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저승 법정에 끌려온 살인자, 억울한 넋의 한을 풀어준 염라대왕의 저울 [계서야담]
이승에서 죄를 감추고 떵떵거리던 살인자가 죽어 염라대왕 앞에 끌려온다. 억울하게 죽은 넋이 저승 법정에서 마침내 입을 열자, 염라의 저울이 진실 쪽으로 기운다. 산 자의 세상에도 그 죄가 드러나 벌을 받고, 억울한 넋은 한을 풀어 편히 승천하니, 하늘의 저울은 반드시 공평하다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가 통쾌하다.
태그 (15개)
#염라대왕, #저승사자, #권선징악, #사이다, #살인사건, #억울한죽음, #저승법정, #한국기담, #전설의고향, #귀신, #한풀이, #인과응보, #오디오드라마, #계서야담
#염라대왕 #저승사자 #권선징악 #사이다 #살인사건 #억울한죽음 #저승법정 #한국기담 #전설의고향 #귀신 #한풀이 #인과응보 #오디오드라마 #계서야담


후킹멘트
이승에서 완벽한 범죄를 저지르고 떵떵거리며 살다 죽은 자여, 감히 저승의 법정마저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돌던 넋이 염라대왕 앞에 엎드려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니, 거짓으로 쌓아 올린 이승의 철옹성은 지옥의 저울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피 묻은 돈으로 호사를 누린 뻔뻔한 살인자의 끔찍하고도 통쾌한 최후, 지금부터 시작된다.
※ 1: 폭우가 쏟아지는 산길, 탐욕이 부른 피의 참극과 배신
먹물을 엎지른 듯 캄캄한 밤하늘에서 세찬 빗줄기가 채찍처럼 내리치고 있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벼락 소리가 깊은 산중을 울릴 때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유령처럼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센 폭우로 인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 산길을 두 명의 봇짐장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걷고 있었다.
"이보게 최 서방, 조금만 더 힘을 내세! 이 고개만 넘으면 비를 피할 수 있는 버려진 성황당이 하나 있을 걸세. 거기서 몸을 녹이고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떠나세나!"
앞장서서 걷던 박 서방이 빗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등에는 제법 묵직해 보이는 전대가 단단히 매여 있었다. 이번 개성 인삼 장사가 크게 성공하여 두 사람이 평생을 먹고살아도 남을 엄청난 은화를 벌어들인 터였다. 박 서방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 속에서도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에게 배불리 밥을 먹일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뒤따라 걷는 최 서방의 눈빛은 폭우 속에서도 번들거리며 섬뜩한 탐욕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짧은 헛기침을 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박 서방의 등에 매달린 불룩한 전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은화들... 저 돈이면 내 평생 이 지긋지긋한 봇짐장수 노릇을 청산하고, 번듯한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고 양반 행세를 하며 살 수 있다. 박 서방 저 미련한 위인은 그저 고향에 작은 논이나 사서 농사나 짓겠다지. 이 막대한 재물을 고작 흙이나 파먹는 데 쓰다니, 내게 온다면 천금을 호령하는 거상이 될 밑천인데 말이야.'
질척이는 진흙을 밟을 때마다 최 서방의 마음속에서는 어둡고 축축한 욕망이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느덧 두 사람은 비바람을 피해 반쯤 허물어진 성황당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내와 썩은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박 서방은 젖은 봇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살았네그려. 이번 장사가 워낙 크게 남아서, 돌아가는 길이 멀고 험해도 콧노래가 절로 나더니만, 하늘이 우리를 시샘하는지 이런 물벼락을 내리시는구먼. 최 서방, 자네도 얼른 젖은 옷을 짜게나. 감기라도 들면 큰일 나지 않겠나. 내 고향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자네 몫을 섭섭지 않게 떼어줄 터이니, 자네도 이제 장가들 밑천은 충분히 마련한 셈이야. 허허허."
순박하게 웃으며 전대를 품에 안고 짚더미에 기대어 앉는 박 서방을 보며, 최 서방은 천천히 자신의 봇짐에서 도끼자루처럼 굵직하고 단단한 참나무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산길에서 짐승이나 화적떼를 쫓기 위해 들고 다니던 호신용 무기였다. 바깥에서는 또 한 번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이 내리쳤고, 찰나의 번갯불이 성황당 안을 창백하게 밝혔다. 그 순간 번쩍이는 빛 아래 드러난 최 서방의 얼굴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탐욕에 찌들어 이성을 잃은 야차의 흉측한 얼굴이었다.
'반으로 나눌 것이 무엇 있나. 이 깊고 험한 산속, 쏟아지는 폭우 속에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 한들 그 누가 알겠는가. 하늘도 내 편이 되어 저리 천둥소리로 내 거사를 덮어주려 하지 않는가. 박 서방, 자네의 처자식은 아쉽게 되었으나... 이 돈은 내가 더 가치 있게 써주겠네.'
최 서방은 발소리를 죽인 채 짚더미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오는 박 서방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참나무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최 서방...? 지금 뭐 하..."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려던 박 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미안하네, 형님! 이승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라 생각하시게!"
