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과 지장보살의 감동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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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Hooking Ment)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엄격한 심판자 염라대왕이 어찌하여 지옥의 문턱에서 눈물을 보였을까? 죄인들의 비명만이 가득한 지옥을 뒤흔든 지장보살과의 약속. 그 누구도 몰랐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디스크립션 (Description)
조선시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한 여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집니다. 냉철한 심판자 염라대왕과 지옥의 중생을 구원하려는 지장보살. 한 영혼을 두고 벌어지는 두 분의 팽팽한 대립과 그 속에 숨겨진 가슴 뜨거운 약속. 우리가 몰랐던 지옥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용서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옥에 떨어진 여인, ‘연화’.
칠흑 같은 어둠 속,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죄인들의 처절한 비명과 쇠사슬 끌리는 소리뿐인 이곳은 명부, 즉 지옥입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저마다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받는 이곳의 중심에는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 거대한 심판대가 놓여있으니, 바로 업경대입니다. 그리고 그 업경대 앞, 서슬 퍼런 위엄으로 모든 영혼을 압도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지옥의 군주, 염라대왕입니다.
오늘도 염라대왕의 앞에는 한 여인의 영혼이 고개를 조아린 채 떨고 있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이름은 연화.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가졌으나,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이들의 모함으로 역적의 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한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여전히 이승에 대한 미련과 원통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지옥의 밑바닥까지 울리는 гро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네 이놈, 연화라 하였느냐. 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이곳에 무릎을 꿇었느냐! 네 아비는 나라를 뒤엎으려 한 대역죄인이요, 너는 그 피를 이어받은 역적의 딸이다. 억울하다 항변할 생각은 마라. 이곳 명부의 법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법. 네가 짊어져야 할 죄의 대가는 실로 크고 무거울 것이다!"
연화는 흐느끼며 호소했습니다. "대왕님, 억울하옵니다. 저의 아버님은 결코 나라를 배신할 분이 아니시며, 저 또한 그 가르침을 따라 한평생을 올곧게 살아왔을 뿐입니다. 뜬소문과 모함으로 인해 저희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고, 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부디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그러나 염라대왕의 표정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 세상의 온갖 추악함과 거짓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심판자.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영혼들을 심판하며 그의 마음은 강철처럼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닥쳐라! 너의 그 변명은 이곳 지옥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이다. 업경대에 너의 일생을 비춰보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터. 만약 한 점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네 혀는 불에 달군 쇠로 지져질 것이며, 네 몸은 칼산 지옥과 화탕 지옥을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다!"
염라대왕의 호령에 거대한 청동거울, 업경대가 섬광을 뿜으며 연화의 일생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연화가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자신의 양식을 나눠주던 어린 시절, 병든 아버지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던 모습,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모함한 이들을 원망하기보다 남겨진 가족을 걱정하던 애달픈 모습까지. 업경대에 비친 그녀의 삶은 죄보다는 선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판을 지켜보던 지옥의 옥졸들과 귀왕들조차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 여인은 죄가 없지 않은가?", "업경대가 저리도 맑으니, 필시 모함이 틀림없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더욱 매서운 눈으로 업경대를 노려볼 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명부의 법도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비록 개인의 삶이 억울하다 한들, '역적의 가문'이라는 사회적 판결과 그로 인해 발생한 파장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가의 법을 어지럽힌 죄, 그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습니다. "업경대에 비친 너의 선행은 인정한다. 허나, 너는 나라의 법을 어지럽힌 역적의 핏줄이다. 그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너에게는 합당한 벌이 내려질 것이다. 여봐라, 저자의 영혼을 도산 지옥으로 끌고 가라!" 염라대왕의 판결은 냉정하고 단호했습니다. 연화의 창백한 얼굴 위로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옥졸들에게 끌려 칼날이 숲처럼 솟아있는 도산 지옥으로 향하는 순간, 지옥의 한쪽에서 온화하고 자비로운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 연화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지장보살.
