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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거지왕의 기막힌 교육
벌거벗은 구두쇠와 보이지 않는 황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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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구두쇠 최 영감의 환갑잔치에 나타난 냄새나는 불청객! 그런데 이 거지, 뻔뻔함을 넘어 어딘가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습니다. "나를 왕처럼 모시면 보이지 않는 황금 실을 뽑는 비법을 알려주지!" 욕심에 눈이 먼 최 영감과 기상천외한 거지왕의 배꼽 빠지는 한판 승부! 과연 이 황당한 거래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부터 웃음 빵 터지는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 1: 최 영감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불청객의 등장
옛날 옛적, 인심 좋기로 소문난 남쪽의 어느 평화로운 고을에, 마을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독한 구두쇠가 한 명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자린고비를 뺨치고도 남을 최 영감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찌나 인색한지, 마당에 날아든 참새가 쌀알 하나를 물고 가면 그 참새를 잡겠다고 십 리 길을 쫓아갈 정도였다고 하니 그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런 최 영감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오늘따라 고소한 기름 냄새가 담장을 넘어 온 동네에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최 영감이 예순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환갑잔치를 크게 벌인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이웃들을 불러 모아 국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조선의 인지상정이건만, 우리의 최 영감은 달랐습니다. 자신에게 값비싼 비단이나 금붙이를 선물로 가져온 고을의 부자들과 권세가들만을 은밀하게 초청하여 그들만의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당에는 수십 명의 기생들이 화려한 비단 치마를 팔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고, 널따란 대청마루 위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듯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커다란 잉어 구이부터, 윤기가 좔좔 흐르는 쇠고기 산적, 입에서 살살 녹는 꿀 떡과 잣을 띄운 시원한 수정과까지, 그야말로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자자, 이 귀한 술 한 잔씩들 쭉 들이켜시지요! 오늘 이 최 아무개의 환갑을 축하해주러 오신 귀빈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백 년 묵은 산삼을 달여 넣은 삼신주를 준비했습니다!"
'흐흐, 이 귀한 술을 먹여두면 다음번 관아의 세금 심사 때 내 땅은 요리조리 잘 빼주시겠지. 하나를 주고 열을 얻는 것이 진짜 장사 아니겠는가!'
최 영감은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미소를 띤 채, 화려한 비단옷을 펄럭이며 귀빈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겉으로는 호탕한 척 껄껄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손님들이 고기반찬을 집어 먹을 때마다 아까워서 간이 콩알만 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하고 흥겨운 잔치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 등장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대문 밖에서 시끄러운 실랑이 소리가 들리더니, 덩치가 산만 한 머슴 돌쇠를 밀치고 누군가 마당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아이고! 이놈의 거지가 미쳤나!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이밀어! 어서 썩 나가지 못할까!"
"어허! 이 무지몽매한 녀석아! 내가 비록 겉모습은 이러하나, 하늘의 뜻을 품고 땅의 기운을 다스리는 사람이거늘! 감히 귀한 손님을 몰라보고 이리 홀대를 한단 말이냐!"
머리에는 볏짚을 대충 엮어 만든 찌그러진 갓을 쓰고, 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속살이 다 보이는 누더기를 걸친 사내였습니다. 게다가 얼굴에는 시커먼 숯검정이 묻어있고, 발에는 짝짝이 짚신을 신은 영락없는 상거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만큼은 웬만한 장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렁찼고, 허리를 꼿꼿하게 편 당당한 자태는 묘한 위압감마저 풍기고 있었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젓가락을 들고 있던 양반들은 갑작스러운 악취와 거지의 등장에 코를 쥐어 잡고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최 영감 역시 들고 있던 술잔을 내팽개치며 노발대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런 상거지 놈이 어찌 내 집 앞마당까지 들어왔단 말이냐! 당장 몽둥이로 저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치지 못할까!"
