 소녀는 결코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사옵니다. 저 천인공노할 진태수 놈이 소녀를 욕보이려다 우물에 던져 죽이고, 우리 불쌍한 누렁이마저 때려죽였건만, 어찌하여 산 자들의 법정은 악인의 거짓말만 믿고 소녀에게 이토록 더러운 누명을 씌운단 말이옵니까!'
잠시 후, 망자를 인도하는 저승 차사가 나타나 옥단이에게 황천길로 가자고 손짓했습니다.
"처녀야, 네 사연이 참으로 기구하나 이미 이승의 인연은 끝났으니 나를 따라 저승으로 가자꾸나. 너는 생전에 효심이 깊고 죄가 없으니 심판 없이 곧장 극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옥단이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피투성이가 된 누렁이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
"차사 어른, 소녀는 이 더러운 누명을 쓴 채로는 결코 극락에 갈 수 없사옵니다. 이승의 원님이 권세에 눈이 멀어 소녀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니, 소녀는 저승의 염라대왕마마를 직접 뵙고 저 악독한 진태수 놈을 법정에 세워 심판을 받게 할 것이옵니다!"
"이 어리석은 처녀야, 염라대왕께서는 하루에도 수만 명의 망자를 심판하시느라 바쁘신 분이다. 게다가 너를 죽인 진태수란 놈은 타고난 수명이 아직 사십 년이나 남아 있어, 그놈이 죽어서 저승에 오기 전에는 대질 심판을 할 수가 없느니라!"
"사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이 걸린다 해도 좋사옵니다! 산 자의 죄를 물을 수 없다면, 소녀가 염라대왕마마의 시왕전 문밖 돌계단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왕마마께서 소녀의 재판을 열어주실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릴 것이옵니다!"
옥단이의 서릿발 같은 결기에 저승 차사도 더는 말리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저승의 최고 법정인 시왕전 대문 밖, 차갑고 거친 흑석(黑石) 계단 위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 하나와 다리 부러진 누렁이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앉아 밤낮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저승의 모진 칼바람이 불어와 살을 에고, 얼음 우박이 쏟아져 내려도 옥단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습니다. 무릎 밑의 돌계단이 패어 구멍이 나고 소복 자락이 다 닳아 해졌으나, 옥단이와 누렁이는 오직 억울한 누명을 벗고 눈먼 어머니의 한을 풀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려 삼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버텨내었습니다.
※ 3: 뻔뻔한 살인자의 출세와 삼 년 만에 열린 시왕전의 문
옥단이가 저승 문밖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삼 년을 기다리는 동안, 이승에서의 진태수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떵떵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촌 동생 진현 도령이 옥단이를 잊지 못해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으며 과거 시험마저 포기한 것과 달리, 진태수는 집안의 재력을 등에 업고 시험관에게 뒷돈을 써서 문과에 급제하더니, 마침내 그해 봄에 이웃 고을의 신임 현감(사또)으로 임명되는 출세를 거머쥐었던 것입니다.
진태수가 비단 관복을 차려입고 어사화를 꽂은 채 고을로 금의환향하던 날, 진 참판 댁 대저택에서는 사흘 밤낮으로 화려한 축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마당에는 기생들이 춤을 추고 상다리 부러지게 산해진미와 고기가 차려졌는데, 대문 밖 길가에서는 두 눈이 먼 옥단이의 홀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서서 구걸을 하다가 진태수의 하인들에게 발길질을 당해 진흙탕에 쓰러졌습니다.
"에이, 재수 없게시리! 우리 태수 나리께서 현감 사또로 부임하시는 경사스러운 날에, 어디서 부정 탄 딸년을 둔 소경 거지 할망구가 대문 앞을 얼씬거리는 거야! 썩 꺼지지 못해!"
대청마루에서 술잔을 들고 있던 진태수는 쓰러진 옥단이의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껄껄 웃었습니다.
