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 앞, 경전만 외운 스님
그는 평생을 불법을 공부하며 중생을 위해 기도했지만, 정작 단 한 사람도 제대로 구제하지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이 노승과 논쟁을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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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200~300자)
옛말에 이르기를, 백 권의 경전을 외우는 것보다 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더 큰 공덕이라 했지요. 오늘 이 어르신이 들려드릴 이야기는, 평생을 깊은 산속 암자에 들어앉아 불법을 공부하시던 한 노승의 이야깁니다. 경전이라는 경전은 다 외우시고, 부처님께 올리는 기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지요. 헌데 그 노승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염라대왕께서 던지신 한마디 질문에 노승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답니다. 도대체 염라대왕께서 무엇을 물으셨길래, 그 학식 높은 노승의 입이 얼어붙었을까요. 자, 따끈한 차 한잔 우려 놓으시고 편히 앉으세요. 진짜 수행이란 무엇인지, 저승의 무서운 셈법이 가르쳐 주는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 1: 깊은 산 속의 청정한 암자, 노승의 일상
옛적,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 작은 암자 하나가 있었더랍니다. 이름하여 청량암(淸凉庵). 사람의 발길이 한 해에 몇 번 닿을까 말까 한 그런 깊은 산속이었지요.
이 암자에 노승 한 분이 계셨습니다. 법명은 무진(無塵). 티끌 하나 없다는 뜻이었지요. 노승의 그 법명만 들어도 이 양반이 얼마나 정갈하게 살아오셨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무진 스님은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셨습니다. 찬물로 세수를 하시고, 법당에 들어가 새벽 예불을 올리셨지요.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안개 자욱한 산을 가르며 골짜기 아래까지 은은하게 울려 퍼졌더랍니다.
"옴 마니 반메 훔..."
노승의 염불 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었지요. 새벽 예불이 끝나면 곧장 경전을 펴 드셨습니다.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손때 묻은 경전이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었는데, 그 권수만 백 권이 넘었더랍니다.
"오늘은 반야심경의 이 구절을 다시 새겨 보아야겠구나..."
스님은 매일 같은 경전을 보고 또 보셨지요. 어떤 구절은 외우다 못해 잠꼬대로도 줄줄 흘러나올 정도였답니다.
해가 중천에 뜨면 스님은 마당으로 나오셨지요.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텃밭의 잡초를 뽑고, 우물에서 길어 온 물로 부엌을 정갈하게 닦으셨습니다. 그 모든 동작이 어찌나 단정한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지요.
가끔 산짐승들이 암자 마당까지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다람쥐가 토방에 앉아 있다가 스님과 눈이 마주치면, 스님은 빙긋 웃으시며 합장을 하셨지요.
"너도 부처님의 자식이로구나. 어서 가거라."
다람쥐는 스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하듯 톡톡 뛰어 사라졌더랍니다.
해가 지면 스님은 다시 법당에 드셨지요. 저녁 예불을 올리시고, 또 경전을 펴 드셨습니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새벽까지 경전을 읽으시는 날이 다반사였더랍니다.
가끔 산 아래 마을에서 누군가 청량암을 찾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큰 병을 앓는다는 어미가, 시집간 딸이 죽었다는 늙은 아비가, 흉년에 굶어 죽기 직전인 농부가. 그들은 산을 한참 올라와 암자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지요.
"스님, 한 번만 산에서 내려와 주시오. 우리 마을에 큰 액운이 들어 사람들이 죽어 나가오. 스님께서 한 번만 와서 빌어 주신다면..."
그러면 무진 스님은 합장을 하시고 잔잔히 말씀하셨답니다.
"보살님, 저는 산을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산에서 도(道)를 닦는 몸이지요. 한 번 마음이 흐트러지면 평생 쌓아 온 공부가 무너집니다. 제가 여기서 보살님을 위해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드리겠습니다."
찾아온 이들은 처음엔 실망했지만, 곧 스님의 그 단호한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래, 큰스님은 큰스님답게 산에서 도를 닦으셔야지.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어.'
