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딸과 결혼한 조선 선비의 신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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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가난한 선비, 하룻밤에 저승의 사위가 되다! 염라대왕의 딸과 올린 기묘한 혼인. 그녀는 절세미인이었지만, 밤마다 기이한 규칙을 요구하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하고도 매혹적인 신혼생활.
디스크립션 (300자)
한미한 선비 이선우는 우연한 계기로 저승에 초대되어, 염라대왕의 딸과 혼인하게 된다. 이승으로 돌아온 아내는 막대한 부와 함께,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섬뜩한 규칙을 가져온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며, 두 사람의 기묘한 신혼생활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틋하고도 기이한 사랑 이야기.
※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선비 이선우.
조선 중기, 한양 남산골에 이선우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비록 가진 것은 없었으나, 성품이 강직하고 어질기로 주위에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지내며, 오직 학문에만 매진하는 고독한 삶이었다. 그해, 나라에는 끔찍한 역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선우 역시 며칠을 굶어 기력이 쇠진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쌀 한 줌으로 죽을 쑤어 길을 나섰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는 노인에게 마지막 식사라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막 노인에게 죽을 먹이려던 순간, 별안간 그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관복을 입었으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고 눈빛이 없는 기이한 사내 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이선우더냐."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듯, 차갑고 생기가 없었다. 이선우가 대답할 틈도 없이, 사내들은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그의 주변 풍경이 회오리치듯 변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한양의 거리가 사라지고, 안개 자욱한 낯선 길 위에 서게 되었다. 길의 끝에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궁궐이 서 있었다. 궁궐의 현판에는 '염라전(閻羅殿)'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저승이었다. 그는 산 채로 저승에 끌려온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사내들은 그를 거대한 전각 안으로 끌고 갔다. 전각의 가장 높은 옥좌에는, 집채만 한 거구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고, 온몸에서는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위엄과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염라대왕이었다. 염라대왕이 지축을 울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바로 이선우렷다. 굶주림에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마지막 양식을 타인에게 베푸는 네 선한 마음을 내가 보았노라." 이선우는 땅에 엎드려 벌벌 떨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대왕이시여, 소인에게 어찌 이런 기이한 일을 행하시나이까. 부디 저를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하지만 염라대왕은 그의 애원을 비웃듯,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네 선행에 대한 상을 내리고자 한다. 내 너를 나의 사위로 삼겠노라. 내 외동딸과 혼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 "예? 사… 사위라니요! 소인은 산 자이옵고, 공주님은 저승의 분이신데 어찌 부부의 연을 맺는단 말입니까!" "내 결정에 토를 달지 마라. 이는 네게 내리는 상이자, 거스를 수 없는 나의 명령이다." 염라대왕의 말은 법이고, 그의 의지는 운명이었다. 이선우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날로 저승의 궁궐에서는 기이한 혼례가 치러졌다. 하객은 모두 창백한 얼굴의 혼령들이었고, 풍악 소리 대신 구슬픈 바람 소리만이 궁궐을 맴돌았다. 이선우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예를 올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룻밤에 저승의 부마가 되었다.
※ 저승의 궁궐에서 치러진 기묘한 혼례.
