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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마을 - 일곱 날의 여행

by K sunny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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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마을 - 일곱 날의 여행

태그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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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립션 (250자)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가난한 선비가 안개 낀 산길에서 길을 잃고 저승마을에 떨어지게 됩니다. 염라대왕의 특별 허락으로 7일간의 체류를 허락받은 선비는 저승의 특별한 법칙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7일간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후킹멘트 (200자)

"선비님, 저승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곳에서의 7일은 이승의 7년과 맞먹지요. 돌아가시게 되면...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01. "안개 낀 산길" - 과거길에 오른 가난한 선비가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장면

늦가을의 쌀쌀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적막한 산길을 가로지르고,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한 새벽을 깨웁니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늘 외롭고 고단한 법이지요.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산길이 음산합니다. 벌써 닷새째 걸어온 발걸음. 삼년 묵은 고시생활로 몸은 야위었지만, 이번에야말로 과거에 급제하리라는 결심만은 비었던 주머니만큼이나 단단했습니다.

"이상하도다... 분명 이 길이 맞다고 했는데..."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짙은 안개 탓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밤 주막에서 만난 노인이 일러준 지름길이었건만, 어느새 산속 깊이 들어온 듯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마저 안개에 가려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요.

"날이 밝기 전에 어서 객주를 찾아야 하는데..."

주머니 속의 마지막 엽전이 달그락거립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쥐어주신 것이었지요. '밥은 굶어도 좋으니 객주에서 하룻밤은 꼭 자고 가거라.' 어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안개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인가 싶었지만, 그 크기가 사람 머리만 했지요. 이상하게도 그 불빛은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듯 깜빡거렸습니다.

"저기... 혹시 마을이 있는 걸까..."

발걸음은 자연스레 불빛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안개는 점점 짙어져 마치 흰 천을 둘러친 듯했고, 발아래 땅조차 희미하게만 보였지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분명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도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산속의 적막이 점점 더 깊어갔습니다. 이제는 까마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스쳤지요. 그리고 그때... 안개 속에서 거대한 붉은 대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02. "저승 초입" - 저승마을의 붉은 대문을 마주하는 장면

붉은 대문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습니다. 안개 속에서도 선명한 붉은색은 마치 피처럼 생생했고, 문에 새겨진 금색 문양들은 보는 이의 눈을 현혹시켰지요. 대문 양옆으로는 높은 돌담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뻗어있었습니다.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대문 앞에 서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온몸을 휘감던 안개가 마치 누군가가 걷어가듯 스르르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대문 너머로는 여전히 자욱한 안개가 피어올랐고, 그 사이로 희미한 기와지붕들이 보였지요.

그때였습니다. 대문 한쪽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대문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지요.

"이곳이... 어디입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멀리서 풍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맑고 청아한 소리였지만, 어쩐지 슬픔이 배어있는 듯했지요.

한 발짝, 또 한 발짝.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순간,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닫혔습니다. 놀라 돌아보았지만, 이미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아까 보았던 문양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지요.

"돌아갈 수는 있겠지..."

중얼거리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안개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기와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 처마 끝에 걸린 홍등,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모든 것이 흑백사진처럼 색이 바랜 듯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려왔지만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요.

"여기가 어디기에... 이리도 이상한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에서 희미한 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의 손에는 긴 죽장이 들려있었고, 얼굴은... 얼굴이 없었습니다.

03. "염라대왕의 법정" - 실수로 저승에 온 선비에게 7일의 시간을 주는 장면

얼굴 없는 저승사자는 말없이 앞장섰고, 저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큰 광장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반투명한 모습이었고, 발은 땅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 떠 있었습니다.

"이제 알겠구나... 이곳이 저승이란 것을..."

깨달음은 두렵고도 묘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것일까요?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이끄는 대로 거대한 청사 앞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염라전(閻羅殿)"

금빛으로 새겨진 현판이 저승의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문이 열리자 향불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적막을 깨뜨렸습니다.

"들어가시오."

