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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도 죄를 묻지 못했다

by K sunny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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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도 죄를 묻지 못했다 (출처: 어우야담)

태그 (20개)

#어우야담, #염라대왕, #옛날이야기, #전설, #설화, #민담, #조선시대, #성인, #위인, #청백리, #업경대, #저승, #심판, #재판, #교훈, #감동, #이야기, #야담, #삶의지혜

 

후킹멘트 (200자 이내)

"천 년 만에 성인(聖人)이 나타나셨다!" 엄격한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 단 한 명의 인간. 그의 삶을 비춘 거울 '업경대'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죽음의 법정마저 감동시킨 한 위대한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이내)

조선 시대 야담집 '어우야담'에 기록된 가장 경이로운 재판.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김덕수'가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섭니다. 그의 일생을 낱낱이 비추는 업경대 앞에, 저승의 모두가 숨을 죽입니다. 단 한 점의 죄도 없는 완벽한 삶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어우야담 #염라대왕 #김덕수 #성인 #권선징악

※ 병으로 죽어가던 선비 박씨.

조선 명종 시절, 한양에 박 서생이라 불리는 젊은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세는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늘 맑고 곧은 사람이었지요. 허나 시운이 따르지 않았던지, 그는 젊은 나이에 원인 모를 중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여러 의원이 다녀갔지만 병세는 차도가 없었고, 그의 목숨은 이제 경각에 달려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방 안에 홀로 누워, 박 서생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덕수. 이미 몇 해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당대 모든 선비들의 귀감이요,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성인(聖人)'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지요. 김덕수는 평생을 청백리로 살았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부정한 재물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안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시절의 일화는 특히나 유명했습니다. 당시 한양의 한 권세가가 자신의 아들을 요직에 앉히기 위해, 거마비도 제대로 없는 김덕수의 소문을 듣고는 거금의 뇌물을 상자에 담아 보냈습니다. 한밤중에 찾아온 권세가의 하인이 은밀히 상자를 내밀자, 김덕수는 조용히 촛불을 밝혀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의 금은보화 앞에서 그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하인은 일이 성사되었다고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요. 그러나 김덕수는 이내 붓을 들어 편지 한 통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뇌물 상자를 그대로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이 상자는 나와 인연이 없는 물건이니, 가지고 돌아가 너의 주인에게 이 서신과 함께 전하거라." 그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대의 마음은 받았으나, 그대의 재물은 받을 수 없소. 나에게는 그대의 재물보다, 가난한 백성의 눈물 한 방울이 더 무겁기 때문이오.' 이 일이 알려지자, 권세가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부정한 청탁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의 청렴함뿐만 아니라, 백성을 아끼는 마음 또한 지극했습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릴 때면, 그는 자신의 녹봉을 털어 관아의 뜰에 큰 솥을 내걸고 손수 죽을 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은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굶주린 백성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중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노비에게도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의 하소연은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박 서생은 바로 그런 김덕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단순히 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진정한 선비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 그 자체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한다.’ 스승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박 서생은 병상에 누워, 스승의 그 고결했던 삶을 떠올렸습니다. ‘스승님 같은 분이야말로, 돌아가신 뒤에도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비록 큰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스승처럼 살지도 못했습니다. 가난을 탓하며 학문을 게을리한 적도 있었고,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보니, 그런 작은 허물 하나하나가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아, 스승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이 못난 제자를 용서하십시오.’ 박 서생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점점 그의 의식은 아득한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심장이 마지막 고동을 멈추었습니다. 그의 짧은 생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마침내 숨이 끊어진 박씨.

