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천을 건너며 풀어준 사연 , 염라대왕도 감탄한 대반전 (조선 민담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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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400자 내외)
"아이고, 내 팔자야! 평생 뼈 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얻어먹고 저승길이라니요!"
지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을 버티며 손톱이 다 닳도록 일만 했던 착한 며느리 분이. 엄동설한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 얼음물에 빠져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마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이 저승길에서, 분이가 자기 코가 석 자인 줄도 모르고 남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발을 벗고 나섰답니다. 저승의 절대자 염라대왕마저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이 오지랖 넓은 며느리의 기막힌 사후 세계 여행기!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전하는 진짜 '복 받는 비결'이 궁금하시다면, 오늘 이야기 끝까지 들어보셔야 합니다. 자, 저승 문 열리는 소리 들리십니까?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평생을 헌신하며 살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며느리 '분이'. 그녀는 저승으로 가는 길목인 삼도천에서 억울하게 죽은 또 다른 망자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심판보다 타인의 아픔을 먼저 돌본 분이의 선행은 차가운 저승의 법도마저 뒤흔들기 시작하는데... 염라대왕 앞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문답과 감동적인 환생의 기적! 『지봉유설』과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고품격 야담 드라마, 지금 시작합니다.
※ 엄동설한의 비극
자, 때는 바야흐로 동지섣달 긴긴밤이 지나고,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문풍지를 사정없이 핥아대던 혹독한 겨울날이었습니다. 저기 충청도 땅 어느 깊은 산골,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비틀어지도록 일만 해온 '분이'라는 며느리가 살고 있었지요. 이 양반네 시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사같이 매서운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가 잠시 숨이라도 돌릴라치면 어디선가 나타나 쇳소리 섞인 호통을 치곤 했지요. "얘야! 노느니 염불한다고, 그 해진 도포 자락 언제까지 들고 있을 게냐! 당장 냇가에 가서 때를 쏙 빼오지 못해! 해 지기 전에 안 들어오면 오늘 저녁은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시어머니의 등살에 떠밀려 분이는 무거운 빨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냇가로 향했습니다. 밖은 이미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발을 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가득했고, 입김을 불면 금세 고드름이 될 것처럼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분이는 홑겹 저고리 위로 낡은 누비배자를 껴입었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지요. 냇가에 도착하니 물은 이미 단단한 얼음장에 갇혀 있었습니다. 분이는 가느다란 팔로 무거운 돌멩이를 들어 얼음을 깼습니다. '콰직!' 하고 깨진 얼음 틈으로 차가운 물이 튀어 오르자, 그녀의 붉게 튼 손등은 순식간에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빨래 방망이를 쥐는 것조차 고역이었습니다. 젖은 옷가지를 바위에 놓고 "퍽, 퍽" 소리 내며 방망이질을 하는데,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손목과 어깨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습니다. 손가락 끝은 이미 감각을 잃어 남의 살 같았고, 발가락은 짚신 속에서 꽁꽁 얼어 터져 피가 배어 나왔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남들은 아랫목에서 군고구마 까먹으며 담소를 나눌 시간인데, 나는 어찌하여 이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지...' 분이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 턱 끝에서 얼음 결정이 되어 맺혔지요.
그 순간이었습니다. 빨래를 헹구려고 몸을 앞으로 깊숙이 기울이던 찰나, 며칠을 굶다시피 하며 일에 치여 산 탓에 갑자기 눈앞이 노랗게 변하며 지독한 어지럼증이 덮쳤습니다. "어, 어..." 소리칠 틈도 없이 분이의 발이 젖은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풍덩!' 하고 차가운 수면 밑으로 몸이 잠기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려 허우적거렸지만, 솜바지 가득 스며든 차가운 물이 천근만근 무게로 그녀를 아래로 끌어내렸습니다. 물속은 고요했고, 오직 자신의 심장이 마지막으로 뛰는 '쿵, 쿵' 소리만 귓가를 울렸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우리 친정 엄마 얼굴 한 번 못 보고 이리 허망하게 가는구나...' 분이의 눈앞에 흐릿하게 겨울 하늘의 잔잔한 햇살이 비쳤으나, 이내 시커먼 어둠이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분이의 손 끝이 허공을 향해 가늘게 떨리다 멈췄습니다. 냇가 위에는 임자 잃은 빨래 방망이만 덩그러니 떠올라 물결을 타고 유유히 흘러갈 뿐이었습니다. 시집온 지 딱 십 년, 꽃다운 청춘이 그렇게 얼음물 속에서 서글프게 저물어갔습니다. 시어머니의 잔소리도, 고된 노동도 이제는 닿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말입니다.
