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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라대왕의 저승 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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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여러분은 사람이 죽고 난 뒤, 저승으로 가는 길을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승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부자와 평생 남을 돕다 가난하게 떠난 사람. 과연 저승 사또, 염라대왕 앞에서도 그 신분이 그대로 유지될까요? 조선시대 기담집 '천예록'에 기록된 옛사람들의 저승관을 바탕으로, 칠흑 같은 황천길부터 서늘한 저승 재판소의 풍경까지 생생한 소리로 재구성했습니다. 죄지은 자는 벌벌 떨고 선한 자는 웃음 짓는, 통쾌하고도 오싹한 염라대왕의 저승 재판소! 지금 바로 그 거대한 옥문이 열립니다. 눈을 감고 옛날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 1: 이승의 마지막 날, 엇갈린 두 사람의 임종 (최 진사와 막동이)

    매서운 칼바람이 문풍지를 사정없이 때리던 섣달그믐의 깊은 밤. 고래등같은 기와집 안방에서는 연신 거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 안은 뜨끈한 아랫목의 열기와 탕약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화려한 비단 이불을 덮고 누운 노인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지독한 구두쇠로 소문난 최 진사였다. 방 밖에서는 아내와 자식들이 옷고름을 쥐어짜며 훌쩍거리고 있었으나, 최 진사의 귓가에는 그 소리가 아득하게만 들렸다.

    '내 어찌 모은 재산인데...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치고, 흉년에 헐값으로 사들인 논밭이 족히 천 마지기는 넘거늘. 곳간에 쌓아둔 저 금은보화는 어찌하고 내가 눈을 감는단 말이냐. 안 된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절대 못 죽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공으로 앙상한 손을 뻗어보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차디찬 공기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 안의 촛불이 기괴하게 파르르 떨리더니 푸른빛으로 변했다. 문을 연 사람도 없는데 뼛속까지 시린 서늘한 바람이 훅 끼치며,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찰그랑... 찰그랑... 방 한가운데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창백한 얼굴에 검은 갓을 쓰고 먹물처럼 검은 도포를 자락을 펄럭이는 세 명의 거구들이 우뚝 섰다.

    "최학수! 이승에서의 네 명부가 모두 다하였으니, 잔말 말고 우리와 함께 가자!"

    벼락을 치듯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였다. 최 진사는 혼비백산하여 이불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누, 누구요! 당신들 뉘신데 남의 집 안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단 말이오! 내 이놈들을 당장 관아에 고발하여 곤장을 치게 할 것이야!"

    허장성세를 부려보았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제일 앞에 선 저승사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붉은색 명부를 꺼내어 펼쳤다.

    "명부도찰에 적힌 네 이름 석 자를 보아라. 우리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온 저승의 차사들이다. 이승의 관아를 들먹이다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네놈의 명줄은 오늘 자시를 끝으로 끊어졌다. 당장 목에 칼을 차고 오랏줄을 받으라!"

    저승사자가 손을 뻗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최 진사의 영혼을 육신에서 쑥 뽑아냈다. 방바닥에는 껍데기만 남은 최 진사의 몸뚱이가 널브러졌고, 그제야 문밖의 가족들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와 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영감! 아이고, 아버지!"

    자신의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가족들을 보며 영혼이 된 최 진사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저승사자의 바지춤을 부여잡고 매달렸다.

    "차사님들! 아이고, 차사님들! 제가 돈이 많습니다요! 곳간 열쇠를 드릴 터이니, 저승길 노잣돈으로 크게 한몫 챙기시지요. 쌀 천 석도 드릴 수 있고, 금송아지도 내어드리리다. 제발, 제발 제 수명을 삼 년만... 아니 일 년만이라도 늘려주십시오!"

    "어허, 요망한 주둥아리를 닥치지 못할까! 저승의 법도는 추상과도 같거늘, 감히 썩어문드러질 이승의 재물로 염라국의 관원을 매수하려 드느냐! 당장 오라를 묶어라!"

    무자비한 저승사자의 손길에 굵은 오랏줄이 최 진사의 목과 두 팔을 칭칭 감았다. 한 번 묶인 오랏줄은 불에 달군 쇠처럼 살을 파고들었고, 최 진사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저승길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마을 어귀 산기슭에 자리한 쓰러져가는 초가집. 평생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뼈 빠지게 일만 하던 막동이의 방안은 고요했다. 거적때기 하나 덮고 누운 막동이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평온해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이웃들이 가져다준 식은 숭늉 한 사발만이 놓여 있었다. 자식도, 아내도 없이 평생 홀로 외롭게 살아온 그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후회나 원망이 없었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다. 며칠 전 동냥아치 모자에게 내 남은 식량을 다 털어주길 잘했지. 그 어린것이 배를 곯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을 테니, 내 이리 가는 길이 춥지만은 않구나.'

    막동이가 천천히 눈을 감으려 할 때, 초가집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옅은 안개와 함께 단정한 차림의 저승사자 한 명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쇠사슬 소리나 무서운 호령은 없었다. 차사는 막동이의 영혼을 부드럽게 이끌어내며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승에서 고단한 삶을 사느라 참으로 애가 많았구나. 김막동, 네 맑은 영혼을 모시러 왔다. 이제 짐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편안한 곳으로 가자꾸나."

