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이 전한 삶의 본질, 기억을 지우는 것이 자비라니? (출처: 청구야담)
태그 (20개)
#염라대왕, #저승이야기, #조선시대전설, #청구야담, #환생이야기, #저승사자, #윤회, #한국전통설화, #조선야담, #죽음이야기, #삶과죽음, #전생, #망각의강, #시니어콘텐츠, #인생교훈, #감동이야기, #옛날이야기, #한국민담, #오디오드라마, #철학적이야기
후킹멘트 (250자 내외)
우리는 왜 전생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올 때 마시는 망각의 물, 그 뒤에 숨겨진 염라대왕의 깊은 뜻을 아십니까? 조선시대 한 선비가 잠시 죽었다 깨어나 저승을 다녀온 뒤 전한 놀라운 이야기. 염라대왕은 왜 모든 영혼에게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게 된 선비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청구야담에 전해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긴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후기,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선비 이성재. 그는 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납니다. 깨어난 그가 전한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저승에 다녀왔으며, 염라대왕을 직접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망각의 강을 건너는 영혼들을 보았고, 염라대왕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왜 전생의 기억을 모두 지우십니까?" 염라대왕의 대답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로 가득했습니다.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이유, 그 속에 담긴 자비와 깨달음.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 선비의 급작스러운 죽음
조선 정조 임금 시절의 일입니다. 한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주 고을에 이성재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이 마흔다섯에 가솔들과 단란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양반이었습니다. 벼슬은 작은 현감을 지냈을 뿐이었지만, 청렴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성재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 한 딸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스물셋으로 벌써 장가를 들었고, 작은아들은 열여덟으로 과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열다섯 된 딸은 예쁘고 착해 집안의 보배였습니다. 이성재는 가족들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침이면 사당에 분향하고, 낮에는 농사일을 돌보며, 저녁에는 아들들과 글을 논했습니다.
그해 가을, 추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성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들판을 거닐며 벼가 익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올해는 풍년이 들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추석에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조상께 차례를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 갑자기 몸이 이상해졌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나이가 들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세는 심해졌습니다. 열이 치솟고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여보, 몸이 좋지 않으니 잠시 누워 있어야겠소."
이성재는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습니다.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이를 어쩌나! 의원을 불러야겠어요!"
아내가 다급히 하인을 보내 마을의 의원을 불렀습니다. 의원이 달려와 맥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이상합니다. 맥이 매우 불안정하고 약합니다. 급한 열병인 것 같은데,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의원은 약을 조제해 주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성재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그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고,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가족들은 밤새 간호했지만 그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성재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숨은 겨우 쉬고 있었지만 맥박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인사불성입니다.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아내와 자식들은 통곡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가장이 갑자기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아들은 급히 수의를 준비했고, 작은아들은 상여를 알아보았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버지, 깨어나세요. 제발 눈을 떠주세요."
하지만 이성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의원이 다시 맥을 짚어보더니 한숨을 쉬었습니다.
"거의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가족들은 방 안에 둘러앉아 마지막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촛불이 흔들리고 밤은 깊어갔습니다. 이성재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입술은 파래졌습니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사흘째 밤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지쳐서 졸고 있었고, 방 안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습니다. 바로 그때, 이성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길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육신을 떠나 어두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그는 막연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내와 자식들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야 한다니. 영혼이 된 이성재는 멀어져가는 이승을 바라보며 한없이 슬펐습니다.
※ 저승길에 오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성재는 낯선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어두운 길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살던 집이 아득히 멀어져 보였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정신이 드셨습니까?"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키가 크고 얼굴이 창백한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모습이었는데, 어딘가 인간 같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저승사자요. 당신을 모시러 왔소. 함께 가시죠."
저승사자라는 말에 이성재는 온몸이 오싹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은 죽은 것이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저승사자님, 제가 정말 죽은 것입니까? 아직 마흔다섯밖에 안 되었습니다. 자식들도 아직 어리고, 늙은 어머니도 계십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저승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오. 명부에 적힌 대로 움직일 뿐이오. 염라대왕께서 당신을 부르셨으니 가봐야 알 일이오."
"하지만..."
"말이 많으면 고생만 더 하오. 조용히 따라오시오."
