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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六道輪廻) - 황금을 움켜쥔 망자, 외양간에서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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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안식일까요, 아니면 끝없는 윤회의 굴레일까요? 평생 남의 피눈물을 짜내며 부를 축적한 조선 제일의 자린고비가 저승 법정에 섰습니다. 천상부터 지옥까지, 여섯 갈래의 환생길인 '육도윤회'. 염라대왕의 서늘한 심판 앞에서 그가 향할 다음 생은 과연 어디일까요? 죽은 자들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1: 금은보화를 끌어안고 숨을 거둔 탐욕스러운 부자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그믐밤. 한양 도성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와집 안방에는 기괴하리만치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자개장이 열려 있었고, 그 앞에는 이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로 악명 높은 최만석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앙상하고 뼈만 남은 두 손은 자개장 안에서 흘러넘치는 엽전 꾸러미와 금두꺼비를 탐욕스럽게 부여잡고 있었다. 평생을 남의 논밭을 빼앗고, 굶주린 자들의 마지막 식량마저 이자로 거둬들이며 쌓아 올린 재물이었다. 병마가 그의 몸을 갉아먹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재산에 대한 집착뿐이었다.
'내 돈... 내 금붙이들... 이 아까운 것들을 두고 내가 어찌 눈을 감는단 말이냐.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저승에 갈 때도 이 금괴들은 내 입에 물고 갈 것이야...'
만석의 탐욕스러운 독백이 잦아들 무렵, 방문 밖에서 서늘하고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방 안의 호롱불이 기이하게 푸른빛으로 타오르며 일렁였다. 찰그랑, 찰그랑. 쇠사슬이 바닥을 끄는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만석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부릅떴다. 검은 도포를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한 세 명의 불청객, 저승차사들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들의 눈동자는 산 자의 것이 아니었고, 뿜어내는 기운은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최만석. 명부의 명을 받아 널 데리러 왔다. 너에게 허락된 이승의 시간은 이제 모두 끝이 났다. 미련을 버리고 오라줄을 받으라."
차사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쇳소리처럼 차갑고 무자비했다. 만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금두꺼비를 방패처럼 치켜들며 발악했다.
"누, 뉘시요! 나를 데려가다니, 가당치도 않소! 내 곳간에는 아직 쌀이 썩어나고, 땅문서가 수백 장이오!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소. 금두꺼비를 열 개, 아니 스무 개라도 쳐 줄 테니 내 수명을 십 년만, 아니 일 년만이라도 연장해 주시오!"
만석의 애원에도 차사들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제일 앞에 선 차사가 들고 있던 명부를 펼치며 비웃듯 말했다.
"어리석은 인간이로다. 이승의 재물이 저승의 강을 건너는 데 한 푼의 가치라도 있을 줄 아느냐? 네놈이 평생 남의 피눈물을 짜내어 모은 그 쇳덩어리들은, 이제 네놈의 목을 조르는 천근만근의 족쇄가 될 것이다. 가자!"
차사가 쇠사슬을 허공에 휘두르자, 만석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크게 요동쳤다. 동시에 만석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만석은 자신의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숙여보던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바닥에는 두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금두꺼비를 움켜쥔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신의 육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혼령이 되어 육신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만석은 자신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차사들의 쇠사슬에 단단히 묶여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안 돼! 내 돈! 내 집! 내가 평생을 바쳐 모은 것들인데!"
만석의 절규는 허공을 맴돌다 흩어질 뿐이었다. 한양 도성의 화려한 불빛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멀어지고, 그의 앞에는 짙은 안개로 뒤덮인 황량하고 음산한 황천길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발밑으로는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돋아나 있었고, 하늘에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다녔다. 이승에서 누렸던 권세와 부유함은 덧없이 사라지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업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야 할 공포스러운 저승길뿐이었다. 차사의 날카로운 채찍질 소리가 안개를 가르며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 2: 염라대왕의 명부전, 업경대 앞에서의 서늘한 심판
안개 낀 황천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만석의 눈앞에 거대한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 위에는 핏빛으로 붉게 물든 현판이 걸려 있었다. '명부전(冥府殿)'.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저승의 법정이었다. 거대한 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리자, 안에서는 산 자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전각의 기둥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사방에는 지옥의 불길을 형상화한 단청이 그려져 있어 보는 이의 혼을 빼놓았다.