"하하하! 여봐라, 오늘 같은 좋은 날에 개 잡듯이 때리면 쓰느냐. 부엌에 가서 개들이 먹다 남긴 돼지 뼈다귀나 하나 던져주고 저 산 밑으로 쫓아버려라!"
진태수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자기가 오른손으로 잔을 쥐는 순간, 그의 오른쪽 손등 한가운데에 삼 년 전 옥단이의 청옥 비녀에 찔려 깊게 파인 흉터가 검붉게 꿈틀거렸습니다. 그는 손등을 한번 긁적이며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흥, 옥단이 그 어리석은 년. 저승에 가서 원귀가 되어 내 목을 조르러 올 줄 알았더니, 삼 년이 지나도록 쥐뿔도 아무 일 없구나!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도 다 옛말이야, 권세 있고 돈 있으면 살인을 해도 사또가 되는 것이 이 세상 이치지!'
바로 그 시각, 저승의 시왕전 안에서는 천지가 진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옥단이가 시왕전 문밖 돌계단에 무릎을 꿇은 지 꼭 삼 년이 되는 천 일째 날이었습니다. 옥단이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이 돌계단을 적시고 시왕전 마당을 가로질러, 마침내 염라대왕이 앉아 있는 옥좌 아래까지 붉은 실개천처럼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동시에 시왕전 문밖에서 옥단이를 지키고 앉아 있던 충견 누렁이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목청껏 길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토해냈습니다.
"워어어어어우우우우—!"
그 소리가 어찌나 애절하고 처절했던지, 시왕전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천 년 묵은 청동 풍경들이 일제히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고, 저승의 하늘에서 시뻘건 마른벼락이 쾅! 하고 내리쳤습니다.
명부를 살피던 염라대왕이 깜짝 놀라 붓을 멈추고 발밑으로 흘러든 붉은 피눈물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최 판관! 지금 내 발밑을 적시는 이 뜨거운 피눈물과, 시왕전 기둥을 흔드는 저 처절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대체 무엇인가!"
최 판관이 황급히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으고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시왕전 대문 밖 돌계단에 이승 청주 고을에서 올라온 스무 살 처녀 옥단의 원혼과 그녀가 기르던 개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사옵니다. 강간을 피하려다 우물에 던져져 살해당하고도 음탕한 계집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는데, 진범인 자의 수명이 남아 있어 심판을 받을 수 없다 하자, 대왕마마께서 특별 재판을 열어주실 때까지 극락도 마다하고 오늘로 꼭 삼 년, 천 일 동안 저 자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버티고 있는 것이옵니다!"
염라대왕의 두 눈이 호랑이처럼 크게 떠지며 수염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무엇이라? 죄 없는 처녀가 살해당하고 더러운 누명까지 썼는데, 진범의 수명이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시왕전 문밖에서 삼 년 동안이나 눈비를 맞으며 울고 있었단 말이냐! 게다가 말 못 하는 미물인 개까지 주인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삼 년을 함께 굶으며 버텼다고?"
염라대왕은 옥좌의 팔걸이를 부서져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명부의 법도가 아무리 엄중하다 한들, 그 법도가 억울한 양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살아 있는 악인의 방패막이가 된다면 그것이 어찌 하늘의 법도란 말이냐! 여봐라, 시왕전의 대문을 활짝 열어라! 오늘 이 염라가 삼 년을 기다린 저 가엾은 처녀와 충견을 위해, 저승 개벽 이래 처음으로 '산 자를 끌어오는 특별 심판정'을 열 것이니라!"
끼이이익— 쾅!
삼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시왕전의 거대한 황금 대문이 마침내 양옆으로 활짝 열렸습니다.
