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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가 이름을 잘못 불러 살아 돌아온 사내 『천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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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평화로운 어느 날, 멀쩡하게 밥을 먹던 사내가 갑자기 들이닥친 저승사자들의 손에 이끌려 억울하게 저승으로 끌려갑니다. 염라대왕 앞에 엎드려 싹싹 빌며 살려달라 애원했는데, 웬걸? "명부를 다시 보아라! 이놈이 아니지 않느냐!" 저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염라국이 발칵 뒤집힙니다. 이름 한번 똑같아서 황천길을 다녀온 사내의 기막히고도 속 시원한 이승 귀환기! 배꼽 빠지게 웃기고 통쾌한 저승 탈출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 1: 평화로운 저녁, 갑작스레 찾아온 검은 그림자와 저승사자

    조선시대 어느 평화로운 마을, 하루 종일 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한 김덕배는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야 괭이를 메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우직하기로 소문난 그는 비록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아내와 함께 삯바느질과 농사를 병행하며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내였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부엌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덕배의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하루의 고단함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여보, 나 왔소이다. 오늘따라 찌개 냄새가 참으로 기가 막히구려. 배가 고파 등가죽이 배에 붙을 지경이니 어서 밥을 주시오."

    "아이고, 덥고 습한 날씨에 밭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침 찌개가 다 끓었으니 평상에 앉아 땀 좀 식히고 계시지요. 얼른 상을 내오겠습니다."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에 덕배는 허허 웃으며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시원한 우물물로 세수를 하고 젖은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아내자, 시원한 저녁 바람이 살랑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상 위에는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보리밥과 갓 무쳐낸 나물 반찬, 그리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덕배가 숟가락을 들어 막 국물을 한 입 떠먹으려던 찰나였습니다.

    갑자기 한여름의 훈풍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돌변하더니, 마당 한가운데로 스산한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마당의 감나무 가지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동네 개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구슬프게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한여름에 웬 살얼음 같은 바람이 분다지? 으스스하게시리….'

    덕배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짙은 안개 속에서 두 개의 시꺼먼 그림자가 스윽 하고 나타났습니다. 키가 훌쩍 크고 창백한 얼굴을 한 두 사내는 머리에 갓을 깊게 눌러쓰고, 먹물처럼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붉은 글씨가 적힌 두루마리와 시퍼런 쇠사슬이 들려 있었습니다. 덕배는 숟가락을 떨어뜨린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네 이놈! 네가 남부골에 사는 김덕배가 맞느냐!"

    저승사자 중 한 명이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다가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기괴하고 소름 끼쳤습니다. 덕배는 덜덜 떨며 뒤로 물러섰지만,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그, 그러하옵니다만… 뉘신데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시는 겝니까? 쇤네는 평생 남의 것 하나 탐내지 않고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시끄럽다! 네놈의 명줄이 다하여 명부에 이름이 올랐으니, 오늘이 바로 네놈이 이승을 하직할 날이다. 잔말 말고 이 사슬을 받으라!"

    저승사자가 무자비하게 쇠사슬을 던지자, 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덕배의 목을 칭칭 감았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하얘지는 고통 속에 덕배는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안 된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아직 젊은 아내를 홀로 두고 어찌 눈을 감는단 말인가!'

    부엌에서 그릇을 씻고 있던 아내가 남편의 비명 소리에 놀라 뛰어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저승사자들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습니다. 아내의 눈에는 그저 평상에서 멀쩡히 밥을 먹으려던 남편이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 거품을 무는 것으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아이고, 여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정신 좀 차려보세요, 여보!"

    아내가 덕배의 몸을 흔들며 목놓아 울부짖었지만, 덕배의 혼은 이미 육신에서 거칠게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육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덕배의 혼백은 발버둥을 쳤지만, 저승사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가엾은 내 아내야… 울지 마시오… 내 어찌하든 다시 돌아올 터이니…."

    하지만 덕배의 외침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가 될 뿐이었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자비 없이 덕배의 혼백을 질질 끌고 안개 속으로 걸음을 옮겼고, 덕배의 눈앞에서 평화로웠던 집과 오열하는 아내의 모습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사내의 기막힌 황천길이 그렇게 허망하게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 2: 이승과 저승의 경계, 안개 낀 험난한 황천길 풍경

    덕배의 혼백이 저승사자들에게 끌려 걷고 있는 길은 이승의 그 어떤 험한 산길보다도 기괴하고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발밑으로는 날카로운 가시덤불과 서슬 퍼런 칼날 같은 돌멩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사방은 짙은 잿빛 안개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해와 달을 잃어버린 듯 검붉은 빛으로 일렁였고,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비명인지 모를 소름 끼치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귓전을 때렸습니다.

