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 고민을 풀어준 재판 , 죽어서도 판결을 내린 선비 (출처: 계서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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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조선 팔도 최고의 명판관으로 이름난 조사경 선비. 그가 갑자기 병을 얻어 저승에 불려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염라대왕이 재판은커녕, "제발 내 고민 좀 해결해 주시오!"라며 선비를 극진히 모십니다. 과연 저승을 혼란에 빠뜨린 이 기막힌 사건은 무엇이며, 선비는 어떤 판결로 염라대왕의 시름을 덜어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계서야담》에 전해 내려오는 기묘한 이야기. 청주의 현자, 조사경 선비가 저승에 가다! 염라대왕이 피(천륜)와 약속(신의)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조사경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지혜 하나로 저승의 법도를 바로잡고, 염라대왕의 귀빈이 되어 수명까지 연장하고 돌아온 한 선비의 놀라운 일화를 만나보시죠.
※ 청주 최고의 현자 조사경
조선 숙종조, 충청도 청주 땅에 조사경(趙司經)이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벼슬이 높지는 않았으나, 그 학문이 깊고 무엇보다 사리(事理)에 대한 판단이 해처럼 맑아, '청주의 현자(賢者)'라 불렸다. 그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고을 사또도 해결하지 못하는 송사(訟事)나, 형제간에 피 터지게 Gss는 재산 다툼이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조사경 선비를 찾아와 그 판단을 구했다. 그가 한 번 서류를 들여다보고 판결을 내리면, 억울했던 사람은 속이 다 시원해져 울음을 터뜨렸고, 욕심을 부리던 자는 제 S가 드러나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승의 '솔로몬'과도 같은 이였다. "선비님! 제발... 제발 이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선비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제가... 제가 깨끗이 포기하겠나이다." 그의 사랑채는 언제나 백성들의 하소연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 조사경 선비가, 예순의 나이를 갓 넘긴 어느 가을, 그만 원인 모를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기침인가 했으나, 이내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의원들이 청주목(牧)에서부터 한양까지 불려와 온갖 진귀한 약재를 썼으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의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맥이... 너무 미약합니다. 하늘의 뜻이니, 이만...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가족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대성통곡을 했다. 평생을 남의 억울함만 풀어주던 어진 가장이, 정작 자신의 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조사경 선비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말고, 네 S리보다 남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랑채 마당에 늘어선 신발들은 더 이상 판결을 구하는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현자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의 눈물 젖은 신발들이었다. 칠흑 같은 밤이 내리고, 방 안에는 늙은 아내의 흐느낌과 촛불 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조사경의 숨소리는 이제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옅어져 있었다.
※ 의원도 포기한 그날 밤
모두가 지쳐 잠시 잠이 들었거나, 실의에 빠져 넋을 놓아버린 자정(子時). 마지막 남은 촛불이 바람도 없는데 스르르 꺼지려 할 때, 방 안의 공기가 돌연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밖에서 울던 귀뚜라미 소리마저 일순간 멎어버렸다. 그때, 감고 있던 조사경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눈을 뜨지 않았으나, '보았다'. 방 안에... 낯선 두 사내가 서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도포를, 다른 한 명은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이승의 존재가 아닌 듯, 얼굴에 그림자가 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 패(牌)와 함께, 이승의 명부(名簿)인 듯한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저승사자였다. "조사경." 검은 도포의 사자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불렀다. 