처음으로 들려온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바람 소리 같았습니다. 떨리는 다리로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법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높은 천장에는 붉은 등불들이 줄지어 걸려있었고, 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두루마리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지요.

법정 중앙에는 거대한 탁자가 있었고, 그 뒤에 앉아있는 이는... 염라대왕이었습니다. 검은 관복을 입은 그의 얼굴은 붉었고, 눈썹은 하얗게 세어 있었으며, 긴 수염은 탁자까지 닿을 듯했습니다.

"음... 이상하구나."

염라대왕의 첫 마디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묵직하게 울렸습니다.

"네 이름이 장원이고, 스물다섯의 나이... 그런데 죽음의 시기가 맞지 않는구나. 네가 이곳에 올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염라대왕은 앞에 놓인 커다란 책을 넘기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이는 분명 실수로다. 저승길이 열린 날, 안개가 자욱했던 것이 화근이었구나. 네가 산 자의 길과 저승길이 겹친 그 시각에 서 있었던 것이야."

저승사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법정 여기저기서 '전례 없는 일'이라는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돌려보내야 하겠으나... 문제가 있구나. 이미 저승의 문을 넘어왔으니, 바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저승의 법칙이니라. 이렇게 하자. 네게 7일의 시간을 주마. 그 시간 동안 저승의 이치를 깨닫고, 산 자의 길을 찾아내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말을 멈춘 염라대왕은 탁자 위에 놓인 청동 물시계를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저승의 시간은 이승과 다르게 흐른다. 7일이 지나도 길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영영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승의 음식을 먹지 말거라. 한 번이라도 먹는다면, 너는 더 이상 이승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04. "저승의 밥집" - 저승 음식을 먹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염라전을 나온 뒤, 저는 저승 마을을 홀로 걷게 되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지요. 다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을 뿐입니다.

"7일 뒤, 해 질 무렵에 이곳으로 오시오. 그때까지 살아갈 곳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오."

이제야 주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저승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친숙했습니다. 마치 오래전 꿈에서 본 듯한 풍경이었지요. 기와집들은 이승의 것과 비슷했지만, 처마 끝이 하늘로 살짝 휘어 올라가 있었고, 담장은 회색빛이 도는 옥처럼 반투명했습니다.

"배가 고프구나..."

닷새째 걸어온 길이었으니,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은 지도 꽤 되었습니다. 주머니 속의 마지막 엽전이 자꾸 신경 쓰였지요. 그때, 맞은편에서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습니다.

"시장한 영혼이여, 이리 오시게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주막이 보였습니다. 문 앞에는 푸른빛이 도는 등불이 걸려있었고, 주인으로 보이는 노파가 웃으며 손짓을 했습니다. 그녀의 모습도 다른 영혼들처럼 반투명했지만, 주름진 얼굴에 띤 미소만은 선명했습니다.

"저...저는 아직 살아있는 몸입니다."

"알고 있다네. 산 자의 기운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여기서 7일을 버텨야 한다면서? 그 긴 시간을 어찌 끼니도 없이 보내려고 하나?"

노파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주막 안으로 향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영혼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그릇은 비어 있었고 젓가락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마치 진짜 음식을 먹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자, 이리 앉게나. 오늘의 저승밥은 특별하다네."

노파가 내온 그릇에는 실제로 밥과 반찬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영혼들의 빈 그릇과는 달리,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지요.

"이건... 진짜 음식인가요?"

"그렇다네. 산 자의 몸에는 진짜 음식이 필요하니까. 걱정 말게. 이승의 엽전도 받는다네."

그러나 염라대왕의 경고가 떠올랐습니다.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노파는 제 마음을 읽은 듯 말을 이었습니다.

"염라대왕님의 말씀이 걱정되나? 음식은 음식이고, 저승의 법칙은 법칙이지. 이건 그저 평범한 이승의 음식일 뿐이라네. 내가 특별히 산 자들을 위해 준비해두는 것이지."