    "아이고, 사자 나리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리 험한 길을 맨발로 끌고 가십니까! 저희 집 뒷간 고친다고 진 빚도 아직 다 못 갚았고, 늙으신 노모 제사도 당장 내일모레입니다요. 제가 죽으면 제 아내는 굶어 죽고 맙니다!"

    덕배는 쇠사슬에 묶인 채 발이 부르트고 무릎이 깨지는 것도 모른 채 끊임없이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들은 앞만 보고 묵묵히 걸을 뿐, 덕배의 말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잔말 말고 걷기나 해라. 명부에 한 번 이름이 오른 이상, 옥황상제 할아비가 와도 이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억울한 것이 어디 네놈뿐이겠느냐. 황천길에 발을 들인 놈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 핑계를 대지."

    앞서가던 저승사자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사슬을 홱 잡아당겼습니다. 덕배는 고꾸라지며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았습니다.

    '이승에서 죄지은 것도 없이 부처님 반 토막처럼 살았는데, 어찌 내 팔자가 이리도 기구하단 말인가….'

    얼마를 더 걸었을까, 안개가 걷히며 거대한 강줄기가 나타났습니다. 핏빛처럼 검붉은 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끔찍한 강이었습니다. 강가에는 덕배처럼 끌려온 수많은 망자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길게 줄을 서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부터 갓난아이를 업은 아낙네까지, 저마다 슬픈 사연을 품은 채 눈물조차 마른 얼굴로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덕배의 가슴도 먹먹해졌습니다.

    "이곳이 바로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게 만든다는 망각의 강, 삼도천이다. 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순간, 네놈이 이승에서 품었던 미련도, 가족에 대한 기억도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자의 말에 덕배는 펄쩍 뛰며 발버둥을 쳤습니다.

    "안 됩니다! 기억을 잊다니요! 내 아내의 얼굴을, 우리 집 마당의 감나무를 어찌 잊는단 말입니까! 저는 절대 저 배를 탈 수 없습니다!"

    덕배가 거세게 반항하자 저승사자는 짜증을 내며 곤봉으로 덕배의 등을 퍽 내리쳤습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구천을 떠도는 무연귀가 되어 영영 지옥불을 헤매게 될 뿐이다. 어서 배에 오르지 못할까!"

    어쩔 수 없이 뱃사공의 거친 손에 이끌려 나룻배에 올라탄 덕배. 검붉은 강물이 출렁일 때마다 물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의 하얀 손이 쑥쑥 튀어나와 배의 가장자리를 잡고 늘어졌습니다.

    "아이고 사람 살려! 아니, 귀신 살려!"

    덕배는 눈을 질끈 감고 배의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강을 건너는 내내, 평상에서 자신을 흔들며 오열하던 아내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습니다.

    '내 정녕 이대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염라대왕님을 뵙게 되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내 억울함을 호소하고야 말 테다. 반드시 살아 돌아갈 방도를 찾고야 말겠다!'

    마침내 배가 강 건너편에 닿았고, 안개 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하고 시커먼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성문 위에는 '명부전(冥府殿)'이라는 세 글자가 붉은 피로 쓴 듯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죄지은 자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는 지옥의 중심, 염라대왕이 머무는 저승의 법정에 덕배는 힘없는 발걸음을 내디뎌야만 했습니다. 그의 운명이 과연 어찌 될 것인지, 이승의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 3: 염라대왕 앞에서의 심문과 밝혀진 어처구니없는 실수

    명부전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압도적인 위압감이 덕배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이 넓은 법정은 온통 붉은 불길과 서늘한 푸른빛이 교차하며 비추고 있었고, 양옆으로는 소머리와 말머리를 한 무시무시한 옥졸들이 시퍼런 창을 들고 도열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정의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 커다란 흑단목 어좌에는 이승과 저승을 통틀어 가장 두려운 존재인 염라대왕이 천둥 같은 위엄을 뿜어내며 앉아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어라!"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낚아채자 덕배는 쿵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고개를 감히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 자가 오늘 명이 다하여 잡아 온 남부골의 김덕배이옵니다."

