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가 된 도적의 천 년 참회
부제: 이승에서 산적 두목으로 수십 명을 죽이고 처형당한 뒤, 벌로 저승사자가 되어 천 년간 영혼을 거두어야 하는 남자. 마지막 임무로 자신이 죽인 자의 후손을 데리러 갔다가, 그 후손이 자신을 용서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천 년의 업이 풀려 마침내 환생의 길이 열리는 이야기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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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inematic 16:9 photorealistic scene of a tall imposing figure dressed in traditional Korean Joseon-era black afterlife reaper robes and a tall black gat hat standing alone on an ancient stone bridge shrouded in thick fog at twilight. The reaper holds a worn leather-bound scroll in one hand while the other hand hangs at his side with visible old scars across the knuckles. His face is partially visible under the hat brim revealing a weathered expression of deep sorrow and exhaustion. Behind him a faint golden light glows through the fog suggesting the entrance to the afterlife. In the far distance below the bridge a small traditional Korean thatched-roof village is barely visible through morning mist with a single warm lantern glowing from one house. The overall mood is haunting yet strangely beautiful with cool blue-grey tones contrasted by the distant warm golden light. No text.
후킹
천 년 동안 저승사자로 살았던 남자가 있습니다. 손에 들린 명부에는 오늘 거두어야 할 마지막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이름 하나만 거두면, 천 년의 형벌이 끝나고 환생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본 순간, 천 년간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았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두어야 할 자의 성이, 천 년 전 자신이 칼로 벤 사내의 성과 같았습니다. 쪽수를 넘겨 내역을 확인하니, 혈통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임무가 하필 자신이 죽인 사람의 후손이었던 겁니다. 저승의 판관이 준 형벌은 천 년간 영혼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형벌은 이 마지막 밤에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대체 이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1: 명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저승사자의 손이 떨리는 순간
명부의 마지막 장이 펼쳐졌습니다.
저승사자의 손에 들린 명부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습니다. 가죽 표지는 천 년의 세월을 견디느라 갈라져 있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름으로 빼곡했습니다. 한 장에 한 이름. 거둘 때마다 이름 위로 붉은 줄이 그어졌습니다. 수만 개의 이름 위에 수만 개의 붉은 줄이 지나가 있었고, 이제 줄이 그어지지 않은 이름은 단 하나만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밤, 이 이름을 거두면 끝이었습니다. 천 년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마지막 장을 펼쳤습니다. 이름이 먹빛으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박. 성이 박이었습니다. 그 순간, 천 년간 단 한 번도 떨린 적 없는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박. 그 성을 저승사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명부의 쪽수를 넘겼습니다. 거둘 자의 내역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름, 나이, 거주지, 수명, 그리고 혈통. 혈통란에 적힌 글자를 읽는 순간, 저승사자의 눈이 멈추었습니다.
고려 충렬왕 시절 충청도 은진 박씨 가문 후손. 시조로부터 삼십칠 대째.
시조. 그 시조의 이름이 명부 한쪽 구석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박경달. 세 글자가 눈에 박히는 순간, 저승사자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박경달. 그 이름을 천 년 동안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천 년 전, 산 아래 장터에서 만난 보부상.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줄 비단을 등에 지고 산길을 넘어가던 사내. 저승사자가 이승에서 산적 두목이었던 시절, 자기 손으로 칼을 휘둘러 목숨을 빼앗은 사람이었습니다.
'하필.'
저승사자의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천 년간 수만 명의 영혼을 거두면서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말이었습니다.
'하필 마지막이 이 사람의 후손이란 말인가.'
명부를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거두어야 했습니다. 거두면 천 년의 형벌이 끝나고, 환생의 문이 열립니다. 하지만 이 손으로, 천 년 전 자기가 죽인 사람의 핏줄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 저승이 내린 진짜 벌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이해한 순간이었습니다.
형벌은 천 년간 영혼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밤에, 자신의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벌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명부를 접어 품에 넣었습니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이승으로 가야 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을 거두러.
하지만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 밤이 어떤 밤이 될지. 천 년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그것을 알려면, 천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남자가 아직 사람이었을 때, 칼을 손에 쥐고 산 위에 서 있던 그때로.
