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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의 다섯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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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409자)
죽은 사람은 누구나 염라대왕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딱 다섯 가지 질문을 받지요. 그 다섯 마디 물음에 어찌 답하느냐에 따라, 극락과 지옥이 칼같이 갈립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온 마을이 '바보'라 손가락질하던 사내, 삼복이올시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 저 스스로도 '나는 틀림없이 지옥이다'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는, 절에 시주도 넉넉히 하고 큰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다 죽은 황 부자가 극락행을 철석같이 확신하며 서 있었답니다. 자, 염라대왕의 그 서늘하고 날카로운 다섯 가지 물음 앞에서, 과연 누가 극락으로 오르고 누가 지옥으로 떨어질까요. 살아생전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온 '진짜 값진 일'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이 이야기가 가슴 서늘하게 되짚어 드립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 1: 바보라 불린 사내
※ 2: 그해 겨울, 마지막 온기
※ 3: 저승 문 앞의 두 사람
※ 4: 첫 세 가지 질문
※ 5: 나머지 두 질문과 반전
※ 6: 다섯 질문의 끝, 그리고
씬1 · 바보라 불린 사내 (2,808자)
강원도 평창 땅, 두메산골 중에서도 상두메라 불리던 산골 마을 이야기올시다.
이 마을에 삼복이라는 사내가 하나 살았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제 이름 석 자로 불러 주는 이가 마을에 하나도 없었어요. 다들 "바보 삼복이" "반편이 삼복이" 이렇게들 불렀지요. 왜 그랬느냐 하면, 삼복이가 좀 어수룩했거든요. 아니, 어수룩한 정도가 아니라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한 바보였답니다.
생각들 해 보세요. 장에 송아지를 팔러 갔다가, 그 판 돈을 길가에서 배곯아 우는 아이한테 몽땅 쥐여 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이에요.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철마다 그 모양이었다니까요. 황당하죠? 어디 그뿐인가요. 남의 집 담이 무너지면 제 일 제쳐 두고 달려가 하루 종일 쌓아 주고도 품삯 한 푼 안 받았어요. "그거 받으면 남 도운 게 아니지요" 하면서요. 그러니 누가 안 바보라 하겠어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날, 삼복이가 밤새 손 부르트게 삼은 새 짚신을 신고 장에 나갔는데, 길가에서 맨발로 벌벌 떠는 거지 노인을 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앉아 제 짚신을 냉큼 벗어 주더랍니다. 그러고는 맨발로 눈길 삼십 리를 걸어 돌아왔대요. 발이 얼어 퉁퉁 부어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 그 와중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러더랍니다. "그 영감님은 인제 발 안 시리겠네. 아이고, 다행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얼마나 혀를 찼겠어요. "저런 반편이가 세상에 또 있나." "제 앞가림도 못 하는 것이 남 걱정은 무슨." "쯧쯧, 어려서 부모 잃고 떠돌더니 머리가 반쯤 나간 게야." 다들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지요. 아이들까지도 삼복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바보야, 바보야" 놀려 댔답니다. 그래도 삼복이는 화 한 번 안 내고 그 아이들한테 산에서 딴 머루며 다래를 나눠 주곤 했어요.
삼복이가 사는 오두막에 가 보면 더 기가 찼답니다. 방 안이 텅텅 비어서, 성한 이불 한 채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겨울마다 추운 이웃한테 이불이며 옷가지를 다 벗어 주고, 정작 저는 마른 짚더미를 덮고 잤거든요. 어쩌다 누가 딱해서 옷 한 벌 지어다 주면, 그것도 사흘을 못 넘기고 더 딱한 사람한테 홀랑 벗어 주더랍니다. 그러니 삼복이한테는 '내 것'이라는 말 자체가 아예 없었어요. 손에 들어오는 족족 남한테 흘려보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그런 삼복이를 두고 "저건 밑 빠진 독이야, 밑 빠진 독" 하며 또 놀렸답니다.
삼복이가 어쩌다 그리 되었는고 하니, 그 사연이 참으로 딱했답니다. 어려서 부모를 돌림병으로 한꺼번에 잃고, 남의집살이로 이 집 저 집 굴러다니며 컸어요. 글도 못 배우고, 셈도 어둡고, 남이 뻔히 속여 먹어도 속는 줄을 몰랐지요. 그저 마음 하나는 골짜기 물같이 맑아서, 남 아픈 걸 제 아픈 것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이었답니다.
그런 삼복이한테 그나마 있던 게 뭐였느냐. 죽은 부모가 물려준 손바닥만 한 밭 한 뙈기였어요. 산비탈에 붙은 자갈밭이라 곡식도 시원찮게 났지만, 삼복이한텐 이 세상천지에 하나뿐인 재산이었지요. 그 밭에 엎드려 김을 맬 때만은 삼복이도 남부럽지 않았답니다. 봄이면 씨 뿌리고 가을이면 조 이삭 몇 줌 거두는 그 재미로, 삼복이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 밭을 눈독 들인 사람이 있었어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 황 부자였답니다. 황 부자로 말할 것 같으면, 논밭이 고을의 절반이요, 곳간에 쌀이 썩어 나가는 위인이었지요. 그런 사람이 삼복이 자갈밭 한 뙈기를 왜 그리 탐냈겠어요. 그 밭이 바로 물길 지나는 목이라, 거길 손에 넣어야 아랫녘 제 논에 물을 마음대로 대거든요.
