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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염라대왕의 저승 대토론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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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평생 목탁만 두드리며 도를 닦던 스님이 어느 날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고 염라대왕 앞에 섰습니다. 벌벌 떠는 망자들 사이에서 이 당돌한 스님은 호통을 치는 염라대왕에게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며 기상천외한 저승 토론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염라대왕마저 감탄하게 만든 스님의 통쾌하고 지혜로운 입담은 무엇이었을까요?
※ 1: 산사에서 홀연히 숨을 거둔 고승, 저승사자를 따라나서다
조선 팔도를 굽어보는 어느 깊고 깊은 명산의 자락, 사람의 발길이 닿기조차 힘든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작고 허름하지만 고즈넉한 암자가 하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암자에는 세속의 모든 욕망과 번뇌를 끊어내고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평생을 참선과 수행으로 일관해 온 도월 스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나이는 이미 여든을 훌쩍 넘겨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나무껍질처럼 패어 있었으나, 두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샛별처럼 형형하게 빛났고 목소리는 깊은 산속의 종소리처럼 맑고 웅장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월 스님을 살아있는 부처, 즉 생불이라 부르며 칭송해 마지않았으나 정작 스님 자신은 누더기 가사 한 벌과 낡은 바루 하나에 만족하며 하루 한 끼의 거친 음식으로만 연명하는 청빈한 삶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며 산속의 나뭇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님은 여느 때처럼 암자 앞마당의 평평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산새들의 지저귐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모두 스님의 귓가에서는 우주의 고요한 숨결로만 느껴지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코끝을 찌르는 짙고 비릿한 안개가 스멀스멀 산등성이를 타고 기어오르더니, 눈앞의 시야를 하얗게 가려버렸습니다. 평온하던 산사의 공기가 일순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고, 짐승들조차 숨을 죽인 듯 기괴한 적막이 암자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스님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자, 안개 속에서 검은 도포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에는 창백한 갓을 쓴 두 명의 사내가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동자는 생명이 없는 심연처럼 검고 깊었습니다. 한 손에는 붉은 글씨가 적힌 두루마리를, 다른 한 손에는 시퍼런 쇠사슬을 든 그들은 바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망자의 혼을 거두어가는 저승사자였습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저승사자의 끔찍한 모습과 죽음의 기운 앞에 혼비백산하여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 울부짖었겠지만, 도월 스님은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옛 벗을 맞이하듯 아주 평온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허허, 먼 명부의 길을 걸어 이 깊은 산속까지 오시느라 참으로 고생들이 많으셨소이다. 내 이미 며칠 전부터 꿈자리에 연꽃이 지는 것을 보고 때가 이르렀음을 짐작하고 있었거늘, 생각보다 수고로운 발걸음을 일찍 하셨구려."
저승사자들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망자의 혼을 거두어 보았지만, 자신들을 보고 이토록 태연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건네는 인간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우두머리 사자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헛기침을 하고는 굵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엄숙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도월 스님, 명부의 장부에 적힌 당신의 명운이 오늘 해시를 기하여 모두 다하였소. 이승에서의 덧없는 미련과 번뇌를 모두 내려놓고, 이제 우리를 따라 염라대왕께서 계시는 저승의 명부전으로 가야 할 시간이오. 거역하거나 도망치려 한다면 이 쇠사슬이 스님의 혼백을 꽁꽁 묶을 것이니, 순순히 따라나서시오."
"거역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리라 하였소.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자연의 변치 않는 이치이거늘, 어찌 한낱 늙은 중이 하늘의 뜻을 거역하겠소. 잠시 이승이라는 여관에 머물다 가는 것인데, 이제 본래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겠소이다. 자, 앞장서시지요."
도월 스님은 입고 있던 누더기 가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합장을 한 번 한 뒤, 미련 없이 암자를 등지고 사자들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사자들은 쇠사슬을 쓸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스님을 이끌고 저승으로 향하는 기나긴 황천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살아생전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사후세계의 풍경은 스님의 예상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음산했습니다. 해와 달이 없는 잿빛 하늘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시든 억새밭이 스산한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고, 발밑으로는 붉은 피와 고름이 섞인 삼도천이 썩은 내를 풍기며 굽이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길 양옆으로는 생전에 지은 죄를 씻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무수한 망령들이 뼈만 남은 손을 허공으로 뻗으며 구슬프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억울하여라! 내 아직 이승에 남겨둔 자식과 금은보화가 산더미이거늘, 이리 허망하게 끌려가다니!" 망자들의 처절한 통곡과 후회 섞인 비명 소리가 저승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도월 스님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옴마니반메훔을 나지막이 외며 그들의 넋을 달래주었습니다.