곁에서 울고 있던 아내와 자식들은 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했다. 오직 조사경의 영혼만이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 조사경은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명이시다. 그대의 수(壽)가 오늘까지니, 명부(冥府)의 법도에 따라 우리를 따르라." 조사경은 이것이 죽음임을 받아들였다. 그는 평생을 사리에 맞게 살고자 노력했으니, 저승에 간들 크게 두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 숨을 '후' 하고 내쉬는 순간, 그의 영혼이 마치 가벼운 연기처럼, 누워있는 자신의 육신에서 스르르 빠져나왔다. 그는 자신의 곁에서 통곡하는 아내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는 자신의 늙은 육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인생이... 이리도 허망한 것이었는가.' 그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푸른 도포의 저승사자가 쇠사슬이나 창을 꺼내는 대신, 의외라는 듯 입을 열었다. "흠... 이 양반이로군. 대왕께서 그토록 기다리시던 이가." 검은 도포의 사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선비가 무엇이기에, 대왕께서 친히 '조사경이 오거든, 절대 결박하지 말고, 정중히 모셔오라' 하셨는지 원... 어쨌든, 갑시다. 시간이 없소." "모... 모셔오라니요?" 조사경의 영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승사자들은 죄인을 다루듯 윽박지르는 대신, 그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길이 멉니다, 선비님. 어서 가시지요. 대왕 전(殿)이 지금... 큰 혼란에 빠져 계십니다." "혼란이라니요? 내가... 내가 죄를 지어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까?" "가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저승사자들은 더 이상 말없이, 방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 조사경의 영혼도 홀린 듯이 그 뒤를 따랐다. 그가 자신의 집 문턱을 넘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던 가족들의 곡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며, 이승과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 저승으로 향하는 조사경
조사경의 영혼이 저승사자들을 따라나선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었다. 한 걸음을 떼자 청주의 풍경은 사라지고, 사방은 온통 뿌연 안개로 뒤덮인 낯선 흙길이 나타났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황천길(黃泉路)이었다. 발밑에서는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고, 공기 중에는 뼛속까지 시린 한기(寒氣)가 감돌았다. 안개 너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와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이승에서 갓 넘어온 수많은 망자(亡者)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앞서가는 저승사자에게 쇠사슬로 꿰어져 짐승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억울하게 죽었는지 피를 흘리는 혼, 욕심에 눈이 멀어 흉측하게 변해버린 혼...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행렬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조사경 자신이었다. 그는 두 저승사자의 '뒤'가 아닌, '옆'에서 나란히 ... T고 있었다. 저승사자들은 쇠사슬을 꺼내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넘어질세라 조심스럽게 길을 안내했다. "선비님, 이쪽입니다. 길이 미끄럽습니다." 조사경은 이 황당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오? 그리고... 어찌하여 나를 이리 대접하는 것이오?" 검은 도포의 사자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대왕께서 지금, 골치 아픈 '송사(訟事)' 하나 때문에 몇 달째 옥좌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저승의 판관 놈들이 멍청해서 아무도 해결을 못 하자, '이승에서 사리에 가장 밝다는 조사경을 데려오라'는 명이 떨어졌을 뿐입니다." "뭐요? 저승의 송사...?" "쉿! 저기 건너편입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강이 나타났다. 삼도천(三途川)이었다. 수많은 망자들이 차가운 강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승사자들은 조사경을 위태로운 외나무다리가 아닌, 튼튼하고 넓은 돌다리로 인도했다.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다리를 건너자, 상상도 못 할 만큼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다. '지옥문(地獄門)'이라 쓰여 있지 않고, '명부전(冥府殿)'이라 쓰인, 거대한 관아(官衙)의 정문이었다. 성문을 들어서자, 그곳은 불지옥이 아니라 거대한 이승의 관청과도 같았다. 수만 명의 판관들과 귀졸(鬼卒)들이 산더미 같은 두루마리(기록)에 파묻혀 정신없이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이놈은 지옥으로 보내라!", "저놈은 축생도로 환생시켜라!" 고함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관청의 중심, 가장 거대한 건물에서... 염라대왕의 고뇌에 찬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염라대왕이 천륜과 신의가 얽힌 상속 문제
