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받은 사또의 두 번째 인생, 비렁뱅이로 태어나 만난 여인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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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백성의 고혈을 짜고 기생의 치마폭에 젖어 살던 탐관오리 김 사또. 그가 눈을 뜨자, 그를 맞이한 것은 호화로운 연회장이 아닌, 염라대왕의 차가운 목소리였습니다. "네놈의 죄는 지옥에서도 씻기 어렵다!" 모든 것을 잃고 지옥 불에 떨어진 사또. 그런데, 그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인간으로 돌아가, 네가 망친 것을 바로잡아라!"
디스크립션 (300자)
『기문총화』에 실린 기이한 이야기. 지옥 불에 떨어졌던 한 남자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기회를 얻습니다. 가장 추악한 비렁뱅이의 모습으로, 자신이 지독히도 괴롭혔던 여인 '연실'의 환생을 찾아야 합니다. 과연 그는 뼈를 깎는 속죄 끝에 그녀의 용서를 받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심판의 붓끝'이 그리는 한 남자의 기적 같은 두 번째 삶.
※ 주지육림
달이 교교하게 뜬 밤, 고을 관아의 후원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백성들의 신음 소리는 높은 담에 막혀 들리지 않았고, 오직 거문고의 농염한 가락과 교태 어린 웃음소리만이 밤공기를 채웠다. 연못 정자 한가운데, 이 고을의 왕으로 군림하는 김 사또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 줄. 기름진 음식과 방탕한 생활로 불룩 나온 배가 관복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여전히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좋구나! 얼씨구!" 김 사또가 술잔을 비우자, 곁에 있던 이방이 황급히 새 술을 따랐다.
"사또 나으리, 오늘 밤을 위해 한양에서 으뜸가는 기생, 월향(月香)을 불렀사옵니다." 이방의 아첨에, 김 사또는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었다. "월향이라... 이름 한번 향기롭구나. 어디, 그 향기 한번 맡아보자꾸나."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단 치마 스치는 소리와 함께 고혹적인 여인 하나가 정자 안으로 들어섰다. 열일곱이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농염한 자태였다. 월향은 김 사또의 거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염하게 절을 올렸다. "나으리, 월향이 인사 올리옵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꿀을 바른 듯 달콤했다.
"오오... 과연. 이리 가까이 오너라." 김 사또가 손짓하자, 월향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싸구려 분향과는 다른, 은은하고 값비싼 난향(蘭香)이 김 사또의 코를 간지럽혔다. "네년의 향이, 술보다 독하구나." 김 사또가 음흉하게 웃으며 월향의 턱을 거칠게 추켜세웠다. 월향은 잠시 눈을 흘겼으나, 이내 교태 어린 웃음으로 화답했다. "나으리의 위엄에 비하겠사옵니까. 이 술잔을 받으시지요." 월향이 붉은 입술 자국이 선명한 술잔을 내밀었다. 김 사또는 그 잔을 받아들고는, 월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술보다... 네년의 입술이 더 달 것 같구나."