※ 황천길의 불청객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분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냇가 물속도 아니요, 따뜻한 안방 아랫목도 아니었습니다. 사방이 짙은 안개로 자욱하여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기이한 길 위였지요.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데,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공허했습니다. "여기가 어딘가... 내가 살아난 것인가?" 분이가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안개 너머로 검은 옷자락이 너풀거리며 누군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는 칠흑 같은 검은 갓을 쓰고, 눈매는 서늘하며 입술은 핏기 하나 없는 사내, 바로 저승사자였습니다.
"김해 김씨 분이, 향년 스물아홉. 명부에 적힌 갈 때가 되었다. 군말 말고 따라오너라." 사자의 목소리는 마치 녹슨 쇠를 긁는 소리처럼 낮고 묵직하게 깔렸습니다. 분이는 그제야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아이고, 사자님! 저는 못 갑니다! 우리 집에 아침에 하려던 빨래가 산더미고, 서방님 저녁상도 차려야 합니다! 시어머니 호통을 생각하면 발길이 안 떨어집니다!" 죽어서도 시어머니 걱정을 하는 며느리를 보며 저승사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이 사람아, 죽은 자가 무슨 밥상을 차린단 말인가. 이 길은 한 번 발을 들이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니 헛된 미련은 저 강물에나 던져버려라."
사자가 품에서 차가운 쇠사슬을 꺼내 분이의 손목에 툭 던졌습니다. 쇠사슬이 살갗에 닿는 느낌이 얼음물보다 더 시리고 소름 돋았지요. 분이는 저항할 힘도 없이 사자의 뒤를 따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 양옆으로는 잎사귀 하나 없이 붉은 꽃만 피어 있는 상사화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길목마다 먼저 간 망자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우우-' 하고 들려왔는데, 자식을 두고 온 어미의 절규, 못다 한 사랑을 그리워하는 청년의 탄식... 그 슬픔이 안개처럼 내려앉아 분이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시커먼 물살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거대한 강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삼도천(三途川)'이었습니다. 강가에는 이미 수많은 배들이 망자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나루터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만 명의 귀신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옥졸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어물쩍대지 말고 어서 배에 올라타라!" 하고 호통을 치는데,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었습니다. 분이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강물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유독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럽게 우는 처녀 귀신 하나가 분이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이나 되었을까요? 곱게 빗은 머리에 하얀 소복을 입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짓물러 시뻘겋게 되어 있었습니다. 남들은 제 죄를 씻기 바빠 다른 귀신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건만, 천성이 착해빠진 분이는 그 처녀의 울음소리가 가슴에 박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고, 저 어린 것이 무슨 한이 그리 깊어 저토록 서럽게 울고 있나. 제 명에 못 죽고 억울하게 온 게 틀림없구나.'
분이는 저승사자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 처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처녀는 강물에 손을 담그려다 말다 하며 넋을 놓고 있었지요. "아가씨, 왜 그리 넋을 놓고 울고만 있어? 이제 다 끝난 세상인데, 눈물 흘린다고 저 강물이 거꾸로 흐르겠나?" 분이가 따뜻한 손을 내밀자 처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이의 저승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그리고 이승의 운명까지 뒤흔들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이었던 게지요. 분이는 처녀의 차가운 손을 꼭 맞잡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 망자의 눈물
자, 여기가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 삼도천(三途川) 나루터입니다. 강물 색깔이 어떠냐 하면, 먹물을 풀어 천 년을 묵힌 듯 시커먼데 그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뼈마디를 시리게 하는 비릿한 죽음의 냄새를 머금고 있지요. 강물 흐르는 소리도 '졸졸' 하는 정겨운 소리가 아닙니다. '철썩... 철썩...' 하고 검은 바위에 부딪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수만 명의 망자가 "억울하다... 살려달라..." 하고 속삭이는 비명 같아 듣기만 해도 심장이 쪼그라듭니다. 저승사자가 곁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재촉을 합니다. "시간이 없다. 어물쩍대지 말고 어서 저 배에 올라타라. 이 배를 놓치면 영영 구천을 떠돌며 길 잃은 귀신이 될 것이니라."