전각의 가장 높은 곳, 검은 용이 조각된 거대한 옥좌 위에 죽은 자들의 왕, 염라대왕이 좌정하고 있었다. 염라대왕의 눈빛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 예리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산처럼 거대했다. 대왕의 좌우로는 죽은 자들의 죄를 낱낱이 기록한 두루마리를 든 판관들이 도열해 있었고, 죄인들을 형벌의 길로 인도할 옥졸들이 창과 칼을 들고 살벌하게 서 있었다. 차사들에게 끌려온 만석은 염라대왕의 그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죄인 최만석은 고개를 들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명부전 전체를 천둥처럼 뒤흔들었다. 만석은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대왕의 위엄 앞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너는 이승에서 칠십 년을 머무는 동안, 수많은 재물을 모으고 권세를 누렸다 들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네가 쌓아 올린 죄업이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니, 오늘 이곳에서 네놈의 지난 삶을 철저히 심판할 것이다."
만석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평생을 교활한 혀로 위기를 모면하며 살아온 그였다. 저승에서도 그 알량한 잔머리가 통할 것이라 착각한 그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대, 대왕마마! 참으로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그저 부지런히 일하여 정당하게 재물을 모았을 뿐이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곡식을 빌려준 것은 그들을 구휼하기 위함이었고, 이자를 받은 것은 세상의 이치이거늘, 어찌 소인에게 죄가 있다 하시옵니까! 명부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염라대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리석은 인간의 거짓말에 분노한 대왕의 입가에 차가운 비소가 번졌다.
"네 이놈! 명부전 앞에서 감히 혀를 놀려 죄를 덮으려 하느냐. 진정 네놈이 결백하다 믿는다면, 저 거울이 모든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여봐라! 당장 업경대(業鏡臺)를 대령하라!"
대왕의 호령이 떨어지자, 옥졸들이 거대한 청동 거울 하나를 만석의 눈앞으로 끌고 왔다. 업경대. 망자가 이승에서 지은 모든 선악의 행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춰주는 심판의 거울이었다. 거울 표면이 기분 나쁜 빛을 발하며 일렁이더니, 이내 만석이 이승에서 저질렀던 참혹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의 풍경이 비쳤다. 만석이 고리대금을 갚지 못하는 가난한 농부의 집을 찾아가, 마지막 남은 소 한 마리와 밥그릇까지 모조리 빼앗는 모습이었다. 농부의 아내가 바닥에 엎드려 제발 아이들이 먹을 씨앗만이라도 남겨달라 오열했지만, 거울 속의 만석은 그녀를 발로 걷어차며 싸늘하게 비웃었다.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만석의 으리으리한 대문 앞이었다. 며칠을 굶주린 어린아이가 쓰러져 구걸하고 있었지만, 만석은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를 아이가 아닌 자신이 기르는 사냥개들에게 던져주고는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가버렸다. 결국 그 아이는 그날 밤 만석의 집 담벼락 아래서 얼어 죽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끔찍한 악행들을 마주한 만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죄악이었다.
"어떠하냐, 최만석. 아직도 네놈의 재물이 정당하고 억울하다 할 텐가? 불경 구사론에 이르기를, 중생은 죽음과 동시에 그 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보에 따라 여섯 갈래의 길, 즉 육도(六道)의 세계로 떠밀려가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된다 하였다. 선을 행한 자는 천상과 인간의 길로 향하고, 악을 행한 자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고통 속으로 떨어지는 법. 네놈이 지은 탐욕과 살생의 업보가 짙고도 탁하니, 네가 걸어가야 할 윤회의 길이 얼마나 끔찍할지 짐작이나 하느냐!"
만석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살려달라 애원했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표정은 자비 한 줌 없이 차가웠다. 대왕은 옆에 선 차사를 향해 손짓하며 명을 내렸다.
"차사는 들어라. 이 어리석은 죄인이 자신이 향할 윤회의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도록, 판결을 내리기 앞서 먼저 육도의 세계 중 악도(惡道)를 두루 구경시켜 주어라!"