저승사자의 단호한 말에 이성재는 할 수 없이 따라갔습니다. 안개 낀 길을 한참 걸어가자 점점 주변의 풍경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한 산과 들판이었지만, 갈수록 이상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순간 커다란 강이 나타났습니다. 물이 시커멓고 흐름이 빨랐습니다. 강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아니, 사람이라기보다는 영혼들이었습니다. 희미하게 투명한 모습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저것이 삼도천이오. 모든 망자가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오."
저승사자의 설명에 이성재는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강 위에는 낡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영혼들이 하나씩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어떤 영혼은 쉽게 건넜지만, 어떤 영혼은 다리 위에서 비틀거리거나 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왜 어떤 이들은 쉽게 건너고 어떤 이들은 힘들어합니까?"
"생전의 업보에 따라 다르오. 착하게 산 사람은 쉽게 건너지만,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고생을 하게 되어 있소."
이성재는 긴장하며 다리를 건넜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평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강을 건너자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습니다. 그 위에 "명부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문을 지키는 귀신들이 섬뜩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마당에는 수백 명의 영혼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모두 두려운 표정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떨고 있었고, 어떤 이는 후회하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큰 전각이 염라대왕께서 계신 곳이오. 당신 차례가 되면 들어가시오."
저승사자가 가리킨 곳에는 웅장한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지붕은 검은색이었고, 기둥에는 용과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건물 전체에서 엄숙하고 두려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자 안에서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양주 이성재, 들어오시오!"
이성재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은 생각보다 넓고 어두웠습니다. 수많은 촛불이 켜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음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양쪽에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관리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소머리를 한 자, 말머리를 한 자, 온갖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거대한 옥좌가 있었고, 그 위에 염라대왕이 앉아 계셨습니다. 붉은 수염에 위엄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두 눈은 번쩍이며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이성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어떤 거짓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성재는 두려움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염라대왕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 염라대왕 앞에 서다
"고개를 들어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위엄 있으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였습니다. 이성재는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눈과 마주치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안정감도 느껴졌습니다. 그 눈빛에는 준엄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자비도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염라대왕 옆에 앉은 관리 하나가 커다란 책을 펼쳤습니다. 생사부였습니다. 모든 인간의 생전 행적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관리가 책장을 넘기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양주 이성재. 나이 마흔다섯. 벼슬은 정육품 현감을 지냈고, 청렴하게 일했음.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걷지 않았고, 억울한 송사를 공정하게 처리했음.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자식들을 올바르게 가르쳤음."
관리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성재의 일생이 낱낱이 읽혀지는 것을 들으며 그는 신기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이 잊고 있던 작은 선행들도 모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굶주린 거지에게 밥을 준 일, 다친 새를 치료해준 일, 이웃집 농사를 도와준 일까지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친구와 다툰 일, 화가 나서 하인을 심하게 꾸짖은 일, 어머니께 말대답한 일들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이성재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한참을 읽던 관리가 책을 덮고 염라대왕께 고했습니다.
"대왕님, 이 자의 선행과 악행을 계산하니 선이 훨씬 많습니다. 벼슬을 하면서도 청렴했고, 가족을 돌보며 이웃을 도왔습니다. 큰 죄를 지은 바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옥에 갈 이유는 없구나. 하지만 이성재, 너는 아직 명부에 적힌 수명이 남아 있다. 본래 예순다섯까지 살아야 하는데 실수로 너를 불러왔구나."
이성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렇다. 너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염라대왕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저승사자가 이성재를 일으켰습니다.
"따라오너라."
염라대왕이 옥좌에서 일어나 전각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성재는 황급히 뒤를 따랐습니다. 명부전 뒤편으로 가자 넓은 광장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심판을 마치고 환생을 기다리는 영혼들이다. 저들은 곧 다시 이승으로 태어날 것이다."
염라대왕의 설명에 이성재는 영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기대에 찬 얼굴이었고, 어떤 이는 불안해 보였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은 맑았지만 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강가에는 노파 하나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찻잔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것이 망각의 강이다. 그리고 저 노파는 맹파할멈이라 하여 망각의 차를 내어주는 이다."
