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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너무 좋아 저승으로 스카우트된 인간

by K sunny 202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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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너무 좋아 저승으로 스카우트된 인간

부제: 〈저승에서 잡아간 이운애기〉

태그 (15개)

#저승설화, #한국전래동화, #옛날이야기, #이운애기, #염라대왕, #저승스카우트, #전래설화, #잠잘때듣는이야기, #스르르잠드는이야기, #시니어콘텐츠, #오디오드라마, #민담, #저승차사, #명인장인,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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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이상)

여러분, 요즘 세상에선 실력이 좋으면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고 하지요? 그런데 옛날옛적에는, 솜씨가 너무 뛰어나면 저승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 그것도 염라대왕이 직접 차사를 보내서 말이에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손재주 하나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한 사내의 기구한 운명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자신의 솜씨를 잃지 않았던 사내, 저승에 끌려가서도 인간다움을 놓지 않았던 그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오늘 밤, 스르르 편안하게 잠드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세요.

※ 1: 그가 만든 물건엔 혼이 깃든다는 소문이 이승을 넘어 저승까지 퍼진다

옛날, 아주 먼 옛날이었습니다. 깊은 산자락 아래 오종종하니 모여 앉은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지요. 산 그림자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고, 앞으로는 맑은 개울이 졸졸졸 흘러가는,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 마을에 석이라 불리는 사내가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나이 서른다섯, 얼굴은 볕에 그을려 거무튀튀했고, 손은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었지요. 허나 그 투박한 손에서 나오는 솜씨는, 글쎄요, 하늘이 내린 재주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석이는 목수였습니다. 그냥 목수가 아니라,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솜씨를 가진 천하제일의 목수였지요.

'오늘은 이 녀석으로 해볼까.'

석이가 작업장에 앉아 참나무 한 토막을 손에 쥐었습니다. 끌을 대고 망치를 톡, 톡 두드리자 나무 조각이 사르르 떨어져 나갔지요. 한 번 깎고, 두 번 깎고, 세 번 깎으니 어느새 나뭇결 사이로 용의 비늘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작업장 문턱에 턱을 괴고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석이 아저씨, 오늘은 뭘 만들어요?"

"용이다, 용. 가만히 보고 있어라."

"우와, 진짜 용이에요? 눈알이 번쩍번쩍할 거예요?"

석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눈알이 번쩍번쩍하면 너희가 무서워서 울 텐데?"

"안 울어요! 석이 아저씨가 만든 거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고, 석이도 따라 웃었지요.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고, 다시 산 너머로 붉게 넘어갈 때까지 석이의 손은 쉬지 않았습니다. 끌이 나무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용의 수염이 한 올 한 올 피어났고, 발톱이 날카롭게 드러났으며, 몸통의 비늘 하나하나에 숨결이 깃드는 듯했습니다.

저녁노을이 작업장 안으로 스며들 무렵, 석이가 마지막으로 용의 눈에 점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 글쎄요, 나무로 깎은 용이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마을 이장이 그 용을 보고 무릎을 탁 쳤지요.

"허, 이 사람아. 이건 목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건이야. 자네 손에서 나온 물건엔 틀림없이 혼이 깃들어."

"에이, 이장 어른. 그냥 나무 쪼가리인데 무슨 혼이 깃들겠습니까."

석이는 그렇게 겸손을 떨었지만, 속으로는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건 좀 잘 나왔지.'

석이의 솜씨는 마을에서만 소문난 게 아니었습니다. 이웃 마을, 그 너머 고을, 더 나아가 장터에까지 소문이 퍼졌지요. 석이가 깎은 빗을 쓰면 머리카락이 비단결이 되고, 석이가 짠 문살을 달면 집안에 복이 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문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이승에서만 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땅 아래 깊고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것이 소문이니까요.

그 깊고 깊은 곳, 산 자들은 결코 갈 수 없는 그곳, 바로 저승에까지 석이의 소문이 닿고 말았습니다.

저승의 어느 귀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지요.

"이승에 석이라는 목수가 있는데,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 재주가 있다더라."

"혼을 불어넣어? 그건 저승에서도 못 하는 일인데?"

"그러니까 말이야. 대왕마마 귀에 들어가면 가만 안 계실 텐데."

귀졸들의 수군거림은 결국 저승 궁궐의 높고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대왕이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마을에는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고, 석이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잠든 방 옆 작업장에서 혼자 나무를 다듬고 있었지요. 사각사각, 나무를 깎는 소리가 고요한 밤에 잔잔히 울려 퍼졌습니다.

'내일은 아들 녀석 자새기를 하나 깎아줘야겠다. 요즘 부쩍 큰 게, 손에 쥐어줄 게 있어야 할 텐데.'

석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밤바람이 문틈 사이로 살며시 들어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바람결이 갑자기 달라졌지요. 따뜻하던 봄바람이 어느 순간 서늘하게 변하더니, 작업장 안의 촛불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석이의 손이 멈추었습니다.

'뭐지? 바람이 왜 이렇게 차갑지?'

촛불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리더니, 작업장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발소리도 없이, 숨소리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서 있다는 느낌만이 등골을 타고 서늘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석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문 앞에 길고 긴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져 있었지요.

이 밤에, 대체 누가 온 것일까요.

