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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지도 ─ 시왕(十王)의 심판정 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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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44자)

    사람이 죽어 이레째 되는 날부터, 저승 열 분 대왕 앞에서 시작되는 무서운 심판. 살아생전 지은 죄와 베푼 공덕이 업경대에 낱낱이 되비치고, 업저울이 그 무게를 달아낸다지요. 진광대왕부터 오도전륜대왕까지, 어느 문으로 다시 태어날지 갈리는 그 아득한 저승길. 우리가 죽은 뒤 정말 이런 세계가 펼쳐진다면, 오늘 하루를 과연 함부로 살 수 있을까요. 자, 지금부터 조선 사람들이 믿었던 저승 시왕의 심판정, 그 열 곳을 함께 돌아보십시다.

    1화 ── 죽은 지 이레, 진광대왕 앞에 선 첫 번째 재판

    사람이 숨을 거두고 이레째 되는 날이면, 그 넋은 저승 시왕 가운데 맨 첫 번째 관문인 진광대왕의 심판정에 다다른다지요. 황천길을 지나 삼도천을 건넌 넋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문이니, 그 앞에 선 이들의 낯빛이 하나같이 사색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더랍니다.

    여기 한 사내가 있었으니,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승에서 제법 약삭빠르게 살았던 자였지요. 남의 것을 슬쩍하고도 시치미를 떼고, 곤경에 처한 이를 못 본 척 지나치기 일쑤였더랍니다. 그런 그가 눈을 떠 보니, 사방이 어스름한 잿빛 안개에 잠긴 낯선 뜰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분명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사내가 어리둥절하여 두리번거리는데,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저승사자가 그의 어깨를 툭 짚으며 나직이 일렀습니다.

    "이승에서의 자네 삶은 이레 전에 끝났네. 이제 저승 열 분 대왕의 심판을 차례로 받아야 하느니, 여기가 그 첫 번째 진광대왕의 광이니라."

    사내는 그제야 제가 죽었음을 깨닫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더랍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저와 같은 처지의 넋들이 줄지어 서서 저마다 벌벌 떨고 있었지요. 개중에는 통곡하는 이도 있고, 억울하다 발버둥 치는 이도 있으며, 넋을 놓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승에서는 귀천이 하늘과 땅 같았을 이들이, 이곳에서는 하나같이 헐벗은 넋이 되어 같은 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윽고 커다란 문이 삐걱 열리며, 서슬 푸른 위엄을 두른 진광대왕이 높은 자리에 앉아 그를 굽어보았지요. 그 곁에는 이승에서의 행실을 낱낱이 적은 두루마리를 든 판관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라. 진광대왕 앞에서는 그 무엇도 감출 수 없느니라. 네 이승에서의 첫 이레 죄목을 묻겠다. 너는 살아생전 함부로 목숨을 해한 일이 있느냐. 남의 것을 탐하여 도둑질한 일이 있느냐."

    사내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차마 거짓을 아뢸 수가 없었더랍니다. 진광대왕 앞에 서니, 잊고 지냈던 지난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젊은 시절 재미 삼아 산짐승을 함부로 잡던 일이며, 배고픈 척 다가와 옆집 홀어미의 곡식 자루를 슬쩍 짊어지고 달아났던 일이며, 그 하나하나가 눈앞에 생생히 되살아났지요. 그때 곡식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굶주렸을 그 홀어미의 얼굴까지 떠오르니, 사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더랍니다.

    '아이고, 그때는 그저 한 끼 배 채우자고 저지른 일이거늘, 그것이 이렇게 낱낱이 남아 있을 줄이야.'

    "아뢰옵니다… 소인, 부끄러우나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함부로 목숨을 앗은 일도, 남의 것을 훔친 일도… 이제 와 무슨 낯으로 변명하겠나이까."

    뜻밖에도 진광대왕은 그 정직한 고백에 잠시 고개를 끄덕였더랍니다.

    "거짓으로 발뺌하는 자가 열에 아홉이거늘, 네 스스로 죄를 인정하니 그 마음만은 가상하구나. 허나 죄를 인정한다 하여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라. 진광대왕의 광은 첫 관문일 뿐, 네 죄의 무게는 앞으로 아홉 대왕을 거치며 낱낱이 가려질 것이다."

    그러고는 진광대왕이 사내에게 이리 물었습니다.

    "허나 한 가지 더 묻겠다. 네 비록 죄를 지었으나, 살아생전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남을 도운 일이 있느냐. 티끌만 한 선행이라도 좋다."

    사내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문득 아주 오래전 일 하나를 떠올렸더랍니다. 눈보라 치던 겨울, 길에 쓰러진 낯선 늙은이에게 제 봇짐 속 주먹밥 하나를 내어 준 일이었지요.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이내 잊어버린 일이었건만, 저승의 판관들이 그 사소한 선행마저 두루마리에 또렷이 적어 두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 그 일을 아직도 적어 두셨습니까…"

    진광대왕은 그 대목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나직이 말했습니다.

    "보아라. 이승에서 무심히 흘려보낸 작은 선행 하나도 저승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느니라. 마찬가지로 무심히 저지른 작은 죄 하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지. 이것이 저승의 첫 번째 법도이니, 명심하고 다음 관문으로 나아가라."

    사내는 무거운 걸음으로 광을 나서며, 뒤늦게 눈물을 삼켰더랍니다. '내 살아생전 조금만 더 베풀며 살았더라면, 이 길이 이토록 두렵지는 않았을 것을.' 이렇듯 진광대왕의 심판정은,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 어떻게 되비치는지를 처음으로 일깨워 주는 문이었더랍니다. 자, 이 사내는 두 번째 관문에서 또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요.

