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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을 울린 사내의 순정, 남의 몸을 빌려서라도 갚고 싶었던 두 번의 은혜와 복수
염라대왕의 치명적인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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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선량하게 살다 억울하게 죽은 것도 원통한데, 저승에서는 악인이라며 펄펄 끓는 지옥불에 떨어지라니요! 염라대왕의 끔찍한 오판에 당당히 맞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청년 강민. 하지만 눈을 떠보니 내 몸이 아니다? 엉뚱한 부잣집 한량의 몸에 깃든 강민은 자신을 죽인 원수에게 통쾌한 복수를 다짐하고, 그 과정에서 운명적인 사랑마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승의 질서를 뒤흔든 대가로 저승사자가 다시 찾아오는데…. 염라대왕도 놀란 강민의 기막힌 운명, 지금 시작합니다."
※ 1: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옥사에서 죽음을 맞이한 선량한 청년 강민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맑은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는 조선의 어느 평화로운 작은 마을. 이 마을에는 가난하지만 심성 하나만큼은 아침 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청년, 강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남루한 무명옷을 걸치고 매일 산에 올라 나무를 하며 연명하는 신세였지만, 홀로 되신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소문난 효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집 담장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흙을 이겨 발라주고,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노인들이 있으면 자신이 캔 나물을 말없이 사립문 앞에 두고 오는 정직하고 선량한 인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강민을 칭찬했고, 훗날 훌륭한 짝을 만나 복을 받을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맑은 물에 오히려 시커먼 먹물이 튀기 쉬운 법이었습니다. 마을을 다스리는 사또 조 대감은 겉으로는 백성을 위하는 척했으나, 속은 탐욕으로 가득 차 고혈을 쥐어짜는 악독한 탐관오리였습니다. 조 대감은 마을 어귀에 있는 기름진 농토를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정자를 지으려 했는데, 그 땅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농부인 칠성네의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칠성네를 보다 못한 강민은,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여 관아로 찾아가 조 대감의 부당함을 낱낱이 따져 물었습니다.
"사또 나으리! 어찌하여 힘없는 백성의 유일한 목숨줄을 거두려 하십니까! 백성을 하늘처럼 섬겨야 할 목민관께서 사사로운 욕심으로 땅을 빼앗으려 하시다니, 이는 천지신명께서 노하실 일입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관아 마당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듯 엎드려 읍소하는 강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조 대감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감히 천한 나무꾼 주제에 양반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조 대감의 뱀 같은 눈동자에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습니다.
"네 이놈! 어디 감히 관아의 뜰에서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느냐! 저놈이 필시 역모를 꾸미고 관아를 능멸하려 함이 틀림없다. 여봐라! 당장 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역적놈을 하옥하고 그 죄를 낱낱이 밝혀내어라!"
조 대감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오히려 강민에게 관아의 재물을 훔치고 역모를 꾀했다는 엄청난 누명을 씌웠습니다. 하루아침에 대역 죄인이 된 강민은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차가운 지하 옥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불에 달군 쇠 인두가 살갗을 지지고, 무자비한 곤장이 뼈를 부러뜨렸지만, 강민은 끝내 거짓 자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 비록 몸은 찢기고 피는 말라가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거늘 어찌 거짓으로 죄를 짓는단 말인가. 불쌍한 우리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며 문밖을 서성이실 텐데…….'
살이 썩어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늙은 어머니를 향한 눈물만을 흘리던 강민. 하지만 인간의 육신은 한계가 있는 법이었습니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몰아치던 한겨울의 밤, 가마니 한 장 덮지 못한 채 차가운 옥사 바닥에 쓰러져 있던 강민의 숨결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이 흐려지고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던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며 쇠사슬 부딪치는 소리가 찰그랑찰그랑 울려 퍼졌습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검은 도포를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한 세 명의 그림자가 강민을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승의 삶을 거두어가는 저승사자들이었습니다.
"강민, 너의 명운이 다하였다. 이제 그만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우리를 따라 명부의 길로 나서거라."
