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이 토로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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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내외)
"천하의 모든 죄를 심판하는 염라대왕도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고독이 있었다. 수천 년간 지옥을 다스리며 무수한 영혼들의 죄를 판단해온 그가 어느 날 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 누구와도 진심을 나눌 수 없는 절대 권력자의 쓸쓸한 고백을 들어보시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염라대왕의 숨겨진 이야기. 지옥의 최고 통치자로서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하는 염라대왕이지만, 그 역시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존재였습니다. 오늘은 그가 혼자만의 시간에 털어놓는 진솔한 독백을 통해 권력자의 숨겨진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시니어 여러분의 인생 경험과 공감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이야기로 준비했습니다.
※ 염라대왕의 밤 - 고독한 왕좌
깊고 어두운 지옥의 밤이 찾아왔다. 거대한 명부전 안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고, 황금으로 장식된 왕좌에는 염라대왕이 홀로 앉아 있다. 평소 위엄 넘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친 어깨와 깊은 한숨만이 그를 감싸고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자리에서 그는 오늘도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또 하루가 지나갔구나." 염라대왕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어떤 이는 선행을 쌓아 극락으로 향했고, 어떤 이는 악업에 물들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모든 것을 내가 판단했다. 나 혼자서 말이다.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마다 나는 홀로 서 있었고, 그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대며 이마를 손으로 받쳤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자리, 이 권력, 이 외로움.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끝없는 고독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 정점은 곧 가장 외로운 곳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한다. 당연한 일이지. 나는 그들의 생사를 가르고, 천당과 지옥을 나누는 자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는 모른다. 이 높은 자리가 얼마나 차가운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나를 우러러보지만,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 서보지 않은 자가 어찌 이 고독을 알겠는가."
명부전 밖에서는 저승사자들이 새로 도착한 영혼들을 데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 다시 시작될 심판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똑같은 일의 반복. 죄를 묻고, 벌을 정하고, 보내는 일. 그 과정에서 그는 항상 혼자였다. 수많은 부하들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홀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가 잘못 판단하면 어떻게 하지?" 염라대왕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내 결정으로 영혼들의 운명이 좌우되는데, 과연 내가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걸까? 이런 의심이 드는 것도 혼자이고, 이 의심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실수할 수 없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견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는 왕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저 멀리 지옥의 여러 층이 보인다. 각각 다른 죄를 지은 영혼들이 벌을 받고 있는 곳들이다. 모든 것이 그의 명령에 따라 돌아간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권력이 오히려 그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었다. 권력이 클수록 외로움도 깊어진다는 것을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권력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주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은 가져다주지 않는다. 진정한 친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말이다. 두려움 받는 것과 사랑받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인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 같다."
밤이 깊어갈수록 명부전은 더욱 조용해진다. 평소 북적이던 관리들도, 저승사자들도 모두 자리를 비웠다. 오직 염라대왕만이 이 광활한 공간에 홀로 남아 있다. 이 고독은 그가 이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아마도 이 자리를 내려놓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이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면 영원히 이 고독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내일이면 또 다시 그 위엄 있는 가면을 써야 한다."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표정으로,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심판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외로운 한 존재일 뿐이다. 염라대왕이 아닌, 그저 고독한 영혼 하나일 뿐이다."
※ 기억 속의 인간 시절 - 잃어버린 따뜻함
염라대왕은 왕좌로 돌아가 앉으며 먼 과거를 떠올렸다. 아득히 먼 옛날, 그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기억들이 지금 이 고독한 밤에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기도 하고, 동시에 현재의 차가운 현실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참 좋았지..." 그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이 있었고, 아이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내 무릎에 앉곤 했다. 그 따뜻함이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내의 손길 하나하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잃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당시 그는 한 마을의 현명한 촌장이었다. 백성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분쟁을 조정하며,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권력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절대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가까웠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칭찬도 받으며 살아갔다.
"그때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했지만,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판결을 내린 후에도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내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고쳐주기도 했다. 실수를 해도 괜찮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해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 더욱 가까이 다가와 주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는 특히 아내와의 추억을 자주 떠올렸다. 저녁마다 함께 앉아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던 시간들. 그때 그녀는 항상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해주었다. 그런 대화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여보라는 목소리가 그립다." 염라대왕은 쓸쓸하게 웃었다. "나를 그냥 한 사람의 남편으로 보던 그 눈빛이 그립고, 내가 잘못했을 때 버럭 화를 내던 그 모습도 그립다. 지금은... 지금은 아무도 나에게 화를 낼 수 없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내가 잘못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당신이 틀렸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솔직함이, 그런 진실함이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그립다."
아이들과의 기억도 따뜻했다. 들에서 뛰어놀며 연을 날리고, 저녁에는 무릎에 앉힌 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시간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아버지"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들에게는 그가 어떤 지위에 있든 상관없이 그저 사랑하는 아버지였을 뿐이다.