지옥의 어둠을 가르고 나타난 것은 한 줄기 연꽃처럼 은은하고 따스한 빛이었습니다. 그 빛의 중심에는 가사를 걸친 채 석장을 짚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한 분이 서 계셨으니, 바로 지옥의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스스로 지옥에 머무는 지장보살이었습니다. 지장보살의 등장에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던 지옥의 소음이 잠시나마 잦아들고, 고통받던 영혼들조차 그 자비로운 모습에 잠시 신음을 잊었습니다.
지장보살은 옥졸들에게 끌려가는 연화의 영혼을 가로막고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잠시 멈추시게. 그 영혼은 내가 보살펴야 할 인연인 듯하니." 옥졸들은 감히 지장보살의 앞을 막아서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염라대왕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염라대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지장보살이시여, 이곳은 사사로운 정이 통하는 곳이 아닙니다. 명부의 법도에 따라 죄를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엄중한 곳이거늘, 어찌하여 판결이 끝난 죄인의 앞을 막아서시는 것입니까?"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지장보살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자신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지장보살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염라대왕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염라대왕이시여, 대왕의 노고와 공정함을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저 여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단순히 자신의 죽음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이승에 남겨진 인연과 그릇된 세상을 향한 슬픔 때문입니다. 업경대는 그녀의 선한 삶을 비추었으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담긴 자비와 용서의 마음까지는 비추지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비와 용서라 하셨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지옥에 떨어질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요. 법은 법입니다. 설령 그 마음이 갸륵하다 한들, 이미 내려진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제가 저 여인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앞으로 어떤 영혼이 명부의 법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지옥의 질서는 무너지고, 권선징악의 이치 또한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두 거대한 존재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습니다. 한쪽은 지옥의 질서와 엄격한 법도를 수호하려는 강철 같은 의지, 다른 한쪽은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려는 끝없는 자비심이었습니다. 지옥의 모든 영혼들이 숨을 죽인 채, 두 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장보살은 한 걸음 더 다가가, 연화의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습니다. "대왕이시여,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저 여인은 비록 역적의 딸이라는 굴레를 썼으나, 그 본성은 누구보다 선하고 맑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칼산과 불지옥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참회하며, 자신을 모함한 이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기회라니요!"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이곳 지옥은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라, 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입니다! 보살님의 자비심은 존경하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여인 하나에게 예외를 허락한다면, 수많은 죄인들이 너도나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옥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염라대왕의 논리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옥의 왕으로서, 전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한 영혼의 딱한 사정 때문에 원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지옥의 질서가 무너지면, 이승의 인과응보 또한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지장보살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보살님, 부디 물러서 주십시오. 더 이상은 저의 판결에 관여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의 팽팽한 대립.
염라대왕의 단호한 거절에도 지장보살의 얼굴에서는 온화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깊은 연민의 빛이 감돌았습니다. 지장보살은 연화의 손을 잡은 채, 염라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지옥 전체를 울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어찌 명부의 법도를 모르겠습니까. 대왕께서 지키고자 하는 그 엄격한 질서와 권선징악의 이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권선징악이란 단순히 악을 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빠진 이들조차 선의 길로 이끌어내는 것에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지장보살의 말에 염라대왕은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죄를 단죄하고 벌을 내리는 것에만 집중해왔던 그에게, 지장보살의 말은 지옥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장보살은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이 지옥에 머무는 이유를 아십니까? 저는 일찍이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만약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나 또한 그들과 함께하리라.' 이것이 바로 저의 서원입니다. 제가 보기에, 저 연화라는 여인은 죄인이기 이전에, 구제받아야 할 첫 번째 중생입니다. 그녀는 억울함과 원망의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이 굴레를 풀어주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진정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벌이 아니라, 치유와 구원입니다."