이성재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영혼들이 하나씩 맹파할멸 앞으로 다가가 찻잔을 받아 마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를 마신 영혼들은 잠시 후 눈빛이 텅 비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환생의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 차를 마시면 전생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부모가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염라대왕의 말에 이성재는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전생의 기억을 지워야 하는 것일까? 기억을 간직한 채 태어나면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성재는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대왕님, 감히 여쭙겠습니다. 왜 모든 영혼에게 전생의 기억을 지우십니까?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면 전생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염라대왕이 이성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좋은 질문이다, 이성재. 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 너는 그것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전하여라."
이성재는 긴장하며 염라대왕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지혜가 담긴 대답이었습니다.
※ 망각의 강을 건너는 영혼들
염라대왕은 이성재를 데리고 망각의 강 근처로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곳에서 환생을 기다리는 영혼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영혼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것을 보아라."
염라대왕이 한 영혼을 가리켰습니다. 중년 남자의 모습을 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맹파할멈 앞에 서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는 기억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했던 아내와 자식들을, 함께했던 시간들을 잊고 싶지 않습니다."
영혼이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맹파할멈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은 규칙이오. 모든 영혼은 이 차를 마시고 가야 하오."
"제발... 제발 기억만은 남겨주십시오. 아내가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지, 자식들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만이라도..."
영혼의 목소리는 절박했습니다. 이성재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잊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하지만 맹파할멈은 단호했습니다. 영혼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찻잔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셨습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아까까지의 슬픔도, 애절함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텅 빈 얼굴로 그는 환생의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이성재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이것이 자비라는 것을 너는 아직 모른다."
"자비라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잊게 만드는 것이 어찌 자비입니까?"
이성재가 반문하자 염라대왕은 다른 영혼을 가리켰습니다. 노인의 모습을 한 영혼이었습니다.
"저 영혼을 보아라. 저 자는 전생에 거지로 살았다. 평생을 굶주림에 시달리며 추위에 떨었고, 사람들에게 천대받으며 살았다. 이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만약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성재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생의 고통과 굴욕을 모두 기억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아마도... 전생의 고통이 새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입니다."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염라대왕은 계속 설명했습니다.
"저 영혼이 다음 생에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다고 해보자.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할 것이다. '전생의 나는 이렇게 비참했는데, 지금의 나는 이렇게 풍족하구나.' 그러면 그는 현재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겠느냐? 아니다. 늘 전생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살게 될 것이다."
이성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염라대왕의 말에 일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생에 좋은 삶을 산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염라대왕은 슬픈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다, 이성재. 오히려 더 불행할 것이다. 다시 한 영혼을 보여주겠다."
염라대왕이 가리킨 곳에는 젊은 여인의 영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저 여인은 전생에 왕비였다.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평범한 농부의 딸로 태어날 것이다. 만약 그녀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성재는 상상해 보았습니다. 왕비였던 기억을 가진 채 농부의 딸로 사는 삶... 그것은 끔찍한 고통일 것입니다.
"평생을 과거에 집착하며 살 것입니다.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불만에 가득 차 살아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깊어졌습니다.
"전생의 기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인간은 과거에 매여 살면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망각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선물이다. 텅 빈 상태로 태어나기에,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성재는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망각의 강은 잔인한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영혼이 차를 마시고 환생의 문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며, 이성재는 삶의 신비를 조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 염라대왕의 가르침
염라대왕은 이성재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명부전 뒤편의 작은 정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이승의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서글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재, 이제 너에게 망각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겠다."
염라대왕이 정원의 돌의자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이성재도 공손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내가 수천 년 동안 이곳에서 영혼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는 것이다."
염라대왕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속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첫째, 전생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미 다른 모습으로 환생했거나 아직 저승에 있을 것이다. 그 그리움과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성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신이 만약 전생의 아내를 기억한다면, 새로운 생에서 만난 아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요? 늘 전생의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까요?
"둘째, 전생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배신당한 기억, 모욕당한 기억, 상처받은 기억들... 그 원한을 가지고 새 삶을 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평생을 복수심에 불타며 살게 될 것이다."