"에끼 이 사람아! 나이는 예순을 먹어 환갑을 맞았다면서, 어찌 사람 보는 눈은 동네 코흘리개만도 못한가! 당신이 지금 몽둥이로 내쫓으려는 이 사내가, 당신 집안을 천 년 만 년 만석꾼으로 만들어 줄 하늘이 내린 인연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구먼!"
거지는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최 영감을 향해 호통을 쳤습니다. 그 당당함에 머슴들도 멈칫하여 눈치만 볼 뿐이었습니다.
'아니, 저놈이 미쳤나? 그런데 천 년 만 년 만석꾼이라니... 저런 미친 소리에 솔깃하는 내가 바보지만, 저놈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단 말이지.'
돈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최 영감의 귀에 '만석꾼'이라는 단어가 쏙 박히고 말았습니다. 최 영감은 흠칫 놀라며 거지에게 다가갔습니다.
※ 2: 황금 두꺼비의 비방, 혹해버린 구두쇠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거지는 주위를 쓱 한번 둘러보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혀를 끌쯧 찼습니다.
"쯧쯧쯧...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으면 무얼 하나. 음식에 탐욕의 독이 잔뜩 서려 있어 먹으면 배탈이나 나기 십상일 터. 게다가 집터의 기운을 보아하니, 십 년 안에 재물이 뿔뿔이 흩어지고 이 집구석에 빈대만 득실거릴 상이로구나."
"뭐, 뭣이 어쩌고 어째? 이놈이 남의 잔칫집에 와서 감히 재를 뿌려? 여봐라! 당장 저놈을 멍석 말아 매우 쳐라!"
최 영감이 길길이 날뛰자, 거지는 콧방귀를 뀌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그것은 다 낡아빠진 작은 나무상자였습니다. 거지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며 신비로운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어허, 성질 급하기는. 내 비록 천하를 떠도는 거지 발싸개 같은 신세이나, 내게는 백두산 깊은 동굴에서 천 년을 수련한 도사에게 물려받은 '황금 두꺼비의 비방'이 있네. 이 비방만 깨우치면,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진짜 황금 실을 잣아낼 수 있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당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허공에서 황금 실을 뽑아낸다니,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헛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거지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고, 그가 손에 든 낡은 상자 안에서는 어쩐지 희미하게 누런 빛이 새어 나오는 것도 같았습니다.
'허공에서 황금 실을 뽑아? 저런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허나... 만에 하나, 저게 진짜라면? 평생 일하지 않고도 금송아지를 수십 마리 키울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최 영감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의심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슬그머니 손을 들어 머슴들을 물렸습니다.
"크흠! 황금 실이라... 내 너의 그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는 것은 아니나, 오늘이 내 환갑으로 좋은 날이니 특별히 덕을 베푸는 셈 치고 이야기를 들어나 보겠다. 그래, 그 비방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하하하! 역시 돈 냄새를 맡는 촉은 쥐새끼보다 빠르구먼! 이 비방을 전수받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바로 '극진한 대우'지. 황금 두꺼비의 영혼은 누추한 것을 싫어해서, 나를 삼일 밤낮 동안 조선의 임금님보다 더 극진히 모셔야만 비로소 그 비법을 전수해 줄 수 있네. 가장 따뜻한 구들장에 비단 이불을 깔고, 아침저녁으로 산해진미를 대령하며, 내 손발을 옥수수 씻듯 정성껏 씻겨야 해. 어때, 할 텐가?"
"뭐, 뭣이? 나보고 저 냄새나는 상거지를 상전 모시듯 하라고? 이놈이 정녕 미친 게로구나!"
최 영감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소리쳤지만, 거지는 여유롭게 코를 파며 돌아서려 했습니다.
"싫으면 관두시게. 저기 고개 너머 박 부자네 집으로 가야겠구먼. 그 영감은 나한테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줄을 섰었는데 말이야. 황금 실로 짠 비단옷은 박 부자 몫이 되겠군. 쯧쯧."
