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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끌고 저승에 온 농부

by K sunny 2026.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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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끌고 저승에 온 농부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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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단언형 / 270자)

저승사자가 사람을 데리러 왔다가 짐승 앞에 무릎을 꿇은 일이 조선 천지에 한 번 있었으니, 바로 충청도 김 서방의 마당에서 일어난 일이외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처자식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황소의 빈 여물통이 마음에 걸렸던 한 농부, 그리고 십수 년을 한결같이 그를 따랐던 누런 황소 한 마리. 두 생명이 마지막 새벽 마당에서 마주 섰을 때, 명부에 적힌 자정의 시각마저 멈춰 서고 말았던 것이외다. 청구야담에 전하는 이 기이하고도 따스한 인연의 사연을 지금부터 들려드리리다.

※ 1: 평범한 어느 늦가을 저녁 찾아온 한기와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

조선 영조 무렵, 충청도 어느 산골 마을에 김 서방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나이는 쉰을 갓 넘겼고, 슬하에 자식 셋을 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비탈진 밭 두어 마지기와 오래된 초가집 한 채, 그리고 십수 년을 함께 일해 온 누런 황소 한 마리가 전부였다.

김 서방은 그 황소를 자식보다 더 아꼈다. 새벽이면 누구보다 먼저 외양간으로 나가 여물을 챙겼고, 밤이면 외양간 곁에 등잔불을 두고 소가 편히 잠드는지를 살핀 후에야 자기 잠자리에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김 서방을 보고 혀를 차곤 했다.

"저 사람, 처자식한테 들이는 정성보다 황소한테 들이는 정성이 더 많네그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 황소가 십수 년을 한결같이 김 서방 일손을 도왔으니, 사람보다 더 사람 같지 않겠는가."

『청구야담』의 옛 기록에 이르기를, 사람이 짐승을 사람처럼 대할 줄 알면 그 짐승은 짐승의 도리를 넘어선다 하였다. 김 서방의 황소가 바로 그러한 짐승이었다. 밭을 갈 때면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우는 법이 없었고, 김 서방이 점심을 먹을 때면 곁에 가만히 엎드려 그를 지켰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김 서방이 먼저 자기 등에 도롱이를 걸쳐 주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도롱이를 걸치면 그제야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저녁이었다. 김 서방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상을 받았는데, 도무지 수저를 들 기력이 없었다.

"어머, 영감. 어디 편찮으세요? 오늘따라 안색이 영 좋질 않으십니다."

"…글쎄, 별일은 아닌데.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고 손끝이 시리네그려."

김 서방은 저녁을 거른 채 일찍 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지만 열은 없었다. 다만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잠든 김 서방의 머리맡에서 바람도 없이 등잔불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방 안 한구석이 갑자기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김 서방은 잠결에 한기를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방 한쪽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 하나가 가만히 서 있었다. 갓을 깊이 눌러쓴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 눈만이 깊은 우물처럼 맑고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김 서방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곁에 잠든 아내의 숨소리는 그대로였다. 마치 방 안에 두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뉘시오. 이 야심한 시각에 남의 방에 들어와 무슨 일이오."

"놀라지 마시오, 김 서방. 나는 사람이 아니외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그대를 모시러 온 저승사자라 하오. 그대의 이승 명부가 오늘 밤 자정으로 끝나게 되어 있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오."

김 서방은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는 묘한 체념이 먼저 찾아왔다.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한평생 가난하게 살았어도 남에게 못 할 짓 한 번 한 적 없이 살아왔으니, 가는 길이 그리 두렵지는 않다. 다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김 서방의 시선이 저절로 외양간 쪽 창문으로 향했다.

※ 2: 한 시진의 청과 외양간에서의 마지막 작별, 황소가 저승사자에게 다가가 코를 비비는 기이한 광경

"저승사자님, 한 가지만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청이라니, 무엇이오. 다만 명부에 적힌 시각은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너무 큰 청은 들어드리기 어렵소."

"큰 청이 아닙니다. 다만 한 시진, 두 시간만 시간을 주시지요. 우리 황소에게 마지막 여물을 한 번만 먹이고 가고 싶습니다."