    저승사자의 보고에 염라대왕이 헛기침을 한 번 하자, 법정 전체가 지진이 난 듯 징징 울렸습니다.

    "네 이놈! 고개를 들어라. 네가 이승에서 지은 죄를 내 낱낱이 살펴볼 터이니, 조금의 거짓도 없이 고하여야 할 것이다."

    천둥 같은 염라대왕의 목소리에 덕배는 덜컥 겁이 났지만, 이대로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대왕마마! 쇤네는 참으로 억울하옵니다! 쇤네는 평생 남의 물건 하나 훔친 적 없고, 이웃집 담장 한 번 엿본 적 없이 그저 묵묵히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순박한 촌부이옵니다. 아직 나이도 젊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는데, 어찌 벌써 제 명줄을 끊으시려 하십니까!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덕배의 절박한 외침에 염라대왕은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습니다.

    "허어, 이승에서 끌려온 자들은 하나같이 죄가 없다 발뺌을 하지. 판관은 어서 생사부(生死簿)를 펼쳐 저놈의 명줄과 지은 죄를 확인해 보아라."

    옆에 서 있던 판관 귀신이 사람 키만 한 거대한 장부를 펄럭펄럭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법정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판관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가락을 짚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허… 참으로 이상한 일이옵니다, 대왕마마. 여기 남부골 김덕배의 명부를 보건대… 수명이 여든다섯까지로 적혀 있고, 아직 명줄이 육십 년이나 남았사옵니다. 게다가 평생 적선과 선행을 베풀어 이승에서 복을 누릴 자로 기록되어 있사옵니다."

    "무엇이라?! 수명이 아직 육십 년이나 남았다고?"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명부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대왕은 눈에서 불을 뿜으며 저승사자들을 노려보았습니다.

    "네 이놈들! 일을 어찌 이리 허투루 한단 말이냐! 수명이 창창한 산 사람을 어찌 함부로 끌고 왔느냐!"

    저승사자들은 사색이 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대, 대왕마마! 분명 오늘 잡아 와야 할 자의 이름이 남부골 김덕배라 적혀 있었사옵니다. 저희는 명부의 지시대로 행했을 뿐이옵니다!"

    염라대왕이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판관에게 소리쳤습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라! 필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을 터!"

    판관이 안경을 고쳐 쓰고 생사부의 글씨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헐레벌떡 대왕 앞에 엎드렸습니다.

    "대, 대왕마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명부를 잘못 보았사옵니다! 오늘 명줄이 다하여 끌고 와야 할 자는… '남부골'에 사는 착한 농부 김덕배가 아니라, 저 고개 넘어 '북부골'에 사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 김덕배이옵니다! 북부골 김덕배는 나이가 아흔이 넘었고, 평생 남의 고혈을 빨아먹어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옵니다. 이름이 같아 사자들이 착각을 하여 애먼 사람을 잡아 온 것이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법정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동명이인인 엉뚱한 사람의 혼을 빼앗아 온 것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은 기가 막혀 뒷목을 잡았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들을 보았나! 이름 석 자가 같다고 동네도 확인하지 않고 산 사람의 명줄을 끊어놓다니! 당장 저 사자 놈들의 곤장을 쳐서 지옥으로 내쫓아라!"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대왕마마!"

    옥졸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저승사자들을 보며, 덕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내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구나. 저승의 관리가 허술하여 하마터면 애먼 사람을 잡을 뻔하였어. 네 육신이 썩기 전에 서둘러 이승으로 돌려보내 줄 터이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거라."

    "아, 아닙니다! 다시 살려만 주신다면 쇤네는 그저 평생 대왕마마가 계신 쪽을 향해 절을 하며 살겠습니다요!"