※ 3: 끔찍한 형벌의 지옥도와 끝없는 굶주림의 아귀도
차사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명부전을 끌려 나온 만석이 당도한 곳은 숨을 쉬기조차 힘든 뜨거운 열기와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끔찍한 공간이었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땅은 쩍쩍 갈라져 그 틈새로 시뻘건 용암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바로 육도윤회의 첫 번째 세계이자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끔찍한 형벌의 공간, 지옥도(地獄道)였다.
"이곳이 지옥도다. 살생을 즐기고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게 한 극악무도한 자들이 떨어져 억겁의 세월 동안 고통을 받는 곳이지."
차사의 서늘한 설명 너머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만석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만석이 덜덜 떨리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거대한 무쇠 가마솥이 끓고 있는 확탕지옥(鑊湯地獄)의 참상이 펼쳐졌다. 옥졸들이 날카로운 삼지창으로 망자들을 찔러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 안으로 던져 넣고 있었다. 망자들의 살점은 뼈와 분리되어 녹아내렸으나, 지옥의 형벌은 죽음으로도 끝날 수 없었다. 뼈만 남은 몸에 기이한 바람이 불면 다시 살점이 돋아나고, 옥졸들은 그들을 꺼내어 다시 가마솥에 던져 넣는 끔찍한 형벌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칼날이 숲을 이룬 도산지옥(刀山地獄)이 보였다. 산 전체가 시퍼렇게 벼린 칼날로 이루어져 있었고, 망자들은 옥졸들의 채찍에 쫓겨 그 칼날 산을 맨발로 기어올라야 했다. 발바닥이 찢어지고 손가락이 잘려나가며 흘린 피가 강을 이루어 굽이치고 있었다. 만석은 역겨운 피 냄새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바닥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살려주시오... 제발... 나는 저곳에 갈 수 없소! 저 고통을 어찌 견딘단 말이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지옥도보다 더 네놈의 본성에 어울리는 곳이 있지. 따라오라."
만석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사는 다시 공간을 비틀어 다음 목적지로 그를 끌고 갔다. 눈앞의 풍경이 일순간 어둡고 잿빛 가득한 황량한 벌판으로 변했다. 지옥도의 뜨거운 열기 대신, 이번에는 뼛속까지 시린 냉기와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육도윤회의 두 번째 세계, 끝없는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아귀도(餓鬼道)였다.
황량한 벌판 위에는 기괴하게 생긴 망자들이 수없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배는 남산만 하게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았지만, 팔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들의 목구멍이었다. 바늘구멍처럼 좁디좁은 목구멍 탓에 그들은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평생을 남의 것을 탐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자들이 환생하는 세계. 그들은 지독한 허기에 미쳐 바닥의 흙과 오물을 주워 먹으려 했지만, 음식이 입에 닿는 순간 시뻘건 불길로 변해 그들의 입안을 까맣게 태워버렸다.
'아아... 배가 고파... 물 한 모금만...'
기괴한 아귀 하나가 만석의 발목을 앙상한 손으로 부여잡으며 쉰 목소리로 애원했다. 만석은 비명을 지르며 아귀를 걷어찼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수천 마리의 아귀들이 산 자의 기운을 맡고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만석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늘 같은 목구멍에서 불을 뿜으며 다가오는 기괴한 괴물들의 행렬. 이승에서 가난한 자들을 굶겨 죽이고 자신만의 곳간을 채웠던 만석의 탐욕이, 저 아귀들의 모습과 너무도 겹쳐 보였다.
"이곳의 아귀들은 수만 년 동안 단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한 채, 터질듯한 배를 안고 영원한 굶주림 속에서 뒹굴어야 한다. 살아생전 베풀 줄 모르고 재물만 탐하던 네놈이 훗날 윤회하여 태어날 가장 유력한 곳이기도 하지."