황 부자가 어느 날 삼복이를 사랑방으로 불러다 종이 한 장을 쓱 내밀었답니다. "삼복아, 여기 손도장만 꾹 찍으면 내가 쌀을 열 섬이나 주마. 너 같은 것이 그 자갈밭 부쳐서 뭐 하겠느냐. 응? 얼른 찍어라." 삼복이가 글을 아나요, 셈을 아나요. 쌀 열 섬이라는 말에 그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게 제 밭을 통째로 넘기는 문서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 덜컥 손도장을 찍어 버렸지요.
한데 쌀 열 섬은 무슨. 황 부자는 다 찧지도 않은 뉘 섞인 쌀 두 섬을 툭 던져 주고는 밭을 홀랑 가로채 버렸답니다. 삼복이가 한참 뒤에야 "어? 밭이… 밭이 없어졌네" 하고 멀뚱거리자, 동네 사람들이 다 속내를 알면서도 모른 척 딴청을 부렸어요. "바보가 바본 짓 했지 뭐. 저 좋다고 도장 찍었으면 그만이지." 그러고들 웃어넘겼지요.
와, 이쯤 되면 삼복이가 황 부자를 얼마나 미워했겠어요. 밤마다 이를 갈고 저주를 퍼부어도 시원찮을 판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답니다. 미워하기는커녕, 황 부자네 집에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궂은일을 도맡고, 황 부자가 앓아누웠다는 소문이 돌면 밤새 산을 뒤져 캔 약초를 슬그머니 담장 너머로 놓고 오더랍니다.
사람들이 하도 답답해서 물었어요. "이 사람아, 자네 밭 빼앗은 놈한테 무슨 정이 그리 깊어서 그러나?" 그럼 삼복이가 그 순한 얼굴로 이러는 거예요. "밭이야 또 부쳐 먹으면 되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아픈데, 밭이 대숩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또 "바보라서 저러지"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답니다. 정작 황 부자는 그런 삼복이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미련한 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먼" 하고 비웃기만 했지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삼복이도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어요. 여전히 남의 집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품삯은 받는 둥 마는 둥, 얻어먹는 밥으로 그날그날을 살았지요. 그런 삼복이한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답니다. 눈은 허리춤까지 쌓이고, 골짜기를 훑고 내려오는 바람은 칼처럼 살을 에었어요. 바로 그 겨울에, 삼복이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꿔 놓을 일이 소리 없이 시작되고 있었더랍니다.
씬2 · 그해 겨울, 마지막 온기 (2,886자)
그해 겨울, 눈보라가 사흘 밤낮을 그치지 않고 몰아쳤답니다.
산골 마을은 눈에 파묻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어요. 곳간에 곡식 쟁여 둔 집이야 방구들 뜨듯이 데우고 겨울을 났지만, 없는 사람들은 이 겨울이 그야말로 저승 문턱이었지요. 그중에서도 제일 딱한 건 마을 어귀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사는 젊은 과부였답니다.
이 과부가 병든 몸으로 어린것 셋을 데리고 사는데, 남편은 재작년 산에서 나무하다 굴러 세상을 떴어요. 곡식이라곤 진작에 바닥이 났고, 아이들은 사흘을 내리 굶어 눈만 퀭했지요. 막내는 젖도 못 얻어먹고 밤새 가느다랗게 울다가, 그 울음소리마저 잦아들 지경이었답니다. 오죽하면 과부가 아이들을 끌어안고 "차라리 다 같이 눈 속에 묻히자" 그런 모진 마음까지 먹었겠어요.
그 밤에, 삼복이가 눈을 헤치고 그 오두막 앞을 지나갔답니다. 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데, 그게 배고파 우는 울음인 걸 삼복이가 어찌 몰랐겠어요. 저도 어릴 적에 그렇게 굶어 봤으니까요. 삼복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보니, 아이고, 방바닥이 얼음장이요 아이들 얼굴은 백지장이라. 삼복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답니다. '이러다 저 어린것들 다 얼어 죽고 굶어 죽겠구나.'
삼복이가 뭘 어쨌겠어요. 곧장 제 오두막으로 달음박질쳐 돌아갔지요. 그러고는 제 곳간을 탈탈 털었답니다. 곳간이랄 것도 없어요. 겨우내 아껴 먹으려고 모아 둔 좁쌀 한 자루, 그게 삼복이의 전 재산이었으니까요. 그 자루를 통째로 짊어지고, 삼복이가 다시 눈보라를 뚫고 과부네로 갔답니다.
"아주머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우선 아이들 죽부터 쑤어 먹이시오." 과부가 그 자루를 받아 들고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이 사람아, 이걸 다 주면 자네는 무얼 먹고 겨울을 나나?" 하니까, 삼복이가 그 순한 얼굴로 히죽 웃으며 이러더랍니다. "나야 어른이니까 좀 굶어도 끄떡없지요. 저 어린것들이 문젭니다. 어여 죽 쑤시오, 어여." 그러고는 과부가 붙잡을 새도 없이 손사래를 치며 눈보라 속으로 도로 나가 버렸지요. 과부는 그 뒷모습에 대고 몇 번이나 절을 했답니다.
그날 밤 삼복이는 굶었답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요. 얻어먹을 데도 없고 곡식도 없으니 별수 있나요. 그저 눈을 녹여 물로 배를 채우고, 눈밭을 헤매며 얼어 죽어 가는 사람은 없나 두리번거리며 다녔지요. 그러면서도 삼복이는 제 배 곯는 걸 조금도 서러워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과부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걸 보고는 "옳거니, 아이들이 죽을 먹는가 보다" 하고 혼자 좋아서 싱글벙글했다니까요.