그렇게 사람들이 빈손으로 산을 내려가는 일이 일 년에도 몇 번씩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그들이 떠난 후,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하셨더랍니다.
"부처님, 산 아래 박씨 일가의 액운을 거두어 주옵소서. 산 아래 윤 노인의 병을 낫게 해 주옵소서..."
스님 본인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한 번도 거짓이 없었지요. 그러나 사람의 진심과 사람의 행함은 때로 같은 것이 아니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지요.
※ 2: 산 아래 마을의 통곡, 굶주린 모녀의 마지막 합장
청량암이 있는 그 산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낙곡리(落谷里). 골짜기에 있는 작고 가난한 마을이었지요.
그 마을에 윤씨 성을 가진 과부가 한 명 살았더랍니다. 이름은 분이라 했지요. 분이 어미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어린 딸 하나를 의지 삼아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딸의 이름은 옥분이라 했지요.
옥분이는 그해 일곱 살이었습니다. 어찌나 영민한지, 동네 어른들이 다들 한입으로 칭찬했답니다.
"그 옥분이 하나는 보배여. 글도 일찍부터 깨치고, 어미를 그렇게 도울 수가 없어."
분이 어미는 그런 딸을 애지중지하며 키웠지요. 그러나 그해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논이고 밭이고 다 말라 죽어 갔지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굶어 죽기 시작했습니다.
분이네 모녀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분이 어미는 어린 딸 입에 한 술이라도 더 넣어 주려고, 자기는 사흘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지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저녁, 분이 어미가 부엌에 쪼그려 앉아 흐느꼈습니다.
"부처님... 우리 옥분이만이라도 살려 주세요. 저는 어찌 되어도 좋으니..."
옥분이가 어미의 등 뒤로 다가왔지요. 가뭄에 야윈 작은 손으로 어미의 등을 토닥이며 말합니다.
"엄마, 청량암 무진 스님께 가서 한번 빌어 봐요. 동네 어른들이 그러시는데, 그 스님이 큰 도를 닦는 분이래요. 한 번 산에서 내려와 빌어 주시면 마을 살린다고 하셨대요."
분이 어미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차피 죽기 직전이니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이었지요.
다음 날 새벽, 분이 어미는 굶주린 몸을 일으켜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옥분이도 어미를 따라가겠다고 졸랐지만, 어미는 단호하게 막았지요.
"옥분아, 너는 집에서 기다려라. 엄마가 스님 모셔 올게."
옥분이는 마당에 서서 어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더랍니다. 어미의 옷자락이 꼭 마른 갈잎처럼 흔들리고 있었지요.
분이 어미가 청량암에 닿은 것은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었습니다. 굶주린 몸으로 산을 오르느라 몇 번이나 쓰러졌는지 모르지요. 마침내 암자 마당에 닿은 분이 어미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 큰스님! 한 번만 산에서 내려와 주십시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 갑니다. 우리 옥분이도, 그 어린것도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법당 안에서 무진 스님이 천천히 나오셨지요. 분이 어미를 보시고 합장을 하시며 잔잔히 말씀하셨습니다.
"보살님, 일어나시지요. 그러나 저는 산을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분이 어미가 두 손을 모으며 애원했습니다.
"스님! 한 번만, 단 한 번만 내려와 주십시오. 스님께서 직접 우리 마을에 와서 빌어 주시면 부처님이 들어 주신다고 동네 어른들이 그러십니다!"
무진 스님이 잠시 눈을 감으셨지요.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보살님, 부처님은 어느 곳에서 비는 기도라도 똑같이 들어 주십니다. 제가 이 청량암에서 보살님 댁의 안녕을 빌어 드리지요. 그 정성이 산을 내려가서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분이 어미는 그 말씀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지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빌었습니다.
"스님... 그래도 직접 내려와 주시면..."
"보살님, 제 말을 믿으시지요. 제가 이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빌겠습니다."
분이 어미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절을 올렸지요. 스님의 그 단호한 말씀에 더 매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분이 어미는 산을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올라온 길보다 훨씬 무거웠지요. 마을이 가까워졌을 때, 분이 어미는 길가의 큰 바위에 잠시 기대섰습니다. 그리고 마을 쪽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지요.
