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염라대왕의 기막힌 판결 01

by K sunny 2025. 12. 10.
반응형

염라대왕의 기막힌 판결 01 , 늙은 기생의 마지막 노래

태그 (15개)

#조선야담, #전설의고향, #염라대왕, #기생춘월, #감동실화, #수면동화, #시니어유튜브, #오디오드라마, #옛날이야기, #권선징악, #명판결, #인생이야기, #한맺힌사연, #저승재판, #눈물버튼
조선야담, 전설의고향, 염라대왕, 기생춘월, 감동실화, 수면동화, 시니어유튜브, 오디오드라마, 옛날이야기, 권선징악, 명판결, 인생이야기, 한맺힌사연, 저승재판, 눈물버튼

 

https://youtu.be/hcIJpErweX4

 

후킹 멘트 (300자 내외)

"어허, 저기 가는 저 여인, 한때는 조선 팔도 사내들 마음을 쥐락펴락하던 천하일색 춘월이 아니던가! 헌데 지금 꼴이 저게 뭔가. 늙고 병들어 쓸쓸히 저승길 떠나는구나.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저승 장부에는 ‘가정 파탄’, ‘사치 향락’ 온갖 죄목만 수두룩하니 지옥불 당첨은 따놓은 당상이라! 그런데 말일세, 서슬 퍼런 염라대왕이 춘월에게 대뜸 노래 한 곡을 시키더니 눈물을 훔친 사연은 대체 무엇일까? 기생 춘월의 마지막 노래에 숨겨진 기막힌 반전, 오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있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 춘월. 화려한 젊음 뒤에 찾아온 건 병들고 초라한 노년뿐이었습니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쓸쓸히 숨을 거둔 그녀가 저승 재판장에 섰습니다. 죄지은 게 많아 지옥행이 빤해 보이는데, 염라대왕은 춘월에게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이승에서 못다 부른 노래나 한 곡 하고 가거라." 그 노래 한 자락이 저승의 법도마저 뒤흔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슴 먹먹한 감동과 함께 권선징악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줄 춘월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화려했던 날은 가고, 낡은 초가에서 맞이하는 춘월의 쓸쓸한 임종과 저승사자의 방문

자, 여러분. 오늘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는 저기 저,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집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소. 때는 바야흐로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섣달그믐날 밤이라. 하늘에는 달도 별도 숨어버리고, 그저 앙상한 나뭇가지가 귀신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는 밤이었지요.

방 안 꼴을 좀 보십시오. 윗목에는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붙었고, 아랫목이라고 해봐야 냉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차디찬 바닥에 누더기 이불 하나 달랑 덮고 누운 저 할머니가 누군지 아시겠소? 에이, 설마 하실 겁니다. 한때는 “춘월아!” 하고 이름만 불러도 한양 장안의 내로라하는 양반네들 지갑이 척척 열리고, 비단 치마폭 스치는 소리에 사내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는, 그 천하일색 기생 춘월이 바로 저 노인입니다. 세월이 야속하다 못해 무섭지요? 옥구슬 같던 목소리는 쇠 긁는 소리가 되었고, 백옥 같던 피부는 쭈글쭈글한 귤껍질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콜록! 콜록! 아이고… 물 한 모금만… 누가 없느냐….”

춘월이 말라비틀어진 손을 허공에 휘저어보지만, 잡히는 건 싸늘한 허공뿐입니다. 젊은 날 그 많던 친구며, 정인이며, 수양딸이라 따르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돈 떨어지고 병드니,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을 안 합니다. 이게 인생이라. 춘월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베개맡을 적십니다. 그 눈물 속에 지난날의 영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겠지요. 화려한 연회장, 쏟아지던 금은보화, 하지만 지금은 약 한 첩 지어 먹을 돈이 없어 생쌀을 씹어 삼키며 버텨온 모진 목숨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닫힌 방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냉기보다 더 서늘한 기운이 방 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춘월이 흐린 눈을 들어 문쪽을 보니, 웬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술은 팥죽처럼 검붉은 것이, 산 사람의 기색은 요만큼도 없는 존재. 네, 맞습니다. 올 것이 온 게지요. 저승차사, 바로 저승사자가 들이닥친 겁니다.