둔탁하고 끔찍한 파열음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최 서방은 미친 듯이 몽둥이를 내리쳤고, 박 서방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붉은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죽어가는 박 서방의 부릅뜬 두 눈이 억울함과 원망으로 가득 차 최 서방을 노려보았지만, 피 냄새에 취한 최 서방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박 서방의 숨이 완전히 멎고 나서야 최 서방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몽둥이를 떨어뜨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박 서방의 품에서 묵직한 은화 전대를 빼앗아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자, 살인의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괴한 환희가 온몸을 감쌌다.
'그래, 잘한 일이다. 세상은 원래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이치 아니던가.'
최 서방은 성황당 뒤편의 거친 흙바닥을 미친 듯이 파내어 박 서방의 시신을 대충 구겨 넣고는, 주변의 흙과 나뭇가지로 덮어버렸다. 폭우가 쏟아져 내리며 핏자국을 말끔히 씻어내고, 파헤쳐진 흙무더기도 진흙으로 뭉개버리니 그 누구도 살인이 일어났음을 알아챌 수 없는 완벽한 은폐였다. 밤새 내린 비는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그쳤고, 최 서방은 친구의 목숨값인 거대한 은화 전대를 허리에 찬 채 유유히 산을 내려갔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한 맺힌 피눈물을 흘리며 썩어갈 옛 벗은 까맣게 잊은 채.
※ 2: 화려한 회갑연에 찾아온 검은 불청객들, 멈춰버린 시간
그로부터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비 내리던 밤의 끔찍한 진실은 오직 깊은 산속의 버려진 성황당만이 알고 있을 뿐, 세상은 최 서방을 совершенно 다른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옛 친구의 목숨을 앗아가며 빼앗은 재물로 그는 도성의 손꼽히는 거상으로 성장했다. 가난한 관직자의 족보를 사들여 번듯한 양반 가문의 어르신으로 둔갑했고, 고을 사또부터 한양의 고관대작들에게까지 뇌물을 바치며 막강한 권세마저 손에 쥐었다. 사람들은 그를 '최 대감'이라 부르며 굽신거렸고, 그가 지나갈 때면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오늘은 바로 그 최 대감이 예순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화려한 회갑연 날이었다. 으리으리한 아흔아홉 칸 기와집 마당에는 수백 명의 하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은 비단 차양이 쳐져 있었고, 산해진미가 수북이 쌓인 잔칫상 앞에서는 당대 최고의 기생들이 화려한 춤사위를 뽐내며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로 가야금을 뜯고 있었다.
"하하하! 대감마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대감마님께서 베푸신 은혜 덕에 우리 고을이 이토록 평안하니, 이는 하늘이 내리신 복통이시옵니다!"
아첨에 능한 고을 사또가 커다란 잔에 귀한 술을 가득 채워 올리며 허리를 조아렸다. 비단옷을 겹겹이 껴입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최 대감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허허허, 사또도 참! 다 내 복이 아니라 하늘이 굽어살피신 덕분 아니겠소. 사람이 떳떳하고 베풀며 살면, 하늘은 응당 그에 맞는 부귀영화를 내리시는 법이지. 자, 오늘 내 곳간을 활짝 열었으니 다들 마음껏 마시고 즐기시게나!"
'내 인생은 완벽하다. 가난뱅이 봇짐장수에서 한 고을을 쥐락펴락하는 대감이 되기까지, 내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죽은 박 서방 놈은 억울하겠지만, 그놈의 희생이 나라는 위대한 인물을 만들었으니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이승의 법도, 하늘의 눈도 내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의 권력과 재력에 취해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던 최 대감이 기생이 따라주는 술을 막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음산하고 서늘한 바람이 잔칫상 위를 훅 하고 휩쓸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가야금을 뜯던 기생들의 손놀림이 딱 멎었고, 간드러진 노랫소리도 끊어졌다. 바람결에 흔들리던 붉은 비단 차양도, 술잔을 들어 올리며 웃음 짓던 하객들의 표정도, 마치 세상의 시간이 통째로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꼼짝 않고 굳어버렸다.
"어, 어허? 왜들 이러느냐? 어찌하여 풍악을 울리지 않고 돌부처처럼 굳어 있는 게야? 사또! 사또!"
최 대감은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지만, 사또는 입을 반쯤 벌린 채 허공만을 응시할 뿐 눈동자조차 굴리지 못했다. 주변은 무덤처럼 고요했고, 귓가를 맴돌던 매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괴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얼어붙은 사람들 사이로, 짙은 안개를 뚫고 걸어오는 세 개의 기분 나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입술, 머리에는 먹물처럼 새카만 갓을 쓰고 자락이 바닥에 끌리는 검은 도포를 입은 세 명의 사내들. 그들의 발걸음은 땅에 닿지 않는 듯 스르륵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들이 내뿜는 살벌한 냉기에 최 대감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끔찍한 공포를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네, 네놈들은 대체 뉘기이기에 남의 잔칫집에 함부로 뛰어들어 요술을 부리는 것이냐! 당장 이놈들을 끌어내지 못할까! 여봐라, 하인들 뭣들 하느냐!"
아무리 발악을 하며 소리쳐도 하인들은 나무토막처럼 굳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운데 선 검은 도포의 사내가 붉은 글씨가 적힌 작은 명부를 펼쳐 들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부전의 소환장이다. 병진년 생 최기석. 병진년 생 최기석. 병진년 생 최기석. 너의 이승에서의 명운이 다하였으니, 미련을 버리고 우리를 따라 명부로 가자꾸나."