박 서생의 숨이 끊어지자, 그의 몸에서는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습니다. 그의 영혼이었습니다. 육신을 벗어난 그는 마치 공기처럼 가벼웠고,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며 통곡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내려다보였습니다.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방 안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더니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두 명의 저승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박 아무개, 너의 명이 다하였으니 우리를 따르라."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차가운 쇠붙이 소리 같았습니다. 박 서생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들에게 이끌려 기나긴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한참이나 걸었을까, 그의 눈앞에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습니다. 풍도성, 저승의 입구였습니다. 성문을 지나자, 그곳은 이승의 그 어떤 관아보다도 더 크고 장엄한 법정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무시무시한 형상의 옥졸들이 창을 들고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법정의 가장 높은 상석에는, 산과 같은 몸집을 한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렸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숨결은 칼날처럼 차가워, 그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박 서생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심판을 기다리는 영혼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그는 두려움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법정의 입구가 갑자기 환한 빛에 휩싸이며, 다른 영혼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가진 한 영혼이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영혼의 모습은 늙은 선비의 형상이었지만, 그 주위로는 온화하고 맑은 기운이 서려 있어 험악한 옥졸들조차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그 영혼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당당한 걸음으로 법정의 중앙으로 나아갔습니다. 박 서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스승, 김덕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도… 돌아가셨구나.’ 김덕수는 이미 몇 해 전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영혼이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저승사자가 염라대왕을 향해 큰 소리로 아뢰었습니다. "대왕 전하! 이 자는 생전에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김덕수이옵니다!"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시끄럽던 법정 전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염라대왕 역시 미미하게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상체를 바로 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승의 모든 존재들이, '살아있는 성인'이라 불렸던 이 위대한 영혼의 심판을 지켜보기 위해 숨을 죽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지옥을 울리는 듯한 장엄한 목소리로 명했습니다. "업경대(業鏡臺)를 대령하라! 오늘, 나는 이 자의 삶을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명이 떨어지자, 거대한 청동 거울이 법정 중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거울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행적, 말과 행동은 물론 마음속 생각까지도 낱낱이 비춘다는, 저승의 가장 무서운 형벌 도구였습니다. 그 어떤 위대한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업경대 앞에서는 작은 허물 하나 숨길 수 없는 법.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저승 천지가 개벽한 이래 가장 위대한 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박 서생은 자신의 심판도 잊은 채, 경외와 불안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의 스승과 업경대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 마침내 염라대왕의 명으로 김덕수의 삶을 비추는 '업경대'의 심판이 시작된다.

"비추어라!" 염라대왕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업경대는 깊은 울음소리를 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의 표면 위로, 김덕수라는 한 인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법정에 모인 모든 영혼들과 옥졸, 판관들까지 모두가 숨을 죽이고 거울을 주시했습니다. 가장 먼저 비춰진 것은 김덕수의 유년 시절이었습니다.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습니다. 배고픔에 지쳐 우는 동생에게 자신의 하나뿐인 찐 감자를 망설임 없이 양보하는 모습, 다리가 부러진 길고양이를 가엾게 여겨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밤새 정성껏 돌보는 모습이 비춰졌습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으레 저지를 법한 작은 거짓말이나, 친구와의 다툼, 부모님에 대한 투정 같은 것은 그의 삶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 어린 김덕수의 눈은 언제나 티 없이 맑고, 그의 마음은 늘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향한 측은지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거울은 그의 학문 시절을 비추었습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바른 길을 찾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동료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가르쳐주었고, 자신보다 재주가 뛰어난 벗을 시기하기는커녕 진심으로 그의 성취를 축하해주었습니다. 그의 학문에는 그 어떤 이기심이나 질투도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모습이 비춰졌습니다. 그는 가장 낮은 직책인 참봉(參奉)으로 시작했지만, 어떤 자리에 있든 그의 자세는 한결같았습니다. 그가 한 고을의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 비춰졌습니다. 전임 현감의 수탈로 고을의 재정은 바닥나 있었고,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관아의 모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자신의 녹봉까지 털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휼했습니다. 그때, 한양의 유력한 세도가가 그에게 막대한 뇌물을 보내며, 자신의 땅에서 나는 세금을 감면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해왔습니다. 업경대는 그 순간 김덕수의 마음속을 샅샅이 비추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흔들릴 법한 거금 앞에서, 그의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 부정한 돈으로 내 배를 불릴 것인가’하는 갈등이 아니라, ‘어찌하면 이 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것인가’하는 안타까움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뇌물을 정중히 돌려보내며, 청탁 대신 고을 백성들의 어려운 사정을 빼곡히 적은 서신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의 진심에 감복한 세도가가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풀어 고을을 도왔다는 이야기까지, 업경대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심판이 진행될수록, 법정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경외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천, 수만 명의 영혼을 심판해 온 저승의 판관들조차, 이토록 티 없이 맑은 삶의 기록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수가… 저분은 평생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단 말인가?" "거짓말은 물론이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조차 품은 적이 없구나." "이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이는 필시…." 모두의 시선이 염라대왕에게로 쏠렸습니다. 늘 엄격하고 무섭기만 하던 염라대왕의 얼굴에도, 이제는 감출 수 없는 경이로움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동도 없이 업경대를 주시하며, 이제 막 시작될 김덕수의 가장 사적인 영역, 즉 그의 가족과 아내에 대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적인 삶은 완벽할 수 있어도, 사적인 삶까지 완벽한 인간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승의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과연 김덕수는,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성인일 수 있었을까요?

※ 심판은 계속된다.