“김춘월. 때가 되었다. 가자.”

목소리 한번 참,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것이 쇠종 소리처럼 뎅하고 울립니다. 춘월은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놀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덤덤한 표정입니다.

“나으리…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려. 내 저고리 고름이라도 좀 단정히 매고 갈 테니….”

춘월이 떨리는 손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으려는데, 손가락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갑니다. 평생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꽃단장하며 살았던 인생인데, 마지막 가는 길에 꼬질꼬질한 떄 묻은 저고리 하나 제대로 못 여미는 신세라니. 춘월이 헛웃음을 짓습니다.

“허허… 다 부질없구나. 비단 옷 입고 가나, 삼베 옷 입고 가나,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육신인 것을.”

저승사자는 재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모습을 내려다봅니다. 춘월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방구석에 놓인 낡은 거문고를 한번 쓰다듬습니다. 줄은 끊어지고 통은 갈라져 소리도 안 나는 그 거문고가 유일한 친구였던 게지요.

“내 너를 두고 가려니 발길이 안 떨어지는구나. 부디 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지 말고, 바람으로 태어나거라.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떠돌거라….”

그 말을 끝으로 춘월의 고개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방 안의 촛불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픽 하고 꺼져버립니다. 밖에서는 부엉이 우는 소리만 ‘우우- 우우-’ 하고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꼭 춘월을 배웅하는 장송곡 같습니다. 저승사자가 품에서 붉은 명부를 꺼내어 확인하고는, 투명하게 빠져나온 춘월의 혼을 향해 손짓합니다.

“이승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다.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가는 길이 천 리 만 리 더 멀어지는 법이야.”

춘월의 혼은 육신을 벗어나니 외려 가벼운가 봅니다. 쭈글쭈글하던 주름도 좀 펴진 것 같고, 굽은 허리도 꼿꼿해졌습니다. 하지만 얼굴에 서린 그 짙은 회한은 지워지지가 않네요. 춘월은 자신의 싸늘한 시신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고, 발에 채는 것은 거친 돌뿌리뿐인데, 춘월이 내디디는 걸음걸음마다 서러운 한숨이 안개처럼 피어오릅니다. 자, 이제 이승하고는 영영 이별입니다.

※ 이승의 미련을 끊고 험난한 황천길을 지나, 살벌한 저승 재판장에 들어서는 춘월

자, 이제 장면이 바뀌어 여기는 어디냐. 산 사람들은 꿈에서도 가기 싫어한다는 그곳, 바로 ‘황천길’입니다. 어우, 분위기 좀 보십시오. 하늘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고, 땅에서는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이라곤 잎은 없고 꽃만 붉게 핀 ‘상사화’ 뿐인데, 그 모습이 마치 피를 토해놓은 것 같아 소름이 쫙 끼칩니다.

춘월이 저승사자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앞에도 뒤에도, 줄지어 가는 혼령들이 끝이 안 보입니다. 개중에는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놈, 무섭다고 주저앉아 우는 놈, 돈 보따리 놔두고 와서 아깝다고 가슴 치는 놈, 별의별 인간 군상이 다 있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나는 안 죽었소! 어제저녁에 술 한잔 먹고 잠든 것뿐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오! 다시 돌려보내 주시오!”

바로 앞에서 배불뚝이 양반 하나가 저승사자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집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팡이로 바닥을 ‘쿵!’ 찍으며 호통을 칩니다.

“시끄럽다! 네놈이 먹은 술이 몇 동이며, 탐한 재물이 몇 수레인데 아직도 욕심을 못 버리느냐! 어서 걷지 못할까!”