"부처님, 우리 옥분이만이라도..."
마지막 합장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분이 어미와 옥분이는 부엌 한편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지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옆집 노파가 분이네 부엌에서 발견한 것은, 차갑게 식어 있는 두 모녀의 시신이었더랍니다.
같은 시각 청량암에서는, 무진 스님이 정성을 다해 분이네 가족의 안녕을 빌고 계셨지요.
※ 3: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 그러나 닫힌 산문(山門)
분이네 모녀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요. 그 어린 옥분이가 어미와 함께 차갑게 식어 갔다는 소식에, 동네 어른들이 통곡을 했답니다.
"아이고, 옥분이가 그렇게 갔단 말이여? 그 영민한 것이..."
"분이 어미가 청량암까지 올라갔다 왔다지 않아. 스님이 안 내려오셨다는구먼."
그 말에 동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늙은 어른 박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며 호통을 쳤지요.
"우리가 직접 가 봐야겠어! 마을이 다 죽어 가는데, 큰스님이라는 양반이 그래도 산에서만 도를 닦는단 말인가!"
마을의 장정 일고여덟이 박 노인을 따라 청량암으로 향했습니다. 굶주린 다리를 끌고 산을 오르는 그 모습이 어찌나 처연하던지요. 가는 도중에 한 사람이 또 길에 쓰러졌지만, 그를 부축해서라도 산을 올랐답니다.
청량암 마당에 닿았을 때, 박 노인이 지팡이로 마당을 쾅쾅 두드렸지요.
"스님! 무진 스님 계시오!"
법당 문이 천천히 열리고, 무진 스님이 합장을 하며 나오셨습니다.
"보살님들, 어인 일로 이 깊은 곳까지..."
박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스님, 분이네 모녀가 어젯밤 굶어 죽었소. 그 어린 옥분이까지 갔단 말이오."
스님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지요. 합장한 두 손에 약간의 떨림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곧 평정을 되찾으시고 차분히 말씀하셨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가엾은 영혼들이지요. 제가 그 두 영혼의 극락왕생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박 노인이 그 말에 그만 화가 치밀어 올랐지요. 지팡이를 마당에 콱 박으며 외쳤습니다.
"스님! 죽은 다음에 빌면 무슨 소용이오! 살아 있을 때 와서 빌어 주셨어야지!"
장정 한 명도 거들었지요.
"스님,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 갑니다. 한 번만 산에서 내려오시지요. 스님께서 마을에 한 번만 오시면, 사람들이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겁니다!"
스님은 잠시 침묵하셨지요.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여셨습니다.
"보살님들,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저는 평생을 이 산에서 도를 닦아 왔습니다. 한 번 산을 내려가면 그 청정한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부처님과의 교감이 끊어지지요. 그리되면 보살님들을 위한 기도조차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박 노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지요.
"스님... 그게 정녕 부처님의 뜻이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산문을 닫고 도만 닦으라는 게 부처님의 뜻이란 말이오?"
스님은 합장을 한 채 답하지 못하셨습니다. 그저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셨지요.
"보살님, 제가 산을 내려갈 수 없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더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장정 한 명이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지요.
"스님! 부처님이 이런 모습을 좋아하실 것 같소! 부처님이 무슨 가르침을 주셨소! 자비라 하지 않으셨소!"
스님은 그 말에 깊이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날 산을 내려가는 길에 한 사람씩 나무 그루터기에 주저앉아 울었답니다. 박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요.
"이젠 우리도 우리 살 길을 찾아야 해. 스님은 스님의 길을 가시라 하고, 우리는 우리 살 궁리를 해야 해."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청량암을 찾지 않았습니다. 산문은 그대로 닫혔지요. 그러나 청량암 안에서는 무진 스님이 매일같이 마을의 안녕을 빌고 계셨답니다. 진심을 다해서요.
그 진심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진심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지요. 그리고 그 사실이, 훗날 저승의 셈법에서 무진 스님의 발목을 단단히 잡게 될 줄을,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더랍니다.
