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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은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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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한평생 피도 눈물도 없이 재산만 긁어모은 천하의 만석꾼 최 부자. 마침내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아이고, 이를 어쩐답니까? 산해진미를 차려놓은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습니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된 최 부자, 49일 동안 자신이 버린 사람들을 찾아가며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돈이면 다인 줄 알았던 한 남자의 뒤늦은 눈물과 참회, 지금 시작합니다.

    ※ 1: 텅 빈 장례식장, 그리고 영혼이 된 최 부자

    조선 팔도에서 그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가 없다는 천하의 만석꾼, 최 부자의 대궐 같은 기와집에 구슬픈 곡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솟을대문에는 하얀 근조등이 매달렸고, 마당에는 수십 개의 차일이 쳐졌습니다.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고, 값비싼 홍어와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졌지요. 평소 최 부자의 위세를 생각한다면, 고을의 사또는 물론이고 인근 고을의 내로라하는 부자들과 유지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삼일장이 치러지는 내내, 그 넓은 마당을 밟고 지나간 조문객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향냄새만 짙게 배어나는 빈소에는 돈을 주고 사 온 곡쟁이들의 기계적인 울음소리만이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습니다.

    '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내가 뉘더냐! 이 고을 땅의 절반이 내 것이고, 관아의 사또조차 명절이면 내게 고개를 숙였거늘! 어찌 내 가는 길에 술 한 잔 올리는 놈이 단 한 놈도 없단 말이냐!'

    자신의 화려한 관 위에 둥둥 뜬 채로 이 모든 기막힌 참상을 내려다보던 최 부자의 영혼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이 텅 빈 장례식장이 자신의 얄팍한 체면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격멸감을 느꼈습니다.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을 견디며 한 푼 두 푼 악착같이 긁어모은 재산이었습니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소작농의 문짝을 뜯어오고, 한겨울 홑적삼만 입은 빚쟁이의 솥단지까지 빼앗아 쌓아 올린 금자탑이었습니다. 그렇게 독하게 모은 돈으로 고을의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바치며 인맥을 다졌으니, 자신이 죽으면 온 고을이 슬픔에 잠겨 통곡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최 부자의 피붙이라고는 먼 친척 조카뻘 되는 사내 둘뿐이었는데, 그들조차 상복을 입고 곡을 하기는커녕 빈소 구석에 모여 앉아 수군거리기 바빴습니다.

    "이보게, 저 영감이 꿍쳐둔 금괴가 뒷산 어딘가에 묻혀 있다던데 자네는 들은 바 없는가?"
    "쉿, 목소리 낮추게. 이 장례만 대충 끝내고 나면 이 집문서부터 내 앞으로 돌려놓을 참이네. 평생 돈 귀신으로 살더니, 결국 지 무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불쌍한 늙은이 아니련가."

    그들의 속삭임을 들은 최 부자의 영혼은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를 내뱉으며 그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그의 주먹은 친척 조카의 몸을 허무하게 통과해버릴 뿐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분노를 보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네 이놈들! 내 돈이다! 내가 평생을 바쳐 모은 내 피 같은 돈이다! 당장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발악하던 최 부자의 영혼 등 뒤로, 갑작스럽게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한기가 몰아닥쳤습니다. 빈소의 촛불들이 일제히 파르르 떨리더니 푸른빛으로 변했습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최 부자의 눈앞에는, 칠흑 같은 검은 도포를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한 저승사자가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영혼의 이름을 적은 붉은 명부가 들려 있었지요.

    "최 만석. 이승에서의 네 수명은 이미 다하였다. 억겁의 세월 동안 지옥불에서 타오를 준비는 되었느냐."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텅 빈 빈소의 바닥을 긁는 듯 묵직하고 섬뜩했습니다. 최 부자는 뒷걸음질을 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평생 돈 앞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인 적 없는 그였지만, 죽음의 사자 앞에서는 한낱 나약한 영혼에 불과했습니다.

    "사, 사자님! 억울합니다! 제가 어찌 지옥에 간단 말씀이십니까! 저는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았을 뿐, 제 손으로 사람을 쳐 죽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보십시오, 제 장례식은 이렇게 초라합니다. 이승에서 억울하게 외면당한 저를 어찌 지옥으로 끌고 간단 말씀이십니까!"

    최 부자의 구차한 변명에 저승사자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 웃음소리에는 지독한 멸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영혼이로다. 네놈은 사람을 칼로 찌르지 않았을 뿐, 탐욕이라는 비수로 수백 명의 가슴을 난도질하였다. 이 텅 빈 장례식장이 바로 네가 이승에서 뿌린 씨앗의 열매가 아니더냐. 황금으로 산을 쌓았으나 덕(德)은 티끌만큼도 쌓지 못한 자. 구천을 떠도는 네놈의 몰골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구나."

    저승사자는 소매에서 차가운 검은 쇠사슬을 꺼내 최 부자의 목에 걸려다, 문득 동작을 멈추고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좋다. 염라대왕님 앞으로 널 끌고 가기 전, 49일의 시간을 주마."

    "사, 십 구일이요...?"