그 서슬에 배불뚝이 양반이 깨갱하고 꼬리를 내립니다. 춘월은 그 꼴을 보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죽어서도 저리 추하구나. 나는 적어도 추하게 굴지는 말아야지.’ 춘월은 입을 꾹 다물고, 찢어진 치맛자락을 여미며 묵묵히 걷습니다. 발바닥이 가시밭길에 찔려 욱신거리고,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지만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습니다. 기생으로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춘월입니다. 이까짓 고통쯤이야, 살아생전 겪은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죠.

한참을 걸었을까요. 드디어 저 멀리 거대한 강이 보입니다. 검은 물이 콸콸 쏟아져 흐르는데, 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귀를 찢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삼도천’입니다. 이 강을 건너면 다시는 이승으로 못 돌아갑니다. 배 한 척이 스르르 다가오는데, 사공의 얼굴이 해골바가지입니다. 배에 올라타니 물비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강을 건너자마자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성문이 떡하니 버티고 섰습니다. 문 위에는 도깨비 형상의 현판이 걸려있고, 문 양쪽에는 소 머리를 한 ‘우두’와 말 머리를 한 ‘마면’이 창을 들고 서 있는데, 그 키가 장승만 하고 눈에서는 불길이 뿜어져 나옵니다. 여기가 바로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심판의 성입니다.

“죄인 김춘월, 입장하라!”

우두거인이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성문이 ‘쿠르르릉’ 하는 굉음을 내며 열립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건 뭐, 밖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살벌한 풍경입니다. 펄펄 끓는 가마솥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죄인들이 혀가 뽑히거나 뼈가 으스러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데, 그 아비규환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끔찍한 형벌장 한가운데, 까마득하게 높은 단상 위에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붉은 관복을 입고, 얼굴은 검붉으며, 눈은 부리부리한 호랑이 같은 분. 바로 염라대왕이십니다. 그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지, 춘월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염라대왕의 호통 소리가 재판장을 쩌렁쩌렁 울립니다. 옆에 있던 판관이 두루마리를 촤르르 펼치는데, 그 길이가 끝이 없습니다. 판관이 돋보기를 쓰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죄인 김춘월! 이승에서 기생으로 살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수많은 사내를 홀려 가정을 파탄 냈으며, 제 몸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굴린 죄! 또한, 늙어서는….”

판관의 입에서 춘월의 치부가 낱낱이 까발려집니다. 춘월은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다 맞는 말이니까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주위의 다른 귀신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립니다. “저 년이 그 유명한 춘월이래.”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비난의 화살이 춘월의 가슴에 푹푹 박힙니다.

그런데 그때, 염라대왕이 턱을 괴고 춘월을 빤히 내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보통 죄인 같으면 당장 “지옥으로 끌고 가라!” 할 텐데, 웬일인지 뜸을 들이십니다.

“흐음… 얼굴을 보니 곱게 생기긴 했구나. 허나 마음보가 저리 시커매서야…. 춘월아, 너는 억울한 것이 없느냐?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거라.”

염라대왕의 물음에 재판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집니다. 춘월이 벌벌 떨며 고개를 듭니다. 바싹 마른 입술을 떼어보는데,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요? “살려주십시오” 하고 빌까요? 아니면 “다 남자들이 잘못한 겁니다” 하고 따질까요?

※ 저승 판관들이 춘월의 죄목을 낱낱이 고하며 지옥행을 주장함

자, 이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염라대왕 옆에 서 있던 저승 판관, 쥐수염을 길게 기르고 눈이 뱀처럼 찢어진 양반이 판결문을 척 하니 펼쳐 듭니다. 그 종이가 어찌나 긴지, 단상에서 바닥까지 촤르륵 풀려 내려오는데, 거기 적힌 글자 하나하나가 다 춘월이 지은 죄라 이겁니다.

“죄인 김춘월! 고개를 들라!”

판관의 앙칼진 목소리에 춘월이 파리한 고개를 겨우 듭니다. 판관이 붓을 들어 먹물을 듬뿍 찍더니, 죄목 하나를 콕 찍으며 소리칩니다.

