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벌인 한판 승부 , 염라대왕 웃긴 효자의 한마디 『해동야화』
태그 (20개)
#조선시대야담, #전설의고향, #시니어유튜브, #효자이야기, #염라대왕, #저승사자, #감동실화, #웃음과감동, #수면용이야기, #옛날이야기, #권선징악, #부모님전상서, #효도, #인생2회차, #기적, #명랑판타지, #한국설화, #민담, #할머니가들려주는이야기, #힐링스토리
조선시대야담, 전설의고향, 시니어유튜브, 효자이야기, 염라대왕, 저승사자, 감동실화, 웃음과감동, 수면용이야기, 옛날이야기, 권선징악, 부모님전상서, 효도, 인생2회차, 기적, 명랑판타지, 한국설화, 민담, 할머니가들려주는이야기, 힐링스토리


후킹멘트 (300자 내외)
"이보게 저승 양반들! 나는 지금 죽을 때가 아니란 말이오! 우리 어머니 칠순 잔칫상에 올릴 고기를 아직 못 구했단 말이다!"
효심 지극하기로 소문난 최 서방, 어머니 생신날 아침에 급체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억울해서 못 간다 버티는 최 서방과, 명부 꼬였다며 끌고 가는 저승사자의 한판 승부! 그리고 지엄한 염라대왕 앞에서 펼쳐지는 최 서방의 기상천외한 '저승 재판' 개봉박두! 염라대왕의 배꼽을 빼놓고 눈물까지 쏙 빼놓은 효자의 촌철살인 변론이 시작됩니다. 과연 그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어르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지극한 효심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염라대왕을 감동시키고 다시 살아 돌아온, 어느 효자의 기막힌 사연입니다. 무서운 곳인 줄만 알았던 저승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소동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자식의 애끓는 마음이 어우러진 명품 야담! 듣다 보면 웃음이 터지고, 또 듣다 보면 가슴 찡한 눈물이 흐르는 우리네 인생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밤, 따뜻한 아랫목에서 옛날이야기 한 자락 듣고 가시지요.
※ 어머니 칠순 잔치 준비하다 떡이 목에 걸려 저승사자를 마주한 최 서방의 기막힌 죽음
옛날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최칠성이라는 노총각이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 효심이 얼마나 지극한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알 정도였습니다. 비록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칠성이는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밥은 줄일지언정 어머니 밥상에는 항상 따뜻한 쌀밥과 고깃국을 올리려 애쓰는 그런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 칠성이네 집 마당에는 일찍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칠성이 어머니의 일흔 번째 생신, 즉 고희연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칠성이는 몇 달 전부터 산에 가서 약초를 캐고 읍내 나가 품을 팔아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새 옷 한 벌과 잔칫상을 거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칠성이 저놈, 효자다 효자야. 저런 아들을 둔 최 씨 할매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하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요, 좋은 일에는 꼭 마가 낀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습니다. 칠성이가 어머니상에 올릴 찰떡을 빚다가, '어디 간이 잘 맞았나?' 싶어 큼지막한 떡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꿀꺽 삼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급하게 먹은 떡이 그만 기도를 꽉 막아버린 것입니다. "켁! 켁!" 칠성이는 숨이 막혀 얼굴이 벌개지고, 가슴을 치며 마당을 뒹굴었습니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놀라 뛰쳐나오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등을 두드리고 난리를 쳤지만, 야속한 떡 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칠성의 눈앞이 점점 흐려지더니, 눈앞에 웬 시커먼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저승사자 두 명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칠성, 금년 나이 마흔둘. 칠순 잔칫상 차리다 떡 먹고 급체. 명줄이 다했으니 어서 가자." 저승사자의 서늘한 목소리에 칠성이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아니, 이제 막 잔치를 시작하려는데, 어머니 새 옷 한번 입혀드리지 못했는데 죽다니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칠성이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몸부림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보시오! 나는 못 가오! 우리 어머니 칠순 잔치는 치러드리고 가야 할 것 아니오! 이 무심한 양반들아!' 하지만 저승사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들, 칠성이의 혼백을 낚아채더니 밧줄로 꽁꽁 묶어버렸습니다. 마당에 쓰러진 자신의 육신을 붙잡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한 채, 칠성이는 그렇게 허망하게 이승과 작별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효자의 죽음 치고는 너무나도 황당하고 억울한,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최후였습니다.