    "그렇다. 영혼이 되어 이승을 맴도는 49일 동안, 네가 평생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아라. 네가 무참히 내쫓고, 외면하고, 짓밟았던 자들이 지금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그 시간이 끝나면, 지옥의 문이 널 향해 입을 벌릴 것이다."

    저승사자의 모습은 한 줄기 검은 안개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홀로 남겨진 최 부자의 영혼은 자신의 텅 빈 빈소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향 연기만이 무심하게 피어오르는 그곳은, 그가 평생을 바쳐 지어 올린 거대한 무덤 그 자체였습니다. 최 부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닫힌 대문을 통과해, 스산한 밤바람이 부는 골목길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 2: 병든 몸으로 쫓겨났던 충직한 머슴, 돌쇠의 초가집

    최 부자의 영혼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가장 먼저 발길을 향한 곳은 고을 변두리에 자리 잡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흙벽은 여기저기 허물어져 찬 바람이 숭숭 새어 들어왔고, 지붕의 볏짚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곳은 바로 최 부자의 집에서 무려 30년이나 머슴살이를 했던 돌쇠의 집이었습니다.

    영혼이 되어 초가집 마당에 선 최 부자의 머릿속으로, 3년 전 어느 매서운 겨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돌쇠는 십 대 어린 나이에 최 부자네 집에 들어와, 소처럼 일하며 평생을 바쳤습니다. 최 부자의 재산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데에는 돌쇠의 부서진 어깨와 굽은 허리가 큰 몫을 했지요. 그러나 3년 전, 돌쇠가 심한 폐병에 걸려 며칠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최 부자는 안면을 싹 바꿨습니다. 병원비는커녕, 일을 못 하는 식충이를 거둘 수 없다며 한겨울 눈보라 속으로 돌쇠를 매정하게 내쫓아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나갈 때 녹슨 낫 하나를 챙겨 나갔다며 도둑 누명까지 씌워, 그동안 모아두었던 새끼줄 값마저 단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놈의 원망 어린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쯧, 보나 마나 이 다 썩어가는 집구석에서 내 욕을 퍼부으며 피를 토하고 죽어갔겠지.'

    최 부자는 내심 돌쇠의 비참한 최후를 기대하며, 아니, 자신을 원망하며 망가져 있을 돌쇠를 보며 작은 위안이라도 얻으려는 듯 방문을 쓰윽 통과해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방 안의 풍경은 최 부자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비좁고 누추한 방 안이었지만, 방 한가운데 놓인 작은 화로에는 숯불이 빨갛게 타오르며 훈훈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돌쇠가 비록 굽은 등으로 앉아 있었지만, 아주 평온한 얼굴로 짚신을 꼬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여덟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손자가 화로에 구운 알밤을 까먹으며 꺄르르 웃고 있었습니다. 가난의 흔적은 역력했으나, 그 좁은 방 안에는 최 부자의 대궐 같은 집에서는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온기와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이거 드셔보세요. 밤이 아주 달고 맛있어요!"
    "오냐, 오냐. 우리 강아지가 까주니 꿀보다 더 달구나.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돌쇠가 손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최 부자의 영혼은 왠지 모를 이질감과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자신이 내쫓은 머슴이 이렇게 평화롭게 웃으며 살고 있다니, 배알이 꼴리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려오는 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손자가 오물오물 밤을 씹으며 돌쇠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이 그러던데, 저기 저 큰 기와집에 사는 욕심쟁이 최 부자 영감이 죽었대요. 할아버지를 한겨울에 내쫓았던 아주 나쁜 영감쟁이잖아요. 할아버지도 기분 좋으시죠?"

    아이의 순진한 물음에 방 안의 공기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최 부자의 영혼은 흠칫 놀라 돌쇠의 입술만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보나 마나 '잘 죽었다, 천벌을 받은 것이다'라며 춤이라도 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돌쇠에게 저지른 악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돌쇠는 손에 쥐고 있던 짚풀을 조용히 내려놓고는,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니다, 아가. 기분 좋기는커녕... 그저 참으로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예? 할아버지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불쌍해요?"

    "그래. 그 영감님은 평생을 돈이라는 차가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단다. 금은보화는 산처럼 쌓아두었을지언정,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그 따뜻함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으니 그 얼마나 사무치게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었겠느냐.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곁에서 진심으로 손을 잡아줄 이 하나 없었을 터이니... 부자로 죽었으나 마음은 천하제일의 거지였던 게지."

    돌쇠의 담담한 목소리는 최 부자의 가슴에 벼락처럼 내리꽂혔습니다. 저주와 쌍욕이 날아올 줄 알았던 돌쇠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깊은 연민과 동정이었습니다. 돌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구석에 놓인 찌그러진 사기그릇에 깨끗한 정화수를 한가득 떠 왔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마당 쪽을 향해 조용히 물그릇을 내려놓으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모진 주인으로 모셨으나, 그래도 내 삼십 년 청춘을 보낸 집의 어르신이었소이다. 이승에서의 악업은 모두 내려놓으시고, 부디 저승에서는 돈 걱정 없이 평안히 잠드시옵소서."