차사의 조롱 섞인 말에 만석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영원한 고문과 영원한 굶주림. 자신이 지은 죄업의 결과가 이토록 처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석은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눈을 가린 채 미친 듯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때 한양 도성을 쥐락펴락하던 권세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끔찍한 심판 앞에 떨고 있는 가련하고 비참한 영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4: 약육강식의 축생도와 끝없는 전쟁의 아수라도
끝없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귀들의 끔찍한 울부짖음이 만석의 귓가에서 멀어질 즈음, 공간이 다시 한번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옥도의 펄펄 끓는 용암이나 아귀도의 잿빛 벌판과는 달리, 이번에는 울창하고 짙은 안개로 뒤덮인 거대한 숲과 끝없이 펼쳐진 거친 황야가 나타났다. 그러나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이라 착각한 것도 잠시, 그 숲과 황야 곳곳에서는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짐승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늘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거대한 괴조들이 핏빛 눈을 번뜩이며 땅 위의 약한 생물들을 낚아채어 허공에서 사지를 찢어발겼고, 수풀 속에서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는 포식자들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짐승들의 목덜미를 무자비하게 물어뜯어 뜨거운 피를 마시고 있었다.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맹목적인 본능만이 지배하는 잔혹한 약육강식의 세계. 바로 육도윤회의 세 번째 길인 축생도(畜生道)였다.
만석은 숲의 가장자리에 서서 온몸을 덜덜 떨며 그 아비규환의 살육전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식자로서 남의 살을 탐하던 거대한 맹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흉포한 괴물에게 물려 허리가 반동강 나는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도망치다 지쳐 쓰러진 초식동물들은 산 채로 내장이 파먹히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한 옥졸들이 거대한 채찍을 휘두르며 소와 말, 돼지와 같은 가축들을 무자비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등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매질을 당하면서도, 그 짐승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무거운 짐을 끌고 험준한 산길을 기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짐승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깊은 인간적인 원망과 회한이 담겨 있었다.
"이곳이 바로 짐승들의 세계, 축생도이다."
만석의 곁에 선 차사가 무감각한 시선으로 참상을 내려다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승에서 오직 자신의 탐욕과 식욕, 육체적인 본능만을 좇아 짐승처럼 살아간 자들. 약한 자를 짓밟고 힘으로 군림하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제 배만 불린 어리석은 인간들이 떨어지는 곳이지. 그들은 이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찢어 죽이는 끝없는 공포 속에 살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채찍 아래 평생을 뼈가 부서지도록 일만 하다가 비참하게 도살당하는 운명을 수천 번씩 반복해야만 한다."
만석은 채찍에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진 늙은 소의 슬픈 눈망울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이승에서 자신이 빼앗았던 수많은 농부들의 가축들과, 그로 인해 굶어 죽어간 어린아이들의 퀭한 눈빛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아... 정녕 저 짐승들이 과거에는 나와 같은 인간이었단 말인가... 평생을 남의 피와 땀을 쥐어짜며 살아온 내가, 죽어서 저런 말 못 하는 짐승이 되어 채찍을 맞으며 쟁기를 끌어야 한단 말인가!'
공포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만석의 목덜미를 차사가 다시 매섭게 낚아챘다.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리면 곤란하지. 아직 네놈이 보아야 할 세상이 더 남아있다."
순식간에 축생도의 안개 낀 숲이 걷히고, 천지가 붉게 타오르는 듯한 전장(戰場)의 한복판으로 그들은 이동했다. 하늘에서는 시뻘건 불덩이와 핏빛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대지는 수백만 명의 거인들이 내지르는 광기 어린 함성으로 지진이 난 듯 맹렬하게 진동했다. 이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얼굴이 세 개고 팔이 여섯 개 달린 끔찍한 형상의 수라(修羅)들이, 산처럼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의 목을 베고 심장을 찌르는 끔찍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창자가 쏟아져도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 잘린 단면에서 끔찍한 기운이 솟아나며 다시 육체가 재생되었고, 그들은 오직 상대를 죽이겠다는 맹렬한 증오와 분노만으로 다시 무기를 쥐고 돌진했다. 육도윤회의 네 번째 세계, 끝없는 투쟁과 분노의 지옥인 아수라도(阿修羅道)였다.