'가엾은 중생들이여. 살아생전 한 줌의 재물과 덧없는 권력에 눈이 멀어 영혼을 병들게 하더니,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한낱 뜬구름과 같음을 왜 알지 못한단 말인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거늘, 그토록 무거운 미련의 짐을 지고 저승길을 걸으니 그 발걸음이 어찌 무겁고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저승사자들을 따라 며칠인지 몇 달인지 모를 아득한 시간 동안 황천길을 걸어가던 스님의 눈앞에, 마침내 구름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하고 웅장한 기와지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여 극락과 지옥으로 나누는 저승의 최고 재판소, 바로 염라대왕이 좌정하고 있는 명부전이었습니다. 명부전의 문 앞에는 수천 명의 험악한 옥졸들이 창과 칼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고, 죄를 지은 망자들이 줄을 서서 덜덜 떨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포와 절망이 짓누르는 그 무시무시한 명부전의 대문 앞에서도, 도월 스님의 걸음걸이는 마치 극락정토의 연꽃밭을 거닐 듯 평화롭고 당당하기만 했습니다.
※ 2: 곡소리 진동하는 명부전, 염라대왕 앞에 꼿꼿이 선 스님
명부전의 거대하고 육중한 검은 무쇠 대문이 찢어지는 듯한 괴성을 내며 열리자, 도월 스님과 저승사자들은 죄인들을 심판하는 광활하고 서늘한 대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대전 안은 이승의 그 어떤 궁궐보다도 훨씬 더 넓고 아득했으며, 천장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으스스하게 타오르며 잿빛 공간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는 무시무시한 형벌의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이승에서 살인, 탐욕, 사기, 간음 등 온갖 중죄를 저지르고 온 망자들이 바닥에 엎드려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자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대왕마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승으로 다시 돌아가게만 해주신다면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부처님을 모시며 살겠나이다! 제발 끓는 기름 가마솥만은 면하게 해 주시옵소서!"
망자들의 처절한 절규가 명부전의 높은 천장에 부딪혀 메아리치고 있었지만, 대전 정중앙의 가장 높은 단상 위에 앉아있는 거대한 형체는 그 어떤 자비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로 저승의 지배자이자 죽은 자들의 삶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심판하는 염라대왕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마치 산 하나가 앉아있는 듯한 거대한 체구에, 붉고 검은 관복을 입고 머리에는 금빛으로 장식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숯불처럼 이글거리는 거대한 두 눈과 호랑이처럼 덥수룩한 수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오그라들 만큼 압도적인 공포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좌우로는 이승에서의 모든 언행이 낱낱이 기록된 생사부를 든 판관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죄인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대전 한쪽에는 망자가 살아생전 지은 죄를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춰준다는 업경대가 시퍼런 빛을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들은 도월 스님을 염라대왕이 앉아있는 높은 단상 아래로 이끌고 가더니, 무릎을 꿇으라는 시늉을 하며 스님의 어깨를 강하게 억눌렀습니다. 다른 망자들은 염라대왕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땅바닥에 이마를 박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지만, 도월 스님은 달랐습니다. 스님은 사자들의 억센 손길을 가볍게 뿌리치고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선 채로 단상 위의 염라대왕을 정면으로 지그시 올려다보았습니다. 두려움이나 위축됨은커녕, 오히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깊고 자애로운 눈빛이었습니다. 그 당돌하고 기이한 광경에 명부전 안의 판관들과 옥졸들조차 숨을 멈추고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엄하다! 네 이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대왕마마의 용안을 똑바로 쳐다본단 말이냐! 당장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조아리지 못할까!"
곁에 섰던 험상궂은 판관 하나가 호통을 치며 몽둥이를 치켜들었으나, 염라대왕이 크고 무거운 손을 들어 판관을 제지시켰습니다. 염라대왕은 흥미로운 듯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전을 울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 참으로 기이한 망자로다. 내 수만 년 동안 수억 명의 인간들을 이 자리에 세워 심판해 보았으나, 짐의 앞에서 이토록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는 자는 난생처음 보는구나. 너는 이승에서 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이 무시무시한 지옥의 대전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냐?"