그의 거친 손이 얇은 저고리 위로 여인의 부드러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월향의 몸이 살짝 굳었으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오히려 김 사또의 품에 안기며 속삭였다. "나으리... 오늘 밤, 월향이 나으리의 시름을 잊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김 사또는 이방과 아전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물렀거라! 오늘 밤, 이 월향이와 나눌 밀어가 있으니, 개미 새끼 하나 얼씬 말라!" 아전들이 황급히 물러가자, 정자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거문고 소리만 남았다. 김 사또는 월향을 거의 눕히다시피 끌어안았다. "네년의 그 고운 살결이, 오늘 밤 내 수청을 들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의 손이 월향의 저고리 고름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사또 나으리! 사또 나으리! 제발... 제발!" 관아 밖에서 웬 여인의 절규가 들려왔다. 애간장을 끊는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김 사또의 표정이 일순간 구겨졌다. "웬년이냐! 이놈들아! 저년의 주둥아리를 틀어막지 않고!" "사또 나으리! 억울합니다! 옥에 갇힌 제 서방은 죄가 없습니다! 나으리가... 나으리가..." 여인의 목소리는 이내 아전들의 윽박지르는 소리와 몽둥이 소리에 묻혀버렸다. 월향이 김 사또의 굳은 얼굴을 살폈다. "나으리... 심기가 불편하신 듯합니다." 김 사또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다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운 파리 떼일 뿐이다. ...자, 월향아. 아까 하던 것을 마저 해야지. 네년의 향기에 취해, 저런 더러운 소리는 잊어야겠다." 그는 밖의 울부짖음을 애써 무시한 채, 월향의 붉은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밖에서는 한 여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가, 안에서는 한 사내의 탐욕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기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 저승의 문턱
월향과의 뜨겁고도 방탕한 밤이 지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김 사또는 곤죽이 되어 제 침소로 돌아왔다. 온몸에서 진한 분 냄새와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인생이지. 힘없는 것들은 울부짖고, 힘 있는 자는... 이리 안락하게 누리는 것.' 그는 월향의 부드러웠던 살결과 교태를 떠올리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잠. 그러나 다시는 깨어날 수 없는 잠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김 사또는 코를 찌르는 한기에 눈을 떴다. "으음..." 이상했다. 분명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에 누웠는데, 마치 얼음장 위에 누운 것처럼 온몸이 시렸다. 눈을 떠도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아까까지 그를 감싸던 비단 이불도, 월향의 체취도 없었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방! 아전 놈들! 어서 불을 밝히지 않고!" 그는 호통을 쳤지만, 제 목소리조차 메아리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그제야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솜처럼 무거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푸르스름한 불빛 두 개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도깨비불인가. "누... 누구냐!" 김 사또가 소리쳤다. 불빛이 가까워지자, 그것은 불빛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한 두 존재의 눈빛임을 알았다. 검은 갓에 검은 도포.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 한 손에는 명부(冥府)를, 다른 한 손에는 시뻘건 쇠사슬을 든 저승사자들이었다. "김 아무개. 네놈을 데리러 왔다." 쇠가 긁히는 듯한,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무... 무슨 소리냐! 내가 김 사또다! 네 이놈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김 사또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호패도, 아무것도 없었다.
"네놈의 벼슬은 인간 세상에서나 유용한 것." 한 사자가 비웃듯 말했다. "염라대왕 전에서는, 네놈의 재물이 아니라 네놈의 죄를 센다." "죄? 내... 내가 무슨 죄를!" 김 사또가 발악했지만, 다른 사자가 쇠사슬을 휙 던졌다. 쩌렁! 쇠사슬이 그의 목에 정확히 감겼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그의 몸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갔다. "끄으윽! 나... 나는 억울하다! 나는...!" "억울한지 아닌지는, 대왕 전에서 밝혀질 터. ...가자." 사자들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김 사또는 질질 끌려갔다. 방금 전까지 그가 있던 따뜻한 안방도, 월향의 교태도, 그가 긁어모은 재물도 모두 사라졌다. 끝도 없는 어둠 속, 안개가 자욱한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꿈이다... 이건 분명 악몽이야.' 하지만 목을 조이는 쇠사슬의 차가운 감촉은 너무도 생생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아... 안 돼!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없다! 내가 모은 돈이! 내 명예가! 월향아! 나를...!" 그의 절규는 아무도 없는 황천길에 공허하게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고을의 왕이었던 그는, 이제 저승의 가장 미천한 죄인으로 전락하여, 심판의 장소로 끌려가고 있었다.
※ 염라의 심판
얼마나 끌려갔을까. 안개가 걷히고, 거대하고 위압적인 전각이 나타났다. '염라전(閻羅殿)'. 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김 사또는 오금이 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승사자들이 그를 개 끌듯 끌어, 염라대왕의 앞으로 내던졌다. "대왕 전이시다! 엎드려 죄를 고하라!"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은 산처럼 거대했고, 그 눈빛은 지옥 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네놈이... 고을의 백성을 돌보라 보냈더니, 제놈의 배만 채운 김 아무개렷다!" 천지를 울리는 호통에 김 사또는 혼비백산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대... 대왕 전하! 소인은...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그저... 관례대로..."