저승사자는 깊이 눌러쓴 갓 아래로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사람을 데리러 온 자리에서 별의별 부탁을 다 들어 봤지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자기 처자식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여물을 먹이겠다고 청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김 서방, 그대의 청이 참으로 기이하구려. 처자식과 마지막 인사도 아니고 자기 황소의 여물을 챙기고 가겠다니. 그대에게 그 황소가 그리도 귀하단 말이오."

"예, 저승사자님. 저 황소는 십수 년을 저와 함께 살아온 식구입니다. 제가 이대로 떠나면 내일 새벽 그 녀석은 빈 여물통을 들여다보며 저를 기다릴 것입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 녀석 빈속만은 면해 주고 싶습니다."

저승사자는 한참을 말없이 김 서방을 바라보았다. 그 차갑던 두 눈이 어쩐 일인지 묘하게 흔들렸다. 옛 기록에 이르기를, 저승사자라 하여도 본디 사람의 혼령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니, 사람의 정 앞에서는 잠시 마음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하였다.

"…그대의 청을 들어드리겠소. 다만 한 시진뿐이오. 그 안에 여물을 마치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하오."

"고맙습니다, 저승사자님. 그 은혜는 저승길에서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김 서방은 옷을 단단히 여미고 방문을 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저승사자도 그를 따라 마당으로 나섰다. 저승사자는 마당 한쪽에 가만히 서서 김 서방이 외양간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외양간 문을 열자 황소는 마치 주인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김 서방은 그 큰 머리를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황소의 두 눈은 깊고 까맸다. 김 서방은 그 눈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울컥하는 것을 참았다.

"…너도 알고 있는 게냐. 오늘이 내가 너와 같이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황소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김 서방의 어깨에 자기 큰 머리를 가만히 기댔다. 김 서방은 그 무게를 한참 동안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친구야. 너를 두고 먼저 가게 되었구나. 내 없는 동안 우리 처자식들이 너에게 잘해 줄지 모르겠다. 부디 우리 큰아들 손에 길이 들거든, 너도 잘 따라 주려무나."

김 서방은 여물통에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여물을 부어 주었다. 그러고는 황소의 등을 한 번, 두 번, 세 번 천천히 쓸어 주었다. 그 손길에는 십수 년의 정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여물을 먹던 황소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외양간 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김 서방은 의아해서 그 뒤를 따라 나섰다.

황소는 마당으로 나오더니 곧장 저승사자가 서 있는 쪽으로 향했다. 저승사자도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황소를 보고 흠칫 놀라 한 발을 뒤로 물렸다. 평생 사람의 영혼을 데리러 다녔지만 짐승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이 짐승이 어찌하여 내게로…"

황소는 저승사자 앞에 멈춰 서더니, 큰 머리를 천천히 숙여 그의 도포 자락에 자기 코를 가만히 비비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옛 벗을 다시 만난 듯한 몸짓이었다.

※ 3: 소금장수와 나무꾼, 십수 년 전 강원도 눈길에서의 은혜와 그 환생의 사연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황소는 한참을 그의 도포 자락에 코를 비비더니, 천천히 큰 두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도 깊고 너무도 친근하여, 저승사자는 자기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황소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김 서방은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 황소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토록 다가가는 것은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저승사자님, 우리 황소가 어찌 저리 어르신을 따르는지요. 저놈이 본디 낯선 사람을 보면 뒷걸음질부터 치는 놈인데."

저승사자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황소의 두 눈을 깊이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두툼한 명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김 서방. 내 잠시 명부를 살펴봐야겠소."

저승사자는 명부를 펼쳐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짚어 내려갔다. 그 손길이 어느 한 줄에서 멈추었다. 저승사자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아, 이런 인연이 있었구나. 이런 인연이 있었어."

"저승사자님, 무슨 일이신지요. 우리 황소가 어찌하여…"

저승사자는 명부를 천천히 덮으며 김 서방을 바라보았다. 그 차갑던 눈빛이 어느새 부드러운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김 서방, 그대는 모르고 있겠지만, 이 황소는 그대가 전생에 목숨을 구해 준 한 사람의 환생이외다."