※ 4: 이승에서 불려 온 산 자의 혼백과 증인으로 나선 충견의 절규
시왕전 안으로 들어선 옥단이는 해진 소복 자락을 여미며 염라대왕 앞에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올렸고, 그 옆에 선 누렁이 또한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염라대왕은 무릎이 다 닳아 피가 맺힌 옥단이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연민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가엾은지고! 꽃다운 나이에 원통하게 목숨을 잃고도, 어미의 눈물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삼 년 세월을 차가운 돌 위에서 견뎌냈구나. 옥단아, 내 오늘 네 원한을 낱낱이 풀어줄 것이니, 너를 죽인 원수가 누구인지 그 이름을 말해보거라!"
"대왕마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녀를 우물에 던져 죽이고 음행의 누명을 씌운 자는, 소녀의 정혼자였던 진현 도령의 사촌 형인 '진태수'라는 자이옵니다! 그자는 지금 이승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현감 사또가 되었다며 잔치를 벌이고 있사오며, 소녀의 어머님은 그 집 대문 밖에서 눈이 먼 채 매를 맞고 쓰러져 계시옵니다!"
"그 말이 참말이냐! 강림 차사는 듣거라!"
"예, 대왕마마!"
수석 저승사자 강림이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섰습니다. 염라대왕은 붉은 호령패를 바닥에 내던지며 추상같은 어명을 내렸습니다.
"지금 당장 이승의 청주 고을 진 참판 댁으로 날아가서, 잔치판에서 술을 처먹고 있는 현감 진태수란 놈의 모가지를 쇠사슬로 묶어 그 생령(生靈)을 이 시왕전 심판대 앞으로 끌어오너라! 비록 아직 수명이 남았으나, 내 직권으로 산 자의 혼을 먼저 뽑아 심판할 것이다!"
"존명!"
강림 사자가 번개처럼 사라진 지 불과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시왕전 마당으로 시커먼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더니 비단 관복에 어사화를 꽂은 진태수의 혼백이 쇠사슬에 개처럼 묶여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승의 잔칫상에서 한창 기생의 무릎을 베고 술을 마시던 진태수는, 눈을 떠보니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는 무시무시한 저승 법정이자 자기 눈앞에 삼 년 전 우물에 던져 죽인 옥단이와 맞아 죽은 누렁이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기절초풍하여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으, 으아악! 귀, 귀신이다! 옥단이 네년이 왜 여기에 있어! 아니, 나는 아직 죽지 않았는데 여기가 어디란 말이냐!"
높은 옥좌 위에서 염라대왕이 벼락같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네 이놈, 진태수야! 이곳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모든 죄를 심판하는 저승의 시왕전이며, 나는 염라대왕이니라! 네놈이 삼 년 전 사월 초구일 밤, 사촌 동생의 정혼자인 저 옥단이를 겁탈하려다 실패하자 산 채로 우물에 던져 죽이고, 오히려 외간 남자와 간통하다 자결했다고 거짓 소문을 내어 두 집안을 파탄 낸 죄가렷다! 네 죄를 순순히 자백하겠느냐!"
그러나 진태수는 본래 간교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습니다. 이승에서 법전을 공부해 현감까지 된 놈이라, 저승에서도 물증과 증인이 없으면 함부로 벌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 눈알을 굴리며 오리발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지금 나라의 녹을 먹는 현직 현감이옵니다! 저 옥단이란 계집이 저승에 와서까지 미쳐서 모함을 하는 것이옵니다. 그날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고, 소인이 저 계집을 우물에 밀었다는 것을 본 사람도 없사온데, 어찌 죽은 귀신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산 사람을 벌하려 하시옵니까! 목격자가 있다면 어디 데려와 보시옵소서!"
진태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발악하자, 옥단이가 분통이 터져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천벌을 받을 놈아! 하늘이 보셨고 땅이 알고 있는데 목격자가 없다니!"
바로 그때였습니다. 옥단이의 옆에 웅크리고 있던 충견 누렁이가 털을 바짝 세우며 앞으로 성큼 걸어 나오더니, 진태수의 코앞에 서서 시퍼런 이빨을 드러내고 사납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워르르르—! 멍! 멍! 멍! 깨갱, 워우우우!"
