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해동야화』

by K sunny 2025. 12. 12.
반응형

염라대왕 농부에게 배우다 ,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해동야화』

태그 (15개)

#염라대왕, #저승야담, #환생, #불교설화, #삶의의미, #감동실화, #한국전래, #야담, #눈물주의, #인생명언, #죽음과삶, #기적이야기, #시니어추천, #따뜻한이야기, #인생교훈
염라대왕, 저승야담, 환생, 불교설화, 삶의의미, 감동실화, 한국전래, 야담, 눈물주의, 인생명언, 죽음과삶, 기적이야기, 시니어추천, 따뜻한이야기, 인생교훈

 

후킹멘트 (300자 내외)

여러분,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은 벌벌 떨며 목숨만 구걸하겠지요. 근데 이 사람은 달랐습니다. 저승에 끌려가서 염라대왕 앞에 섰는데,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어요.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대왕님, 인간의 삶이 뭔지 아십니까? 고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염라대왕이 버럭 화를 냈지만, 이 사람 말을 듣다 보니...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무슨 말을 했길래?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시대 어느 마을, 평범한 농부 만득이가 갑자기 쓰러져 저승으로 끌려갑니다. 염라대왕 앞에 선 만득이는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말합니다. "대왕님은 인간의 삶을 모르십니다!" 수천 년간 죄인들을 심판해 온 염라대왕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힙니다. 만득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새벽 이슬, 아내의 손길, 자식의 웃음, 이웃의 정. 그 소박한 이야기가 저승의 대왕을 울리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 갑작스러운 죽음

자, 여러분. 오늘은 좀 특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승 이야기예요. 아, 무서운 거 아닙니다.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무섭다기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거든요.
옛날 옛적, 조선 시대 어느 마을에 만득이라는 농부가 살았습니다.
나이가 쉰다섯, 요즘으로 치면 한창때지만, 그때는 이미 노인 소리 듣던 나이예요. 만득이는 평생 농사만 지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에요. 부자도 아니고, 벼슬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흙 파고 씨 뿌리고 거둬들이는 게 전부인 삶이었지요.
그날도 만득이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들판에 나갔습니다.
"여보, 점심 싸 놨소. 꼭 챙겨 드시고."
아내가 보자기에 싼 주먹밥을 내밀었어요. 투박한 손으로 꼭꼭 눌러 만든 주먹밥. 거기다 된장 한 덩이 얹어서 싸준 거지요.
"알았소, 알았어."
만득이가 대충 받아들고 나섰습니다. 매일 하는 일인데 뭐 대수겠습니까. 주먹밥 받아드는 것도 습관이고, 아내 얼굴 보는 것도 습관이에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나섰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볼 얼굴인데, 뭘 굳이.
들판에 도착하니 해가 슬슬 떠오르고 있었어요.
만득이가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잡초를 뽑아야 해요. 뿌리째 뽑아야 다시 안 나거든요. 호미로 흙을 파고, 잡초 뿌리를 움켜쥐고, 힘을 주어 확 뽑아냅니다.
근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머리가 어질어질했어요.
"어? 왜 이러지..."
만득이가 이마를 짚었습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요. 가슴도 답답하고,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고.
"잠깐만... 잠깐만 쉬자..."
만득이가 호미를 놓고 일어서려 했습니다. 근데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거예요. 무릎이 꺾이고, 몸이 앞으로 쏠리고.
털썩!
만득이가 밭고랑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소리도 안 들려요. 그냥 깜깜한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 마치 깊은 우물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만득이가 눈을 떴습니다.
"여, 여기가 어디여...?"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곳이에요. 길이 하나 있는데, 양옆으로 희뿌연 안개가 자욱합니다. 앞도 안 보이고, 뒤도 안 보이고, 그냥 끝없는 길만 보여요.
"이봐, 정신 차려. 가야 할 길이 멀어."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옷 입은 사람이 서 있어요. 아니, 사람이 맞나?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거든요.
"당, 당신이 누구요?"
"저승사자다. 네 이름은 만득이, 향년 쉰다섯. 오늘 수명이 다했으니 날 따라와라."
만득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승사자라고? 그럼 나, 죽은 거야?
"아, 아니 잠깐만요! 나 아직 할 일이 있소! 집에 마누라도 있고, 밭에 김도 안 맸고...!"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염라대왕께서 기다리신다. 어서 움직여."
저승사자가 만득이 팔을 잡았습니다. 그 손이 어찌나 차가운지, 뼛속까지 시려왔어요. 만득이가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끌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만득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 염라대왕의 심판