'아니, 박 부자 그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한테 황금을 뺏길 수는 없지! 밑져야 본전이다. 며칠 밥 좀 먹여주고 속는 셈 쳐보자. 만약 사기라면 그때 가서 뼈도 못 추리게 흠씬 패주면 될 일 아닌가.'
최 영감은 황급히 거지의 누더기 소매를 부여잡았습니다.
"아, 알겠네! 내 자네를 아주 극진히 모시지! 여봐라, 돌쇠야! 어서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고, 새로 지은 비단 요를 깔아라! 그리고 당장 잔칫상에 있는 고기와 전을 새로 한 상 가득 차려오너라!"
손님들은 영문을 몰라 수군거렸고, 냄새나는 거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조선 최고의 구두쇠 집안에 거지 상전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3: 거지를 상전으로! 최 영감의 기상천외한 수련기
그날 밤부터 최 영감 집안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소 머슴들에게 꽁보리밥에 소금국만 먹이던 최 영감이, 거지 한 명을 위해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입니다. 거지는 사랑방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대자로 누워 떵떵거리며 상전 노릇을 톡톡히 즐겼습니다.
"어허! 이 닭백숙은 너무 오래 삶아서 질기지가 않느냐! 당장 영계로 다시 고아 오너라! 그리고 막걸리가 미지근하구나. 차가운 우물물에 담가 시원하게 가져오지 못할까!"
거지의 뻔뻔한 호통에 머슴들은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아이고, 우리 영감님이 단단히 노망이 나셨나 보네. 평소엔 멸치 똥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양반이 저런 상거지한테 닭백숙을 몇 마리째 바치는 거여?"
돌쇠가 부엌에서 투덜거리자, 땀을 뻘뻘 흘리며 닭의 깃털을 뽑던 하녀가 한숨을 쉬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여. 귀신에 단단히 홀린 게지. 저 거지 양반, 씻겨놓고 보니 허우대는 멀쩡하던데, 하는 짓은 아주 진상 중에 진상이야."
하지만 가장 고통받는 것은 다름 아닌 최 영감 본인이었습니다. 거지는 황금 실을 뽑아내려면 최 영감의 몸과 마음부터 정화해야 한다며 기상천외한 수련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황금은 맑은 기운에서 나오는 법! 영감의 몸에는 그동안 모아둔 탐욕의 때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당장 마당에 나가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뒷간 청소를 맨손으로 하시게! 그래야 황금 두꺼비가 감동을 한단 말이지!"
"뭐... 뒷간 청소를... 맨손으로 하라고?! 내가 이 나이에 어찌 그런 천한 짓을..."
"오호라. 하기 싫으면 관두시게. 황금 실 비법은 박 부자에게로 갈 테니."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까짓것 뒷간 청소가 대수겠습니까!"
결국 조선 제일의 구두쇠 최 영감은 화려한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낡은 삼베 바지 차림으로 마당에 나섰습니다. 얼음장 같은 우물물을 끼얹으며 덜덜 떠는가 하면, 냄새나는 뒷간을 맨손으로 닦으며 헛구역질을 해댔습니다.
'우욱... 내 평생 이런 수모는 처음이다... 하지만 황금 실! 그래, 보이지 않는 황금 실만 얻으면 이 동네 기와집을 싹 다 사버릴 테다! 참자, 참아!'
최 영감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버티는 사이, 사랑방 창문 틈으로 그 꼴을 훔쳐보던 거지는 킥킥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크하하하! 평소에 없는 사람들 고혈을 쥐어짜더니 꼴좋다. 백성들의 똥오줌보다 더 더러운 게 네놈의 욕심인 것을 아직도 모르는구나. 어디 한번 끝까지 놀아볼까?"
거지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거지는 댓바람부터 최 영감을 불러내어 엉뚱한 주문을 했습니다.