그런데 이 겨울에 딱한 사람이 어디 과부네뿐이었겠어요. 마을 뒷산 바위굴에는 온 마을이 내다 버린 사람이 하나 있었답니다. 몹쓸 병에 걸렸다 하여 삼 년 전 마을에서 쫓겨난 떠돌이였어요. 사람들은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지요. 병이 옮는다고, 재수 없다고, 다들 침을 뱉고 돌아섰답니다. 그 떠돌이가 굴속에서 다 죽어 가는데도 물 한 모금 떠다 주는 이가 없었어요.
한데 삼복이는 달랐지요. 그 눈보라 속에서도 사나흘에 한 번씩 굴을 찾아가, 얻은 밥이 있으면 나눠 주고 없으면 눈이라도 녹여 입에 떠 넣어 주었답니다.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말렸어요. "이 사람아, 그러다 자네도 그 병 옮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삼복이가 이러는 거예요. "저 사람도 어느 집 귀한 자식이었을 텐데, 저리 혼자 죽게 두면 쓰나요. 옆에 사람 하나 있는 것하고 없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랍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그저 기가 막혀 입을 다물었지요. 떠돌이는 삼복이 손을 붙잡고 "자네가 사람이지, 자네가 부처지" 하며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답니다.
그 무렵 삼복이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답니다. 며칠을 내리 굶어 두 볼은 쏙 들어가고, 입술은 새파랗게 얼어 터졌지요. 그래도 삼복이는 성한 사람보다 더 부지런히 눈밭을 헤집고 다녔어요. 누구 하나 얼어 죽는 사람은 없나, 누구 하나 굶어 쓰러진 사람은 없나 하고요. 지나가던 이가 혀를 끌끌 차며 "이 사람아, 자네 그러다 자네가 먼저 죽겠네" 해도, 삼복이는 그저 "나 하나쯤 없어져도 아쉬울 것 없지요, 뭐" 하고 허허 웃을 뿐이었답니다. 제 목숨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눈보라가 잦아들던 그 어느 날 밤이었답니다. 삼복이가 굴에 들렀다가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눈 더미 속에 파묻힌 조그만 것을 발견했어요. 자세히 보니, 여남은 살이나 됐을까 싶은 계집아이였답니다. 부모 잃고 이 마을 저 마을 빌어먹으며 떠돌던 고아였는데, 눈 속에 쓰러져 벌써 숨이 깔딱깔딱하더래요. 옷은 다 해져 살이 훤히 드러나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가고 있었지요.
삼복이가 그 아이를 냉큼 들쳐 업었답니다. 그러고는 제가 입고 있던 단벌 솜저고리를 훌렁 벗어 아이를 칭칭 둘러 주었어요. 제 몸은 홑저고리 하나로 그 매운 눈바람을 다 맞으면서요. "얘야, 정신 차려라. 조금만 참아. 응?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삼복이가 아이를 업고 눈길을 죽어라 달렸답니다. 제 몸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등에 업힌 아이 하나 살리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요.
가까스로 아이를 마을에서 그나마 인정 많은 집에 맡기고, 삼복이가 제 오두막으로 돌아오는데, 이제는 삼복이 몸이 말이 아니었답니다. 며칠을 내리 굶은 데다, 솜저고리마저 벗어 주고 홑옷으로 눈바람을 고스란히 맞았으니 오죽했겠어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아뜩아뜩한데, 그예 제 오두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마당 눈밭에 그만 풀썩 쓰러지고 말았지요.
삼복이는 눈 위에 쓰러진 채로도 히죽 웃었답니다. '그 아이는 살렸으니 됐다. 과부네 아이들도 인제 굶진 않겠지. 떠돌이 그 사람도 오늘 밥 한술 떴으니 됐고. 됐다, 됐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하늘에선 다시 눈이 소복소복 내려, 쓰러진 삼복이의 몸을 하얗게 덮어 갔답니다. 이제 삼복이의 숨이, 그 눈발처럼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어요.
씬3 · 저승 문 앞의 두 사람 (2,809자)
얼마나 지났을까요. 삼복이가 눈을 떠 보니, 사방이 온통 뿌연 안개였답니다.
'여기가 어디지? 나… 죽었나?' 삼복이가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 안개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랍니다. 검은 도포를 발끝까지 늘어뜨리고, 머리엔 검은 갓을 눌러쓴 사내였어요. 얼굴은 백지장처럼 희고, 두 눈은 깊은 우물처럼 서늘했지요. 한눈에도 이승 사람이 아니었답니다. 바로 저승차사였어요.
삼복이가 그 서슬에 오금이 저려 넙죽 엎드렸답니다. "나… 나리, 저는 아무 죄도 없는뎁쇼. 사, 살려 줍쇼." 그러니까 저승차사가 서늘한 목소리로 이러더랍니다. "정삼복. 강원도 평창 상두메 마을에 살던 정삼복이 맞느냐. 네 이승의 명이 다하였으니, 나를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 삼복이가 벌벌 떨며 물었어요. "저, 저승이라굽쇼? 그럼 저는 인제 지옥엘 가는 겁니까요? 나는 착한 일 한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뎁쇼."