배고픔과 의심 사이에서 망설이는 저를 보며, 노파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산 자의 몸으로는 불가능할 테니. 선택은 자네가 하게나."

05. "혼령 시장" - 산 자의 수명을 거래하는 저승 시장을 목격하는 장면

결국 노파의 음식을 먹지 않고 주막을 나왔습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은 채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저승 시장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승의 시장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지요.

"삽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삽니다!"

"팝니다! 백 년 전 과거시험 답안을 팝니다!"

"좋은 꿈 사가세요! 이승의 가족에게 보내는 꿈, 한 푼에 드립니다!"

온갖 이상한 것들이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장수를 파는 노인, 전생의 기억을 교환하는 상인, 심지어 이승에서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팔고 있었지요. 모든 물건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으며 허공에 떠 있었습니다.

"젊은이, 이리 와보시게."

허름한 포장마차 앞에 앉아있던 노인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의 앞에는 여러 개의 모래시계가 놓여있었는데, 모두 크기가 제각각이었지요.

"이건 모두 수명을 담은 시계라네. 이승에서 더 살고 싶었던 이들의 마지막 소원이지. 자네는 산 자의 몸을 가졌으니, 이걸 살 수 있을 게야."

노인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지요.

"그런데... 이 시간들은 누구의 것인가요?"

"이승에서 욕심을 부려 일찍 저승에 온 이들의 것이지. 자네처럼 젊은 나이에 저승에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이들 말일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저승의 시장에서는 삶과 죽음이 마치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거래의 대가는...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자네의 7일? 아마도 이승의 시간으로는... 7년쯤 되겠구려."

06. "저승 재판" - 생전의 죄를 심판받는 영혼들을 보는 장면

시장을 벗어나 걷던 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승 마을 광장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모여있었고, 그 중앙에는 높은 죄판대가 설치되어 있었지요.

"오늘은 특별 재판이 열리는 날이라네."

옆에 있던 영혼이 슬며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의 설명으로는 이승에서 큰 부자였던 영혼과 그의 하인이었던 영혼의 재판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승의 인연은 저승에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둘 다 같은 날 저승에 왔다는구먼."

재판이 시작되자 먼저 부자의 혼령이 나섰습니다. 그는 이승에서의 부와 명예를 자랑하며, 자신이 하인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가 들고 있는 생사책에는 다른 기록이 적혀 있었지요.

"너는 스무 살의 이 하인을 밤낮없이 부렸고, 병이 들었을 때도 쉬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는 쉰이 되기도 전에 저승길을 걸었지."

이어 하인의 혼령이 나왔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한쪽 팔을 걷어 보였을 뿐이었지요. 그곳에는 깊은 흉터가 남아있었습니다.

"네 죄를 알겠느냐?"

저승 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부자의 혼령은 이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습니다.

"다음 생에 너는 하인으로 태어나 평생을 고된 노동으로 살 것이며, 하인은 부자의 집 도련님으로 태어나리라. 이것이 저승의 이치니라."

순간, 두 혼령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자의 혼령은 점점 희미해져 하인의 모습으로, 하인의 혼령은 점차 선명해지며 도련님의 모습으로 바뀌어갔지요.

"이승에서의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옆의 영혼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문득 이승에서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과거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늙으신 어머니를 홀로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지요.

07. "망자의 편지" - 살아있는 가족에게 전하는 망자들의 편지를 보는 장면

재판이 끝나고 광장을 떠나려는데, 누군가가 제 소매를 살짝 잡아끌었습니다. 뒤돌아보니 한 노파가 서 있었지요. 다른 영혼들과는 달리 그녀의 모습은 매우 선명했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젊은이, 혹시... 편지 전달을 좀 해주겠나?"

노파의 손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편지 한 통이 들려있었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글자들이 희미하게 비치는 듯했지요.

"편지라면... 망자의 편지입니까?"

"그렇다네. 저승에서 이승으로 보내는 편지지. 이곳에 오는 산 자가 드물어서, 벌써 50년을 기다렸다네."