가장 키가 큰 저승사자가 붉은 줄이 쳐진 명부를 펼쳐 들고 서늘하게 명을 내렸습니다. 강민은 반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몸에서 빠져나온 가벼운 영혼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자신의 비참한 육신을 뒤로한 채 저승사자들이 이끄는 검은 안개 속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억울함에 사무친 영혼의 눈에서는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굽이치는 황천강을 건너,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는 잿빛 세계. 강민은 이제 모든 억울함을 염라대왕 앞에서 낱낱이 밝히리라 굳게 다짐하며, 심판의 문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 2: 지옥불의 위기에서 염라대왕의 오판을 밝혀내고 환생을 허락받다
하늘을 날카롭게 찌를 듯 끝없이 솟아오른 웅장하고 거대한 저승의 중심, 명부전. 전각을 받치고 있는 육중한 기둥마다 시뻘건 지옥의 화염이 뱀처럼 춤을 추며 타오르고 있었고, 바닥에서는 억겁의 세월 동안 죗값을 치르며 갇힌 망자들의 구슬프고도 처절한 비명과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저승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전각의 정중앙, 흑단목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위압적인 옥좌 위에는 저승과 이승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다스리는 절대자, 염라대왕이 태산 같은 위용을 뿜어내며 좌정해 있었습니다. 화로의 불길을 내뿜는 듯한 매섭고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덥수룩하게 얼굴을 덮은 거친 수염, 그리고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마치 천둥과 벼락이 내리치는 듯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 죗값을 치르기 위해 끌려온 모든 망자들은 차가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포박당한 채 무시무시한 옥졸들에게 질림을 당하며 심판대 앞에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강민은, 그 엄청난 위압감 앞에서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염라대왕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무거운 죽음의 명부인 사자부(死者簿)를 촤르륵 소리를 내며 넘기더니, 심판대 아래의 강민을 서늘하고도 멸시하는 듯한 시선으로 굽어살펴 내려다보았습니다.
"네가 인간 세상에서 강민이라 불리며 목숨을 연명하던 자로구나. 명부에 붉은 먹물로 적힌 너의 그 추악한 죄상을 보아하니, 겉으로는 어미를 모시는 착한 양의 탈을 쓰고 속으로는 탐욕스러운 이리의 마음을 품어 관아의 구휼미를 몰래 훔쳐 재물을 탐하였도다! 게다가 하늘이 내린 목민관을 감히 대중 앞에서 능멸하고 반역의 무리를 모아 평화로운 마을을 어지럽히려 했으니, 너는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쓴 천하의 악질 중의 악질이로다!"
염라대왕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청천벽력 같은 거짓된 판결에, 강민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며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분명 이승에서 베풀었던 수많은 선행들과, 가엾은 백성을 지키려다 뒤집어쓴 억울한 누명이 저승의 명부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낱낱이 적혀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사자부에는 강민이 조 대감에게 억울하게 덮어씌워졌던 그 거짓된 죄목들이 마치 흔들릴 수 없는 절대적인 진실인 양 시커멓고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강민이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염라대왕은 옥좌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치며 전각이 떠나가라 벼락같은 호통을 쳤습니다.
"이러한 짐승만도 못한 간악한 악인에게는 일말의 자비조차 베푸는 것이 아까운 법이다! 여봐라! 당장 저 역악무도하고 가증스러운 놈의 목을 끌고 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 지옥인 탕확지옥에 산 채로 던져 영원토록 그 뼈와 살이 튀겨지는 고통을 맛보게 하여라!"
염라대왕의 무서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승의 흉측한 옥졸들이 날이 시퍼렇게 선 쇠스랑을 들고 달려들어 강민을 끌고 가려 양팔을 우악스럽게 꺾어 붙잡았습니다. 문이 열리며 펄펄 끓는 기름 지옥의 끔찍한 열기와 살이 타는 냄새가 저 멀리서 확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민은 두려움에 굴복하며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이승에서 착하게만 살다 억울하게 고문당해 죽은 것도 원통하여 피가 거꾸로 솟는데, 모든 진실을 꿰뚫어 보아야 할 저승에서마저 악인으로 몰려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 수는 절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강민은 온몸의 남은 영혼의 기를 모아 자신을 붙잡은 옥졸들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옥좌의 염라대왕을 향해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절규했습니다.
"대왕마마! 참으로, 참으로 억울하옵니다! 하늘을 우러러 맹세컨대 저는 평생 나무를 하며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하거나 악한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대왕마마께서 읽으신 저 명부의 기록은 모두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승의 악독한 탐관오리, 조 대감의 간악한 속임수이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명경같이 맑고 공명정대해야 할 저승의 재판이 어찌 이리도 눈이 멀어 무고하고 억울한 백성을 또다시 사지로 몬단 말입니까! 대왕마마께서 정녕 하늘을 대리하시는 공정한 분이시라면, 제발 저의 숨겨진 진실을 똑바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승 개벽 이래, 지엄하신 염라대왕의 판결에 이토록 당당하게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고 판결을 뒤집으려 든 망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각 안을 채우고 있던 모든 저승사자들과 옥졸들이 그 발칙함에 경악하여 일제히 숨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염라대왕의 얼굴은 감히 자신을 능멸한 망자의 태도에 극심한 분노로 일그러졌으나,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강민의 두 눈빛에 서린 단 한 점의 흔들림 없는 맑고 결백한 기운에 묘한 의구심과 혼란을 느꼈습니다.