"황금 실을 뽑을 때는 호흡이 가장 중요해! 영감, 지금 당장 마당 한가운데서 깨금발을 하고 두 팔을 파닥거리며 '나는 황금 낳는 닭이다'라고 백 번 외치시게! 목소리가 작으면 처음부터 다시야!"
환갑이 지난 양반이 머슴들 다 보는 앞에서 닭 흉내를 내라니. 최 영감의 얼굴은 터질 듯이 달아올랐지만, 황금에 눈이 먼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나, 나는 황금 낳는 닭이다! 꼬끼오! 나는 황금 낳는 닭이다! 파닥파닥!"
이를 지켜보던 머슴들과 하녀들은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고 벽에 머리를 찧을 지경이었습니다. 돌쇠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낄낄거렸습니다.
'아이고 꼬시다! 우리 거지 왕님 만세다, 만세! 평생 머슴들 짐승 취급하던 영감이 아주 꼴값 제대로 떠는구나!'
그렇게 황금을 향한 최 영감의 눈물겨운 닭 춤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과연 이 황당무계한 수련의 끝에, 황금 실은 정말로 나타날 것인가?
※ 4: 보이지 않는 황금 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라
어느덧 약속한 삼 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동안 평생 안 하던 궂은일과 해괴망측한 수련을 거듭한 최 영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했던 비단옷은 온데간데없이 구겨지고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얼굴은 핼쑥해졌으며, 온몸에서는 뒷간 청소의 여파로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반면, 삼 일 내내 산해진미를 뜯어먹으며 아랫목에서 뒹굴거리던 거지는 얼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르고 혈색이 아주 좋아져서 마치 딴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거지는 마루에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최 영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음, 영감. 삼 일 동안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며 수련에 임한 그 정성이 가상하구먼. 이제 영감의 몸에 끼어있던 탁한 탐욕의 기운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갔으니, 드디어 비방을 전수할 때가 온 것 같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드, 드디어 그 보이지 않는 황금 실을 뽑아내는 비법을 주시는 겝니까? 제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요!"
최 영감은 삭신이 쑤시는 것도 잊은 채 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을 했습니다. 눈앞에 금송아지 수십 마리가 어른거리는 듯하여 콧구멍이 벌렁거렸습니다.
"허나, 이 황금 두꺼비의 비방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네. 오직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하늘의 축복을 받아 평생 재물이 마르지 않을 '진짜 부자'의 눈에만 그 찬란한 황금빛이 보이는 법이지. 만약 눈에 욕심이 남아있거나 그릇이 작은 자가 보면, 그저 텅 빈 허공으로만 보일 터. 그러니 영감이 진짜 축복받은 상인지 오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야."
거지의 그럴싸한 말에 최 영감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내 눈에 안 보이면 어쩌지? 아니지, 아니야! 내가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부자인데 내 눈에 안 보일 리가 있나! 설령 안 보인다고 해도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되겠다. 자칫하다간 그릇이 작다며 비법을 박 부자 놈에게 홀랑 넘겨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최 영감은 속으로 단단히 다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거지는 최 영감에게 당장 고을의 모든 사람을 마당으로 불러 모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할 것 없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황금 실을 뽑아내어 기운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핑계였습니다.
최 영감의 지시에 따라 머슴들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환갑잔치 때 문전박대를 당했던 가난한 이웃들부터,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이웃 마을 부자들까지 순식간에 최 영감네 넓은 마당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청마루를 주시했습니다.
마침내 거지가 낡은 나무상자를 양손에 고이 받쳐 들고 대청마루 중앙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는 마치 신령스러운 제사를 지내듯 하늘을 향해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금두꺼비야 은두꺼비야, 천 년의 기운을 모아 이 마당에 찬란한 황금 실을 뿜어내거라! 얍!"
거지가 기합을 넣으며 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물레를 돌리듯 양손을 둥글게 굴리며 실을 잣아내는 섬세한 동작을 연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습니다.