자, 만득이가 저승사자한테 끌려서 도착한 곳이 어디냐.
염라대왕이 계신 심판의 전각이었습니다.
어휴, 그 위엄이라니. 말로 다 못해요. 천장이 어찌나 높은지 끝이 안 보이고, 기둥이 어찌나 굵은지 열 사람이 손잡아도 못 감을 정도예요. 바닥은 검은 돌로 깔려 있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그리고 정면에, 높디높은 옥좌가 있었어요.
거기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염라대왕이십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요? 아이고, 무섭습니다. 눈이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그게 마치 쇠사슬 같았어요. 머리에는 관을 쓰고 계신데, 그 관에서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끌려온 자가 누구냐?"
염라대왕 목소리가 전각 안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만득이가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바닥에 풀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 예... 만득이라 하옵니다..."
"만득이? 흠..."
염라대왕 앞에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었어요. 생사부라고, 사람 수명이 다 적혀 있는 책이지요. 염라대왕이 책장을 넘기시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군. 만득이, 향년 쉰다섯. 수명이 오늘로 끝이다."
"대, 대왕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만득이가 벌떡 고개를 들었습니다. 억울했거든요. 평생 나쁜 짓 안 하고 살았는데, 왜 이리 갑자기 끌려와야 하는 겁니까.
"죄? 누가 죄를 물었느냐. 수명이 다했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간 죽는 법. 그게 이치다."
염라대왕이 차갑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저는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마누라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단 말입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이승 일은 이승에서 끝내고 올 것이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오늘 죽을 줄 알았으면 뭐라도 했지요!"
만득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각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어요. 저승사자들이 다들 숨을 죽였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거든요.
염라대왕 눈썹이 꿈틀했습니다.
"네 이놈, 감히 누구 앞이라고 소리를 높이느냐?"
"소리를 안 높이고 어떻게 합니까! 대왕님은 모르실 겁니다. 인간의 삶이 뭔지!"
만득이가 눈을 부릅떴습니다. 무서움보다 억울함이 더 컸어요. 이대로 끝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이라... 하, 웃기는 소리를. 내가 수천 년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봐왔는데. 탐욕, 질투, 미움, 살생... 인간이란 원래 고통 속에 사는 존재다. 삶이 뭔지 모른다고?"
"아닙니다!"
만득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대왕님이 보신 건 죄인들뿐이잖습니까. 저승에 끌려오는 인간들, 죄 지은 사람들만 보셨으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근데 인간의 삶에는요, 대왕님이 모르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문이 막혔습니다.
수천 년간 심판을 해왔는데, 이렇게 당돌한 인간은 처음이었거든요.