저승사자였다. 이름이 세 번 불리자, 최 대감의 숨통이 콱 막혀오며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안 된다! 내가 왜 죽는단 말이냐! 나는 아직 삼십 년은 족히 더 살 수 있을 만큼 정정하다! 내 곳간에 썩어나가는 게 금은보화요, 내 곁에는 천하제일의 명의들이 널려 있단 말이다! 이, 이보시오 사자 양반들. 내게 귀한 황금 두꺼비 열 쌍이 있소. 아니, 내 재산의 절반을 떼어줄 터이니 제발 명부에 적힌 이름 한 자만 지워주시오!"
최 대감은 바닥에 엎드려 바들바들 떨며 뇌물을 바치려 들었다. 살아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버릇이 죽음 앞에서도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입가에는 서늘한 비웃음만이 번졌다.
"어리석은 인간이로다. 네놈이 이승에서 쌓아 올린 썩은 재물이 저승의 강물 한 모금도 살 수 없음을 아직도 모르는가. 억지로 움켜쥔 목숨줄, 이제 우리가 끊어주마!"
옆에 서 있던 다른 사자가 품에서 서늘한 쇠사슬을 꺼내어 허공에 휘둘렀다. 찰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슬이 최 대감의 목을 옥죄는 순간, 최 대감의 눈앞이 번쩍하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을 느꼈다.
'헉!'
그는 허공에 뜬 채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잔칫상 앞에, 비단옷을 입은 채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거품을 물며 고꾸라져 있는 한 늙은이의 시신이 보였다. 바로 자신이었다. 살아생전 그토록 집착했던 부귀영화와 뚱뚱한 육신을 버려둔 채, 그의 영혼은 차가운 쇠사슬에 묶여 검은 안개 속으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돌아올 수 없는 길, 황천길의 시작이었다.
※ 3: 지옥문을 넘어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심판대 앞에 서다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와 날카로운 칼바람이 부는 황천길을 며칠이나 걸었을까. 발바닥은 갈라져 피가 흐르고, 목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저승사자의 사슬은 자비 없이 최 대감의 영혼을 옭아매어 끌고 갔다. 삼도천의 검고 탁한 물결을 나룻배로 건너자, 마침내 하늘이 시뻘건 핏빛으로 물든 무시무시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흑요석 기둥들이 도열해 있고, 바닥에서는 시퍼런 유황불이 뿜어져 나오는 곳. 이곳이 바로 죽은 자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저승의 제5전, 염라대왕의 법정인 염라국이었다.
"들어가라, 죄인아!"
사자들의 억센 손길에 떼밀려 최 대감은 거대한 법정 한가운데로 엎어졌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그만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법정의 양옆으로는 소의 머리를 한 우두귀와 말의 머리를 한 마두귀들이 날이 시퍼렇게 선 삼지창을 들고 살벌하게 서 있었고, 벽면에는 혀를 뽑히고 기름 가마에 튀겨지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 망자들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웅웅거렸다.
그리고 법정의 가장 깊은 곳, 인간의 해골과 거대한 강철로 덧대어 만든 기괴하고도 웅장한 옥좌 위에 산처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이가 앉아 있었다. 짙은 구레나룻에 눈동자에서 형형한 금빛 불꽃을 뿜어내는 자, 저승의 절대적인 지배자 염라대왕이었다.
"병진년 생 최기석은 고개를 들라!"
염라대왕의 호통이 떨어지자 지옥의 땅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요동쳤다. 최 대감은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공포를 느끼며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이놈! 너는 이승에 머무는 동안 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악행을 일삼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렸으니, 그 죄질이 참으로 무겁고도 악독하도다. 이제 저승의 법도에 따라 네놈의 영혼을 불기둥에 묶어 영겁의 세월 동안 태울 것이니라. 네 죄를 인정하느냐!"
벼락같은 호통 속에서도 최 대감의 머릿속은 뱀처럼 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승에서 수많은 위기와 재판을 겪으면서도 뇌물과 세 치 혀로 살아남았던 자였다.
'이대로 순순히 당할 수는 없다. 증거가 없지 않은가! 내가 죽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나를 양반으로 알고 존경하던 자들이 한 트럭이다. 저들도 내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윽박지르는 것일 터, 끝까지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는 짐짓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땅에 머리를 찧었다.
"대왕마마! 참으로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이승에 있을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해 쌀을 풀고, 부처님을 모시는 절에 막대한 시주를 하며 평생을 선행으로 일관한 자이옵니다! 고을 백성들이 저를 칭송하여 공덕비까지 세워주었는데, 어찌 소인에게 악독하다며 불기둥의 형벌을 내리신단 말씀이옵니까! 이는 명백한 오해이옵니다!"
자신의 선행(?)을 과장하며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최 대감의 모습을 보며, 염라대왕은 코웃음을 쳤다.
"호오, 가난한 자를 돕고 덕을 쌓았다고? 남의 피눈물을 짜내어 얻은 더러운 재물로 얄팍한 동전 몇 닢 던져준 것을 선행이라 포장하는 네놈의 혓바닥이 참으로 가증스럽구나. 정녕 네가 죄가 없다 생각하느냐? 여봐라! 판관은 업경대(業鏡臺)를 대령하라! 저 간악한 놈의 과거를 낱낱이 비춰보리라!"