분이는 사자의 눈치를 살피며 배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옮겼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발목을 잡아끄는 구슬픈 곡소리가 들려옵니다. "흐으윽... 흐흑... 아버지, 불효녀를 용서하세요... 이 못난 년 때문에 우리 아버지 어찌 사실꼬..." 저기 강가 구석, 이끼 낀 차가운 바위 뒤편에 소복을 입은 처녀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 가냘픈 어깨가 어찌나 서럽게 들썩이는지 모릅니다. 남들은 제 코가 석 자라 자기 죄 씻기 바빠 다른 망자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건만, 천성이 비단결 같은 우리 분이는 그 울음소리가 가슴에 대못처럼 박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지요.
분이는 사자의 검은 도포 자락을 슬쩍 피해서 처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세상에나, 얼굴이 백옥같이 고운 처자가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데, 목에는 시퍼런 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이지요. 분이는 처녀의 차디찬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흙 묻은 소매로 그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아가씨, 왜 그리 청승맞게 울고만 있어? 이제 다 끝난 세상인데, 눈물 흘린다고 저 검은 물이 맑아지나? 응?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배도 안 타고 이러고 있어?" 처녀가 고개를 드는데 그 눈망울에 맺힌 한(恨)이 얼마나 깊은지, 보는 분이의 가슴이 다 미어집니다.
처녀의 이름은 '연화'라 했습니다. 가난한 선비의 외동딸로 태어나 고생만 하던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살았는데, 이웃 마을 욕심 많은 부잣집 도령과 혼담이 오갔더랬지요. 그런데 그 집 시어머니 될 사람이 어찌나 독하고 탐욕스러운지, 혼수 예단이 적다며 사흘이 멀다 하고 트집을 잡더니 결국 파혼을 선언한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가난한 집 딸년이 우리 집 금붙이를 탐내어 꼬리를 쳤다"며 고을 곳곳에 더러운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지요. 그 충격에 연화의 아버지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고, 연화는 자기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생겼다며 자책하다가 끝내 혼례복 치마끈에 목을 매고 만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저는 이 배를 도저히 못 타요. 제가 죽고 나면 우리 아버지는 누가 약 한 첩 달여 드리며, 저를 모함한 그 악독한 여편네는 누가 벌준단 말입니까! 저는 차라리 저 시커먼 강물에 뛰어들어 물귀신이 되어서라도 그 집구석 대들보를 꺾어버리고 싶어요!" 연화가 삼도천 물속으로 뛰어들려 하자, 분이가 화들짝 놀라 그녀의 허리춤을 꽉 낚아챘습니다. "이런 미친년! 죽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또 죽으려 하느냐! 목숨이 두 개라도 되냐!" 분이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연화의 차가운 손을 제 가슴에 품어주었습니다. "걱정 마라. 내 비록 시집살이 십 년에 얼어 죽은 못난 년이지만, 네 억울함만큼은 내가 염라대왕인지 뭔지 하는 양반한테 똑똑히 일러주마. 내 사정보다 네 사정 먼저 이야기해 줄 테니, 나랑 같이 가자. 응?" 분이의 따뜻한 손길에 연화는 비로소 울음을 그치고 분이를 의지하며 배에 올랐습니다. 저승사자도 이 광경을 보고는 혀를 차면서도 은근슬쩍 배 시간을 늦춰주더란 말이죠.
※ 염라대왕과의 대면
배가 시커먼 물결을 가르며 나아가 마침내 웅장하다 못해 음산한 기운이 뻗치는 성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저승의 중심, 명부시왕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다는 염라대왕이 계신 심판정입니다. 성문 앞에는 소머리를 한 우두옥졸과 말머리를 한 마면옥졸이 사람 키보다 큰 창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데,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지나가는 귀신들이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었지요. 분이와 연화는 쇠사슬에 묶인 채 으리으리한 대궐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바닥은 얼음처럼 차갑고 천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는데, 벽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망자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오금이 저렸습니다.