"관례?" 염라대왕이 코웃음을 쳤다. "네놈의 관례 때문에 굶어 죽은 백성이 몇이며, 네놈의 탐욕에 찢겨 죽은 가정이 몇인지 아느냐!" 염라대왕이 손을 휘젓자, 거대한 거울, 업경대(業鏡臺)가 나타났다. 거울 속에는 김 사또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뇌물을 받고 죄인을 풀어주는 모습, 세금을 수탈하기 위해 무고한 백성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모습, 그리고... 어젯밤 월향의 치마폭에 안겨, 밖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던 모습까지. "저... 저건..." 김 사또는 변명할 말을 잃었다.
"네놈의 죄는 차고 넘치나, 그중에서도 가장 악한 죄가 있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업경대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3년 전, 그가 이 고을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고을에서 가장 어질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연실'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가난한 선비의 아내였지만, 그 부부의 금슬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김 사또는 우연히 연실을 보고, 그 미색에 흑심을 품었다. "저... 저년은..." "네놈이 저 여인을 탐하여, 그 남편에게 역모죄를 뒤집어씌웠지." 염라대왕의 말에 김 사또는 사색이 되었다.
거울 속, 연실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김 사또를 찾아가 무릎 꿇고 애원했다. "사또 나으리! 제 서방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때 김 사또는 연실에게 추악한 제안을 했다. "네년이 오늘 밤 내 수청을 든다면... 네 서방의 목숨을 고려해 보겠다." 연실은 피눈물을 흘리며 거절했다. 그러자 김 사또는 그녀의 남편을 고문하여 죽이고, 연실을 강제로 취하려 했다. 연실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울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연실의 마지막 눈빛이, 김 사또를 향했다. 그 눈에는 원망도, 분노도 아닌,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끄아아악!" 김 사또는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 애써 외면했던 죄악이었다. 그때, 염라전 한가운데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연실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말없이, 거울 속의 그 슬픈 눈으로 김 사또를 바라보았다. "연... 연실아! 내...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다오!" 김 사또가 기어가려 했지만, 환영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네놈의 탐욕과 색욕이, 한 가정을 파괴하고 두 개의 귀한 목숨을 앗아갔다!" 염라대왕이 심판의 붓을 들었다. "저놈을 당장 발설지옥(拔舌地獄)과 화탕지옥(火湯地獄)으로 보내라! 그 후에는... 축생으로 환생시켜, 천 년간 인간에게 도륙당하는 고통을 겪게 하라!" 판관이 외치자, 지옥의 문이 열리고 흉측한 옥졸들이 쇠꼬챙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 기회와 속죄
"으아아악! 살려주십시오! 대왕 전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김 사또는 옥졸들에게 붙들려 끌려가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피가 나도록 빌었다. 월향의 부드러운 살결을 탐하던 그 손으로, 이제는 차가운 지옥의 바닥을 긁으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추악한 모습에 옥졸들이 비웃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기 싫다... 이대로 짐승이 될 수는 없어!'
그의 절박한 외침이 울려 퍼질 때, 염라전의 한쪽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왕이시여, 잠시... 심판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고개를 돌리자, 자비로운 인상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서 있었다. "지장보살이시여, 어인 일이십니까. 저놈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염라대왕이 붓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지장보살은 김 사또를 가리켰다. "물론입니다. 허나, 대왕이시여. 저 자의 눈을 보시옵소서." 김 사또의 눈. 그곳에는 지독한 공포와 함께, 방금 전 연실의 환영을 보고 흘렸던... 아주 희미한, 그러나 진실된 '후회'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놈은 평생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으나, 방금 처음으로 제 죄의 무게를 깨닫고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렸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터... 그에게 스스로 속죄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염라대왕은 지장보살의 말에 한참을 침묵했다. 김 사또는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좋습니다. 보살의 뜻을 따르지요." 염라대왕이 붓을 내려놓았다. "김 아무개. 네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김 사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왕 전하!"
"기뻐하긴 이르다."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네놈을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내겠다. 허나, 부와 명예를 누리던 김 사또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네놈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미천한 '비렁뱅이'의 몸으로 깨어날 것이다." "...예? 비... 비렁뱅이라니요!" "네놈이 평생 멸시하고 짓밟았던, 바로 그 모습이다. 너는 그 몸으로, 네가 죽게 한 여인, 연실의 환생을 찾아야 한다." 염라대왕이 업경대를 다시 비추었다. 거울 속에는, 한적한 시골 주막에서 힘들게 일하는, 연실과 똑같이 생긴 젊은 과부의 모습이 비쳤다. '박 과부'라 불리고 있었다. "저... 저 여인이..."
