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과 현명한 판관: 죽음을 속인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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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양반 이학규와 그의 운명을 바꾼 저승 판관 김홍도의 이야기. 염라대왕의 단호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김홍도는 뛰어난 지혜로 죽음의 법칙을 교묘히 피해갑니다. 인간 세상과 저승을 오가는 숨막히는 여정 속에서 펼쳐지는 지혜와 기지,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나는 인간의 선의를 담은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후킹멘트
이학규는 이후 삼십 년 동안 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조선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김홍도의 숨겨진 그림 '달빛 아래 피어난 매화'는 후에 조선 최고의 명화로 인정받았고, 그 그림 속에 담긴 저승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전설로 전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달빛 아래 매화나무를 바라보면 염라대왕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미소 짓고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판관 김홍도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난 지혜와 정의의 승리, 그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선비 이학규와 저승으로의 여정
조선 영조 49년,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그날 밤. 한양 북촌의 고즈넉한 양반가에서 이학규는 책을 읽다 잠시 눈을 붙였다. 그의 나이 마흔셋, 학문에 정진하며 평생을 살아온 그는 최근 지방 관아의 부정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린 후 은둔하고 있었다. 등잔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이학규는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학규, 너의 시간이 다 되었다."
놀라 눈을 뜨니 검은 갓을 쓴 두 명의 사자(使者)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은 이미 이학규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직... 내 시간이 아닌데..."
이학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자들은 그의 혼을 이끌어냈다. 갑작스러운 일에 이학규는 저항할 틈도 없이 자신의 육신을 뒤로한 채 저승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몸은 방 안에 고요히 누워있었지만, 그의 혼은 이미 험난한 저승길을 걷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내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소."
이학규의 항변에도 사자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이끌 뿐이었다. 그들이 지나는 길은 점점 어두워졌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이학규는 자신이 저승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했소. 내 아들은 과거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사자 중 하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염라대왕님의 명령이오. 죽음의 명부에 네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거역할 수 없는 일이오."
이학규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지난 생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큰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정의로운 일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일이 많았다. 그런 그가 왜 갑작스럽게 저승으로 불려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승길은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깊은 산속 오솔길을 지나고,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을 건너고, 안개 자욱한 들판을 가로질렀다. 길을 걸을수록 이학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슬퍼할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노모를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졌다.
"이곳이 망자들이 건너는 삼도천이오."
사자의 말에 이학규는 눈앞에 펼쳐진 검은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탁하고 깊어 보였으며, 가끔 붉은 빛이 비쳤다. 멀리서 누군가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에는 저승 재판소가 있소. 그곳에서 염라대왕님이 당신의 죄와 선행을 심판하실 것이오."
이학규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평생 행적이 저승 법정에서 심판받는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염라대왕에게 호소할 기회가 있다는 희망도 품었다.
강을 건너는 작은 나룻배에 올라타니, 무시무시한 형상의 뱃사공이 노를 저었다. 배가 천천히 삼도천을 건너는 동안, 이학규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는 완전히 이승의 존재가 아닌 혼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착했소. 이제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받을 차례요."
배에서 내린 이학규의 앞에는 거대한 저승 법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기와와 검은 대문으로 이루어진 그 건물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 앞에는 수많은 혼령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저승법정, 염라대왕과 판관 김홍도의 첫 대면
저승 법정의 대문이 열리고, 이학규는 사자들의 인도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법정 내부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장엄했다. 높은 천장과 붉은 기둥들, 그리고 정면에는 염라대왕이 앉을 거대한 옥좌가 있었다. 옥좌 주변으로는 여러 판관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벽면에는 생사책이 가득한 서가가 늘어서 있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이학규는 다른 혼령들의 심판 과정을 지켜보았다. 염라대왕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각 혼령의 생전 행적을 낱낱이 읊으며, 그에 맞는 내세를 선고했다. 선한 이들은 극락으로, 악행을 저지른 이들은 지옥으로 보내졌다. 그 장면들을 보며 이학규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다음, 이학규!"
염라대왕의 음성이 법정 안에 울려 퍼졌다. 이학규는 떨리는 다리로 앞으로 나아갔다. 가까이서 보니 염라대왕의 얼굴은 더욱 위엄 있고 무서웠다. 검은 수염과 붉은 얼굴, 그리고 관통하는 듯한 눈빛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학규, 네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나, 특별한 이유로 이곳에 불려왔다."