※ 2: 천 년 전, 산적 두목이었던 시절과 그가 저지른 최악의 죄
천 년 전, 이 남자의 이름은 장귀만이었습니다.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무꾼이었고, 어머니는 장귀만이 세 살 때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매일 저녁 장귀만을 무릎에 앉히고 산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물고 달아난 이야기, 계곡 물속에서 은빛 물고기가 뛰어오른 이야기. 장귀만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장귀만이 열두 살 때였습니다. 나무를 하다 벼랑에서 떨어졌습니다. 이웃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습니다. 장귀만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장귀만의 눈에서 어떤 빛이 꺼졌습니다.
열두 살 소년은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밥을 나눠주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식구 먹여 살리기도 빠듯한 세상이었으니까요. 장귀만은 산에서 풀뿌리를 캐 먹었고, 장터에서 주인 눈을 피해 떡을 훔쳤고, 남의 집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쓸었습니다.
열다섯이 되었을 때, 장귀만은 이미 도둑이었습니다.
열여덟이 되었을 때, 칼을 잡았습니다. 산에서 혼자 살면서 짐승을 잡기 위해 만든 칼이었지만, 그 칼이 사람을 향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지나가는 장사꾼의 짐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협박만 하면 되었습니다. 칼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짐을 버리고 도망갔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도망가지 않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등에 짐을 지고 산길을 넘어가던 장정이었습니다. 장귀만이 칼을 들이밀었지만, 장정이 맞섰습니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장귀만의 칼이 장정의 배를 찔렀습니다. 장정이 쓰러졌고, 장귀만의 손에 피가 묻었습니다. 따뜻한 피였습니다.
그날 밤, 장귀만은 산속 동굴에서 손에 묻은 피를 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무서움보다 더 강한 것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죽은 장정의 짐에서 나온 곡식을 먹으며, 장귀만은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말이 시작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네 글자가 장귀만의 양심을 조금씩 잠재웠습니다. 두 번째 살인은 첫 번째보다 쉬웠고, 세 번째는 더 쉬웠습니다. 스물을 넘겼을 때 장귀만은 산적이 되어 있었고, 서른이 되었을 때 부하 삼십 명을 거느린 산적 두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박경달을 만났습니다.
보부상이었습니다.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줄 비단 세 필과 엿 두 봉지를 등에 지고 산길을 넘어가던 사내였습니다. 장귀만의 부하가 길을 막았고, 박경달이 저항했습니다. 부하가 쓰러졌습니다. 장귀만이 직접 칼을 들었습니다.
박경달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짐은 다 가져가도 좋으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올해 다섯 살이라고 했습니다.
장귀만은 칼을 휘둘렀습니다.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박경달의 눈에서 마지막으로 비친 것이 자기 얼굴이었다는 것을, 장귀만은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천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눈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로부터 이 년 뒤, 관군이 산을 포위했습니다. 장귀만은 붙잡혔고, 저잣거리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장귀만의 눈에 비친 것은 하늘이었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무릎에 앉혀 이야기를 해주던 저녁의 그 하늘과 같은 색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귀만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저승에 서 있었습니다.
※ 3: 처형 후 저승에서 받은 형벌의 진짜 의미, 그리고 판관이 숨겨둔 조건
저승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장귀만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빛이었습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새벽과 저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은 빛이 사방에서 흘러들어왔습니다. 바닥이 있었습니다. 검은 돌이었습니다. 사방이 넓었고, 천장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습니다. 그 넓은 공간 한가운데에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탁자 뒤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판관이었습니다. 붉은 관복에 검은 사모를 쓰고, 탁자 위에 커다란 장부를 펼쳐놓은 채 장귀만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습니다. 화가 난 것도, 슬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천 년 묵은 나무가 바람을 바라보듯, 그런 눈이었습니다.
장귀만은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이 잘린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여기서는 몸이 온전했습니다. 두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칼을 쥐던 손이었습니다. 피가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의 굳은살은 그대로였습니다.
판관이 입을 열었습니다.
"장귀만. 이승에서의 죄목이 서른일곱 건이다."
서른일곱. 장귀만 자신도 정확히 세어본 적 없는 숫자를 판관은 알고 있었습니다.
"살인 서른둘, 강도 오, 방화 하나. 그중 가장 무거운 죄가 무엇인지 네 스스로 아느냐."
장귀만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박경달."
판관이 이름을 말하는 순간, 장귀만의 몸이 굳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한 자를 벤 것이 가장 무겁다. 항거하는 자를 죽인 것과 항복한 자를 죽인 것은 다르다. 너는 후자를 골랐다."
장귀만이 입을 열었습니다. 변명하려 했는지, 용서를 구하려 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판관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습니다.