대궐 한가운데, 산더미처럼 거대한 의자에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얼굴은 숯덩이처럼 시커멓고, 수염은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쳤으며, 눈에서는 번개 같은 안광이 뿜어져 나옵니다. 대왕이 두꺼운 명부를 책상에 '탕!' 하고 내리치며 호통을 칩니다. "다음 죄인 들어오라! 이승에서 지은 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춰주는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라!" 대왕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자 법정에 모인 수만 명의 망자가 낙엽처럼 벌벌 떨며 바닥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옥졸들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찰싹'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분이는 연화의 손을 더욱 꼭 쥐었습니다.
드디어 분이와 연화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두 사람의 이름을 고하자 염라대왕이 매서운 눈으로 두 여인을 훑어봅니다. "김해 김씨 분이, 너는 이승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 명부를 보니 평생 일만 하다 냇가에서 얼어 죽었다는데, 네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구나. 죽기 전 마지막으로 품은 마음이 무엇이냐?" 분이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원래는 자기 억울한 시집살이를 먼저 고해바치려 했으나, 곁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어린 연화를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분이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대신, 염라대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대왕마마! 제 사정이야 뭐,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빨래하다 죽은 흔해 빠진 며느리 죄밖에 더 있겠습니까! 저를 불지옥에 던지시든 가마솥에 삶으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여기 이 가엾은 처자의 사정만큼은 제 목숨을 걸고 꼭 들어주셔야겠습니다!" 분이의 당돌한 목소리에 법정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판관들이 깜짝 놀라 서류를 떨어뜨리고, 염라대왕도 어이가 없는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지요. "어허, 네년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참견이냐? 네 죄를 먼저 고하라 하지 않았느냐!" "대왕님! 저승 법도가 추호의 틀림도 없다 들었는데, 죄 없는 사람이 모함받아 죽어온 것을 모른 척하신다면 그게 무슨 법도입니까! 이 처자는 시댁의 탐욕 때문에 아비를 잃고 거짓 소문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진짜 벌을 받아야 할 놈들은 이승에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왜 가해자는 살고 피해자만 여기서 벌벌 떨어야 합니까!"
분이는 침을 튀겨가며 연화의 사연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훈장님 댁의 가난하지만 맑았던 삶, 부잣집 시어머니의 추악한 예단 요구, 그리고 가문의 격을 운운하며 한 처녀의 인생을 난도질한 헛소문까지... 분이의 입담이 어찌나 기막힌지 옆에 있던 옥졸들조차 창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요. 염라대왕은 곰방대를 탁탁 털며 명부를 다시 살피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업경대를 돌려라! 이 며느리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처녀의 삶을 단 한 점 숨김없이 비춰보아라!" 거대한 거울 속으로 연화의 지난 삶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 거울 끝에서 어떤 진실이 밝혀지고, 분이의 운명은 어떻게 뒤바뀌게 될까요?
※ 명부의 실수
자, 법정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분이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못 간다, 안 간다! 이 억울한 처녀 한 안 풀어주면 나도 여기서 배 째라 하고 드러눕겠다!"며 버티니, 천하의 염라대왕도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뜨립니다. "으허허, 내 저승 밥 먹은 지 수천 년에, 저런 맹랑한 며느리는 처음 보는구나! 여봐라, 저년이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기에 저리 당당한지 명부(命簿)를 당장 가져오너라!" 대왕의 호령에 판관이 헐레벌떡 달려가 두꺼운 책을 펼칩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던 판관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합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왕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는데, 대왕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안광이 번쩍입니다.
"뭐라? 그게 사실이냐? 이런 천하에 무능한 놈들을 보았나!" 염라대왕이 곰방대를 탁탁 털며 분이를 내려다보는데, 아까의 서슬 퍼런 기세는 어디 가고 묘하게 미안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분이 야, 일어나거라. 내 민망해서 할 말이 없구나. 알고 보니 우리 직원이 큰 실수를 했어. 오늘 데려와야 할 사람은 이 마을의 '김해 김씨 분이'가 아니라, 저 건너 고을에 사는 욕쟁이 할멈 '박분이'였는데, 저승사자 요놈이 추운 날씨에 안경에 김이 서리는 바람에 널 잘못 데려온 것이야!" 법정 안이 술렁입니다. 분이는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집니다. "아이고, 대왕님!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그 차가운 얼음물 속에서 숨이 넘어가며 우리 엄마 얼굴 그리워하며 울었는데, 그게 다 배달 사고였다고요?"