이학규는 당황했다. 자신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왜 이곳에 왔다는 것인가?
"감히 여쭙니다만, 대왕님. 제가 왜 이곳에 불려온 것입니까?"
염라대왕은 잠시 침묵했다. 그때 옥좌 옆에 앉아있던 한 판관이 일어섰다. 그는 다른 판관들과는 달리 젊고 선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대왕님, 이 사안에 대해 제가 살펴보아도 될까요?"
그는 김홍도라 불리는 판관이었다. 생전에 뛰어난 화가이자 지혜로운 관리였던 그는 죽은 후 저승의 판관이 되어 망자들의 운명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특히 그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염라대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판관, 이 자의 생사기록을 살펴보거라."
김홍도는 서가에서 이학규의 생사책을 꺼내 펼쳤다. 책을 훑어보던 그의 눈빛이 점점 심각해졌다.
"대왕님, 이 사안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학규의 수명은 아직 삼십 년이나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방 관아의 부정을 고발한 후, 누군가 그의 이름을 죽음의 명부에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염라대왕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일었다.
"누구의 소행이냐!"
김홍도는 책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가 고발한 평안도 관찰사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관찰사는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저승사자를 속이고 이학규의 이름을 미리 명부에 올렸습니다."
이학규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의 상소로 위기에 처한 관찰사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저승까지 손을 뻗친 것이었다. 그의 가슴에 분노가 일었지만, 동시에 희망도 생겼다. 이 오해가 풀리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염라대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들이 저승의 법칙까지 어지럽히다니..."
그러나 곧 그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하지만 이미 저승에 온 자는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 이것이 저승의 엄격한 법칙이다."
김홍도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이학규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저승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에 갈등했다.
"대왕님, 이는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염라대왕은 고개를 저었다.
"법칙은 법칙이다. 한 번 저승에 온 혼령을 돌려보내면, 저승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김홍도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어떤 계획이 싹트고 있었다.
※ 김홍도의 기록 검토와 이학규의 억울한 사연 발견
법정이 파한 후, 김홍도는 자신의 거처로 이학규를 불렀다. 저승의 밤은 이승과 다르게 붉은 달이 항상 떠 있었고, 그 불그스름한 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김홍도는 탁자 위에 이학규의 생사책을 다시 펼쳐놓고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이학규 선생, 당신의 생애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주시오. 특히 관찰사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이학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평생 학문에 정진하며 살아왔습니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지냈지요. 그러다 지난해, 제자 중 하나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알고 보니 그 제자는 평안도 관찰사의 비리를 알게 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관찰사는 백성들에게 거두어야 할 세금의 세 배를 거두어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김홍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사책과 이학규의 이야기를 대조해 나갔다. 책에는 이학규가 관찰사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평안도로 직접 떠났던 기록이 있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저는 관찰사의 비리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장부를 확인하고, 피해 백성들의 증언을 모았지요. 그리고 그 증거를 가지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상소를 올린 직후부터 저를 향한 위협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홍도는 생사책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관찰사가 이학규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낸 기록도 있었다. 그러나 자객은 실패했고, 그 후 관찰사는 더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관찰사는 저승사자를 속이기 위해 무당을 고용했군요. 그 무당이 당신의 이름을 죽음의 명부에 올리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학규의 눈이 커졌다.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김홍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특히 강력한 무당의 경우, 저승과 이승 사이의 경계를 건드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매우 위험하고 죄스러운 행위입니다."
김홍도는 생사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이학규가 앞으로 살아갔을 삼십 년의 행적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 많은 인재를 길러내고, 후에는 왕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운명이었다.
"이 모든 것이 관찰사의 욕심 때문에 사라지게 된 것이군요."
김홍도의 눈에는 결의가 서렸다. 그는 이학규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결정은 단호했고, 저승의 법칙은 엄격했다.
"선생을 돕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학규는 감사함과 기대감으로 김홍도를 바라보았다.
"방법이 있습니까?"
김홍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승의 법칙에는 때로 예외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법칙에는 틈이 있지요."
그는 서가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저승법전'이라고 쓰인 그 두꺼운 책을 펼치며, 김홍도의 눈빛이 빛났다. 그는 오랜 시간 책을 뒤적이다가 마침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여기 있습니다. '죽음을 속인 자는 다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군요."