    염라대왕의 한마디에 묶여 있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려나갔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갈 수 있게 된 덕배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의 헛발질 덕분에 지옥 구경만 실컷 하고 다시 이승길에 오르게 된 사내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 4: 이승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진짜' 죽을 운명의 사내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한바탕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명부전은 언제 그런 소란이 있었냐는 듯 다시금 무겁고 서늘한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저승사자들의 뼈아픈 실수 덕분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뻔했던 남부골의 착하고 성실한 농부 김덕배는, 마침내 끔찍한 지옥의 문턱에서 벗어나 다시금 이승의 맑고 눈부신 햇살을 맞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험상궂고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이전의 흉측한 저승사자들 대신, 얼굴에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가득 띠고 눈처럼 새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백발의 안내자가 덕배의 앞길을 다정하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덕배가 이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수록, 지옥의 끔찍하고 잔혹한 형벌을 알리는 망자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살을 태울 듯 펄펄 끓어오르던 가마솥의 붉은 열기도 점차 아스라이 멀어져 갔습니다. 발바닥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베어내던 서슬 퍼런 가시덤불과 칼날 같던 바위 길은 어느새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하얀 구름길로 신비롭게 변해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오며 억울함과 두려움으로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던 덕배의 발걸음은 이제 금방이라도 하늘 위로 훌쩍 솟아오를 듯 솜털처럼 가벼웠고, 당장이라도 눈물짓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의 따뜻한 품으로 단숨에 달려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벅차올랐습니다.

    "참으로 기막히고도 험난한 일을 겪으셨소이다. 저승의 명부 관리가 이리도 허술하여 수명이 창창하게 남은 산 사람의 명줄을 함부로 쥐고 흔들었으니, 염라국을 대신하여 내 이리 고개 숙여 깊은 사과를 올리오. 비록 육신에서 혼이 떨어져 나와 큰 고초를 겪었으나, 이는 모두 이승에서 그대가 베풀어 온 맑고 선한 업보가 하늘에 닿아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라오. 이승으로 다시 돌아가시거든 그간 베풀어 온 선행을 거울삼아 주변의 가엾은 이웃들을 돌보며 더욱 평안하고 복되게 살아가시구려. 하늘은 결코 남 모르게 덕을 쌓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을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않는 법이라오."

    백발의 안내자가 다정하고도 묵직한 음성으로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와 당부의 말에, 덕배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허리를 깊이 굽히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요! 어찌 그런 황송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렇게 억울하게 묶였던 오해를 깨끗이 풀어주시고 다시금 이승의 따뜻한 햇빛을 보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그저 뼛속 깊이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제 평생 염라대왕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와 사자 나리의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고, 가진 것이 비록 적더라도 이웃과 콩 한 쪽이라도 나누며 착하고 바르게만 살겠습니다요!"

    두 사람이 안개 낀 구름길을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높고 스산한 고갯마루에 다다랐을 무렵이었습니다. 짙게 깔린 잿빛 안개 너머에서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롭고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무거운 쇠사슬이 거칠게 바닥을 긁어대는 섬뜩한 쇳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덕배가 흠칫 놀라 제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조심스레 바라보자, 산처럼 건장한 체격에 험악한 얼굴을 한 저승사자 두 명이 누군가의 목에 굵은 쇠줄을 걸고 짐승처럼 질질 끌고 오고 있었습니다.

    "이놈들아! 당장 내 목에 걸린 이 더러운 쇠줄을 놓지 못할까! 내가 대체 누군지 알고 이따위 무엄하고 방자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나는 저 고개 넘어 북부골에서 제일가는 갑부이자 최고의 세도가인 김덕배란 말이다! 내 집 창고에는 너희 같은 놈들은 평생 구경도 못 해볼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마저 내 앞에서는 굽신거리며 설설 기는데 어찌 감히 내 귀한 목에 쇠줄을 건단 말이냐! 당장 나를 내 집 안방으로 고이 돌려보내 주면, 너희 놈들에게 내 기꺼이 금송아지를 한 마리씩 내어줄 터이니 당장 나를 놓아다오!"