"감히 신성한 명부의 기록을 부정하고 염라국의 재판을 정면으로 능멸하다니, 네놈의 썩어빠진 기백 하나만큼은 가상하구나. 좋다! 네놈이 그토록 정녕 억울하다며 발악을 하니, 이승에서의 모든 행적과 숨겨진 마음을 단 한 치의 거짓 없이 투명하게 비춰주는 저 진실의 거울, '업경대(業鏡臺)' 앞에 세워주마. 만약 네놈의 말이 단 한 글자라도 거짓일 경우, 가마솥 지옥 따위가 아니라 영원히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소멸시키는 무간지옥에 처벌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묵직한 손짓이 허공을 가르자, 전각 한가운데의 바닥이 갈라지며 집채만 한 거대한 청동 거울인 업경대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솟아올랐습니다. 강민이 결박을 푼 당당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거울 앞에 서자, 매끄러운 청동 거울의 표면이 신비롭게 물결치듯 흔들리며 강민이 이승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마치 현실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에 무너진 이웃집 담장을 밤새 고쳐주고, 자신이 주려가면서도 굶주린 노인들에게 귀한 밥을 나누어주며,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의 굳은 발을 정성껏 씻겨드리던 강민의 눈물 겹도록 선량한 일생. 그리고 마침내 가난한 농부의 땅을 지키기 위해 악덕 사또 조 대감에게 굴하지 않고 맞서다 관아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해 살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찬 바닥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는 그 억울하고 처참한 마지막 순간까지.
거울에 비친 그토록 명백하고 숭고한 진실 앞에, 심판을 내리던 명부전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쥐죽은 듯 고요해지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심판대에 앉아 있던 염라대왕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승의 권력을 쥔 악독한 조 대감의 사악한 기운이 어찌 된 일인지 저승의 서기(書記)에게까지 미쳐 명부의 기록이 철저하게 조작되고 잘못 작성되었던 것, 그야말로 저승 역사상 천지가 개벽할 초유의 끔찍한 오판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오호통재라…… 내 어찌, 내 어찌 심판관으로서 이리 눈이 멀어 이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천지신명의 대리자인 내가 이토록 무고하고 빛나는 충신을 지옥불에 던질 뻔하였구나! 이는 온전히 나의 불찰이요, 명부의 크나큰 수치로다!"
천하를 호령하며 망자들을 떨게 하던 염라대왕이었지만, 자신의 뼈아픈 실수를 인정하는 데에는 한 치의 거침도 없었습니다. 그는 옥좌에서 황급히 뛰어내려와 무릎 꿇은 강민의 앞에 섰습니다.
"강민아, 내가 한순간 눈이 어두워져 너의 그 맑고 고귀한 영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을 뻔하였구나. 내 당장 명부의 썩어빠진 기록을 모조리 수정하고 관리들을 문책할 것이니, 너는 지옥이 아니라 지금 당장 너의 고향 이승으로 돌아가 억울하게 빼앗긴 남은 수명을 마저 넉넉하게 다 누리도록 하여라. 여봐라, 사자들은 듣거라! 당장 이 귀한 자를 이승의 본래 몸으로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무사히 돌려보내어라!"
그제야 강민의 가슴속 깊은 곳에 맺혀있던 억울한 한과 응어리가 뜨거운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저승사자들이 서둘러 강민의 영혼을 호위하며 이끌고, 다시 이승의 삶을 향해 열린 눈부신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급하게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강민과 염라대왕 모두 이 급박하게 이루어진 환생의 과정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엄청난 운명의 사고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 3: 이승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몸이 아닌 엉뚱한 부잣집 한량의 몸에서 깨어나다
저승사자들의 다급한 손길에 이끌려 좁고 긴 이승의 빛을 향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던 강민. 영혼이 찢어질 듯 귓청을 때리는 거센 비바람 소리와 시공간이 비틀어지는 소음이 귓가를 맴돌더니, 이내 누군가 커다란 망치로 가슴을 쿵! 하고 세게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물리적 충격과 함께 온몸에 뜨거운 핏기가 돌고 온기가 확 밀려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켜자, 코끝으로는 차가운 옥사의 그 썩은 곰팡내와 피 냄새 대신, 아주 값비싸고 향기로운 침향 냄새와 따뜻한 온돌의 기운이 진동했습니다.