※ 2: 저승차사가 염라대왕의 명을 전하며 석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려 한다

그림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석이가 끌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지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목수라는 사람이 겁을 내서야 쓰겠습니까. 석이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을 향해 말했습니다.

"누구시오? 이 밤중에 남의 집 앞에 서 있으면 도깨비인 줄 알겠소."

대답이 없었습니다. 대신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더 밀려들었지요. 촛불이 가늘게 흔들리다가 이내 꺼질 듯 말 듯 위태롭게 버텼습니다.

석이가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달빛 아래 사내가 하나 서 있었지요. 키가 훤칠하고, 갓을 눌러 쓰고, 검은 도포를 걸친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은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났는데, 눈이 참으로 묘했습니다. 사람의 눈 같으면서도 사람의 눈이 아닌 것 같은, 깊고 깊은 우물 같은 눈이었지요.

"밤이 깊었는데, 무슨 일로 오셨소?"

사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는데, 어딘가 이 세상 소리가 아닌 듯한 울림이 있었지요.

"그대가 석이요?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그 목수 석이가 맞소?"

"혼을 불어넣다니. 나는 그저 나무를 깎는 사람이오."

"겸손은 이승에서나 통하는 법. 나는 그대의 솜씨를 익히 알고 왔소."

석이의 눈이 좁아졌습니다. 밤중에 찾아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내가 영 불편했지요.

"대체 어디서 오신 분이기에 남의 솜씨를 안다 마느니 하시오?"

사내가 갓을 살짝 들어 올렸습니다. 그 아래 드러난 이마에 푸른빛이 은은히 감돌았지요. 사람의 피부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저승에서 왔소."

석이의 등줄기를 타고 찬물이 쏟아지는 듯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 했지만, 석이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요.

'저승이라고? 이 사람이 미친 게 아니라면.'

"허, 저승이라. 그런 농담은 대낮에 하시오. 밤에 하면 간이 떨어지겠소."

"농담이 아니오, 석이. 나는 저승차사요.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그대를 데리러 왔소."

석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습니다. 저승차사. 그 이름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서 들었던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었지요. 차사가 찾아오면 이승과의 인연이 끝난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 말입니다.

"나, 나를 데려가겠다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승에서 잡아가겠다는 것이오?"

차사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죄를 지어서가 아니오. 그대의 솜씨 때문이오."

"솜씨라니, 무슨 솜씨 때문에 사람을 잡아간단 말이오?"

차사가 한 발짝 다가섰습니다. 그가 다가서자 주변의 공기가 더욱 서늘해졌고, 풀벌레 소리마저 뚝 그쳤지요.

"저승 궁궐의 문루가 천 년 세월에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오. 이를 고칠 장인을 저승 천지에서 찾아보았으나, 그대만 한 솜씨를 가진 자가 없었소. 염라대왕께서 이승의 석이를 데려오라 하셨소."

석이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까매졌다가를 반복했지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저승에서 나를 스카우트하겠다니. 솜씨가 좋은 게 죄도 아니고, 이런 황당한 일이.'

석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잠, 잠깐. 저승에 가면, 그건 죽는 것 아니오?"

차사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이 석이에게는 천 년처럼 길게 느껴졌지요.

"이승의 몸은 내려놓아야 하오."

"그, 그러면 죽는 것 아니오!"

석이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작업장 너머 안방에서는 아내와 아들이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요. 아들의 새근새근 잠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듯했습니다.

"나는 못 가오. 안에 처자식이 있소. 아들이 겨우 다섯 살이오. 아비가 없으면 그 아이가 어찌 크겠소."

차사의 눈에 미세한 떨림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였고, 이내 다시 깊은 우물 같은 눈으로 돌아갔지요.

"염라대왕의 명이오. 거역할 수 없소."

"거역할 수 없다니!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아시오?"

석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안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여보,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석이가 황급히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어서 자시오."

석이는 차사를 노려보았습니다.

"하루만 말미를 주시오. 하루만. 처자식에게 인사라도 하게 해주시오."

차사가 석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이별을 보아온 눈이었지요. 그 눈이 잠시 허공을 떠돌다가, 이윽고 차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일 자시, 다시 오겠소. 그때까지 이승의 일을 매듭짓시오."

차사가 몸을 돌렸습니다. 달빛 속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안개처럼 점점 희미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지요.

석이는 텅 빈 마당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다리에서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지요.

'하루. 겨우 하루라니.'

하늘에서는 달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 3: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나무 장난감을 깎아 남긴다

석이는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등에 식은땀이 흥건했고, 손끝이 파르르 떨렸지요. 하늘의 달은 여전히 둥글고 밝았지만, 석이의 눈에는 그 달빛마저 서글프게 보였습니다.

'내일이면 나는 이 달을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석이가 천천히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 분이가 이불을 끌어안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고, 그 품에 다섯 살 아들 돌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지요. 돌이의 볼이 복숭아처럼 발그스름했고,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며 잠꼬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석이가 소리 없이 방바닥에 앉았습니다. 돌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글쎄요,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지요.

'이 녀석아. 아비가 내일이면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네가 크는 것을 볼 수가 없게 됐구나.'

석이가 떨리는 손으로 돌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습니다.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손끝에 감겼지요. 석이는 그 감촉을 손끝에 새기듯 천천히, 또 천천히 쓸어넘겼습니다.

분이가 인기척에 눈을 떴습니다.

"여보? 아직 안 주무셨어요?"