지장보살의 입에서 '지옥이 텅 비기 전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서원이 흘러나오자, 지옥의 모든 존재들이 경외감에 휩싸였습니다. 고통받던 죄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흉악한 모습을 한 옥졸들조차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끝없는 시간 동안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거룩한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염라대왕의 강철 같던 마음도 그 거룩한 서원 앞에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옥의 왕으로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왔지만, 지옥을 '텅 비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옥은 언제나 죄인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곳,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지장보살이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저 여인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녀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자신을 해한 이들을 용서하며, 진정한 참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만약 그녀가 그 기회를 저버리고 다시 죄의 길을 걷는다면, 그때는 그 어떤 벌을 내리셔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 영혼을 구제하는 것을 넘어, 이 지옥에도 희망과 자비의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설득은 염라대왕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법'과 '원칙'이라는 차가운 잣대로 영혼들을 재단해왔습니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자비'와 '구원'이라는 따뜻한 손길로 영혼들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 지옥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한 영혼의 억울함을 외면해야 하는가, 아니면 질서가 조금 흔들리더라도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하는가. 염라대왕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신념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지옥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연화의 운명, 그리고 어쩌면 지옥의 미래가 그의 입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단순한 심판자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뇌하는 구도자의 눈빛과도 같았습니다.
※ 염라대왕, 과거 지장보살과 맺었던 특별한 인연과 약속을 회상한다.
염라대왕의 깊은 침묵 속에서,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은 먼지 쌓인 기억의 편린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 그가 아직 지옥의 군주가 되기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지장보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굳게 닫혀 있던 기억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한때는 인간이었고, 구도자였으며, 진리의 길을 갈망하던 영혼이었습니다.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공덕을 쌓고, 마침내 명부의 시왕 중 하나가 되어 엄정한 법도를 집행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영혼 깊은 곳에는 여전히 뜨거운 구도의 열망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기억은 어느 한 생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도는 고행승이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 세간의 비난 속에서도 오직 깨달음을 향한 일념으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굶어 죽기 직전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며칠을 굶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 한 수행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바로 지장보살의 전생 모습이었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단 하나뿐인 주먹밥을 떼어 그에게 건넸고, 차가워진 그의 몸을 자신의 옷으로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력을 차린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이여, 진정한 깨달음이란 홀로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나의 서원은 저 아래 가장 어둡고 낮은 곳, 신음 소리 가득한 지옥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당시 고행승이었던 염라대왕의 마음에 거대한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홀로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만이 수행의 전부라 여겼던 그에게, 지장보살의 서원은 그야말로 충격이자 새로운 차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날 밤, 두 구도자는 밤새도록 진리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한쪽은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자비를 실천하며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 곧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라고 설파했습니다. 팽팽했던 대화의 끝에서, 당시 고행승이었던 염라대왕은 지장보살의 그 거룩한 서원에 깊이 감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훗날 제가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면, 보살님의 그 위대한 서원을 돕겠습니다. 비록 가는 길은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 우리가 향하는 곳은 같을 것입니다."
아득한 세월 속에 잊고 있던 맹세. 염라대왕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습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지장보살의 모습 위로, 까마득한 과거에 자신에게 주먹밥을 건네주던 수행자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의 약속이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았습니다. '보살님의 그 위대한 서원을 돕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 연화라는 한 영혼을 구제하는 것은 단순히 원칙을 어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지장보살의 위대한 서원에 동참하는 길이었습니다. 수천 년간 냉철한 법의 심판자로 살아왔던 그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것은 연민이었고, 과거에 대한 존중이었으며, 더 큰 진리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강철 같던 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며, 그는 지장보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염라대왕은 자신의 권한으로 연화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염라대왕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 지옥을 감돌던 무거운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는 옥좌에서 천천히 내려와 연화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이전과는 다른, 위엄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연화라 하였느냐. 너의 억울함과 지장보살의 간청을 받아들여, 나 염라대왕은 너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연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흐느낄 뿐이었습니다. 지장보살은 그런 연화의 어깨를 다독이며 조용히 염라대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염라대왕은 말을 이었습니다. "너의 영혼은 지금부터 49일간, 이승도 저승도 아닌 경계의 공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너는 너의 삶을 어지럽힌 이들을 모두 지켜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갖게 될 것이다. 너를 모함한 자들, 거짓 증언으로 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 그리고 너의 가문을 멸문시킨 권력자까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연화에게 한 가지 물건을 건넸습니다. 그것은 작고 낡은 손거울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음 거울'이라 불리는 '심경(心鏡)'이다. 이 거울을 네가 복수하고 싶은 대상에게 비추면, 그 대상은 밤마다 가장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악몽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직접적인 벌을 내리는 것과 같다. 49일 동안 너는 이 거울로 원수들에게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다."