도월 스님은 염라대왕의 호통 같은 질문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오히려 부드럽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대왕마마, 두려움이란 본디 마음에 지은 죄가 있고 잃을 것이 있는 자들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소승은 이승에 머무는 팔십 평생 동안 내 것이라 주장할 재물 한 푼 가져본 적이 없고, 남을 헐뜯거나 해코지하여 마음에 빚을 진 일 또한 없습니다. 텅 빈 마음으로 와서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어찌 지옥의 형벌이 두려울 것이며 염라대왕의 심판이 무섭겠습니까. 대왕께서 보시기에는 제가 심판을 받아야 할 망자로 보이시겠으나, 부처님의 눈으로 본다면 이승의 왕이나 저승의 대왕이나, 누더기를 걸친 늙은 중이나 모두가 덧없는 윤회의 수레바퀴 속을 떠도는 같은 중생일 뿐입니다. 어찌 중생이 중생에게 무릎을 꿇으라 강요하시는지요."
스님의 거침없고 논리 정연한 대답이 명부전의 무거운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자, 염라대왕의 짙은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습니다. 일개 인간 주제에 저승의 지배자인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스님의 오만함에 화가 나면서도, 그 당당한 기개와 심오한 철학적 깊이에 속으로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호라! 네놈이 불법을 공부했다는 중이라더니, 입놀림이 몹시도 매끄럽고 요사스럽구나. 이승의 업보를 벗어던졌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인간의 마음은 본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똥물과 같은 것! 네놈이 겉으로는 청빈한 척했을지언정,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단 한 번의 번뇌도 없었다고 짐의 앞에서 자신할 수 있단 말이냐? 여봐라 판관! 저 중놈의 이름이 생사부에 어찌 적혀 있는지 낱낱이 읽어 만천하에 고하여라!"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판관이 두루마리를 펄럭이며 펼쳐 들었습니다. 명부전의 수많은 시선이 스님의 과거 행적이 기록된 생사부로 향했습니다.
'어디 한 번 나의 죄를 낱낱이 파헤쳐 보시지요. 대왕께서 보시는 죄와 소승이 아는 진리가 어찌 다른지 오늘 이 자리에서 분명히 가려보도록 합시다.'
도월 스님은 속으로 조용히 뇌까리며, 다가올 불꽃 튀는 철학의 논쟁과 심판을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더욱 꼿꼿하게 자세를 다잡았습니다.
※ 3: 불꽃 튀는 저승 토론의 서막, 생사와 업보를 논하다
명부전의 거대한 전각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진 가운데, 판관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생사부에 적힌 도월 스님의 기록을 크고 무거운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망자의 이름은 도월. 이승의 나이 여든다섯으로, 열 살에 산사에 출가하여 평생을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려로 살았사옵니다. 재물을 탐한 기록이 전무하고, 살생은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 밟지 않으려 걸음을 조심하였으며, 자신의 식량을 굶주린 이웃에게 내어준 일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판관의 낭독이 이어질수록 명부전의 옥졸들과 다른 망자들 사이에서 경외감이 섞인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옥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먼지 한 톨만큼의 죄업조차 발견할 수 없는, 그야말로 깨끗하고 완벽한 일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불만스러운 듯 턱수염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판관의 말을 도중에 가로막았습니다.
"그만두어라! 겉으로 드러난 선행은 누구나 위선으로 꾸며낼 수 있는 법이다. 진정한 심판은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 스님이라 하였느냐? 네가 이승에서 평생 목탁을 두드리며 선업을 쌓았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네가 밥을 먹고 숨을 쉰 것조차 다른 생명의 희생과 세상의 빚을 지고 살아온 것이 아니더냐. 세상에 완벽한 선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태어난 것 자체가 업보요 죄악이다. 네가 아무리 도를 깨친 고승인 척 위세를 떨어도, 저 업경대 앞에 서면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욕망과 위선이 시퍼렇게 드러날 것이다!"
염라대왕의 쩌렁쩌렁한 일갈에 대전이 흔들렸습니다. 염라대왕은 이 고고하고 거만한 스님의 콧대를 꺾어 지옥의 엄중함을 보여주려 마음먹은 듯했습니다. 그러나 도월 스님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더 다가가 염라대왕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반박을 시작했습니다.