"살려주시오! 귀가 찢어질 것 같소! 저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날아오는 거대한 바위 파편을 피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만석이 귀를 틀어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차사는 태연하게 쏟아지는 불길을 등진 채 서늘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저들은 아수라라 불리는 자들이다. 이승에서 비록 약간의 선행을 베풀고 도덕을 지킨 적도 있으나, 그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항상 남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오만함과 투쟁심을 버리지 못한 자들이 환생하는 곳이지. 네놈 역시 평생을 남들과 비교하며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 발버둥 치지 않았느냐.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경쟁자를 짓밟기 위해 온갖 교활한 술수를 부리던 그 더러운 시기심과 분노가 바로 저 아수라들의 끔찍한 전쟁과 다를 바가 없다. 저들은 천상의 신들을 질투하여 영원히 이길 수 없는 끔찍한 전쟁을 반복하며, 억겁의 세월 동안 분노의 불길 속에서 제 살을 깎아 먹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만석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었다. 지옥의 가마솥, 아귀의 굶주림, 축생의 무자비한 살육, 그리고 아수라의 끝없는 분노와 전쟁. 그 어느 곳 하나 자신이 평생 쌓아온 죄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으로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 믿었던 그의 오만함은 철저하게 박살 나고, 오직 영혼을 갉아먹는 절대적인 절망만이 그의 가슴속에 시커멓게 차오르고 있었다.
※ 5: 희로애락의 인간도와 쾌락의 끝에 남는 천상도
끝없는 전쟁의 아우성이 귓가를 찢어놓던 아수라도의 풍경이 마치 물안개가 걷히듯 스르르 사라졌다. 만석이 두려움에 질려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뜨자, 이번에는 너무도 익숙하고 그리운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마을의 활기찬 장터. 떡 파는 아주머니의 정겨운 외침 소리, 이리저리 뛰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까지. 그토록 끔찍한 악도(惡道)를 거쳐온 만석에게 이곳은 눈물이 날 만큼 평화롭고 찬란한 세계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만석의 귓가에 차사의 조용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이 바로 네가 살다 온 세계, 육도윤회의 다섯 번째 길인 인간도(人間道)이다."
만석은 장터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풍경도 잠시, 시선을 조금만 돌리자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사의 온갖 고통들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갓 태어난 생명의 첫 울음소리에 기뻐하는 부모가 있는 반면, 바로 그 옆 골목에서는 역병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늙은이를 안고 통곡하는 자식들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슬픔,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며 구걸하는 자들의 비참함, 권력을 쥐기 위해 서로를 헐뜯고 모함하는 암투까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이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교차하며 영혼을 마모시키고 있었다.
"인간의 길은 이렇듯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곳이다. 불경에서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하여, 깊고 넓은 바다를 떠도는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수면 위로 숨을 쉬러 올라왔을 때 마침 떠다니던 구멍 난 널빤지 틈에 목이 쏙 들어갈 만큼,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이 어렵고 귀한 인연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육도의 세계 중 오직 이 인간도만이 스스로의 의지로 선악을 구별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아 윤회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허나 너는 그 귀하고 찬란한 기회를 얻고도, 짐승보다 못한 탐욕에 눈이 멀어 칠십 평생을 아귀처럼 남의 피눈물만 빨아먹으며 허비하고 말았다. 참으로 어리석고 가련한 영혼이 아닐 수 없구나."
차사의 꾸짖음에 만석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살아생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했던 삶의 무게와 의미가 이제야 뼛속 깊이 사무쳐 왔다.
'그렇구나...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황금과 땅문서들은 모두 헛된 신기루에 불과했구나. 가난한 자에게 밥 한 술 베풀고, 헐벗은 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그 작은 선행이 곧 나를 구원하는 동아줄이었거늘. 어찌하여 나는 그 눈먼 거북이의 기적을 그토록 더럽고 추악하게 짓밟아버렸단 말인가!'