"아이들은 참 순수했다. 내가 촌장이든 뭐든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의 아버지로만 봐주었다. 배가 고프면 품에 안기고, 무서우면 내 뒤에 숨고, 기쁘면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지금에 와서야 절절히 느끼고 있다. 권력도, 지위도, 명예도 그런 순수한 사랑 하나만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염라대왕이 된 것도 결국 그들 때문이었다." 그는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마을에 큰 재해가 닥쳤을 때, 나는 하늘에 기도했다. 내 목숨을 내어줄 테니 백성들만은 살려달라고. 그리고 그 기도는 받아들여졌다. 대신 나는 이곳으로 와야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고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의 희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시련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 그 희생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했지만, 그 대가로 모든 사랑을 잃어야 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이 결국 그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길이 되었다.
"가끔은 꿈에서라도 그들을 만나고 싶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꿈조차 꿀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인간의 감정, 인간의 욕망, 인간의 따뜻함... 모든 것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마치 두꺼운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모든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그런 답답함이 나를 괴롭힌다."
※ 권력의 무게 - 절대 고독의 시작
염라대왕은 자신의 왕좌를 바라보며 권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가 그에게 가져다준 것과 앗아간 것들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인 고독과 함께 왔고, 그 고독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져만 갔다. 권력이 주는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차가운 현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자리에 앉았을 때는 두려웠다."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수많은 영혼들의 운명을 내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니, 그 책임감에 짓눌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서운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익숙해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영혼 한 영혼의 운명을 결정할 때마다 밤잠을 설쳤는데, 이제는... 이제는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변화가 때로는 나 자신조차 두렵게 만든다."
권력에 익숙해질수록 그는 점점 다른 존재들과 멀어져갔다. 처음에는 저승사자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판관들과도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그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상대도 사라져버렸다.
"권력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권력이 나를 가지고 있더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가 권력의 본질인 것 같다. 권력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염라대왕이 되기 전에는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가 불가능하다. 모든 관계가 일방적이 되어버렸다.
"모든 관계가 상하관계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친근하게 대하려 해도, 상대방은 항상 나를 염라대왕으로만 본다. 그저 한 사람의 친구로는 봐주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해가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해할수록 더욱 외로워진다. 벽을 허물고 싶지만 그 벽이 권력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을 때의 절망감이란..."
권력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고독은 선택의 무게였다. 모든 결정이 그의 손에 달려 있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상의할 상대도 없고, 책임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 수많은 부하들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홀로 서야 했다.
"매일 수백, 수천 개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영혼은 어디로 보낼 것인가, 저 영혼은 어떤 벌을 줄 것인가.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결정들이다. 하지만 그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최종 결정은 어차피 내가 내려야 하고, 그 책임도 내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언을 구한다 해도 결국 내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하니, 그 조언마저도 의미가 없어진다."
때로는 정말 어려운 사건들이 올라온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복잡한 경우들.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된 영혼들, 선의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악한 일을 저지른 영혼들. 그런 때마다 그는 혼자서 밤을 새워가며 고민해야 했다.
"가장 힘든 것은 내 결정이 틀렸을 때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중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서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런 때의 자책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책감마저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위로받을 곳도, 용서받을 곳도 없다. 완벽해야 한다는 것,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짐인지 아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권력은 그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약함을 보일 수 없게 만들었다. 눈물을 흘릴 수도, 두려움을 표현할 수도, 불안함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항상 확신에 차 있고, 흔들림이 없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것이 권력자의 의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꿰뚫어본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것이 많다. 헷갈리는 것도 많고,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많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 뿐이다. 의심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감춰야 한다. 그런 연기를 수천 년간 계속해오고 있다."
절대 권력자의 고독은 일반적인 외로움과는 질이 달랐다. 그것은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이었다. 아무도 그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역시 자신의 처지를 완전히 이해시킬 수 없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권력을 원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이 주는 화려함만 보고, 그 뒤에 숨어있는 고독은 보지 못한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나는 과연 이 길을 선택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답을 내릴 용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답이 무엇이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 영혼들의 하소연 - 들어줄 수 없는 마음
새벽이 다가오면서 명부전에는 또 다른 정적이 흘렀다. 염라대왕은 하루 종일 자신 앞에 섰던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렸다.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각자 다른 간절함으로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법과 원칙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공정한 심판을 내려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그는 늘 갈등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내게 호소했던가." 염라대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해를 끼쳤다고 했다. 그들의 눈에 담긴 간절함, 목소리에 실린 절망감...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사정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봐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심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마지막으로 심판받은 한 영혼이 그의 마음에 깊이 남아있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값을 마련하려다 남의 물건을 훔친 젊은 남자였다. 그는 염라대왕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 젊은이의 눈물이 진짜였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의 효심도, 절망감도 모두 진실이었다. 하지만 법은 동기가 아니라 행위를 판단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해도 잘못된 방법으로 한 일은 죄가 된다. 나는 그를 지옥으로 보내야 했다. 그것이 공정한 판단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괴로움이 배어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염라대왕은 자신의 인간성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음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주고 싶지만, 지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 만약 예외를 허용한다면 지옥의 체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너무 냉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들도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였을 텐데... 그들이 살아있을 때도 나름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사정을 다 고려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심판이 아니라 동정이 되어버린다."