※ 억울해서 못 간다 버티는 최 서방과 밧줄로 묶어 끌고 가는 저승사자의 티격태격 여행길
저승으로 가는 길, 소위 말하는 황천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발밑에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칠성이는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밧줄을 잡아당기며 저승사자들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나으리들!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제가 지금 가면 우리 어머니는 누가 모십니까? 칠순 잔치라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놨는데, 잔칫상이 제사상이 되게 생겼습니다. 딱 사흘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주시면 잔치 잘 치러드리고 제 발로 걸어오겠습니다요!" 칠성이가 어찌나 애걸복걸하며 버티는지, 끌고 가던 저승사자들도 땀을 뻘뻘 흘릴 지경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저승사자가 무서워 오금도 못 펴고 질질 끌려가기 마련인데, 칠성이는 효심이 공포를 이겨버린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급기야 길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까뒤집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못 가요, 못 가! 배 째시오! 아니, 이미 째진 배, 또 째시오! 내가 전생에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칠순 날 아들을 잡아갑니까? 저승 법이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원!" 저승사자 중 하나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이놈아, 죽은 놈이 말이 많다. 염라대왕님 명부에는 에누리가 없는 법이야. 썩 일어나지 못할까!" 하며 칠성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칠성이는 굴하지 않고 주머니에서(혼백에게 주머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상 속의 엽전을 꺼내는 시늉을 하며 뇌물 공세까지 펼쳤습니다. "이보시오, 저승 차사님들. 내 이승에 숨겨둔 꿀단지가 있는데, 날 보내주면 그거 다 드릴게. 저승 가는 길에 목마르실 텐데 꿀물 타 드시면 얼마나 좋소?"
기가 막힌 저승사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망자를 데려갔지만, 이렇게 끈질기고 뻔뻔하게, 그러면서도 오로지 어머니 걱정뿐인 놈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허허, 그놈참. 효자라더니 떼쟁이가 따로 없구나.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니, 억울하면 가서 염라대왕님께 직접 따져라." 사자들의 말에 칠성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오호라, 대왕님께 직접 말하면 통할 수도 있다는 말이오? 좋소! 그럼 어서 갑시다. 내 염라대왕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담판을 짓겠소!" 방금 전까지 안 간다고 버티던 칠성이는 갑자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저승사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왠지 모를 측은함과 흥미로움을 느꼈습니다. 과연 저 촌구석 효자가 저승의 절대 권력자 앞에서 통할 수 있을지, 기묘한 동행은 계속되었습니다.
※ 삼도천 건너 도착한 저승 입구, 죄인들의 행렬과 살벌한 지옥 풍경에 기가 질린 최 서방
삼도천을 건너자 눈앞에 펼쳐진 저승의 풍경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이었습니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고,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유황 불길과 죄인들의 비명소리가 귀를 때렸습니다. 칼산 지옥, 화탕 지옥, 독사 지옥... 그림으로만 보던 지옥도(地獄圖)가 눈앞에 펼쳐지니 오금이 저릴 만도 했습니다. 수많은 망자들이 줄을 서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이승에서 떵떵거리던 탐관오리도 있었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기꾼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벌벌 떨고 있었지만, 우리의 최칠성은 달랐습니다. 그는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거참, 시설 한번 살벌하네. 저기 저 양반은 뭘 잘못했길래 혀를 길게 빼고 밭을 갈고 있나? 아이고, 저쪽은 아주 가마솥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계시네." 칠성이는 마치 장터 구경 나온 사람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옆에 있던 저승사자가 눈을 부라리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조용히 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너도 심판 결과에 따라 저 꼴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칠성이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흥,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소. 어머니 모시느라 도둑질 한번 안 했고, 남 해코지한 적도 없는데 내가 왜 저길 가오? 나는 기껏해야 '효도 과다 죄' 아니면 '떡 급하게 먹은 죄' 밖에 없소."