'아아… 드디어 억울함을 풀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것인가. 숨을 거둘 때 내 육신이 갈가리 찢어지고 뼈가 부서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거늘, 신기하게도 몸이 아주 솜털처럼 가볍고 고통 하나 없이 편안하구나. 하늘이 내 몸마저 온전하게 고쳐주신 모양이로다.'
강민이 무거운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자, 천장에 십장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최고급 비단 장막이 가장 먼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몸을 덮고 있는 것은 차가운 감옥 바닥의 거친 짚 가마니가 아니라, 한여름에도 땀이 차지 않고 한겨울엔 훈훈하다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명주 솜이불이었습니다. 강민이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부스스 상체를 일으켜 앉으려 하자, 방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며 병간호를 하던 하인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아, 아이고! 도, 도련님! 선달 도련님께서 살아나셨다! 용하다는 의원도 진맥을 짚고 숨이 완전히 멎었다며 고개를 내저었거늘, 우리 도련님께서 기적처럼 다시 숨을 쉬신다!"
"뭐하고 섰느냐! 어서 당장 안채로 뛰어가 마님과 대감마님께 이 믿기지 않는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아이고, 천지신명님 조상님들 감사합니다요!"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조용했던 방 안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며 아수라장 같은 난리 통이 되었습니다. 하인들이 바닥에 엎드려 눈물 콧물을 쏟으며 큰절을 하고 밖으로 뛰쳐나가자, 곧이어 최고급 비단옷을 차려입고 눈이 퉁퉁 부은 나이 든 양반 부부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방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강민을 와락 부서질 듯 끌어안고는 짐승처럼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하늘이시여! 내 새끼야! 급살을 맞아 차갑게 식어버려 내일이면 관에 뉘어야 할 줄만 알았는데, 내 아들이 이리 기적처럼 다시 눈을 뜨다니! 이제 이 어미는 당장 내일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다! 선달아, 네 애미가 보이느냐!"
강민은 숨이 막힐 듯 자신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우는 낯선 부인과, 그 곁에서 헛기침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낯선 대감을 번갈아 보며 극도의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저기… 어르신들, 진정하십시오. 대체 두 분은 누구시길래 제게 이리 과하게 이러십니까? 저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저 산 아래 낡은 초가집에 사는 가난한 나무꾼 강민입니다. 이곳은 제가 죽어갔던 관아의 옥사가 아닌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요? 저희 늙으신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강민의 어리둥절한 말에 엉엉 울던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감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이고, 영감! 우리 선달이가 죽다 살아나더니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합니다요! 미천한 나무꾼이라니,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망발이오! 어서 의원을 다시 불러 탕약을 달여 오게 하여라!"
자신을 강민이 아닌 선달이라 부르며 통곡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언가 운명의 톱니바퀴가 아주 크게 잘못 엇갈려버렸다는 것을 직감한 강민은 황급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청동 거울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마주한 강민은,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굳어버려 숨조차 쉬지 못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산을 타느라 검게 그을리고 땟국물이 흐르던 강민의 맑고 순박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햇빛 한번 보지 않은 듯 피부가 뽀얗고 눈매가 얍삽하고 교만하게 생긴, 영락없는 부잣집 한량의 얼굴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놀란 강민이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뺨을 꼬집어보자, 거울 속의 한량도 똑같이 뺨을 꼬집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이, 이럴 수가! 염라국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자들이 서두르다 내 혼이 길을 잘못 들어 완전히 다른 이의 몸에 깃든 것이로구나! 내 진짜 육신은 차가운 옥사 바닥에서 이미 꽁꽁 얼어붙어 썩어가거나 까마귀 밥이 되어 버려졌을 테니, 당황한 사자들이 급한 대로 이제 막 숨이 끊어져 온기가 남아있던 이 젊은 양반의 몸에 내 혼을 억지로 쑤셔 넣은 것이 틀림없다!'
강민이 우연히 몸을 빌리게 된 자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갑부이자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는 최 대감의 외동아들 '최 선달'이었습니다. 본래 최 선달은 돈을 물 쓰듯 하며 기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힘없는 백성들을 괴롭히던 소문난 난봉꾼이었으나, 며칠 전 원인 모를 급병으로 쓰러져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던 참이었습니다.