"그렇다. 저 여인이 연실의 환생이다. 네놈은 저 여인을 찾아가, 네놈의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헌신하고, 그녀가 겪을 또 한 번의 겁(劫)에서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입에서 진심 어린 '용서'의 말을 듣게 된다면... 그때야 비로소 네놈의 영혼은 구원받고,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만약... 만약 실패한다면요?" "실패하거나, 혹은 또다시 네놈의 추악한 욕망을 앞세운다면... 그때는 네놈의 영혼은 영원히 소멸할 것이다. 어떠냐, 하겠느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니, 연실의 환영을 본 순간부터,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하...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대왕 전하!" 김 사또가 절박하게 외쳤다. "좋다. 심판의 붓끝은... 네놈의 손에 달렸다." 염라대왕이 손을 휘두르자, 김 사또의 몸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다시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비렁뱅이의 삶
"커억...!"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김 사또는 눈을 떴다. 지옥의 유황불 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것은 지독한 악취와 뼛속까지 시린 한기였다. "여... 여긴..." 그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쑤시고 뼈마디가 부서질 듯 아팠다. 제 손을 내려다본 그는 경악했다. 월향의 살결을 어루만지던 희고 기름진 손은 간데없고, 때가 꼬질꼬질 끼고 여기저기 터져 피딱지가 앉은, 늙은 거지의 손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은 누더기였고, 온몸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허름한 다리 밑에 쓰러져 있었다. "아... 안 돼... 이게, 이게 내 모습이란 말이냐!"
그는 비틀거리며 냇가로 기어가 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았다. 수면에는, 그가 평생 멸시하던, 낯선 비렁뱅이 늙은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으아아악!" 그는 절망했다. 하지만 절망도 잠시, 뱃가죽이 등에 붙을 듯한 지독한 허기가 몰려왔다. "배... 배고파..." 그는 평생 '배고픔'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잣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코를 막고 침을 뱉었다. "저리 꺼져, 이 더러운 놈아!" "냄새난다!" 아이들은 돌을 던졌다. 그는 맞고, 뒹굴고, 쫓겨났다.
며칠을 굶었는지 몰랐다. 그는 사또 시절,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모습으로,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음식을 주워 먹으며 연명했다. '이것이... 이것이 벌이구나.' 그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어느 작은 주막 처마 밑에 쓰러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때, 주막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나왔다. "아이고... 밖에서 이러고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어르신." 따뜻한 목소리. 김 사또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 숨이 멎는 듯했다. 업경대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인. 연실과 똑같이 생긴, '박 과부'였다. 그녀는 연실처럼 고왔지만, 고된 삶에 찌든 듯 얼굴에는 수심이 어려 있었다. 박 과부는 그를 멸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김이 나는 멀건 죽 한 그릇을 들고 나왔다. "이거라도 좀 드세요.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 김 사또는 떨리는 손으로 죽 그릇을 받아들었다. 따뜻한 온기. 그는 10년 만에,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유 없는' 친절을 받았다. 그는 죽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흐... 흐흑..." 박 과부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 우세요, 어르신?" "아... 아니오... 너무... 너무 맛있어서... 흐흑..." 그는 평생 먹어본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이 멀건 죽 한 그릇이 더 달고, 더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울고 싶었다. '연실아... 내가... 내가 왔소...!'
※ 진정한 속죄
박 과부는, '김 영감'이라 불리게 된 그 비렁뱅이를 내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 약해졌는지, 주막 뒤편의 낡고 바람 새는 광 한쪽을 내어주며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대신... 앉아서 죽만 축낼 순 없으니, 저기 쌓인 장작이라도 좀 패주셔야겠어요. 몸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김 영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붓과 호패, 술잔만 잡던 그 희고 기름진 손으로, 난생처음 묵직한 도끼를 잡았다.
손바닥이 터지고,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났다. 도끼 자루는 그의 연약한 손을 비웃듯 미끄러졌고, 장작은 쪼개질 생각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자신이 평생 무시했던 '일'의 무게가 이 정도였구나. 박 과부가 가져다주는 멀건 죽 한 그릇을 먹을 자격이라도 얻어야 했다. 그렇게 그의 머슴살이가 시작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차가운 마당을 쓸고, 산에서 나무를 해 오고, 얼음장 같은 우물물을 길어 무거운 물동이를 날랐다. 그가 평생 '아랫것들'에게 소리나 지르며 시키기만 했던 일들이었다.