※ 4: 노승의 입적, 가지런히 놓인 백 권의 경전
세월이 흘러, 무진 스님의 나이도 어느덧 여든다섯에 이르렀습니다. 평생을 정갈하게 살아오신 양반이라, 그 연세에도 허리가 꼿꼿하셨지요.
그해 가을, 청량암의 마당에 단풍이 곱게 들었습니다. 스님은 그 단풍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가만히 미소를 지으셨지요.
"올 가을이 마지막이로구나."
스님은 그날부터 입적하실 준비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평생을 보아 온 백 권의 경전들을 법당에 가지런히 정리하시고, 손때 묻은 목탁과 죽비를 깨끗이 닦아 두셨지요. 마당의 빗자루도, 부엌의 가마솥도 모두 제자리에 정갈히 놓으셨습니다.
산짐승들이 그날따라 암자 마당에 더 많이 내려왔답니다. 다람쥐며 너구리며 산비둘기까지. 스님은 그것들 하나하나에 합장을 하시며 인사를 건네셨지요.
"너희도 잘 있거라. 나는 이제 갈 길이 멀구나."
산짐승들이 스님의 곁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천천히 떠났더랍니다.
저녁이 되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법당에 드셨습니다. 평생 외워 온 반야심경을 한 번 더 외우시고, 부처님께 깊이 삼배를 올리셨지요. 그리고 가만히 가부좌를 트셨습니다.
'부처님, 제 평생의 공부를 부처님께 모두 바칩니다. 부족한 제자였으나, 한순간도 게으르지 않았음을 부디 어여삐 봐 주옵소서.'
스님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습니다. 평생을 정갈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 백 권의 경전을 외웠다는 자긍심. 그리고 부처님과 평생을 함께해 왔다는 든든함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요.
호롱불이 한 번 일렁이고, 스님의 호흡이 점점 가늘어졌습니다. 마침내 스님은 가부좌를 튼 그 자세 그대로, 조용히 숨을 거두셨지요.
청량암 마당의 풍경(風磬)이 댕그랑, 한 번 길게 울렸답니다.
스님의 영혼은 자기 몸이 가부좌를 튼 채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온한 얼굴, 단정한 자세, 가지런히 모은 두 손. 평생을 닦아 온 그 모습 그대로였지요.
'아... 마침내 부처님 곁으로 가는구나.'
스님은 깊은 만족 속에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법당 문을 나서니, 마당 한복판에 검은 도포를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었지요. 키가 천장을 찌를 듯한 저승사자였습니다.
"스님,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합장을 하며 잔잔히 미소 지으셨지요.
"네, 사자님.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승사자 두 명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한 명이 살짝 입을 열었지요.
"스님께서는 평생을 산문 안에서 도만 닦으셨지요?"
"그렇습니다.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염라대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님은 두 사자를 따라 마당을 나섰습니다. 산문(山門)을 지나는데, 그 산문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던지요. 평생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그 문을, 죽고 나서야 처음으로 넘는 길이었습니다.
산문 너머로 한 발을 내디딘 순간, 스님의 발 아래로 안개가 자욱이 깔리기 시작했지요. 안개 속을 한참을 걸으니, 멀리서 거대한 검은 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승의 첫 관문이었지요.
스님은 그 문을 보면서도 두려움이 없으셨습니다.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가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떤 질문이 와도, 어떤 시험이 와도, 평생의 공부로 답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아직 모르고 계셨지요. 저승의 셈법이라는 것이, 사람이 무엇을 외웠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행했느냐를 묻는다는 사실을요.
저승의 검은 문이, 스님 앞에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 5: 저승길의 첫 관문, 자부심에 찬 노승
거대한 검은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 너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회랑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회랑 양쪽으로는 푸르스름한 등불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고, 바닥은 차가운 검은 돌이 깔려 있었지요.
저승사자 두 명이 무진 스님을 안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이리로 오시지요. 염라대왕님께서 계신 명부전(冥府殿)까지는 이 회랑을 한참 걸으셔야 합니다."
스님은 합장을 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지요. 회랑을 걸어가면서, 양쪽에서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떤 영혼은 통곡하며 끌려갔고, 어떤 영혼은 사슬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갔지요. 어떤 영혼은 살아생전 지은 죄가 너무 무거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답니다.