노파를 따라 저승 우체국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창구 너머로 보이는 공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들이 쌓여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편지들은 모두 이승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것들이라네. 하지만 전달하기가 쉽지 않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이가 드물거든."

우체국 안으로 들어서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영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편지에 담고 있었지요. 어떤 이는 자식들의 성공을 기뻐하며 축하의 말을 쓰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미처 하지 못한 사과의 말을 애틋하게 적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왔다네."

노파가 마침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글자들이 천천히 피어올랐지요.

"사랑하는 아들아... 너를 홀로 두고 떠나와 미안하구나. 내가 떠난 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늘 마음에 걸렸단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단다..."

노파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글자들이 더욱 선명하게 새겨졌지요.

"엄마의 장례식 때 네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나는 다 보았단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기쁨이란다..."

편지를 다 쓴 노파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접어 제게 건넸습니다.

"이 편지를...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영호에게 전해주면 좋겠네. 내 아들이라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주소는... 제가 하숙하고 있는 집 주인의 이름과 주소였으니까요. 항상 굳은 표정으로 혼자 사는 그 중년 사내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3년 전에 돌아가신..."

"그렇다네. 내가 떠난 뒤 아들이 너무 힘들어했다고 하더구나. 젊은이, 부탁이네..."

08. "저승화폐" - 저승돈의 비밀과 그것을 얻기 위한 영혼들의 이야기

우체국을 나와 저승 거리를 걷다 보니, 날이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승의 하늘에는 달이 세 개나 떠 있었고,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지요. 하얀 달, 붉은 달, 그리고 검은 달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 저승돈이 필요한가 보구나?"

문득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새까만 도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이상한 동전들이 들려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지요.

"이건 저승전이라고 하네. 이승의 엽전과는 다르지. 이 돈으로는 시간을 살 수도 있고, 기억을 교환할 수도 있지."

노인의 설명을 들으며 동전들을 자세히 보니, 각각의 동전에는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나비가, 어떤 것은 달이, 또 어떤 것에는 강물이 새겨져 있었지요.

"하지만 이 돈을 벌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네.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하나씩 내어주어야 하지."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주머니 속의 이승 엽전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의 눈이 이상한 빛을 띠었지요.

"오호... 자네에게 이승의 돈이 있구나. 그걸 저승전으로 바꿔주지. 교환 비율은... 하나당 기억 하나면 되네."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 마지막 엽전은 어머니가 쥐어주신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저승에서 며칠을 더 보내야 한다면, 저승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자, 어떤 기억을 내어줄 텐가? 첫사랑의 기억? 아니면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

09. "낮과 밤의 경계" - 저승에서는 낮과 밤이 뒤바뀐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

결국 저는 엽전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정성이 담긴 그것을 어떻게 기억과 바꿀 수 있었겠습니까. 노인은 아쉬운 듯 사라졌고, 저는 다시 걸음을 이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의 세 달이 일제히 멈추더니, 저승 마을 전체가 이상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낮과 밤이 뒤섞이는 시간이었지요.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네."

어디선가 나타난 백발의 소녀가 말했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있었지만, 얼굴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맑았습니다.

"낮도 밤도 아닌 이 시간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지. 그래서 이승의 영혼들이 저승으로 흘러들어오고, 저승의 영혼들은 이승을 그리워하며 방황하는 법이야."

소녀의 말대로였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영혼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이승에 있는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질수록, 오히려 주변의 건물들은 점점 더 흐릿해져 갔지요.

"나도... 돌아가고 싶어..."

한 영혼이 제 앞에서 흐느꼈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제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과거를 보러 가다가 저승에 오게 된 이였나 봅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 저승의 밥을 먹어버렸으니까..."

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주막 노파가 권했던 음식이 떠올랐지요. 그것을 먹었다면 저도 지금쯤 저 영혼처럼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이승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소녀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 개의 달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는 달들이 만나는 순간,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10. "시간의 역설" - 저승에서의 시간이 이승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백발 소녀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지나자, 거대한 시계탑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지요. 시계의 숫자들이 거꾸로 새겨져 있었고, 시계바늘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저승의 시간을 관리하는 곳이야. 그리고 나는... 시간을 지키는 수호자지."