"…예? 전생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명부에 이르기를, 그대는 전생에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의 소금장수였소. 어느 겨울날 그대가 산길을 가던 중에 눈사태에 묻혀 죽어 가는 한 나무꾼을 발견하였지요. 그대는 자신의 짐을 모두 버리고 그 사람을 등에 업어 산을 내려와 살려 주었소이다. 한데 그대는 무거운 사람을 업고 눈길을 헤매다가 그만 한기에 들어 며칠 후 객사하였소."

김 서방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저승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가슴 한복판에서 묘한 떨림이 일었다.

'…전생이라니. 한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온 내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 나무꾼은 그대의 은혜를 입고 살아남았으나, 끝내 그대의 이름조차 모른 채 평생을 보냈소이다. 그가 죽어 명부에 들어왔을 때, 자기 목숨을 구해 준 그 사람에게 다만 보답할 길이 없음을 한스러워하였소. 그리하여 염라대왕께서 그를 다시 세상에 내보내실 때, 그대의 곁에서 짐승의 몸으로나마 한평생 그대를 돕도록 명하신 게요."

저승사자의 손이 천천히 황소의 머리 위로 내려갔다. 황소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그 큰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 황소가 바로 그 나무꾼의 환생이외다. 그대가 십수 년을 한결같이 자기를 아껴 준 것은, 어쩌면 전생의 인연이 아직 두 사람의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오."

김 서방은 자기도 모르게 황소 곁으로 다가갔다. 황소의 큰 두 눈을 마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자기가 알지 못했던 한평생의 그리움이 가만히 어려 있었다.

"…그대였구려. 그대가 그 사람이었구려. 십수 년을 모르고 지냈는데, 가는 길에야 알아보다니.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해 주시오."

황소는 김 서방의 가슴팍에 큰 머리를 가만히 기댔다. 마당에 가을바람이 한 번 천천히 지나갔다.

※ 4: 짐승의 도리를 사람의 정으로 갚으라는 약조와 황소에게도 내려진 다음 생의 은혜

한참을 그렇게 두 사람과 한 짐승이 마당에 서 있었다. 저승사자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서방, 이런 일이 있고 보니 내가 그대를 그냥 데려갈 수가 없게 되었소이다. 잠시 이 자리에서 기다리시오. 내 염라대왕께 다시 여쭙고 오겠소."

"…예? 어딜 다녀오신단 말씀이십니까."

"이 일은 내 권한 밖이오. 명부에 적힌 시각을 바꾸려면 염라대왕의 윤허가 있어야 하오. 잠시면 다녀오리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승사자의 모습이 가을바람에 휩쓸리듯 마당에서 사라졌다. 김 서방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황소는 그의 옆에 가만히 엎드렸다. 김 서방은 황소의 등에 손을 얹은 채로 앉아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저승의 시간은 이승과 다르다 하였으나, 김 서방의 마당에는 어느덧 새벽 안개가 자욱이 깔리고 있었다. 닭이 한 번 울었고, 두 번 울었다. 김 서방의 황소는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세 번째 닭 울음이 막 끝났을 무렵, 마당 한구석에서 다시 검은 도포 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승사자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 또 한 분이 서 있었으니,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든 위엄 있는 노인이었다. 김 서방은 그 위엄에 눌려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분이 바로 염라대왕이시오, 김 서방. 그대를 친히 보러 오셨소이다."

염라대왕은 김 서방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황소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눈빛이 신기하게도 따스한 빛을 띠고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구나. 사람과 짐승이 전생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한자리에 있으니, 이는 명부에 있어도 흔치 않은 일이로다."

염라대왕은 손에 든 홀로 김 서방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입을 열었다.

"김 서방, 들어 보거라. 그대의 이승 명부는 본디 오늘 자정으로 끝나게 되어 있었느니라. 그러나 이 황소가 그대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노라."

김 서방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대왕마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온지…"

"이 황소가 전생에 그대에게 진 은혜를 갚지 못하고 죽었기에, 짐승의 몸으로 그대 곁에 보내진 것이니라. 한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인연이 사람과 짐승의 모습으로 한자리에 마주 서게 되었구나. 이 짐승의 마음이 너무도 곡진하니, 내 그 마음을 받아 그대의 명을 잠시 늘려 주려 하노라."