    안개가 조금 걷히고 끌려오는 자의 정체를 확인한 덕배는 그만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입을 떡 벌리고 말았습니다. 사자들에게 짐승처럼 끌려오며 땅바닥을 뒹굴고 발악을 하는 자는, 온몸에 최고급 비단 도포를 칭칭 감고 열 손가락마다 굵직한 금가락지와 옥가락지를 주렁주렁 매단 욕심 많게 생긴 늙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염라대왕의 생사부에서 자신의 이름과 착각을 일으켰던 장본인, 평생 남의 고혈을 거머리처럼 빨아먹고 잔인한 고리대금업으로 배를 불려 온 북부골의 그 악독한 영감 김덕배가 틀림없었습니다. 이승에서 부리던 그 알량한 권력과 재물이 저승에서도 통할 줄 알고 끝까지 교만을 떠는 노인의 모습은 참으로 추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시끄럽다, 이 잔인하고 악독한 늙은이야! 네놈이 이승에서 무고한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내어 긁어모은 그 썩어빠진 금은보화가 저승길의 노잣돈으로라도 쓰일 줄 아느냐! 저승의 문턱을 넘는 순간 이승의 재물은 한낱 흙먼지보다 못한 쓰레기에 불과한 것을 어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논밭을 무자비하게 빼앗고, 수많은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들어 피눈물을 흘리게 한 네놈의 더러운 죄업이 곤륜산보다도 높거늘, 어디서 감히 알량한 재물 나부랭이로 공명정대한 저승의 법도를 희롱하려 드느냐! 네놈이 지금부터 영원토록 머물 곳은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펄펄 끓는 똥물 가마솥 지옥뿐이니, 잔말 말고 앞으로 걷기나 해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승사자가 가차 없이 무거운 곤봉을 치켜들어 늙은 김덕배의 무릎을 퍽 소리가 나도록 매섭게 내리치자, 비단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노인은 그 자리에 고꾸라져 마치 돼지 멱따는 듯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그토록 이승에서 떵떵거리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세를 부리던 오만한 권력과 태산 같던 재물도,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숙명과 저승사자의 시퍼런 쇠사슬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아… 저자가 바로 나와 똑같은 이름 석 자를 가졌다는 그 북부골의 지독한 영감이로구나. 이승에서는 평생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호의호식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렸을 터이나, 죽음의 강을 건너 이 문턱을 넘으니 저리도 비참하고 초라한 짐승만도 못한 꼴이 되고 마는 것을. 평생 탐욕스럽게 모은 재물도 저승길에는 단 한 닢조차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이승에서 지은 악독한 죄업만이 무거운 쇠줄이 되어 제 목을 처참하게 조르는구나.'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졌으나 뼛속까지 다른 삶을 살았던 노인의 비참하고도 처절한 최후를 묵묵히 지켜보며, 덕배의 가슴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비록 비단옷 대신 거칠고 땀에 찌든 무명옷을 입고 살았고, 상다리가 휘어지는 진수성찬 대신 소박한 보리밥에 된장찌개로 끼니를 때웠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남을 속이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 묵묵히 흙을 만지며 땀 흘려 일해 온 자신의 소박한 삶이 얼마나 떳떳하고 눈부시게 복된 것인지를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끌려가는 저 흉악한 자를 향해 조금의 동정이나 연민도 품을 필요는 없소이다. 이승에서의 선행과 악행은 저승의 공정한 저울 위에서 단 한 치의 오차도, 한 점의 거짓도 없이 그 무게가 철저히 달아지는 법이라오. 자, 이제 이승의 문턱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소. 그대의 육신이 차갑게 굳어 썩기 전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야 영혼이 무사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터인데,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 봅시다."

    백발의 안내자가 넓은 소매를 펄럭이며 덕배를 이끌자, 눈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이승의 따스하고 희미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덕배는 끔찍한 비명을 쉴 새 없이 내지르며 어두운 지옥의 구렁텅이로 끌려가는 악독한 영감의 비참한 뒷모습을 뒤로한 채, 자신에게 기적처럼 허락된 두 번째 귀한 삶을 향해 벅찬 숨을 몰아쉬며 활짝 열린 이승의 문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갔습니다.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집 마당의 오래된 감나무 냄새와, 아내가 끓여주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기가 벌써부터 콧끝을 다정하게 스치는 듯했습니다.