혼례식이 끝나고, 이선우는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신방으로 이끌렸다. 신방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왕의 침실보다도 화려했지만, 살아있는 것의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 안에는 섬뜩할 정도로 짙은 침묵이 흘렀고, 피어오르는 향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서늘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기이한 향기가 났다. 그는 그곳에 홀로 앉아, 이제 자신의 아내가 될 염라대왕의 딸을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마침내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달빛을 녹여 빚은 듯한 하얀 피부, 칠흑 같은 긴 생머리, 붉은 앵두를 머금은 듯한 입술.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눈동자는 기쁨도, 슬픔도 아닌 공허한 심연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잘 만들어진 완벽한 인형처럼 보였다. 그녀는 이선우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하고도 긴장된 침묵만이 흘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선우였다. "…부인. 나는 이선우라 하오." 그녀는 대답 대신, 그저 옅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연희. 그것이 그가 그녀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시종들이 합환주를 내어오고,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술은 달콤했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술잔이 비워지자, 시종들은 조용히 물러나고 거대한 방 안에는 다시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첫날밤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선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살아있는 인간 남자와, 저승의 공주. 과연 이 기묘한 합방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 족두리의 너울을 걷어냈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옷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고, 그저 무표정한 눈으로 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손길에 옷고름이 풀리고, 화려한 활옷이 벗겨지자, 얇은 속저고리 아래로 그녀의 가녀린 몸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선우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잘 닦아놓은 옥구슬처럼 차갑고 매끄러웠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안아 일으켜, 차가운 비단이 깔린 침상에 눕혔다. 그는 그녀의 위에 엎드려, 그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공허한 눈동자 안에서, 그는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읽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연민을 느끼며, 그녀의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뜨거운 입술을 포갰다. 그녀의 입술은 얼음 조각 같았지만, 그 안에서는 희미하게 꽃향기가 났다. 그는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부드러웠지만, 그 어떤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름다운 조각상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두려움과 매혹이 뒤섞인,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의 뜨거운 몸과 그녀의 차가운 몸이 얽혔을 때, 이질적인 두 개의 온도가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이선우는 그녀의 안에서 자신의 생명의 열기를 나누어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이 외롭고 아름다운 존재를, 자신의 온기로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그의 움직임이 격해질수록, 그녀의 입에서는 아주 희미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았지만, 그 내용은 섬뜩했다. "…나의 서방님. 저를… 온전히 가지셔도 좋습니다. 허나, 이것만은 기억해주십시오. 당신과 저의 인연은… 결코 평범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그날 밤, 이선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다.
※ 이승으로 돌아온 부부.
저승에서의 기묘한 신혼 첫날밤이 지나고, 이선우는 아내 연희와 함께 이승으로 돌아왔다. 염라대왕은 그에게 어마어마한 재물을 하사했다. 저승의 보물로 가득 찬 궤짝들은, 평생을 써도 마르지 않을 만큼의 부였다. 남산골의 다 쓰러져가던 초가집은 순식간에 한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와집으로 바뀌었고, 가난한 선비 이선우는 하루아침에 대감 소리를 듣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매일같이 맛있는 음식과 값비싼 옷을 즐겼고, 수많은 하인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내, 연희가 있었다. 그녀는 이승의 햇빛 아래에서도 여전히 창백하고 말이 없었지만, 그 모습마저 신비롭게 보여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선우는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는 아내 연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공허한 눈빛 속에서 슬픔을 보았고, 차가운 피부 아래 감춰진 외로움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매일 밤, 그녀를 품에 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열기는 그녀의 차가운 몸을 조금씩 녹여주는 듯했다. 처음에는 인형처럼 그의 모든 것을 받아내기만 하던 그녀도, 점차 그의 애무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은 조금씩 열기를 띠었고, 그의 품에 안기는 그녀의 몸짓에는 수줍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이선우는 그 미세한 변화에 기쁨을 느끼며, 더욱더 그녀에게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신혼생활에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몇 가지 기묘하고도 섬뜩한 규칙이 있었다. 이승으로 돌아오던 날, 연희가 그에게 나직이 말해주었던 저승의 규칙이었다. 첫째, 절대로 그녀의 과거, 즉 저승에서의 삶에 대해 묻지 말 것. 둘째, 그녀가 저승에서 가져온 검은 옻칠 상자를 절대로 열어보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 셋째, 자시(子時)가 지난 깊은 밤에는, 절대로 침실에 환한 촛불을 켜지 말 것. 특히 마지막 규칙은 그녀가 가장 강조했던 것이었다. "서방님, 다른 것은 다 잊으셔도 좋습니다. 허나 이 마지막 약조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켜주셔야 합니다. 만약 이 금기를 어기신다면,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그날로 끝이 날 것입니다." 이선우는 그녀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 규칙들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는 그녀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썼고, 침실 구석에 놓인 검은 상자는 없는 물건처럼 취급했다. 밤이 깊어지면, 그는 어둠 속에서 오직 서로의 감촉과 숨결에만 의지하여 사랑을 나누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몸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녀의 차가운 피부는 오히려 신비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둠은 두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는 포근한 장막과도 같았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신혼생활이 흘러가고 있었다. 막대한 부, 아름다운 아내, 남 부러울 것 없는 행복. 하지만 이선우의 마음 한편에서는, 아내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독버섯처럼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왜 과거를 숨기는 것일까. 저 검은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리고 왜, 그녀는 한밤중에 자신의 얼굴을 촛불로 비추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망 또한 함께 깊어지고 있었다. 그 욕망이, 머지않아 끔찍한 비극의 씨앗이 될 것임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 이선우는 결국 아내와의 약속, 즉 금기를 깨뜨리고 만다.