염라대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두귀와 마두귀가 거대한 청동 거울을 법정 한가운데로 밀고 왔다. 망자가 살면서 지은 모든 죄악을 가감 없이 비춰준다는 저승의 거울, 업경대였다. 최 대감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거울의 표면에 기분 나쁜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더니, 서서히 이승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이십 년 전,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그 캄캄한 밤의 산길과 다 허물어져 가는 성황당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최 대감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끔찍한 살인 행각이 온 천하에 드러날 위기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거울 속의 화면이 치직거리며 심하게 흔들리더니, 최 서방이 참나무 몽둥이를 치켜드는 결정적인 순간에 짙은 먹구름과 안개가 화면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화면만이 거울을 채우고 있었다.
사실 최 대감은 이승에서 찝찝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당대 최고의 무당에게 막대한 돈을 주고 자신의 과거에 쌓인 원귀의 기운을 차단하는 강력한 부적을 평생 몸에 지니고 다녔었다. 그 악독한 주술의 힘이 저승의 업경대마저 잠시나마 흐리게 만든 것이었다.
이 기적 같은 상황에 최 대감은 쾌재를 부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보시옵소서, 대왕마마! 거울에도 아무런 죄가 비치지 않사옵니다! 천지신명께서 저의 결백을 증명해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인은 참으로 결백하옵니다!"
※ 4: 물귀신이 된 옛 벗의 통곡과 마침내 등장한 염라의 저울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당당하게 고개를 쳐드는 최 대감을 내려다보던 염라대왕의 금빛 눈동자가 무섭게 타올랐다. 이승의 하찮은 요술이 빚어낸 찰나의 기만을 믿고 날뛰는 죄인의 오만함이 저승의 군주를 분노케 한 것이다.
"네 이놈! 산 자의 간악한 주술로 잠시 거울의 눈을 가렸다고 하여 진실마저 덮어질 줄 알았더냐! 업경대가 흐려졌다면, 네놈의 손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피맺힌 목소리를 직접 듣도록 하겠다! 원귀는 앞으로 나오라!"
염라대왕의 호통이 저승의 하늘을 찢을 듯 울려 퍼지자, 법정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바닥에 옅은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법정의 한구석에서부터 코를 찌르는 지독한 진흙 냄새와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질척... 질척...
무언가 젖은 것이 바닥을 기어 오는 소리였다. 최 대감이 겁에 질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참혹한 몰골의 귀신 하나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 오고 있었다. 온몸은 썩은 진흙과 빗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머리통의 반쪽은 둔기에 처참하게 짓이겨져 붉은 피와 뇌수가 흘러내리는 끔찍한 모습. 부릅뜬 두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 대신 붉은 핏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십 년 전, 성황당에서 자신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했던 옛 벗, 박 서방의 원혼이었다.
"최... 서방...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파먹으며 쌓아 올린 이승의 부귀영화가... 달콤하더냐..."
원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깊은 우물 속에서 긁어내는 듯한 원망과 저주로 가득 차 있었다. 박 서방의 원혼이 피 묻은 손을 뻗어 최 대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얼음장 같은 서늘함에 최 대감은 기겁을 하며 뒤로 자빠졌다.
"으아아악! 저리 가라! 저리 가! 네, 네놈은 산적 떼에게 당해 죽은 것이 아니더냐!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날 짐승을 피해 도망쳤을 뿐이야! 내가 너를 기리기 위해 매년 기일마다 제사상까지 융숭하게 차려주었는데 어찌 나에게 이러느냐!"
끝까지 발뺌하며 추악하게 변명하는 최 대감의 모습에 박 서방의 원혼은 짐승처럼 통곡하기 시작했다.
"네 이놈... 네가 내 목숨을 거두어 가고 전대를 훔쳐 간 그날, 고향에서 나만을 기다리던 내 병든 아내와 어린 딸자식은... 끼니를 잇지 못해 굶어 죽고 말았다. 내 제사상을 차렸다고? 네놈이 차린 그 밥알 하나하나가 내 처자식의 피요, 살이었다! 대왕마마! 부디 이 억울함을, 천지에 닿을 이 사무친 한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원혼의 피맺힌 절규가 지옥의 법정에 메아리치자, 죄인들을 고문하던 악귀들조차 숙연해져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최 대감은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저항했다.
"대왕마마!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저 악귀가 이승에서 저를 질투하여 거짓으로 저를 모함하는 것이옵니다! 증거가 없지 않사옵니까! 거울도 보지 못한 일을 어찌 귀신의 말만 듣고 저를 심판하려 하십니까!"
끝없는 인간의 뻔뻔함에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최 대감을 완벽하게 짓눌렀다.
"거짓의 혀로 진실을 가리려는 놈아. 네놈이 정녕 물증을 원하느냐. 좋다. 말의 진위를 가리고 영혼의 무게를 다는 저승의 궁극적인 심판, '업칭(業秤)'을 내릴 것이다!"
염라대왕이 손을 치켜들자, 법정 천장에서 굵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풀려 내려왔다. 그 끝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황금 저울이 매달려 있었다. 양쪽에 커다란 청동 접시가 달린 이 저울은 망자의 죄악과 진실을 저울질하는 염라대왕의 절대적인 도구였다.