"너의 업은 지옥에서 만 년을 보내야 할 무게다."
만 년. 그 숫자를 듣는 순간, 장귀만의 다리가 풀렸습니다.
"하지만."
판관이 장부를 한 장 넘겼습니다.
"네게 선택지를 하나 주겠다. 지옥 만 년 대신, 저승사자가 되어 천 년간 영혼을 거두어라."
장귀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영혼을 거두는 것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수명이 다한 자의 영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네가 이승에서 빼앗은 것을, 이번에는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판관의 눈이 장귀만을 꿰뚫었습니다.
"천 년 동안 영혼을 거두되, 마지막 영혼까지 빠짐없이 인도해야 한다. 하나라도 거르거나, 도망치거나, 손을 놓으면 그 즉시 지옥 만 년이 시작된다."
장귀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답은 하나였습니다. 지옥 만 년보다는 저승사자 천 년이 나았으니까요.
"하겠습니다."
판관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탁자 위에서 검은 도포 한 벌과 갓 하나를 꺼내 장귀만 앞에 놓았습니다.
"이것을 입어라. 이것을 입는 순간 너는 장귀만이 아니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다. 오직 저승사자일 뿐이다."
장귀만이 검은 도포를 집어 들었습니다. 차가웠습니다. 살아 있을 때 입었던 어떤 옷보다도 차가웠습니다. 도포를 걸치고 갓을 쓰는 순간, 몸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체온이었습니다. 따뜻함이 사라졌습니다. 배고픔도, 졸음도, 아픔도 사라졌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느끼는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기억.
산적이었던 기억. 칼을 휘두르던 기억. 박경달의 눈을 마지막으로 본 기억. 그것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판관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기억은 네가 갖고 가거라. 그것이 네 형벌의 일부다."
장귀만은 그때는 그 말의 뜻을 몰랐습니다. 기억을 가져가는 것이 왜 형벌인지. 천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판관이 숨겨둔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천 년의 마지막 임무가 무엇인지를, 판관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형벌은 천 년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4: 천 년간 영혼을 거두며 쌓인 회한, 그리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밤의 기억
천 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된 장귀만은 처음 백 년을 버텼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견딜 만했습니다. 수명이 다한 노인의 영혼을 거두는 것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긴 삶을 살고, 자식과 손주를 보고,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노인의 영혼은 가벼웠습니다. 손을 내밀면 스스로 따라왔습니다. 미련이 적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영혼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영혼을 처음 거둔 날을 장귀만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다섯 살. 역병에 걸려 밤새 열에 시달리다 새벽에 숨이 끊어진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울고 있었고, 아이의 영혼은 어머니 품에서 빠져나오면서도 자꾸 어머니 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장귀만이 아이의 손을 잡아야 했습니다. 작은 손이었습니다. 따뜻했을 손이었지만, 영혼이 되니 온기가 없었습니다.
그날 장귀만은 아이의 손을 잡고 저승 길을 걸으면서, 박경달의 아들을 떠올렸습니다. 다섯 살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비단과 엿을 사들고 집에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아이. 장귀만이 그 아버지를 죽였으니, 그 아이는 아버지 없이 컸을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그마저도 못 넘기고 굶어 죽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장귀만의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아이의 영혼이 불안한 듯 올려다보았습니다. 장귀만이 힘을 풀고, 최대한 천천히 걸었습니다.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그 뒤로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장귀만은 셀 수 없는 영혼을 거두었습니다. 노인, 아이, 젊은 장정, 갓 시집온 새댁, 전쟁에서 쓰러진 군사, 산에서 떨어진 나무꾼. 그 중에는 산적에게 목숨을 잃은 자도 있었고, 도둑에게 찔려 쓰러진 장사꾼도 있었습니다. 그런 영혼을 거둘 때마다, 장귀만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승에서 칼을 휘두르던 자기. 박경달 앞에 서 있던 자기.
기억이 형벌이라는 판관의 말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감각은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기억은 바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명해졌습니다. 영혼을 거둘 때마다, 자기가 빼앗은 목숨들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서른일곱 명. 그들의 얼굴은 이승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저승에서 천 년을 보내는 동안 하나하나 되살아났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밤은 오백 년째 되던 해에 찾아왔습니다.
그날 거두어야 할 영혼은 노인이었습니다. 일흔을 넘긴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시골 초가집의 아랫목에 누워 있었고, 곁에 손녀가 앉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얘야, 우리 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단다."