    ※ 5: 곡소리 나는 장례식 한가운데서 깨어난 사내의 기막힌 부활

    안개를 뚫고 아스라한 이승의 경계를 넘어 마침내 돌아온 덕배의 혼백이 가장 먼저 마주한 광경은, 왁자지껄한 소란과 애간장을 녹이는 구슬픈 곡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울려 퍼지는 자신의 집 마당이었습니다. 평화롭던 저녁 무렵, 평상에 앉아 밥술을 뜨려다 갑작스레 목숨을 잃고 쓰러진 덕배의 청천벽력 같은 죽음 소식에 온 마을 사람들이 슬픔을 안고 달려와 마당 가득 차일과 천막을 치고 부랴부랴 장례를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 심성이 비단결처럼 고와 이웃들의 궂은일을 자기 일처럼 도맡아 하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덕배였기에, 그의 허망한 죽음을 애통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통곡 소리는 그 어느 부잣집 장례보다도 처절하고 깊게 밤하늘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내 집 마당에 웬 초롱불이 대낮처럼 이리도 환하게 켜져 있단 말인가.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펄펄 끓이고 있는 저 벌건 국물은 필시 장례 때 문상객들을 대접하는 육개장이 아니던가! 멍석이 깔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꼴을 보아하니, 영락없이 내 초상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덕배의 투명한 혼백은 허공을 둥둥 떠돌며 마당의 분주하고 애달픈 풍경을 이리저리 내려다보았습니다. 부엌 쪽에서는 마을 아낙들이 소매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고 있었고, 마당 한편에서는 장정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탁주를 연거푸 들이켜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어허, 참으로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착하고 부지런한 김 서방이 어찌 이리 벼락 맞듯 허망하게 일찍 간단 말인가.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뼈 빠지게 일만 하던 사람을 이리 데려가시다니, 명줄 쥐고 있는 저승사자 놈들은 대체 눈이 삔 게 틀림없어!"
    "내 말이 그 말이네. 지난겨울 우리 집 지붕이 무너졌을 때 제 일처럼 달려와 고쳐준 사람이 바로 덕배 아닌가. 그 은혜를 갚기도 전에 이리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가엾은 저 안사람은 이제 홀로 어찌 세상을 헤쳐나간단 말인가."

    마을 사람들의 진심 어린 애도와 한탄을 들으며 덕배는 자신의 장례식 풍경을 구경하는 이 기막힌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아내의 처절한 곡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른 누구의 슬픔보다도 자신을 잃고 홀로 남겨진 아내의 오열이 덕배의 영혼을 강하게 끌어당겼습니다.

    서둘러 방문을 통과해 안방으로 훌쩍 스며들어간 덕배의 눈앞에는, 낡은 병풍 뒤에 칠성판을 깔고 수의를 입은 채 뻣뻣하고 싸늘하게 누워 있는 자신의 육신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육신 옆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아내가 머리를 산발한 채 엎드려 목이 완전히 쉬어버리도록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덕배의 손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 마치 자신의 생명이라도 불어넣으려는 듯 얼굴을 비비며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아이고, 여보! 이리 말 한마디 없이 허망하게 훌쩍 가버리시면 남은 나는, 이 가엾은 나는 대체 어찌 살라고 이러십니까! 평생 고운 비단옷 한 벌 제대로 해 입히지 못하고 매일 뙤약볕에서 고된 밭일만 시킨 것이 이리도 천추의 한이 되는데, 그 좋아하시던 따뜻한 밥 한 술 제대로 목구멍에 넘기지도 못하고 가시다니요! 차라리 나를 같이 묶어 데려가시지, 어찌 이리 매정하고 야속하게 혼자만 홀연히 눈을 감으셨단 말입니까!"

    아내의 퉁퉁 부어오른 붉은 눈과 핏물이 맺힌 듯한 절규를 보자, 덕배의 혼백 역시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오며 투명한 영혼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당장이라도 아내의 떨리는 어깨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며 "여보, 나 죽지 않았소! 나 여기 시퍼렇게 살아 있소! 염라대왕이 나를 다시 살려주어 무사히 돌아왔단 말이오!" 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싶었지만, 영혼의 외침은 허공을 맴돌 뿐 산 사람의 귀에는 전혀 가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소이다! 해가 뜨고 육신이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리면 영혼이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영영 구천을 떠돌게 되오. 더 늦기 전에 어서 저 몸통 안으로 들어가시오!"

    뒤따라온 백발의 안내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묵직한 기운이 덕배의 혼백을 병풍 뒤의 육신을 향해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앗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덕배의 영혼이 뻣뻣하게 누워 있던 창백한 육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마치 마른하늘에 날카로운 번개가 내리치듯 온몸의 핏줄을 타고 짜릿하고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을 거둔 지 꼬박 만 하루가 지나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던 병풍 뒤의 시신이, 느닷없이 "쿨럭! 쿨럭! 푸하앗!" 하는 요란하고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허리를 튕기듯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순간, 비통함에 잠겨 있던 안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덕배의 굳은 손을 잡고 애달프게 곡을 하던 아내는 죽은 남편이 벌떡 일어나 앉자 혼비백산하여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뒤로 나자빠져 기절해 버렸습니다. 마침 혼령을 달래기 위해 향을 피우러 방에 들어왔던 마을 이장 어르신은 들고 있던 뜨거운 향로를 공중으로 팽개치며 "아이고, 맙소사! 귀… 귀신이다! 송장이, 뻣뻣한 송장이 살아서 벌떡 일어났다!" 고 짐승처럼 소리치며 방문턱에 걸려 마당으로 우당탕탕 굴러떨어졌습니다.