※ 만득이의 첫 번째 이야기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흥,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이 염라가 수천 년을 살았는데, 네까짓 농부한테 배울 게 있다는 게냐?"
"예, 있습니다."
만득이가 고개를 꼿꼿이 들었습니다. 무릎은 떨렸지만, 목소리만큼은 떨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어요.
"좋다. 말해 보아라. 어디 한번 들어보자. 만약 네 말이 시시하면, 곧장 지옥에 보내겠다. 칼산지옥에서 천 년쯤 굴러보면 정신이 번쩍 들 게야."
염라대왕이 턱을 괴고 앉으셨습니다. 한 번 들어나 보자, 어디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지, 그런 표정이었지요.
만득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님, 새벽 들판에 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들판?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해 뜨기 직전, 어스름한 그 시간 말입니다. 하늘이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남색에서 보랏빛으로, 보랏빛에서 주황빛으로 바뀌는 그 시간이요. 세상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그 순간 말입니다."
만득이 눈이 먼 곳을 바라보듯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마치 지금 그 들판에 서 있는 것처럼요.
"저는 평생 농사를 지었습니다. 새벽마다 들판에 나갔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일이었어요. 먹고살려면 해야 하는 일. 근데요, 대왕님. 그 시간 들판에 가면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이슬?"
"예, 이슬이요. 풀잎마다, 꽃잎마다, 거미줄마다, 조그만 이슬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데요. 해가 슬금슬금 떠오르면 그 이슬방울들이 반짝반짝 빛나요. 마치 누가 보석을 뿌려놓은 것 같습니다. 아니, 보석보다 더 예뻐요. 보석은 죽어 있지만, 이슬은 살아서 반짝이거든요."
염라대왕이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래서? 이슬이 어쨌다는 게냐. 그까짓 물방울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냐."
"처음에는 저도 몰랐습니다. 그냥 이슬이지, 뭐. 오히려 일하러 가는 길에 신발 젖는 게 귀찮기만 했어요. 바짓단도 젖고, 양말도 축축해지고. 짜증만 났습니다.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은 겁니다."
"뭘 깨달았는데?"
"이 이슬이, 오늘만 있다는 걸요."
만득이가 가슴을 짚었습니다.
"해가 뜨면 이슬은 사라집니다. 햇살에 말라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내일 다시 맺히겠지만, 그건 오늘 이슬이 아니에요. 오늘 이 이슬은 오늘만 있는 겁니다. 내일 맺히는 건 내일 이슬이고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 새벽에 본 그 반짝이는 이슬은, 평생에 딱 한 번뿐인 이슬인 거예요. 우주가 생기고 없어질 때까지, 똑같은 이슬은 다시 없는 겁니다."
전각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저승사자들도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어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아침마다 들판에 나가는 게 달라졌습니다. 오늘만 볼 수 있는 풍경이구나. 오늘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이구나. 오늘만 맡을 수 있는 흙냄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매일이 소중해지더라고요. 똑같은 들판인데, 어느 날은 새롭게 보였습니다."
만득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왕님, 아까 제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마누라가 주먹밥을 싸줬다고 했지요?"
"그랬지."
"그 주먹밥이요, 별거 아닙니다. 그냥 밥에 소금 조금 넣고 꾹꾹 눌러서 만든 거예요. 반찬이래야 된장 한 덩이가 전부고요. 부잣집처럼 고기반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밥덩이예요. 근데요, 대왕님."
만득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주먹밥 안에는요, 마누라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새벽에 저보다 먼저 일어나서, 부엌에 불 지피고, 쌀 씻어서 밥 짓고, 뜨거운 밥을 맨손으로 쥐어서 만든 거거든요. 갓 지은 밥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십니까? 손이 데어도 호호 불어가면서 꾹꾹 눌러서 만들었을 거예요. 그게 밥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매일 아침 마누라가 저한테 주는 마음인 거예요."
만득이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근데 저는 오늘 아침에 그 주먹밥을 대충 받았습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나왔어요. 매일 하는 거니까, 당연한 거니까. 근데 지금 생각하면요,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어요. 그 주먹밥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는데, 저는 그걸 몰랐던 겁니다. 내일도 받을 줄 알았어요. 모레도, 글피도. 근데 내일이란 게 없을 수도 있잖아요."
만득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대왕님, 인간의 삶이란 게요. 이런 겁니다.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그걸 모르고 사는 게 인간이고요. 그걸 알았을 때, 비로소 삶이 눈부시게 빛나는 겁니다. 이슬처럼요."
염라대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어요.