"무슨 이야기요, 할머니."
"먼 옛날에 네 조상 되시는 분이 산에서 도적을 만나 돌아가셨단다. 그분의 아들이, 그러니까 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도 꿋꿋이 살아서 이 가문을 이어주셨단다."
장귀만의 발이 멈추었습니다. 초가집 문 밖에 서 있던 그의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 도적이 나쁜 사람이었겠지요."
손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나쁜 사람이었겠지. 하지만 할머니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그 도적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지."
장귀만의 무릎이 꺾였습니다. 문 밖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승사자에게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체온도 없고, 감각도 없으니 눈물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쥐어짜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통증이 아니었습니다. 통증보다 더 깊은 것이었습니다. 후회라는 이름의, 천 년 묵은 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영혼을 거두어 저승 길로 인도하면서, 장귀만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영혼이 물었습니다.
"저승사자님, 왜 그리 조용하시오."
장귀만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장귀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박경달은 천 년 전에 저승을 지나 이미 환생했을 것이었고, 그의 아들도, 그 아들의 아들도,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용서를 구할 곳이 없는 후회. 그것이 천 년의 형벌 중 가장 잔혹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밤의 무게를 안고, 장귀만은 나머지 오백 년을 걸었습니다. 한 걸음씩. 한 영혼씩.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었습니다.
※ 5: 마지막 임무 대상을 찾아간 밤, 후손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
천 년째 밤이 밝았습니다.
장귀만은 이승으로 내려왔습니다. 명부에 적힌 주소를 따라 걸었습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어느 고을이었습니다. 천 년 전과 산의 모양은 같았지만, 마을이 달랐습니다.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뀌어 있었고, 논이 넓어져 있었고, 장터가 커져 있었습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바꿔놓은 풍경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두어야 할 사람의 집은 마을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기와집도 초가집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소박한 집이었습니다.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감이 빨갛게 익어 가지가 휘어져 있었습니다. 대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장귀만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저승사자의 몸은 이승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채로, 마루 앞에 섰습니다.
방 안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인이었습니다. 일흔을 넘긴 남자였습니다.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눈가에 주름이 깊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맑았습니다. 병으로 누워 있었지만, 의식이 또렷한 눈이었습니다. 이불 위로 나온 손이 주름지고 마르었지만, 손톱이 깨끗했습니다. 곁에 손주로 보이는 젊은이가 앉아 물을 떠다 주고 있었습니다.
명부를 확인했습니다. 박치문. 나이 일흔셋. 은진 박씨 삼십칠 대손. 수명 만료. 오늘 자시.
자시. 자정이었습니다. 아직 두 시진이 남아 있었습니다. 장귀만은 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렸습니다. 천 년간 수만 번 해온 일이었습니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영혼이 빠져나오면 인도한다. 그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습니다.
기다리는 두 시진이 천 년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방 안의 노인을 들여다볼 때마다, 천 년 전 박경달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코의 생김이 닮았습니다. 턱선이 닮았습니다. 삼십칠 대가 지나도 남아 있는 핏줄의 흔적이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졌습니다. 달이 떠올랐습니다. 방 안에 호롱불이 켜졌습니다. 손주가 노인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편하신 거 맞지요."
"편하다, 편해."
노인의 목소리가 잔잔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했습니다.
"할아버지, 지난번에 말씀하시던 거요.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요."
장귀만의 귀가 쫑긋해졌습니다.
"오래전에 조상님이 산적한테 돌아가신 이야기요."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 이야기."
"할아버지는 그 산적이 밉지 않으세요."
노인이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호롱불이 일렁였습니다. 노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흔들렸습니다. 장귀만은 숨을 멈추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는 몸이지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노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밉지."
한 마디. 장귀만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밉지. 어찌 안 밉겠냐. 그 사람 때문에 우리 조상님이 돌아가신 거고, 그 때문에 다섯 살 난 아들이 아비 없이 컸으니."
장귀만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루 위에 앉은 채, 보이지 않는 몸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근데 말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낮아지고, 조금 더 느려졌습니다.
"내가 일흔셋을 살면서 깨달은 게 있어. 미움을 안고 사는 건, 미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미움을 품은 사람이 아프다는 거야."
손주가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 산적이 우리 조상님을 죽인 건 천 년 전 일이다. 천 년이야. 그 사이에 우리 집안은 대를 이어 살아왔고, 자식 낳고, 농사짓고, 웃고 울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누워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노인이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한마디 하고 싶은 게 있다."