처음 며칠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근육통에 신음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신기하게도, 정직한 땀을 흘리고 몸이 고단해질수록, 지옥에서 그를 괴롭히던 악몽과 가위를 누르던 죄책감이 아주 조금씩 옅어지는 듯했다. 그는 밤마다 잠든 박 과부를 몰래 지켜보았다. 그녀는 늦은 밤까지 홀로 술상을 치우고, 낡은 옷을 꿰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따금 손님으로 온 난봉꾼들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희롱할 때면, 그녀는 애써 웃으며 그 손을 뿌리치곤 했다. '내가... 내가 저 여인의 삶을 이리 고단하게 만들었구나. 전생의 업이, 이생까지 이어졌구나.'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는 그저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위험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느 늦은 밤, 박 과부가 주방에서 "아야...!" 하는 소리와 함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김 영감이 몰래 들여다보니, 그녀가 무거운 술상을 나르다 발목을 접질려, 퉁퉁 부어오른 발목을 붙잡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김 영감은 망설였다. 냄새나는 비렁뱅이 늙은이가 감히 주막 마님의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는, 그의 망설임을 이겼다. 그는 주막 안으로 절뚝거리며 들어섰다.
"마... 마님. 괜찮으십니까." 박 과부가 화들짝 놀라, 눈물 젖은 얼굴을 소매로 가렸다. "아... 아니, 영감. 여긴 어쩐 일로..." "발목을... 다치신 듯하여... 의원을..." "됐어요... 이 밤에 무슨 의원. 돈도 없고...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죠." 박 과부가 고개를 저었다. 김 영감은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제가... 사또 시절에... 아니, 젊었을 적에 사람을 다루는 의원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있소."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하얀 버선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박 과부가 화들짝 놀라 발을 빼려 했지만, 김 영감의 손길은 절박하고도 진지했다. "가만히 계시오. 뼈가 어긋났으면 큰일이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버선을 벗겼다. 희고 고운 발이, 퉁퉁 부어 붉게 변해 있었다. 김 영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거칠고 투박하며, 때가 낀 제 손으로... 그녀의 부드럽고 하얀 발목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박 과부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낯선 사내의 손길. 그것도 이토록 거친 비렁뱅이의 손길이 제 살에 닿는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김 영감의 손길은 음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성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조금... 아플 것이오." 그는 그녀의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뼈를 맞췄다. 그의 거친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가, 얼음장 같던 그녀의 발목을 감쌌다. 박 과부는 낯선 사내의 손길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듬직하고 뜨거운 기운이 발목을 타고 올라와, 꽁꽁 얼었던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거친 땀을 뻘뻘 흘리며 제 발목에 집중하는 김 영감의 헝클어진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떠시오. 좀 나아졌소?" 김 영감이 물었다. 박 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영감. 한결... 낫네요. 어찌 이리 잘..." 그 순간, 김 영감은 깨달았다. 이것이 '사랑'임을. 월향을 탐하고 연실을 탐했던, 그 불타는 '욕정'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이 아프지 않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꼈고, 그 사랑은 그의 더러운 영혼을 조금이나마 정화시키고 있었다.
※ 심판의 붓끝
평화도 잠시, 박 과부에게 연실의 삶을 망쳤던 그 끔찍한 겁(劫)이 다시 찾아왔다. 고을에 새로 부임한 조 사또가, 박 과부의 미색을 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김 영감이 전생에 하던 짓을 똑같이, 아니 더욱 악랄하게 되풀이했다. 억지로 세금을 물리고, 주막에 잡배들을 보내 행패를 부리며, 트집을 잡아 주막의 문을 닫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마침내, 험상궂은 아전들을 보내 박 과부를 강제로 끌고 오라 명했다. "네 이년! 사또 나으리의 명이다! 얌전히 따라오지 못할까!" 아전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박 과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마님! 안 됩니다!" 그 순간, 땔감을 지고 돌아오던 김 영감이 지게를 내던지며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이 늙은 거지가 미쳤나! 썩 비키지 못해!" 아전들이 그를 발로 찼지만, 김 영감은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박 과부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퀭했던 눈이, 지옥 불처럼 이글거렸다.