조사경이 당도한 곳은 염라대왕의 대전(大殿)이자, 저승의 최고 심판정이었다. 그곳은 수천 개의 시퍼런 도깨비불로 밝혀져 있었고, 좌우에는 10대왕(十大王)의 대리 판관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옥좌에는, 관복(冠服)을 입었으나 면류관은 비딱하게 쓴 채,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는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가 아니라, 깊은 '고뇌'와 '피로'에 절어 있었다. "으으... 이놈의 판결을...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란 말이다!" 염라대왕이 옥좌를 '쿵' 치자, 심판정이 울렸다. 그 앞에는 두 망자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엎드려 있었다. 한 명은 늙은 부자(富者)의 망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 부자의 사촌 동생쯤 되어 보이는 가난한 자의 망령이었다. 판관 하나가 조사경이 들으라는 듯, 사건의 개요를 다시 읊기 시작했다. "사건은 이러합니다. 이승의 부자 '김 진사'는 늙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여, 가난한 사촌 동생의 둘째 아들을 '양자'로 들였습니다." 그때까진 평범한 이야기였다. "헌데, 김 진사가 양자를 들이며 사촌 동생에게 약조(約條)를 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훗날 친아들(親子)을 보게 되거든, 내 재산을 양자와 친아들에게 똑같이 절반씩 나누어 주겠다'라고 말이옵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염라대왕이 다그쳤다. "약조를 한 지 1년 만에... 김 진사가 덜컥, 친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김 진사는 죽었고, 이제... 이 두 아들이 재산 상속 문제로 싸움이 붙어, 둘 다 홧병으로 죽어 이곳까지 온 것이옵니다." 옥좌 아래에서 두 망령이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대왕님! 약조는 약조입니다! 아버님... 아니, 큰아버님께서 분명히 절반을 주시겠다 약조하셨습니다! 제가 양자로 들어가 그 집안의 대(代)를 이었으니, 당연히 절반은 제 것입니다!" (양자의 혼) "어림없는 소리! 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짜다! 우리 형님이 너를 거두어 먹여주고 입혀준 것만으로도 은혜가 하늘 같거늘, 감히 진짜 핏줄인 내 조카의 재산을 넘본단 말이냐! 천륜(天倫)이 먼저입니다! 약조는 무효입니다!" (친아들의 외삼촌 혼) 염라대왕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으...! 저놈의 '천륜'과 '신의(信義)'...!" 염라대왕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만약 '피가 우선이다'라며 친아들의 손을 들어주자니, 죽은 김 진사가 목숨처럼 여겼던 '약속(信義)'을 저버리게 되어 저승의 법도가 무너질 판이었다. 그렇다고 '약속이 우선이다'라며 양자의 손을 들어주자니, '하늘이 맺어준 핏줄(天倫)'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 인륜이 무너질 판이었다. 저승의 판관들도 수백 년간 이런 딜레마는 처음이라, 이도 저도 못하고 몇 달째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이다.
※ 마침내 염라대왕 앞에 선 조사경
바로 그 아수라장의 한복판에, 조사경을 데려온 두 저승사자가 대전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와 엎드렸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함께,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대왕이시여! 명(命)하신 대로, 이승 청주(淸州)의 현자(賢者), 조사경 선비를... '모셔' 왔나이다!" 그 말이 터져 나오자, 옥좌에 파묻혀 있던 염라대왕이, 마치 용수철이라도 단 듯 '벌떡' 일어섰다. 그 거대한 몸짓에 옥좌가 흔들리고, 그가 짚고 있던 이마에서는 땀인지 기름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왔느냐! 드디어... 그가... 그가 왔단 말이냐!" 염라대왕의 얼굴에는, 몇 달간의 지독한 변비가 한순간에 뚫린 듯한, 그런 기묘한 화색(畫色)이 돌았다. 그는 옥좌의 위엄도 잊은 채, 면류관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왔다. 어리둥절하게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넋 나간 듯 바라보던 조사경은, 저승의 왕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아니, 저분이... 염라대왕? 나를... 나를 직접 벌하시려는 것인가!' 