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업경대에도 비치지 않았던 한 남자의 마지막 하루 (출처: 임하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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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내 저승에 온 지 수백 년, 이런 자는 처음이다!" 저승의 모든 죄를 비추는 거울, '업경대'가 한 남자의 삶 앞에서 새까맣게 변해버렸습니다. 평생을 바쳐 선행을 베풀었지만, 그의 마지막 하루만큼은 업경대에 기록되지 않았죠. 염라대왕마저 경악하게 만든 그의 마지막 하루,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조선 시대 학자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기록된, 저승을 감동시킨 한 남자의 기적 같은 이야기.
디스크립션
조선 시대, 평생을 가난 속에서도 이웃을 위해 헌신한 한 선비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여 저승의 심판대 앞에 선 남자. 하지만 그의 생전 행적을 비추는 거울 '업경대'가 그의 마지막 하루만큼은 비추지 못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염라대왕은 크게 노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는데요. 조선 시대 실화집 '임하필기'에 실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한 남자의 숭고한 삶과 저승의 판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가난하지만 청렴한 선비, 김 진사
조선 시대, 한양의 번화한 저잣거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한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 진사.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은 없었으나, 청렴한 성품과 어진 마음씨로 주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죠. 그는 평생을 글공부에 매진하며 관직에 나아갈 기회를 엿보았지만, 번번이 낙방의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더욱 학문에 정진했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그의 집 문턱을 넘어와 밥을 얻어먹었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은 그를 찾아와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김 진사는 자신의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삯바느질로 겨우 마련한 쌀은 어려운 이웃의 양식이 되었고, 얼마 없는 재산마저 쪼개어 약값을 대주거나 억울한 송사를 돕는 데 사용했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김 진사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낡고 허름한 초가집과 해진 옷가지,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죠.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는 늘 온화한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그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길가에는 얼어 죽은 시신들이 즐비했습니다. 김 진사의 형편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며칠째 굶주린 배를 찬물로 채우기 일쑤였고, 혹독한 추위는 그의 늙고 쇠약한 몸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날도 김 진사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차가운 방에 홀로 누워 있었습니다. 창밖에서는 매서운 칼바람이 울부짖었고, 금방이라도 지붕이 날아갈 듯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을 직감한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후회는 없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이름 없는 선비로 생을 마감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자부했죠. 바로 그때였습니다. 낡은 사립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 진사님! 김 진사님! 안에 계십니까?" 목소리의 주인은 이웃 마을에 사는 젊은 부부였습니다. 며칠 전, 갓 태어난 아이가 심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던 이들이었죠. 김 진사는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추위에 무슨 일인고... 아이는 좀 괜찮은가?" 그의 물음에 젊은 아낙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습니다. "진사님 덕분에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의원님이 말씀하시길, 오늘 밤이 마지막 고비인데... 아이가 너무 어려 약을 삼키지 못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김 진사는 주저 없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것을 내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한 부잣집 대감이 보내준 귀한 산삼이었습니다. 자신 또한 병든 몸이라 이 산삼을 달여 먹으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눈앞의 어린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벽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산삼을 꺼내 젊은 부부에게 건넸습니다. "이것을 아이에게... 먹이게나..." 그의 말에 젊은 부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김 진사는 그런 그들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저승에 끌려간 김 진사, 업경대 앞에 서다
김 진사가 조용히 눈을 감자, 그의 혼백은 육신을 떠나 구름처럼 가벼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후, 어디선가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차사가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김 진사, 때가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 그들의 목소리는 서늘했지만, 위압적이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김 진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순순히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한참을 걸었을까요, 눈앞에 거대하고 웅장한 문이 나타났습니다. '풍도성(酆都城)'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그곳은 바로 저승의 입구였습니다. 김 진사는 차사들의 뒤를 따라 풍도성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승과는 전혀 다른 기이한 풍경에 그는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줄을 지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습니다. 김 진사의 영혼이 도착한 곳은 염라대왕이 직접 죄인들을 심판하는 거대한 궁전, 염라전이었습니다. 염라전 중앙에는 거대한 옥좌에 앉아 서류를 살피는 염라대왕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의 양옆으로는 판관과 녹사들이 서서 죄인들의 죄목을 기록하고 있었죠. 그리고 옥좌 바로 앞에는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거울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생전의 모든 행적을 비춘다는 '업경대(業鏡臺)'였습니다. 차사 하나가 앞으로 나아가 염라대왕에게 고했습니다. "대왕님, 한양에 살던 김 진사의 혼을 데려왔나이다." 염라대왕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김 진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은 깊고 엄숙하여 감히 누구도 고개를 들 수 없었죠. 