연화의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원수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분노와 증오가 타올랐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들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되갚아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만약 네가 단 한 번이라도 이 심경을 사용하여 복수심을 채운다면, 너의 영혼은 즉시 이곳으로 돌아와 가중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복수는 또 다른 악업을 낳을 뿐, 결코 너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반대로, 만약 네가 49일 동안 이 거울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진정한 참회와 자비의 눈물을 흘린다면, 그 순간 너의 모든 죄업은 씻겨나가고 너는 구원을 얻어 극락왕생하게 될 것이다. 선택은 너의 몫이다. 복수의 길을 걸어 영원한 고통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용서의 길을 걸어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인가. 너의 마음이 곧 너의 심판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실로 무서운 시험이었습니다. 눈앞에 복수의 칼자루를 쥐여주되, 그 칼을 쓰는 순간 자신 또한 베이게 되는 형국이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외부의 심판이 아닌, 자기 내면의 용서와 자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염라대왕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심경을 받아 들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49일간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그런 연화를 향해 믿음의 미소를 보냈고, 염라대왕은 복잡하지만 기대감이 서린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 연화는 기회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진심으로 참회하며 구원받는다.다.
연화의 영혼은 안개처럼 자욱한 경계의 공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승을 선명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모함했던 이웃 여인은 연화의 가문이 몰락하며 얻은 재물로 호의호식하고 있었고, 거짓 증언을 했던 관리는 더 높은 벼슬에 올라 떵떵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연화의 가슴은 분노로 타올랐고, 손에 쥔 '심경'을 들어 그들을 향해 비추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고 일어났습니다.
첫 7일 동안 연화는 매일 밤 원수들의 집 주위를 맴돌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을 너희도 느껴봐야 한다!' 손안의 거울은 금방이라도 끔찍한 저주를 쏟아낼 듯 차갑게 빛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장보살의 온화한 얼굴과 염라대왕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습니다. '복수는 또 다른 악업을 낳을 뿐이다.' 연화는 이를 악물고 복수의 유혹을 참아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21일이 되던 날, 연화는 자신을 시기하여 모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웃 여인이 병석에 눕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연화야, 내가 잘못했다. 나를 용서해다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의원도 고치지 못하는 병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연화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복수심 대신 차가운 연민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굳이 심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죄를 지은 자는 스스로의 양심에 의해 벌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49일이 되던 날, 연화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렸던 금부도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자의 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일 밤 술로 괴로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는 텅 빈 방에서 홀로 연화의 이름을 부르며 용서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연화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그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참회하도록 두는 것임을. 그리고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평화를 찾는 것임을.
연화는 손에 쥔 '심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해했던 모든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용서의 마음을 냈습니다. "당신들을 용서합니다. 부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해지십시오." 그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원망의 눈물이 아닌, 자비와 용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순간, 연화의 몸이 눈부신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있던 '심경'은 한 송이 연꽃으로 변해 피어났고, 칠흑 같던 경계의 공간에 빛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아미타 부처님이 인자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각, 명부의 염라대왕과 지장보살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입가에 아주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는 지장보살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보살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벌하여 다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군요. 저 영혼은 스스로를 구원했습니다." 지장보살은 합장하며 대답했습니다.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의 자비로운 결단이 한 영혼을 구하고, 이 지옥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두 분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엄격한 법의 심판자와 끝없는 자비의 구원자. 가는 길은 달랐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비명만이 가득하던 지옥에, 한 줄기 따스하고 자비로운 빛이 스며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엔딩멘트
오늘 우리가 함께한 염라대왕과 지장보살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엄격한 법 뒤에 숨겨진 깊은 고뇌와, 모든 것을 품는 자비의 마음이 만나 한 영혼을 구원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용서란 타인을 위한 것이기 이전에, 결국 자기 자신을 고통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가장 큰 자비가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도 꿀리지 않고 자신의 죄를 당당하게 인정한 조선 최고의 도둑! 과연 그에게는 어떤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