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법정과 지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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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이내)
평생을 올곧게 살았다 자부한 한 선비. 하지만 염라대왕의 거울 '업경대'에 비친 그의 삶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무서운 죄가 있었습니다. 과연 혀끝으로 지은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저승 법정의 엄정한 심판이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이내)
한평생 칭송받던 선비 김수장이 갑작스러운 죽음 뒤 마주한 저승세계. 스스로는 떳떳하다 믿었건만, 염라대왕의 법정은 그의 작은 허물조차 놓치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가 불러온 나비효과와 그로 인해 펼쳐지는 무서운 지옥의 풍경.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말과 행동의 무게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청렴한 선비의 갑작스러운 죽음
내레이션: 안녕하십니까, 지혜와 경륜이 가득하신 우리 어르신 여러분. 햇살 좋은 어느 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며 "세월 참 빠르다" 되뇌어 보신 적 있으신지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 세월의 한가운데를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았다고 자부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 중기, 한양에서도 명망 높기로 소문난 선비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수장.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의 혼탁함에 염증을 느끼고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며 책과 벗하며 사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대쪽 같은 선비', '살아있는 성현'이라 부르며 존경해 마지않았습니다. 그의 집 마당에는 불의와 타협하라는 회유를 거절할 때마다 심었다는 굳건한 소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룰 정도였으니까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오후였습니다. 가을 햇살이 툇마루에 따스하게 내려앉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가을바람에 '댕그렁'하고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김수장 선비는 아끼는 책 한 권을 무릎에 펼쳐놓고 조용히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하며 조르던 것을 겨우 달래 방으로 들여보낸 참이었죠.
"허허, 이 녀석. 이야기는 무슨…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곧 이야기인 것을."
혼잣말을 하며 옅은 미소를 지은 김 선비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을 누가 커다란 손으로 꽉 움켜쥐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억!" 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그의 손에서 책이 힘없이 떨어져 툇마루 아래로 굴러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웅웅거렸습니다. '부인… 내가…'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한 채, 그의 의식은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향년 62세,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김 선비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몸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고, 아까의 그 지독한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가 누워있던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방 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방 안의 풍경이 사뭇 달랐습니다. 울긋불긋하던 단풍잎도, 책장의 수많은 책들도 모두 빛바랜 흑백 그림처럼 색을 잃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는… 아, 아내와 아들, 며느리가 자신의 몸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님! 제발 눈을 떠보십시오!"라며 절규했고, 아내는 이미 실신한 듯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너무나도 놀라 그들에게 다가가 "여보, 나 여기 있소! 왜들 이러시오!"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은 통곡하는 아들의 어깨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습니다.
그제야 김 선비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승의 모든 연이 끊어지고, 이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홀로 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망연자실한 그의 등 뒤로, 소리도 없이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습니다. 한 명은 검은 도포를, 다른 한 명은 붉은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잘 깎아놓은 목각인형 같았지요. 검은 도포를 입은 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어, 주변의 공기마저 얼려버리는 듯했습니다.
"김수장. 이승에서의 삶은 여기까지다. 이제 우리를 따라 길을 나서야 한다."
저승사자였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그들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김 선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신을 부여잡고 우는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습니다. '부디… 부디 잘 지내시오…'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고한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한평생 떳떳하게 살아왔기에, 저승의 심판 역시 두려울 것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그는 곧 알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 안개 자욱한 삼도천을 건너다
이승의 문턱을 넘어선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김 선비가 두 저승사자를 따라나선 길은, 그가 평생 상상했던 그 어떤 길과도 달랐습니다. 이승의 풍경이 서서히 멀어지자, 주변은 온통 뿌연 안개와 회색빛 대지로 변해갔습니다. 발밑에 밟히는 것은 흙도, 돌도 아닌, 마치 재를 밟는 듯한 서걱거리는 감촉뿐이었습니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흰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꽃들에서는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듯, 소리 없이 피고 지는 듯 보였습니다. 사방은 고요했지만, 아주 가끔씩 멀리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흐느낌 소리가 김 선비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길 위에는 김 선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이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묵묵히 걷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생전에 왕이었던 자도,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도, 길거리의 걸인도 이곳에서는 모두 똑같은 초라한 영혼일 뿐이었습니다.
김 선비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승길이로구나. 살아생전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직 선하게 산 업보만이 이곳에서는 유일한 재산이 될 터. 나는 한평생 남에게 해코지 한번 한 적 없고, 불의를 보고 참지 않았으니, 분명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저승길의 두려움을 애써 눌렀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저 멀리 거대한 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강이라고는 하지만, 이승의 맑은 강물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핏물처럼 붉고 탁한 물이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강물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한데 섞여 마치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바로 삼도천(三途川)이었습니다.