염라대왕이 나직이 입을 열었습니다. "김 아무개. 네 생전의 모든 행적을 이 업경대에 비추어 볼 것이니, 숨김없이 고하도록 하라." 김 진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업경대 앞에 섰습니다. 평생을 부끄럼 없이 살았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죠. 그는 자신의 이름과 본관, 그리고 살아온 날들을 차분히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염라대왕은 판관에게 명했습니다. "업경대에 저 자의 마지막 하루를 비추어 보라." 판관의 명에 따라 녹사가 업경대를 향해 무언가를 외자, 거울 표면이 잔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업경대를 주목했죠.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거울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감돌 뿐이었습니다. 당황한 녹사가 몇 번이고 다시 주문을 외워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업경대가 작동하지 않다니, 저승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판관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염라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염라대왕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네 이놈! 네놈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업경대가 너의 죄를 비추지 못한단 말이냐! 당장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김 진사는 태연했습니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대왕님, 소인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을지언정 남을 속이거나 해하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거늘, 어찌하여 저에게 죄가 있다 하십니까?" 그의 당당한 태도에 염라대왕은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죄인들을 심판해왔지만, 이처럼 기이한 경우는 처음이었죠. 업경대가 사람의 죄를 비추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염라대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판관에게 다시 명했습니다. "저 자의 마지막 하루 이전의 모든 생애를 비추어 보라.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살펴야 할 것이다."
※ 업경대에 비치지 않는 마지막 하루
염라대왕의 엄명이 떨어지자, 판관과 녹사들은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김 진사의 마지막 하루가 아닌, 그의 칠십 평생 전체를 업경대에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표면이 다시 한번 일렁이더니, 이내 김 진사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속 어린 김 진사는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서당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빨리 깨우쳤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리가 깊기로 소문이 자자했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면 주저 없이 나섰고, 먹을 것이 생기면 항상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청년이 된 김 진사는 더욱 올곧은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인물이 되고자 밤낮으로 글공부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연이은 낙방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죠. 그러나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그들의 고통에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업경대는 김 진사의 선행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었습니다. 굶주린 아이에게 자신의 마지막 한 숟갈을 떠먹이는 모습, 억울하게 옥에 갇힌 백성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변호해 주는 모습, 병든 노인을 위해 밤새도록 간호하는 모습... 그의 삶은 온통 남을 위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그는 자신을 아프게 한 돌을 원망하는 대신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까 걱정하며 돌을 치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선행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염라전의 모든 이들은 업경대에 비친 그의 삶을 보며 숙연해졌습니다. 곳곳에서 감탄과 칭송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평생을 저승에서 망자들을 심판해온 판관과 녹사들조차 그의 숭고한 삶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침내 김 진사의 칠십 평생이 모두 상영되고, 업경대는 다시 고요한 거울로 돌아왔습니다. 염라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염라대왕이었습니다. 그는 옥좌에서 일어나 김 진사에게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죠.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염라대왕의 입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다시 업경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업경대는 인간의 선행과 악행을 모두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의 마지막 하루만은 비추지 못했던 것일까? 너의 마지막 하루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천하의 업경대조차 그 빛을 담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다시 김 진사에게로 쏠렸습니다. 김 진사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님, 소인의 마지막 하루는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평소와 같이... 이웃의 어린 생명을 구했을 뿐입니다." "어린 생명을 구했다?" 염라대왕이 되물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거라." 김 진사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사경을 헤매는 아이에게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산삼을 내어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선택. 그것은 계산되거나 의도된 선행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몸에 익힌 이타심이 만들어낸, 너무나도 당연하고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염라대왕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릎을 탁 치며 외쳤습니다. "알겠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김 진사를 향해 말했습니다. "너의 마지막 선행은 인간의 이기심을 초월한, 너무나도 순수하고 거룩한 행위였기에 감히 업경대조차 그 빛을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너의 그 숭고한 희생정신은 저승의 법도로는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염라대왕의 선언에 염라전은 다시 한번 술렁였습니다. 업경대가 비추지 못한 것이 죄가 아니라, 너무나도 위대한 선행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은 판관에게 명했습니다. "기록하라! 이 자는 죄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신선(神仙)의 경지에 이른 위대한 의인이다!"