장귀만의 몸이 굳었습니다.
"그 산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승에 있든, 환생을 했든, 어디에 있든."
노인이 눈을 감았습니다.
"용서한다."
두 글자였습니다. 그 두 글자가 방 안에 울렸고, 마루를 지나 마당까지 퍼졌고, 감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밤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원망을 품고 죽으면 나까지 귀신이 될 것 같아서. 그러기 싫어. 난 편하게 갈 거야. 그러려면 용서를 하고 가야지."
장귀만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마루 위에 앉은 채, 천 년 동안 굳어 있던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갈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무언가가 차올랐습니다. 저승사자에게는 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체온도, 감각도 없으니 눈물이 나올 리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장귀만의 눈에서 무언가가 흘렀습니다.
뜨거웠습니다. 천 년 만에 처음 느끼는 온기였습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그것이 손등 위에 떨어졌을 때, 장귀만은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시가 되었습니다. 노인이 고요히 눈을 감았습니다. 마지막 숨이 빠져나갔고,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이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루 쪽을 보았습니다. 장귀만이 서 있었습니다.
영혼은 저승사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이 장귀만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데리러 왔소."
장귀만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 년간 영혼을 인도하면서 사무적으로만 해왔던 일이, 이 밤만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귀만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인의 영혼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영혼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이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게 무슨."
"감사합니다."
장귀만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습니다.
"천 년을 기다렸습니다. 용서해 줘서, 감사합니다."
노인의 영혼이 장귀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한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알아챈 듯, 조용히 말했습니다.
"혹시 당신이."
장귀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물 자국이 뺨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인의 영혼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장귀만의 어깨 위에 얹었습니다.
"고생 많았소."
세 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세 글자가 천 년의 무게를 들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 6: 천 년의 업이 풀리는 순간, 저승사자의 갓과 도포가 벗겨지다
노인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길은 여느 때와 같았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길은 안개가 자욱했고, 발밑에 돌다리가 있었습니다. 천 년간 수만 번 건넌 다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밤의 다리는 달랐습니다. 발밑의 돌이 따뜻했습니다. 안개 사이로 빛이 비쳤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이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은 장귀만 옆에서 묵묵히 걸었습니다. 아까 방 안에서의 대화 이후로 둘 사이에 많은 말이 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밤이었습니다.
저승의 문이 보였습니다. 장귀만이 멈추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노인의 영혼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저승사자님."
"네."
"다음 생에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시오."
장귀만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노인의 영혼이 문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혔습니다. 마지막 영혼이 인도되었습니다.
그 순간, 장귀만의 품속에서 명부가 빛을 냈습니다.
마지막 이름 위로 붉은 줄이 저절로 그어졌습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수만 개의 이름 위에 수만 개의 붉은 줄. 빠짐없이 완료되었습니다. 명부가 빛을 내며 타올랐습니다. 불꽃이 아니었습니다. 빛이었습니다. 명부가 빛으로 변해 장귀만의 손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장귀만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갓이 벗겨졌습니다. 스스로 벗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갓이 빛을 내며 소멸했습니다. 그 다음 도포가. 검은 도포가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빛으로 변해 사라졌습니다. 천 년 전 판관이 건네준 저승사자의 옷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도포 아래의 장귀만은 맨몸이 아니었습니다. 하얀 옷이 나타났습니다. 삼베도 아니고 비단도 아닌, 이름을 알 수 없는 천으로 된 흰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려다보니, 손등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칼을 쥐던 굳은살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천 년간 명부를 쥐던 손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온기가 돌아왔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천 년 만에 느끼는 따뜻함이었습니다. 심장이 뛰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장이 있던 자리에서 무언가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귀만은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떨리고 있었습니다. 손이 아니라 가슴 안쪽이.
"장귀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판관이 서 있었습니다. 천 년 전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붉은 관복에 검은 사모. 표정 없는 얼굴. 하지만 이번에는 눈빛이 미세하게 달랐습니다.
"천 년이 끝났다."
판관이 말했습니다.
"네가 거둔 영혼의 수가 채워졌고, 마지막 임무가 완료되었다."
장귀만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나 묻겠다."
판관이 장귀만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영혼을 거둘 때, 네가 무릎을 꿇었다."
장귀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천 년간 단 한 번도 무릎을 꿇지 않던 네가, 마지막에 꿇었다. 왜 그랬느냐."