강민은 차가운 청동 거울을 두 손으로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든 파악하려 애썼습니다. 자신의 진짜 몸으로 돌아갈 길은 물리적으로 이미 완벽하게 막혀버렸고, 지금 당장 늙은 어머니에게 뛰어가 내가 당신의 아들 강민이라고 눈물로 호소한들, 이 낯선 양반 사내의 모습을 한 자신을 미친놈이라 여길 뿐 절대 알아볼 리 만무했습니다. 평생을 모신 어머니를 두 번 다시 아들의 모습으로 뵐 수 없다는 절망감과 뼈아픈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왔지만, 강민은 이내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나도록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눈빛을 매섭고 차갑게 빛냈습니다.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그리고 염라대왕이 나에게 주신 두 번째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무꾼 강민의 처지로는 평생을 발버둥 쳐도 그 악독한 조 대감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고 그저 짓밟힐 뿐이었지만, 이 막강한 재물과 마을을 호령하는 권세를 가진 최 선달의 몸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 조 대감, 네놈이 죄 없는 백성들의 피눈물을 쥐어짜 내어 겹겹이 쌓아 올린 그 더러운 권력과 탐욕, 내 비록 남의 몸을 빌렸으나 내 모든 것을 바쳐 이 몸으로 철저하고 처절하게 무너뜨려 주마!'
자신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고 칠성네를 비롯한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처참한 고통의 늪에 빠뜨린 철천지원수, 조 대감을 향한 서늘하고도 지독한 복수심이 강민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시뻘건 용암처럼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한 나무꾼에서 부잣집 한량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강민, 아니 이제는 겉모습마저 최 선달이 되어버린 그의 위대하고도 치밀한 복수극이 거대한 폭풍을 잉태하며 조용히 막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 4: 원수를 향한 복수의 시작과 운명적인 여인 연화와의 애틋한 만남
천하의 몹쓸 난봉꾼이자 마을 제일의 골칫거리였던 최 대감댁 외동아들 최 선달. 그가 원인 모를 급병으로 숨이 멎었다가 기적처럼 깨어난 이후, 마을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기생들의 치맛자락에 비단을 흩뿌려대고, 밤낮없이 투전판을 기웃거리며 가산을 탕진하던 그 방탕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최 선달의 몸에 깃든 강민은 깨어나자마자 굳게 닫혀있던 서재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동안 먼지만 뽀얗게 쌓여있던 사서삼경과 병법서들을 꺼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소작농들의 고혈을 쥐어짜며 빼앗았던 노비 문서와 토지 문서를 안마당으로 모조리 끌어내어 불태워버렸고, 곳간의 자물쇠를 부수고 쌀을 가마니째로 풀어 흉년으로 굶주리는 빈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환골탈태한 최 선달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습니다.
"아니, 우리 도련님이 저승 문턱을 밟고 오시더니 삿된 귀신이 떨어져 나가고 완전히 부처님이 되셨네그려! 그 악독하던 최 대감 영감이 쓰러져 앓아누운 것이 우리에겐 천운이야!"
"암만, 급살을 맞아 차갑게 식었다가 살아났으니 사람이 변할 만도 하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 같은 가난한 촌부들에겐 하늘이 내린 크나큰 복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은 저마다 입을 모아 최 선달을 칭송했지만, 강민의 진짜 목적은 얄팍한 선행으로 칭찬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자신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하의 탐관오리, 조 대감을 합법적이고도 철저하게 파멸시킬 치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 대감의 권력이 한양의 고위 관료들과 끈끈하게 닿아 있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강민은, 무작정 분노의 칼을 들이대는 대신 조 대감의 치부를 담은 결정적인 증거, 즉 뇌물 수수와 역모의 정황이 담긴 '비밀 장부'를 손에 넣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조 대감이 한양에서 내려온 거상과 불법적인 군수물자를 거래하며 비리 장부를 은밀하게 별장에 숨겨두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강민은, 검은 복면을 쓰고 자객처럼 조 대감의 비밀 별장으로 몰래 잠입했습니다. 어둠을 틈타 삼엄한 경비를 피해 담장을 넘고, 장부가 숨겨져 있을 서재 근처로 조심스레 다가가려던 찰나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산한 밤바람을 타고, 달빛이 스며드는 별장의 뒤뜰 구석에서 누군가 구슬프게 흐느껴 우는 소리가 강민의 귓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발소리를 죽이고 은밀히 다가가 보니, 그곳에는 하얀 옥비녀를 단정하게 꽂고 거친 상복을 입은 청초한 여인 하나가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리 죽여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달빛이 여인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강민의 가슴 속에서 '쿵' 하고 거대한 종이 울리듯 심장이 멎는 듯한 강렬한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과거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멍석에 말려 버려졌던 나무꾼 강민의 초라한 무덤에 남몰래 찾아와 눈물로 흙을 덮어주었던, 마을 의원 어르신의 하나뿐인 여식 '연화'였습니다.