"저곳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가르는 삼도천이다. 죄의 경중에 따라 건너는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저승사자의 말에 김 선비가 강을 유심히 살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강의 상류에는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다리, '금은교'가 놓여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큰 덕을 베푼 선인들만이 저 다리를 편안히 건널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래 중류에는 통나무 몇 개를 엮어 만든 듯한 평범한 다리, '나무다리'가 있었고, 가장 하류에는 그 어떤 다리도 없이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험한 물길, '죄인여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끔찍한 독사들이 들끓고, 죄 많은 영혼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강을 건너려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금은교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저 평범한 나무다리는 건널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저승사자들은 그를 나무다리가 아닌, 그보다 더 아래쪽, 죄인여울과 가까운 얕은 여울로 이끌었습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강물은 마치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그의 발을 베는 듯했습니다.
"아니, 사자 양반. 내가 어찌하여 이런 험한 길로 가야 하는 것이오? 내 평생의 삶을 돌이켜보건대, 칭송을 받았으면 받았지 손가락질 받을 일은 결코 하지 않았소."
그의 항변에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무표정한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김 선비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습니다.
"그대의 삶에 대한 평가는 그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염라대왕의 업경대(業鏡臺)만이 진실을 비출 뿐. 묵묵히 건너기나 하라."
더 이상의 질문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김 선비는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근 채, 수많은 영혼들과 뒤섞여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내 억울함을 풀어다오!", "한 번만 용서해주시오!"라는 처절한 외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처참한 광경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평생을 간직해온 자부심에 처음으로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과연 자신의 삶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되묻는 동안, 안개 자욱한 강 저편으로 거대하고 위압적인 성문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열 명의 왕이 다스리는 저승, 시왕전(十王殿)의 입구였습니다.
※ 위엄 가득한 염라대왕의 법정
김수장 선비가 마주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성문이었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문은 차디찬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표면에는 죄인들이 고통받는 끔찍한 모습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위축시켰습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이승의 그 어떤 바람과도 다른,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훅 불어나왔습니다. 그 바람에는 수많은 원혼들의 탄식과 후회가 실려 있는 듯했습니다. 두 저승사자는 아무 말 없이 성문 안으로 그를 이끌었고, 김 선비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저항할 의지조차 잃은 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어마어마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천장은 수백 개의 육중한 기둥이 받치고 있었고, 바닥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검은 옥으로 매끄럽게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위를 걸을 때마다 김 선비 자신의 발소리가 수십 배로 증폭되어 텅 빈 공간을 울렸습니다. 공기는 숨 막힐 듯 무거웠고, 오래된 향 냄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한 쇠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양옆으로는 수많은 판관(判官)들이 일사불란하게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가면처럼 무표정했고, 손에 든 붓은 마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두루마리 위에 죄인들의 업보를 쉴 새 없이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정 곳곳에는 기괴한 형상의 옥졸(獄卒)들이 창과 쇠사슬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소의 머리를 한 우두(牛頭) 옥졸, 말의 얼굴을 한 마면(馬面) 옥졸 등, 책에서나 보던 지옥의 파수꾼들이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새로 들어온 영혼들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에 닿은 영혼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김 선비 역시 평생 느껴보지 못한 원초적인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한평생 대쪽 같다 칭송받던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이 무시무시한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 법정 가장 깊숙한 곳, 정면에 놓인 거대한 옥좌에 앉은 존재에게로 그의 시선이 향했습니다. 바로 저승의 다섯 번째 왕, 염라대왕(閻羅大王)이었습니다. 열두 줄기 구슬 발을 내린 면류관을 쓰고, 온갖 지옥의 풍경이 수놓아진 검붉은 용포를 입은 그의 모습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제왕보다도 위엄이 넘쳤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빛은 이승의 그 어떤 권력자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겁의 세월을 담은 깊고 서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일생 전체가 남김없이 꿰뚫어 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김 선비는 그 위엄 앞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습니다. 비로소 자신은 한 나라의 명망 높은 선비가 아닌, 심판을 기다리는 수많은 영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법정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내쉬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한 명의 판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그 순간, 옥좌에 앉아있던 염라대왕이 나직이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법정 전체를 넘어 모든 영혼의 뼛속까지 울리는 듯한 기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이승의 이름 김수장. 앞으로 나오너라."