이학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김홍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관찰사가 당신의 죽음을 조작했으니, 당신은 죽음을 속인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죽음을 속인다면, 새로운 심판의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단도 깃들어 있었다. 이것은 저승의 법칙을 교묘히 이용하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 염라대왕에게 도전하는 김홍도, 생사의 갈림길
저승의 붉은 달이 세 번 떴다 지는 동안, 김홍도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제 염라대왕 앞에 다시 서서 이학규의 사건을 재심리할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저승 법전을 품에 안은 채, 김홍도는 이학규와 함께 법정으로 향했다. 법정 문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춰 이학규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제가 말하는 대로만 하십시오. 저승의 법칙을 교묘히 이용하는 일이니,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학규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계획은 위험했지만,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법정 안으로 들어서자, 염라대왕은 이미 여러 망자들의 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법정 안에 울려 퍼졌다. 김홍도는 법정의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마침내 모든 심판이 끝나고,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김홍도가 앞으로 나섰다.
"대왕님, 중요한 사안이 있어 다시 한번 이학규의 심판을 요청합니다."
염라대왕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울려 퍼졌다.
"김판관, 그 사안은 이미 결정되었다. 저승에 온 자는 돌아갈 수 없다."
김홍도는 손에 든 저승 법전을 펼쳤다.
"대왕님, 저승 법전 제197조를 보십시오. '죽음을 속인 자는 다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이학규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속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김홍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습니다. 이학규는 죽음을 속이지 않았지만, 저... 김홍도는 죽음을 속였습니다."
법정 안에 놀라움의 물결이 퍼졌다. 염라대왕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이냐?"
김홍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가 저승에 온 지 백 년이 되었습니다. 제 생전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저는 제 죽음의 순간을 속였습니다."
김홍도는 자신의 생사책을 꺼내 보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그는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나,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을 지연시켰다는 기록이었다.
"저는 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의 순간을 억지로 미루었습니다. 그것이 저승법의 관점에서는 죽음을 속인 것이 됩니다."
염라대왕은 생각에 잠겼다. 김홍도의 주장은 억지스러웠지만, 저승 법전의 글자 그대로를 해석하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네가 죽음을 속였다고 해서 이학규와 무슨 상관이냐?"
김홍도는 이학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이학규를 제 대리인으로 지명하여, 제 죽음의 진실을 이승에 알리고자 합니다. 저승 법전 제203조에 따르면, 죽음을 속인 자는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진실을 바로잡을 권리가 있습니다."
김홍도의 지혜로운 해석에 염라대왕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법은 법이다. 네가 찾아낸 저승 법의 틈새라... 흥미롭구나."
염라대왕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묘한 존중의 빛이 어렸다. 그는 김홍도의 지혜를 인정하는 듯했다.
"좋다. 이학규는 너의 대리인으로 이승에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김홍도와 이학규는 기대에 찬 눈으로 염라대왕을 바라보았다.
※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이학규
염라대왕의 조건은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웠다. 이학규는 이승으로 돌아가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첫째, 김홍도의 숨겨진 그림을 찾아 세상에 공개할 것. 둘째, 관찰사의 비리를 밝혀 그를 처벌받게 할 것. 셋째,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어지럽힌 무당을 찾아 그녀의 죄를 멈추게 할 것.
"이 세 가지를 모두 완수하지 못하면, 너는 백 일 안에 다시 저승으로 돌아와 영원히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엄중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이학규는 약속의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이학규가 어떻게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김홍도는 이학규를 데리고 저승의 경계로 향했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는 끝없이 펼쳐진 안개 지대였다. 그곳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흐릿해져, 방향을 잃기 쉬웠다.
"이 안개 속에 살아 있는 자만이 지나갈 수 있는 문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문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김홍도의 말에 이학규는 망설임 없이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곧 그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안개는 너무 짙어서 자신의 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김판관! 어디 계십니까?"
이학규의 외침에 대답은 없었다. 그는 홀로 남겨진 것이다. 공포가 그를 엄습했지만, 이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그를 지탱했다.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학규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희미한 빛이 안개 사이로 비쳐 들어왔다. 그는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빛은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그는 작은 문 하나를 발견했다.
문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 주변으로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문 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학규는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 너머로는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이학규는 눈을 가리며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그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점점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이것이 이승으로 가는 길인가..."