만석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사이, 차사는 다시 한번 쇠사슬을 당겨 그를 마지막 세계로 이끌었다. 순간, 인간도의 온갖 소음과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성스러운 향기가 코끝을 감싸 안았다. 구름 위에 지어진 거대한 황금빛 궁전들, 그 사이로 흐르는 은빛 강물, 그리고 천상의 악기들이 스스로 연주하며 빚어내는 황홀한 선율. 아름다운 천녀들이 꽃잎을 뿌리며 허공을 날아다니고, 온몸에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존재들이 고통과 슬픔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거닐고 있었다. 육도윤회의 가장 높은 곳이자, 가장 큰 복을 누리는 천상도(天上道)였다.
황홀경에 빠진 만석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아아...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극락이로구나. 나같이 재물이 많고 귀한 신분이었던 자라면 응당 이런 훌륭한 곳에 태어나야 마땅하지 않겠소? 차사님, 제발 대왕마마께 고하여 나를 이 천상도에 머물게 해주시오!"
아직도 자신의 헛된 망상을 버리지 못한 만석을 보며 차사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어리석은 놈. 천상도는 이승에서 십선(十善)을 행하고 남을 위해 끝없이 베풀며 맑은 공덕을 쌓은 자들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너 같은 악귀가 감히 탐낼 곳이 아니지. 그리고 똑똑히 알아두어라. 이 화려한 천상도조차 영원한 구원의 안식처는 결코 아니다. 이곳 역시 육도윤회의 수레바퀴 안일뿐."
차사가 가리킨 곳을 보자, 황금 궁전의 한구석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찬란한 빛을 내뿜던 한 천인(天人)의 화관에서 꽃이 시들어 검게 변하고 있었고, 향기롭던 그의 몸에서는 썩은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고, 겨드랑이에서는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평생을 누려온 천상의 쾌락이 끝나는 순간, 즉 그가 전생에 쌓았던 선업의 유효기간이 모두 소멸해 버린 것이다. 죽음을 앞둔 천인은 자신이 곧 끔찍한 지옥이나 짐승의 몸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뼈를 깎는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보았느냐. 천상의 쾌락이 클수록, 그것을 잃고 악도로 떨어져야 하는 천인오쇠(天人五衰)의 절망감은 지옥의 형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다. 네놈이 평생 모은 재물을 이승에 두고 오며 느꼈던 그 상실감의 수만 배에 달하는 고통이지. 선업이 다하면 부처조차도 그들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법. 이것이 바로 선악의 인과응보가 만들어내는 잔혹하고도 공평한 윤회의 사슬이다."
천상에서조차 영원한 평안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만석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찬란한 황금 구름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지옥의 끔찍한 육체적 고통부터 천상의 잔인한 정신적 고통까지.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단 한 곳도 없는 윤회의 거대한 감옥 앞에서, 한낱 먼지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두렵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염라대왕의 서늘하고도 절대적인 심판뿐이었다.
※ 6: 마침내 내려진 염라대왕의 판결과 윤회의 수레바퀴
천상의 황홀한 선율과 몰락하는 천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안개처럼 흩어지고, 만석의 눈앞에는 다시 핏빛 현판이 걸린 명부전의 무거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부터 천상까지 육도의 모든 끔찍하고도 기막힌 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만석의 영혼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는 거대한 용이 조각된 옥좌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 앞에 마치 뼈대만 남은 허수아비처럼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승에서 그토록 꼿꼿하게 쳐들고 다니던 오만한 고개는 이제 바닥의 먼지 속에 깊이 처박혀 있었고, 금두꺼비를 긁어모으던 두 손은 살려달라는 애원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기만 했다. 명부전 안에는 죄인의 숨소리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겁고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옥좌의 염라대왕이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이며, 산을 무너뜨릴 듯한 묵직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최만석. 육도의 세계를 두루 돌아보니 과연 어떠하더냐. 네가 이승에서 쌓아 올린 알량한 금은보화가, 지옥의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서도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니면 아귀의 타오르는 목구멍을 식혀줄 수 있을 것 같더냐."
만석은 이마를 명부전의 차가운 돌바닥에 찧으며 피눈물을 쏟아냈다.
"대왕마마...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참으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사옵니다. 재물에 눈이 멀어 굶주린 이웃의 피눈물을 모른 척하였고, 이자를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죄 없는 목숨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이제야 제가 지은 죄업의 무게가 저 수미산보다 무겁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사옵니다. 부디, 부디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푸시어 저를 인간의 세계로 되돌려 보내주신다면, 제 모든 전 재산을 털어 헐벗은 자들을 구휼하고 평생 부처님을 모시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겠사옵니다!"