스님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마음이 평온하셨습니다.
'가엾은 중생들이로다. 살아생전에 도를 닦지 못한 죄로구나.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그들 한 명 한 명을 향해 가만히 합장을 하셨지요. 측은한 마음으로 그들의 극락왕생을 빌어 주셨습니다.
회랑을 한참 걸으니, 다른 영혼들은 다 어디론가 끌려가고, 스님 혼자만 사자 두 명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지요. 사자 한 명이 슬쩍 입을 열었습니다.
"스님은 다른 영혼들과는 다른 길로 가십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보통 영혼들은 죄의 무게에 따라 여러 관청을 거치며 심판을 받지요. 그러나 스님처럼 평생을 수행하신 분은, 곧장 염라대왕님 앞으로 모십니다."
스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역시 평생의 공부가 헛되지 않았구나. 부처님께서 나를 어여삐 봐 주신 게야.'
가슴 한구석에서 따뜻한 자부심이 차올랐지요. 평생 산문을 닫고 외골수처럼 도를 닦아 온 그 세월이, 마침내 보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랑이 끝나자,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습니다. 광장 한복판에 우뚝 솟은 명부전. 그 위용이 어찌나 장엄하던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궁궐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지요.
명부전의 거대한 문 앞에는 두 명의 호위 무사가 서 있었습니다. 키가 사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사자(使者)들이었지요. 무사들이 스님을 보더니 합장을 하며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무진 스님이시지요. 안으로 드시지요."
스님은 깊이 머리를 숙여 답례하시고, 천천히 명부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명부전 안은 어둑어둑했지요. 천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양쪽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의 명부(冥簿)가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정면에 놓인 거대한 옥좌. 그 옥좌 위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염라대왕이셨지요.
붉은 곤룡포에 금빛 면류관을 쓰신 염라대왕. 두 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나고, 긴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 위엄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지요.
스님은 옥좌 앞으로 다가가 깊이 삼배를 올렸습니다.
"염라대왕님, 청량암의 무진이 인사드립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명부전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지요.
"오, 무진이로구나. 자네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스님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염라대왕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고 계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평생 공부의 결실이 아니겠습니까.
"황송하옵니다, 대왕님."
염라대왕이 손에 든 명부를 천천히 펼치셨습니다. 그 명부에는 스님의 평생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요. 새벽 예불부터 저녁 예불까지, 외운 경전의 권수, 올린 절의 횟수, 산짐승에게 베푼 자비까지. 모든 것이 한 줄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명부를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갑자기 그 명부를 옥좌 옆으로 탁 내려놓으셨습니다.
탁!
그 소리에 명부전 전체가 한 번 울렸지요. 스님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들어 대왕을 바라봤습니다. 대왕의 표정이 좀 전과 달리 매우 엄숙해져 있었지요.
"무진아."
"예, 대왕님."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묻겠다. 거짓 없이 답하거라."
스님은 합장을 한 채 답했습니다.
"하문하시지요. 평생을 정갈하게 살아온 몸, 거짓이 어찌 있겠습니까."
염라대왕이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뼛속까지 박히는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여셨지요.
"무진아. 그대가 평생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손으로 구제한 자가 누구이더냐?"
스님의 머릿속이 한순간 새하얘졌습니다.
※ 6: 염라대왕의 첫 질문, "그대가 구제한 자가 누구인가"
스님의 입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합장한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지요.
"대... 대왕님, 그것이..."
염라대왕은 답을 재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묵묵히 옥좌에 앉아 스님을 내려다보고 계셨지요. 그 시선이 어찌나 무겁던지, 스님의 무릎이 절로 꺾일 듯했습니다.
스님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대왕님, 저는 평생 청량암에서 부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매일같이 빌었지요. 흉년에는 흉년대로, 호환에는 호환대로, 마을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정성을 다해 빌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그래, 그것은 명부에 빠짐없이 적혀 있다."
"또한 저는 평생 백 권이 넘는 경전을 외웠습니다.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예불을 올렸고, 단 하루도 게으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명부에 적혀 있구나."