"그냥, 잠이 안 와서."

분이가 몸을 일으켜 석이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지요.

"얼굴이 왜 그래요?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지고."

"아무것도 아니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거요."

석이는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분이의 눈에 걱정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괜찮소, 괜찮아. 당신은 어서 자시오. 돌이가 깨겠소."

분이가 미심쩍은 눈으로 석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돌이를 품에 안고 누웠습니다. 석이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지요.

'당신한테 뭐라 말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소. 내일이면 이 집에 내가 없을 텐데, 어찌 입이 떨어지겠소.'

석이는 말없이 방을 나왔습니다. 작업장으로 돌아온 석이의 눈이 한쪽 구석에 놓인 나무토막에 멈추었지요. 돌이에게 장난감을 깎아주겠다고 며칠 전에 골라놓은 참나무 조각이었습니다.

'그래, 이것이라도 남겨주자. 아비가 남겨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으니.'

석이가 자리에 앉아 참나무를 손에 쥐었습니다. 끌을 들었지요. 무엇을 깎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돌이가 요즘 좋아하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마을 뒷산에서 본 토끼. 돌이가 토끼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쫓아다니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지요.

사각. 사각사각. 끌이 나무 위를 미끄러졌습니다. 석이의 손은 떨렸지만, 나무를 깎는 솜씨만은 흔들리지 않았지요. 반평생을 나무와 함께한 손이었으니까요.

깎고, 다듬고, 또 깎았습니다. 토끼의 귀가 쫑긋 세워지고, 동그란 눈이 드러나고, 앞발을 모으고 앉은 자세가 만들어졌지요. 석이는 토끼의 등에 작은 글씨를 새겼습니다.

돌이야, 아비가 늘 곁에 있다.

글씨를 새기는 석이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한 줄기 흘러내렸습니다. 나무 위에 떨어진 눈물이 나뭇결 사이로 스며들었지요.

'울지 마라, 석이. 장인이 눈물을 흘리면 물건에 슬픔이 배는 법이다. 이건 돌이한테 주는 거니까, 슬픔이 아니라 아비의 마음을 담아야지.'

석이가 소매로 눈물을 닦고 다시 나무를 다듬었습니다. 토끼의 입가를 살짝 올려 깎아, 마치 방긋 웃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지요. 돌이가 이 토끼를 쥐고 웃을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프면서도 따뜻했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석이는 완성된 토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지요.

'이것이 내가 이승에서 깎는 마지막 물건이구나.'

석이가 토끼를 품에 넣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돌이의 베갯머리에 토끼를 살며시 내려놓았지요. 돌이가 잠결에 꿈틀거리며 토끼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작은 손가락이 토끼를 꼭 쥐었지요.

석이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이 녀석. 잠결에도 잘 잡는다.'

석이는 돌이의 이마에 입술을 가만히 대었습니다. 따뜻한 체온이 입술에 전해졌지요. 이 온기를 저승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석이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이의 옆으로 가서 이불을 여며주었지요. 분이의 손이 거칠었습니다. 빨래와 농사일로 트고 갈라진 손이었지요. 석이는 그 손을 가만히 쥐었습니다.

'고맙소, 분이. 당신 만나서 참 좋았소.'

분이가 잠결에 석이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석이는 그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지요.

동쪽 하늘이 희부옇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석이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요.

석이는 마침내 분이의 손을 놓고 일어섰습니다. 작업장으로 돌아가 연장들을 하나하나 정리했지요. 끌, 대패, 망치, 자귀. 반평생 동안 손때가 묻은 연장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을 돌이가 크면 물려줄 수 있으련만.'

석이가 연장을 가지런히 놓고, 작업장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마을이 아직 잠들어 있었고, 개울물 소리만 졸졸졸 흐르고 있었지요. 석이는 이 소리를 귀에 새기듯 오래오래 들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석이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가.

※ 4: 황천강을 건너며 이승의 기억이 희미해지지만, 손에 밴 나무 향만은 잊히지 않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마을이 다시 잠들었습니다. 석이는 하루 종일 평소처럼 지냈지요. 돌이와 마당에서 놀아주고, 분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이웃집에 들러 수리해주기로 한 문짝도 고쳐주었습니다.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석이만은 알고 있었지요. 이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눈부시게 소중한 것인지를.

돌이가 저녁을 먹고 나서 아까 아침에 베갯머리에서 찾은 토끼를 들고 와서 까르르 웃었지요.

"아버지, 이거 아버지가 만든 거죠? 토끼가 웃고 있어요!"

"그래, 아버지가 만든 거다. 마음에 드냐?"

"네! 제일 좋아요! 이름은 깡총이라고 할 거예요!"

석이가 돌이를 번쩍 안아 올렸습니다. 돌이가 까르르 웃었고, 석이도 웃었지요. 그 웃음 뒤에 숨은 눈물은, 석이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깡총이라, 좋은 이름이다. 녀석아.'

밤이 깊었습니다. 분이와 돌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석이가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에는 어젯밤처럼 달이 밝았고,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지요.

자시가 되었습니다. 어김없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지요. 마당 끝 어둠 속에서 차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젯밤과 같은 검은 도포, 같은 갓, 같은 깊은 눈이었습니다.

"준비되었소?"

석이가 안방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문 너머 들려오는 돌이의 새근새근 잠숨소리. 분이가 잠꼬대로 중얼거리는 소리. 석이는 그 소리를 가슴 깊이 눌러 담았지요.