"아버님…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의 한을 이 못난 여식이 어찌 풀어드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 간악하고 악독한 조 대감이 아버님을 모함하여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갔거늘, 힘없고 연약한 여식은 그저 밤하늘만 보며 피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차라리 저도 아버님 곁으로 데려가 주시옵소서…."
연화의 아버지는 며칠 전 조 대감의 군수물자 횡령 비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가, 입막음을 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잔혹하게 독살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강민은 연화의 붉게 충혈된 슬픈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차갑고 냉철했던 복수심으로 얼어붙어 있던 가슴 한구석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불길로 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강민이 본래의 가난한 나무꾼 육신으로 살아있을 적에, 먼발치에서 남몰래 흠모하며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했던 참으로 곱고 고운 여인이 바로 눈앞의 연화였기 때문입니다.
'연화 낭자… 당신도 나처럼 저 악마 같은 자에게 소중한 가족을 잃고 홀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군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내 비록 남의 몸을 빌려 숨을 쉬고 있으나, 반드시 당신 아버지의 원수와 나의 원수를 함께 갚아, 당신의 그 맺힌 눈물을 거두어 주고 영원히 지켜 주겠소.'
강민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어둠 속으로 몸을 깊숙이 숨기며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날 밤 별장 뒤뜰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은 강민에게 복수의 정당성을 더욱 확고하게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고, 차가운 복수극의 소용돌이 속에 애틋하고도 절절한 운명적 사랑이라는 불씨를 당기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강민은 연화의 눈물을 가슴에 새기며, 어둠을 뚫고 조 대감의 서재로 짐승처럼 날쌔게 몸을 날렸습니다.
※ 5: 통쾌한 단죄의 순간, 이승의 질서를 경고하러 찾아온 저승사자
그로부터 뼈를 깎는 듯한 반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화창한 날, 마침내 강민의 치밀하고도 끈질긴 인고의 계획이 완벽한 결실을 맺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강민은 그동안 아버지 최 대감이 평생 쌓아 올린 막대한 재력과 한양의 인맥을 교묘하고 대담하게 역이용하여, 조 대감이 한양의 역적 무리들과 결탁하여 국가의 군수물자를 빼돌리고 막대한 뇌물을 바쳤다는 완벽하고도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인 '비밀 장부'를 온전히 손에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연화의 아버지를 독살할 때 사용했던 치명적인 독약의 출처를 밝혀내고, 그 독을 사주했던 하수인을 찾아내어 결정적인 증인까지 모조리 확보해 둔 상태였습니다.
마침내 한양에서 은밀히 파견된 암행어사가 들이닥치던 날, 평화롭던 관아의 앞마당은 그야말로 피바람이 부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야!!!"
천지를 뒤흔드는 마패의 등장과 함께, 역졸들이 쏟아져 들어와 관아를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네 이놈, 조 대감! 하늘이 무섭지 않더냐! 역적의 무리와 내통하여 국기를 문란하게 하고, 무고한 백성과 의원을 독살하여 입을 막은 그 끔찍한 죄, 네놈의 목을 열 번, 스무 번 쳐도 모자랄 것이다!"
암행어사의 벼락같은 불호령과 함께 강민이 은밀히 건넨 완벽한 장부와 증거들이 만천하에 낱낱이 공개되자, 기고만장하여 백성들을 벌레 보듯 하던 조 대감은 순간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 아닙니다요! 어사 나으리, 출두라니요! 이것은 모두 저를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입니다! 누군가 저를 음해하려 꾸며낸 간악한 속임수이자 가짜 장부입니다요! 저는 하늘을 우러러 결백합니다!"
조 대감이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인하며 살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발악할 때, 강민이 당당하고 위엄 있는 걸음으로 관아 마당 중앙으로 나섰습니다. 비록 겉모습은 뽀얀 피부의 부잣집 최 선달이었지만, 그의 두 눈빛만큼은 과거 억울하게 죽어간 나무꾼 강민의 시뻘겋게 불타는 분노와 한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강민은 조 대감을 향해 서늘하고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모함이라 하셨습니까! 저잣거리에서 굶어 죽어간 백성들의 마르지 않는 피눈물과, 당신의 탐욕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간 의원 어르신의 원혼이 바로 그 증거거늘,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가증스러운 변명을 하십니까! 당신이 얄팍한 권력으로 무참히 짓밟았던 힘없는 자들의 분노가 뭉치고 뭉쳐, 오늘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단죄하러 온 것입니다!"