저승차사가 잠깐 삼복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답니다. "그건 네가 갈 곳은 나 따위가 정하는 게 아니다. 염라대왕께서 친히 정하시느니라. 죽은 자는 누구나 염라대왕 앞에 서서, 다섯 가지 물음에 답해야 한다." 삼복이가 그 말에 그만 사색이 됐지요. '다섯 가지 물음이라니. 나같이 무식하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그 어려운 물음에 무슨 수로 답한단 말이냐. 나는 틀림없이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지겠구나.' 삼복이는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 다리가 다 풀렸답니다.
저승차사를 따라 안개 자욱한 길을 한참을 걸었어요. 걷고 또 걸으니, 저 멀리 시뻘건 기와를 얹은 거대한 궁궐이 안개를 뚫고 우뚝 나타났답니다. 대문이 어찌나 크고 높은지, 삼복이 목이 다 아프도록 올려다봐도 그 끝이 안 보였지요. 문 앞에는 소머리에 사람 몸을 한 놈, 말대가리를 한 놈들이 시퍼런 창을 들고 죽 늘어서 있었답니다. 삼복이가 그 무시무시한 꼴에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어요. 그때마다 저승차사가 "지체 말고 어서 걸으라" 하고 재촉했지요.
그렇게 저승 궁궐 뜰로 들어서는데, 아 글쎄, 뜰 한복판에 낯익은 사람이 하나 먼저 와 서 있지 뭡니까. 누군고 하니, 마을 제일가는 부자, 바로 그 황 부자였어요. 황 부자도 삼복이와 같은 날 밤에 세상을 떴던 거예요. 그 눈보라 치던 밤, 곳간에서 쌓아 둔 재물을 세고 또 세다가 그만 뒷목을 잡고 픽 넘어가 버렸다지 뭡니까. 재물 세다 죽었으니, 참 황 부자다운 죽음이었지요.
삼복이가 황 부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반가워서 "아이고, 부자 어른도 여기 오셨네요" 하고 넙죽 인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황 부자는 삼복이를 아래위로 쓱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치더래요. "허, 바보 삼복이 너까지 왔구나. 뭐, 잘됐다. 이제 곧 판가름이 날 테니, 너 같은 미천한 것은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질 것이요, 나 같은 사람은 극락으로 갈 것이 아니냐. 죽어서도 이렇게 위아래가 갈리는 게 세상 이치지, 암." 황 부자는 죽어서도 그 오만한 콧대가 그대로였답니다.
황 부자가 왜 그리 큰소리를 쳤겠어요. 살아생전에 절에 시주도 어지간히 했고, 조상 제사도 온 고을이 알아주게 크게 지냈거든요. 그러니 제 딴에는 극락행이 떼어 놓은 당상이라 여긴 거지요. "이보게 차사님, 어서 나부터 판결을 봅시다. 내가 지은 공덕이 저 창고에 쌓인 곡식보다 많으니, 굳이 시간 끌 것도 없소이다. 얼른얼른 극락문이나 열어 주시오." 황 부자는 저승에 와서까지 아랫사람 부리듯 큰소리를 뻥뻥 쳤답니다. 삼복이는 그 옆에서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지요.
삼복이는 그런 황 부자를 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하기야 저 어른은 절에 시주도 많이 하시고 큰일도 많이 하셨으니, 극락 가시는 게 맞지. 나 같은 게 무슨 낯짝으로 극락을 바라겠나.' 삼복이는 정말이지 제가 지옥에 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평생 남 도운 그 숱한 일들이, 삼복이한테는 도운 축에도 못 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저 배고픈 사람 보면 밥 주고 추운 사람 보면 옷 준 것뿐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공덕이냐 싶었던 거지요. 삼복이는 제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을 하며 살았는지, 죽어서까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궁궐 저 안쪽에서 우렁우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산더미만 한 대문이 스르르 열리더랍니다. 삼복이도 황 부자도 그만 숨이 턱 막혔지요. 활짝 열린 문 안으로, 진홍빛 곤룡포를 떨쳐입고 머리엔 구슬발 늘어진 면류관을 쓴 이가 높다란 옥좌에 떡하니 앉아 있었답니다. 눈빛은 벼락 같고, 허연 수염은 폭포처럼 가슴까지 흘러내렸어요. 온 저승을 손아귀에 쥐고 다스리는 이, 바로 염라대왕이었지요. 그 위엄에 눌려 황 부자마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답니다.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천둥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답니다. "죽은 자들은 듣거라. 이승에서 지위가 높았든 낮았든, 재물이 많았든 적었든, 이곳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나는 오직 네가 살아서 무엇을 하였는가, 그것 하나만을 물을 것이다." 그러고는 옆에 선 판관에게 명을 내렸어요. "생사부와 공덕부를 가져오라. 이제 이 두 사람에게 다섯 가지를 물어, 천당과 지옥을 가르리라."
판관이 사람 키만 한 장부 두 권을 낑낑 받쳐 들고 나오는데, 삼복이는 오금이 저려 고개도 못 들었답니다. '아이고, 인제 정말 죽었구나. 나는 평생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데, 무슨 공덕이 있어 저 무서운 물음에 답을 한단 말이냐. 극락은 저 황 부자 같은 어른이나 가는 게지.' 삼복이가 속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염라대왕의 서늘한 눈길이 스윽 두 사람에게 내리꽂혔답니다. 저승 궁궐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드디어 그 무섭고도 날카로운 다섯 가지 물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어요.