※ 만득이의 두 번째 이야기

한참 만에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이슬과 주먹밥 이야기는 들었다. 제법이군. 그래서 그게 삶의 전부냐?"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어요. 뭔가 마음이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만득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대왕님. 삶에는 기쁜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뜻이냐?"
"슬픔도 있습니다. 아니, 슬픔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건지도 모릅니다. 기쁨만 있으면 기쁜 줄도 모르거든요. 슬픔을 알아야 기쁨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만득이가 깊은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기가 힘들었어요. 가슴 한구석에 묻어둔 이야기거든요. 꺼내려면 상처를 다시 헤집어야 해요.
"저한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있었다?"
"예, 있었습니다. 이제는 없어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득이 목소리가 갈라졌습니다.
"돌이라고, 제가 이름을 지었어요. 돌처럼 단단하게 살라고. 태어났을 때 어찌나 울음소리가 우렁차던지, 이 아이는 튼튼하게 자라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그 아이가 열다섯에 병을 앓았습니다. 봄에 갑자기 열이 펄펄 나더니,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일주일을 앓다가... 갔어요."
전각 안이 숨을 죽였습니다. 저승사자들도 고개를 숙였어요.
"의원을 불렀는데 소용없었습니다. 약을 지어 먹여도 소용없었고, 굿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아들 손을 잡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점점 식어가는 걸, 숨이 점점 가늘어지는 걸, 눈빛이 점점 흐려지는 걸. 아버지가 아무것도 못 해주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무력한 건지 아십니까, 대왕님."
만득이가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아들 묻던 날, 하늘이 어찌나 맑던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습니다. 장례 치르는데 새가 울더라고요. 저는 그게 그렇게 원망스러웠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왜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고. 왜 해는 뜨고, 새는 울고, 바람은 부는 거냐고.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왜 다른 세상은 멀쩡한 거냐고."
만득이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밭에 나가도 호미를 잡을 힘이 없었어요.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밥을 먹어도 맛을 몰랐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꿈에서 아들이 나와서 아버지 부르면, 깨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냥 죽고 싶었어요. 아들 따라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목소리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어요. 심판자의 말투가 아니라, 한 사람의 말투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 기일이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거예요. 무덤에 가서 술 한 잔 따라주고,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꽃잎이 날아왔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꽃잎이요. 주위에 꽃나무가 없었거든요."
만득이가 허공을 바라봤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돌이가 보낸 건가. 아들이 저한테 괜찮다고, 아버지 걱정하지 말라고 보낸 건가. 미신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헛것을 본 거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근데 그 순간, 가슴에 뭔가 뚫리는 느낌이 났어요. 막혀 있던 게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만득이가 가슴을 짚었습니다.
"깨달은 겁니다. 아들이 없어도, 아들과의 추억은 남아 있다는 걸. 아들이 웃던 얼굴, 아들이 뛰놀던 모습, 아들이 '아버지' 하고 부르던 목소리, 아들이 처음 걸음마 뗄 때 넘어지면서도 제 손을 잡으려 했던 그 손. 그게 다 제 가슴에 남아 있잖아요. 아들은 죽었지만, 제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거예요. 제가 기억하는 한, 아들은 죽지 않는 겁니다."
만득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대왕님,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모릅니다. 잃어봐야 가진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요. 저는 아들을 잃고 나서야 마누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죽음이 삶을 가르쳐 준 겁니다. 상실이 소중함을 가르쳐 준 겁니다."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만득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요, 아들 기일마다 술을 마십니다. 울면서 마셔요. 펑펑 울면서 마십니다. 실컷 울고 나면, 다음 날 아침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아, 오늘도 살아 있구나. 오늘도 마누라 얼굴을 볼 수 있구나. 오늘도 햇살을 느낄 수 있구나. 그 당연한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만득이가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을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대왕님, 이게 인간의 삶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뒤엉켜 있고,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거예요. 고통스럽습니다. 힘듭니다. 눈물 날 때가 많습니다. 근데요, 그래도 살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는 겁니다. 슬픔이 있어서 기쁨이 빛나고, 이별이 있어서 만남이 소중한 거예요."