강민의 매서운 호통과 함께 끌려 나온 독약의 하수인이 조 대감의 죄를 낱낱이 자백하자, 조 대감은 형틀에 묶여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한양의 의금부로 압송되었습니다. 마침내 수년 동안 조 대감의 폭정에 억눌렸던 백성들의 환호와 만세 소리가 관아 마당을 넘어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마침내 억울한 원수를 갚고 정의를 실현한 강민의 얼굴에는 복수의 짜릿한 쾌감과 함께 깊은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멀리서 인파 속에 섞여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연화 역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하염없이 기쁨과 위로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강민은 천천히 연화에게 다가가 말없이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기쁨의 순간도 잠시, 강민이 연화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이승에서의 새로운 행복을 꿈꾸려던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기괴한 먹구름으로 뒤덮이며, 대낮인데도 칠흑 같은 짙은 어둠이 폭풍처럼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싸늘하고 기분 나쁜 음풍이 불어 닥치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환호하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돌조각처럼 정지된 가운데, 강민의 눈앞에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서늘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며 허공에서 스르륵 나타났습니다.
"강민, 네놈이 기어이 이승의 질서를 무참히 어지럽혔구나."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뼛속까지 시리도록 차갑고 무자비했습니다.
"염라대왕께서 너의 억울함을 특별히 어여삐 여겨 환생을 허락하셨거늘, 너는 어찌하여 남의 육신을 빌려 세속의 권력을 휘두르고 사사로운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었느냐! 이는 생과 사의 엄격한 순리를 거스르고, 명부의 법칙을 제멋대로 깨뜨린 크나큰 대역죄이다. 이제 그만 다른 이의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따라 명부전으로 돌아가 그 무거운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저승사자의 뼈만 남은 손에 들린 검은 사슬이 차가운 금속음을 내며, 뱀처럼 스멀스멀 강민의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원수를 갚고, 꿈에 그리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이제 막 두 번째 삶의 꽃을 피우려던 강민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청천벽력 같은 사형 선고였습니다.
※ 6: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린 강민의 위대한 선택과 감동의 결말
"사자님! 이것이 어찌 저만의 온전한 잘못이란 말입니까!"
강민은 자신을 속박하려 다가오는 차가운 검은 사슬을 맨손으로 꽉 틀어쥐며, 핏발 선 두 눈으로 저승사자를 향해 피를 토하듯 절규했습니다.
"애초에 죄 없는 저를 억울한 가마솥 지옥 불에 떨어뜨리려 한 것도, 제 혼을 제 육신이 아닌 엉뚱한 부잣집 한량의 육신에 잘못 깃들게 한 것도 모두 저승 사자들의 실수요, 염라대왕님의 크나큰 오판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단지 저승이 바로잡지 못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피눈물 나는 한을 풀고, 어지러운 세상의 악을 처단하여 백성들을 구했을 뿐입니다. 이제 막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한 사람답게 살아보려 하는데, 어찌 그 책임을 제게만 물어 다시 저를 차가운 저승의 나락으로 끌고 가려 하십니까!"
하지만 강민의 애절하고도 타당한 항변 앞에서도, 저승사자의 창백하고 차가운 표정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저승의 법칙은 그토록 냉혹하고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네 억울한 심정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나, 이승의 악은 철저히 이승의 법으로 다스려야 하는 법이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몸을 무단으로 빌려 역사의 물줄기를 뒤트는 것은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가장 무서운 죄악이다. 네가 만약 여기서 세속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명부의 명을 거역하며 버틴다면, 네가 곁에 두고 사랑하는 저 여인 연화마저 천기의 끔찍한 분노를 사서 오늘 당장 명줄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너의 이기심으로 저 무고한 여인마저 저승길 동무로 삼을 작정이냐!"
그 섬뜩한 경고에 강민의 심장이 천 길 낭떠러지로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강민이 공포에 질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연화는, 저승사자의 권능으로 시간이 멈춘 공간 속에서 방금 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끝까지 이승의 삶을 고집하며 사슬을 거부한다면, 자신을 대신해 연화마저 무서운 죗값을 치르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니. 강민은 차마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그녀를 희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아아… 나의 얄궂은 운명은 결국 여기까지란 말인가. 내 억울한 원통함은 풀었고 원수는 갚았으나, 사랑하는 이의 고운 손을 평생 잡아보지도 못하고 또다시 이렇게 비참하게 이별해야 하다니. 하늘도, 저승도 참으로 무심하시고 잔인하시구나.'