행복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선우는 이제 한양 최고의 부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자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연희를 향한 그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는 그녀의 차가운 몸을 자신의 뜨거운 체온으로 녹이는 밤의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녀 역시 그의 품 안에서 점차 생기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고, 그의 농담에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질수록, 이선우의 마음속에서는 어두운 호기심 또한 짙어져 갔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 아름다운 얼굴 뒤에는 어떤 과거가 숨겨져 있을까.’ 이따금씩 연희가 먼 허공을 바라보며 짓는 그 깊은 슬픔의 정체가, 그는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특히 그를 괴롭히는 것은 침실 구석에 놓인 검은 옻칠 상자와, 밤의 어둠에 대한 그녀의 병적인 집착이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친척 어른 한 분이 찾아왔다. 그는 연희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도, 이선우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자네 부인은 참으로 절세미인이지만, 어딘가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구먼. 그림자처럼 서늘하고, 숨소리조차 희미해. 혹,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는 아닌지 잘 살펴보게.” 그 말은 이선우의 마음에 박힌 가시가 되었다. 그날 밤, 이선우는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곁에는 연희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그는 끝내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단 한 번만이라도.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저 맑고 환한 촛불 아래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의심이었다. 그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촛대를 들고, 잠든 연희의 곁으로 다가갔다. ‘미안하오, 부인. 하지만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겠소.’ 그는 조심스럽게 촛불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 순간, 이선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촛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 달빛 아래에서 보던 완벽한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옥처럼 희고 매끄럽던 피부는, 마치 오래된 시신처럼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고, 어떤 부분은 흉측하게 부패하여 검은 반점이 피어나 있었다. 심지어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기이한 벌레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모습마저 보였다. 그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바로 그때였다. 촛불의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잠들어 있던 연희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아아악!” 그녀의 비명과 함께, 썩어가던 그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강한 햇빛 아래의 눈처럼, 그녀의 형체가 반투명하게 변하며 허물어지고 있었다. “서방님… 어찌하여… 어찌하여 약조를 깨뜨리셨나이까….” 그녀는 울부짖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수많은 원혼의 절규가 뒤섞인 듯, 끔찍하고 처절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승의 강한 빛은 저승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녀의 몸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이선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매달렸다. "부인! 내가 잘못했소! 제발 나를 떠나지 마시오!" 하지만 그의 손은 그녀의 몸을 잡지 못하고, 허공만을 휘저을 뿐이었다. 연희는 마지막으로 슬픔과 원망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침실의 검은 상자를… 열어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저의 비밀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형체는 한 줌의 연기가 되어 방 안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방 안에는 그녀의 흔적 대신, 시신이 썩는 듯한 역한 냄새만이 진동했다. 이선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가 말했던 검은 상자로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곱게 접힌 한 벌의 수의(壽衣)가 들어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매일 밤 사랑을 나누었던 존재는, 살아있는 여인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음을. 그는 수의를 붙잡고,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다.
※ 이선우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발로 직접 지옥의 문을 열고 저승으로 향한다.