※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염라대왕의 호기심 어린, 그러나 여전히 엄숙한 명령이 떨어지자 판관과 녹사는 다시 한번 업경대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이번에는 김 진사의 마지막 하루가 아닌, 그의 칠십 평생이 낱낱이 비춰질 차례였습니다. 녹사가 주문을 외우자, 고요하던 거울의 표면이 이전보다 더욱 찬란한 빛을 뿜으며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거울 속에는 한 아이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김 진사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어린 김 진사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늘 맑은 눈빛을 잃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서당에서는 스승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였고, 집에서는 늙은 노모의 어깨를 주무르며 효를 다했습니다. 자신도 배가 고팠을 테지만, 유일한 간식이었던 찐 감자 하나를 몰래 품에 숨겨 와서는 며칠째 굶고 있던 옆집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에, 염라전의 딱딱한 공기가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김 진사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그는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중, 길가에 쓰러져 신음하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시험 날짜가 코앞이라 마음이 급했지만, 그는 차마 노인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노잣돈을 전부 털어 의원을 부르고, 정성껏 노인을 간호하느라 결국 그 해의 과거 시험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승의 영혼들 사이에서는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쯧쯧, 저러니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 누군가 혀를 차며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비난보다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업경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성한 김 진사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의 집 문턱은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관아에 끌려가는 과부의 송사를 해결해주기 위해 밤새도록 소장을 써주고,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땅문서마저 팔아치워 옥바라지를 하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비 오는 날, 다리가 무너져 강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굽혀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건너자, 그의 등에는 차가운 빗물과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선행은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길가의 굶주린 개에게 자신의 밥을 나눠주고,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를 다시 올려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나'보다는 '남'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칠십 평생,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해 재물을 탐하거나 권력을 탐한 적이 없었습니다. 업경대에 비친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도 맑고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너무나도 따스하고 성스러워서, 지옥의 형벌을 기다리던 죄인들조차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평생 죄인들의 죄목만을 기록해왔던 녹사의 붓이 처음으로 멈추었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판관의 눈가에도 촉촉한 이슬이 맺혔습니다. 염라전 전체가 김 진사의 숭고한 삶이 뿜어내는 빛에 감화되어 깊은 침묵과 감동에 휩싸였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시(布施)였던 것입니다.