그는 황급히, 아니,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갓 죽은 망자의 혼은 본디 가벼운 법이거늘, 조사경은 지금 자신의 영혼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망자(亡者) 조사경... 저승의 대왕 전(殿)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오나... 뵙나이다..." 그때, 염라대왕의 호탕하다 못해 절박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그의 정수리를 때렸다. "하하하! 망자라니! 죄인이라니! 무슨 그리 섭섭하고 야박한 소리를! 그대는 나의 죄인이 아니라, 이 명부(冥府)를 구원할 '귀빈(貴賓)'일세! 어서, 어서 고개를 들라!" 염라대왕은 좌우의 시퍼런 옥졸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명했다. "여봐라! 당장 저 귀한 선비에게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승에서 모셔온 귀한 손님께, 옥좌 옆에 자리를 펴드려라! 어서!" 옥졸들은 황급히, 10대왕의 판관들이 앉는 자리보다도 더 높은, 옥좌 바로 옆자리에 구름처럼 푹신한 방석을 대령했다. 조사경은 얼떨결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심정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수만 망령들과 저승의 관리들, 그리고 수백 년 묵은 판관들이, 갓 죽어 저승 물정도 모르는 웬 늙은 선비의 혼이, 염라대왕의 바로 옆자리에 겸상하듯 앉는... 저승 개벽 이래 처음 보는 그 광경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체면도 잊고 조사경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그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그 악력(握力)은 쇠망치 같았다. "선비... 아니, 조사경 선생! 내 그대의 명성을 이승의 기록을 통해 익히 들었네. 이승 조선 땅에서 그대만큼 사리(事理)가 밝고,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잘 푸는 이가 없다고 하더군. 그대의 판결문은 실로 명문(名文)이었어!" "황... 황송하기 그지없나이다, 대왕이시여." "내... 지금... 솔직히 말해서 죽을 맛일세." 염라대왕은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는데, 그 바람에 촛불 몇 개가 꺼져버렸다. 그는 아까 그 골치 아픈 상속 사건을, 마치 억울한 백성이 사또에게 하소연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상세하고도 격정적으로 조사경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보시게. 이놈(양자) 말대로 '신의(信義)'를 지키자니, 저놈(친아들)의 '천륜(天倫)'이 울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천륜을 지키자니, 죽은 김 진사가 목숨처럼 여겼던 '약속(信義)'이 땅에 떨어진단 말일세! 내 이놈의 판결 때문에 벌써 석 달째 잠을 못 잤어! 저놈들 때문에 다른 망자들 재판이 지금 산더미처럼 밀려, 저승 창고가 터져나갈 지경이야! 제발... 제발 나 좀 살려주시게. 이... 이 일을 대체 어찌하면 좋겠는가?" 염라대왕은 저승의 최고신이라는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조사경 선생, 제발 도와주시오!' 하는 눈빛으로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사경은 그제야 자신이 저승에 '죄인'으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 '해결사'로 '초빙'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이 기막힌 상황을 정리했다.
※ 조사경이 저승의 사건 기록을 검토
조사경은 잠시 숨을 깊게 골랐다. 이승에서의 그 어떤 송사보다도, 이 재판의 무게는 실로 거대했다. 판결 하나에 저승의 법도와 인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더 이상 겁에 질린 망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청주의 현자 '조사경'으로 돌아왔다. 그는 염라대왕을 향해 정중히, 그러나 당당하게 허리를 숙였다. "대왕이시여. 이처럼 중차대한 사건의 자문을 구해주시니, 망극하오나... 판결을 내리기에 앞서,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청이라니! 말이 청이지, 명이오! 무엇이든 말해보시게! 저승의 불기둥이라도 뽑아줄 터이니!" "송구하오나... 이 사건의 기록 원본, 즉 저승의 명부(冥府)에 기록된 저들 가문의 '약조문(約條文)' 원본과, '입양 문서(入養 文書)' 원본을... 제 미욱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심판정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감히 이승의 망자가, 저승의 핵심 기밀인 명부 원본을 보겠다 청한 것이다. 좌우의 판관들이 경악하며 "무엄하다, 저자의 눈을 뽑으라!"고 소리치려던 찰나, 염라대S이 손을 번쩍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옳지! 그렇고말고! 당연히 그리해야지! 명판관이 기록을 보지 않고 어찌 판결을 내린단 말인가! 여봐라! 당장 '김 진사' 가문 대대로 내려온 모든 기록, '생사록(生死錄)'과 '선악록(善惡錄)' 원본을 조사경 선생께 대령하라!" 잠시 후, 거대한 궤짝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열리고, 산더미 같은 두루마리가 조사경의 앞에 놓였다. 그 두루마리는 이승의 종이가 아니었다. 