연희가 사라진 후, 이선우의 삶은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다. 눈부시게 화려했던 집은 이제 그에게 거대하고 텅 빈 무덤과도 같았다. 평생을 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던 재물은, 한낱 돌멩이보다도 가치 없게 느껴졌다. 밤이 되면 그는 텅 빈 침상에 홀로 누워, 연희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그녀의 차갑지만 부드러웠던 살결, 서늘했지만 향기로웠던 체취, 공허한 눈동자 속에 감춰져 있던 깊은 슬픔. 그는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그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연희의 이름만을 부르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녀는 저승으로 돌아갔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가 가야 한다. 내가 직접 저승으로 가서, 그녀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 하지만 산 자의 몸으로 어찌 저승의 문을 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온갖 서책을 뒤지고, 전국의 이름난 도사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그는 한 늙은 도사에게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장 희미해진다는 태백산의 ‘하늘 제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 산 자가 죽을 각오로 닷새 밤낮을 기도하면, 아주 잠시 동안 저승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이선우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곧장 태백산으로 향했다. 험준한 산길을 헤치고, 그는 마침내 하늘과 맞닿을 듯한 절벽 위의 낡은 제단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곡기를 끊고, 오직 연희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일념만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도 그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약속한 닷새째 밤이 되었을 때, 그의 몸은 거의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며, 이대로 죽는가 싶었던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앞에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저승에 끌려갔을 때처럼, 안개 자욱한 길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승길이 열린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비틀거리며 그 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마주한 저승의 풍경은, 염라대왕의 사위로서 초대받았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길의 양옆으로는 수많은 혼령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줄지어 걷고 있었다. 앞에는 모든 기억을 잊게 한다는 망각의 강, 망천(忘川)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의 유혹을 뿌리치고, 차가운 강물에 직접 몸을 던져 강을 건넜다. 강물은 그의 살을 에는 듯했고, 수많은 원혼들이 그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는 연희의 얼굴만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도 지옥의 문을 지키는 흉측한 귀신들의 위협과, 칼날이 솟아있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의 험난한 길을 거쳐야만 했다. 그의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연희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금기를 깬 자신에게 내려진 벌이자,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시련의 길이었다. 수많은 고난 끝에, 그는 마침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염라전 앞에 다다랐다. 그는 거대한 궁궐 문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소인 이선우, 아내 연희를 만나기 위해 저승에 왔소! 문을 여시오! 염라대왕을 뵙게 해달라!"
※ 이선우는 염라대왕 앞에서 아내를 향한 사랑을 증명해야만 하는 시험에 놓인다.
산 자의 처절한 외침에, 굳게 닫혀 있던 염라전의 문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열렸다. 이선우는 수많은 저승 차사들에게 이끌려, 다시 염라대왕의 앞으로 끌려 나갔다.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의 얼굴은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무섭고 분노에 차 있었다. 그의 고함이 지옥 전체를 뒤흔들었다. “네 이놈, 미천한 인간 주제에! 어찌 감히 내 딸과의 약조를 깨뜨리고, 또 어찌하여 산 자의 몸으로 이 신성한 저승 땅을 더럽히느냐! 네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당장 저놈을 가장 끔찍한 지옥으로 끌고 가, 영원히 고통받게 하라!” 차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끌고 가려던 순간, 옆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바마마, 제발 그만하시옵소서!" 연희였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창백하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엎드려 남편을 위해 애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선우의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염라대왕은 딸의 애원에도 냉정했다. “연희야, 너는 아직도 저놈을 감싸는 것이냐. 저놈은 너의 믿음을 배신했다.”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서방님은 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저의 운명이자, 저의 잘못입니다." 연희의 간절한 호소에, 잠시 침묵하던 염라대왕이 이선우를 향해 말했다. "좋다. 정 그렇다면, 네놈이 내 딸을 사랑한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여라. 네놈의 사랑이 진실하다면, 내 너의 죄를 사하고 내 딸을 돌려주겠다." 염라대왕은 거대한 모래시계 하나를 그의 앞에 가져오게 했다. "이것은 네놈의 남은 수명을 담은 시계다. 내 딸은 이승의 빛에 노출되어 그 형체가 거의 스러져가고 있다. 딸의 몸을 온전하게 되돌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인간의 양기(陽氣), 즉 수명이 필요하다. 네놈의 남은 수명의 절반을 내 딸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내 너희의 인연을 허락하겠다." 