※ 업경대에 비친 삶의 그림자 선비의 삶
염라대왕의 호명에 김수장 선비는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검은 옥 바닥이 그의 초라한 영혼을 비추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법정의 한가운데에 섰을 때, 판관 중 하나가 손짓하자 거대한 거울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높이가 장정 서넛은 족히 될 법한 크기에, 테두리는 복잡한 용무늬로 조각된 청동 거울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울의 표면은 맑게 비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었습니다. 바로 망자의 일생을 남김없이 비춘다는 진실의 거울, 업경대(業鏡臺)였습니다.
"네놈이 살아온 생이 과연 떳떳했는지, 이 업경대 앞에서 한 점 거짓 없이 고하라."
염라대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선비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답했습니다. 아직 그의 마음 한편에는 평생을 지탱해 온 자부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시여, 소인 김수장. 비록 큰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않았고, 가난한 이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그릇된 길을 가는 자를 꾸짖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나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업경대의 표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거울 속에는 김 선비의 생전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굶주린 백성에게 자신의 쌀을 나누어주는 젊은 시절의 모습, 권세가의 회유를 대쪽같이 거절하는 강직한 모습, 밤늦도록 등불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들이 차례로 지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김 선비는 다시금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래, 역시 내 삶은 틀리지 않았어. 이 모든 선행이 나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선행의 기록들이 모두 끝나갈 무렵, 업경대의 표면이 갑자기 검붉은 색으로 물들며 섬뜩하게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김 선비가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의 풍경이 거울 속에 나타났습니다. 십수 년 전, 번화한 저잣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젊고 기세등등했던 시절의 김 선비가 길을 가다가, 물건 값을 잘못 셈한 어느 순박한 상인과 시비가 붙은 장면이었습니다. 상인은 무지렁이 백성이라 글을 잘 몰라 실수를 한 것이었으나,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던 김 선비는 그의 무지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의 젊은 김 선비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상인을 향해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무릇 배움이 없는 자는 눈 뜬 장님과 같고, 수를 헤아리지 못함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거늘! 네놈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장사를 한다고 손님을 기만하는가!" 그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상인의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상인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고, 그 모습을 보며 주변의 구경꾼들은 낄낄거리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무지한 자를 깨우친 통쾌한 순간이었을지 모르나, 상인에게는 평생의 치욕으로 남은 순간이었습니다.
업경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 장면은 빠르게 흘러, 그날 이후 상인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비추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상인은 장사에 대한 의욕을 잃고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아내는 병을 얻었으며,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병과 화를 이기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김 선비는 그 모든 과정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은 전혀 기억조차 못 하던 사소한 사건, 그저 순간의 오만함으로 내뱉었던 말 몇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가 붓과 혀로 쌓아 올린 평생의 자부심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 아… 내가… 내가 무슨 짓을…"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의 절망적인 신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염라대왕의 차가운 목소리가 법정을 다시 한번 울렸습니다.
"김수장. 칼로 입힌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수도 있으나, 혀로 입힌 상처는 당사자의 뼛속에 새겨져 죽어서까지 그를 고통받게 하는 법이다. 네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모든 선행도, 네 혀끝에서 비롯된 이 무서운 죄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 혀를 뽑는 지옥, 발설지옥의 풍경
염라대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옆에 서 있던 우두마면 옥졸들이 김수장 선비의 팔을 거칠게 움켜잡았습니다. 저항할 틈도 없이 그의 영혼은 안개처럼 허공으로 빨려 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습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는 더 이상 염라대왕의 서늘한 법정이 아닌,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끔찍한 풍경 한가운데에 내던져져 있었습니다. 하늘은 핏물처럼 붉었고, 땅은 메마르다 못해 시커멓게 갈라져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는 유황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는 듯했습니다. 바로 혀로 죄를 지은 자들이 벌을 받는다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이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화산처럼 생긴 형벌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죄인들이 옥졸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와, 뜨겁게 달궈진 쇠기둥에 묶이고 있었습니다. 옥졸들은 거대한 쇠집게로 죄인들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그 안에서 길게 늘어난 혀를 잡아챘습니다. 죄인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발버둥 쳤지만, 옥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뻘겋게 달궈진 집게로 그 혀를 지지고, 잡아당기고, 심지어는 칼로 잘라내기까지 했습니다. 혀가 잘려나간 자리에서는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지만, 지옥의 형벌은 끝이 없었습니다. 잘려나간 혀는 곧바로 다시 돋아나,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죄인들은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김수장 선비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벌을 받는 죄인들의 면면은 다양했습니다. 