칠성이는 줄 서 있는 다른 망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옆에 서 있는 비단옷 입은 망자에게 툭 치며 물었습니다. "영감님은 뭣 하러 오셨소? 옷 입은 꼴을 보니 이승에서 한가닥 하신 것 같은데, 저승 올 땐 빈손이구려. 거보시오, 공수래공수거라 하지 않소." 그 망자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대꾸도 못 했습니다. 칠성이는 저승의 무시무시한 분위기보다, 당장 내일 아침 어머니 밥상 차려드릴 걱정이 더 컸기에 이런 배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지금쯤 깨어나셨을까? 내가 죽은 걸 알고 기절하시면 안 되는데... 보일러(아궁이) 불은 누가 때 드리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어머니 생각뿐이었고, 지옥의 불길 따위는 어머니의 차가운 방바닥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염라대왕이 계신 집무실로 들어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문 앞에는 험상궂게 생긴 옥졸들이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서 있었지만, 칠성이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갑시다! 가서 내 억울함도 풀고, 저승 행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따끔하게 일침을 놓아주겠소!" 마치 암행어사가 출두하듯 위풍당당한 칠성의 모습에 옥졸들도 어안이 벙벙하여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이제 곧 저승의 주인과 시골 효자의 세기의 담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 우레와 같은 염라대왕의 호통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최 서방의 깡다구
드디어 도착한 염라대왕의 집무실, 명부전(冥府殿)은 그 웅장함이 인간 세상의 궁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기둥 하나가 아름드리나무 열 그루를 합친 것보다 굵었고, 그 기둥마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흑룡과 청룡이 휘감겨 있어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천장 높은 곳에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바닥은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발자국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 거대한 공간의 정중앙, 까마득히 높은 단상 위에 저승의 주인이자 지옥의 절대자, 염라대왕이 산처럼 거대한 체구로 앉아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모습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얼굴은 잘 익은 대추처럼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눈은 마치 밤하늘의 샛별 두 개를 박아놓은 듯 번쩍번쩍 빛나는데, 그 눈빛이 닿는 곳마다 죄인들의 영혼이 타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빗자루처럼 뻣뻣한 수염은 바람도 없는데 제멋대로 춤을 추었고, 머리에 쓴 관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그 빛이 아름답기보다는 서늘하고 날카로웠습니다. 대왕의 옆에는 판관들이 죄인들의 명부를 들고 바쁘게 붓을 놀리고 있었고, 단상 아래에는 죄를 지은 영혼들이 납작 엎드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죄인 들어오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궁전의 기둥이 흔들리고 천장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굶주린 호랑이의 포효 같기도 하여, 듣는 이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었습니다. 저승사자들에게 이끌려 단상 앞에 선 칠성이. 사자들은 칠성의 무릎을 꿇리려 억지로 어깨를 눌렀지만, 칠성이는 뻣뻣하게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감히 염라대왕과 눈을 마주친 망자는 수천 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네 이놈!" 염라대왕이 책상을 '쾅' 내려치자 불길이 치솟고 벼루가 튀어 올랐습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며, 이승에서 무슨 짓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느냐!" 대왕의 호통에 옆에 있던 귀신들은 기절초풍을 하여 거품을 물었지만, 칠성이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아이고, 대왕님. 목소리 좀 낮추십시오. 제가 귀가 먹은 노인네도 아니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면 멀쩡한 고막도 터지겠습니다. 그리고 묻는 말씀에 대답해 드리자면, 제 이름은 최칠성이고,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칠순 노모 모시고 살던 효자입니다. 뭐, 대단한 죄를 지은 건 없고,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 생신상에 올릴 떡 맛보다가 급체해서 온 죄밖에 없습니다."
염라대왕은 기가 찼습니다. 죽어서 끌려온 주제에 이렇게 태연하게, 그것도 훈계하듯이 말하는 놈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 맹랑한 놈을 보았나! 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염라대왕의 얼굴이 분노로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칠성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맞받아쳤습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하소연하는 겁니다, 하소연! 대왕님,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사람 명줄이 아무리 하늘에 달렸다지만, 하필이면 잔칫날, 그것도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 호강 한번 시켜드리는 날 잡아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죽으면 그 잔칫상은 누가 치우며, 칠순 노모는 누가 모신단 말입니까? 이건 저승 행정의 명백한 직무 유기이자, 융통성 없는 탁상공론입니다!"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판관들은 적던 붓을 떨어뜨렸고, 옥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칠성이는 기세를 몰아 더 큰 목소리로 따졌습니다. "대왕님은 부모님도 없으십니까? 생일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죽은 귀신이 얼마나 원통한지 아시냐는 말입니다! 저를 지옥에 보내시려거든, 저승 법전에 '효자도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사정 볼 것 없이 무작정 잡아간다'는 조항이 있는지부터 보여주십시오! 만약 그런 조항이 있다면 저는 깨끗이 승복하고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가겠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라면, 저는 억울해서 단 한 발자국도 못 움직입니다!"