※ 염라대왕의 깨달음과 판결
마침내 김 진사의 칠십 평생이 모두 상영되고, 눈부신 빛을 뿜어내던 업경대는 다시 본래의 고요한 거울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염라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냉혹한 심판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숙연하고 경건한 기운만이 가득했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염라대왕이었습니다. 그는 옥좌에 앉은 채 미동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 대신 경이로움과 깊은 고뇌의 빛이 서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옥좌에서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김 진사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의 걸음은 수천 년 저승을 다스려온 왕의 위엄이 아닌, 한 위대한 영혼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김 진사의 앞에 멈춰 선 염라대왕은 한동안 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진 얼굴, 검소하다 못해 누추한 옷차림. 그러나 그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고 깨끗한 기운은 감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알았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염라대왕의 나직한 목소리가 염라전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다시 업경대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업경대는 인간 세상의 모든 선악을 비추는 거울이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벌을 기록하는 것이 이 거울의 숙명이지.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아무리 사소한 악행이라도 이 거울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하루만큼은 달랐다." 염라대왕은 다시 김 진사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는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아무런 대가 없이 꺼져가는 어린 생명을 위해 내어주었다. 그 행위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인간적인 잣대로는 감히 측정할 수 없는 경지의 것이었다."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섞여 있었습니다. "보통의 선행은 '내가 이만큼 베풀었으니 복을 받겠지' 하는 아주 작은 계산이라도 섞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너의 마지막 행위에는 단 한 톨의 사심도, 한 조각의 이기심도 없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고 오직 타인의 고통에만 공감한, 완벽한 자비(慈悲)의 발현이었다. 그것은 선행을 넘어선, 신성(神聖)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천하의 업경대조차 그 숭고한 빛을 감히 담아낼 수 없어, 칠흑 같은 어둠으로 그 위대함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염라대왕의 설명이 끝나자, 염라전의 모두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업경대가 비추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라,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너무나도 위대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김 진사는 자신의 마지막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았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산삼을 내어주었던 그 순간의 마음을 말입니다. 그것은 영웅적인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그리 살아왔기에 너무나도 당연했던, 그의 마지막 숨결과도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 인간을 넘어 신선이 되다
염라대왕의 선언에 염라전은 경외와 감탄의 술렁임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천 년간 죄인들의 비명과 후회만이 가득했던 이 공간이, 한 인간의 숭고한 삶 앞에서 정화되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다시 옥좌로 돌아가 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 진사와 같은 눈높이에 서서, 그를 향해 예를 갖추듯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그리고는 저승 전체가 떠나갈 듯한 위엄 있는 목소리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들어라! 이 자는 죄인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김 진사. 그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그의 영혼은 이미 신선(神仙)의 경지에 이른 위대한 의인(義人)이다! 저승의 법도로는 감히 그의 공덕을 논할 수 없다!" 염라대왕의 판결이 끝나자, 염라전의 모든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자 어둡고 서늘했던 저승의 풍경 너머로, 눈부시게 찬란한 빛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의 고통스러운 소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맑고 청아한 소리였습니다. 하늘에서는 오색 구름이 내려와 김 진사의 발밑에 푹신한 융단처럼 깔렸고, 선녀들이 내려와 향기로운 꽃비를 뿌렸습니다. "판관은 기록하라! 오늘, 저승의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을 내린다. 김 진사의 영혼은 그 어떤 심판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판관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들어 염라대왕의 판결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죄인의 죄목을 적던 것과는 다른, 경건하고 영광스러운 기록이었습니다. 김 진사의 몸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누추했던 옷은 눈처럼 희고 빛나는 옷으로 변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얼굴은 평온하고 온화한 미소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고개 숙인 염라대왕과 저승의 모든 이들을 향해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그것은 감사도, 작별도 아닌, 그저 모든 것을 초월한 자의 평온한 인사였습니다. 그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며 찬란한 빛 속으로 사라지자, 염라대왕은 나직이 읊조렸습니다. "모두 보았는가. 진정한 선이란 저런 것이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 선행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행하는 순수한 마음. 저 영혼의 이야기는 앞으로 천 년, 만 년이 지나도 저승에 귀감이 될 것이다." 김 진사가 떠나간 자리에는 한동안 향기로운 꽃향기와 맑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업경대조차 비추지 못했던 한 남자의 마지막 하루는, 그렇게 저승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선행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김 진사의 삶, 어떻게 들으셨나요? 진정한 선행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은 저승의 법도마저 바꾸어 놓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 지옥에 갈 죄인이 오히려 염라대왕을 호통쳐 극락으로 향하게 된 기상천외한 사연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