살아생전 남을 이간질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던 자, 아첨하는 말로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챙겼던 자, 근거 없는 말로 타인의 명예를 더럽혔던 자. 그리고… 자신처럼, 오만한 말로 타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자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바로 '혀'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옥졸 하나가 김 선비를 그 끔찍한 광경 바로 앞으로 끌고 가, 그의 눈을 강제로 뜨게 했습니다. "똑똑히 보아라! 네놈의 혀가 저지른 죄의 결과를!" 바로 그때였습니다. 수많은 고통받는 영혼들 사이에서, 김 선비는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십수 년 전, 저잣거리에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욕을 당하고 스러져갔던 바로 그 상인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죄인들과 똑같이 쇠기둥에 묶인 채, 끝없이 반복되는 형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상인의 텅 빈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 공포에 질린 김 선비의 얼굴과 마주쳤습니다. 그 눈에는 원망이나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깊고 깊은 슬픔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김 선비의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의 그 오만했던 말 한마디가, 자만심에 가득 차 내뱉었던 그 경솔한 훈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그의 영혼마저 이 끔찍한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구나! 그는 차마 그 광경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눈을 감고 절규했습니다. 소리 없는 비명이 그의 영혼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평생 쌓아 올린 학식과 명예, 대쪽 같던 자부심이 한낱 먼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를,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 속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 염라의 판결과 마지막 눈물 최종 판결을 받은 선비의 참회와 눈물
지옥의 끔찍한 풍경이 사라지고, 김수장 선비는 다시 염라대왕의 법정, 차갑고 단단한 옥 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꼿꼿하던 허리는 완전히 굽어 있었고, 그의 뺨 위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눈물도, 억울함의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온전히 깨달은 자만이 흘릴 수 있는, 뼈저린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염라대왕의 옥좌를 향해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려 흐느꼈습니다. 더 이상 변명도, 자부심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대왕이시여… 소인이…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의 어리석고 오만한 혀가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파괴했으니, 그 어떤 벌을 내리셔도 달게 받겠나이다. 부디… 부디 저를 벌하시어 저 가여운 영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소서."
그의 진심 어린 참회에 시끄럽던 법정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냉정하기만 하던 판관들의 얼굴에도 희미한 동요가 스치는 듯했습니다. 옥좌에 앉아 모든 것을 지켜보던 염라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이전과 같은 서슬 퍼런 위엄 대신, 만고의 법칙을 전하는 듯한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수장. 네가 평생 쌓은 공덕이 적지 않고, 이제라도 너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니 영원한 지옥의 형벌은 면하게 해주겠다. 허나, 살아생전 네가 지은 죄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업보의 법칙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법. 너는 네가 지은 죄에 합당한 과보를 받아야만 한다."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자, 옆에 있던 판관이 두루마리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김 선비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운명을 기다렸습니다.
"너는 다음 생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로 태어나, 평생 혀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무시하고 멸시했던 무지렁이 백성들 사이에서 태어나, 그들의 아픔과 설움을 온몸으로 겪으며 네 오만했던 마음을 씻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평생을 침묵 속에서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뼈에 새긴 뒤에야, 비로소 다시 온전한 인간으로 태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너에게 내리는 나의 마지막 판결이다."
판결이 끝나자, 김 선비는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다시 한번 이마를 조아렸습니다. "대왕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나이다…" 그의 뺨을 타고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검은 옥 바닥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눈물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 아닌, 자신이 상처 주었던 그 상인에 대한 미안함과, 새로운 삶을 통해 속죄할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한 안도가 뒤섞인 눈물이었습니다. 이윽고 옥졸들이 다가와 그의 양팔을 부축해 일으켰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들을 따라 환생의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한평생 쌓아 올린 공덕탑도, 혀끝에서 나온 작은 교만의 돌멩이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온 영혼으로 깨달으며 저승의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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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려드린 '염라대왕의 법정' 이야기, 어르신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울림으로 남았습니까? 혀 밑에 도끼가 들었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의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죽어서야 염라대왕을 만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승에 살아있을 때 꿈을 통해 미리 경고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 채널 다음 시간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야담에 실제로 기록된 흥미로운 이야기, <꿈에서 만난 염라대왕: 조선시대 임종 전 경고 꿈의 기록>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과연 우리 조상들은 꿈속에서 어떤 경고를 받았을까요? 궁금하시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 주에도 지혜가 가득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