좋습니다. 씬4
씬6을 작성하고 글자 수를 검증한 뒤, 엔딩멘트와 이미지 프롬프트를 이어서 정리하겠습니다.씬4
씬6이 하한 미달입니다. 각 씬에 서사를 보강하겠습니다.씬4가 2,668자로 32자 부족합니다. 한 대목만 보강하겠습니다.글자 수 검증 완료(씬4 2,776 · 씬5 2,961 · 씬6 2,881자). 이제 엔딩멘트 길이를 확인하고 최종 원고를 출력하겠습니다.글자 수 검증을 모두 통과했습니다(씬4 2,776 · 씬5 2,961 · 씬6 2,881자, 엔딩멘트 277자). 이어서 후반부를 드립니다.
씬4 · 첫 세 가지 질문 (2,776자)
염라대왕이 먼저 서슬 퍼런 눈길을 황 부자에게 돌렸답니다.
"황가야. 네가 그리 극락을 자신하니, 내 너부터 물으마. 너는 살아생전 남을 위해 무엇을 베풀었느냐." 황 부자가 이때다 싶어 가슴을 쭉 펴고 떠벌렸어요. "예이, 대왕님. 소인이 절에 시주한 쌀만 해도 수백 섬이올시다. 큰 불사가 있을 때마다 이름 석 자 큼직하게 새겨 넣었고, 조상 제사는 온 고을이 우러러볼 만큼 성대하게 지냈지요. 이만하면 극락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황 부자는 제 자랑에 신이 나서 침을 튀겼답니다.
염라대왕이 판관에게 눈짓을 하니, 판관이 공덕부를 좍 펼쳤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황 부자가 그리 떠벌린 시주와 제사가 적힌 자리마다, 붉은 먹으로 가위표가 그어져 있지 뭡니까. 황 부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 아니, 저건 왜…" 하고 말을 더듬는데, 염라대왕이 천둥같이 호통을 쳤답니다.
"이 어리석은 것아. 네가 시주를 한 것은 부처를 위함이더냐, 네 이름을 위함이더냐. 절 기둥에 이름 석 자 새기려고 낸 쌀이, 어찌 공덕이 된단 말이냐." 염라대왕이 공덕부를 한 장 더 넘기니, 이번엔 시커먼 죄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네 논을 부치던 소작인이 흉년에 굶어 죽어 갈 때, 너는 도조를 한 톨도 깎아 주지 않았다. 병든 종을 내다 버렸고, 빚 못 갚는 이의 솥단지까지 빼앗았지. 그러고도 극락을 바라느냐."
황 부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답니다. "그, 그건… 다 세상 이치대로 한 것뿐입니다요. 빌린 것은 갚아야 하고, 게으른 것은 벌을 받아야…" 하고 변명을 늘어놓는데,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딱 막았어요. "듣기 싫다. 네 공덕부는 이토록 텅 비었으니, 판결은 뒤로 미루마." 황 부자는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답니다.
염라대왕이 준엄하게 덧붙였어요. "무릇 베풂이란, 주고 나서 곧 잊는 것이 참된 베풂이니라. 한 손으로 쌀을 주고 두 손으로 소문을 낸 것은, 베풂이 아니라 장사일 뿐이다. 너는 평생 사람의 마음을 산 적이 없고, 오직 사람의 곳간과 논밭만 노렸느니라. 그 재물, 지금 한 톨이라도 지고 왔느냐." 황 부자는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푹 떨구었답니다. 방금 전까지 큰소리 뻥뻥 치던 그 서슬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었지요.
이제 염라대왕의 눈길이 삼복이에게로 옮겨 왔어요. 삼복이는 어찌나 겁이 나던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미리 이렇게 아뢰었답니다. "대, 대왕님. 소인은 애초에 극락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요. 저는 평생 가진 것도 없고, 남한테 뭐 대단히 베푼 것도 없어서… 그저 벌이나 가볍게 내려 주시면 감지덕지올시다." 삼복이는 정말로 제가 지옥에 갈 줄 알고, 미리 사정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염라대왕이 그 말에 눈썹을 꿈틀하더니, 첫 번째 물음을 던졌답니다. "정삼복. 너는 살아생전 남을 위해 무엇을 베풀었느냐." 삼복이가 우물쭈물하며 "베, 베푼 거요? 저 같은 게 뭘 베풀었겠습니까요. 없습니다요, 없어요" 하는데, 판관이 공덕부를 펼치자마자 그 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답니다. 삼복이도 황 부자도 그 빛에 눈이 부셨지요.
그 빛 속에서 지난 일들이 그림처럼 하나하나 떠올랐답니다. 몇 해 전, 눈보라에 오갈 데 없어진 걸인 식구 다섯이 삼복이 오두막 문을 두드렸을 때였어요. 삼복이는 두말없이 제 하나뿐인 방을 통째로 내주고, 저는 찬 바람 숭숭 드는 헛간 짚더미에 파고들어 그 겨울을 났지요. 그 걸인 식구가 "이 은혜를 어찌 다 갚느냐" 하며 울먹이자, 삼복이는 그저 "갚기는 뭘 갚아요, 방이야 봄 되면 또 비는데요, 뭘" 하며 껄껄 웃었답니다. 그 걸인 식구는 이듬해 봄 삼복이 몰래 마당을 쓸어 놓고 조용히 떠났다지요.