칠성이의 말은 단순한 떼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간절함, 홀로 남을 어머니를 향한 뼈저린 걱정에서 나온 처절한 외침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기백과 함께 진한 슬픔이 배어 있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묘하게 울렸습니다. 염라대왕은 칠성의 당돌함에 화가 나면서도, 그 눈빛 속에 담긴 흔들리지 않는 효심을 보았습니다. '호오, 이놈 보게? 보통내기가 아니로구나. 감히 내 앞에서 저승의 법을 논하다니.' 대왕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노에서 호기심으로, 그리고 묘한 인정(人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곧 저승의 법과 인간의 효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역사적인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 저승 행정 착오를 지적하며 염라대왕을 웃게 만든 최 서방의 기상천외한 입담
염라대왕의 벼락같은 호통에 저승의 모든 기물이 덜덜 떨리고 잡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숨었지만, 단 한 사람, 우리의 칠성이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염라대왕의 붉은 얼굴을 보며 "어이고, 대왕님 혈압 오르시겠습니다. 뒷목 잡고 쓰러지시면 저승 행정 마비될 텐데 진정하시지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염라대왕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수많은 망자를 보아왔지만,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내 건강 걱정을 해주는 놈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염라대왕이 헛기침을 하며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농을 치느냐!" 하며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쳤지만, 칠성이는 오히려 한 발짝 더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대왕님, 제 죄라면 늙으신 어머니 생신상 차려드리려다 떡 좀 급하게 먹은 죄, 그리고 그 떡이 목구멍에 걸려 숨이 안 쉬어지는데 물 한 모금 못 마신 죄밖에 없습니다. 헌데 대왕님, 우리 솔직하게 한번 따져봅시다. 저승 법에도 '융통성'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잡아올 때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적어도 작별 인사는 하고 오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필이면 잔칫날, 그것도 어머니께 드릴 고기 산적 굽다가 잡아오는 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건 명백한 행정 착오이자, 저승사자들의 근무 태만입니다!" 칠성이의 당돌한 항변에 옆에 서 있던 판관들이 킥킥대며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였고, 저승사자들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염라대왕은 이 맹랑한 인간의 기세에 눌려, 화를 내기보다는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허허, 그놈 말하는 본새 보게? 그래, 네 말이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만, 여기 이 '명부(명부전)'에 네 수명이 오늘까지로 적혀있는 걸 어쩌란 말이냐. 하늘의 뜻을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염라대왕이 두꺼운 장부를 펼쳐 보이며 난처한 표정을 짓자, 칠성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이고 대왕님! 그 장부, 사람이 붓으로 적는 거 아닙니까? 판관 나으리들이 야근하다가 졸면서 획 하나 잘못 그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입니다. 이승에서도 동사무소 직원이 이름 잘못 올려서 멀쩡한 사람 군대 두 번 가는 일도 있는데, 저승이라고 실수가 없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대왕님의 그 넓은 아량으로 '재심'을 한번 해주셔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칠성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저승의 환경 개선까지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대왕님, 제가 오면서 보니까 저승 시설이 영 아니올시다. 옥졸들 옷은 다 해져서 꿰매 입어야겠고, 삼도천 나룻배는 칠이 다 벗겨져서 물이 새게 생겼더이다. 저승의 체면이 있지, 예산 좀 써서 시설 보수 좀 하셔야겠습니다. 제가 이승에서 손재주 하나는 끝내주는 놈인데, 저를 돌려보내 주시면 제가 짚신 삼고 돗자리 짜서 최고급품으로다가 한 트럭 올려보내 드릴 테니, 제발 저 좀 봐주십시오. 대왕님도 푹신한 방석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칠성이의 능청스러운 제안에 엄숙하던 저승 법정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옥졸들도 낄낄거리고, 심지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도깨비들도 배를 잡고 굴렀습니다. 염라대왕 역시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푸하하하! 네놈 혓바닥이 아주 청산유수로구나. 