진태수는 자기가 장작개비로 머리를 때려죽인 개가 눈앞에서 짖어대자 소름이 끼쳐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애써 비웃음을 지으며 소리쳤습니다.
"하! 고작 데려온 목격자라는 것이 말도 못 하는 미물인 개새끼 한 마리란 말이냐! 개가 짖는 소리가 무슨 증거가 된단 말이더냐, 멍멍거리는 소리를 누가 알아듣는단 말이냐!"
※ 5: 개의 말을 알아들은 염라대왕과 업경대에 비친 결정적 물증
진태수가 기고만장하여 날뛰자, 옥좌에서 조용히 누렁이의 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염라대왕의 입가에 서늘하고도 준엄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아! 이승의 귀 어두운 원님들은 말 못 하는 짐승의 울부짖음을 그저 소음으로 듣겠지만, 천지 만물의 소리를 다스리는 이 염라의 귀에는 저 충견의 짖음이 그 어떤 판서의 상소문보다도 또렷하게 들리느니라!"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누렁이를 가리키며 시왕전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통역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듣거라! 방금 저 개가 세 번 크게 짖고 한 번 신음하며 길게 운 것은, 그날 밤의 진실을 고스란히 증언한 것이다! 첫 번째 '멍!' 하고 짖은 것은 '참판 댁 조카 진태수가 비 오는 밤에 담을 넘어 들어와 내 주인 아씨의 옷고름을 찢었다!'라는 말이요!"
진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염라대왕이 말을 이었습니다.
"두 번째 '멍!' 하고 짖은 것은 '내가 주인을 구하려고 진태수 놈의 왼쪽 종아리를 물어뜯자, 그놈이 부엌 장작개비로 내 머리를 쳐서 죽였다!'라는 말이요! 세 번째 '멍!' 하고 짖고 길게 운 것은 '내 주인 아씨가 머리에 꽂았던 매화 청옥 비녀로 진태수 놈의 오른쪽 손등을 찌르자, 그놈이 아씨를 우물에 던져 넣고 비녀 끝이 박힌 손등을 부여잡고 도망쳤다!'라고 또렷이 범인의 이름과 증거를 대고 있느니라!"
염라대왕의 신통한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렁이가 "멍!" 하고 한 번 더 짖으며 염라대왕을 향해 앞발을 굽혀 절을 올렸습니다.
"거, 거짓말이다! 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다 지어낸 이야기다!"
진태수가 발악하며 오른손을 등 뒤로 감추려 하자, 염라대왕이 호통을 쳤습니다.
"나찰들은 당장 저놈의 왼쪽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등 뒤로 감춘 오른손을 펴서 대령하라! 그리고 최 판관은 업경대(業鏡臺)를 비추어 청주 고을 옥단이네 집 우물 바닥을 만천하에 드러내어라!"
우락부락한 마두(馬頭) 나찰들이 달려들어 진태수의 비단 바지를 찢어 올리자, 그의 왼쪽 종아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개의 이빨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어 강제로 펴 보인 오른쪽 손등 한가운데에는, 살 속에 파랗게 박혀 아문 청옥 조각과 깊은 흉터가 시퍼렇게 박혀 있었습니다!
동시에 시왕전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거울 업경대에 푸른빛이 돌더니, 삼 년 전 그날 밤의 참혹한 살인 현장이 소리까지 생생하게 재현되었고, 이어서 지금 현재 우물 바닥 깊은 진흙 속에 묻혀 있는 '끝이 부러진 매화 문양 청옥 비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습니다.
"보아라, 이 천인공노할 살인마야! 네 손등의 살을 째서 그 안에 박힌 옥 조각을 꺼내어, 저 우물 바닥에 있는 옥단이의 부러진 비녀와 맞춰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을 것이다! 이래도 네놈이 죄를 부인하겠느냐!"