    막동이는 자신의 낡은 육신을 한 번 돌아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차사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데리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차사님. 비록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살다 가오나, 이렇게 가는 길을 인도해 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차사는 오랏줄을 묶는 대신, 막동이의 앞길에 은은한 빛이 나는 초롱불을 밝혀주었다. 거친 바람이 불던 밤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밝은 달빛이 막동이의 가는 길을 비추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 떵떵거리던 부자는 오랏줄에 묶여 짐승처럼 끌려갔고, 가난한 머슴은 귀한 손님처럼 모셔지며 각자의 황천길에 오르고 있었다.

    ※ 2: 멀고 험한 황천길, 이승의 업보가 무게가 되어 짓누르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 황천길. 안개로 자욱한 이곳에는 밤도 없고 낮도 없는 잿빛 하늘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길섶에는 피처럼 붉은 상사화가 스산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어디선가 수많은 영혼들이 내지르는 흐느낌과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이 길은, 살아서 지은 업보에 따라 발아래 닿는 감촉이 달라지는 신비하고도 두려운 길이었다.

    최 진사는 목에 밧줄을 매단 채 거친 자갈밭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날카로운 돌멩이들이 발바닥을 찢었고, 끈적이는 핏물이 흙길을 적셨다. 비단옷은 이미 찢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 볼품없어졌으며, 머리칼은 산발이 된 채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이고오! 차사님, 차사님! 제발 굽어살펴주십시오. 내 발바닥이 다 찢어져서 뼈가 보일 지경이오. 단 한 식경만이라도 쉬었다 가면 안 되겠소? 이 목에 묶인 줄이라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시면 내 후생에 개로 태어나서라도 은혜를 갚겠소이다!"

    최 진사가 바닥에 엎어지며 애원했지만, 뒤에서 걷던 저승사자는 서슬 퍼런 쇠채찍으로 허공을 가르며 무섭게 호통을 쳤다.

    "닥치지 못할까! 이 길은 네놈이 이승에서 평생토록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게 한 그 죄업이 만들어낸 가시밭길이다. 소작농들의 쌀을 고리대로 앗아가고, 빚을 갚지 못하는 자들을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내쫓을 때는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더니, 이제 와서 네 발바닥 아픈 것은 못 참겠단 말이냐! 어서 걷거라! 염라국 법정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당도해야 한다!"

    짜악! 쇠채찍이 최 진사의 등짝을 후려치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기듯이 걸음을 옮겼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엽전 한 닢 쓰지 않고 평생 모은 재물이 저승길에서는 이리도 소용이 없단 말인가...' 후회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이었다.

    반면, 저 멀리서 다른 저승사자와 함께 걸어오는 막동이의 길은 사뭇 달랐다. 분명 같은 황천길을 걷고 있는데도, 막동이의 발아래는 푹신한 구름처럼 부드러운 흙길이 펼쳐져 있었다.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낡은 삼베옷을 입고 있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화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차사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막동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그래, 배가 고프거나 다리가 아프지는 않느냐? 네가 이승에서 워낙 베풀고 산 것이 많아, 저승길이 산책하는 것처럼 평온할 것이다."

    "아이고, 아닙니다. 천한 머슴 놈이 평생 남의 집 마당만 쓸다가, 이리 고운 길을 걸어보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차사님께서 초롱불로 길을 밝혀주시니 마음조차 편안하옵니다."

    어느덧 두 무리의 영혼은 저승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삼도천(三途川) 앞에 다다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고 깊은 강물이 무서운 기세로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강가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배를 타기 위해 모여 있었는데, 배삯을 내야만 탈 수 있는 노잣돈의 강이었다. 이승에서 올바르게 살지 못한 자들은 강물에 뱀과 악귀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려 울부짖고 있었다.

    나루터에는 얼굴이 반쪽만 남은 기괴한 모습의 뱃사공이 길다란 장대를 들고 서 있었다. 최 진사는 덜덜 떨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저승사자에게 끌려오느라 노잣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 사공 양반! 내 배삯은 이승의 가족들이 곧 제사를 지내며 태워 보낼 것이니, 제발 나를 먼저 좀 태워주시오!"

    뱃사공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장대로 최 진사의 가슴팍을 툭 쳤다.

    "이승에서 지전 한 장 베풀지 않은 구두쇠 영감이 무슨 배삯을 바라는가? 너 같은 탐욕스러운 자들은 배를 탈 자격이 없다. 당장 저 깊고 탁한 물살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헤엄쳐 건너라!"

    "뭐라? 저 뱀들이 득실거리는 검은 물을 맨몸으로 건너란 말이오? 싫소! 내 그리로는 못 가오!"

    최 진사가 발버둥 쳤지만, 저승사자는 무자비하게 최 진사를 삼도천 강물 속으로 차넣어 버렸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최 진사는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물속의 독사들이 그의 다리를 물어뜯고, 악귀들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한편, 나루터에 도착한 막동이는 배삯이 없어도 뱃사공이 환한 미소(비록 반쪽짜리 얼굴이었지만)를 지으며 정중하게 배로 모셨다.