"…대왕마마…"

"그대에게 십 년의 수명을 더 내리노라. 다만 그 십 년 동안 그대는 한 가지 약속을 지켜야 하느니. 어떤 약속이냐 하면, 평생 짐승을 짐승으로만 보지 않고 짐승의 도리에도 사람의 정으로 응하는 것이니라. 그리할 수 있겠느냐."

김 서방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흙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나 흙바닥을 적셨다.

"…대왕마마, 어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십 년이 아니라 단 하루를 더 살더라도, 이 황소를 식구처럼 모시며 살아가겠습니다."

"좋도다. 그리고 이 황소에게도 한 가지 은혜를 내리리라. 짐승의 몸으로 십수 년을 그대를 도왔으니, 다음 생에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그대의 후손과 다시 만나게 하리라."

황소가 천천히 두 눈을 들었다. 그 큰 눈에서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 서방은 황소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한참을 흐느꼈다.

※ 5: 외양간의 변화와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된 새벽의 기이한 일

염라대왕과 저승사자의 모습이 새벽안개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김 서방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황소가 그의 곁에서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당에 닭이 다시 한 번 길게 울었다. 그 순간 김 서방의 몸이 갑자기 따뜻해지는 것 같더니, 손끝과 발끝에 핏기가 돌아왔다.

'…내가 살아 있구나. 정말로 살아남았구나.'

김 서방은 떨리는 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어 보았다.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는 황소의 큰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황소의 따스한 체온이 그의 가슴으로 그대로 전해져 왔다.

"…고맙구려, 친구. 그대 덕분에 내가 살았소. 십수 년을 모르고 지냈던 은혜를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그대를 더욱 식구로 모시겠소."

그때 안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감, 거기 마당에서 무얼 하고 계세요? 새벽부터 어디 다녀오셨소?"

김 서방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등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머나, 영감. 어젯밤만 해도 손끝이 얼음장 같으시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얼굴빛이 이리 화안하시오. 어디 보양식이라도 드시고 오신 게요?"

"…임자, 들으시오. 어젯밤 내게 기이한 일이 있었소이다. 저승사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가, 우리 황소 덕분에 십 년 명을 더 받아 왔소이다."

아내는 처음엔 김 서방이 잠꼬대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외양간 앞에서 황소를 가리키며 자초지종을 들려주자, 아내도 그제야 두 손을 모으고 황소 앞에 깊이 절을 올렸다.

"…우리 식구를 살려 준 은인이셨구려. 한평생 그저 우리 집 황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인연이 있을 줄이야."

날이 밝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김 서방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어젯밤 김 서방의 집 마당에서 새벽안개가 유독 짙게 피어올랐고,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 두엇이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는 동네 노파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김 서방은 마을 어른들을 마당으로 모셔 자리를 마련하고 막걸리 한 사발씩을 권하며 그날 밤 일을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마을 어른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으나, 황소가 마을 어른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천천히 다가가 머리를 조용히 숙이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허, 짐승이 사람의 도리를 알아 절을 한다는 말은 옛이야기에서나 들었지.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김 서방, 자네는 복도 많은 사람일세.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 짐승조차 그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라더니, 그 말이 헛말이 아니었구먼."

그날 이후 김 서방의 황소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짐승이 되었다. 누구든 그 황소 앞을 지날 때면 자기도 모르게 한 번씩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마을 아이들도 그 황소 등에는 함부로 올라타지 않았고, 어른들은 황소가 외양간 앞을 지날 때면 길을 비켜 주곤 했다.

김 서방의 집 마당에는 그날부터 새로운 풍경이 자리 잡았다. 김 서방이 점심을 먹을 때면 아내가 따로 작은 밥상을 차려 황소 앞에 가져다주었다. 밥상에는 황소가 좋아하는 콩과 배추 잎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황소는 그 밥상을 받을 때마다 큰 두 눈을 한 번씩 깜빡이며 김 서방 부부에게 자기 나름의 인사를 보내곤 했다.