만석의 뒤늦은 참회와 처절한 절규가 전각을 울렸지만, 대왕의 좌우에 도열한 판관들과 옥졸들의 표정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염라대왕은 서늘한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린 만석을 내려다보며 일갈했다.
"가소로운 소리! 죽음의 문턱을 넘고 지옥의 형벌을 마주하고 나서야 흘리는 눈물은 한낱 짐승의 공포에 불과할 뿐, 결코 진정한 참회라 할 수 없다! 이승에서 네놈의 발길질에 채여 얼어 죽은 어린아이의 한 맺힌 울음소리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네놈에게 소를 빼앗겨 굶어 죽은 늙은 농부의 피눈물이 황천의 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거늘! 어찌 그 엄청난 업보를 얄팍한 세 치 혀로 덮으려 하느냐!"
대왕의 호통에 벼락이 치듯 명부전 전체가 요동쳤다. 대왕은 앞에 놓인 거대한 명부의 기록을 쫙 펼치며 최후의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하늘의 법도가 땅에 내리꽂히는 듯 단호하고 무자비했다.
"죄인 최만석은 똑똑히 들으라! 너는 수만 번의 윤회를 거쳐 맹구우목의 기적과도 같은 귀한 인간의 몸을 받아 이승에 났음에도 불구하고,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기는커녕 평생을 아귀와 다름없는 탐욕과 축생과 다름없는 무자비함으로 세상을 어지럽혔다! 따라서 네놈의 다음 생에 천상도와 인간도의 문은 영원히 굳게 닫혔음을 선언한다!"
만석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은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떨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대왕의 판결이 매섭게 이어졌다.
"본디 네놈이 지은 악업의 무게만으로는 지옥도의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거나 아귀도로 떨어져 억겁의 세월 동안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이 마땅하나! 네놈이 이승에서 남의 피땀을 갈취하여 배를 불린 빚이 너무도 많고 무거우니, 그 빚을 모두 갚기 전에는 지옥의 고통조차 허락할 수 없다. 이에 본 대왕은 죄인 최만석에게 육도윤회의 세 번째 길인 축생도(畜生道)로 환생할 것을 명한다!"
축생도. 채찍을 맞으며 살이 찢기고 평생토록 짐을 끌어야 했던 그 불쌍한 소들의 비참한 눈망울이 만석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너는 눈도 뜨지 못한 미물로 태어나, 네놈이 이승에서 피눈물을 짜내며 재물을 빼앗았던 바로 그 가난한 자들의 외양간에 짐승의 몸으로 매이게 될 것이다. 그들의 논밭을 갈며 네놈이 빼앗았던 곡식의 낱알 수만큼 평생토록 뼈가 부서져라 쟁기를 끌어야 할 것이며, 살이 찢기는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결코 사람의 언어로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할 것이다! 여봐라! 당장 이 죄인을 끌고 가 윤회의 수레바퀴에 던져 넣어라!"
판결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시무시한 형상을 한 옥졸들이 달려들어 만석의 팔다리를 꺾어 잡았다.
"안 돼! 차라리 지옥 불에 태워주시오! 짐승만은! 말 못 하는 짐승이 되어 채찍을 맞는 것만은 제발 거두어 주시옵소서! 대왕마마!"