결정적인 물증과 업경대의 영상 앞에 진태수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자, 그제야 사시나무 떨듯 떨며 바닥에 이마를 찧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그날 밤 술에 취해 마가 끼어 그만 옥단이를 우물에 밀어 넣고 거짓말을 하였사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이승으로 돌아가 제 전 재산을 옥단이네 어미에게 바치고 평생 종노릇을 하겠사옵니다!"
"어림없는 소리! 삼 년 동안 죄 없는 처녀의 혼백이 차가운 돌계단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눈먼 노모가 네놈의 집 대문 앞에서 매를 맞을 때 네놈은 기생을 끼고 앉아 개 뼈다귀나 던져주라 비웃지 않았더냐! 너 같은 악귀 같은 놈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사치니라!"
염라대왕은 붓을 들어 판결문에 붉은 글씨를 내리썼습니다.
"죄인 진태수는 지금 즉시 이승의 잔칫상에서 스스로 모든 죄를 실토하고 혀를 깨물어 급살을 맞게 한 뒤, 그 혼백은 영원히 끓는 가마솥과 얼음 구덩이를 오가는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에 처넣어 만 겁의 세월 동안 고통받게 하라!"
그리하여 진태수가 지옥 옥졸들에게 끌려 나가자, 염라대왕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옥단이와 누렁이를 따뜻하게 내려다보며 놀라운 두 번째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옥단이와 충견 누렁이는 듣거라! 옥단이는 본래 이승에서 아흔 살까지 살며 정숙한 부인이 되어 오복을 누릴 명이었으나 악인의 손에 억울하게 끊겼고, 삼 년 동안 어미의 한을 풀기 위해 극락도 마다한 그 효심과 절개가 하늘을 감동시켰다. 비록 죽은 지 삼 년이 지났으나, 내가 저승의 생명꽃인 '환생 연꽃'의 기운으로 우물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네 육신을 삼 년 전 스무 살의 모습 그대로 온전히 보존해 두었느니라! 이제 누명을 벗었으니, 네 충견 누렁이와 함께 다시 이승의 몸으로 돌아가 눈먼 어미의 눈을 뜨게 하고, 너를 삼 년 동안 수절하며 기다리고 있는 정혼자 진현 도령과 혼인하여 못다 한 백년해로를 누리도록 하라!"
※ 6: 이승으로 돌아온 두 원혼의 기적과 꽃길로 바뀐 인연
같은 시각, 이승의 청주 고을 진 참판 댁 잔치 마당에서는 사상 초유의 기괴하고도 무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생의 무릎을 베고 잠시 조는 듯하던 신임 현감 진태수가 갑자기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사람처럼 자기 손등의 살을 손톱으로 쥐어뜯어 피를 흘리며 마당 한가운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으아악! 내가 죽였다! 삼 년 전 사월 초구일 밤에 내가 옥단이를 겁탈하려다 우물에 밀어 죽이고, 누렁이를 장작으로 때려죽였다!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말은 내 죄를 덮으려고 지어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 손등에 옥단이 비녀 조각이 박혀 있고, 옥단이네 우물 바닥에 부러진 청옥 비녀가 묻혀 있다! 대왕마마,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컥!"
진태수는 수백 명의 하객과 고을 원님, 그리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모든 살인 행각과 무고죄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스스로 자백하더니, 시커먼 피를 한 사발 토해내고는 그 자리에서 목이 꺾여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잔치 마당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초상집으로 변했습니다. 자리에 참석했던 청주 목사와 관아 포졸들이 즉시 옥단이네 집으로 달려가 우물 물을 퍼내고 바닥을 뒤져보니, 진태수가 죽기 직전 외쳤던 그대로 끝이 부러진 매화 문양 청옥 비녀가 나왔고, 진태수의 시신 손등에서 꺼낸 옥 조각과 맞추어보니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세상에! 진태수 저 천하의 몹쓸 놈이 사촌 동생의 신붓감을 죽여놓고 거짓 누명까지 씌웠던 것이로구나! 하늘이 무섭지도 않았던가!"