    자신을 쓰레기처럼 버린 주인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돌쇠의 굽은 등을 보며, 최 부자의 영혼은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텅 빈 자신의 장례식장이 떠올랐습니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빈소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쓰러져가는 이 낡은 초가집 앞마당에 놓인 차가운 맹수 한 그릇만이, 이승에 남겨진 자신을 향한 유일하고도 진실한 조문이었습니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며 살아온 것이냐. 짐승처럼 부려 먹고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저 종놈이... 나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니...'

    최 부자는 평생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혼의 눈물은 차갑고 투명했지만, 그 방울방울에는 뼈를 깎는 듯한 후회와 부끄러움이 응어리져 있었습니다. 손을 뻗어 돌쇠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잡아보고 싶었지만, 그의 투명한 손은 그저 허공을 저을 뿐이었습니다. 49일의 시간 중 첫 번째 밤, 최 부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가장 값진 보물을 자신이 제 발로 걷어차 버렸음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소리 없는 오열을 삼켰습니다.

    ※ 3: 흉년에 외면당한 이웃, 김 서방네의 차가운 눈물

    돌쇠의 집을 나선 최 부자의 영혼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밭고랑을 지나 이웃 마을로 흘러갔습니다. 영혼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가슴속에는 돌덩이를 얹은 듯한 뻐근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마을 어귀에 위태롭게 서 있는 김 서방네 흙집이었습니다.

    문풍지가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최 부자는 5년 전 자신을 찾아왔던 김 서방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해는 온 마을에 지독한 흉년이 들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이웃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거나 죽어 나갈 무렵, 김 서방이 최 부자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땟국물이 흐르고 있었고, 눈은 절박함으로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대감마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 어린 자식이 며칠째 굶어 열병까지 얻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마당 구석에 쥐가 파먹다 버린 썩은 좁쌀이라도 좋으니, 딱 한 됫박만 꾸어주시면 제 평생을 바쳐 은혜를 갚겠사옵니다. 제발 우리 막내 좀 살려주십시오!"

    김 서방은 돌바닥에 이마가 찢어지도록 절을 하며 매달렸습니다. 최 부자의 창고에는 수년 동안 묵혀둔 쌀과 곡식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쥐들이 파먹고 남아도는 곡식 한 줌이면 그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 시절의 최 부자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습니다.

    "네 이놈! 내가 너 같은 거지 적선하라고 밤낮으로 돈을 모은 줄 아느냐! 오늘 네놈에게 좁쌀 한 됫박을 내어주면, 내일은 온 동네 거지 떼가 내 대문 앞을 진치고 앉을 것이다. 당장 이 더러운 놈을 끌어내라!"

    최 부자의 하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내쫓긴 김 서방. 며칠 뒤, 그의 품에서 막내아이는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무덤 앞에서 하늘을 향해 피눈물을 토해내던 김 서방의 통곡 소리가, 영혼이 된 최 부자의 귓가에 지금도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난 그저 내 쌀독이 무사한 것에 안도했었지. 악귀 같은 내 놈의 욕심이 그 어린 목숨을 앗아간 것이나 다름없구나...'

    죄책감에 숨이 막혀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최 부자의 영혼은 김 서방네 부엌으로 조심스레 스며들었습니다. 부엌에는 희미한 등잔불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고, 김 서방과 그의 아내가 마주 앉아 낡은 솥단지에서 삶은 고구마 몇 알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옹색한 삶이었지만, 두 부부의 표정에는 독기나 절망 대신 고단함을 달래는 애틋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때, 김 서방의 아내가 고구마 하나를 반으로 갈라 남편에게 내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소식 들으셨소? 고개 넘어 최 부자 영감이 죽었다지 뭡니까. 그런데 그 잘난 장례식장에 조문객 하나 없이 파리가 날린다더군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하늘이 천벌을 내린 거라며 쑥덕거리던데..."

    아내의 말에 고구마를 받아 들던 김 서방의 손이 멈칫했습니다. 그의 거친 얼굴 위로 5년 전 죽은 막내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김 서방은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죽은 자를 두고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하지만... 나는 그 영감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소. 내가 한을 품은 것은 그 영감이 부자여서가 아니오. 내 아이가 굶어 죽어가던 그 순간, 그의 창고에서 썩어나가던 그 수많은 곡식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오. 돈과 쌀이 사람의 목숨보다 귀했던 그 잔인하고 차가운 심장이,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원망스럽소."

    아내 역시 앞치마로 눈가를 훔치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영감이 딱 한 움큼의 동정이라도 베풀었다면... 우리 불쌍한 막내둥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불쌍한 우리 아가..."

    부부의 조용한 울음소리가 좁은 부엌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최 부자의 죽음을 통쾌해하며 저주하는 대신, 최 부자의 지독한 이기심 때문에 스러져간 자신들의 아이를 그리워하며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최 부자의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금괴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도, 한 생명을 살릴 한 줌의 쌀을 아까워하다니! 나는 짐승만도 못한 악귀였구나!'

    최 부자의 영혼은 김 서방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두 손을 싹싹 비며 살려달라고,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습니다.