    "김막동 님, 어서 오십시오. 이승에서 적선하신 그 공덕이 황금 배삯이 되어 이미 저승에 닿았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막동이는 차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용히 배에 올랐다. 강물 한가운데서 뱀들에게 물어뜯기며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최 진사와, 배 위에서 평온하게 강을 건너는 막동이. 짙은 물안개 사이로 이승에서의 삶이 만들어낸 첫 번째 심판의 결과가 그렇게 극명하게 갈리고 있었다. 강을 건너 안개가 걷히자, 드디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웅장하고 기괴한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라대왕이 기다리는 저승 재판소, 명부전이었다.

    ※ 3: 제1관문,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다 - 거울에 비친 일생

    삼도천을 건너 당도한 곳은 압도적인 크기의 철문이 버티고 서 있는 저승의 중심, 명부전(冥府殿)이었다. 수십 아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검은 기둥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고, 그 기둥마다 지옥의 형벌을 받는 죄인들의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전각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으나, 기둥 사이사이에서 타오르는 푸른 도깨비불들이 스산한 빛을 뿜어내며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좌우로는 소의 머리를 한 우두(牛頭) 나찰과 말의 머리를 한 마두(馬頭) 나찰들이 삼지창과 거대한 철퇴를 들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그 위압감만으로도 평범한 영혼들은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지조차 못했다.

    "염라대왕 납시요-!!"

    판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텅 빈 대전을 쩌렁쩌렁 울리자, 가장 높은 단상 위, 화려한 용이 춤추는 옥좌에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관복에 화려한 금관을 쓰고, 얼굴에는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염라대왕이었다. 그의 두 눈은 벼락처럼 번뜩였고, 숨을 쉴 때마다 저승의 차가운 공기가 진동하는 듯했다.

    "오늘 명부의 수명이 다하여 끌려온 자들을 대령하라!"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최 진사와 단정한 모습의 막동이가 재판정 한가운데로 끌려 나왔다. 최 진사는 삼도천에서 물어뜯긴 상처로 피를 뚝뚝 흘리며 사시나무 떨듯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막동이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염라대왕의 시선이 먼저 최 진사를 향했다.

    "네놈이 이승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최학수라는 자냐. 생사부의 기록을 보니, 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배를 곯지 않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재물을 탐하고 가난한 자들의 피눈물을 빨아먹으며 살았다지? 어디 네 입으로 지은 죄를 이실직고해 보거라."

    최 진사는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순순히 인정했다간 펄펄 끓는 가마솥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하다. 무조건 잡아떼야 한다!'

    "대, 대왕마마! 오해이십니다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소인은 그저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을 잘 지키고, 나라에 세금도 꼬박꼬박 내며 법도에 맞게 살았사옵니다. 소작농들이 굶은 것은 그들이 게으른 탓이요, 빚을 진 자들의 집을 빼앗은 것은 그들이 돈을 갚지 않아 이승의 법대로 처리한 것뿐이옵니다. 소인처럼 법 없이도 살 착한 백성이 어디 있다고 이러십니까! 억울하옵니다!"

    최 진사의 뻔뻔한 거짓말에 좌우에 서 있던 우두, 마두 나찰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콧김을 뿜어냈다. 염라대왕은 껄껄대며 호탕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참으로 요망한 혀로구나. 네놈이 이승의 법망은 교묘하게 빠져나갔을지언정, 저승의 그물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네놈의 눈에는 이곳이 거짓부렁이 통하는 관아로 보이느냐? 여봐라! 저자의 업을 비추는 업경대(業鏡臺)를 대령하라!"

    염라대왕의 명이 떨어지자, 쿵! 쿵! 쿵! 거대한 발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도깨비들이 집채만 한 거울을 단상 아래로 끌고 왔다. 테두리에 온갖 악귀들의 형상이 새겨진 맑고 투명한 유리 거울이었다. 이 거울 앞에서는 죽은 자가 이승에서 저지른 모든 선악의 행적이 고스란히 영화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최학수, 고개를 들어 저 거울을 똑똑히 보아라!"

    판관이 호통치자 최 진사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업경대에서 번쩍하는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거울 속에 최 진사의 살아생전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장면은 몰락한 양반의 밭을 헐값에 강탈하기 위해 불량배들을 시켜 농작물을 짓밟고 문서를 위조하던 모습이었다. 거울 속 최 진사는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도장을 찍고 있었다. 두 번째 장면은 한겨울,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러 온 어린아이와 어미를 하인들을 시켜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내쫓는 장면이었다. 맞아서 쓰러진 어미의 피가 흰 눈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거울에 선명하게 비쳤다.

    "저, 저것은...!"

    최 진사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변명할 틈도 없이, 거울 속에서는 남의 제사 음식을 가로채고, 병든 하인을 산속에 내다 버리고,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갚지 못한 평민의 딸을 청나라 노비로 팔아넘기는 등 그가 숨겨왔던 온갖 악행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거울에서 울려 퍼지는 원통한 자들의 울음소리가 명부전 안을 가득 채웠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조금 전까지 당당하게 억울함을 호소하던 최 진사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벌벌 떨며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찧기 시작했다.