※ 6: 함께 늙어 가는 농부와 황소, 그리고 황소가 떠나던 봄날 새벽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그날 새벽 이후 김 서방과 황소는 한 식구처럼 십 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김 서방은 약속한 대로 황소를 한순간도 짐승으로만 대하지 않았다. 황소가 늙어 이가 약해지자 직접 콩을 삶아 부드럽게 갈아 먹였고, 다리에 힘이 빠지자 더 이상 밭갈이에 부리지 않고 마당에서 햇볕을 쬐게 두었다.

황소도 김 서방의 그 정성에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다. 김 서방이 들에 나가는 날이면 외양간 문 앞에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큰 두 눈으로 그를 배웅했고, 그가 돌아오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큰 울음으로 마당을 채웠다.

그동안 김 서방의 자식 셋은 모두 자라 가정을 이루었다. 큰아들은 옆 마을로 장가를 들어 첫아이를 기다리고 있었고, 둘째와 셋째도 각자의 살림을 차렸다. 김 서방은 손자 볼 날을 기다리며 황소 곁에서 조용히 늙어 갔다.

『청구야담』의 옛 기록은 이 대목에서 한 마디 덧붙이기를, 사람이 한 짐승을 십 년 동안 정으로 거두면 그 짐승의 마지막 길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였다. 김 서방의 황소가 바로 그러한 길을 걷게 되었으니, 십 년이 흘러 어느 봄날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황소는 평소보다 일찍 깨어 있었다. 김 서방이 외양간으로 나가 보니 황소는 외양간 한가운데 정갈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 큰 두 눈이 깊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김 서방은 그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친구, 오늘이 그날인가."

황소는 천천히 큰 머리를 들어 김 서방의 가슴께에 가만히 기대었다. 김 서방은 두 팔로 그 큰 목을 끌어안았다. 황소의 숨결이 평소보다 가늘게 느껴졌다.

"…그래, 가야 할 때가 되었구려. 십 년을 더 살게 해 준 그대의 은혜, 내가 어찌 잊겠소. 다음 생에는 부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좋은 복을 받으시오. 우리 후손과 다시 만나거든, 그때는 내가 그대를 알아보리다."

황소의 두 눈에서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김 서방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떨어져 황소의 누런 털을 적셨다. 황소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외양간에 새벽바람이 한 번 천천히 지나갔다. 황소의 큰 가슴이 천천히 한 번 부풀었다가, 다시 천천히 꺼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김 서방은 한참을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아내와 큰아들이 외양간으로 들어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들어 황소의 마지막 길을 함께 살펴 주었다. 마을 어른 한 분이 김 서방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다.

"…김 서방, 짐승의 죽음을 이리 정성껏 거두는 사람은 자네 말고 또 없을 게야. 우리가 자네 황소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 주세."

김 서방은 황소를 마당 뒷산 양지바른 곳에 정성껏 묻었다. 무덤 앞에 작은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한 줄을 새겼다. '은혜를 알았던 벗 여기 잠들다.' 마을 사람들은 그 비석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곤 했다.

황소를 보낸 그날 밤 김 서방은 한참을 마루 끝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밤의 별이 유난히 맑았다.

'…잘 가시오, 친구. 부디 다음 생에는 사람의 몸으로 좋은 부모 만나, 좋은 세상 보고 살아가시오. 십 년이 한순간이었구려.'

김 서방의 무릎 위에 봄바람이 한 번 가만히 머물다 갔다. 멀리서 부엉이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 7: 십 년 후 큰며느리가 낳은 사내아이의 이마에 박힌 검은 점,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저승사자

황소를 보낸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큰아들 집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다. 큰며느리가 첫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김 서방 부부는 한달음에 큰아들 집으로 달려갔다. 큰며느리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선 김 서방은 강보에 싸인 손자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손자의 이마 한복판에 작고 동그란 검은 점 하나가 또렷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점은 김 서방이 십 년을 매일같이 들여다본 황소의 이마에 있던 그 점, 그 자리, 그 모양이었다.

"…아아…"

김 서방은 떨리는 두 손으로 손자를 안아 들었다. 강보를 한 번 더 풀어 보았다. 등에는 황소가 가졌던 그 누런 털 색깔의 작은 모반이 한 줄로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대였구려. 정녕 그대였구려.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셨구려.'