"오오! 보이십니까, 최 영감! 이 눈부신 황금빛이! 두꺼비가 토해내는 이 굵직한 황금 실이 보이냔 말입니다!"
거지가 손에 쥔 가상의 실을 최 영감의 눈앞에 들이밀었습니다. 최 영감은 눈을 크게 뜨고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거지의 시커먼 손바닥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최 영감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 5: 벌거벗은 구두쇠와 거지왕의 통쾌한 사이다 탈출
'아니, 왜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단 말인가! 삼 일 동안 그 고생을 하며 소똥 밭을 구르고 닭 흉내까지 냈거늘! 내 욕심이 아직 덜 씻겨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내가 평생 가난하게 살 팔자라서?!'
최 영감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마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도 눈을 비비며 까치발을 들었지만, 누구의 눈에도 황금 실 같은 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웅성거리는 군중들 사이에서 거지는 혀를 끌쯧 차며 최 영감을 몰아붙였습니다.
"쯧쯧쯧... 영감의 표정을 보아하니 영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먼. 역시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어. 황금 두꺼비가 실망해서 실을 거두려 하니, 나는 이만 짐을 싸서 박 부자네 집으로 가야겠소이다."
거지가 나무상자를 닫으려 하자, 박 부자에게 금맥을 뺏길까 봐 다급해진 최 영감이 펄쩍 뛰며 거지의 바짓가랑이를 매달렸습니다.
"아, 아닙니다! 보입니다, 보여요! 어찌나 눈이 부신지 잠시 눈앞이 캄캄해져서 그랬습니다요! 아이고, 이렇게 굵고 아름다운 황금 실은 내 평생 처음 봅니다그려! 하하하!"
최 영감은 있지도 않은 허공의 실을 만지는 척하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연기에 마당에 있던 머슴 돌쇠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허허, 역시! 최 영감의 눈썰미가 살아있구먼! 자, 이 황금 실로 영감의 몸에 딱 맞는 황금 비단옷을 지어 드릴 터이니, 지금 입고 있는 그 싸구려 누더기를 당장 벗어 던지시게! 성스러운 황금 실은 인간의 천한 옷가지와 닿으면 그 빛을 잃어버리는 법이야!"
"벗으라니요?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말입니까?"
"그럼 황금옷을 마다하겠단 말이오? 선택하시게!"
부끄러움보다 욕심이 백 배 천 배는 더 컸던 최 영감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저고리와 바지를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앙상한 뼈대와 볼록 튀어나온 배를 드러낸 채, 하얀 속적삼 하나만 달랑 입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빈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옷을 입혀주는 시늉을 했습니다.
"자, 오른쪽 팔을 넣으시고... 그렇지! 이번엔 바지를 올려 입으시고! 허리띠를 질끈 매면... 오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찬란한 황금 비단옷이 완성되었소이다! 영감, 어서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사람들에게 그 귀티 나는 자태를 뽐내보시지요!"
최 영감은 여전히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속적삼 차림으로 어깨를 쫙 펴고 거드름을 피우며 마당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에헴! 다들 똑똑히 보아라! 이것이 바로 하늘이 내린 진짜 부자만이 입을 수 있다는 황금 비단옷이니라! 어떠냐,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도 못하겠지? 하하하!"
우스꽝스러운 춤사위까지 곁들이며 마당을 헤집고 다니는 최 영감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뒹굴며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푸하하하! 우리 영감님이 드디어 노망이 단단히 나셨네!"
"아이고 배야! 구두쇠 영감이 벌거벗고 춤을 춘다!"