    "대, 대왕마마!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염라대왕은 서늘한 눈빛으로 업경대를 바라보며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승에서 흘린 남의 눈물은 저승에서 펄펄 끓는 구리 쇳물이 되어 네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이다. 너의 죄악은 저 산더미보다 높고 깊으니라. 아직 판결을 내리기엔 이르다. 이번에는 김막동, 네 차례다. 업경대에 저 자의 삶을 비추어라!"

    업경대의 화면이 스르르 바뀌며, 이번에는 막동이의 낡은 초가집이 나타났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최 진사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판관과 차사들도 모두 숨을 죽인 채 막동이의 삶이 비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과연 가난하고 비천한 머슴의 삶 속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 명부전 전체에 깊은 침묵과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4: 염라대왕의 불꽃 같은 호령과 거짓을 꿰뚫는 판결

    명부전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업경대의 거대한 거울 면이 잔잔한 호수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최 진사의 추악한 죄악을 비추며 시뻘건 핏빛을 뿜어내던 거울은, 이제 은은하고 따뜻한 금빛 광채를 머금고 전각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최 진사조차 그 신비로운 빛에 이끌려 두려움 속에서도 곁눈질로 거울을 훔쳐보았고, 숨을 죽인 채 서 있던 염라대왕과 판관들의 시선도 모두 그 눈부신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울 속에 비친 막동이의 삶은 이승의 잣대로 보기엔 너무도 비참하고 고단한 흙수저의 일생 그 자체였다. 화면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사정없이 몰아치는 한겨울의 풍경이 펼쳐졌다. 살을 에는 듯한 끔찍한 추위 속에서, 얇디얇은 홑겹 삼베옷 하나에 의지한 채 언 손에 연신 입김을 불어가며 깊은 산속에서 땔감을 구하는 늙은 막동이의 굽은 등이 보였다. 그의 발은 지독한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다 해진 짚신 사이로는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와 하얀 눈길 위에 점점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보는 이마저 뼛속까지 가슴이 시려오는, 참으로 척박하고 가엾은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업경대가 진정으로 비추고자 하는 것은 그의 초라한 겉모습이 아니었다. 무거운 땔감 지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오던 거울 속 막동이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 곳은, 길가에 쓰러져 얼어 죽어가는 낯선 문둥병 환자 앞이었다. 고을 사람들은 행여나 몹쓸 병이 옮을까 혀를 차며 멀찍이 돌아서 피해 가기 바빴지만, 막동이에게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는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지게를 미련 없이 바닥에 내려놓고는, 잰걸음으로 다가가 자신의 하나뿐인 낡은 겉옷을 벗어 덜덜 떠는 환자의 몸 위로 정성스레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본인도 며칠을 굶어가며 아끼고 아껴둔 딱딱하게 굳은 보리개떡 반쪽을 꺼내어 꽁꽁 얼어붙은 환자의 입에 조심스레 넣어주었다.

    '내 비록 가진 것 하나 없는 천한 목숨이나, 이 끔찍하게 추운 날 나보다 더 춥고 배고픈 이를 어찌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가겠는가. 부디 이승에서의 마지막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덜 춥고 덜 외롭기를 바랄 뿐이네...'

    거울 속 막동이의 깊고 따뜻한 속마음이 명부전 전체에 장엄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거울이 보여주는 기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면이 바뀌며 이번에는 푹푹 찌는 여름날의 장터가 나타났다. 배가 고파 참외 하나를 훔치다 부자 상인에게 붙잡혀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그 어미를 보았을 때, 막동이는 그들 대신 엎드려 매를 맞으며 자신이 훔쳤노라 거짓 자백을 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도망치는 모자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막동이의 희미한 미소가 거울에 선명하게 비쳤다. 여름 장마에 떠내려가는 개미 떼를 위해 커다란 나뭇잎을 띄워 생명의 다리를 만들어 준 일, 주인이 역정이 나 내다 버린 늙고 병든 개를 몰래 거두어 밤새 짚더미 속에서 안아주며 곁을 지켜준 일, 자신을 그토록 짐승 취급하며 구박하던 지주가 돌림병에 걸려 자식들마저 도망쳤을 때 원망 한마디 없이 산속을 헤매며 귀한 약초를 캐어다 달여 먹인 일까지. 이승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칭찬해 주지 않았던, 칠십 평생 묵묵히 쌓아 올린 작고도 위대한 선행들이 업경대 위로 폭포수처럼 쉴 새 없이 흘러갔다. 거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고 향기로운 연꽃의 기운이 명부전의 음산하고 탁한 공기를 단숨에 정화시키는 듯했다.

    항상 죄인들을 향해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철퇴를 휘두르던 우두 나찰과 마두 나찰들조차, 어느새 숙연해진 표정으로 들고 있던 무기를 슬며시 바닥에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평생 수만 명의 망자를 심판하며 피도 눈물도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판관들의 눈가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깊고 묵직한 탄식을 내뱉었다.