"산짐승 한 마리에게도 자비를 베풀었고, 다람쥐 한 마리, 산비둘기 한 마리에게도 합장을 했습니다."
"그것 또한 적혀 있다."
염라대왕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을 던지셨지요.
"무진아. 내가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대가 평생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손으로 구제한 자가 누구냐 하고 묻고 있느니라."
스님은 그제야 대왕의 질문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대왕님, 저는... 산을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도를 닦는 몸이라..."
"그러니 그대가 직접 손을 내밀어 구해 준 사람이 누가 있느냐 하고 묻는 게다."
스님은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지요.
'산을 내려가지 않았으니, 직접 구해 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분이 어미는... 옥분이는... 그 마을 사람들은...'
평생을 정갈하게 살아왔다는 그 자부심이 갑자기 흐물흐물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차마 답을 못 한 채, 합장한 두 손만 점점 더 떨리게 되었지요.
염라대왕이 옥좌 옆에 놓인 거대한 거울을 가리키셨습니다. 둥글고 검은 거울. 그 표면이 어찌나 깊고 어둡던지, 마치 우주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는 듯했지요.
"무진아. 자네 그 업경(業鏡)을 한번 들여다보거라."
스님은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거울 표면에 가까이 다가가자, 어둡던 거울 속이 천천히 환해지더니, 어떤 장면이 그 안에 떠올랐지요.
거울 속에는 청량암의 마당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여인. 분이 어미였지요.
"스님! 한 번만 산에서 내려와 주십시오! 우리 옥분이가, 그 어린것이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거울 속의 분이 어미가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합장을 한 채 잔잔히 서 계신 무진 스님 본인의 모습.
"보살님, 저는 산을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정성을 다해 빌어 드리지요."
스님의 가슴이 처음으로 격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 분이 어미..."
거울 속 장면이 바뀌었지요. 이번에는 분이네 부엌이었습니다. 옥분이가 어미의 등에 매달려 가냘프게 묻고 있었지요.
"엄마, 스님 오신대요? 스님이 우리 살려 주신대요?"
분이 어미가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어린 딸을 끌어안고 흐느꼈습니다.
"옥분아, 옥분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우리 옥분이..."
거울 속 장면이 또 바뀌었지요. 옥분이가 어미의 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작은 입술로 어미에게 속삭였지요.
"엄마, 스님이 못 오신 건 스님 잘못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도 같이 가요. 같이..."
옥분이의 마지막 말이 거울 속에서 가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영혼이 어미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이.
스님의 두 무릎이 그 자리에서 꺾였습니다. 합장한 두 손이 풀리고,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지요.
"아이고... 아이고 옥분아... 분이 어미야..."
평생 한 번도 흐트러진 적 없던 노승의 입에서, 마침내 통곡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내가 산을 내려갔어야 했구나. 산을 내려갔어야 했어..."
염라대왕이 옥좌 위에서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이번에는 호통이 아니라, 묵직한 슬픔에 잠겨 있었지요.
"무진아. 그대가 외운 백 권의 경전이, 그대가 올린 만 번의 절이, 그 한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보다 무거웠더냐?"
※ 7: 업경 앞의 진실, 닫힌 산문에 무너진 사람들
스님은 거울 앞에서 통곡을 멈추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요. 다음 장면이 또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박 노인이었습니다. 마을의 늙은 어른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청량암의 마당에서 통곡하던 그 모습.
"스님... 그게 정녕 부처님의 뜻이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산문을 닫고 도만 닦으라는 게 부처님의 뜻이란 말이오?"
거울 속 무진 스님은 합장을 한 채 답을 하지 못하고 계셨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답답하고 야속해 보이던지요.
거울 속 장면이 또 바뀌었습니다. 박 노인이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길가의 그루터기에 주저앉아 있었지요. 함께 산을 올랐던 장정들이 그 옆에 둘러앉아, 모두가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젠 우리도 우리 살 길을 찾아야 해..."
박 노인의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지요.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마지막으로 의지하려 했던 그 발걸음이, 청량암의 닫힌 산문 앞에서 무너진 그날의 풍경.