“제1조! 너는 20년 전, 김해에서 올라온 박 진사 댁 장손을 홀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문전옥답 천 마지기를 팔아먹게 하였다! 그 돈으로 네 비단 치마 해 입고, 금가락지 낄 때, 박 진사 댁 안방마님은 홧병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으니, 이것이 가정을 파탄 낸 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재판장에 모인 귀신들이 “어우, 독한 년!”, “저런 년은 찢어 죽여야 해!” 하며 야유를 퍼붓습니다. 돌멩이가 날아오듯 비난이 쏟아집니다. 춘월은 입술을 깨뭅니다. 기억납니다. 그 철없던 박 도령, 자기한테 잘 보이겠다고 집문서 훔쳐 왔을 때, 모른 척 눈감고 그 돈으로 노름빚 갚았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제2조! 을해년 흉년 때를 기억하느냐? 백성들은 굶어 죽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데, 너는 명나라에서 들여온 비단으로 옷을 해 입고, 쌀밥이 맛없다고 떡을 빚어 개에게 던져주었다! 네 사치와 향락이 하늘을 찔러 원망의 소리가 이곳 저승까지 들렸느니라!”

판관이 소리칠 때마다, 재판장 한쪽에 놓인 거대한 거울, ‘업경대’에서 그날의 영상이 번쩍번쩍 비칩니다. 화려한 요리상 앞에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거리는 젊은 춘월의 모습, 그리고 그 담벼락 아래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의 모습이 동시에 보입니다. 춘월은 차마 그 거울을 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습니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내가 귀신이 씌었지….”

춘월이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려는데, 판관은 봐주지도 않고 계속 읽어 내려갑니다. 사내들 마음 가지고 장난친 죄, 부모가 지어준 몸 함부로 굴린 죄, 술에 취해 행패 부린 죄…. 죄목이 백 가지는 넘어 보입니다.

“이 모든 죄를 인정하느냐!”

염라대왕의 호통이 떨어집니다. 춘월은 납작 엎드린 채 어깨만 들썩입니다.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고,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버스는 떠났고 배는 가라앉은 것을요.

“네, 대왕님…. 다 제 죄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춘월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갑니다. 이제 판결만 남았습니다. 저 옆에 도깨비들이 시뻘건 불에 달군 인두를 들고 낄낄거리며 다가옵니다. ‘아, 나는 이제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겠구나.’ 춘월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차가운 저승 바닥을 적십니다. 그때였습니다.

“잠깐.”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형벌을 멈춥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도깨비들도, 판관도, 춘월도 모두 얼음이 됩니다. 대왕이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춘월을 뚫어지라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다릅니다.

※ 침묵하던 춘월에게 염라대왕이 마지막 변론 대신 '노래 한 곡'을 청하는 기이한 상황

염라대왕이 단상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옵니다. 그 거대한 덩치가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 같습니다. 춘월의 코앞까지 다가온 염라대왕. 그 위압감에 춘월은 숨도 제대로 못 쉽니다. 그런데 염라대왕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에도 호통이 아니었습니다.

“김춘월. 네 죄가 무거워 칼산 지옥에 떨어져도 시원찮을 판이다. 허나… 내 너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춘월이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조금 듭니다.

“예…? 하문하시옵소서….”

“네가 이승에서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이냐? 사내들 홀리는 기술 말고, 네가 진정으로 목숨 걸고 했던 것 말이다.”

춘월은 멍해집니다. 제일 잘하는 것? 사내들 비위 맞추는 거? 술 마시는 거?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소리’입니다. 기생이 되기 전, 열 살 꼬마 때부터 목에서 피가 나도록 불렀던 노래. 배고픔을 잊으려 불렀고, 매 맞는 서러움을 잊으려 불렀던 그 노래 말입니다.