장귀만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슴 안의 것을 말로 꺼내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었습니다.
"천 년 동안 영혼을 거두면서,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판관이 듣고 있었습니다.
"거두는 것이 제 일이었으니까요. 사무적으로 했습니다. 감정을 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노인이 용서한다고 했을 때."
장귀만의 목소리가 갈라졌습니다. 천 년간 감정을 지운 채 살아온 존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제가 천 년 동안 거둔 것은 영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천 년 동안 진짜 거두어야 했던 것은, 제 안에 남아 있던 산적 장귀만이었습니다."
판관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습니다. 천 년 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표정이, 지금은 조금 보였습니다. 그것은 만족이 아니었습니다. 안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 대답이면 된다."
판관이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그 뒤에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천 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이었습니다. 금빛 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환생의 문이다."
※ 7: 환생의 문 앞에서 판관이 건넨 마지막 한마디, 그리고 새로운 시작
장귀만이 문 앞에 섰습니다.
금빛 빛이 얼굴 위로 쏟아졌습니다. 따뜻했습니다. 햇빛 같았습니다. 천 년 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산골 마을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오후의 그 빛과 닮았습니다. 무릎에 앉혀 이야기를 해주던 아버지의 체온과 닮았습니다.
문에 손을 대려는 순간, 장귀만이 멈추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판관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관 뒤로, 장귀만이 천 년간 걸어온 길이 보였습니다. 안개 속의 돌다리,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 수만 번 오갔던 길. 그 길 위에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의 발은 자국을 남기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장귀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 자기의 천 년이 있다는 것을.
"판관님."
장귀만이 입을 열었습니다.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판관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 임무가 박경달의 후손이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판관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명부의 순서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누가."
"업이 정한다."
장귀만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천 년간 네가 거둔 영혼의 순서는, 네 업의 무게가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이었다. 가장 가벼운 업부터 하나씩 덜어내고, 마지막에 가장 무거운 업이 남는 것이다."
"가장 무거운 업이 박경달이었습니까."
"아니다."
장귀만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가장 무거운 업은 박경달이 아니라, 네 자신이었다."
장귀만의 눈이 커졌습니다.
"박경달을 죽인 것은 네 손이지만, 그 손을 만든 것은 네 안의 어둠이다. 천 년 동안 영혼을 거두면서 네가 진짜 거두어야 했던 것은, 네 안의 산적 장귀만이다. 아까 네가 스스로 그 말을 했을 때, 비로소 마지막 업이 풀린 것이다."
장귀만은 이해했습니다. 비로소 전부를 이해했습니다. 천 년의 형벌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은 장귀만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수만 개의 영혼을 거두면서, 하나하나 자기 안의 죄를 마주하고,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형벌의 진짜 의미였습니다.
판관이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장귀만."
"네."
"다음 생에서는 살려라."
"네?"
"빼앗지 말고, 살려라. 네 손이 칼 대신 다른 것을 쥘 수 있도록."
장귀만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굳은살이 사라진 깨끗한 손이었습니다. 이 손으로 다음 생에는 무엇을 쥘 수 있을까. 호미를 쥘 수 있을까. 붓을 쥘 수 있을까.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장귀만이 환생의 문에 손을 대었습니다. 금빛 빛이 손끝에서 퍼져나와 온몸을 감쌌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따뜻했습니다. 몸 안으로 스며드는 온기였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빛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돌아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천 년의 길은 끝났고,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었으니까요.
빛이 장귀만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울음소리였습니다. 천 년 만에 듣는, 살아 있는 자의 첫 번째 소리.
어느 마을, 어느 집, 어느 어머니의 품에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습니다. 산파가 아이를 받아 어머니 가슴 위에 올려놓자, 아이의 울음이 멈추었습니다. 어머니의 체온을 느낀 것이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아이의 손이 열렸습니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천천히 펴졌습니다. 작고, 빨갛고,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습니다.
천 년 전의 칼도, 천 년간의 명부도, 더 이상 그 손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청구야담의 한 구석에, 이런 문장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되, 참회로 끝난다. 진정한 벌은 고통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엔딩
천 년이라는 시간은 벌이 아니라,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용서는 베푸는 사람도 구하지만, 받는 사람도 구합니다. 일흔셋 노인의 용서 한마디가, 천 년 묵은 저승사자의 업을 풀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미워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혹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기억해 주십시오. 내려놓는 순간, 천 년의 무게도 가벼워집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으셨다면,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야담광장과 함께해 주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