"준비 같은 건 되지 않소. 하지만 가야 한다면 가겠소."

석이는 작업장에서 끌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차사가 고개를 갸웃거렸지요.

"그건 뭐 하러 가져가는 것이오?"

"나는 목수요. 목수가 연장을 놓으면 그건 이미 목수가 아니오. 저승에 가서도 나는 목수로 갈 것이오."

차사가 잠시 석이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소. 따라오시오."

차사가 앞장서 걸었고, 석이가 뒤를 따랐지요. 마을을 벗어나자 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흙길이 어느새 안개에 덮인 돌길로 변했고,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형체를 잃어갔지요. 색이 빠져나가듯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갔습니다.

'이승이 멀어지고 있구나.'

석이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마을이 보일까 싶었지만, 이미 짙은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요. 돌이의 웃음소리도, 분이의 목소리도, 개울물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개울물 소리가 아닌, 깊고 무겁고 느린 물소리였지요. 강이었습니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강물은 검푸른 빛이었고, 수면 위로 희뿌연 안개가 피어올랐지요.

"이것이 황천강이오."

차사가 말했습니다. 석이는 황천강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지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 이 강을 건너면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그 강 말입니다.

강가에 작은 배가 하나 매여 있었습니다. 배 위에 사공이 앉아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요. 갓을 깊이 눌러 쓰고 고개를 숙인 채 노만 쥐고 있었습니다.

석이와 차사가 배에 올랐습니다. 사공이 아무 말 없이 노를 저었지요. 배가 강물 위를 미끄러졌습니다. 노가 물에 닿을 때마다 찰박, 찰박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고요한 안개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석이의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하나씩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고향 마을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이웃 사람들의 얼굴이 안개처럼 지워졌습니다. 장터에서 물건을 팔던 기억, 어린 시절 산에서 뛰놀던 기억, 하나둘 빛이 바래듯 사라져 갔지요.

'아,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 이승의 기억이.'

석이가 두 손을 꼭 쥐었습니다. 손에 쥔 끌의 나무 자루에서 익숙한 냄새가 올라왔지요. 참나무 향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무를 깎으며 손에 밴 향이었지요.

그 향기를 맡는 순간, 돌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깡총이라며 토끼를 쥐고 웃던 그 얼굴. 분이가 밥상을 차리며 웃던 모습. 그것만은 지워지지 않았지요.

'이것만은 잊지 않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석이가 끌을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배가 강 건너편에 닿았지요. 석이가 배에서 내려 발을 디딘 땅은 차갑고 단단했습니다.

안개 너머로 거대한 성벽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저승 궁궐이었지요. 성벽은 높고 어두웠으며, 그 위로 검은 기와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습니다.

차사가 앞장서며 말했습니다.

"저곳이 염라대왕의 궁궐이오. 대왕마마께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오."

석이는 저승 궁궐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승에서 본 어떤 건물보다 크고 웅장했지만, 어딘가 허물어지고 금이 간 곳이 눈에 들어왔지요. 목수의 눈은 저승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건, 대들보가 틀어진 거다. 기둥도 한쪽으로 기울었고. 천 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석이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문루, 상태가 심각하구먼."

차사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습니다. 그 깊은 눈에 처음으로 감정 비슷한 것이 떠올랐지요. 놀라움이었을까요, 아니면 기대였을까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다니. 역시 이승 제일의 목수라더니, 소문이 헛되지 않았소."

석이는 대답 대신 끌을 한 번 쥐었다 놓았습니다. 목수의 손이 절로 움직이려 하고 있었지요. 아무리 저승이라 해도, 무너져 가는 건물을 보면 손이 근질거리는 것이 목수의 성정이었으니까요.

성문이 열렸습니다. 그 안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지요.

석이가 한 걸음 내디뎠습니다. 저승에서의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 5: 염라대왕이 저승의 문루를 새로 지어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성문을 지나자 풍경이 확 달라졌습니다. 바깥의 안개와 어둠과는 달리, 궁궐 안은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밝혀져 있었지요. 그 빛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석이는 알 수 없었습니다. 등불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고, 마치 공기 자체가 빛을 품고 있는 것 같았지요.

궁궐의 뜰은 넓고 고요했습니다. 돌바닥이 깔려 있었는데, 그 돌 하나하나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지요. 셀 수 없이 많은 망자들이 이 돌 위를 밟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석이의 발걸음 소리가 텅 빈 뜰에 울려 퍼졌지요.

차사가 석이를 이끌고 궁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긴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고, 또 복도를 지났지요. 복도 양쪽에는 귀졸들이 도열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석이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저게 이승에서 온 목수란다."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그 사람이?"

"산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귀졸들의 수군거림이 석이의 귀에 들려왔지요. 석이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걸었습니다. 비록 저승에 끌려온 신세이지만, 주눅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석이는 품속의 끌을 한 번 만져보며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목수다. 어디에 있든 나는 목수로서 당당해야 한다.'

마침내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문은 검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석이의 눈에 그 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지요. 이승에서는 본 적 없는 나뭇결이었습니다. 결이 깊고 촘촘하며, 천 년은 족히 된 듯한 고목의 느낌이었지요.

'이건, 대체 무슨 나무지? 나뭇결이 이렇게 깊을 수가 있나.'