"왼쪽 접시에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피눈물'을, 오른쪽 접시에는 가증스러운 죄인의 '심장'을 올려놓을 것이다. 만약 죄인의 말이 진실이라면 심장의 무게가 더 무거울 것이나, 단 한 톨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억울한 넋의 눈물이 천근만근 무거워져 저울을 기울게 할 것이다. 판관은 저 추악한 놈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어 저울에 올리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대한 우두귀가 쿵쿵거리며 다가와 삼지창으로 최 대감의 가슴팍을 향해 찌를 듯이 겨누었다.
"아, 안 됩니다! 대왕마마! 살려주시옵소서! 으아아악!"
최 대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지옥의 하늘을 찢으며 메아리쳤다.
※ 5: 기울어진 진실의 무게, 이승의 거짓이 낱낱이 파헤쳐지다
저승의 차가운 바닥에 나동그라진 최 대감의 귀청을 찢는 듯한 처절한 비명은 지옥의 캄캄하고 광활한 허공으로 속절없이 흩어졌다. 산처럼 거대한 체구를 지닌 우두귀가 쿵쿵거리며 다가와, 억센 손아귀로 미친듯이 발버둥 치는 최 대감의 사지를 완벽하게 결박했다. 이승의 비대했던 육신은 이미 썩어 문드러질 곳에 버리고 온 영혼의 상태였으나, 저승의 형벌이 주는 공포와 고통은 산 자의 육신이 느끼는 것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날카롭고 생생했다. 염라대왕의 번쩍이는 눈초리 아래, 우두귀는 시퍼렇게 날이 선 끔찍한 삼지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악독하고 가증스러운 놈! 네놈이 평생토록 탐욕을 채워 넣은 그 썩어빠진 심장이 과연 얼마나 가벼운지 똑똑히 지켜보아라! 진실 앞에서는 그 어떤 위선도 통하지 않는 법이다!"
우두귀가 삼지창의 뾰족한 끝으로 최 대감의 가슴 정중앙을 자비 없이 푹 찌르자, 붉고 뜨거운 피 대신 시궁창의 오수보다 더 썩고 검은 묵즙 같은 탁한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최 대감은 두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우두귀는 짐승의 가죽을 벗기듯 그의 가슴뼈를 우적우적 열어젖히고는 시꺼멓게 물든 심장을 단숨에 쑥 뽑아냈다. 살아생전 남을 기만하고, 가난한 자들을 짓밟으며 짐승만도 못한 탐욕으로 찌들어 있던 그 심장은 끔찍한 악취를 풍기며 우두귀의 손아귀 안에서도 흉측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두귀는 그 더러운 심장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허공에 매달린 거대한 황금 저울의 오른쪽 청동 접시에 쿵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심장이 뽑혀 나간 최 대감은 텅 빈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면서도, 오직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본능 하나로 저울을 향해 실핏줄이 터진 눈을 번뜩였다. 염라대왕의 엄숙한 시선이 이번에는 법정 구석에 엎드려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박 서방의 원혼을 향했다.
"억울한 넋이여, 기나긴 세월 동안 이승을 떠돌며 참아왔던 네 한이 맺힌 피눈물을 이제 저 저울 위에 올리라. 하늘은 억울한 자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느니라."
박 서방의 흉측한 원혼이 부들부들 떨리는 앙상한 손으로 자신의 짓이겨진 두 눈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자, 뺨을 타고 흐르던 핏빛 눈물 방울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떠오르며 영롱하게 빛나는 한 줌의 붉은 구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십 년이라는 영겁 같은 세월 동안 구천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굶어 죽어간 처자식을 향한 찢어지는 그리움과 믿었던 벗에게 배신당한 뼈에 사무치는 한이 응축된 그 눈물들은, 이 세상 그 어떤 진귀한 보석보다도 무겁고 단단해 보였다. 판관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 붉은 피눈물 구슬들을 받아 저울의 왼쪽 접시에 올려놓았다.
지옥의 법정에 쥐죽은 듯한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끔찍한 형벌을 받으며 비명을 지르던 망자들도,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두르던 지옥의 악귀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저승의 절대적인 심판 도구인 업칭(業秤)의 미세한 움직임만을 주시했다.
끼기기기긱... 쾅!
육중하고 거대한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거대한 저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최 대감의 시꺼먼 심장이 놓인 오른쪽 접시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듯했다. 살아생전 그가 포식하며 찌웠던 육신의 무게와 평생을 바쳐 긁어모았던 엽전의 무게가 심장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뻥 뚫린 채 헐떡이던 최 대감의 창백한 입가에 비릿하고 교활한 미소가 번져갔다.
'하하하! 거 봐라! 저 어리석은 귀신 놈의 가벼운 눈물 따위가 내 심장의 무게를 이길 리 없지! 내가 이겼다! 나는 저승의 멍청한 대왕마저 완벽하게 속여 넘긴 것이다! 이승의 부귀는 저승에서도 나의 편이다!'
하지만 최 대감의 헛되고 오만한 희망은 찰나의 순간에 가장 비참한 절망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저울이 잠시 수평을 이루며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왼쪽 접시에 놓인 박 서방의 피눈물이 태양처럼 강렬하고 눈부신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빛은 지옥의 짙은 어둠을 모조리 태워버릴 듯 맹렬했고, 억울하게 죽어간 자의 사무친 원한과 슬픔이 천근만근의 묵직한 무게가 되어 저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쾅-! 쿠구구궁!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박 서방의 눈물이 놓인 왼쪽 접시가 바닥을 향해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그와 반대로 최 대감의 시꺼먼 심장이 놓인 오른쪽 접시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튕겨져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어찌나 그 기세가 맹렬하고 폭발적이었던지, 시꺼먼 심장이 저울 접시 밖으로 튕겨 나가 지옥의 시퍼런 유황불이 끓어오르는 구덩이 속으로 곧장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아아아악! 안 돼! 내 심장! 불탄다! 내 심장이 타들어 간다!"