※ 염라대왕의 눈물

전각 안이 고요했습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어요. 저승사자들도 숨을 죽이고, 만득이도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직 어디선가 타오르는 촛불 소리만 가물가물 들렸지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저승에서 시간이 멈추다니, 이상한 일이지요.염라대왕이 움직였습니다.옥좌에서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한 발짝, 두 발짝, 계단을 내려오셨어요. 저승사자들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레졌어요."대, 대왕님...?"저승사자 하나가 조심스레 불렀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어요.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내려오신 적이 없거든요. 수천 년간 단 한 번도요. 옥좌는 염라대왕의 자리이고,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근데 염라대왕은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만득이 앞까지 걸어오셨어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리고 만득이 바로 앞에 멈춰 서셨습니다. 만득이가 고개를 들어야 겨우 염라대왕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요.만득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그리고 깜짝 놀랐어요.염라대왕 눈에서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거든요.그 무섭던 눈,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한 줄기, 두 줄기.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어요."대, 대왕님...?"만득이가 어리둥절해서 물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저승의 왕이, 수천 년간 죄인들을 심판해 온 그 무서운 분이, 눈물을 흘리고 계신 거예요. 이게 꿈인가 싶었습니다."만득이..."염라대왕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까 전각을 쩌렁쩌렁 울리던 그 위엄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어요. 갈라지고, 흔들리고, 작아진 목소리였습니다."내가 이 자리에 앉은 지 오천 년이 넘었다. 오천 년. 그 세월이 얼마나 긴지 아느냐. 산이 생기고 없어지는 걸 수백 번 봤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걸 수천 번 봤다."염라대왕이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셨습니다."오천 년 동안 수억 명의 인간을 봤다. 살인자, 도둑, 사기꾼, 간음한 자, 불효한 자, 거짓말쟁이, 탐욕에 눈먼 자들... 온갖 죄인들이 내 앞에 끌려왔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씩. 다들 살려달라고 빌었다.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근데 그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눈에는 탐욕이 서려 있었다."만득이가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나는 인간이란 게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남 해치는 게 본성인 줄 알았다. 삶이란 건 고통의 연속이고, 죽음이야말로 해탈인 줄 알았어. 빨리 죽는 게 인간한테는 오히려 은혜라고 생각했다."염라대왕이 고개를 저으셨습니다."근데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본 건 인간의 어두운 면뿐이었구나. 새벽 이슬, 아내의 주먹밥,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힘...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 앞에 끌려오는 건 죄인뿐이니, 인간의 아름다운 면을 볼 기회가 없었던 거야."염라대왕이 만득이 어깨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 손이 따뜻했어요. 이상하게도요. 저승의 왕 손이 따뜻했습니다. 얼음장 같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버지 손 같았어요."고맙다, 만득이.""예...? 제가요...?""오늘 네가 나한테 가르쳐 줬다. 인간의 삶이 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하루하루가 소중한지. 수천 년간 몰랐던 걸, 오늘 네가 가르쳐 줬어."염라대왕이 씩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인자하던지, 아까 그 무서운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이 염라가 농부한테 배울 게 있다고 했지? 내가 비웃었지?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아니,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만득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꿈인가 싶었어요. 염라대왕이 웃고 계시다니. 그것도 자기한테 고맙다고 하시다니. 부끄럽다고 하시다니."대왕님..."만득이가 입을 열었습니다."저 같은 보잘것없는 농부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를 닦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제가 살아온 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그게 대단한 거다."염라대왕이 말씀하셨습니다."네가 살아온 대로. 그게 진실이니까. 꾸밈없는 삶의 이야기니까. 책에서 읽은 게 아니라, 네 몸으로 겪은 이야기니까. 그래서 이 염라의 마음을 울린 거다."