소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이 검게 변해있었고, 주름 하나 없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지요.

"놀랐니? 저승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때문에, 나의 모습도 계속 변하는 거야. 때로는 소녀로, 때로는 노파로... 마치 시계바늘처럼 끊임없이 돌아가지."

시계탑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모래시계들이 공중에 떠 있었고, 각각의 모래시계 안에는 작은 풍경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담아놓은 것 같았지요.

"보이니? 저것들은 모두 이승의 시간들이야. 산 자들의 시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저승에서는 그 반대라네. 그래서 이승에서의 7일은 저승에서는 7년이 되는 거지."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제가 저승에서 보낸 시간... 그렇다면 이승에서는 얼마나 흘러간 걸까요?

"그동안 이승에서는 3년이 지났어. 네가 이곳에 온 지 이제 사흘이 되었으니까."

소녀... 아니, 이제는 중년의 여인이 된 그녀가 한 모래시계를 가리켰습니다. 그 안에는 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는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지요.

"매일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지... 하지만 이미 3년이나 지났잖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과거 시험을 핑계로 집을 떠난 지 벌써 그렇게 오래되었다니... 그동안 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기다리셨을까요?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 네게는 선택할 기회가 있지."

시간 수호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습니다. 그것은 앞서 노인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저승전이었지요.

"이 동전 하나로 너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 네가 저승에 오기 직전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 대가로... 저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될 거야. 망자들의 편지도, 그들의 사연도, 모든 것을 잊게 되지."

11. "귀향길의 선택" - 돌아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고민하는 장면

저승전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늘의 세 달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시계탑의 바늘은 계속해서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지요.

"선택은 네 몫이야. 하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세 달이 완전히 겹쳐지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될 테니까."

시간 수호자의 말을 들으며, 저는 주머니 속의 엽전을 꺼내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쥐어주신 마지막 엽전... 그리고 노파가 맡기신 편지... 이 모든 것을 그저 잊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잠깐..."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주막 노파, 시장의 상인들, 그리고 편지를 부탁한 노모... 그들 모두 제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승으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서의 기억을 반드시 간직하고 싶습니다."

시간 수호자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그녀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변하더니, 이번에는 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여인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대가가 필요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주머니 속의 엽전이 따뜻하게 데워졌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포근한 온기였지요.

"어머니께서...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이었지요."

12. "일곱 날의 끝" - 마침내 이승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장면

그 순간, 하늘의 세 달이 완전히 겹쳐졌습니다. 시계탑이 울리기 시작했고, 저승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지요. 시간 수호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구나. 자, 이제 마지막 관문이야."

시계탑 안의 모든 모래시계가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제가 만났던 모든 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지요. 주막 노파, 시장의 상인들, 편지를 부탁한 어머니... 그들 모두가 제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는 문이 열렸다. 하지만 기억하거라. 저승에서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는 것을. 네가 돌아갈 때는, 네가 이곳에 처음 왔던 그 순간이 될 거야."

붉은 대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봤을 때와는 달랐지요. 문에 새겨진 금색 문양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 속에서 이승으로 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잠시만요... 제가 가진 것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주머니 속의 엽전을 꺼내 시간 수호자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노파의 편지도 함께 내밀었지요.

"이 편지는... 제가 직접 전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이 마음만은 반드시 전하고 싶습니다."

시간 수호자는 엽전만 받고 편지는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변하더니, 이번에는 제 나이 또래의 젊은 여인이 되었지요.

"네 선택이 옳았어. 진정한 마음은 기억이 사라져도 남는 법이니까. 자, 이제 돌아가렴. 그리고 기억하렴... 우리가 만난 적이 있다는 것만은..."

엔딩멘트 (200자)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은 누구나 알지만,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혹 저승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지요.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요? 아니면 그저 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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