저승 법정의 모든 존재들은 숨을 죽인 채, 업경대가 비추는 김덕수의 사적인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청렴했던 관리는 많았으나, 아무도 보지 않는 사적인 공간에서까지 허물이 없는 인간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거울의 장면이 바뀌고, 김덕수가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서 노모를 봉양하는 모습이 비춰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랜 병으로 몸져누워 있었고, 노환으로 인해 정신이 흐려져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밤낮으로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네 이놈, 누구인데 내 귀한 아들 행세를 하느냐! 썩 물러가거라!" 노모는 아들이 정성껏 떠먹여 주는 죽 그릇을 밀쳐내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보통의 효자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마음속에 짜증이나 원망 한 자락쯤은 피어오를 법했습니다. 그러나 업경대에 비친 김덕수의 마음속은, 놀랍게도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어머니가 나를 몰라보시니 서운하다’는 감정이 아니라, ‘병이 얼마나 깊으시면 이리도 고통스러우실까’하는 지극한 연민과 슬픔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화 한번 내지 않고, 흩어진 죽을 말없이 치우고는 다시 따뜻한 죽을 쑤어 와, 어린아이를 달래듯 노모의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그의 아내와의 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현숙한 여인이었지만, 가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실수로 그가 평생 아끼던 벼루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안절부절못하며 용서를 빌자, 그는 땅에 떨어진 벼루 조각을 조용히 주워 담으며 온화한 미소로 말했습니다. "부인, 괜찮소. 물건이란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인 것을. 이까짓 벼루 하나보다, 당신의 마음이 놀라 상한 것이 내게는 천 배는 더 아픈 일이오." 업경대는 그 순간 그의 마음을 비추었습니다. 거기에는 아까운 물건을 잃은 아쉬움이나 아내에 대한 작은 원망조차 없었습니다. 오직 아내를 걱정하는 순수한 애정과 배려만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아랫사람이 아닌,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존중하고 아꼈습니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그의 방식은 남달랐습니다. 그의 아들이 어린 시절, 이웃집의 과일을 몰래 따먹고 거짓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회초리를 들었을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덕수는 아들을 조용히 서재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얘야, 과일이 그토록 먹고 싶었더냐. 그렇다면 아비에게 먼저 말을 하지 그랬느냐. 내가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사주었을 것을. 잘못은 과일을 탐한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속인 거짓말에 있단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은 정직함이란다. 그것을 잃으면 천하를 얻어도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니, 부디 오늘의 잘못을 깊이 새기거라." 그는 회초리 대신, 따뜻한 말로 아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 속에는 권위가 아닌, 사랑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업경대는 김덕수의 가장 깊은 내면, 그의 꿈과 홀로 있을 때의 생각까지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단 한 점의 티끌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에는 음욕이 아닌 '참으로 복된 인상이구나' 하는 감상이 스쳤습니다. 자신을 음해하는 정적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에는 분노가 아닌 '그 또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스승이로다' 하는 깨달음이 자리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처럼 맑고 바다처럼 깊었습니다. 마침내 업경대의 빛이 스르르 꺼졌습니다. 김덕수의 한평생이 모두 상영된 것입니다. 저승 법정에는 무겁다 못해 신성하기까지 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수천수만 명의 영혼을 심판해 온 저승의 관리들은, 지금 자신들이 목격한 것이 과연 인간의 삶인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덕수를 향해 경의를 표하며 그를 '성인'이라 칭한다.