분이 가 억울해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니, 염라대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립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네 수명이 아직 40년이나 남았으니 지금 당장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마. 가서 남은 생은 남부럽지 않게 호강하며 살게 해줄 테니 노여움 풀어라." 하지만 우리 오지랖 넓은 분이, 자기 살길 열렸다고 냉큼 돌아서는 위인이 아니지요. 분이는 옆에서 넋을 잃고 있는 처녀 연화를 가리키며 다시 승부수를 던집니다. "대왕님, 저만 살려주시면 뭐 합니까? 저 불쌍한 연화 아가씨는요? 저 처자 한 안 풀어주시면 저도 안 갑니다! 저승 법이 원래 이렇게 허술합니까?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왔는데, 그 원인 제공한 놈들은 이승에서 떵떵거리고 피해자만 여기서 벌벌 떨어야 하느냐 이 말입니다!"
염라대왕은 분이의 기특한 심성에 무릎을 탁 칩니다. "허허,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남의 한까지 걱정하다니, 네년의 마음씨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좋다! 네 청을 들어주마. 원래 자결한 자는 지옥 행이 원칙이나, 네가 이승으로 돌아가거든 연화의 한을 네 손으로 직접 풀어주거라. 네가 이승에서 연화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그 아버지를 살려낸다면, 내가 연화도 원한 없이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도록 특별히 조처하마. 이것으로 되었느냐?" 분이는 그제야 연화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닦습니다. "연화야, 들었지? 내가 가서 다 해결해 줄게. 조금만 기다려!" 염라대왕이 손짓하자 분이의 몸이 하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이승으로의 먼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 다시 찾은 숨결
이승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분이가 죽은 지 사흘이 지나, 이제 막 장사를 치르려고 관 뚜껑을 닫으려던 참이었거든요. 마당에는 하얀 만장이 드리워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쯧쯧, 착한 며느리 하나가 아깝게 갔네" 하며 혀를 찼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이고, 복 없는 년! 빨래하다 죽어서 집안 망신을 시키네!" 하며 가짜 곡을 하고 있었고, 무능한 남편은 구석에서 훌쩍거리고만 있었지요. 향 냄새가 진동하고 곡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 그때, 장의사가 "자, 이제 마지막 가는 길 편안히 가시게 뚜껑을 덮고 못을 박읍시다" 하며 둔탁한 망치를 들어 올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덜컹! 덜컹!' 관 안에서 무언가 육중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람들이 귀를 의심하며 멈칫하는데, 이번엔 아주 또렷하고 앙칼진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이고, 답답해! 숨 막혀 죽겠네! 문 좀 열어봐요! 이놈의 시어머니는 내가 죽어서도 사람을 괴롭히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습니다. "악! 귀신이다! 분이가 살아 돌아왔다!" 시어머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고, 조문객들은 신발도 못 신은 채 대문 밖으로 도망치느라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장의사도 혼비백산하여 망치를 던지고 도망가려는 찰나, 관 뚜껑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더니 분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분이 가 관 속에서 나오며 수의를 툭툭 털어냅니다. "아이고, 시원하다! 저승길이 멀긴 먼 모양이네. 목이 말라 죽겠으니 물 좀 한 그릇 주쇼!" 분이는 관에서 걸어 나와 마당 한가운데 섰습니다. 얼굴에는 핏기가 싹 돌고 눈이 초롱초롱한 게, 죽기 전보다 훨씬 생생하고 기세등등한 모습이었지요. 기절했다 깨어난 시어머니는 분이의 발치를 보며 벌벌 떱니다. "귀, 귀신이냐? 저승사자한테 잡혀간 년이 어떻게 돌아왔어! 저승 문턱도 못 넘고 쫓겨난 게냐?" 분이는 시어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 안 죽었어요! 염라대왕님이 실수했다고, 제가 여기서 할 일이 남았다고 다시 가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 이제 구박할 생각 마세요. 저승사자랑 형님 동생 하고 온 며느리 보신 적 있으세요?"