"대왕마마의 말씀이 일견 지당하십니다. 중생으로 태어난 이상,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세상에 빚을 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업보입니다. 하오나 대왕이시여, 맑은 물과 흐린 물의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흙탕물이 튀어 옷이 더러워졌다 하여 그 사람의 본성까지 더럽다 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진정한 업보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을 고의로 짓밟고 해치는 악한 마음에 있는 것이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짓는 자연의 빚을 죄라 칭한다면 이 세상의 바람과 구름, 산천초목조차 모두 지옥불에 떨어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망자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하나, 정작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슬픔은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스님의 날카롭고 논리적인 반박에 염라대왕은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금껏 자신의 판결에 토를 달고 덤벼드는 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 늙은 스님은 오히려 저승의 법도 자체를 뒤흔드는 논리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네 이놈! 감히 지옥의 법도를 능멸하려 드느냐!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묻겠다. 네가 그리 지혜롭다면 대답해 보아라. 만약 어떤 사내가 굶어 죽어가는 늙은 노모를 살리기 위해 남의 집 곡간에서 쌀을 훔쳤다면, 이 자는 지극한 효를 행한 선인인가, 아니면 남의 재물을 탐한 흉악한 도둑인가? 지옥의 법으로는 엄연한 절도죄로 형벌을 내려야 마땅하거늘, 네놈의 얕은 불법으로는 이 자를 어찌 구원할 수 있단 말이냐!"
염라대왕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며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명부전의 모든 눈과 귀가 스님의 입술로 집중되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참으로 우매하고 안타까운 질문이십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법의 잣대로만 세상을 재단하시려 하니, 그 속에 담긴 인간의 피눈물을 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노모를 살리기 위해 쌀을 훔친 자는 분명 세속의 법을 어긴 도둑이 맞습니다. 허나 그 마음의 뿌리는 지극한 효심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그 사내를 도둑이라는 이유로 끓는 지옥 불에 처넣으신다면, 그것은 죄를 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감정인 '사랑'과 '효'를 형벌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진정한 심판관이라면, 쌀을 훔친 죄는 이승의 감옥에서 씻게 하되, 그 지극한 효심만큼은 칭송하여 극락의 길을 열어주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죄와 벌은 종이의 양면과 같아서,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마음의 선통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자비요, 섭리인 것입니다."
스님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고, 그 논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명쾌하면서도 봄볕처럼 따뜻한 인간미를 품고 있었습니다. 명부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판관과 옥졸, 그리고 수많은 망자들조차 스님의 깊은 지혜와 자비로운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의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의 무거운 공기가 일순간에 맑게 정화되는 듯했습니다.
염라대왕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습니다. 자신이 놓은 논리적 함정을 이토록 아름답고 완벽하게 깨부순 자는 삼계(三界)를 통틀어 이 스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늙은 중놈이 보통 내기가 아니로구나. 섣불리 억지를 부려 벌을 내렸다간 내 명성이 삼계에 웃음거리가 될 터. 좋다, 네놈의 밑천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끝까지 파헤쳐 주마!'
염라대왕의 두 눈에서 승부욕과 오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승에서 건너온 작고 초라한 스님과, 저승을 호령하는 거대한 염라대왕 사이의 불꽃 튀고 기상천외한 철학 토론은 이제 막 뜨거운 서막을 열고 있었습니다.
※ 4: 염라대왕의 허를 찌르는 스님의 통쾌한 철학 배틀
도월 스님의 거침없고 자비로운, 그러면서도 한 치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논리에 명부전의 무겁고 탁한 공기가 일순간에 흔들렸습니다. 수만 년 동안 저승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며 수많은 망자들을 벌벌 떨게 하였던 염라대왕의 얼굴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당혹감과 분노,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수치심으로 인해 검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의 엄중한 법도를 세우고 악인들을 단죄하던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와 심판의 잣대가, 이승에서 갓 넘어온 한낱 늙고 초라한 스님의 세 치 혀 앞에서 이토록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대왕의 자존심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명부전 천장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기둥들이 우르릉거리며 떨렸고, 사방에서 타오르던 시퍼런 지옥의 불꽃들이 마치 미친 듯이 춤을 추며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염라대왕은 옥좌의 무쇠 팔걸이를 '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내리치며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숯불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대전을 찢어놓을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더욱 날카롭고 맹렬한 기세로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네 이놈! 늙은 중놈아! 네가 자비라는 달콤하고 요사스러운 말장난으로 지옥의 엄중한 법을 모독하고 짐의 심판을 능멸하려 드느냐! 좋다, 네놈의 그 알량한 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 한 가지 더 묻고 따져보겠다! 이승의 삶을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아라. 이승에서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평생 개미처럼 일하며 남의 것 하나 탐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도, 결국 매년 보릿고개의 굶주림에 허덕이다 병들어 짐승처럼 비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남의 피눈물을 쥐어짜고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여 배를 불린 탐관오리와 악독한 지주들은, 오히려 비단옷을 칭칭 감고 매일 밤 고기반찬을 뜯고 기생들을 희롱하며 무병장수하는 일이 이승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네놈이 입이 닳도록 부르짖는 하늘의 이치가 있고 부처의 자비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어찌하여 이다지도 악인이 승승장구하고 선인이 뼈저리게 고통받는 끔찍한 불공평을 수수방관한단 말이냐! 세상이 이토록 더럽고 모순투성이인데, 선하게 살라는 네놈의 불법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죽어서 간다는 극락이 현실에서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냐! 당장 이 모순을 속 시원히 해명해 보아라!"