    "허어... 참으로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영혼이로구나. 이승의 어리석은 인간들은 겉옷이 화려하고 비단결 같으면 그 속내도 귀한 줄로만 알고, 주머니가 텅 비어 남루하면 그 마음조차 가난하고 천박한 줄로만 안다. 허나, 세상 만물을 비추는 저 업경대는 단 한 치의 거짓이나 꾸밈도 비추지 않는 법! 비록 냄새나는 진흙탕 속에서 평생을 굴렀으나, 네 영혼은 저 맑은 연못 한가운데 피어난 눈부신 하얀 연꽃보다도 맑고 향기롭기 그지없구나. 김막동, 어서 고개를 들라!"

    막동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염라대왕은 지금까지 그 어떤 망자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지극히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평생을 가난과 핍박 속에서 주린 배를 부여잡고 살면서도 결코 타인을 원망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하여 삿된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네 살과 뼈를 깎아 남을 돕는 데 평생을 바쳤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이토록 지엄하고 공평한 것! 네가 이승에서 남을 위해 흘린 그 귀한 땀과 눈물은, 이제 저승에서 너를 가장 영롱하게 빛나게 하는 황금 보석이 될 것이다!"

    명부전의 모든 이들이 막동이의 숭고한 삶에 감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때였다. 엎드려 벌벌 떨고 있던 최 진사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불쑥 고개를 쳐들며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대, 대왕마마! 억울하옵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처사이옵니다! 저놈은 평생 제집 마당이나 쓸며 개돼지처럼 밥을 축내던 천하디천한 머슴 놈이옵니다. 어찌 뼈대 있는 양반인 저를 벌하시고, 저런 천것을 대왕마마께서 칭송하신단 말씀이옵니까? 저 거울이 단단히 고장 난 것이 분명하옵니다! 저놈이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제집 곳간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리며 꿍쳐둔 엽전이 한두 닢이 아닐 터인데, 어찌 저런 얄팍한 거짓부렁에 속아 넘어가신단 말입니까! 저자의 배를 갈라보십시오! 분명 도둑질한 장물들이 가득할 것이옵니다!"

    최 진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오만 방자하고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외침에, 찰나의 끔찍한 정적이 명부전을 감돌았다. 막동이는 놀란 눈으로 최 진사를 바라보았고, 눈물을 닦던 차사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차가운 잿빛으로 굳어졌다. 염라대왕의 얼굴에 머물던 온화한 미소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고, 대신 무시무시한 분노의 붉은 불길이 그의 두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네 이노오오오오옴-!!"

    염라대왕의 분노 서린 호통이 벼락이 치듯 거대한 명부전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푸른 도깨비불들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고, 아름드리 기둥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돌 조각상들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덜덜 떨리며 흙먼지를 쏟아냈다.

    "살아서 지은 죄악이 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거늘, 죗값을 치러야 할 저승의 지엄한 심판대 앞에서조차 일말의 뉘우침이 없고 타인을 시기하여 헐뜯기에만 바쁘구나! 이승의 그깟 허울 좋은 양반이라는 신분과, 썩어 문드러질 더러운 재물이 이 명부전에서도 뇌물로 통할 줄 알았더냐? 네놈의 새까만 혓바닥은 사람을 무는 독사보다도 흉악하고, 네놈의 꼬인 심보는 구더기가 끓는 시궁창보다도 역겹구나! 명부의 판관은 똑똑히 들으라! 당장 저 흉악무도한 죄인 최학수의 판결문을 만천하에 낭독하라!"

    판관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붉은 두루마리를 쫙 펼쳐 들고는, 대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낭랑하고도 서늘한 목소리로 최후의 판결을 내렸다.

    "죄인 최학수는 똑똑히 들으라! 너는 이승에서 부당하게 재물을 탐하여 뭇 백성들의 목숨줄을 앗아간 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여 하늘의 크나큰 노여움을 산 죄, 그리고 죽어서도 반성하지 않고 감히 저승의 법도를 능멸하고 의인을 모함한 죄가 명백히 인정되었다! 이에 염라대왕의 엄중한 명으로 명하노니, 죄인 최학수를 당장 펄펄 끓어오르는 무쇠 기름 가마솥이 있는 '확탕지옥(镬湯地獄)'으로 끌고 가라! 또한 그 거짓을 일삼은 혀를 길게 뽑아 소가 밭을 갈게 하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의 끔찍한 형벌을 더하여, 앞으로 천 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뼈와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맛보게 할 것이니라!"

    "아, 안 돼! 아니 되오! 살려주시오, 대왕마마! 내가 단단히 미쳤었나 보오! 곳간에 숨겨둔 황금이 산처럼 쌓여 있소이다! 그것을 다 드릴 테니 제발 가마솥만은, 가마솥만은 면하게 해주시오! 내가 죽일 놈이오! 아이고오, 사람 살려!"

    그러나 콧물과 눈물을 쏟아내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최 진사의 처절한 절규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분노한 우두 나찰과 마두 나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자비하게 달려들더니, 불에 달궈진 거대한 쇠 집게로 최 진사의 목덜미와 상투를 한꺼번에 움켜쥐고는 대전 밖으로 거칠게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긁히고 부딪히며 비명을 지르는 최 진사의 목소리는 점차 멀어지더니, 이내 끔찍한 비명만을 남긴 채 지옥의 깊고 어두운 나락 속으로 영원히 삼켜지고 말았다.