내 수천 년 동안 울고불고 살려달라는 놈들은 숱하게 봤어도, 저승 살림살이 걱정해주며 뇌물(?)로 협상하려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네 배짱 하나는 천하제일이로구나." 염라대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지옥의 천장을 울렸고, 살벌했던 분위기는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훈훈해졌습니다. 칠성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결정적인 한 방을 준비했습니다. 웃음기가 가신 그의 눈동자가 깊고 진지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 염라대왕도 울린 꼬깃꼬깃한 짚신 한 짝과 어머니를 향한 끓어오르는 사모곡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정적이 흐르자, 칠성이는 품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습니다. 그것은 꼬질꼬질한 때가 묻고,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있는 낡은 짚신 한 짝과, 시장에서 산 듯한 하얀 새 버선 한 켤레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유쾌하게 떠들던 칠성이의 어깨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물건들을 염라대왕 앞에 공손히 내려놓고, 바닥에 이마를 쿵 찧으며 엎드렸습니다. "대왕님... 제가 웃고 떠들었지만, 사실 제 속은 새카맣게 타버린 숯덩이와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이 낡은 짚신은 제 어머니가 십 년을 넘게 신으신 것입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홀로 남아 저 하나 키우시겠다고... 남의 집 밭일, 논일, 허드렛일 가리지 않고 하시느라 짚신이 닳아 없어질 새가 없었습니다. 한겨울 얼음장 같은 냇가에서 빨래를 하실 때도, 뙤약볕 아래서 콩밭을 매실 때도 어머니는 언제나 이 헌 신발을 신고 계셨습니다. 발뒤꿈치가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와도, '나는 괜찮다, 칠성이 너만 배부르면 된다' 하시며 웃으시던 분입니다." 칠성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저승의 차가운 바닥을 적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칠순 잔치 때, 어머니 발에 딱 맞는 이 고운 새 버선 한 켤레 신겨드리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장터에서 품 팔고, 산에서 약초 캐서 모은 돈으로 겨우 마련한 이 버선...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 드리려고 품에 안고 있었는데... '어머니, 이제 그 거친 발 좀 쉬게 해 드릴게요, 고생만 시켜 드려 죄송해요' 그 말 한마디 못하고 떡이 목에 걸려 여기로 끌려왔습니다. 제가 죽은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이 버선을 보고 하염없이 우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아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칠성이는 바닥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대왕님! 제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수명을 다 가져가셔도 좋고, 저를 저 펄펄 끓는 화탕지옥에 던지셔도 좋습니다. 하오니 제발, 딱 반나절만이라도 좋으니 이승에 다녀오게 해주십시오. 가서 어머니 발에 이 버선 신겨드리고, 큰절 한번 올리고 돌아와서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부디 이 불효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시옵소서!"
칠성이의 절절한 사모곡(思母曲)은 저승의 공기마저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판관들은 붓을 놓고 눈시울을 붉혔고,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다는 저승사자들조차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염라대왕 역시 마음이 동요했습니다. 지엄한 저승의 법도 중요하지만, 하늘이 내린 천륜(天倫)인 효심 앞에서는 그 어떤 법도 무색해지는 법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어허... 슬프도다. 네 효심이 지옥의 불길보다 뜨겁고, 하늘을 찌르는구나. 내 비록 냉혹한 심판자이나,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그 지극한 마음을 어찌 모른 체하겠느냐."
염라대왕은 붓을 들어 먹물을 듬뿍 찍더니, 명부전 위에 적힌 칠성이의 이름과 수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최칠성, 나이 사십이(42)세..." 대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단에 찬 손길로 붓을 휘둘렀습니다. '사십이'라는 글자 위에 획을 더하고 고쳐 써서, 순식간에 그의 수명을 '사천이(4002)'세가 아닌, '구십구(99)'세, 즉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나이로 바꿔버렸습니다. "여봐라, 판관은 듣거라. 여기 행정상의 착오가 있었구나. 최칠성의 수명은 아직 한참 남았다. 이 효자를 당장 이승으로 돌려보내, 못다 한 효도를 다 하고 천수를 누린 뒤에 다시 오도록 조치하라!" 염라대왕의 호령이 떨어지자, 칠성이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효심이 만들어낸, 전무후무한 저승의 기적이었습니다.