자신의 영혼의 핵인 심장이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서 타들어 가는 끔찍한 감각이 영혼의 끄트머리까지 고스란히 전해지자, 최 대감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고 처절하게 절규했다.
그 순간, 저울의 중앙을 지탱하던 황금 기둥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뻗어 나와 법정의 천장을 향해 쏘아졌고, 이승에서 악독한 무당의 부적 힘으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이십 년 전의 끔찍한 진실이 환등기처럼 선명하고 거대하게 허공에 떠올랐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캄캄한 성황당 안. 젖은 옷을 말리며 고향의 가족을 떠올리며 순박하게 웃음 짓던 박 서방의 등 뒤로, 살기 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참나무 몽둥이를 높이 치켜드는 최 대감의 야차 같은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박 서방의 모습, 그리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벗을 거친 흙바닥에 생매장하듯 파묻으며 은화 전대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낄낄거리며 웃어젖히는 최 대감의 추악하고 소름 끼치는 얼굴까지. 단 한 치의 오차도, 핑계 댈 수 있는 조그만 거짓도 없는 완벽한 진실의 재현이었다.
"대왕마마! 저, 저것은 환상이옵니다! 마귀의 장난이옵니다!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제발 살려주시옵소서!"
가증스러운 거짓이 완벽하게 까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최 대감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납작 엎드려 끝까지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분노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극에 달해 있었다. 거대한 옥좌가 흔들리고, 그의 금빛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 온 지옥을 사시나무 떨듯 진동시켰다.
"네 이놈! 명부의 절대적인 저울의 심판 앞에서도 끝까지 세 치 혀를 놀려 하늘을 기만하려 드느냐! 친형제와 같았던 벗을 잔혹하게 때려죽이고 그 재물을 탐한 것도 모자라, 이승의 얄팍한 주술로 저승의 거울마저 가리려 한 극악무도한 죄! 억울한 넋을 능멸하고 지옥의 법정에서조차 끝끝내 반성하지 않은 죄! 그 죄악의 무게가 태산보다도 무겁고 심연보다 깊도다! 이제 네놈에게는 영원한 파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염라대왕의 벼락같은 호통이 쏟아지자, 최 대감은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완벽하게 감추었다고 믿었던 이승에서의 끔찍한 범죄가 저승의 저울 앞에서 낱낱이 파헤쳐진 순간, 그가 이승에서 평생을 바쳐 짓밟고 빼앗아 쌓아 올렸던 오만방자한 권력과 산더미 같은 재물은 한낱 불에 탄 재보다도 못한, 덧없는 먼지가 되어버렸다. 진실의 무게 앞에 짓눌린 거짓된 영혼의 처참한 말로였다.
※ 6: 끔찍한 지옥의 형벌과 이승에 남겨진 일족의 비참한 몰락
분노로 일그러진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지옥의 붉은 하늘을 갈라놓듯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판관과 사자들은 명을 받들라! 저 간악하고 교활한 죄인 최기석을 당장 끌고 가 팔열지옥(八熱地獄)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다는 흑승지옥(黑繩地獄)의 맹화 기둥에 매달아라! 이승에서 겉으로는 훌륭한 양반 행세를 하며 속으로는 남의 살을 뜯어먹는 짐승의 탐욕을 키웠으니, 그 위선적이고 역겨운 영혼을 영겁의 세월 동안 불태우고 찢을 것이다. 뜨거운 무쇠 줄로 온몸을 옭아매어 살갗이 타들어가고 뼈가 끓어 녹아내리는 극강의 고통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못하게 하여라. 그가 이승에서 무고한 자들에게 흘리게 만든 피눈물의 천 배, 만 배를 자신의 뼛골과 비명으로 영원토록 갚게 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잔혹하고도 한 치의 자비 없는 공정한 선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흉측한 마두귀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최 대감의 목과 사지에 시뻘겋게 펄펄 끓어오르는 굵은 쇠사슬을 칭칭 감았다.
"안 돼! 제발! 대왕마마, 내가 잘못했소! 벗이여, 박 서방! 제발 나를 한 번만 용서해 주게! 내가 다 잘못했네! 내가 자네의 병든 처자식을 거두지 않고 매정하게 굶어 죽게 내버려 둔 것도, 자네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두 눈먼 탐욕에 씐 나의 탓이었네! 제발, 제발 내게 한 번만 선행을 베풀 기회를... 으아아아아아악!"
최 대감은 흉측하게 짓이겨진 박 서방의 원혼을 향해 타들어 가는 손을 뻗으며 애원하고 또 애원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옥 사자들의 억센 힘에 이끌려 땅바닥을 질질 끌려간 그는 곧이어 솟구치는 용암의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무쇠 기둥에 단단히 묶였다. 기둥 밑바닥에서부터 시퍼런 유황불이 독사처럼 기어 올라와 그의 발목부터 서서히, 아주 고통스럽게 태우기 시작했다. 영혼 자체가 산 채로 불타오르는 끔찍한 악취와 함께, 최 대감의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지옥의 하늘을 끝없이 맴돌았다. 그러나 이 비참한 지옥의 고통조차 그가 치러야 할 죗값의 절반에 불과했다.