염라대왕의 이 서슬 퍼런 일갈과 뼈아픈 질문은, 명부전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심판을 기다리던 수많은 망자들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깊숙이 꽂혔습니다. 사실 그곳에서 벌벌 떨고 있는 망자들 중 상당수도 이승에서 권력자들과 악덕 지주들에게 억울하게 짓밟히고 착취당하며 평생을 고통받다 억울하게 죽어온 선량하고 가엾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염라대왕의 분노 섞인 외침이 마치 자신들의 한 맺힌 속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여기저기서 격하게 공감하며 숨죽여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곡소리가 명부전을 가득 채우며 처절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하지만 도월 스님은 주변의 요동치는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한 송이 맑은 연꽃처럼 평온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스님은 분노로 씩씩거리는 염라대왕을 향해,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의 투정을 달래듯 부드럽지만 산처럼 단호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반박을 이어나갔습니다.
"대왕이시여, 노여움을 거두시고 제 말씀을 들어보시지요. 대왕께서는 명부의 주인이시나, 참으로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시각으로 우주의 거대한 섭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대왕께서 분노하시는 그 이승의 불공평이란, 고작해야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인간의 짧고 유한한 일생이라는 아주 좁은 잣대 안에서만 세상을 재단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시적인 착시 현상일 뿐입니다. 대왕의 말씀대로 이승에서 악인들이 잠시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깊은 산속 썩어빠진 나무둥치에 화려하게 피어난 독버섯과 같은 이치입니다. 겉으로는 그 빛깔이 화려하고 번성해 보이나, 그 속은 이미 썩어문드러져 스스로를 파괴하고 붕괴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스님의 맑고 깊은 목소리는 명부전의 구석구석을 울리며 망자들의 울음소리를 서서히 잦아들게 만들었고, 염라대왕의 거친 숨결조차 멈추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악인들이 이승에서 누리는 그 부당한 부귀영화와 쾌락은, 결국 타인의 억울한 원한과 피눈물이라는 무서운 빚을 영혼에 복리로 쌓아가는 끔찍한 형벌의 준비 단계입니다. 그들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마침내 대왕의 이 엄중한 심판대 앞에 서는 날, 그들이 평생토록 탐욕으로 쌓아 올린 억겁의 죄업은 태산보다 더 무거워져, 그들을 탈출할 수 없는 영원한 무간지옥의 끔찍한 고통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 것입니다. 반면에, 이승에서 아무 죄 없이 억울하게 고통받으며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간 선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십시오. 그들은 비록 육신은 굶주리고 헐벗었을지언정, 그 시련과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하며 영혼의 더러운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해탈의 씨앗을 품게 된 것입니다. 혹독한 겨울의 살을 이는 추위를 묵묵히 견뎌낸 매화나무만이, 봄이 오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법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짐승의 길을 택하지 않고 선(善)을 지켜낸 자들의 영혼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넘는 순간 이 명부전에서 가장 찬란하고 영원한 빛을 발하여 극락정토의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염라대왕의 이글거리는 눈을 꿰뚫어 보며 쐐기를 박듯 낭랑하게 외쳤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 불길로 걸어 들어가는 악인들의 그 찰나적인 이승의 쾌락을 부러워하시고 분노하시며, 영원한 극락의 평안을 향해 나아가는 선인들의 짧은 고행을 불쌍타 여기십니까. 인간의 육신이 겪는 찰나의 희로애락에 얽매여 영혼의 영원한 길을 보지 못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주의 거대한 수레바퀴와 인과응보의 완벽한 섭리를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인과응보는 인간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 명부에서부터 영원으로 이어지는 법이옵니다!"