    "김 서방! 내가 잘못했네! 내가 죽일 놈이야! 내 텅 빈 집안의 창고를 모두 부수고 그 쌀을 다 가져가게! 내 전 재산을 줄 테니 제발 그 흐르는 눈물을 거두어주게! 제발!"

    하지만 영혼의 처절한 참회의 외침은 이승의 공기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최 부자가 허공을 향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김 서방 부부의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는 없었습니다. 금과 은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만석꾼은, 자신이 밟아버린 타인의 상처 앞에서는 황금 수만 냥도 한 줌의 재보다 못하다는 무서운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최 부자의 영혼 위로, 49일 중 두 번째 밤이 무겁고 차갑게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 4: 조강지처를 버린 대가, 삯바느질하는 아내의 주름진 손

    구천을 떠도는 영혼에게 주어진 마흔아홉 날의 시간은, 매일 밤 최 부자의 오만한 영혼을 낱낱이 갈기갈기 찢어놓는 무자비한 형벌의 연속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외면했던 마을의 병자들, 고리대금으로 문전옥답을 빼앗겨 뿔뿔이 흩어진 소작농 가족들의 팍팍하고 눈물겨운 삶을 하나하나 목격하며 밤마다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참혹한 광경들조차도, 49재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찾아간 한 허름하고 외진 사립문 앞에서 마주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맞닥뜨린 가장 끔찍하고 견디기 힘든 절망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고을 외곽, 칡넝쿨과 이끼가 잔뜩 낀 무너져가는 담장 너머로 서늘하고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조그만 마당이 보였습니다. 그 초라한 마당 한구석, 문풍지가 다 찢어진 비좁은 토방 마루에는 낡고 해진 무명 치마를 입은 백발의 노파가 한겨울의 밤을 지새우며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굽은 등에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얼어붙은 손끝으로 힘겹게 바늘귀를 꿰는 그녀의 손마디는 오랜 세월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마치 거친 소나무 옹이처럼 굵게 튀어나와 있었지요. 최 부자의 영혼은 그 쓸쓸하고 굽은 등을 보는 순간,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듯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여... 여보... 당신이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험한 꼴을 하고 있단 말이오...'

    호롱불빛에 비친 그 늙고 초라한 여인은 다름 아닌, 최 부자가 무려 30년 전에 단 한 푼의 재산도 쥐여주지 않고 매정하게 내쫓았던 그의 헌신적인 조강지처, 옥분이었습니다.

    최 부자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끼니를 걱정하던 젊은 시절, 옥분은 몰락하긴 했으나 엄연한 양반집 규수라는 신분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직 그 사람 하나만을 믿으며 가난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피가 나도록 삯바느질을 하고, 남의 집 허드렛일과 밭일을 도맡아 하며 최 부자가 훗날 장사 밑천을 모을 수 있도록 자신의 뼈와 살을 깎는 피땀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최 부자가 본격적으로 고리대금과 객주 장사로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고을의 유지로 행세하기 시작하자, 옥분의 투박해진 손과 햇볕에 검게 그을려 주름진 얼굴은 그의 눈에 가시처럼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만석꾼의 안방마님 자리에 앉히기엔 너무 촌스럽고 볼품없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비열한 핑계를 댔지만, 실상은 그녀가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핑곗거리였지요. 최 부자는 결국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옥분을 추운 겨울날 빈손으로 매몰차게 내쫓아버리고, 젊고 교태 부리기 좋아하는 화려한 기생 출신의 첩들을 줄줄이 안방으로 들이며 방탕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내 손으로 내쫓은 뒤 지난 삼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거늘... 내가 던져준 끔찍한 가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이승의 끝자락에서 이토록 처절하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줄이야...'

    영혼이 되어 마주한 아내의 노년은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화려한 기와집 안방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최고급 비단옷을 입고 수십 명의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평안한 노후를 보내야 마땅할 여인이, 자신의 손으로 일군 피 같은 재산을 모두 탐욕스러운 첩들에게 빼앗긴 채 끼니를 걱정하며 밤을 새워 남의 옷을 깁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옥분의 이웃집에 사는 마음씨 착한 젊은 아낙네가 조그만 소쿠리를 들고 삐걱거리는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이 추운 늦은 밤까지 삯바느질하시느라 고생이 참으로 많으십니다요. 이거, 저희 시어머니가 저녁에 쑨 호박죽인데, 날이 더 차가워져 꽁꽁 얼기 전에 어서 좀 드시구려."
    "아이고, 우리 새댁. 매번 이렇게 늙은이 끼니를 챙겨주며 신세를 지게 해서 이 은혜를 다 어찌 갚누. 고맙네, 참으로 고마워."

    젊은 아낙네는 마루 끝에 조심스레 걸터앉으며,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답답한 울분을 토해내듯 깊은 한숨을 섞어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속이 다 타들어가고 천불이 나서 그럽니다요. 그 쳐죽일 돈 귀신 최 부자 영감이 며칠 전에 비명횡사했다지 않습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통쾌해하는데, 들리는 소문엔 그 영감이 들인 표독스러운 첩년들이랑 평소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먼 친척 놈들이 벌써부터 그 어마어마한 금은보화와 집문서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장례식장 한가운데서 멱살잡이를 하며 관아에 소송질을 벌이고 난리가 났답니다. 정작 그 엄청난 재산의 절반은 할머니가 젊은 시절 밤새 피땀 흘려 만들어준 밑천으로 일군 것인데... 할머니가 당장이라도 관아로 찾아가서 사또에게 정당하게 조강지처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찌 저런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이 할머니의 피눈물을 가로채게 두신단 말입니까!"