수명의 절반. 그것은 곧 자신의 삶을 절반이나 포기하라는 소리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잠시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잔인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이선우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소인의 수명의 절반이 무어란 말입니까. 연희를 다시 제 곁에 둘 수만 있다면, 저의 남은 수명 전부를 바치겠습니다. 그녀 없는 삶은, 제게 단 하루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대답에는 어떠한 꾸밈이나 계산도 없었다. 오직 아내를 향한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늘 엄하고 무섭기만 하던 염라대왕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 미천한 인간의 사랑이, 삶과 죽음의 법칙마저 뛰어넘을 수 있는 진실한 것임을 인정한 것이다. "좋다. 네놈의 사랑을 확인했다." 염라대왕이 손짓하자, 모래시계의 모래 절반이 황금빛으로 변하며 연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러자 희미했던 그녀의 형체가 다시 뚜렷해지고, 죽은 듯이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염라대왕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의 수명은 이제 하나로 연결되었다. 같은 날에 살고, 같은 날에 죽게 될 것이다. 이제 이승으로 돌아가, 서로를 아끼며 주어진 삶을 다하도록 하라. 이것이 내 사위와 딸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이선우와 연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은 염라대왕에게 큰절을 올리고, 마침내 빛의 통로를 통해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자신들의 집, 바로 그 침실이었다. 지옥의 풍경과는 달리, 창호지 너머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눈부시게 따사로웠고, 정원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살아있다는 감각, 이승의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이선우는 감격에 겨워, 아내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환한 햇살 아래에서도, 그녀는 더 이상 스러지지 않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피부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였다. 늘 옥구슬처럼 차갑기만 했던 그녀의 몸에, 이제는 자신과 똑같은,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돌고 있었다. “부인… 정말로… 돌아왔구려.” “서방님….” 연희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 그들 사이에 비밀이나 금기는 없었다.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개의 영혼은 비로소 온전하게 마주 섰다. 이선우는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예전의 조심스럽고 탐색적이던 입맞춤이 아니었다. 서로의 존재를, 살아있음을,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는 깊고도 절실한 입맞춤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단 이불이 깔린 침상 위로 쓰러졌다. 이선우는 그녀의 옷고름을 풀었다. 그의 손길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미안함이 없었다.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순수한 열망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몸은 이제 더 이상 차가운 조각상이 아니었다.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수줍게 반응하고, 그의 입맞춤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살아있는 여인의 몸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명이 녹아들어 있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마치 경배하듯 입 맞추고 어루만졌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곧 자신의 생명이기도 했다. 연희 역시 더 이상 수동적으로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의 단단한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몸을 탐색했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준 남편.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두 개의 몸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을 때, 방 안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를 섞는 행위가 아니었다. 하나의 운명으로 묶인 두 영혼이, 서로의 존재를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확인하고 축복하는, 지고지순한 의식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두 사람은 땀에 젖은 채 서로를 부둥켜안고 누웠다. 창밖의 햇살이 그들의 나신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선우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요. 같은 날에 살고, 같은 날에 죽을 것이오.” 연희는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며 행복하게 속삭였다. “예, 서방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으니, 이제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삶과 죽음을 넘어 비로소 완전한 사랑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오래오래 회자되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사랑,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저승의 무서운 염라대왕도 인간의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대왕의 눈물을 흘리게 한 또 하나의 지극한 감정이 있었으니, 바로 자식의 효심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효녀 심청 이야기.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염라대왕마저 탄식하게 한 진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다음 시간에는, '염라대왕도 울고 간 효녀 심청의 진짜 이야기'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