“소리… 소리 한 자락은 할 줄 아옵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 네 노래 솜씨가 조선 팔도 제일이라 들었다. 저승까지 그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좋다. 내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마. 여기서 노래 한 곡 불러보거라.”

네? 지금 이 상황에요? 춘월도 놀라고, 판관도 놀라고, 구경하던 귀신들도 턱이 빠져라 놀랍니다.

“대, 대왕님!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신성한 재판장에서 노래라니요! 당장 혀를 뽑아도 모자랄 판에!”

판관이 펄쩍 뛰며 말리지만, 염라대왕은 콧방귀를 뀝니다.

“시끄럽다! 놈의 혀를 뽑기 전에, 그 혀끝에서 나오는 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들어나 보자는 것이다. 춘월아, 너는 어찌 가만히 있느냐? 설마 늙어서 목청이 다 굳은 것이냐?”

춘월은 기가 막힙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평생 남을 위해 노래를 팔았는데, 죽어서도 노래를 팔아야 하나 싶어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게다가 지금 춘월의 목 상태는 엉망입니다. 늙고 병들어 쇳소리가 나는데, 어찌 천하의 염라대왕 앞에서 노래를 한단 말입니까.

“대왕님, 제 목소리는 이미 다 쉬어 까마귀 소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천한 소리로 어찌 귀를 더럽히시려 합니까… 차라리 빨리 벌을 주십시오.”

춘월이 울먹이며 거절합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단호합니다.

“누가 네년의 고운 목소리를 듣겠다더냐? 나는 네 ‘목’이 아니라 네 ‘혼’을 듣고 싶은 게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기억, 네가 가장 간절하게 불렀던 그 마음을 담아 불러보란 말이다! 만약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때는 칼산 지옥으로 직행이다. 어떠냐?”

이건 명령이자, 마지막 동아줄입니다. 춘월은 마른침을 꿀꺽 삼킵니다. 그래, 어차피 죽은 목숨,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평생 남의 흥을 돋우려 불렀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내 불쌍한 인생을 위해 불러보자.

춘월이 주섬주섬 일어납니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허리만큼은 꼿꼿하게 폅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재판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수천수만 귀신의 시선이 춘월의 입술에 꽂힙니다. 춘월이 입을 엽니다. 화려한 기교도, 맑은 고음도 아닙니다. 그저 탁하고 거친, 하지만 깊은 한이 서린 늙은 여인의 독백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아리고… 쓰린 가슴… 부여잡고… 건너온 세월….”

그 첫 소절이 터져 나오는 순간, 차가운 저승 공기에 미세한 파동이 일기 시작합니다.

※ 춘월의 노랫가락 속에 펼쳐지는 과거의 환영

“바람아… 불지 마라… 이 내 몸… 춥단다… 떨어진 꽃잎… 누가 주워가나….”

춘월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습니다. 박자도 안 맞고 음정은 불안합니다. 듣고 있던 귀신들이 “에이, 저게 무슨 명창이야?” 하고 비웃으려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재판장 한가운데 있는 ‘업경대’가 번쩍! 하고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은 춘월이 노래하던 화려한 술판이 아니었습니다.

장면은 30년 전, 지독한 흉년이 들었던 어느 겨울밤으로 바뀝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다리 밑, 춘월이 비단 치마를 찢어 벌벌 떠는 아이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거적때기를 쓴 꼬질꼬질한 아이들이 다섯이나 됩니다. 춘월은 자신의 털배자를 벗어 제일 어린아이에게 입히고, 정작 자신은 얇은 속적삼 바람으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아가, 울지 마라. 내 오늘 밤에 꼭 밥을 구해오마.”

영상 속 젊은 춘월이 눈밭을 헤치고 부잣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소금 세례를 맞으면서도 기어이 밥 한 덩이를 얻어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먹이며 노래를 불러줍니다. 지금 부르는 바로 그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무서워하지 않게, 배고픔을 잊게 하려고 불렀던 ‘자장가’였던 겁니다.