    방 안에서 들려온 기괴한 비명 소리에 놀라 마당에서 술을 마시던 마을 장정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르르 뛰어 들어왔지만, 하얀 수의를 치렁치렁 입은 채 두 눈을 껌벅거리며 평온하게 앉아 있는 덕배를 보고는 사색이 되어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습니다. 장정들은 서로 자빠지고 엉키고 짓밟으며 "아이고 사람 살려! 죽은 김 서방이 원귀가 되어 돌아왔다!" 며 살기 위해 대문 밖으로 미친 듯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마당 구석의 장독대에 처박혀 덜덜 떨며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제 목을 답답하게 감싸고 있던 수의를 훌훌 벗어 던진 덕배가 뒷머리를 북북 긁적이며 방문을 활짝 열고 마당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습니다.

    "아, 거 참! 다들 평상시에 담력 좋다고 큰소리치더니 왜 이리 호들갑들을 떠시오? 나 귀신 아니오, 안 죽었단 말이오. 저승사자 그 멍청한 놈들이 명부의 이름을 잘못 보고 엉뚱하게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갔다가, 염라대왕님께서 큰 실수를 했다며 사과하고 서둘러 다시 돌려보내 주셨단 말이오! 어허, 그나저나 그 먼 황천길을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내리 걸었더니 목이 말라죽겠소. 거기 상에 놓인 탁주 한 사발과 부침개 한 조각만 시원하게 내어주시오. 내 배가 고파 눈이 핑핑 돌 지경이오!"

    방금 전까지 병풍 뒤에 누워 있던 시체가 천연덕스럽게 걸어 나와 염라대왕 운운하며 막걸리와 안주를 찾는 이 기막히고 황당한 광경 앞에, 마을 사람들은 입을 턱까지 벌린 채 그 자리에서 돌부처처럼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절했다가 찬물을 맞고 겨우 정신을 차린 아내만이 엉금엉금 기어 덕배에게 다가갔고, 따뜻하게 쿵쾅거리며 뛰는 남편의 넓은 가슴을 두 손으로 만져보고는 그제야 엉엉 목놓아 울며 그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애끓는 곡소리로 가득했던 침통한 초상집은 순식간에 눈물과 웃음, 그리고 경악이 뒤범벅된 기적의 잔칫집으로 변해버렸고, 탁주를 들이켜며 덕배가 쏟아내는 통쾌하고도 기상천외한 저승 탈출기는 꼬박 밤을 새워가며 온 마을 사람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 6: 덤으로 얻은 두 번째 인생,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따뜻한 결말

    덕배가 무사히 이승으로 돌아와 마을 전체가 한바탕 뒤집어지는 소동이 벌어진 다음 날 아침. 밤새 덕배의 기막힌 저승 방문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남부골 마을에 참으로 기이하고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기막힌 소문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덕배가 황천길 고갯마루에서 마주쳤다던 고개 너머 북부골의 그 악독한 부자 영감,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 김덕배에 관한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장터를 다녀온 마을 청년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평상에 모여 앉은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이보게들, 다들 내 기막힌 말 좀 들어보소! 어제저녁 무렵에 북부골의 그 지독한 구두쇠 김덕배 영감이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지 뭔가! 멀쩡하게 방구석에 앉아 저녁으로 값비싼 잉어찜을 탐욕스럽게 뜯어 먹다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허옇게 까뒤집더니 비명 한 번 제대로 못 지르고 그대로 피를 토하며 즉사했다는구먼. 시신이 얼마나 흉측하고 기괴하게 굳어버렸는지, 관을 짜러 온 목수마저 고개를 젓고 침을 뱉을 정도였다고 해!"