염라대왕이 공덕부를 읽어 내려갔어요. "여기 적혀 있기를, 너는 네 방 한 칸을 얼어 죽어 가던 걸인 식구에게 내주고, 정작 너는 헛간 짚더미에서 겨울을 났다. 네 이불과 옷가지는 추운 이웃에게 다 벗어 주었고, 남의 집 궂은일을 도맡고도 품삯을 마다하였구나. 이것이 어찌 베풂이 아니란 말이냐." 삼복이가 눈을 끔뻑끔뻑하며 "아니, 그런 걸 다 적어 놓으셨습니까요? 그거야 뭐, 딱한 사람 있으면 누구나 하는 거 아닙니까요" 하니, 염라대왕의 눈빛이 잠깐 부드러워지는 듯했답니다.
염라대왕이 두 번째 물음을 던졌어요. "정삼복. 너는 굶주린 이에게 밥을 나눈 적이 있느냐." 삼복이가 또 고개를 저으려는데, 공덕부에서 그 눈보라 치던 밤의 일이 그림처럼 떠올랐답니다. 전 재산 좁쌀 한 자루를 통째로 과부네에 지어다 주고, 저는 사흘을 물로 배 채우며 굶던 그 모습이요. "너는 네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양식을, 굶어 죽어 가는 세 아이에게 다 내주었다. 그러고도 굶주린 네 배를 서러워하기는커녕, 그 집 굴뚝에 연기 오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기뻐하였지." 삼복이는 그저 머리만 긁적였답니다. '아니, 저 어른께서 어찌 그 밤 일을 다 아신단 말인가. 나는 그저 배곯는 아이들이 딱해서 한 것뿐인데.' 삼복이는 제가 한 일이 이토록 낱낱이 하늘에 적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예요.
세 번째 물음이 이어졌어요. "정삼복. 너는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힌 적이 있느냐." 이번에도 공덕부가 환히 빛나며, 눈 속에서 얼어 죽어 가던 고아 계집아이를 제 단벌 솜저고리로 칭칭 감싸 업고 달리던 삼복이의 모습을 비추었답니다. "너는 그 매서운 눈바람 속에서, 하나뿐인 솜저고리를 벗어 남의 아이를 살리고, 정작 너는 홑옷으로 눈밭에 쓰러졌다." 여기까지 듣자, 황 부자는 제 옆에 선 이 바보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싶어, 입을 헤 벌린 채 삼복이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지요. 그런데 아직, 염라대왕의 물음은 두 개나 더 남아 있었답니다.
씬5 · 나머지 두 질문과 반전 (2,961자)
염라대왕이 네 번째 물음을 던졌답니다.
"정삼복. 너는 병들어 남들이 모두 등 돌린 이를, 곁에서 돌본 적이 있느냐." 삼복이가 이번에도 "글쎄올시다, 돌봤다고 할 것까지야…" 하며 우물거리는데, 공덕부에서 마을 뒷산 바위굴이 환히 떠올랐어요. 몹쓸 병에 걸렸다 하여 온 마을이 내다 버린 떠돌이, 물 한 모금 떠다 주는 이 없던 그 사람을, 삼복이가 사나흘에 한 번씩 눈보라를 뚫고 찾아가 밥을 나누고 눈을 녹여 입에 떠 넣어 주던 그 모습이요.
염라대왕이 그 대목을 읽으며 목소리를 높였답니다. "온 세상이 병이 옮을까 무서워 침을 뱉고 돌아설 때, 너는 홀로 그 굴을 찾아갔다. 제 몸에 병이 옮을 것을 알면서도, 저 사람도 누구의 귀한 자식이라 하였지. 죽어 가는 이 곁에 사람 하나 있고 없고가 천지 차이라 하였구나." 그러자 저승 궁궐 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놀랍게도 그 떠돌이가, 삼복이보다 며칠 앞서 세상을 떠 저승에 와 있다가, 삼복이를 위해 증언하러 나선 것이었답니다. "대왕님,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소인은 그 굴에서 개돼지처럼 홀로 죽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부처였습니다요."
떠돌이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답니다. "소인이 병들어 마을에서 쫓겨나던 날,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 서러움에 차라리 콱 죽고만 싶었지요. 한데 저 삼복이만은, 아무도 없는 그 굴로 저를 찾아와 제 손을 덥석 잡고 이러더이다. '자네 잘못이 아닐세. 병이 무슨 죄인가. 조금만 견뎌 보세, 응.' 그 말 한마디에, 소인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요." 그 말에 저승 궁궐 안이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답니다.
삼복이는 그 떠돌이를 알아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답니다. "아이고, 자네도 여기 왔는가. 그래, 그 뒤로 좀 편안했는가." 이 판국에도 삼복이는 제 걱정이 아니라 그 떠돌이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에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의 서슬 퍼런 눈빛마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황 부자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저며 오는 걸 느꼈답니다. '저 바보가… 아니, 저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나는 평생 저이를 발밑에 두고 비웃기만 했는데.' 황 부자는 문득 제가 살아온 세월이 하나하나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제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삼복이가 제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때까지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이윽고 염라대왕이 마지막 다섯 번째 물음을 던졌어요. 그런데 이 물음이 앞의 넷과는 사뭇 달랐답니다. "정삼복. 너는… 너에게 가장 모질게 굴었던 원수를, 마음으로 용서한 적이 있느냐." 이 물음에 삼복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했어요. "원수요? 저는 원수가 없는뎁쇼. 저한테 나쁘게 한 사람이야 더러 있었지만, 그걸 원수라고 마음에 담아 둔 적은 없어서…" 삼복이는 정말로 원수라는 걸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답니다.