검은 안개를 뭉쳐 만든 듯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글자 하나하나에서 그들의 일생이 영상처럼 아른거렸다. 조사경은 이승에서 송사를 다루듯, 침착하게,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기록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양자를 들일 때의 상황, 재산을 약조할 때의 증인들(이미 저승에 와 있는), 그리고 두 아들의 평소 행실과 마음 씀씀이까지, 저승의 기록을 통해 샅샅이 검토했다. 심판정에는 조사경이 두루마리를 넘기는 '사락'하는 소리 외에는, 수만 망령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염라대왕조차 옥좌에 다시 앉아, 턱을 괸 채,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흐른 뒤, 조사경은 마지막 두루마리를 조용히 덮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좌를 향해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왕이시여. 이 판결은... 실로 간단명료하옵니다." "뭐... 뭐라? 자네 눈에도... 간단하단 말인가?"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하늘이 맺은 핏줄(天倫)'과 '사람이 맺은 약속(信義)'을,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두고 그토록 고뇌하셨나이까?" "허허, 이 사람아!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가 무너지지 않는가!" 조사경은 맑고 단호한, 이승에서 수많은 송사를 종결지었던 바로 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왕이시여. 이 사건은 '두 개'를 두고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두 개의 완결된 계약'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건이옵니다." "두 개의... 계약이라니...?" "그러하옵니다. 첫째, 김 진사가 사촌 동생의 아들을 입양한 것은, 피를 나누지 않았으나 나라의 법(法)과 가문의 예(禮)로 아들을 삼은, 신성한 '입양 계약'이옵니다. 이 순간, 양자는 김 진사의 적법한 '장자(長子)'가 되었으며, 김 진사는 그에게 가문을 이을 책임을, 양자는 아비에게 효도할 의무를 지게 된 것이옵니다." 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김 진사가 '친아들이 태어나면 재산을 반으로 나눈다'고 한 것은, 이미 성립된 입양 계약과는 '별개'로, 미래의 상황을 대비하여 추가로 맺은 '사적(私的) 계약', 즉 '약조(約條)'이옵니다." 조사경은 두 망령을 매섭게, 그러나 공평하게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러므로, 판결은 이러하옵니다. 양자는 '장자'로서 아비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친아들은 아비가 맺은 '약조'에 따라 재산의 절반을 받을 권리가 있나이다. 고로, 두 아들은... 김 진사가 이승에서 모든 증인 앞에서 약조한 그대로, 재산을 정확히 '절반씩' 나누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그 순간, 심판정에는 1초간의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염라대왕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거대하게 뜨였다. "...!" 조사경이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 "대왕이시여. '천륜'을 따르자고 '약조'를 버리면,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깨져 이승의 질서와 저승의 신의(信義)가 함께 무너집니다. 또한 '약조'만을 따르자고 '입양'이라는 법도를 무시하면, 이승의 가례(家禮)가 무너집니다. 허나, 이 둘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계약이기에, '둘 다' 지키면 되는 것이옵니다. 약조대로 절반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천륜과 신의, 법도와 인정, 그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만족시키는, 유일한 판결이옵니다!" 그 명쾌하고도 완벽한 해법에, 염라대왕은 옥좌의 팔걸이를 '쩍' 소리가 나게 부서져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옳다! 옳다! 바로 그것이다! 하하하! 내 어찌 이리도 간단한 것을...! 약조는 약조요, 입양은 입양이다! 둘 다 지키면 되는 것을! 하하하!" 염라대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저승의 법정을 가득 메웠고, 몇 달간의 체증이 한순간에 싹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 저승의 귀빈으로 대우하고