염라대왕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근엄하고도 장엄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선포했다.
"하늘의 엄정한 법도는 보이지 않는 저승과 보이는 이승을 결코 가리지 않는 법! 저 악인이 남의 피와 목숨을 짜내어 억지로 쌓아 올린 이승의 썩어빠진 재물과 권세 또한 비바람에 흩어질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억울한 넋의 원한이 명부의 저울을 통해 밝혀졌으니, 이승에 남겨진 저 자의 거짓된 영광 또한 본래의 텅 빈 자리로 되돌려 보내 만천하에 인과응보의 무서운 이치를 뼈저리게 알리리라!"
염라대왕의 추상같은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법정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업경대의 청동 표면이 일렁이더니 다시 산 자들의 세상, 이승의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최 대감이 급사하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화려한 회갑연 잔칫집.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처연한 곡소리가 진동해야 할 그 으리으리한 아흔아홉 칸 기와집 마당에는, 뜻밖에도 창과 칼을 번뜩이며 시퍼런 살기를 띤 수백 명의 관군과 포졸들이 폭풍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여봐라! 당장 어명이다! 저 역적의 무리들을 단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포박하여 오라!"
말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호령하는 관찰사의 명령과 함께, 비단옷을 입고 슬픔에 빠져 있던 최 대감의 아들들과 일가친척들이 줄줄이 오랏줄에 결박당해 마당으로 짐짝처럼 내던져졌다. 최 대감이 살아생전 엄청난 뇌물을 바치며 자신의 든든한 뒷배로 삼았던 한양의 최고위 고관대작이 끔찍한 역모죄로 몰려 처참하게 숙청당하면서, 그 역적에게 막대한 불법 자금과 뇌물을 은밀히 대주던 최 대감 일가 역시 구족을 멸하는 끔찍한 화를 입게 된 것이다. 그가 이승에서 그렇게나 뽐내고 자랑하던 막강한 권세와 인맥은 하룻밤 사이에 그의 일가친척 모두를 형장의 이슬로 끌고 가는 저주의 동아줄이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생을 바쳐 긁어모았던 으리으리한 대저택과 곳간에 썩어날 정도로 쌓여 있던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 수만 평의 기름진 땅은 모조리 나라에 몰수되어 국고로 환수되었다. 떵떵거리며 안하무인으로 굴던 그의 자식들과 처는 하루아침에 천애 고아가 되고 노비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을 받으며 거리를 떠도는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더욱 놀랍고도 기묘한 일은, 이십 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저 멀리 깊은 산속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내리더니, 기어이 거대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버려져 있던 낡은 성황당 뒤편의 거대한 흙더미가 무참히 깎여 무너져 내리면서, 이십 년 동안 깊고 어두운 땅속에 억울하게 파묻혀 있던 백골 시신 한 구가 거센 빗물에 씻겨 세상 밖으로 그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산사태를 복구하기 위해 동원된 관아의 일꾼들에 의해 두개골이 박살 난 백골이 조심스럽게 수습되었고, 뼛조각 사이에 썩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던 낡은 나무패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박기호'라는 박 서방의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진 호패였다. 마침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한 명석하고 강직한 젊은 사또가, 이십 년 전 두 명의 가난한 봇짐장수가 함께 이 험한 산을 올랐으나 단 한 명만이 엄청난 은화를 짊어진 거부가 되어 내려왔다는 촌로들의 오래된 소문을 허투루 듣지 않고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집요한 추적과 탐문 끝에, 결국 최 대감이 장사 밑천이라 속여왔던 그 막대한 은화 전대의 진짜 출처가 밝혀졌고, 산길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의 정황과 물증이 백일하에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되었다.
산 자의 세상에서도 최 대감은 존경받는 훌륭한 거상에서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장 친한 벗을 때려죽인 인면수심의 끔찍한 살인마로 기록되었다. 분노한 조정은 이미 죽어 무덤에 묻히려던 최 대감의 시신을 꺼내어 목을 베고 사지를 찢는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을 내렸다. 길거리에 내걸린 그의 흉측한 수급을 보며 백성들은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남의 피눈물과 목숨을 갈아 넣어 세운 거짓된 철옹성은 그렇게 작은 비바람에도 모래성처럼 허무하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억울하게 묻혀 있던 진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거센 비가 내리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마는 단단한 바위처럼 굳건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여도, 결코 죄인을 빠져나가게 하는 법이 없었다.
※ 7: 한을 푼 영혼의 평온한 승천과 염라대왕의 마지막 판결
업경대의 맑은 거울을 통해 이승에서 벌어지는 통쾌하고도 처절한 인과응보의 결말을 지켜보던 지옥의 거대한 법정에는, 이전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무겁고도 거룩한 숙연함이 내려앉았다. 오직 머나먼 흑승지옥의 불기둥에 묶인 채 끝없이 메아리치는 최 대감의 단말마 같은 끔찍한 비명 소리만이, 그가 저지른 죗값의 무게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증명하며 맴돌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산처럼 거대한 몸을 이끌고 옥좌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지옥의 맹렬한 군주가 죄인이나 망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법정 한가운데 아직도 엎드려 있는 박 서방의 가련한 원혼 앞으로 다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박 서방아. 기나긴 이십 년의 세월 동안 구천의 차가운 흙바닥을 뒹굴고, 이승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얼마나 춥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느냐. 너의 그 억울함이 하늘에 닿아 마침내 진실을 밝혔구나. 네가 흘린 붉은 피눈물이 명부의 굳건한 저울을 움직여 이승과 저승을 기만하던 자를 심판하였고, 썩어빠진 거짓을 불태워 벌하였으니, 이제 그 무겁고 날카로운 원한의 굴레를 훌훌 벗어 던지고 마음을 내려놓거라."