동네 사람들은 이 기적 같은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승 다녀온 며느리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고, 시어머니는 혹여나 분이가 염라대왕에게 자기 흉이라도 볼까 봐 그날 이후로 며느리 눈치 보기에 급급해졌지요. 분이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방 한구석에 챙겨두었던 봇짐을 챙겼습니다. 남편이 "어디 가려느냐?" 묻자, 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가긴 어디 가요, 약속 지키러 가야지! 연화 아가씨 한 풀어주러 저 옆 마을 훈장님 댁에 가야 한단 말입니다! 사람이 신용이 있어야지, 염라대왕님이 지켜보고 계신데 어찌 지체하겠소!" 분이의 진짜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 보은의 삶
분이는 그 길로 연화의 아버지가 계신 훈장님 댁을 찾아갔습니다. 집안은 폐가나 다름없이 황량했고, 훈장님은 딸을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마루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분이는 훈장님의 주름진 손을 꼭 잡고 저승에서 연화를 만난 이야기를 낱낱이 전했습니다. "어르신, 제가 저승 갔다가 따님을 만났습니다. 따님이 그럽디다. 아버지가 진지 드시고 기운 차려야, 자기도 원한 없이 저 강을 건너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요. 아버지가 우시면 자기도 발길이 안 떨어져서 삼도천 강가에서 매일 밤을 지샌답디다!" 분이가 연화만 알고 있는 어릴 적 비밀과 훈장님 가슴 속 응어리를 줄줄 읊으니, 훈장님은 통곡하며 분이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오오, 내 딸아! 네가 저승에서도 이 못난 애비를 걱정했구나! 그래, 내가 살아야지. 네가 좋은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내가 백 번이라도 밥숟가락을 들어야지!"
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연화를 파혼시켰던 그 못된 부잣집으로 쳐들어갔지요. 대문 앞에서 동네 사람들이 다 들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천벌 받을 인간들아! 염라대왕님이 너희 집안 죄를 명부에 다 적어놓으셨다! 억울한 처녀 목숨 끊어놓고 너희가 두 다리 뻗고 잘 줄 아느냐! 내 꿈에 연화 아씨가 나와서 너희 집 대들보를 갉아먹겠다고 피눈물을 흘리더라! 당장 가서 훈장님께 사죄하고 예단 되돌려주지 않으면, 오늘 밤 저승사자가 너희 집 문고리를 잡을 것이다!" 저승 다녀온 여자가 서슬 퍼런 눈을 뜨고 소리를 지르니, 부잣집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훈장님을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며 보상금을 내놓았고, 연화의 명예는 깨끗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날 밤, 분이의 꿈속에 연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소복이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동저고리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절을 올렸습니다. "언니,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강을 건너요. 다음 생에는 제가 언니의 딸로 태어나서 이 은혜 꼭 갚을게요." 연화는 꽃길을 따라 저 멀리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분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마음으로 잠에서 깼습니다. 이후 분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어머니는 효부라며 분이를 떠받들었고, 남편도 정신을 차려 집안을 일으켰지요. 분이는 40년을 더 살며 동네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살아있는 보살'로 불리다 천수를 누렸습니다.
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 년 뒤, 분이는 태몽으로 고운 선녀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연화와 똑 닮은 외모에 효성이 지극하여 온 마을의 칭송을 받았지요. 사람들은 그 아이가 바로 연화의 환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분이는 죽어서 다시 저승사자를 만났을 때, 사자가 미안한 듯 굽신거리자 껄껄 웃으며 말했답니다. "어이, 사자 형님! 이번엔 번지수 제대로 찾은 거 맞지? 그럼 갑시다, 이번엔 진짜 극락으로!" 착한 마음 하나가 저승 법도까지 바꾸고 기적을 만든, 참으로 따뜻하고 통쾌한 이야기였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자, 여러분!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오지랖 넓은 선행 덕분에 다시 살아난 우리 분이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속이 다 시원하시지요?
사람이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있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분이처럼 내 코가 석 자여도 남의 눈물 닦아주는 그 따뜻한 마음! 그 마음 하나가 하늘을 감동시키고 염라대왕의 마음까지 돌리는 법입니다. 지금 당장 복이 오지 않는다고 한숨 쉬지 마세요. 여러분이 쌓은 선업은 명부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언젠가 반드시 기적 같은 선물로 돌아올 테니까요.
오늘 밤은 내 주변에 혹시 연화처럼 울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한번 돌아보는 넉넉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은 친절이 저승사자도 돌려보낼 큰 복이 되어 돌아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좋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복채 듬뿍 내주시고, 내일은 더 신명 나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모두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