석이가 무심코 문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순간, 나무 속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지요. 마치 나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차사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둥, 둥, 둥.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윽고 문이 천천히 열렸지요.

안에서 쏟아져 나온 빛은 바깥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황금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찬란한 광채가 석이의 눈을 잠시 멀게 했지요. 석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대한 대전이었습니다.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천장에는 구름과 용이 그려져 있었지요. 그 대전 한가운데 높은 좌대 위에 한 존재가 앉아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었지요.

석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무시무시한 도깨비 같은 모습을 떠올렸건만, 염라대왕은 의외로 점잖은 모습이었지요. 다만 체구가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였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석이의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대전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요.

"그대가 석이인가."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대전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벽과 기둥이 진동할 만큼 깊은 울림이 있었지요. 석이의 무릎이 절로 꺾이려 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렇습니다. 석이가 맞습니다."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이승의 목수, 석이.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석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혼을 불어넣는다는 건 과한 말씀이옵고, 저는 그저 나무를 깎을 줄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염라대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좌대가 삐걱 소리를 냈지요.

"겸손하구나. 허나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그대가 깎은 용은 이 저승에까지 기운이 느껴지더구나. 나무 속에 생명을 심는 솜씨, 천상의 장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석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 영광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지요.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대전 밖을 가리켰습니다.

"그대도 들어올 때 보았을 것이다. 이 궁궐의 정문, 저승 문루가 천 년 세월에 낡아 허물어지고 있다. 기둥이 기울고, 대들보가 틀어지고, 서까래가 썩어 들어가고 있지."

석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들어올 때 목수의 눈으로 이미 다 살펴본 것이었지요.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보기에 저 문루는 수리 정도로는 안 됩니다. 뼈대부터 새로 세워야 합니다."

염라대왕의 눈이 번쩍 빛났습니다.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다니.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구나."

염라대왕이 좌대에서 일어섰습니다. 거대한 체구가 일어서자 대전 안이 그림자로 가득 찬 듯했지요.

"석이, 나의 제안을 들어보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저승의 문루를 새로 지어다오. 천 년을 더 버틸 수 있도록, 저승의 위엄에 걸맞도록. 그대의 솜씨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이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 일을 하면, 저를 어찌 하실 작정이십니까?"

염라대왕이 석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일을 마치면 저승에서 편히 지내게 해주마. 이곳에서는 배고픔도 추위도 병도 없다. 이승에서의 고된 삶보다 나을 것이다."

석이의 마음이 복잡하게 흔들렸습니다.

'편히 지내라고? 이승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

그러나 석이는 그 질문을 지금 꺼내지 않았습니다. 목수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지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먼저 일을 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문루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염라대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지요.

"좋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여라."

석이가 품에서 끌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승에서 가져온 유일한 물건이었지요.

"연장은 제 것이 있습니다. 다만 나무가 필요합니다. 좋은 나무, 천 년을 버틸 수 있는 나무를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사에게 명했습니다.

"저승 뒷산의 천년목을 베어다 주어라. 석이가 원하는 만큼."

차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지요. 석이는 대전을 나서며 한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염라대왕이 다시 좌대에 앉아 석이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그 눈빛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석이는 아직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일단은 일을 하자. 살 길은 일을 하면서 찾아야 한다.'

석이가 끌을 꼭 쥐었습니다. 저승에서의 첫날 밤이, 아니 저승에는 밤이 없었지요. 푸른빛이 감도는 영원한 어스름 속에서 석이의 새로운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 6: 그의 솜씨에 저승의 귀신들도 감탄한다

석이에게 주어진 작업장은 저승 궁궐 앞뜰의 넓은 공터였습니다. 차사가 데려다준 그곳에는 이미 천년목이 수십 그루 베어져 누워 있었지요. 석이가 나무에 다가가 손을 대어 보았습니다.

나무가 차가웠습니다. 이승의 나무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없었지요. 그러나 나뭇결은 놀라웠습니다. 이승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촘촘하고 단단한 결이었지요. 석이가 끌로 살짝 긁어보니 금속을 긁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보통 나무가 아니구나. 이 나무라면 천 년은커녕 만 년도 버티겠다.'

석이가 나무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목수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일이 있지요. 나무를 읽는 것입니다. 나뭇결의 방향, 옹이의 위치, 뒤틀림의 정도, 이 모든 것을 눈과 손으로 읽어내야 비로소 첫 번째 끌질을 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사각. 석이가 첫 끌질을 했습니다. 나무가 단단해서 힘이 두 배로 들었지만, 깎여 나간 면은 비단결처럼 매끈했지요. 석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좋은 나무다. 깎는 맛이 있어.'

그렇게 석이는 저승에서 문루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였지요. 넓은 공터에 석이 하나, 나무 수십 그루, 그리고 끌 하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석이는 이승에서 하던 대로 묵묵히 일했지요. 나무를 재고, 먹줄을 튕기고, 끌로 깎고, 대패로 밀었습니다. 이승에서 가져온 끌 하나로 시작했지만, 염라대왕이 보내준 저승의 연장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작업이 빨라졌지요.

며칠이 지났을까, 아니 저승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해도 달도 없으니 낮과 밤의 구분이 없었지요. 석이는 배가 고프지도,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저승에서는 산 자의 육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모양이었지요. 다만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고단해지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석이가 기둥을 다듬고 있는데, 슬금슬금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승의 귀신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지요. 이승의 아이들이 석이의 작업장에 모여들던 것처럼요.