거울 속 장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해 겨울, 마을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무려 열일곱 명이었지요. 거울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시신이 거적에 싸여 마을 어귀의 공동묘지로 옮겨지는 모습이 차례차례 흘러갔습니다.
스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거울에서 흘러나오는 그 무거운 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지요.
"아아... 내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거울이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청량암의 풍경. 무진 스님이 법당에서 정성을 다해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이었지요.
"부처님, 산 아래 박 노인의 안녕을 빌어 주옵소서. 산 아래 김씨 일가의 액운을 거두어 주옵소서..."
그 기도하는 모습이 어찌나 정성스럽던지요. 스님 본인은 진심이었습니다. 한순간도 거짓이 없었지요.
그러나 거울은 그 다음 장면을 바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 시간, 산 아래 마을에서 박 노인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었지요. 김씨 일가가 부엌에서 끌어안고 함께 쓰러져 있었고요.
스님이 기도를 올리는 그 시간에, 마을 사람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거울이 마지막으로 한 장면을 더 보여 주었습니다. 옥분이가 죽기 직전, 어미의 품에서 두 손을 모으던 그 작은 합장.
"부처님... 우리 엄마만이라도..."
그 어린 손이 모은 마지막 합장이, 거울 속에서 가만히 멈췄습니다.
스님은 거울 앞에 무너지듯 엎드렸습니다. 명부전의 차가운 돌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통곡했지요.
"대왕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천하의 죄인입니다! 평생을 공부했다 하면서, 정작 사람의 목숨 하나 살리지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옥좌 위에서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이번에는 호통도, 슬픔도 아닌, 깊은 한숨이 섞인 목소리였지요.
"무진아.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慈悲)가 무엇이더냐?"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중생을 사랑하고, 그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옵니다."
"그렇지. 그러면 그대는 평생 그 자비를 행했더냐?"
스님은 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진아, 잘 들어라. 그대가 외운 경전이 천 권이라도, 그대가 올린 절이 십만 번이라도, 그것이 한 사람의 굶주린 입에 떡 한 조각을 넣어 주는 것만 못하다. 그대가 외운 그 모든 경전 안에, 산을 내려가 사람을 구하라는 가르침이 단 한 줄도 없었더냐?"
스님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있었습니다, 대왕님. 분명히 있었습니다. 헌데... 헌데 저는 그것을 외울 줄만 알았지, 행할 줄을 몰랐습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것이 그대의 죄다. 무지(無知)의 죄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죄. 가장 무거운 죄지."
명부전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스님의 흐느낌만이 그 정적을 가르고 있었지요. 평생을 자부하며 살아온 그 모든 것이, 이 명부전 안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습니다.
※ 8: 환생의 길, 다시 사람으로 내려가는 노승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염라대왕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여셨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무거운 판결이 실려 있었지요.
"무진아. 그대의 죄를 그대가 인정하느냐?"
스님은 이마를 바닥에 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인정하옵니다, 대왕님. 평생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죄, 사람의 손을 외면한 죄, 백 번 죽어도 다 갚지 못할 죄이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형벌을 내리겠다."
명부전 안의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어떤 형벌이 떨어질지, 스님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지요. 펄펄 끓는 가마솥, 칼산지옥, 검은 어둠 속의 영원한 고독. 어떤 형벌이라도 받을 각오로 스님은 가만히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말씀이었지요.
"그대를 다시 사람으로 환생시키겠노라."
스님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왕님, 그 무슨 자비로운 말씀이시옵니까. 저 같은 죄인을 다시 사람으로..."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스님의 말을 막으셨습니다.
"끝까지 듣거라. 그대는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되, 이번에는 산속의 노승이 아니다. 가장 가난한 마을, 가장 천한 신분의 사내로 태어나거라."
스님이 가만히 고개를 숙였지요.
"네, 대왕님."
"그리고 그대는 일평생 단 한 가지 일만 하거라. 사람들을 직접 손으로 살리는 일이다. 떡 한 조각이라도 굶주린 자에게 직접 손으로 건네고, 추위에 떠는 자에게 직접 옷 한 벌을 입혀 주거라. 산문을 닫지 말고, 사람의 곁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스님의 두 눈에서 또다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곡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물이었지요.