    ※ 5: 지옥의 형벌과 극락왕생, 엇갈린 두 영혼의 운명

    최 진사의 처절하고도 소름 끼치는 비명마저 완전히 잦아들어버린 명부전. 염라대왕의 추상같이 뿜어져 나오던 무서운 분노도 어느덧 가라앉고, 웅장한 전각 안에는 다시금 엄숙하고도 신성한 고요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끌려간 최 진사의 운명은 인간의 언어로는 차마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명부전 뒤편으로 난, 끝없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붉고 축축한 동굴을 지나자 하늘마저 시뻘건 피비린내로 물든 무저갱의 끔찍한 지옥도가 그 흉악한 자태를 드러냈다. 칼날처럼 뾰족한 바위들이 발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검수지옥의 가시밭길을 지나 다다른 곳, 그곳이 바로 끓는 기름 가마솥이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확탕지옥(镬湯地獄)이었다.

    산봉우리만큼이나 거대한 무쇠 가마솥 밑으로는, 인간 세상의 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뜨거운 지옥의 업화(業火)가 시뻘겋게, 때로는 푸른빛을 띠며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솥 안에서는 시커멓고 끈적이는 기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살을 녹이는 독한 연기를 뿜어냈고, 그 지옥의 솥단지 속에서는 이미 수많은 죄인들이 살갗이 훌러덩 벗겨지고 하얀 뼈가 드러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짐승처럼 울부짖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들어가거라,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놈아! 네놈이 흘리게 한 가난한 자들의 피눈물 맛을 똑똑히 보거라!"

    마두 나찰이 불타는 쇠스랑으로 최 진사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치자, 최 진사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펄펄 끓는 검은 기름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크아아아악! 뜨, 뜨거워! 몸이 녹는다! 제발 나를 꺼내주시오! 사, 사람 살려!"

    살아서 남의 고혈을 악착같이 짜내며 뒤룩뒤룩 찌웠던 살점들이, 끓는 기름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지글거리며 녹아내려 뼈와 분리되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입을 쩍 벌려 비명을 지를 때마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독한 기름이 목구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가 오장육부를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차라리 숨이 끊어지길 바랐으나, 고통에 몸부림치며 혼절하려는 찰나 지옥의 서늘하고 기괴한 찬바람이 훅 불어오면, 녹아내렸던 살과 신경이 끔찍한 속도로 다시 돋아나며 처음 기름에 빠졌을 때의 그 생생한 고통을 또다시 맛보게 했다. 영원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끝이 없는 형벌의 굴레였다.

    한 번 살갗이 타들어 가고 뼈가 녹아내릴 때마다, 최 진사의 귓가에는 자신이 이승에서 모질게 쫓아냈던 소작농들의 굶주린 얼굴과, 한겨울 멍석 말이를 당해 얼어 죽어간 어린아이의 원통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웅웅거리며 울려 퍼졌다.

    '내가 미쳤지... 단단히 미쳤었어! 그깟 번쩍이는 황금이 무엇이라고, 쌀가마니가 다 무엇이라고! 엽전 한 닢, 쌀 한 톨 이 무서운 지옥에 가져오지도 못할 것을... 나는 어찌하여 평생을 그리 독하고 모질게만 살았단 말인가! 아아, 원통하고 후회스럽다!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진만이라도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모든 재산을 헐벗은 자들에게 전부 나누어 줄 터인데!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오!'

    그러나 아무리 가슴을 치고 피눈물을 흘리며 뒤늦은 후회를 해본들, 자비 없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의 옥졸들이 다가와 불에 달군 거대한 쇠 집게로 거짓말과 악담을 일삼던 그의 혓바닥을 뽑아낼 뿐이었다. 길게 뽑혀 나온 혀 위로 날카로운 쟁기를 단 거대한 지옥의 소가 밭을 갈듯 지나가며 혀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앞으로 천 년의 길고 긴 세월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질 지옥의 참혹한 형벌은, 이제 막 그 끔찍한 첫 페이지를 열었을 뿐이었다.

    이토록 끔찍한 지옥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과 완전히 단절된, 평화롭고 고요한 명부전의 반대편에서는 이승의 찌든 때를 모두 씻어낸 막동이를 위한 눈부신 극락(極樂)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었다. 염라대왕의 자비로운 판결이 내려진 후, 어두웠던 저승의 하늘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오색찬란한 구름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눈부신 빛을 타고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은 선녀들이 황금빛 연꽃이 수놓아진 빛의 다리를 들고 내려왔다.

    "김막동, 너는 이승에서의 고단하고 험난했던 삶의 무게를 훌륭히 견뎌내고 선업을 쌓았으니, 이제 저 고통과 슬픔이 없는 극락정토(極樂淨土)로 가서 영원히 편히 쉬도록 하라. 이는 하늘이 네게 내리는 마땅한 보상이니라."