그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의 모습을 한 귀신이었지요.

"여보시오, 목수 양반. 이승에서 오셨다면서?"

석이가 끌질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소."

"이승이, 요즘은 어떻소? 내가 죽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까맣게 잊어버렸소."

석이가 잠시 생각했지요. 이 노인이 살아 있을 때의 이승과 지금의 이승이 같을 리 없었지만, 석이는 자신이 아는 이승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봄이면 산에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개울에서 아이들이 멱을 감고, 가을이면 들판이 누렇게 익고, 겨울이면 눈이 소복소복 쌓이지요."

노인 귀신의 눈에 물기가 어렸습니다.

"그건, 그건 내가 살던 때와 똑같구만. 진달래. 그래, 진달래가 참 곱지. 우리 집 뒷산에도 진달래가 한가득 피었었는데."

노인이 훌쩍거렸지요. 그 모습을 보고 다른 귀신들도 하나둘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장터에서 엿을 팔았소. 엿 냄새가 그리워요."

"나는 베를 짰지. 베틀 소리가 듣고 싶소."

"나는 아이가 셋이었는데, 그 아이들이 잘 컸는지 모르겠소."

석이는 끌질을 하면서 귀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마다 이승에 두고 온 사연이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지요.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정이라는 것을 석이는 새삼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도, 아니 이 귀신들도 한때는 나처럼 살았던 사람들이구나. 이승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죽어서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 거였어.'

석이의 끌질에 힘이 더해졌습니다. 귀신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무를 깎으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요. 나무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차갑기만 하던 저승의 천년목이 석이의 손길을 받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습니다.

기둥이 세워졌습니다. 네 개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았지요. 석이가 기둥 하나하나에 이승의 사계절을 새겼습니다. 첫 번째 기둥에는 봄의 꽃을, 두 번째 기둥에는 여름의 물결을, 세 번째 기둥에는 가을의 이삭을, 네 번째 기둥에는 겨울의 눈꽃을 새겼지요.

귀신들이 그 기둥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어머나, 이게 꽃이야. 나무에 꽃이 피었어!"

"물결이 출렁출렁 움직이는 것 같소!"

"눈이야, 눈! 눈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소?"

석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나무에서 냄새가 나겠소. 눈으로 보기에 그럴 듯할 뿐이지."

그러나 석이도 알고 있었지요. 자신의 솜씨에 무언가가 더해지고 있다는 것을. 귀신들의 사연과 그리움이 나무 속에 스며들어 이승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을. 석이의 손이 깎고, 귀신들의 마음이 채우고, 그렇게 문루는 점점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습니다.

대들보가 올라가고, 서까래가 걸리고, 도리가 얹혀졌지요. 석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할 때면, 저승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어스름의 세계. 그 속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떠돌고 있었지요. 어떤 이는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어떤 이는 주저앉아 울고, 어떤 이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문루가, 저 사람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승의 입구에 서 있는 문이니, 들어오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것이 이 문루일 텐데.'

석이가 문루의 처마 끝을 깎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이 문루만큼은 따뜻하게 만들자. 죽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처음 보는 것이 차갑고 무서운 문이 아니라, 이승의 온기가 남아 있는 문이면 좋겠다.'

석이의 끌이 처마 끝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새겼습니다. 이승에서 아침마다 울던 참새였지요. 그 옆에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 처마 끝을 따라 참새들이 줄지어 앉았습니다.

귀신들이 그 참새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지요.

"참새. 우리 집 지붕에도 참새가 앉곤 했는데."

석이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목수는 울지 않는 법이니까요. 대신 끌을 더 단단히 쥐고, 더 정성스럽게 나무를 깎았습니다.

문루가 점점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 7: 자신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문루에 마지막 기와가 올라가던 날이었습니다. 석이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문루 앞에 섰지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았습니다.

네 개의 기둥이 곧게 서 있었고, 기둥마다 이승의 사계절이 살아 숨 쉬고 있었지요. 대들보는 용의 등처럼 힘차게 휘어져 있었고, 서까래는 부채살처럼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처마 끝의 참새들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생생했고, 지붕의 기와는 비늘처럼 촘촘하게 맞물려 있었지요.

석이가 자신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잘 지었다. 내 평생 이보다 더 잘 지을 수는 없을 거다.'

귀신들이 모여들어 문루를 올려다보며 감탄했지요.

"이건 저승의 문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 같소."

"들어갈 때 무섭지 않겠어. 참새가 맞아주니까."

"따뜻해. 나무에서 온기가 나오는 것 같아."

그때 대전 쪽에서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쿵, 쿵, 쿵.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지요. 귀신들이 양쪽으로 물러나고, 그 사이로 염라대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차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지요.

염라대왕이 문루 앞에 섰습니다. 거대한 체구로 문루를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마치 산이 산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염라대왕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습니다.

"허, 이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염라대왕이 기둥에 새겨진 봄의 꽃을 손으로 어루만졌습니다. 그 거대한 손이 꽃잎 위를 지나갈 때, 기둥에서 미세한 꽃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했지요.

"나무에서 이승의 냄새가 난다. 봄바람 냄새, 여름 소나기 냄새, 가을 들판 냄새, 겨울 눈 냄새. 석이, 그대는 이 나무에 이승을 통째로 담았구나."