    새댁의 분통 터지는 말은 백번 천 번 지당하고 옳은 말이었습니다. 허공에 떠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 부자의 영혼 역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분노의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래, 맞아! 새댁의 말이 다 맞소! 내 텅 빈 빈소를 지키며 향 하나 피우지 않고 돈 냄새만 맡으며 쌈박질만 하던 그 더러운 거머리 같은 놈들에게 내 피 같은 돈을 뺏길 수는 없지! 여보, 당장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관아로 달려가 소장을 내시오! 당신이 내 곁에서 온갖 고생을 다 했던 진짜 조강지처라는 걸 온 동네 어르신들이 다 증언해 줄 것이오! 그 돈은 다 당신 것이란 말이오!'

    최 부자는 옥분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하지만 옥분은 바느질하던 거친 손을 조용히 멈추고, 밤하늘에 떠 있는 맑고 고요한 보름달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아주 희미하고 쓸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미소에는 놀랍게도 최 부자를 향한 원망도, 화려한 과거에 대한 미련도, 산더미 같은 재산을 향한 탐욕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새댁, 참으로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그 영감의 재산에 단 한 톨의 미련도 없네. 그 영감이 평생 사람들을 짓밟고 모은 돈은 사람을 살리고 온기를 나누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숨통을 조이고 이웃의 피를 빨아먹어 쌓아 올린 끔찍하고 저주받은 돈이야. 그 독기가 가득한 돈을 두고 서로 물어뜯는 그 아귀다툼의 현장으로, 내가 왜 내 발로 그 더러운 지옥불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내 영혼을 더럽히겠는가."

    "하지만 할머니! 그렇게 억울하게 맨몸으로 쫓겨나 뼈가 부서지도록 평생을 고생하셨는데... 그 영감이 조금도 밉지도 않으십니까? 천벌을 받은 거라 속 시원하지도 않으시냔 말입니다!"

    "밉지 않았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겠지. 수십 년을 가슴 한가운데 무거운 돌덩이를 얹고 살며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네. 허나... 만석꾼 부자로 살면서도 늘 누군가 자신의 재산을 뺏어갈까 봐 사람을 믿지 못해 두려움에 떨며, 두 눈에 독기를 품고 살았던 그 사람의 퀭한 두 눈동자가... 나는 가끔 이 밤이 되면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지기도 했어. 돈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그 불쌍한 사내를 어찌 원망만 하겠누."

    옥분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떨리는 손으로 마루 옆에 놓인 작은 낡은 나무 궤짝을 조심스레 열어, 겹겹이 고이 싸둔 빛바랜 무명 저고리 하나를 꺼내어 자신의 품에 안았습니다. 그것은 무려 30년 전, 젊고 가난했던 최 부자가 장터에서 지게를 지고 푼돈을 벌어 돌아오며 난생처음으로 아내인 옥분에게 수줍게 내밀며 사다 주었던, 세상에서 가장 값싼 무명 저고리였습니다.

    "나는 평생 이 낡고 해진 저고리 하나만 있으면 족하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하여 보리죽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지만, 추운 겨울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밤을 지새우며, 내 손을 꽉 잡고 눈물을 흘리며 평생 호강시켜 주겠다, 고맙다 말해주던 그 젊고 다정했던 나의 서방님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으니까. 나는 피 냄새나는 만석꾼 최 부자의 더러운 돈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던 그 가난하고 순수했던 서방님과의 눈부신 추억만 내 가슴에 간직하고 조용히 살다 갈 참이네."

    옥분의 덤덤하고도 한없이 속 깊은 고백에, 최 부자의 영혼은 거대한 쇠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엄청난 충격과 회한에 휩싸여 바닥으로 허물어졌습니다. 평생 동안 그 수많은 엽전 뭉치와 금은보화, 그리고 온갖 치장으로 젊음을 뽐내던 첩들을 곁에 두고도, 잠자리에 들 때면 단 한 번도 채워지지 않고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고독과 공허함의 진짜 이유를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잃어버렸던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고 나의 밑바닥까지 믿어주었던 이 사람의 따뜻한 눈빛이었어... 나는 천하를 다 얻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했던 눈부신 보석을 내 발로 차서 시궁창에 처박아버린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등신이었어!'

    최 부자는 차가운 흙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가슴을 미친 듯이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평생 남의 피눈물을 뽑아가며 뼈 빠지게 모은 금은보화가 한낱 길가의 돌멩이나 쓰레기처럼 무가치하게 느껴졌고, 자신을 향해 끝까지 원망 대신 연민을 남겨준 아내의 단 하나뿐인 그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이, 지금 당장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부시도록 아름답고도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여보... 옥분아... 내가 잘못했소... 내가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악귀였소! 제발 나를 용서해 주시오! 제발 나를 그 젊은 날의 춥고 가난했던 당신의 서방님으로 한 번만, 딱 한 번만 다시 안아주시오! 제발!"