김 서방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손자의 작은 얼굴 위로 떨어졌다. 손자는 그 눈물을 맞고도 울지 않았다. 다만 작은 두 눈을 가만히 떠서 김 서방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까만 눈빛이 십 년을 함께한 황소의 그 눈빛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김 서방은 한참을 흐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 서방은 떨리는 음성으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이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정했느냐."

"아버님, 아직 지어 두지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서방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보(恩寶)라 짓자꾸나. 은혜로 받은 보배라는 뜻이다. 이 아이가 우리 집안에 어찌하여 왔는지는 이 늙은 할아비만 알면 될 일이다. 다만 너희는 이 아이를 한평생 귀히 여기고, 짐승의 도리에도 사람의 정을 내어 주는 사람으로 길러 다오."

큰아들과 큰며느리는 영문은 몰랐으나 아버님의 그 진중한 음성에 두 손을 모으고 깊이 절을 올렸다. 김 서방은 어린 손자를 다시 한 번 가슴에 끌어안았다. 손자의 작은 손이 그의 옷고름을 가만히 잡았다. 그 손길이 십 년 전 외양간에서 자기 어깨에 머리를 기대 오던 황소의 몸짓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김 서방의 꿈에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십 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김 서방의 머리맡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김 서방, 잘 지내셨소이까. 오늘은 그대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니 놀라지 마시오. 다만 한 가지 소식을 전하러 왔소."

"…저승사자님,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어인 일로 다시 오셨습니까."

"그대의 황소가 무사히 다음 생을 얻었음을 알리러 왔소이다. 염라대왕께서 그 짐승의 마음이 너무도 곡진하여 사람의 몸으로 다시 보내 주셨고, 그대 손자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다시 났소이다. 그대가 오늘 본 그 이마의 검은 점이 그 증표요."

"…고맙습니다, 저승사자님. 이 늙은이가 가는 길에 그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다 보지 못한들 어떻겠습니까. 다만 이 아이가 어떤 인연으로 우리 집안에 왔는지 그것을 알았으니, 남은 평생 한 점 부끄럼 없이 그 아이를 거두겠습니다."

저승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서방, 그대에게 한 가지 일러두리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오. 그러나 짐승을 사람의 정으로 대하는 사람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드물다오. 그대는 그 한 사람이었소. 평생 그 마음 잊지 마시오."

새벽이 밝아 왔다. 김 서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을 가로질러 황소의 무덤 앞에 가만히 섰다. 비석 앞에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 올렸다. 봄바람이 한 번 천천히 지나갔다. 비석 위에 작은 노랑나비 한 마리가 잠시 머물다가 하늘로 천천히 날아올랐다.

유튜브 엔딩멘트 (교훈형 / 322자)

오늘 들려드린 이 한 편의 야담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조용히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정을 내는 것은 본디 사람의 도리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짐승에게 사람의 정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물음입니다. 김 서방은 자기 황소를 짐승으로 보지 않고 십수 년을 한 식구로 거두었기에, 결국 자기 명을 십 년 늘렸고 그 황소를 손자의 몸으로 다시 만나는 복까지 받았습니다. 우리 어르신들께서도 오늘 하루, 곁에 있는 작은 생명 하나라도 한 번 더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시는 그런 하루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염라야담 한 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썸네일 프롬프트 (영문 / 16:9 / 실사 / no text)

A photorealistic cinematic 16:9 wide shot taken in the misty pre-dawn courtyard of an old Joseon Dynasty thatched-roof Korean farmhouse. In the foreground stands a tall mysterious figure in a long flowing black hanbok robe and deep black wide-brimmed Korean gat hat, his face partially shadowed under the brim, holding a worn ledger book in one hand. A massive aged Korean ox with a deeply soulful brown gaze gently presses its nose against the hem of the figure's black robe in a tender, recognizing gesture. To the side, an elderly Korean farmer in worn pale hanbok kneels on the dirt ground watching in stunned reverence, tears glistening on his weathered cheeks. Soft cool blue moonlight filters through the morning mist, an old wooden cattle stall visible in the background, fallen autumn leaves scattered on the ground. Highly detailed,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deep shadows, mystical and emotionally moving atmosphere, hyperrealistic textures on hanbok fabric and ox fur, shallow depth of field. No text, no logos, no waterm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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