※ 기적의 환생

전각 안에 있던 저승사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에요. 서로 쳐다보며 수군수군댔어요.
"염라대왕이 우셨다..."
"대왕님이 인간한테 고맙다고 했다..."
"이건 저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염라대왕이 돌아서셨습니다.
그리고 옥좌 옆에 있는 커다란 책, 생사부를 펼치셨습니다. 생사부라는 게요, 보통 책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름과 수명이 적혀 있는 책이에요. 누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는지, 다 적혀 있지요. 하늘의 뜻이 담긴 책입니다.
"만득이, 향년 쉰다섯..."
염라대왕이 책장을 넘기며 만득이 이름을 찾으셨습니다.
"여기 있군. 만득이, 향년 쉰다섯. 사인은 급환..."
염라대왕이 붓을 드셨습니다. 먹을 찍어서 붓끝을 가다듬으시더니, 생사부 위에 쓱쓱 뭔가를 쓰기 시작하셨어요.
저승사자들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대, 대왕님! 생사부를 고치시면 안 됩니다!"
한 저승사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며 외쳤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어요.
"생사부는 하늘의 뜻이 담긴 책입니다! 함부로 고치시면 천지가 뒤집어집니다! 하늘이 노하십니다!"
"조용히 해라."
염라대왕이 차갑게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만득이한테 보여주셨던 인자한 얼굴이 아니었어요. 다시 위엄 있는 저승의 왕으로 돌아가신 거지요.
"내가 이 저승의 왕이다. 생사부를 관장하는 것도 나고, 고칠 수 있는 것도 나다. 하늘의 뜻을 대행하는 것도 나란 말이다. 감히 누가 나를 막겠느냐. 네가 막을 테냐?"
저승사자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났어요.
염라대왕이 쓰기를 마치시고, 붓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됐다."
"대왕님, 뭘 쓰신 겁니까...?"
만득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네 수명을 고쳤다."
"예...?"
"원래 오늘로 끝날 네 수명을 이십 년 더 늘려줬다. 일흔다섯까지 살아라."
만득이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라고요? 이십 년을 더요? 제대로 들은 건가요?
"대, 대왕님... 그게 무슨... 그게 가능한 겁니까..."
"내가 하면 가능하다."
염라대왕이 만득이 등을 툭 쳤습니다.
"네가 말했잖아. 마누라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왔다고. 주먹밥 대충 받아들고 나왔다고. 그 말 하러 가라. 이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만득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느끼고 싶은 거 다 느껴라. 새벽 이슬도 더 보고, 주먹밥도 더 먹고. 마누라 손도 더 잡아주고. 알겠느냐?"
"대왕님...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생시다. 꿈이 아니다."
염라대왕이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조, 조건이요?"
만득이가 눈물을 훔치며 물었습니다.
"네가 오늘 나한테 해준 이야기, 이승에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해줘라.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이슬 이야기도 해주고, 주먹밥 이야기도 해주고, 아들 이야기도 해줘라.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해. 죽기 전에 알아야 해."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득이가 연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했어요.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불렀습니다.
"이 자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다 줘라. 단, 아프지 않게. 편안하게. 알겠느냐?"
"예, 대왕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저승사자가 만득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표정이 부드러웠어요. 만득이를 끌고 온 그 무서운 저승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요.
"만득이, 가자. 네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많이 울고 있을 거야."

※ 다시 찾은 삶

"여보! 여보! 정신 차려요!"
누군가 만득이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만득이가 천천히 눈을 떴어요. 눈앞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주름투성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 마누라였어요.
"아이고, 정신이 들었어?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마누라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어요. 많이 울었나 봐요.
"여, 여기가..."
"들판이지. 당신 여기서 쓰러져 있었어. 지나가던 사람이 알려줘서 달려왔는데, 숨도 안 쉬고 있어서... 나는 당신 죽은 줄 알았다고..."
마누라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만득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온몸이 찌뿌둥했지만, 아프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묘하게 개운한 느낌이었습니다.
"여보."
만득이가 마누라 손을 잡았습니다.
"왜, 왜 그래?"
"고마워."
"예...?"
마누라가 눈을 깜빡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싸준 주먹밥, 고마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밥 해주고, 도시락 싸주고. 그거 다 고마웠어. 근데 내가 한 번도 말을 안 했네. 미안해."
마누라가 멍하니 만득이를 바라봤습니다.
"당신,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왜 이래?"
"꿈을 꿨어. 아니, 꿈이 아닐지도 몰라."
만득이가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어요.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새가 지저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아, 이게 삶이구나..."
만득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그날 이후로 만득이는 달라졌습니다.
매일 아침 마누라한테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이웃들한테도 먼저 안부를 물었고, 새벽에 들판에 나가면 이슬 맺힌 풀잎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자기 이야기를 해줬어요.
"내가 저승에 갔다 왔어."
처음에는 다들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근데 만득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어요.
"삶이란 게 말이야,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매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오늘 보는 풍경은 오늘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오늘 만나는 사람은 오늘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야 해."
만득이 이야기는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만득이는 염라대왕이 약속한 대로 이십 년을 더 살았어요. 일흔다섯에 편안히 눈을 감았는데, 그 얼굴이 어찌나 평화롭던지. 마누라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짓고 있었답니다.
아마 저승에 가서도 염라대왕한테 또 이야기를 해줬겠지요?
이십 년치 새로운 이야기를요.

유튜브 엔딩멘트

자, 여러분.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만득이처럼 저승에 갔다 올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 아침에 가족한테 고맙다고 했는지, 어제 만난 친구한테 반가웠다고 말했는지.
삶이란 게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새벽 이슬 한 방울, 아내가 싸준 도시락, 자식이 부르는 '아버지' 한마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삶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잃어보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새벽 이슬처럼 반짝이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