    영혼의 처절하고 핏발 선 통곡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지만, 옥분의 거친 손에 쥐어진 낡은 저고리 위로 투명한 눈물만 조용히 떨어져 내릴 뿐, 최 부자의 목소리는 이승의 경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무참히 버리고 결국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부자의 찢어지는 후회는 너무나도 늦어버렸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절망만이 짙은 칠흑 같은 밤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 5: 49일의 끝, 저승사자 앞에서의 처절한 참회

    마침내 구천을 고통스럽게 맴돌며 이승의 죗값을 낱낱이 목도해야 했던 49일의 기한이 모두 끝나는 마지막 밤의 자정이 도래했습니다. 돌쇠의 차가운 초가집에서, 자식을 잃은 김 서방의 서글픈 부엌에서, 그리고 조강지처 옥분의 낡은 마당에서 자신의 끔찍한 죄악이 만들어낸 비극과 마주하며 매일 밤 지옥 같은 고통을 겪은 최 부자의 닳고 닳은 영혼 앞에, 처음 그를 죽음으로 데려가기 위해 나타났던 칠흑 같은 도포 자락의 저승사자가 서늘한 안개를 몰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9일의 기나긴 유예 기간이 모두 끝났다. 이승의 악귀, 최 만석. 네놈이 살아생전 이승에 남긴 그 참혹한 족적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느냐."

    과거의 오만방자하고 그 누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거만한 만석꾼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최 부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의 투명한 영혼은 자신이 저지른 죄책감의 거대한 무게와 씻을 수 없는 회한으로 인해 금방이라도 먼지처럼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지요.

    "사자님... 예, 보았습니다. 제 끔찍한 탐욕의 칼날에 무참히 베여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자들의 짓밟힌 삶을... 그리고 그 지독한 상처와 원망 속에서도 저를 가엾게 여기며 동정하고, 제 죄를 용서하며, 때로는 저와의 좋았던 한때의 추억마저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의 너무나도 바보 같고 숭고한 선함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깨달은 것이냐. 아직도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이 그리도 억울하고 원통하냐?"

    저승사자의 차갑고 날카로운 물음에 최 부자는 바닥에 이마를 댄 채 천천히, 그리고 아주 무겁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이제는 조금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옥불에 천 번 만 번 타 죽어 마땅한 흉악한 짐승입니다. 금은보화에 두 눈이 멀어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았고, 평생을 바친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며, 제 이웃의 숨통을 잔인하게 조였습니다. 제 빈소가 향내조차 맴돌지 않을 만큼 텅 비어있던 것은, 제가 평생 동안 제 손으로 뿜어낸 독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승에서 내리는 그 어떤 끔찍한 형벌이든 달게, 아주 달게 받겠습니다."

    최 부자의 목소리는 깊은 체념과 자신을 향한 혐오, 그리고 처절한 참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든 검고 무거운 쇠사슬을 쩔렁거리며 다가가 최 부자의 목에 자비 없이 걸었습니다.

    "가자. 염라대왕께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너의 죄의 무게를 달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눈앞이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최 부자의 영혼은 이승의 공기를 단숨에 벗어나 스산하고 기괴한 비명소리가 맴돌며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명부(冥府)의 끔찍한 법정으로 끌려왔습니다. 사방은 펄펄 끓는 붉은 용암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거대한 흑단나무 책상 뒤에는 산봉우리처럼 거대한 체구에 불타오르는 듯한 무시무시한 눈동자를 가진 저승의 절대자, 염라대왕이 그를 위압적으로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네 이놈! 천하에 둘도 없을 요악하고 표독스러운 욕심쟁이 최 만석은 귀를 열고 똑똑히 듣거라!"

    염라대왕의 천둥 같은 호통 소리에 명부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 난 듯 쩌렁쩌렁 울리며 흔들렸습니다.

    "네놈이 이승에서 쌓은 끔찍한 악업의 기록이 이 넓은 명부의 장부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더럽게 흘러넘칠 지경이다. 흉년에 굶어 죽어가는 어린 이웃의 목숨을 쌀 한 줌이 아까워 외면하고, 평생을 바쳐 헌신한 충직한 머슴을 병들었다는 이유로 혹한에 내쫓았으며, 네놈을 위해 피눈물을 흘린 조강지처의 재산을 가로채어 길거리에 나앉게 한 씻을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 그 끔찍한 죄의 대가로 널 지옥 중에서도 가장 깊고 고통스러운 펄펄 끓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의 불구덩이에 던져, 억겁의 세월 동안 살이 타들어가고 뼈가 녹아내리는 끓는 구리 물을 마시게 할 것이다! 여봐라, 당장 이 흉악한 놈을 형장으로 끌고 가라!"

    지옥의 옥졸들이 무시무시한 삼지창과 쇠몽둥이를 들고 최 부자를 향해 사방에서 쿵쾅거리며 다가왔습니다. 만약 과거의 최 부자였다면 살려달라며 추하게 발악을 하고, 저승의 법정에서도 뇌물을 주려 비열하게 들러붙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처참한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일 준비를 했습니다.