스님의 이 엄청난 통찰력과 철학적 폭격은 염라대왕이 쳐놓은 얕은 함정과 허를 너무도 완벽하게 찔러 산산조각 내어버렸습니다. 악인의 일시적인 이승에서의 번영을 영원한 멸망과 지옥행의 전조로 명확히 해석하고, 선인의 억울한 고통을 영혼의 완벽한 정화를 위한 필연적이고 고귀한 과정으로 뒤바꾸어 설명하는 스님의 이 거대하고 완벽한 논리 앞에서는, 죽은 자들을 호령하던 지옥의 절대적인 지배자조차 더 이상 단 한마디의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명부전의 시퍼런 불꽃마저 스님의 법력 앞에 압도된 듯 일순간 고요해졌고, 판관들과 저승사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오직 이 위대한 늙은 스님의 얼굴만을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 5: 토론에서 완패한 염라대왕, 고승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다
도월 스님의 삼라만상을 꿰뚫는 일장 연설이 웅장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 후, 거대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명부전 안에는 그야말로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천둥처럼 들릴 만큼 쥐 죽은 듯한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망자들을 겁박하며 매섭게 노려보던 무시무시한 옥졸들도 어느새 자신들이 들고 있던 창과 삼지창을 슬그머니 바닥으로 내려놓았고, 죄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기록하던 판관들은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멈춘 채, 마치 살아있는 부처를 친견한 듯 넋이 나간 경건한 표정으로 꼿꼿이 서 있는 도월 스님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무거운 정적이 흐른 지 한참 뒤, 단상 위에서 굳게 입을 닫고 있던 염라대왕의 입술이 마침내 무겁게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자들을 벌벌 떨게 만들던 분노의 호통이나 오만함이 섞인 조롱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지옥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의 위대한 영혼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담아내는 참으로 무겁고도 정중한 음성이었습니다.
"허허허... 하하하하하!"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갑자기 대전을 뒤흔드는 호탕하고 거대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웃음은 분노나 광기가 아니라, 마음속의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진정한 깨달음의 웃음이었으며, 명부전의 까마득한 천장을 뚫고 저승의 잿빛 하늘 끝까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졌다... 내 오늘 아주 완벽하게 참패하였구나! 삼계의 죽음을 지배하고 섭리를 다스린다 자부하며 오만하게 굴었던 이 염라대왕이, 이승의 작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다 건너온 일개 늙은 스님의 거대한 지혜와 찬란한 법력 앞에 철저하게 굴복하고 두 무릎을 꿇었도다. 도월 스님! 그대는 썩어 없어질 인간의 껍데기를 빌려 이승의 탁한 세상에 잠시 내려갔던 진짜 살아있는 생불(生佛)이요, 살아 숨 쉬는 보살임에 틀림이 없다. 그대의 그 세상을 품는 넓고 깊은 혜안과, 모든 중생을 어루만지는 숭고하고 자비로운 마음씨는, 저승의 이 차갑고 냉혹한 법도마저 봄눈 녹이듯 따뜻하게 녹여버릴 만큼 진정으로 찬란하고 위대하도다!"
염라대왕은 쓰고 있던 금빛 면류관이 흔들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상 아래로 성큼성큼 계단을 밟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체구가 작고 누더기를 걸친 도월 스님의 코앞에 서서, 아주 정중하고 경건하게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합장하며 허리를 굽혀 깊은 존경의 예를 표했습니다. 삼라만상의 생사여탈권을 쥔 저승의 대왕이 일개 이승의 망자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는, 저승이 생겨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천지개벽할 놀랍고도 기적적인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판관들과 옥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엎드려 있던 망자들은 감격에 겨워 일제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불경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도월 스님, 짐이 그대의 깊은 법력과 넓은 지혜를 감히 얕은 잣대로 시험하려 들었던 무례함과 오만함을 부디 어여삐 용서해 주시오. 스님과 같이 티 없이 맑고 위대한 영혼은 죄인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 이 어둡고 탁한 명부전에 단 한 시도 어울리지 않는 분이오. 내 당장 하늘의 문을 열고 스님을 극락정토의 가장 높은 자리로 모실 터이니, 부디 부처님의 자비로운 곁에서 영원히 병들지 않고 슬픔도 없는 완벽한 평안을 누리시구려. 여봐라! 저승사자들은 당장 들어라! 당장 하늘의 옥황상제께 고하고, 칠색 보석과 연꽃으로 장식된 가장 화려한 황금 수레를 대령하여 도월 스님을 극락의 대문 앞까지 가장 정중하게 모시도록 하여라!"