"대왕님, 그 자비로운 분부 평생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대는 다음 생에서, 청량암 무진이 외면했던 그 분이 어미와 옥분이의 후손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을 그대의 손으로 직접 보살펴 주거라. 그것이 그대가 이번 생의 죄를 갚는 길이다."
스님은 명부전 바닥에 깊이 삼배를 올렸습니다. 평생 부처님께 올렸던 그 어떤 절보다도 깊고 무거운 절이었지요.
"대왕님의 자비, 뼈에 새기겠습니다. 다음 생에는 결단코 산문을 닫지 않고, 사람의 곁에서 사람을 살리는 손이 되겠습니다."
염라대왕이 그제야 잔잔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래, 무진아.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평생 잊지 말거라. 다음 생에는 부디, 한 사람의 손이라도 잡아 주거라."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깊이 절을 올리셨습니다. 그러자 명부전의 한쪽 벽이 천천히 열리며,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지요. 환생의 문이었습니다.
스님이 그 빛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거울 속에서 분이 어미와 옥분이가 가만히 미소 짓고 있었지요. 두 사람이 합장을 하며 스님께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스님의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분이 어미야, 옥분아. 미안하다. 다음 생에서, 다음 생에서는 내가 너희의 손을 꼭 잡아 주마."
스님이 환생의 빛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명부전 안에 풍경 소리가 한 번 길게 울렸답니다. 댕그랑.
청량암 마당에서 스님이 입적하시던 그 순간 울렸던 그 풍경 소리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명부전을 가득 채웠지요.
그로부터 어느 세월이 흐른 뒤, 강원도 어느 가난한 마을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답니다. 천한 종놈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도 굶주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지요. 자기가 먹을 떡 한 조각도 길에서 만난 거지에게 쥐여 주고, 자기가 입은 옷 한 벌도 추위에 떠는 노인에게 벗어 주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아이를 두고 이르기를,
"저놈은 전생에 큰 빚을 지고 온 놈이야. 그래서 저렇게 사람만 보면 도와주려는 게여."
그러나 정작 그 아이는, 자기가 무슨 빚을 졌는지 알지 못했지요. 다만 사람의 손을 잡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외면하면 가슴이 무겁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훗날 그 아이가 자라 한 마을의 영감이 되었을 때, 그 영감의 손에 살아난 사람이 마을마다 수백 명이 넘었답니다. 그러나 그 영감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전생에 백 권의 경전을 외운 노승이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그 손, 그 손 하나가 백 권의 경전보다 무겁다는 것을, 그 영감은 이미 온 마음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량암 무진 스님과 염라대왕의 논쟁이 남긴 옛이야기 한 자락이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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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청량암 무진 스님과 염라대왕의 논쟁 이야기,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평생을 외운 경전 백 권보다, 굶주린 이의 손을 한 번 잡아 주는 것이 더 무겁다는 그 가르침,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으셨는지요.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멀리 있는 큰일보다, 바로 옆 사람의 손 한 번 잡아 주는 것이 진짜 공덕일지 모릅니다. 가슴 뜨거우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고요, 댓글에는 어르신께서 가장 고마웠던 누군가의 손길을 남겨 주세요. 다음에도 더 깊고 따뜻한 옛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강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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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ic ultra-realistic 16:9 photograph in dark Korean folktale atmosphere, an elderly Korean Buddhist monk in worn gray robes with shaved head and long white eyebrows kneeling on cold black stone floor, head bowed in deep regret, facing a massive ornate dark mirror floating in mid-air reflecting a heartbreaking scene of a starving mother and small child embracing in dim kitchen, towering shadowy figure of Yeomra the Korean king of the underworld in red royal robes and golden crown sitting on imposing throne in background, cold blue and deep red dramatic lighting, swirling mist on floor, hanging lanterns with eerie blue flames, ancient Korean underworld palace interior, profound emotional tension, photorealistic cinematic style,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no text, no letters, no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