    "대왕님. 지당하신 판결입니다. 모든 형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그 아비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영원히 씻지 못할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허나... 제가 그 불지옥으로 영원히 떨어지기 전, 제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허락해주실 한 가지 간절한 간청이 있사옵니다."

    최 부자가 두 눈에서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절절하게 애원하자, 염라대왕은 형을 집행하려던 옥졸들을 향해 손을 들어 멈춰 세우고는 흥미롭다는 듯 거대한 턱을 괴었습니다.

    "네놈의 입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변명이 아닌 간청이 나오다니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구나. 어디 한번 말해보아라. 대체 지옥문 앞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최 부자는 끓어오르는 바닥에 머리를 쾅쾅 찧으며, 자신의 영혼이 부서질 듯 절절하게 외쳤습니다.

    "제가 이승에 남겨둔 그 어마어마한 재산들, 쌀가마니와 금은보화들... 그것들은 저의 장례식에 와서 거짓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제 피붙이의 탈을 쓴 채 서로 재산을 탐내며 멱살을 잡는 친척 놈들과 표독한 첩들의 손에 결단코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 더러운 돈은 애초에 제 것이 아니라, 제가 부당하게 피눈물을 뽑아낸 머슴 돌쇠와, 자식을 잃은 김 서방, 그리고 평생을 제 뒷바라지에 바치고 쫓겨난 제 불쌍한 아내 옥분이의 피와 땀입니다! 제발... 제발 그 재산을 온전히 그들의 손에 돌려주어 그들의 남은 삶이라도 가난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만 해주신다면 저는 아비지옥에서 뼈가 천 번 만 번 녹아내리고 찢겨 나가도 더 이상 아무런 원이 없겠사옵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도 파리처럼 여기며 발악하던 천하의 만석꾼이, 이제는 자신의 남은 영원한 안식마저 모두 내던진 채, 타인의 삶을 구제하고 자신의 죗값을 그들에게 돌려달라고 피를 토하며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의 불타는 거대한 눈동자 속에서, 명부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아주 희미하고도 기이한 이채가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 6: 염라대왕의 판결과 이승에 남겨진 마지막 뉘우침

    무시무시한 비명소리만 가득했던 명부의 법정은 순간 숨이 막힐 듯한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염라대왕은 거대한 손으로 덥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뜨거운 불바닥에 납작 엎드려 통곡하며 애원하는 최 부자의 영혼을 꿰뚫어 보듯 한참 동안 묵묵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참으로 기막히고 아이러니한 일이로다. 이승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 숨 쉴 때는 황금을 신처럼 받들며 사람의 목숨과 존엄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던 네놈이, 죽어 백골이 되고 지옥의 무시무시한 문턱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황금의 덧없는 허망함을 깨닫고 짓밟은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구나. 네놈이 불지옥을 눈앞에 두고 흘리는 그 뒤늦은 참회의 눈물이 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끔찍한 형벌을 조금이라도 피해보려는 간악하고 얄팍한 꼼수인지 이 염라가 모를 줄 아느냐."

    염라대왕의 산을 무너뜨릴 듯한 서슬 퍼런 목소리에 최 부자는 다시 한번 붉게 달아오른 바닥에 이마를 세게 찧으며 피를 흘렸습니다.

    "어찌 감히 만물을 꿰뚫어 보시는 대왕님을 얄팍한 혀로 속이려 들겠사옵니까. 제 끔찍한 죄는 천 번 만 번 불에 타 죽어 마땅하오나, 제가 남긴 그 피비린내 나는 더러운 돈이 또 다른 이승의 악귀들의 배를 부풀리고, 정작 보상받아야 할 제 아내와 은인들을 평생 지독한 가난과 고통 속에 내버려 두는 것만큼은 제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괴롭사옵니다. 부디 저를 당장 가장 끔찍한 지옥에 던지시더라도, 그 재산만이라도 제 진짜 주인을 찾게 해 주소서. 그것만이 제가 이승에 남긴 유일한 소원이자 회개이옵니다."

    염라대왕은 지옥을 뒤흔들 만큼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명부의 두꺼운 장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옥졸들을 물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만석꾼 최 만석이 평생 쌓아 올린 악업은 태산보다 거대하여 본디 영원한 아비지옥에 떨어짐이 마땅하다! 허나! 네놈이 49일 동안 이승을 맴돌며 흘렸던 그 처절하고 진실한 회개의 피눈물과, 지옥에 떨어질 자신의 영원한 형벌보다 자신이 상처 입힌 타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그 마지막 선한 마음 한 조각을 내 어여삐 여겨 너의 형벌을 특별히 감면하노라! 지옥불에 떨어지는 대신, 네놈의 영혼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비루하고 멸시받는 짐승, 즉 늙고 병든 떠돌이 개의 삶으로 환생할 것이다."

    아비지옥을 각오했던 최 부자의 영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끔찍한 지옥의 불구덩이 대신 한낱 개로 환생한다니요.