염라대왕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은은한 향기와 함께 극락으로 향하는 거대한 황금 수레가 명부전 한가운데로 스르르 내려앉았습니다. 수레 주변으로는 천상의 선녀들이 비파를 뜯으며 스님의 승천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승의 모든 고행을 마치고 마침내 영원한 안식처인 극락으로 향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월 스님은 화려한 황금 수레를 힐끔 바라볼 뿐, 오르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염라대왕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합장을 하였습니다.
"대왕마마의 과분하고도 융숭한 칭찬, 그리고 극락으로 인도해주시려는 그 따뜻한 환대에는 늙은 중이 깊이 허리 숙여 감사드리옵니다. 하오나 대왕이시여, 소승은 저 화려한 수레에 올라 극락으로 갈 수 없습니다. 아니, 단언컨대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스님의 단호한 거절에, 염라대왕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라 부릅뜬 눈을 더욱 크게 떴습니다. 명부전의 모든 이들도 충격에 휩싸여 숨을 죽였습니다.
"아니, 스님! 대체 어찌하여 그러시오? 이승의 모든 인간이 평생을 고행하며 죽어 그토록 가고 싶어 안달하는 곳이 바로 저 고통 없는 극락정토이거늘, 어찌하여 눈앞에 활짝 열린 극락의 영광스러운 문을 단칼에 마다하신단 말이오? 짐의 배려가 부족함이라도 있단 말이오?"
도월 스님은 얼굴 가득 자애롭고 평온한 미소를 띠며, 명부전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망자들의 애처로운 얼굴을 한 명 한 명 굽어살펴 보았습니다. 스님의 두 눈에는 중생을 향한 측은지심의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대왕이시여, 참된 불자에게 극락이란 나 혼자 편안히 눈을 감고 화려한 연꽃 위에 누워 영원한 쾌락과 안식을 누리는 이기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지금 제 발밑을 굽어보십시오.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지옥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무지했던 죄를 뼈저리게 뉘우치며 피눈물을 흘리는 저 가엾은 중생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이승에서 끝없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늪에 빠져 스스로 지옥행 티켓을 끊고 있는 수많은 불쌍한 백성들이 세상에 강물처럼 넘쳐나지 않습니까. 그들이 무지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나 혼자만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마음 편히 극락정토에 앉아 부처님을 뵐 면목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의미의 극락이란, 구름 위 화려한 궁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 불에 떨어지는 고통받는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더 구원하여 그들의 뜨거운 눈물을 내 소매로 닦아주는 그 치열하고 슬픈 이승의 현장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님의 숭고하고 거룩한 다짐, 이기적인 안식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다시 고난을 자처하겠다는 그 뼈저린 보살의 서원에,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전의 모든 이들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벅찬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대왕이시여, 간곡히 청하건대 저를 저 빛나는 극락으로 보내지 마시고 다시 어둡고 탁한 이승으로 환생시켜 주시옵소서. 비록 또다시 늙고 병들며 배고픈 고통스러운 인간의 육신을 입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겠지만, 저는 기꺼이 중생들이 신음하는 이승의 진흙탕 속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 제가 가진 더 큰 깨달음과 멈추지 않는 자비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고, 그들이 죄를 지어 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바른길로 인도하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중생이 모두 성불하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처럼, 그것이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진정한 영혼의 업보이자 제 삶의 가장 벅차고 행복한 수행입니다."
※ 6: 이승으로 환생한 스님, 더 큰 깨달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다
도월 스님의 그 위대하고 거룩한 희생정신, 자신의 영원한 안식마저 초개처럼 내어던지고 짐승 같은 중생들을 구원하겠다는 무한하고 숭고한 자비심 앞에, 저승의 하늘을 호령하던 염라대왕은 더 이상 단 한마디의 말도 잇지 못한 채 굵은 감동의 눈물을 주르륵 훔쳐냈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차가운 신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기적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명부전을 지키던 흉측한 옥졸들과 심판을 기다리던 망자들도 모두 바닥에 엎드려 스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 소리 내어 엉엉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지옥이라는 공간 자체가 스님의 자비로움에 감화되어 거대한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아아... 정녕 이것이 보살의 참된 마음이란 말인가. 스님의 뜻이 정녕 중생을 향한 거룩한 희생에 있다면, 짐이 어찌 감히 하늘의 권위를 빌려 억지로 스님의 발길을 막아설 수 있겠소. 잘 알겠소. 내 스님의 그 고귀하고 아름다운 뜻을 진심으로 받들어, 저 극락의 문을 닫고 당장 이승으로 환생하는 새로운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드리리다. 부디 다시 이승으로 내려가시어, 탁하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그 험한 세상에 한 줄기 맑은 연꽃 같은 진정한 가르침을 널리널리 퍼뜨려 주시오. 내 비록 이 어두운 명부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나, 저승에서나마 스님의 그 거룩하고 위대한 행보를 매일같이 지켜보며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리다."