※ 장례식장을 잔칫집으로 만든 기적의 해피엔딩
한편, 이승의 칠성이네 집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잔치를 위해 쳐놓았던 차일은 걷어지고, 흥겨운 풍악 소리 대신 구슬픈 곡소리만 담장을 넘고 있었습니다. 칠성이의 시신은 안방 윗목 병풍 뒤에 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칠순 잔칫상 대신 향냄새 진동하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런 효자를 데려가다니..." 하며 혀를 찼고, 칠성이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혼절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칠성아... 칠성아! 네가 없는데 내가 칠순을 살아 뭐 하겠느냐. 나를 데려가고 내 아들을 살려내라!" 어머니의 절규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싸늘하게 식어있던 칠성이의 손가락이 꿈틀하더니, 멈췄던 심장이 '쿵, 쿵' 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에서 돌아오는 길은 찰나와 같았습니다. 칠성이는 깊은 물 속에서 솟구쳐 오르듯, "푸하!" 하고 큰 숨을 몰아쉬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이고, 답답해라! 누가 문을 이렇게 꽉 닫아놨어!" 병풍이 우당탕 넘어지며 칠성이가 관 뚜껑(아직 입관 전이라면 이불)을 걷어차고 나오자, 조문객들은 "으악! 귀신이다!" "시체가 일어났다!" 하며 비명을 지르고 뒤로 자빠졌습니다.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갓이 벗겨지고 고무신이 날아다니는 난리 통 속에, 오직 한 사람, 칠성이의 어머니만이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어머니!" 칠성이는 멍하니 서 있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어머니의 몸은 따뜻했고, 냄새는 구수했습니다. "어머니! 저 칠성이에요! 제가 죽은 게 아니라, 잠시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님이랑 담판을 짓고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기 전에는 절대 못 죽는다고, 제가 떼를 써서 다시 살아왔어요!"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더듬고, 볼을 꼬집어보더니 "아이고 내 새끼, 살아왔구나! 정말 살아왔어!" 하며 아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진정이 된 후, 칠성이는 품속에서(저승에서 챙겨 온 것인 양) 그 하얀 새 버선을 꺼내 어머니의 갈라진 발에 정성스럽게 신겨드렸습니다. "어머니, 늦어서 죄송해요. 자, 이거 신으세요. 이제부터는 이 아들이 어머니 발에 흙 한 톨 안 묻게 해 드릴게요. 염라대왕님이랑 약속했어요. 제가 어머니 업고 금강산 구경도 시켜드리고, 맛난 것도 많이 사드리고, 백 살까지 사시게 해 드린다고요." 어머니는 고운 버선을 신은 발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무서워하다가, 하나둘씩 다가와 칠성이의 등을 두드리며 기뻐했습니다. "역시 효자는 하늘이 돕는구먼!" "암, 그렇고말고!"
그날 밤, 칠성이네 집은 다시 잔칫집으로 변했습니다. 제사상은 치워지고 다시 화려한 칠순 잔칫상이 차려졌습니다. 칠성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머니께 술을 올렸고, 어머니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밥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칠성이가 저승에서 겪은 무용담을 들으며 밤새는 줄 몰랐습니다. "아, 글쎄 염라대왕 수염이 빗자루같이 생겼는데, 내가 짚신 삼아 준다니까 껄껄 웃더라니까?" 칠성이의 입담에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칠성이는 어머니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그 효심은 전설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기막힌 효도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닐까요?
유튜브 엔딩 멘트
"어르신들,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에 염라대왕까지 감동시키고 살아 돌아온 최칠성 이야기, 참 통쾌하고도 가슴 찡하지 않으신가요?
역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빽은 '효심'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따뜻한 밥 한 끼,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저승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 백번 천번 낫다는 사실, 오늘 최칠성이가 우리에게 뼈저리게 알려주네요.
오늘 밤은 주무시기 전에 자식들 전화 한 통 기다리지만 마시고, 먼저 "사랑한다" 한마디 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곁에 계신 영감님, 할멈 손 한번 꼭 잡아주시는 것도 좋겠지요.
저희는 다음 시간에도 어르신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드릴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만수무강하시옵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