염라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조사경의 판결을 '저승의 새로운 법(法)'으로 선포하고, 그대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양자와 친아들은, 재산을 공평히 반으로 나누고, 서로 형제로서의 우애를 다한 뒤, 다음 생(生)으로 환생토록 하라!" 몇 달간 서로를 저주하던 두 망령도,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명쾌한 판결에, 마침내 승복하고 서로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빛의 기둥에 휩싸여 환생의 문으로 들어갔다. 염라대왕은 조사경을 '저승의 혼란을 막은 현자'이자, '저승 최고의 귀빈(VIP)'으로 다시 한번 치하했다. "여봐라! 당장 조사경 선생을 위한 연회를 베풀라! 저승에서 가장 귀하다는 '망우(忘憂)의 과일'과 '영생(永生)의 샘물'을 한 방울 탄 술을 모두 내어오라!" 조사경은 얼떨결에 저승의 가장 깊은 곳, 염라대왕의 사적(私的)인 연회장에서 그와 독대(獨對)를 하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승에서는 맡아본 적도 없는 기묘한 향기가 나는 과일과, 한 잔만 마셔도 영혼이 맑아지고 이승의 시름이 모두 잊히는 듯한 영약(靈藥) 같은 술이 끝없이 나왔다. 염라대왕은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조사경에게 저승의 여러 가지 골치 아픈 '회색지대'의 사건들을 털어놓으며, 이승의 지혜를 구했다. 조사경은 그때마다 맑은 정신으로 이치에 맞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염라대왕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옆에 있던 저승의 기록 판관에게 '명부(名簿)' 원본을 다시 가져오라 일렀다. "어디 보자... 내 귀한 손님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염라대왕이 거대한 명부, 조사경이 살던 청주 지역의 '생사록(生死錄)'을 펼쳤다. "조사경... 충청도 청주 출신... 아, 여기 있군." 염라대왕이 조사경의 이름을 붉은 먹물이 묻은 손가락으로 짚으며 읊었다. "흠... 조사경. 그대의 수명은... 어제 자시(子時)까지였네. 이미... 명(命)이 다한 목숨이었어." 조사경은 꿀맛 같던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그... 그렇사옵니까." "허허, 걱정 말게."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며, 옥좌 옆에 놓인 거대한 붓을 들었다. 그것은 이승의 붓이 아니라, 망자의 명운을 결정하는 '저승의 붓'이었다. "그대의 지혜가 이 저승의 큰 혼란을 막고, 수만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으며, 무엇보다 이 염라의 체면을 세워주었으니... 내 어찌 빈손으로 돌려보내겠는가." 염라대왕은 조사경의 명부, '수(壽) 예순셋 (六十三)'이라고 적힌 부분에... 붓을 들어 '열 십(十)' 자를 크게 그어 넣었다. "내가 그대의 수명에 10년을 더 하사하겠네. 일흔셋(七十三)까지... 아니." 염라대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더 호탕하게 웃었다. "10년은 너무 짜다! 그대의 지혜는 20년은 족히 받아야 마땅하지!" 염라대왕은 '육십삼'이라는 글자를 거칠게 지워버리고, 그 옆에 '팔십삼(八十三)'이라고 굵고 힘찬 필체로 고쳐 적었다. "그대에게 20년의 삶을 더 주겠노라. 어서 이승으로 돌아가... 그대의 맑은 지혜로, 아직도 어리석고 억울한 일이 많은 이승의 백성들을... 더 널리 깨우치도록 하라." 염라대왕은 저승사자들에게 명했다. "저 귀한 분을... 뉘 집 망자처럼 끌고 가지 말고, 저승에서 가장 빠른 황금 가마에 태워, 잠든 육신에 정중히 모셔다드리라!" ... 다음 순간, 조사경은 자신의 안방에서 눈을 떴다. "으... 으음...!" 그가 미약하게 신음을 내자, 곁에서 곡을 하다 지쳐 잠시 졸고 있던 늙은 아내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기절할 듯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 아버님! 아버님! 서... 선비님께서... 눈을... 눈을 뜨셨습니다!" 자식들과 제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몰려왔고,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던 조사경은, 그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여봐라... 목이... 목이 몹시 마르구나. 저승에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은 듯하니, 시원한 냉수 한 사발만... 다오." 조사경은 그날로 병석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약속한 대로, 정확히 20년을 더 살다가, 여든셋(八十三)이 되던 해의 어느 봄날, "이제... 염라대왕께서 다시 부르시는구나. 이번에는 또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생기셨나"라는 농담 같은 유언을 남기고, 잠자듯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기묘하고도 지혜로운 이야기는, 훗날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이 엮은 《계서야담(溪西野譚)》에 실려, '지혜로운 판결은 이승뿐 아니라 저승의 법도마저 감동시킨다'는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염라대왕의 고민 해결해준 선비'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죽으러 간 저승에서, 오히려 자신의 지혜를 뽐내고 염라대왕의 귀빈이 되어 돌아온 조사경 선비. 참으로 유쾌하고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지혜'란 이처럼 이승과 저승을 막론하고 가장 귀하게 대접받는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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