마당이 웃음바다가 되어 정신이 쏙 빠져있는 그 틈을 타, 거지는 돌쇠를 향해 슬쩍 윙크를 날렸습니다. 그리고는 큼지막한 자물쇠가 채워진 최 영감의 곳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삼 일 동안 머슴들과 이미 짜놓은 계획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자, 마을 사람들! 하늘이 내린 황금옷을 입은 최 영감님께서 오늘 크게 한턱을 내신답니다! 곳간 문을 활짝 열어 배고픈 자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라 하셨으니, 어서들 챙겨 가시오!"
거지가 쇠지렛대로 굵은 자물쇠를 호쾌하게 내리쳐 박살 내자, 육중한 곳간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안에는 최 영감이 평생 모아둔 쌀가마니와 값비싼 비단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놀란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환호성을 지르며 곳간으로 달려가 쌀가마니를 이고 지기 시작했습니다.
※ 6: 신비한 거지왕이 남기고 간 진짜 황금의 의미
한참 마당을 돌며 뽐을 내던 최 영감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평생을 개미처럼 긁어모아 자물쇠를 세 개나 채워두었던 보물창고가 활짝 열려있고,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금쪽같은 쌀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신나게 집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아니! 저것들이 미쳤나! 감히 뉘 집 곳간을 터는 것이냐! 여봐라, 돌쇠야! 마당쇠야! 당장 저 도둑놈들을 잡아라!"
최 영감이 속적삼 바람으로 팔방뛰기를 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머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짐을 수레에 실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돌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영감님께서 황금 비단옷을 입으시고 크게 베푸신다며 거지 왕님께서 열어주신 것 아닙니까요. 저희는 그저 하명하신 대로 돕고 있을 뿐입죠, 헤헤."
"뭐, 뭣이?! 그 거지 놈! 그 냄새나는 상거지 놈 어디 갔느냐!"
최 영감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거지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그가 앉아있던 대청마루에는 그 낡은 나무상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달려가 상자를 열어본 최 영감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황금 두꺼비는커녕, 구멍 난 짚신 한 짝과 짧은 서찰 한 장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최 영감은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펼쳤습니다. 그곳에는 달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재물은 똥과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들판에 골고루 흩뿌리면 만물을 살리는 거름이 되는 법이다. 네 눈에 보이지 않던 황금 실은 헛된 욕심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오늘 네가 베푼 곡식으로 이웃들이 짓는 환한 웃음이야말로 진정 빛나는 진짜 황금임을 깨닫거라. - 백두산 도사.』
"아... 아이고... 내가 단단히 속았구나! 내 쌀! 내 비단! 내 돈!"
가을바람이 쌩하고 불어오자, 벌거벗은 최 영감의 맨살에 닭살이 돋았습니다. 춥고 부끄럽고, 억울한 마음에 그는 땅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마당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배꼽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날 이후 최 영감의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곳간을 털어간 마을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에 가을 추수가 끝나고 이자까지 쳐서 햇곡식을 갚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이웃들의 따뜻한 인사를 받아본 최 영감은, 서찰에 적힌 '진짜 황금'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최 영감은 쥐고 있던 것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짠돌이 기질은 남아있었지만, 명절에는 머슴들에게 고깃국도 끓여주고 가뭄이 들면 마을에 우물을 파주는 등 제법 사람 구실을 하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담장 너머로 멀어지는 누군가의 호탕한 껄껄 웃음소리를 들은 최 영감이 슬며시 미소를 지은 것은, 아마도 그 신비한 거지왕의 가르침이 그의 콧대 높은 옹고집을 시원하게 꺾어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욕심을 비운 자리에 사람의 온기가 채워진, 남쪽 고을의 훈훈한 전설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보이지 않는 황금 실에 홀려 벌거벗고 춤을 춘 최 영감의 기막힌 이야기, 즐겁게 들으셨나요? 꽉 쥐고 있을 때보다 나눌 때 진정한 부자가 된다는 거지왕의 가르침이 가슴에 남네요. 오늘 밤은 헛된 욕심은 훌훌 털어버리고, 따뜻한 마음만 안고 편안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스르르 잠드는 재미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