염라대왕이 따뜻하고 자애로운 황금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손을 뻗어, 박 서방의 흉측하게 짓이겨진 머리와 더러운 진흙투성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 순간, 지옥의 어둠 속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둔기에 맞아 처참하게 깨져 뇌수가 흐르던 머리통이 순식간에 말끔하게 새살이 돋아나며 아물기 시작했고, 피비린내 나는 진흙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너덜너덜한 봇짐장수의 옷차림은 어느새 눈부시게 하얗고 정갈한 명주 두루마기로 변해 있었다. 원한에 사로잡혀 끔찍한 핏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두 눈에는 마침내 깊은 평온함이 찾아와, 맑고 투명한 이슬 같은 진짜 사람의 눈물이 맺혀 흐르기 시작했다.
온전하고 선량했던 살아생전 사람의 형상을 완벽하게 되찾은 박 서방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염라대왕을 향해 머리가 땅에 닿도록 깊은 절을 세 번이나 올렸다.
"대왕마마... 이 미천하고 어리석은 백성의 억울함을 끝까지 굽어살펴 주시어, 차가운 백골에 맺혀 있던 모진 한을 이토록 따뜻하게 풀어주시니, 그 크나큰 은혜는 제가 세세생생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무능한 지아비와 아비를 둔 탓에 굶주림에 떨다 죽어간 제 불쌍한 처자식을... 이제야 저승에서라도 두 팔 벌려 웃으며 안아줄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참으로,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염라대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거라. 착하고 순박하게 살아온 너의 가족들은 이미 맑은 연꽃이 만발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부는 극락정토(極樂淨土)에 머물며, 네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느니라. 이승에서 겪은 모진 배신과 참혹한 고통은 이승의 바람에 씻어 보내고,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원토록 행복하고 아름다운 평안을 누리도록 하라."
염라대왕의 자비로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어둡고 칙칙하던 지옥의 천장이 좌우로 열리며 황금빛의 따스하고 찬란한 빛줄기가 법정 안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디선가 마음을 울리는 은은하고 아름다운 천상의 풍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박 서방의 영혼은 환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 찬란한 빛줄기를 타고 깃털처럼 가볍게 서서히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이십 년간 뼈를 깎는 듯 지독했던 핏빛 원한이 봄날의 눈 녹듯 자취를 감추고, 마침내 완전한 안식과 구원을 찾은 선한 자의 너무도 눈부시고 아름다운 뒷모습이었다.
박 서방의 맑은 영혼이 완전히 빛 속으로 녹아들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열렸던 지옥의 천장이 다시 닫히며 원래의 엄숙하고 서늘한 법정의 공기로 되돌아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시 자신의 거대한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은,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로 텅 빈 허공을 응시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단순히 지옥의 법정을 넘어, 저승과 이승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영혼들을 향해 뇌성벽력처럼 울려 퍼지는 묵직하고도 섬뜩한 경고와도 같았다.
"산 자들은 똑똑히 듣고 마음에 새길지어다. 이승의 얄팍한 어둠 속에 자신의 추악한 죄를 감추고, 더러운 재물과 권력으로 하늘의 진실마저 덮을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명심하라! 하늘의 매서운 눈은 결코 밤과 낮을 가려 감기지 않으며, 명부의 공평한 저울은 먼지 한 톨만큼의 거짓조차 용납하지 않고 무게를 달아낸다. 남의 눈에 억울한 눈물을 내면 자신의 두 눈에서는 반드시 피눈물이 쏟아질 것이요, 악독한 수단으로 쌓아 올린 탐욕의 탑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져 내려 그 끔찍한 잔해 밑에 스스로 깔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하늘의 순리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무서운 업보이니라!"
염라대왕의 장엄한 일갈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저 멀리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는 흑승지옥의 맹화 속에서 살갗이 타들어 가는 최 대감의 처절하고도 끔찍한 비명 소리가 다시금 지옥의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을 듯 길게 이어졌다.
지옥의 법정 한가운데 매달린 염라대왕의 황금 저울은 다시 텅 빈 접시의 수평을 맞춘 채로 허공에 굳건히 매달려, 조용히 다음 죄인의 영혼을 달아볼 그 날만을 서늘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어두운 산길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탐욕의 참극은, 산 자의 세상에 통쾌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와 평생토록 잊지 못할 서늘한 경고를 남긴 채 그렇게 완벽한 막을 내렸다.
유튜브 엔딩멘트
끝까지 완벽할 줄 알았던 살인자의 치밀한 거짓말도, 결국 염라대왕의 저울 앞에서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남의 피눈물로 쌓은 부귀영화가 얼마나 허망한지 뼛속 깊이 새겨지는 서늘하고도 통쾌한 이야기였네요.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등골이 오싹하고 속이 뻥 뚫리는 기묘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