    염라대왕의 따뜻한 축복이 끝나기가 무섭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막동이가 평생을 걸치고 있던 낡고 헤지고 피 묻은 삼베옷이 허물벗겨지듯 스르르 흘러내리더니, 달빛을 머금은 듯 눈부시게 하얗고 부드러운 명주 도포로 변했다. 평생의 고된 머슴살이와 지게질로 곱사등이처럼 굽어 있던 허리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펴졌고, 거친 굳은살이 박이고 동상에 걸려 흉측하던 손발은 아기 피부처럼 매끄러워졌다. 쪼글쪼글 주름졌던 얼굴마저 마치 이십 대 청년 시절처럼 맑고 건강하게 되돌아가는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선녀들의 공손한 인도를 받아 막동이가 명부전 밖으로 첫걸음을 내디디자, 지옥의 시뻘건 불길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눈부신 은하수의 다리가 그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발밑으로는 별빛을 머금은 맑고 투명한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코끝을 스치는 산들바람에서는 이승의 그 어떤 꽃향기보다도 은은하고 달콤한 천상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났다. 막동이가 푹신한 구름다리를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그의 발자국이 닿는 곳마다 눈부신 황금빛 연꽃이 퐁퐁 피어오르며 그의 길을 장식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비롭고도 맑은 피리 소리와 구슬을 굴리는 듯한 가야금 소리가, 평생 상처받고 지쳐있던 그의 영혼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아... 세상에 어찌 이리도 몸이 새 깃털처럼 가볍고, 마음이 평안하단 말인가. 뼈를 깎는 근심도, 내일을 걱정하는 두려움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배고픔도, 살을 에는 추위도 없는 곳이라니... 혹여 이 모든 것이 내가 얼어 죽어가며 꾸고 있는 한낱 일장춘몽은 아니겠지.'

    아름다운 다리 끝에 당도하자,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들이 만발하고 따뜻한 봄바람이 영원히 부는 극락의 정원이 그를 맞이했다. 막동이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생전에 막동이가 자신의 목숨과 먹을 것을 나누어 구해주었던 수많은 생명들. 겨울 산에서 거두어 키웠던 늙은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달려왔고, 여름날 물웅덩이에서 건져주었던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황금빛 나비가 되어 그의 주변을 춤추듯 날아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길가에서 자신의 겉옷과 밥을 내어주었던 문둥병 환자가, 이제는 병마의 고통을 훌훌 털어낸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되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은 환한 미소로 막동이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승에서 아무도 모르게 묵묵히 흘린 착한 눈물과 베푼 따뜻한 사랑이, 수만 배의 거룩한 축복이 되어 막동이를 맞이하는 벅찬 순간이었다. 고통 없는 극락정토의 따뜻하고 눈부신 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막동이의 단단한 뒷모습은, 이승의 그 어느 호령하는 제왕보다도 평화롭고 거룩해 보였다.

    ※ 6: 환생의 문과 이승에 남겨진 자들을 위한 교훈

    저승에서의 시간은 이승의 바람결처럼, 때로는 찰나와 같이 때로는 영겁과 같이 덧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선인 막동이가 향기로운 극락정토에서 일체의 고통 없이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며 지친 영혼의 안식을 취하는 동안, 죄인 최 진사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지옥의 밑바닥에서 장장 천 년이라는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펄펄 끓는 가마솥 기름에 수만 번 튀겨지고, 날카로운 칼날이 솟아있는 검수산을 맨발로 오르내리며, 자신이 생전에 타인에게 지었던 무거운 죄업을 자신의 붉은 피와 살점으로 씻어내던 참혹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억겁의 시간도 끝은 있는 법.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극악한 죄인에게도, 성스러운 선인에게도 한 번은 다시 돌아와 새로운 생을 부여하는 법이었다. 마침내 두 영혼이 기나긴 저승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환생(還生)의 문이 열리는 날이 밝아왔다.

    저승의 하늘 위로 산맥만큼이나 거대한 수레바퀴 모양의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가 나타나, 천지를 뒤흔드는 웅장한 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빛줄기 중 하나로 들어가야 하는 환생의 문턱. 다시 염라대왕의 심판대 앞에 선 최 진사의 영혼은 오랜 지옥의 끔찍한 형벌로 인해 원래의 형체를 전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쇠약해지고 쪼그라들어, 한 줌의 재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죄인 최학수! 너는 끔찍한 지옥의 구덩이에서 장장 천 년이라는 억겁의 고통을 겪으며, 네가 이승에서 지은 극악무도한 죄를 몸으로 치르긴 하였다. 허나, 네가 이승에 남겨놓은 원한과 갚아야 할 남은 빚의 업보가 아직도 태산처럼 거대하게 솟아 있다. 이에 명부의 법도에 따라 너를 인간의 몸이 아닌 축생(畜生), 즉 짐승의 도에 내릴 것이니! 평생을 무거운 멍에를 멘 채 채찍을 맞으며, 남을 위해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여 네가 빼앗았던 그 빚을 고스란히 갚도록 하라!"