"옥단 처녀는 끝까지 정절을 지키다 죽은 열녀 중의 열녀였어!"
진실이 만천하에 밝혀지자, 상사병으로 누워 있던 신랑 진현 도령과 눈먼 옥단이의 어머니는 공동묘지 구석에 묻힌 옥단이의 초라한 무덤으로 달려가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청주 목사는 즉시 옥단이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양지바른 명당에 열녀비를 세워 새로 장례를 치러주기로 하여, 일꾼들을 시켜 무덤을 파헤쳤습니다.
그런데 무덤 속의 낡은 나무 관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삼 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백골이 되어 있어야 할 관 속에, 놀랍게도 옥단이가 마치 방금 낮잠이 든 것처럼 발그레한 뺨과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한 채 조금도 상하지 않은 온전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관 속에서는 썩은 냄새 대신 향기로운 연꽃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내려오며 따스한 햇살이 옥단이의 얼굴을 비추자, 옥단이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침내 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어... 어머니... 도령님..."
"옥단아! 아아, 옥단아! 네가 살아났구나! 하늘이 도우시어 내 딸이 살아 돌아왔구나!"
딸의 목소리를 들은 홀어머니가 옥단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순간, 옥단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저승 연꽃의 영험한 기운이 어머니의 눈을 스치자, 삼 년 동안 굳게 감겨 있던 어머니의 두 눈이 거짓말처럼 번쩍 떠지며 밝은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기적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무덤 옆 풀숲에 묻어주었던 충견 누렁이의 작은 무덤에서도 흙이 들썩거리더니, 다리와 머리가 말끔히 나아 황금빛 털이 윤기 나게 빛나는 누렁이가 "멍! 멍!" 하고 힘차게 짖으며 꼬리를 흔들며 튀어 나와 옥단이의 품으로 안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이시여, 염라대왕께서 억울한 원혼의 재판을 열어주시어 죽은 사람과 충견까지 살려 돌려보내셨도다! 만세! 만세!"
청주 목사와 온 고을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소식은 곧장 한양의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대역죄인 진태수의 모든 재산과 기와집, 그리고 논밭 삼천 마지기를 몰수하여 억울한 고초를 겪은 옥단이네 집에 위자료로 하사하였고, 삼 년 동안 옥단이를 잊지 않고 순정을 지킨 진현 도령에게는 특별히 정육품 좌랑 벼슬을 내려주었습니다.
그해 가을, 청주 고을에서는 삼 년 전에 치르지 못했던 옥단이와 진현 도령의 성대한 혼례식이 열렸습니다. 연분홍 활옷을 입고 매화 청옥 비녀를 꽂은 신부 옥단이의 가마 앞에는, 비단으로 만든 꽃 목걸이를 건 충견 누렁이가 늠름하게 앞장을 서서 걸어갔습니다.
저승 문밖에서 삼 년을 기다려 진실을 밝혀낸 처녀와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충견 누렁이. 다시 이승의 봄날을 되찾은 이들은 눈을 뜬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딸 오 남매를 낳아 기르며, 백세까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만수무강을 누렸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저승 시왕전 문밖에서 삼 년 동안 눈비를 맞으며 기다렸던 옥단이와, 끝까지 주인의 곁을 지킨 충견 누렁이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말 못 하는 짐승의 울부짖음까지 귀 기울여 들어준 염라대왕의 명판결 덕분에, 악인은 벌을 받고 착한 이들은 다시 살아나 백년해로를 누렸다는 참으로 통쾌하고도 눈물겨운 옛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큰 울림과 재미를 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꼭 눌러주시고요. 여러분의 따뜻한 감상도 댓글로 많이 남겨주세요. 저는 다음 시간에도 더욱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