이성재는 전율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은 용서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전생의 원수를 기억한다면 새 삶도 원한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셋째, 전생의 죄책감을 기억할 것이다. 누구를 해친 일, 잘못한 일들... 그것을 평생 짊어지고 산다면 얼마나 무거운 짐이겠느냐? 새 삶은 또다시 속죄의 삶이 되어버릴 것이다."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깊은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넷째, 인간은 끊임없이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것이다. 전생에 더 잘났다면 현재를 비관할 것이고, 전생이 더 못했다면 오만해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
이성재는 점점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망각은 형벌이 아니라 해방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계속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만약 인간이 환생을 확실히 안다면, 그리고 전생을 기억한다면, 지금 이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어차피 다시 태어나는데 뭐' 하며 함부로 살게 될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면 삶의 소중함도 없다."
이성재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인간이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한하기에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이성재야, 망각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깨끗한 백지 상태로 태어나기에 인간은 새로운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전생에 어떤 사람이었든 상관없이, 이번 생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평함이 아니겠느냐?"
이성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염라대왕이 모든 영혼에게 망각의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무자비함이 아니라 깊은 자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이제 알겠습니다. 잊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잘 깨달았구나. 이제 너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겠다. 하지만 명심하여라. 너는 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 대왕님.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명심하여라. 망각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너는 앞으로 이곳을 다녀온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네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만 바라보지도 말고, 바로 지금을 충실히 살아라.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이성재는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축복했습니다. 그 순간 이성재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의 풍경이 멀어지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 이승으로 돌아온 선비
"여보! 여보! 숨을 쉬셔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성재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희미하게 천장이 보였고, 촛불의 흔들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방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주위에 둘러서서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 아버지! 깨어나셨어요!"
큰아들이 기쁨에 겨워 소리쳤습니다. 작은아들과 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이성재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정말... 정말 살아나셨어요.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의원이 다급히 맥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분명 맥이 끊어졌었는데... 이것은 기적입니다. 정말 기적이에요!"
이성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정신은 또렷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승에서 본 모든 것, 염라대왕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물... 물 좀..."
아내가 급히 물을 떠왔습니다. 이성재는 물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익숙한 집, 사랑하는 가족들... 얼마나 소중한 것들입니까. 저승을 다녀온 후 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사흘간 앓아누웠다가 깨어난 후, 이성재는 서서히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보름쯤 지나자 거의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이성재와는 뭔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그의 태도였습니다. 이성재는 하루하루를 마치 마지막 날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바라보며 감사했습니다. 밥 한 끼도 소중히 여겼고, 마당의 꽃 한 송이도 오래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했습니다.
"여보, 무슨 일 있었어요? 병을 앓고 나서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 나는 저승을 다녀왔소.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소."
그리고 이성재는 저승에서의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삼도천을 건넌 일, 염라대왕을 만난 일, 망각의 강을 본 일, 그리고 염라대왕에게서 들은 가르침까지... 가족들은 숨죽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소.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날 이후 이성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고민을 이야기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더욱 따뜻하게 대했고, 아내에게는 매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아버지, 요즘 정말 달라지셨어요. 전에도 좋은 분이셨지만 이제는 뭔가... 더 평화로워 보이세요."
큰아들의 말에 이성재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내가 집착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지나간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구나."
이성재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저승에서 본 것들, 염라대왕의 가르침, 망각의 의미... 그 글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망각의 물을 마시고 평화롭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죽음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성재는 그 후 스무 해를 더 살았습니다. 예순다섯이 되던 해 봄, 그는 평화롭게 잠들 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직전 가족들을 불러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잊는다는 것은 자비다. 나는 이제 망각의 물을 마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 생에서 너희와 함께한 기억은 잊게 되겠지만,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다음 생을 온전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가족들은 울었지만, 그 눈물 속에는 평화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성재가 남긴 가르침 덕분에 그들은 죽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이성재의 이야기는 『청구야담』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망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집착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이성재가 저승에서 배워온 가장 큰 지혜였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염라대왕이 모든 영혼에게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이유, 참으로 깊은 지혜가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망각은 형벌이 아니라 자비였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이었지요.
우리도 때로는 과거의 상처나 후회, 집착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재 선비의 이야기가 말해주듯,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다시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사후세계 입국심사, 염라대왕의 질문 3가지"라는 제목으로 『기화집』에 실린 또 다른 흥미진진한 저승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염라대왕이 모든 망자에게 묻는다는 세 가지 질문,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