    환생의 문이 시뻘겋게 열리며 최 진사의 가엾은 영혼이 쏜살같이 빨려 들어간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생전에 고리대금을 핑계로 가장 가혹하게 수탈하고 길거리로 내쫓았던 바로 그 마을의 어느 가난한 소작농의 낡은 외양간이었다. "음매에에-" 하는 가늘고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갓 태어난 누렁 송아지 한 마리. 송아지로 환생한 최 진사는 지푸라기가 깔린 차갑고 냄새나는 흙바닥에서, 앙상하게 마른 어미 소 밑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

    '아... 결국 내가 말 못 하는 짐승이 되고 말았구나... 가죽이 벗겨지는 지옥을 견뎠거늘... 잠깐, 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저 늙수그레한 주인의 얼굴은... 내가 생전에 단돈 열 냥 빚을 대신해 문전옥답을 다 빼앗고 한겨울에 내쫓았던 그 불쌍한 박 서방의 손자가 아니던가! 오호통재라, 하늘의 이치가 이토록 무섭단 말인가!'

    소로 환생한 최 진사는 하늘의 형벌로 인해 자신의 전생을 온전히 기억하는 무서운 저주를 안은 채 평생을 무거운 쟁기를 끌어야 했다. 어깨의 가죽이 다 벗겨져 피가 흐르도록 돌밭을 갈고, 닳아빠진 발굽에서 피가 솟구치도록 무거운 나뭇짐을 날랐으며, 행여 힘에 부쳐 걸음을 멈출라치면 주인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매서운 채찍에 맞을 때마다 전생의 업보를 떠올리며 커다란 소의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은 저 소가 유독 사람처럼 슬프게 운다며 가엾어 혀를 찼지만, 그것이 과거 자신들의 피눈물을 쥐어짜며 떵떵거리던 악덕 지주 최 진사의 업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이승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맑은 향기가 가득한 극락정토에서 오랜 시간 영혼을 수정처럼 맑게 다듬고 수양한 막동이는, 찬란한 황금빛이 감도는 인간의 길로 환생하는 문턱에 당당히 섰다.

    "김막동, 너는 지난 생에서 크나큰 덕을 쌓고 숭고한 희생을 치러 닫혀있던 하늘의 문을 감동시켰다. 이제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되, 그 맑고 거룩한 성품으로 세상의 어두운 곳을 환히 밝히고 불쌍한 백성들을 구휼하는 큰 그릇이 되거라! 이는 하늘이 네게 내리는 숭고한 임무이자 크나큰 축복이니라!"

    오색찬란한 환생의 빛에 휩싸인 막동이가 맑고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눈을 뜬 곳은, 한양 도성 한가운데 자리한 아흔아홉 칸 기와집, 뼈대 깊고 덕망 높기로 조선 팔도에 소문난 어느 정승 판서의 안방이었다. 오랫동안 대를 이을 아이가 없어 명산대천을 돌며 기도로 지새우던 부부에게, 기적처럼 하늘이 점지해 준 천금 같은 옥동자로 태어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방안에 기이하고 향기로운 연꽃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전해지는 이 아이는, 훌륭하고 자애로운 부모 밑에서 성현의 글을 배우고 자라며 어릴 적부터 그 총명함과 심성이 남달랐다. 길가의 거지에게 자신의 비단옷을 벗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니 주변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훗날 장성하여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 전국 팔도를 누비며 탐관오리들을 벌벌 떨게 만든 그는 훗날 삼정승의 반열에 오르는 큰 벼슬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탐하기는커녕, 평생토록 자신의 녹봉을 헐어 빈민을 구제하고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백성들은 그를 일컬어 살아있는 보살, 이승에 내려온 부처라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의 가문은 대대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며 조선 팔도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이름을 떨쳤다. 지난 생에서 이름조차 변변치 않은 천한 머슴으로 살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뿌렸던 보이지 않는 선행과 사랑의 씨앗들이,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그늘을 내어주는 큰 인물로 화려하게 다시 피어난 것이었다.

    결국, 하늘이 쳐놓은 인과응보의 그물은 얼핏 보기에 엉성하고 성긴 듯하여도 억울한 죄인을 놓치거나 악인을 비켜 가는 법이 결코 없었다. 이승에서 오만방자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짓밟았던 자는 말 못 하는 미천한 짐승이 되어 채찍을 맞으며 뼈저린 후회 속에서 빚을 갚고 있었고, 비록 가진 것 하나 없이 태어났어도 맑은 마음을 지키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던 자는 만인의 존경을 받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세상을 널리 구하고 있었다. 한밤중 문풍지를 때리는 저승의 차가운 바람결에 실려 온 염라대왕의 엄중한 판결은, 먼 훗날 환생의 삶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선과 악의 뿌리 깊은 결과를 우리 인간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등 뒤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검은 도포 자락의 저승사자들이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명부전의 업경대에 빠짐없이 새겨넣기 위해 두 눈을 번뜩이며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염라야담>, 최 진사와 막동이의 엇갈린 저승길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습니까? 살아생전 베푼 작은 온정이 죽음 너머의 길을 닦는 황금빛 노잣돈이 된다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 시간에도 더 오싹하고 재미있는 기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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