    "세상에나, 만상에나! 하늘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더니 꼴좋게 되었구먼! 그럼 우리 남부골 덕배가 어젯밤 내내 들려준 저승 이야기가 단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몽땅 사실이었단 말인가! 저승사자가 그 악독한 놈을 잡으러 가야 할 것을, 이름 석 자가 같다고 우리 착한 덕배를 잘못 데려갔다가 염라대왕에게 불호령을 맞고 혼쭐이 나서는 부랴부랴 제대로 잡아간 것이 틀림없구먼! 참으로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여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더니,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네!"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손뼉을 치고 무릎을 치며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승의 명줄이라는 것이 하늘의 치밀한 섭리에 의해 얼마나 오묘하고 정확하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평소 이승에서 지은 추악한 죄악이 결국 얼마나 무섭고 잔혹한 결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 더 기막힌 것은, 비참하게 죽은 북부골 영감의 집안 꼴이었습니다. 영감이 숨을 거두기가 무섭게 그의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아들들은 아비의 시신을 정성스레 모실 생각은 하지도 않고, 서로 창고의 금고 열쇠를 차지하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습니다. 형제끼리 몽둥이를 들고 집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며 피 튀기는 패싸움을 벌였고, 결국 관아의 포졸들이 들이닥쳐 재산을 모두 적몰당하고 자식들은 줄줄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남의 피눈물을 무자비하게 짜내어 긁어모은 썩어빠진 재물이, 결국 제 자식들의 파멸을 부르고 가문을 풍비박산 내는 지독한 독약이 되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이 모든 끔찍하고도 통쾌한 소식을 조용히 전해 들은 남부골의 우리 착한 김덕배는, 마당 평상에 편안히 앉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고 평온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곁에서 부지런히 물레를 돌리며 베를 짜고 있는 아내의 거친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여보, 나는 저승의 끔찍한 문턱을 직접 다녀오고 나서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소박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고 큰 축복이었는지를 뼛속 깊이 깨달았소이다. 저 북부골 영감처럼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둔들 죽을 때는 단 한 닢도 가져가지 못하고 세상의 원성만 남길 뿐이오. 하지만 나는 비록 비단옷 입을 돈이 없어 가난할지라도,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핏빛 눈물을 흘려준 당신이 내 곁에 살아 숨 쉬고 있고, 내 장례를 치러주려 만사 제쳐두고 달려온 따뜻한 이웃들이 있으니,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부귀영화가 대체 어디 있겠소."

    "맞습니다, 여보.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이 저 끔찍한 황천길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와 다시 제 곁에 이리 든든하게 계셔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세상천지에 부러울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가진 것이 비록 적고 소박하더라도, 주변의 이웃들과 더 넉넉히 마음을 나누고 베풀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날 이후,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덤으로 얻은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덕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세상을 품으며 살았습니다. 본래도 성실하고 착한 사내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밭에서 난 싱싱한 채소 한 포기, 쌀 한 줌조차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들이나 굶주리는 가난한 집 아이들과 기꺼이, 그리고 아낌없이 나누며 살았습니다. 마을에 궂은일이 생기면 언제나 가장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땀을 흘렸고, 억울한 일을 당한 이웃이 있으면 황천길에서 저승사자에게 호통치던 염라대왕 못지않은 당당한 기세로 앞장서서 그들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습니다.

    "허허, 염라대왕님께서 훌륭하게 살라며 내게 육십 년의 수명을 보너스로 팍팍 얹어 주셨는데, 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어찌 내 배만 불리며 허투루 쓸 수 있겠소. 부지런히 주변에 적선하고 덕을 층층이 쌓아두어야 나중에 진짜로 명줄이 다해 황천길에 다시 오를 때, 떳떳하게 염라대왕님과 마주 앉아 이승의 탁주라도 한잔 시원하게 나누지 않겠소이까!"

    덕배가 특유의 넉살 좋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막힌 저승 탈출기를 들려줄 때면, 마을 사람들은 배를 잡고 뒹굴며 웃으면서도 다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사람답게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굳은 다짐을 마음에 깊이 새기곤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저승사자의 바보 같은 착오로 시작된 아찔했던 죽음의 경험은, 결국 이승에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눈부시고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욕심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이웃과 베푸는 삶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된 덕배와 그의 아내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모진 병 하나 없이 무병장수하며, 남부골 마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백년해로하며 눈부시게 행복한 삶을 살았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저승사자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실수 덕분에 지옥 문턱에서 돌아와 두 번째 인생을 멋지고 따뜻하게 살아간 김덕배의 통쾌한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평생 긁어모은 재물도 저승 갈 땐 빈손이라는 묵직한 깨달음과 함께, 진정한 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며 사는 사람이라는 따뜻한 진리를 전해주는 뜻깊은 옛날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시청자 여러분도 오늘 하루,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과 다정한 말 한마디 나누시며 덤처럼 주어진 이 눈부신 시간을 마음껏 행복하게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배꼽 쏙 빠지고 가슴은 뭉클해지는 재미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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