업경대의 심판이 끝나고, 법정 안의 모두가 염라대왕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저승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완벽한 삶의 기록 앞에서, 과연 저승의 최고 심판자는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염라대왕은 한동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의 서슬 퍼런 위엄 대신, 깊은 감동과 경외감이 서려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승의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염라대왕이 자신의 거대한 용상(龍床)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중하게 몸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가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한 위압감이 법정을 휩쓸었습니다. 옥졸들은 너무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떨어뜨렸고, 판관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넋을 잃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심판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옥의 모든 죄인들을 그저 눈빛 하나로 무릎 꿇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한낱 인간의 영혼 앞에서 자리에서 일어선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높은 단상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법정의 바닥이 낮게 울렸습니다. 그는 마침내 법정의 중앙, 김덕수의 영혼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습니다. 저승의 모든 존재를 호령하는 위대한 왕, 염라가 한 인간의 영혼 앞에서, 자신의 거대한 몸을 숙여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린 것입니다. 왕의 경의였습니다. 염라대왕은 고개를 숙인 채, 지옥 전체를 울리는 장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개를 드시오, 위대한 영혼이여."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죄인을 심판하는 냉혹함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깊은 존경심과 찬탄이 가득했습니다. 김덕수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염라대왕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 명부(冥府)가 문을 연 이래로, 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억의 영혼들이 이 문을 지나갔다. 그중에는 세상을 호령했던 제왕도 있었고, 천하를 뒤흔든 영웅도 있었으며,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는 철인도 있었다. 허나 그들 모두의 삶에는 크든 작든 얼룩이 있었고, 그 마음에는 숨겨진 그림자가 존재했다. 업경대 앞에서 완전할 수 있었던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김덕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선언했습니다. "허나 오늘, 나는 보았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말과 행동은 물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생각 한 조각마저 티 없이 맑은, 완벽한 삶을 보았다. 김덕수, 그대는 죄를 심판받으러 온 죄인이 아니다. 그대는 어둠으로 가득한 이 명부를 밝히기 위해 친히 왕림하신 성인(聖人)이시다! 천 년 만에, 비로소 이 저승에 진정한 성인이 오셨도다!" 염라대왕은 몸을 돌려, 넋을 잃고 있는 모든 판관과 옥졸, 그리고 영혼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모두 들으라! 이 영혼은 죄가 없으니, 심판할 것이 없다! 이는 저승의 법도를 넘어선 존재이니, 내가 그 앞에서 죄를 논하는 것 자체가 곧 죄가 될 것이다! 이 분은 완전무죄(完全無罪)이니라!" 완전무죄. 그 판결에 법정 안의 모두가 전율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저 분을 위해,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높은 문을 열어라! 모든 신들이 일어나 이 위대한 성인을 맞이하게 하라!" 염라대왕의 명이 떨어지자, 어둡던 저승의 하늘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눈부신 황금빛 광선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빛은 따스하고 자비로웠으며, 그 빛이 닿는 곳마다 고통받던 영혼들의 신음이 잠시나마 멎는 듯했습니다.

※ 염라대왕은 김덕수에게 저승의 높은 관직을 제안하지만,

천상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길은 모든 영혼이 꿈꾸는 궁극의 안식처, 극락정토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법정에 있던 모든 영혼들은 부러움과 경외가 뒤섞인 눈으로, 이제 곧 신들의 세계로 들어갈 김덕수의 모습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김덕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위대하신 성인이시여. 이대로 천상계에 드시는 것도 좋으나, 그 지혜와 덕을 그대로 썩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일입니다. 부디 저의 청을 들어, 이 저승에 남아 저와 함께 어리석은 영혼들을 계도하는 일을 맡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대를 저승의 제2인자, 시왕(十王) 중 하나로 봉하여 저의 곁에서 정의를 다스리는 판관이 되어 주십시오." 이 제안은 실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저승의 왕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박 서생을 비롯한 모두는, 김덕수가 당연히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덕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저승에 온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맑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온화하고도 힘이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시여, 그 크나큰 은혜와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나, 저는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심판하는 것에는 뜻이 없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법정 아래 길게 늘어선 채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과 자비가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저를 위해 천상의 문을 열지 마옵시고, 지옥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법정은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천국을 눈앞에 두고 지옥을 택하겠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김덕수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죄인으로서 벌을 받으러 지옥에 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승에서 그러했듯,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에 있는 이들의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그들이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고 단 한 명이라도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높은 곳의 안락함보다, 낮은 곳의 눈물 한 방울이 저에게는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그가 왜 성인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증거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모든 영광을 거부하고, 가장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지극한 자비심. 이것이야말로 성인의 길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존경을 넘어선, 거대한 감동의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명했습니다. "…성인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리 하도록 하라." 천상계로 향하던 문이 닫히고, 대신 법정의 바닥 한쪽이 갈라지며 끝없는 어둠과 비명이 흘러나오는 지옥의 입구가 열렸습니다. 김덕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어둡고 끔찍한 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박 서생은 눈물을 흘리며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스승의 뒷모습은, 그 어떤 빛보다도 더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박 서생의 귓가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 또한 아직 명이 다하지 않았으니, 이승으로 돌아가거라. 가서 네가 오늘 본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그 말을 끝으로 박 서생의 의식은 멀어졌고, 그는 자신의 방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저승에서 목격했던 위대한 성인의 이야기를 전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천 년 만에 나타난 성인, 김덕수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염라대왕마저 감동시킨 그의 삶은, 완벽한 인간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진정한 성인의 길은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자비의 발걸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저승을 다스리는 열 명의 왕, 시왕(十王)과 그들의 수장인 염라대왕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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