염라대왕이 눈물을 머금은 채 허공을 향해 거대한 소매를 크게 휘젓자, 육중하고 어두웠던 명부전의 한쪽 벽면이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쩍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지옥의 음산한 공기를 단숨에 정화시켜 버릴 만큼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생명력 넘치는 거대한 빛의 기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생사의 굴레를 넘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이승으로 통하는 성스러운 환생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명부전의 차가운 바닥에서 기이하게도 푸른 연꽃들이 하나둘씩 피어나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도월 스님은 그 환희로운 빛을 마주하며, 단상 위의 염라대왕과 눈물 흘리며 엎드려 있는 명부전의 수많은 옥졸, 그리고 가엾은 망자들을 향해 차례대로 아주 정중하고 따뜻하게 마지막 합장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대왕마마, 그리고 이승의 인연을 다하고 온 수많은 중생들이여. 부디 각자의 업을 잘 갈무리하여 평안에 이르시기를 기도하겠소. 내 이승의 어두운 곳마다 부처의 자비를 심고 돌아올 터이니, 그때 다시 웃으며 인사를 나누도록 합시다."
스님은 극락정토의 영원한 쾌락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은 채, 오직 굶주리고 병든 이승의 중생들을 다시 품에 안겠다는 굳센 결의를 다지며 그 찬란한 빛의 기둥 속으로 여유롭고 당당한,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스님의 깡마른 뒷모습이 그 압도적인 빛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때까지,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꼿꼿이 서서 굽힌 허리를 펴지 않으며 깊은 존경의 예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지옥의 가장 악독한 죄인들조차 스님의 숭고한 영혼을 가슴 깊이 기리며, 두 손을 모아 피눈물을 흘리며 참회의 기도를 소리 높여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승의 혹독한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가난하고 외진 시골 마을. 평생 남을 돕다 자신의 재산을 다 나누어주고 가난해진 어느 착하고 선량한 젊은 농부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건강하고 우렁찬 사내아기의 울음소리가 세상을 깨우듯 쩌렁쩌렁하게 터져 나왔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놀랍게도, 그 아기가 세상의 빛을 보며 첫 울음을 터뜨리던 바로 그 순간, 꽁꽁 얼어붙어 있던 농부의 집 앞마당 흙바닥을 뚫고 한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탐스럽고 맑은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푸른 연꽃송이들이 기적처럼 만발하는 천지개벽할 일어났습니다. 짙은 연꽃 향기가 온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자, 이 경이로운 기적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그 아기가 훗날 이 험악한 세상을 구원하고 중생의 눈물을 닦아줄 하늘이 내린 큰 스님이 될 것이라며 두 손을 모아 축복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로 도월 스님이, 고통받는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전까지는 결코 편안히 쉬지 않겠다는 염라대왕과의 굳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승의 진흙탕 속으로 화려하고도 눈부시게 돌아온 것입니다. 지옥의 절대적인 대왕마저 무릎 꿇고 감복하게 만든 늙은 고승의 통쾌하고 철학적인 지혜의 입담, 그리고 이기심과 탐욕의 껍데기를 완벽하게 초월하여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한 위대한 자비와 사랑의 이야기는, 훗날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습니다. 그 기막힌 염라야담은, 부당함과 착취가 만연한 험하고 거친 세상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가엾은 백성들에게,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고 선인은 영원히 빛난다는 한 줄기 시원한 사이다 같은 깨달음과, 내일을 살아갈 따뜻하고 찬란한 희망의 빛으로 영원히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엔딩 멘트
오늘 밤 여러분 곁으로 찾아간 도월 스님과 염라대왕의 기상천외하고 통쾌한 저승 토론,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승의 부귀영화보다, 타인의 고통을 위해 눈물 흘리고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는 따뜻한 자비심이야말로 저승의 절대적인 지배자마저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한 힘이었습니다. 우리 구독자님들의 하루하루 삶 속에도 도월 스님처럼 넉넉하고 맑은 지혜의 샘이 늘 마르지 않고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밤은 세상의 덧없는 근심과 두려움일랑 모두 훌훌 털어버리시고,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맑은 연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는 아주 편안하고 고요한 길몽 꾸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에 따뜻한 축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편안하고 포근한 밤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