어떤 영혼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누명을 쓰고 죽었다거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한 일인데 잘못 판단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럴 때마다 염라대왕은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지만, 동시에 모든 영혼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실을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어떤 이들은 진짜로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 구분을 해내는 것이 내 역할이지만, 때로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때의 부담감이란... 한 영혼의 영원한 운명이 내 판단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또한 그는 영혼들이 보내는 원망의 시선도 견뎌야 했다. 자신의 판결에 불복하며 저주의 말을 퍼붓는 영혼들,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끌려가는 영혼들. 그들의 원망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이 나를 원망하는 것도 이해한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에게 고마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영혼들에게는 내가 그들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들이 한 행위의 결과를 알려줄 뿐이다. 그 행위를 선택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너무 경직된 것은 아닌지, 좀 더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하지만 그런 의심마저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염라대왕의 숙명이었다.
※ 동반자에 대한 그리움 - 진심을 나눌 상대
밤이 더욱 깊어지자 염라대왕의 고독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그리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때로는 약한 모습도 보일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
"옛날 인간이었을 때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그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로 허물없이 지내며, 고민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화해하기도 하면서 진정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런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부하들이 있다. 저승사자들, 판관들, 옥졸들... 모두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중 누구도 그와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고, 그의 눈치를 보며 행동한다.
"부하들과는 업무적인 대화만 할 뿐이다. 그들은 항상 '예, 염라대왕님', '알겠습니다, 염라대왕님'이라고만 대답한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자도 없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자도 없다. 모든 대화가 일방적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단지 내 비위를 맞추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가끔 그는 부하들과 좀 더 인간적인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보거나,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경직된 모습으로 형식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친근하게 대하려 해도 그들은 벽을 허물지 않는다. 아니, 허물 수 없는 것이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위계가 있고, 그 위계가 진정한 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권력이 만들어낸 거리감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지 매일 느끼고 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가 그리웠다. 때로는 확신이 서지 않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자신이 한 결정이 옳았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었을 때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내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 대화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고,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상대가 없다. 모든 고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고, 모든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동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염라대왕과 같은 지위에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그뿐이다. 절대적인 권력자는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
"가끔은 내가 판단을 잘못했을 때 솔직하게 지적해줄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결정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때로는 다른 방법을 제안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용기를 가진 자가 아무도 없다."
또한 그는 자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상대도 그리워했다. 좋은 결정을 내렸을 때, 공정한 심판을 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때, 그런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 기쁨이 배가될 텐데. 하지만 지금은 모든 감정을 혼자서 소화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아무리 큰 권력을 가져도, 결국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존재다. 나 역시 그런 기본적인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욕구가 더욱 간절하다."
혹시라도 미래에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영원히 혼자일 것이다. 이 고독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고, 이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의 대가이고, 내가 져야 할 운명이다."
※ 새벽의 다짐 - 고독을 받아들이는 지혜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염라대왕은 긴 밤의 사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그는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 고독이 그의 운명이라면, 그것을 원망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창밖으로 스며드는 새벽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그 모든 생각들이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밤의 고뇌와 한탄이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솔직한 감정의 토로를 통해 그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결국은 인간적인 감정과 욕구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때로는 약할 수 있고, 때로는 외로울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감정에 휩쓸려서 내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나를 믿고 의지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꿋꿋이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는 자신의 고독이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적인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해야 하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고독을 가져온다는 것을.
"내 고독은 공정함의 대가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면, 그것이 내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개인적인 감정이 공적인 판단을 흐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고독과 외로움을 경험해본 자만이 진정으로 외로운 영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의 무게를 져본 자만이 권력자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내가 겪는 이 고통들이 결국은 나를 더 지혜롭게 만들고, 더 깊이 있는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법조문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내 고독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새벽이 되면서 그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의 약함과 고뇌를 뒤로 하고, 다시 위엄 있는 염라대왕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조금 더 지혜롭게, 조금 더 인간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도 많은 영혼들이 내 앞에 설 것이다. 그들 각자의 사연과 아픔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마음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겪은 고독과 아픔이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부하들과의 관계에서도 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비록 진정한 친구 관계는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좀 더 인간적인 관계는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권력자라고 해서 반드시 차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그 한계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해보겠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고독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고독 속에서도 지혜를 기르고,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기로 했다.
"고독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혼자 견뎌내는 힘, 혼자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능력, 그런 것들을 기를 수 있다면 이 고독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해가 떠오르면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염라대왕은 다시 위엄 있는 모습으로 왕좌에 앉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밤의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그는 고독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얻었고, 그 지혜로 더 나은 통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염라대왕의 밤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 누구보다 외로웠던 한 존재의 고백을 들어보셨습니다. 때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가장 외로운 법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혹시 이런 고독의 순간들이 있지 않으셨나요? 염라대왕처럼 그 고독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조선시대 천예록에 전해지는 '죽은 이를 살리려 한 무당'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