    "늙고 굶주린 개가 된 네놈은, 네가 비참하게 내쫓았던 충직한 머슴 돌쇠와 자식을 잃은 김 서방, 그리고 조강지처 옥분의 집 마당을 지키며, 그들이 던져주는 밥풀을 주워 먹으며 그들에게 평생 꼬리를 흔들고 목숨을 바쳐 짐승으로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네놈이 짐승의 탈을 쓰고 갚아야 할 이승의 죗값이니라! 또한, 네놈이 이승에 남겨두고 와 그리도 애타게 걱정하는 그 더러운 재산의 행방은... 내 특별히 저승사자를 이승으로 보내어 네놈의 뜻대로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엄히 조치하마. 당장 이승으로 돌아가라!"

    염라대왕의 거대한 손짓 한 번에, 최 부자의 영혼은 강렬하고 눈부신 빛에 휩싸이며 끝없는 심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맹렬하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며칠 뒤, 이승의 고을에서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한바탕 큰 난리가 났습니다. 최 부자의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키지도 않고 그 거대한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살벌한 소송전을 벌이던 먼 친척들과 기생 첩들의 집에, 어느 날 밤 마른하늘에 기괴한 천둥번개가 내리치더니 관아의 사또가 포졸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친 것입니다. 사또는 최 부자의 안방 깊숙이 숨겨져 있던 비밀 금고에서 방금 막 발견된,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숨겨진 유언장'을 그들 앞에 들이밀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저승사자가 염라대왕의 지엄한 명을 받아 이승의 조화로 은밀하게 조작해 놓은 하늘의 기적 같은 유언장이었지요.

    "여기 이 유언장에 아주 똑똑히 적혀 있다! 죽은 최 만석의 모든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수만 평의 논밭, 그리고 비밀 창고에 숨겨진 엽전과 금괴의 모든 소유권은, 오직 그의 진짜 조강지처인 옥분 할머니와, 30년을 일하고 억울하게 쫓겨난 머슴 돌쇠, 그리고 흉년에 아이를 잃은 김 서방, 이 세 사람에게 한 치의 오차 없이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고 명시되어 있느니라! 가짜 눈물을 흘리며 재산을 탐낸 이 표독스럽고 탐욕스러운 가짜 상주들을 당장 옥에 가두고 곤장을 쳐라!"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드디어 응답했다며 거리에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만석꾼의 재산을 이어받아 벼락부자가 된 옥분 할머니와 돌쇠, 김 서방은 그 어마어마한 재산을 결코 자신들만의 배를 불리는 데 독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최 부자의 으리으리하고 사치스러웠던 기와집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고을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커다랗고 따뜻한 무료 구휼소를 지었습니다. 또한 고리대금으로 고통받던 가난한 소작농들의 빚 장부를 모조리 불태워 탕감해주었습니다. 돈 귀신 최 부자가 피도 눈물도 없이 긁어모았던 그 끔찍한 더러운 돈이, 비로소 사람을 살리고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피가 되어 마을 전체에 구석구석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살을 에이는 듯한 추운 겨울밤. 옥분 할머니가 솥단지에 죽을 끓여 운영하는 따뜻한 구휼소 마당 한구석에, 매서운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덜덜 떠는 비쩍 마르고 초라한 늙은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찾아왔습니다. 옥분은 얼어 죽어가는 불쌍한 강아지를 거두어 따뜻한 부뚜막 아랫목에 뉘이고, 남은 고기 국밥을 한 그릇 가득 내어주었습니다. 강아지는 그 국밥을 허겁지겁 눈물을 흘리며 먹더니, 옥분의 주름지고 거친 손을 자신의 거친 혀로 조심스레 핥으며 맑은 눈망울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글썽였습니다. 옥분을 바라보는 그 짐승의 애틋한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30년 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옥분에게 싸구려 무명 저고리를 내밀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던 그 앳되고 다정했던 서방님의 눈빛을 기막히게 꼭 닮아 있었습니다.

    강아지로 환생한 최 부자는 그렇게 자신이 매정하게 버렸고 또 자신을 끝까지 용서해 주었던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짐승의 몸으로 그들의 밭을 지키고, 사나운 도둑을 쫓으며 평생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그는 비록 만석꾼의 화려한 비단옷을 영원히 벗어버리고 냄새나는 짐승의 털을 뒤집어썼지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옥분의 거칠지만 한없이 따뜻한 손길 속에서, 그 옛날 산더미 같은 금괴 더미 위에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삶의 평온과 충만한 사랑을 느끼며 어느 맑은 봄날 가장 행복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살아서는 텅 빈 향로 앞 초라한 장례식을 치렀지만, 환생하여 짐승으로 죽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의 진심 어린 슬픔과 따뜻한 축복 속에서 가장 눈부시고 행복한 생을 마감한 떠돌이 개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입을 타고 아름다운 전설로 훈훈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들려드린 <자신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은 부자>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한평생 돈만 좇느라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잃어버린 최 부자의 뒤늦은 참회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통장 잔고가 아니라, 살면서 나누었던 따뜻한 사랑과 베풂의 기억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엔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에도 가슴 뭉클한 염라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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