재판장의 귀신들이 숨을 죽입니다. 영상은 다시 바뀝니다. 이번엔 전쟁통입니다. 왜놈들이 칼을 차고 기방으로 들이닥칩니다. 다른 기생들은 도망가느라 바쁜데, 춘월은 창고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습니다. 창고 안에는 갈 곳 잃은 처녀들과 동네 아낙들이 숨어 있습니다.

“비켜라! 이 안에 숨긴 것들이 있지!”

왜군이 칼을 들이대지만, 춘월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호통을 칩니다.

“내 목을 베고 가라!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술상을 차려올 것이지, 칼을 들고 설치는 놈들에게 들려줄 노래는 없다!”

춘월이 그 살벌한 칼날 앞에서 노래를 시작합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창고 안의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목청을 높입니다. 그 기개에 질린 왜군들이 침을 뱉고 돌아섭니다. 그날 춘월이 목숨 걸고 부른 노래 덕분에 수십 명의 아낙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재판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늙은 춘월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잘 살았을까… 내 죄가 많아… 그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건 아닐까….”

춘월은 자신이 한 일이 선행인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배고픈 아이들 밥 먹이고, 무서운 사람들 지켜주는 게 사람 도리라 생각했으니까요. 사치와 향락으로 썼다던 그 많은 돈도, 알고 보니 다 이 아이들 입히고 먹이는 데 들어갔던 겁니다. 기생이라 손가락질받을까 봐 몰래몰래 도왔던 것이, 명부에는 그저 ‘재산 탕진’으로만 기록되었던 거지요.

노래가 끝났습니다. 춘월이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습니다.
“대왕님… 이 천한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시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재판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합니다. 아까 춘월을 욕하던 귀신들도, 서슬 퍼렇던 판관도, 다들 훌쩍거리고 있습니다. 저승사자마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칩니다.

※ 노래에 감동한 염라대왕의 파격적인 판결과 저승 관료들의 숙연해진 모습

“통쾌하도다! 실로 통쾌하도다!”

갑작스런 염라대왕의 고함에 춘월이 깜짝 놀라 움찔합니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춘월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두르고 있던 붉은 곤룡포 자락을 벗어, 엎드려 있는 춘월의 어깨에 덮어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들어라, 춘월아.”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춘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듭니다.

“판관은 듣거라! 이 여인의 죄목이 적힌 명부를 당장 가져오너라!”

판관이 헐레벌떡 죄인 명부를 대령합니다. 염라대왕이 그 명부를 낚아채더니, 춘월이 보는 앞에서 쫙- 쫙- 찢어버립니다. 종이 조각이 눈송이처럼 재판장에 흩날립니다.

“대, 대왕님! 그건 천계의 기록인데 어찌…!”

판관이 기겁하며 말리려 하자,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며 말합니다.

“기록이 잘못되었으면 고치는 것이 판관의 몫이거늘! 보아라. 이 여인이 사내를 홀려 가정을 깼다? 천만에! 그 사내놈들이 제정신 못 차리고 덤벼든 것을 어찌 꽃 탓을 하느냐. 돈을 탕진했다? 제 배 채우는 데 쓴 게 아니라, 굶주린 생명을 살리는 데 썼으니, 이것은 탕진이 아니라 ‘적선’이다!”

염라대왕이 춘월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그 손은 거칠고 주름졌지만, 염라대왕에게는 그 어떤 비단보다 고와 보이는 모양입니다.

“춘월아, 네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으로, 아니 영혼으로 듣는 것이었다. 네가 이승에서 부른 노래 한 자락, 한 자락이 죽어가는 목숨을 살렸고, 절망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네 몸은 비록 흙으로 돌아갔으나, 네가 남긴 그 덕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춘월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평생 ‘기생 년’ 소리 들으며 천대받았는데, 죽어서 저승의 왕에게 이런 칭찬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하여, 내 너에게 판결을 내리노라! 지옥행은 취소다! 대신 너에게 특별한 임무를 주겠다.”

“이, 임무라 하셨습니까…?”