강민은 사슬을 꽉 쥐고 있던 손에 스르륵 힘을 풀고, 차가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서글프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자님. 제가 명을 거역한 죄를 묻고 기꺼이 돌아가겠습니다. 허니, 부디 저 연화 낭자만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남은 평생 억울한 일 없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늘에서 살펴 주십시오. 그것이 이승을 떠나는 제 마지막 간절한 청입니다."
강민이 모든 미련을 체념하고 스스로의 혼을 최 선달의 육신에서 분리하기 위해 서서히 눈을 감은 그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허공에서 갑자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붉은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천지를 진동시키는 벼락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그쯤 해두고 멈추어라!"
쏟아지는 붉은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염라대왕의 환영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무릎 꿇은 강민을 굽어보며, 이전의 서늘함과는 다른 인자하고도 거대한 위엄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이놈 강민아, 너는 억울한 죽음을 두 번이나 겪고도 여전히 바보같이 착해 빠졌구나. 내 너의 그 변치 않는 선한 심성을 시험해 보고자 사자를 보내어 겁을 주었거늘,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그 귀한 두 번째 목숨마저 기꺼이 포기하려 하다니."
염라대왕의 예상치 못한 말에 강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애초에 나의 크나큰 재판 오판으로 네가 겪지 않아도 될 그 끔찍한 고초를 겪은 것을 내 어찌 모른 척하겠느냐. 비록 네가 타인의 몸을 빌려 이승의 질서를 흔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그로 인해 악독한 탐관오리가 정당하게 벌을 받고 수많은 백성들이 지옥 같은 삶에서 구원을 얻었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 닿은 위대한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할 것이다. 내 너의 그 고귀한 희생정신과 티 없이 선한 마음을 갸륵하고 어여삐 여겨, 특별히 너에게 그 최 선달의 육신을 남은 수명 동안 온전히 허락할 것이니라!"
"대, 대왕마마… 정녕, 정녕 제가 사슬에 묶이지 않고 이승에 남아 연화 낭자와 함께 살아도 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허나 명심해라. 남들보다 귀하게 두 번의 삶을 얻은 만큼, 앞으로 네가 이승에서 짊어져야 할 업보와 책임은 보통 사람들보다 백 배, 천 배로 무거울 것이다. 남은 평생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두운 이승을 밝히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 살아가거라!"
염라대왕의 그 엄중하고도 자비로운 당부와 함께, 하늘을 덮었던 붉은빛이 안개처럼 걷히고 저승사자도 한 줌의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습니다. 멈춰있던 바람이 다시 나뭇가지를 흔들며 불기 시작하고, 굳어있던 사람들의 환호와 웅성거림이 다시 강민의 귓가에 왁자지껄하게 들려왔습니다.
"도련님… 어찌 그토록 기쁜 날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십니까?"
마법이 풀려 다시 움직이게 된 연화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와, 강민의 뺨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고운 소매로 다정하게 닦아 주었습니다. 강민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연화의 부드러운 두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하고 벅찬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낭자와 함께 손을 맞잡고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이 너무나 벅차고, 하늘에 감사해서 그렇소. 우리, 평생 서로를 아끼며 억울한 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늙어갈 때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삽시다."
염라대왕의 끔찍한 오판으로 시작된 죽음과 환생의 거대한 소동. 하지만 가장 어둡고 두려운 절망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강민의 정직함과 불굴의 선한 의지는, 결국 거대한 악을 물리치고 기적 같은 운명적 사랑과 새로운 삶을 쟁취하는 눈부신 결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최 선달의 몸으로 두 번째 삶을 얻은 강민은, 염라대왕과의 굳은 약속대로 남은 평생 백성들을 위해 모든 재산을 베풀고 사랑하며, 조선 팔도에서 누구보다 존경받고 다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의 옛날이야기, 어떠셨나요? 염라대왕의 실수로 지옥에 갈 뻔했지만, 당당히 진실을 밝히고 이승으로 돌아와 통쾌한 복수와 아름다운 사랑까지 이뤄낸 강민의 이야기! 착하게 살면 하늘도 돕고, 저승의 재판도 뒤집을 수 있다는 권선징악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네요. 우리 구독자님들도 강민처럼 올곧고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행복을 채워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편안한 밤 보내세요! 다음 시간에도 가슴 뻥 뚫리는 옛날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