"네 이놈들!" 김 영감이 사자후를 토했다. 그 목소리에는, 비렁뱅이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전직 사또의 서슬 퍼런 위엄이 서려 있었다. "너희가 지금 하는 짓이, 국법에 얼마나 위배되는지 아느냐! 대명률(大明律)에 이르기를, 관리가 사욕을 채우고자 민가의 부녀자를 겁박함은 중죄이며, 또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르기를, 직위를 이용해 백성의 재물을 탐하는 것은...!" 김 영감은 전생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법 조항을 줄줄 읊으며 아전들을 꾸짖었다. 아전들은 그 기세에 눌려 잠시 주춤했다. "이... 이 영감이... 미친 게 아니라, 글줄이라도 읽었나!"
그들의 당황은 곧 분노로 변했다. "어디서 배운 글줄로 감히 관을 능멸해! 늙은 것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분노한 아전들이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마님! 어서! 어서 뒷문으로 피하시오!" 김 영감은 박 과부를 뒤로 밀치고, 날아드는 몽둥이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등골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피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박 과부를 지켜야 했다. 이생에서마저 그녀를 잃을 수는 없었다.
"죽여라! 저놈을 죽여!" 아전들의 몽둥이가 비 오듯 쏟아지던 그때. "멈추어라! 암행어사 출두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마패를 든 암행어사와 역졸들이 주막 안으로 들이닥쳤다. 사실, 김 영감은 조 사또의 횡포를 눈치채고, 며칠 밤낮을 굶어가며 한양으로 가는 길목을 지켜, 암행 중이던 어사에게 피로 쓴 격한(檄文)을 올렸던 것이다. 조 사또와 아전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포박당했다.
"김 영감! 영감! 정신 차려요! 영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김 영감을, 박 과부가 울부짖으며 끌어안았다. 김 영감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박 과부의 손을 잡았다. "마... 마님... 부디... 무사하셔서... 다행... 이오..." 그는 박 과부의 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했다. 전생의 자신이 바로 그녀를 죽게 한 탐관오리 '김 사또'였으며, 그녀가 '연실'의 환생이라는 것.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끔찍한 죄와, 지옥에서의 심판, 그리고 이 속죄의 기회까지.
박 과부는 모든 것을 듣고, 충격에 빠졌지만... 이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이 늙고 남루한 남자의 진심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김 영감의 피 묻은 얼굴을 적셨다. "영감... 아니, 당신... 당신의 전생은 내가 모르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당신은, 나를... 나를 구해주신 은인이오. 전생의 김 사또는... 내가 용서할 수 없지만, 지금의... 김 영감, 당신은... 당신을... 용서하겠소. 진심으로... 용서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김 영감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가듯 영혼이 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지독한 고통이 사라지고, 그의 쭈글쭈글하고 상처투성이였던 얼굴이... 점차 평온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비렁뱅이의 늙은 몸이 아니라, 건강하고 기골이 장대한 장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찢어진 누더기는 깨끗한 무명옷으로 변해 있었다. "아..." 며칠 후, 몸을 회복한 그는 더 이상 비렁뱅이 '김 영감'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김 서방'이 되었다. 암행어사는 이 모든 기적을 목도하고, 조 사또에게서 몰수한 재산의 일부를 박 과부에게 주어, 그녀가 새 삶을 살도록 도왔다.
두 사람은 주막을 함께 꾸려가며, 가난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맑은 날, 두 사람이 마당에서 나란히 빨래를 널고 있었다. 박 과부, 아니 이제 '연화'라 불리는 그녀가 웃었다. "김 서방, 당신을 만난 게... 지옥이었는지, 천당이었는지 모르겠소." 김 서방이 그녀의 거칠어진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나는... 지옥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 비로소 천당에 왔소. 연화 마님."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심판의 붓끝이 그려낸 자비롭고 행복한 결말처럼, 마당 가득 울려 퍼졌다.
유튜브 엔딩멘트
지옥에서 돌아온 사또, 김 서방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백성의 고혈을 짜던 탐관오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땀의 가치와 헌신,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마침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염라대왕의 심판은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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