“그래. 너는 아직 이승에 미련이 남은 듯하구나. 네 노래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아직 저 아래에 많다. 내 너를 바로 천상으로 보내 신선 놀음을 시켜주고 싶지만, 네 재주가 아까워 그리 못하겠다. 너는 오늘 밤부터 이승의 꿈길을 거닐며, 힘없고 가여운 여인들에게 네 노래를 전하거라.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네 노래로 희망을 심어주란 말이다. 이것이 내가 내리는 벌이자, 상이다. 알겠느냐?”

이건 벌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춘월이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큰절을 올립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재판장에 있던 모든 귀신과 저승차사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지옥의 입구에서 천상의 사명자로 운명이 뒤바뀐 순간, 춘월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꽃이 피어납니다. 늙고 병든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성기 시절보다 더 아름답고 기품 있는 미소가 그녀의 얼굴을 감쌉니다.

※ 이승의 후배 기생들 꿈에 나타난 춘월, 그리고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의 모습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봅니다. 어느 기생집 침소. 앳된 얼굴의 어린 기생 ‘연홍’이가 잠에서 깨어나며 눈물을 닦습니다. 베개맡이 흥건합니다. 옆에서 자던 언니 기생이 부스스 눈을 뜨며 묻습니다.

“연홍아, 아침부터 무슨 꿈을 꿨길래 그리 서럽게 우느냐?”

연홍이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엽니다.

“언니… 나 꿈에 춘월 선생님을 뵈었어.”

“춘월 선생님? 그 며칠 전에 돌아가신, 다 늙은 할머니 말이냐?”

“아니야… 할머니 모습이 아니었어.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이 달덩이처럼 고우셨어. 나한테 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노래를 하나 가르쳐 주시더라.”

연홍이가 꿈속에서 들은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바람아 불지 마라… 이 내 몸 춥단다… 하지만 봄은 오네… 꽃은 다시 피네….”

그 노래를 듣던 언니 기생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건 춘월 할머니가 생전에 구석방에서 혼자 웅얼거리던 그 곡조입니다. 그때는 듣기 싫다고 구박했는데, 연홍이의 입을 통해 들으니 어찌 이리 가슴이 사무치는지요.

“선생님이 그러셨어. 사는 게 힘들고 고달파도, 절대 기죽지 말라고. 우리가 흘린 눈물이 모여서 꽃이 되는 거라고… 이 노래 부르면서 힘내라고….”

그날 이후, 기방에는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춘월이 남긴 그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절망에 빠져 목매달려던 기생이 마음을 고쳐먹고, 빚쟁이에 시달리던 아낙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 겁니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춘월가’라 부르며, 힘들 때마다 불렀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춘월은 갔지만, 그녀의 노래는 남아서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염라대왕의 판결, 참으로 명판결 아닙니까?

여러분, 혹시 지금 사는 게 힘드십니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서러우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승에는 ‘업경대’라는 거울이 있어서, 남들은 몰라도 하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흘린 땀방울, 남몰래 베푼 선행, 억울하게 삼킨 눈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 고운 여인이 나타나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게 바로 춘월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반갑게 맞아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살아보십시오. 춘월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언젠가는 찬란한 꽃을 피울 테니까요.

다음에도 더 기막히고 가슴 찡한 이야기 한 보따리 짊어지고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들, 강녕하십시오!

유튜브 엔딩 멘트

"어르신들,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기생 춘월의 반전 재판, 가슴이 좀 뻥 뚫리셨는지요? 겉보기에 초라하다고 그 속까지 초라한 법은 없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그 모진 세월도, 저승 가면 염라대왕님이 '고생했다, 장하다' 하며 등 두드려 주실 위대한 훈장임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밤 편안히 주무시고, 꿈길에서 좋은 소식 만나시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엔 더 재미난 이야기로 찾아올 테니,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는 거 잊지 마세요! 저 이야기꾼이 힘이 불끈 솟습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뵙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