석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 솜씨만은 아닙니다. 이곳의 분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나무 속에 스며든 것입니다. 그분들의 그리움이 나무에 온기를 준 것이지요."

염라대왕이 석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무언가 깊은 것이 담겨 있었지요.

"겸손하면서도 진실한 말이구나. 그대의 솜씨에 만족한다, 석이. 약속대로 그대를 저승에서 편히 지내게 해주마.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여라."

석이의 심장이 쿵 뛰었습니다.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것이지요. 석이가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목수의 눈이었습니다. 떨리지 않는, 곧은 눈이었지요.

"대왕마마,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말하여라."

"저를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대전 앞이 술렁거렸습니다. 귀신들이 웅성거렸고, 차사의 눈이 크게 떠졌지요.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염라대왕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편히 지내면 될 것을, 왜 고된 이승으로 돌아가려 하느냐. 이승에서는 배고픔이 있고, 추위가 있고, 병이 있고, 늙음이 있다. 이곳에는 그런 것이 없다."

석이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습니다.

"대왕마마 말씀이 옳습니다. 이승에는 배고픔도 있고, 추위도 있고, 병도 있고, 늙음도 있습니다."

석이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지요.

"하지만 이승에는, 제 아들이 있습니다."

대전 앞이 조용해졌습니다. 바람소리조차 멈춘 듯한 적막이었지요.

"돌이라고, 겨우 다섯 살 먹은 녀석입니다. 아비가 깎아준 나무 토끼를 깡총이라 부르며 껴안고 자는 녀석이지요. 그 녀석이 크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첫걸음마를 뗄 때 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비입니다."

석이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분이가 있습니다. 저와 한평생을 함께하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혼자 두고 올 수는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묵묵히 듣고 있었지요.

"대왕마마, 저승에는 배고픔이 없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이 없으면 밥을 먹는 기쁨도 없습니다. 추위가 없으면 따뜻한 아랫목의 고마움도 없습니다. 병이 없으면 낫는 기쁨도 없고, 늙음이 없으면 함께 늙어가는 정도 없습니다."

석이가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저는 목수입니다. 나무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가 만든 물건에 혼이 깃든다 하셨지요. 그 혼은 제가 불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시간이 제 손끝을 통해 나무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저승에서 아무리 좋은 나무를 깎아도, 이승의 삶이 없으면 나무에 혼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귀신들 사이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그러니 대왕마마, 저를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승에서 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제 수명이 다하는 날 기꺼이 다시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그때는 더 좋은 솜씨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 오겠습니다."

석이가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전 앞에 긴 침묵이 흘렀지요.

염라대왕이 한참을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 귀신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지요.

이윽고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석이."

"예."

"고개를 들어라."

석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얼굴에 처음 보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지요. 무서운 표정도 아니고, 위엄 있는 표정도 아닌,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표정이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혼이란 것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지, 죽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탐을 낸 것은 네 솜씨가 아니라, 네 솜씨에 담긴 삶이었구나."

석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요.

"대왕마마."

"가거라, 석이. 이승으로 돌아가거라."

※ 8: 그는 이후 저승에서 본 것을 가슴에 묻고, 더 겸허한 장인으로 살아간다

석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간신히 버티며 깊이 절을 올렸지요.

"감사합니다, 대왕마마.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염라대왕이 손을 내저었습니다.

"은혜라 하지 마라. 그대가 지어준 문루가 그대의 은혜를 이미 갚고도 남았다. 다만 한 가지 약속하여라."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이승에서 본 것을, 저승에서의 일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는 섞이지 않는 것이 이치이니라."

석이가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가슴에 묻겠습니다."

염라대왕이 차사를 돌아보았지요.

"석이를 이승으로 데려다주어라. 왔던 길을 되짚어 가거라."

차사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석이를 처음 데리러 왔던 그 차사였지요. 깊은 우물 같은 눈에 이번에는 분명한 감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안도인지, 존경인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석이는 알 수 없었지만, 차사의 눈이 이전보다 따뜻해 보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석이가 돌아서려는데, 귀신들이 우르르 다가왔지요.

"목수 양반, 가시오? 벌써 가시오?"

허리 굽은 노인 귀신이 석이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승에 돌아가시면, 봄에 진달래 한 번 보아주시오. 내 대신."

엿 장수였던 귀신이 말했지요.

"장터에 가시거든 엿 한 조각 사 드시오. 내 생각하면서."

베를 짜던 귀신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다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주시오."

석이가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지요. 차가운 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잊지 않겠소. 여러분의 이야기를, 여러분의 마음을. 이 가슴에 담아 가겠소."

석이가 마지막으로 문루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자신이 만든 문루가 푸른 어스름 속에 우뚝 서 있었지요. 기둥에 새긴 사계절이 은은하게 빛나고, 처마 끝의 참새들이 금방이라도 지저귈 것 같았습니다. 이승의 온기를 품은 저승의 문. 석이의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아렸습니다.

'잘 있거라.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이곳에 두고 가는구나.'

차사가 앞장서 걸었고, 석이가 뒤를 따랐습니다. 궁궐을 나서고, 긴 길을 걸어 다시 황천강에 이르렀지요. 사공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배가 강가에 매여 있었습니다.