바로 그때, 공덕부가 스르르 넘어가더니, 삼복이의 밭을 문서 사기로 가로챈 황 부자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황 부자가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지요. 염라대왕이 그 대목을 읽어 내려갔답니다. "여기 있는 이 황가가, 네 하나뿐인 밭을 속임수로 빼앗아 너를 평생 가난 속에 밀어 넣었다. 한데 너는 이 자를 미워하기는커녕, 이 자의 집에 초상이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궂은일을 도맡고, 이 자가 병들어 앓아누웠을 땐 밤새 산을 뒤져 캔 약초를 담장 너머로 놓고 왔구나."
염라대왕이 공덕부를 한 장 더 넘기니, 재작년 황 부자가 돌림 고뿔로 사경을 헤매던 밤의 일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답니다. 온 집안 식솔이 병 옮을까 다 도망치고, 황 부자 혼자 신음하며 죽어 갈 때, 그 곁을 지킨 단 한 사람이 바로 삼복이였던 거예요. 삼복이가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이마의 땀을 닦아 주고 미음을 떠 넣어, 황 부자를 살려 냈지요. 정작 황 부자는 몸이 낫자마자 "미련한 것이 뭘 안다고" 하며 삼복이를 내쫓았고요.
그런데 그 사흘 밤 동안, 삼복이는 단 한 번도 제 밭 빼앗긴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답니다. 원망 한마디, 생색 한 번 내지 않고, 그저 "어른,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요. 이러다 큰일 납니다요" 하며 밤새 이마의 땀만 닦았어요. 날이 밝아 황 부자의 열이 뚝 내리자, 삼복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그머니 자리를 떴지요. 황 부자는 제 목숨을 구해 준 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간밤에 누가 왔다 갔나 보군"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던 거랍니다.
이 대목이 낱낱이 드러나자, 그 오만하던 황 부자가 그만 무릎이 꺾여 털썩 주저앉았답니다. "사, 삼복아… 그, 그게 정말 너였더냐. 그 밤에 내 곁을 지킨 게…" 황 부자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어요. 삼복이는 도리어 미안한 얼굴로 "아이고, 부자 어른. 그거 뭐 별거 아닙니다요. 이왕 지나간 일인데요, 뭘" 하고 손사래를 쳤지요. 그 순한 얼굴을 보자, 황 부자는 부끄러움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답니다.
판관이 두 사람의 공덕부를 나란히 펼쳐 저울에 올렸어요. 황 부자의 장부는 죄목만 시커멓게 가득하고 공덕 칸은 텅 비어, 저울이 바닥으로 쿵 내려앉았지요. 반면 삼복이의 공덕부는, 다섯 물음에 답한 그 공덕들이 어찌나 넘치던지, 천 년을 저승 판관으로 일한 이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라 혀를 내둘렀답니다. 삼복이의 저울은 공덕이 하늘 끝까지 차올라, 저울대가 하늘을 향해 번쩍 치솟았어요. 온 저승 궁궐이 그 빛으로 환하게 밝아졌지요.
그 빛이 어찌나 따뜻하고 환하던지, 옆에서 시퍼런 창을 들고 섰던 소머리 말대가리 옥졸들까지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답니다. 황 부자는 그 눈부신 빛 앞에서, 제 텅 빈 장부와 삼복이의 넘쳐흐르는 장부를 번갈아 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어요. '나는 대체 평생 무얼 쌓으며 살았단 말인가. 곳간 가득 쌀을 쌓고 논밭을 늘렸는데, 정작 저승에 지고 온 것은 죄뿐이로구나. 저 바보가 지고 온 공덕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구나.' 뒤늦은 후회가 황 부자의 가슴을 칼처럼 후벼 팠답니다. 이제, 염라대왕의 마지막 판결만이 남아 있었답니다.
씬6 · 다섯 질문의 끝, 그리고 (2,881자)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답니다. 그러고는 삼복이를 향해 이렇게 선언했어요.
"정삼복. 너는 이승에서 가장 미천하다 손가락질받았으나, 내 저승의 문을 지켜 온 이래 너처럼 맑고 넉넉한 공덕부는 처음 보았노라. 너는 다섯 물음에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도 넘치도록 답하였다. 너를 극락으로 보내노라. 이제 그곳에서 다시는 배곯지 말고, 다시는 헐벗지 말고, 천 년만년 복을 누리거라." 그 말이 떨어지자, 삼복이의 남루한 홑옷이 눈부신 비단옷으로 변하고, 그 머리 위로 환한 서기가 어렸답니다.
한데 이 마당에도 삼복이는 제 복을 챙길 생각을 안 했어요. 오히려 털썩 무릎을 꿇고 염라대왕께 이렇게 빌었답니다. "대왕님, 소인이 극락엘 간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요. 한데… 딱 한 가지만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요. 저 황 부자 어른 말입니다요. 저이가 살면서 모진 짓을 좀 하긴 했어도, 본디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요. 그저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것뿐이지요. 부디 저이한테도 다시 착하게 살 기회를 한 번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저 어른이 불구덩이에서 고통받는 걸 생각하면, 소인은 극락에 가서도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요."