만석은 발악하며 절규했지만, 옥졸들의 무자비한 억센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명부전의 거대한 뒷문이 열리며, 우주를 집어삼킬 듯 웅장하고 거대한 톱니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크기의 육도윤회의 수레바퀴였다. 여섯 개의 갈래로 나뉜 거대한 바퀴가 시뻘건 안개를 뿜어내며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옥졸들은 발버둥 치는 만석의 영혼을 번쩍 들어 올려, 어둡고 축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축생도의 구멍 속으로 가차 없이 내던져 버렸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만석의 영혼은 끝없는 심연의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 7: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소로 환생한 남자의 첫 울음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추락하던 만석의 영혼은 어느 순간 끈적하고 따뜻한 액체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승에서의 기억과 저승에서의 끔찍한 공포가 뇌리를 어지럽게 맴돌았지만, 자신의 형체를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팔다리를 움직이려 발버둥 칠 때마다 사방을 둘러싼 좁고 답답한 막이 그를 강하게 옥죄어 왔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극에 달하던 바로 그 순간, 살을 찢는 듯한 강렬한 압박감과 함께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축축하고 차가운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만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겨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시야가 흐릿하고 세상이 기괴하게 왜곡되어 보였다. 코끝에는 짐승의 분뇨 냄새와 짚단이 썩어가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만석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아니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 모든 것이 끔찍한 악몽이었던 거야! 나는 이 고을 제일의 부자 최만석이다!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어서 따뜻한 물을 데워오고 내 비단옷을 내오너라!'
만석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하인들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음메에에엑-!"
그것은 갓 태어난 송아지의 구슬프고도 기괴한 울음소리였다. 경악한 만석이 황급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비단옷을 걸치고 있던 양반의 앙상한 몸통 대신, 황갈색의 거칠고 축축한 털로 뒤덮인 네 개의 다리가 보였다. 발끝에는 사람의 발가락 대신 크고 투박한 검은 발굽이 달려 있었다. 소였다. 염라대왕의 판결대로, 그는 이승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비천한 짐승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만석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낡고 해진 무명바지를 입은 늙은 농부였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고, 거친 손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는 전생의 만석이 고리대금을 구실로 마지막 남은 밥그릇과 씨암탉까지 모조리 빼앗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바로 그 가난하고 불쌍한 농부였다.
농부는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송아지를 발견하고는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이고, 세상에! 드디어 우리 늙은 소가 이리 튼실한 새끼를 낳았구나! 하늘도 무심치 않으시지. 그 독사 같은 최만석 영감탱이가 죽어버리고 우리 집안에 이런 경사가 생기다니. 며칠을 굶어 죽을 뻔했는데, 이 녀석이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복덩이가 분명하다!"
농부는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만석, 아니 새로 태어난 송아지의 축축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전생이었다면 감히 천한 상놈의 손길이라며 노발대발했을 만석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 손길에 단 한 치의 반항조차 할 수 없는 가련한 가축에 불과했다. 농부의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가 뱉어내는 말은 만석의 영혼에 무시무시한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 어서 무럭무럭 자라거라. 네놈 덩치가 커지면 저기 돌밭부터 개간해야 한단다.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뼈가 부서져라 일해서, 이 집안의 빚을 갚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할 거다. 말 안 듣고 꾀를 부리면 이 할애비 채찍이 불을 뿜을 테니 단단히 각오하고 말이야, 허허허!"
외양간 한구석에는 송아지의 목에 채워질 무겁고 날카로운 나무 멍에와, 가시가 돋친 가죽 채찍이 서늘하게 걸려 있었다. 그것은 만석이 평생 이승에서 지은 탐욕과 악행의 업보이자, 영원히 갚아야 할 지독한 빚의 무게였다.
'안 돼... 싫다... 내가 왜 저 천한 놈을 위해 평생 쟁기를 끌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최만석이다! 돈이라면 산처럼 쌓아둔 부자란 말이다! 제발 누구든 내 말을 좀 들어다오!'
만석은 목이 터져라 절규하며 몸부림쳤지만,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은 그저 짐승의 구슬프고 기나긴 울음소리뿐이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 외양간의 문턱조차 스스로 넘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짐승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굵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짚단 위로 스며들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둔다는 육도윤회의 절대적인 법칙. 돌고 도는 인과응보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탐욕스러웠던 한 인간의 영혼은 가장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짐승의 굴레를 쓴 채 그렇게 기약 없는 속죄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평생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며 모은 재물도, 죽음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습니다. 천상에서 지옥까지, 자신이 뿌린 씨앗대로 거두어야 하는 육도윤회의 거대한 수레바퀴! 짐승으로 환생한 구두쇠 만석의 기막힌 최후가 우리 삶의 진짜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의 사후세계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업보를 쌓기 전에 지금 바로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꾹 눌러주세요! 다음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