배에 올라 강을 건너기 시작했지요. 노가 물에 닿을 때마다 찰박, 찰박. 이번에는 올 때와 반대였습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 희미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고향 마을의 모습이 선명해졌습니다. 개울물 소리가 들려왔지요. 이웃집 아주머니의 웃음소리, 장터의 왁자지껄한 소리, 마을 개의 짖는 소리. 이승의 소리들이 하나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돌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요.

"아버지! 깡총이가 깡총깡총 뛰어요!"

석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돌이야, 아비가 돌아간다. 기다려라.'

배가 강 건너편에 닿았습니다. 석이가 배에서 내려 첫 발을 디딘 순간, 발밑에서 풀냄새가 올라왔지요. 살아 있는 풀의 냄새. 이승의 냄새였습니다.

차사가 석이를 이끌고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안개가 점점 옅어지고, 돌길이 흙길로 변하고, 흑백이던 세상에 색이 돌아왔지요. 하늘이 파래지고, 나무가 푸르러지고, 흙이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마을이 보였습니다. 석이의 마을이었지요. 새벽이었습니다. 동쪽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닭이 홰를 치며 울고 있었지요.

차사가 마을 어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여기까지요, 석이."

석이가 차사를 돌아보았지요.

"고맙소, 차사. 당신이 첫날 하루의 말미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돌이에게 토끼도 남기지 못하고 갔을 것이오."

차사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처음 보는 미소였지요.

"나도 한때는 이승에서 아비였소."

그 한마디를 남기고 차사가 몸을 돌렸습니다. 안개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윽고 사라졌지요. 아침 햇살이 안개를 걷어내듯 차사의 흔적도 함께 걷어냈습니다.

석이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집 앞에 서서 문을 열었지요. 안방에서 돌이가 깡총이를 꼭 껴안고 자고 있었고, 분이가 그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석이가 소리 없이 방에 들어가 돌이의 옆에 누웠지요. 돌이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그 따뜻한 체온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살아 있구나. 내가 살아 있구나.'

분이가 눈을 떴습니다.

"여보? 언제 들어왔어요? 간밤에 어디 갔다 온 거예요?"

석이가 분이를 바라보며 웃었지요. 눈물이 맺힌 웃음이었습니다.

"아무 데도 안 갔소. 그냥, 좀 먼 데를 다녀왔소."

"먼 데라니? 무슨 소리예요?"

석이가 분이의 거친 손을 꼭 잡았습니다.

"당신 손이 참 따뜻하오."

분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석이의 눈에 담긴 깊은 감정을 읽었는지 더 묻지 않았지요. 다만 석이의 손을 꼭 쥐어주었습니다.

돌이가 잠결에 뒤척이며 석이의 품으로 파고들었지요.

"아버지, 따뜻해."

석이가 돌이를 꼭 안았습니다. 아이의 체온이, 아내의 손길이, 방안에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이 모든 것이 눈부시게 소중했습니다.

그 뒤로 석이는 더 겸허한 목수가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말수가 줄었고, 나무를 대하는 태도가 한층 깊어졌지요. 나무를 깎기 전에 한참을 어루만지고, 깎으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건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지요.

"석이, 나무한테 뭐라고 하는 거요?"

석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고맙다고 하는 거지요. 내 손에 와 줘서 고맙다고."

석이의 솜씨는 저승을 다녀온 뒤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가 만든 물건에는 이전에 없던 따뜻함이 깃들었지요. 사람들은 석이가 만든 물건을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석이만은 알고 있었지요.

저승에서 만난 귀신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그리움과 사랑이, 석이의 손끝을 통해 나무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석이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봄이면 뒷산에 올라 진달래를 바라보았고, 장터에 가면 엿을 한 조각 사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먹었지요. 저승에서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가슴속에 품은 그 기억은 평생 따뜻한 불씨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저승의 문루에 새겨진 참새들이 언젠가 정말 날아오를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석이는 가끔 혼자 생각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석이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돌이가 훌쩍 자라 아비의 연장을 물려받은 뒤에도, 석이는 매일 아침 작업장에 나가 나무를 어루만졌지요.

어느 따스한 봄날, 석이가 작업장 앞에 앉아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가 산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지요. 석이가 잔잔히 미소 지었습니다.

'참 고운 봄이구나. 이 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바람이 불었습니다. 따뜻한 봄바람이었지요. 그 바람결에 실려 아주 먼 곳에서, 참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석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지요.

이승의 하늘이었습니다. 석이가 사랑하는,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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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솜씨가 좋아 저승까지 소문난 목수 석이. 죽음의 문턱에서도 가족을 향한 사랑과 장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기에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영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스르르 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도 잊지 마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16:9, no text)

A cinematic wide shot of an old Korean traditional wooden gate (munru) standing at the mystical border between the world of the living and the afterlife. The gate is intricately carved with four seasons motifs and tiny sparrows along the eaves. A lone Korean craftsman in traditional hanbok stands before the gate holding a chisel, his back to the viewer, gazing up at the towering structure. The left side of the image shows the warm golden light of the mortal world with blooming azaleas and green hills, while the right side fades into an ethereal blue-purple misty underworld with faint ghostly figures. Dramatic lighting, volumetric fog, Korean folklore aesthetic, muted earth tones blending into supernatural blues, highly detailed wood grain textures on the gate pillars, 16:9 aspect ratio, no text, cinematic composition, digital painting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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