이 말에 저승 궁궐 안이 술렁였답니다. 제 밭을 빼앗고 평생 저를 바보라 비웃은 원수를, 극락 문턱에서까지 감싸고 도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어요. 황 부자는 그 말을 듣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삼복아, 이 못난 놈이 너를 그리 짓밟았는데… 네가, 네가 어찌 나를…" 평생 남 앞에 고개 한 번 안 숙이던 황 부자가, 삼복이 앞에 이마를 땅에 찧으며 통곡을 했지요.
염라대왕이 그 광경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답니다. "황가야. 네 죄로 보면 마땅히 불지옥에 떨어져야 할 것이나, 여기 이 정삼복이 제 원수인 너를 위해 극락의 복을 미루면서까지 비는구나. 한 사람의 진실한 용서가, 천 근의 죄를 덜어 주는 법이다. 하여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마. 너는 이승으로 다시 태어나, 이번 생에 남에게서 빼앗은 것을 낱낱이 되돌리며 살거라. 그것이 네가 이 정삼복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니라." 황 부자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몇 번이고 절을 올렸답니다.
황 부자가 목이 메어 다짐했어요. "삼복아, 내 이번에 다시 태어나면… 네가 살던 그 마음으로 살아 보마. 빼앗은 것은 곱절로 돌려주고, 굶주린 이가 있으면 내 곳간부터 먼저 열마. 이 은혜, 이 부끄러움, 다음 생에 낱낱이 다 갚으마." 삼복이는 그저 그 순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그럼요, 어른은 하실 수 있습니다요. 저는 믿습니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밭 하나를 두고 원수로 얽혔던 두 사람이, 저승 문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을 풀고 화해를 했지요. 와, 이만하면 참 별난 원수 사이 아닙니까.
자,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그저 그런 저승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엔 뒷이야기가 있답니다. 그 무렵 상두메 마을에서는, 눈밭에 쓰러진 삼복이의 주검이 사흘 만에 발견됐어요. 마을 사람들은 "바보가 눈길에 얼어 죽었구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답니다. 살아 바보라 놀림받던 사람이 죽었다고 누가 눈물 한 방울 흘리겠나 싶었지요. 초라한 거적때기 하나 덮어 지게에 지고 나서는데, 문상객이라곤 그림자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삼복이의 상여가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일 먼저 달려온 건 그 젊은 과부와 세 아이였답니다. 과부가 상여를 붙들고 "이 은인이 아니었으면 우리 네 식구 그 겨울에 다 죽었습니다!" 하고 대성통곡을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뒤이어, 눈 속에서 살아난 그 고아 계집아이가 삼복이가 둘러 줬던 솜저고리를 꼭 끌어안고 달려와 울었답니다. "할아버지가 이 옷을 벗어 주고 대신 얼어 죽었어요!" 하고요.
그뿐이 아니었어요. 그 옛날 삼복이한테 짚신을 얻어 신은 거지 노인, 삼복이가 몰래 약초를 놓아 준 이웃들, 담을 쌓아 준 집들… 삼복이의 손길이 닿았던 사람들이 사방에서 꾸역꾸역 모여들어, 어느새 그 상여 뒤로 온 마을 사람이 다 따라붙었답니다.
그 옛날 삼복이한테 송아지 판 돈을 받았던 그 배고픈 아이는, 어느새 장성한 어른이 되어 상복을 갖춰 입고 달려와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이웃 마을에서까지 삼복이 소문을 들은 이들이 밀려와, 초라한 거적때기 하나 덮여 나가던 상여가 어느새 온 고을이 뒤따르는 큰 행렬이 되어 버렸어요. 상두꾼들이 "북망산천 머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구성지게 소리를 메기니, 뒤따르는 수백 사람이 저마다 소매로 눈물을 찍어 냈지요. 살아서 방 한 칸 없이 떠돌던 바보 삼복이가, 죽어서는 온 고을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난 거랍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알았어요. 저들이 '바보'라 손가락질하던 그 사람이, 실은 온 마을을 남몰래 먹이고 입히고 살려 온 진짜 어른이었다는 걸요.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저마다 흐르는 눈물을 훔쳤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삼복이를 양지바른 언덕에 정성껏 묻고, 그 위에 조촐하나마 비석 하나를 세웠답니다. 살아서 '바보'라 손가락질만 했던 것이 두고두고 사무쳤던 게지요. 그러고는 해마다 봄가을이면 그 무덤에 꽃을 놓고 밥을 지어 올렸어요.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 주지 못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갚고 싶었던 거랍니다.
그해 이후로 상두메 마을에는 이런 말이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지요. 남에게 몰래 베푼 밥 한 그릇, 옷 한 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그 무엇보다 무거운 공덕이 되어 준다고요. 세상이 뭐라 부르든, 진짜 값진 삶은 곳간에 쌓인 재물이 아니라 남몰래 나눈 온기에 있다고요. 여러분, 오늘 하루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딱한 이웃은 없었는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아닐는지요. 삼복이의 그 맑은 웃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277자)
자, 오늘 「염라대왕의 다섯가지 질문」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세상이 바보라 손가락질하던 삼복이가, 남몰래 베푼 밥 한 그릇과 옷 한 벌로 극락에 오르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지지 않으셨는지요. 곳간에 쌓인 재물이 아니라, 딱한 이웃에게 건넨 따뜻한 온기가 진짜 값진 공덕이라는 걸, 삼복이가 조용히 일러 주고 갔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곁의 외로운 이웃을 한 번쯤 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야기가 좋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고요, 다음 염라야담에서 또 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