이학규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김홍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이학규는 갑자기 차가운 감각을 느꼈다. 그의 눈이 떠졌을 때, 그는 자신의 방에 누워있었다. 그의 육신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이제 그의 혼이 다시 그 몸에 돌아온 것이다.
이학규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상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살아 돌아오자, 모두는 놀라움과 기쁨에 휩싸였다.
"아버지! 정말 살아계셨군요!"
아들의 외침에 이학규는 미소 지었다. 그는 이제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단 백 일이라는 시간만이 주어져 있었다.
※ 지혜로운 판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해결책
이승으로 돌아온 이학규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첫 번째 임무인 김홍도의 숨겨진 그림을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김홍도가 생전에 살았던 곳을 찾아 나섰다. 오랜 조사 끝에, 그는 한양 외곽의 작은 초가에서 김홍도의 후손을 만날 수 있었다.
"선조께서 남기신 그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보관하고 계신지요?"
김홍도의 증손은 이학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런 그림은 없습니다.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그림들은 모두 궁에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이학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김홍도가 저승에서 자신에게 알려준 단서를 기억해냈다.
"혹시 '달빛 아래 피어난 매화'라는 그림은 들어보셨나요?"
그 말에 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잠시 이학규를 살펴보더니, 안으로 들어가 오래된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것은 작은 족자였다.
"이것은 우리 집안의 비밀입니다. 선조께서는 이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달빛 아래 피어난 매화'라는 말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라고 하셨지요."
이학규는 족자를 펼쳤다. 그림에는 달빛 아래 매화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매화나무 그림자 속에 염라대왕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김홍도는 생전에 저승을 보았던 것이다.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한 이학규는 곧바로 두 번째 임무로 넘어갔다. 관찰사의 비리를 밝히는 일이었다. 그는 이전에 모아둔 증거들을 토대로 다시 한번 상소를 올렸다. 이번에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는 관찰사가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사실까지 포함시켰다.
상소는 임금의 눈에 띄었고, 관찰사는 즉시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더 많은 비리가 드러났고, 관찰사는 결국 유배형에 처해졌다.
세 번째 임무는 가장 어려웠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어지럽힌 무당을 찾는 일이었다. 이학규는 관찰사가 찾았던 무당의 정보를 얻기 위해 유배지로 그를 찾아갔다.
"그대는 이미 죽었을 텐데... 어찌 살아 돌아왔소?"
관찰사는 이학규를 보자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학규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를 죽게 한 무당의 이름을 말하시오. 그래야 그대의 영혼이 저승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할 것이오."
관찰사는 망설였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북쪽 깊은 산속에 사는 백발의 무당이오. 이름은 묘향이라 하오."
이학규는 즉시 북쪽으로 향했다. 그가 백 일의 기한을 불과 열흘 남겨둔 시점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그는 마침내 묘향이라는 무당을 찾아냈다. 묘향은 놀랍게도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흰 머리카락만이 그녀의 특별한 능력을 암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어지럽힌 무당이오?"
묘향은 이학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은 저승에 갔다가 돌아온 자군요. 흥미롭습니다."
이학규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묘향은 귀 기울여 들었다.
"저승의 법칙을 교묘히 이용한 판관이 있었군요. 현명한 분이십니다."
이학규는 그녀에게 더 이상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어지럽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묘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관찰사에게 속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학규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그런 의식을 행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이학규는 그녀의 진심을 느꼈고, 세 번째 임무도 완수하게 되었다.
백 일의 마지막 날, 이학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 이제 그는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삼십 년의 수명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이학규는 김홍도를 만났다. 김홍도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셨군요. 이제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이학규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판관님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김홍도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단지 정의를 위해 행동했을 뿐입니다. 이제 당신은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보답입니다."
두 사람은 작별을 고했다. 이학규는 꿈에서 깨어나 창밖의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저승의 붉은 달이 아닌, 이승의 밝고 차분한 달이었다. 그는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달을 향해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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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염라대왕과 현명한 판관: 죽음을 속인 지혜'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조선시대 야담 속에 담긴 지혜와 정의의 메시지가 여러분에게도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발휘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이 채널에서는 앞으로도 조선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들, 특히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전설과 야담을 계속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였던 허준이 저승사자와 벌인 지혜로운 대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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