    2화 ── 죽은 옷을 나무에 거는 초강대왕의 심판정

    첫 번째 진광대왕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두 이레째 되는 날 두 번째 초강대왕의 심판정에 이른다지요. 이 초강대왕의 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큰 강 초강을 갓 건너온 넋들이 처음으로 제 죄의 무게를 눈으로 확인하는 곳이었더랍니다.

    심판정 한가운데에는 하늘로 가지를 쭉쭉 뻗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으니, 그 이름을 의령수라 하였지요. 죽은 이가 강가에서 벗어 놓은 옷을 저승사자가 이 나무의 가지에 척 걸어 놓으면, 그 옷이 얼마나 무겁게 늘어지느냐를 보아 생전의 죄를 가늠하는 것이었습니다. 죄가 무거운 자의 옷은 나뭇가지가 휘어질 만큼 축 처지고, 마음이 맑은 자의 옷은 바람에 가벼이 나부낀다지 뭡니까.

    그날도 두 넋이 나란히 그 나무 앞에 섰더랍니다. 하나는 이승에서 고을 곡식을 관리하던 아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생 나룻배로 사람을 건네주던 늙은 사공이었지요.

    먼저 아전의 옷이 의령수 가지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옷이 걸리기가 무섭게 나뭇가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땅에 닿을 듯 축 늘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무게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곁에서 지켜보던 넋들이 다 숨을 죽였더랍니다.

    초강대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지요.

    "네 옷이 어찌 이토록 무거우냐. 이승에서 무슨 짓을 하였기에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이냐."

    아전은 시치미를 뚝 떼며 아뢰었습니다.

    "소인은 그저 맡은 바 곡식을 관리하였을 뿐, 별다른 죄를 지은 바 없사옵니다."

    허나 초강대왕의 광에서 어찌 거짓이 통하겠습니까. 의령수 나무가 스르르 흔들리더니, 그 옷자락 사이사이에서 무언가가 후드득 쏟아져 나왔지요. 바로 아전이 몰래 빼돌린 관곡의 낟알들이었더랍니다. 흉년에 굶주린 백성에게 돌아가야 할 곡식을 제 곳간에 슬쩍 채워 넣은 죄가, 낟알 하나하나가 되어 그 옷에 눌어붙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 이것은…!"

    아전은 그제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더랍니다. 낟알 한 톨의 무게가 이승에서는 하잘것없어 보였으나, 굶주린 백성의 원망이 서리니 저승에서는 천근만근이 되어 돌아온 것이지요. 초강대왕이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보아라. 네가 곳간에 감춘 곡식 한 톨 한 톨이, 그것을 먹지 못해 야윈 백성의 눈물과 함께 이 옷에 눌어붙었느니라. 흉년에 백성을 굶긴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네 이 무거운 옷을 짊어지고 다음 관문으로 나아가되, 관문을 지날 때마다 그 무게를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아전은 그 무거운 옷을 억지로 다시 걸치고는, 한 걸음 한 걸음 짓눌리듯 광을 나섰더랍니다. 이승에서 남몰래 채운 곳간이 저승에서는 이토록 무거운 짐이 될 줄, 그는 살아생전 꿈에도 몰랐던 것이지요.

    이번엔 늙은 사공의 옷이 의령수 가지에 걸릴 차례였습니다. 사공은 제 옷이 걸리는 것을 보며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떨었지요.

    '나 같은 뱃사공이야 무슨 대단한 선행을 했겠나. 나 역시 저 가지가 부러지도록 무거우면 어쩐다.'

    한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사공의 낡은 옷이 가지에 걸리자, 나뭇가지는 미동도 없이 그저 산들바람에 옷자락만 살랑살랑 나부낄 뿐이었더랍니다. 마치 빈 옷을 걸어 놓은 듯 가벼웠지요.

    초강대왕이 흡족한 낯으로 물었습니다.

    "네 옷이 어찌 이리 가벼우냐. 이승에서 무슨 공덕을 쌓았기에."

    사공은 어리둥절하여 대답했지요.

    "공덕이라 할 것도 없사옵니다. 소인은 그저 강가에서 사람을 건네주며 살았을 뿐, 뱃삯이 없는 이는 그냥 태워 주고, 급한 이는 밤중에도 노를 저어 건네주었을 따름이옵니다."

    초강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렀습니다.

    "바로 그것이니라. 네가 무심히 건네준 그 수많은 사람들의 고마움이, 네 옷을 이토록 가볍게 하였느니. 남을 이롭게 한 삶은 저승에 와 이렇듯 가벼운 옷으로 되돌아오는 법이지."

    지켜보던 넋들은 그 광경에 저마다 제 옷자락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더랍니다. 이승에서 무엇을 그러모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에게 베풀었느냐가 저승 옷의 무게를 정한다는 것을, 초강대왕의 의령수 나무가 말없이 일러 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 이 두 넋은 세 번째 관문에서 또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무거운 옷을 짊어진 아전과 깃털처럼 가벼운 옷의 사공, 두 사람의 저승길은 이제부터 사뭇 달라질 참이었더랍니다.

    3화 ── 세 이레째, 송제대왕 앞에서 드러난 감춰둔 죄

    두 이레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세 이레째 되는 날 세 번째 송제대왕의 심판정에 다다른다지요. 이 송제대왕의 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승에서 남몰래 저지른 죄, 아무도 보지 못했으리라 여겼던 은밀한 죄를 낱낱이 파헤치는 무서운 곳이었더랍니다.

    앞선 두 관문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죄를 물었으나, 송제대왕의 광에서는 사람의 눈을 피해 어둠 속에서 저지른 일들을 캐묻지요. 벽에 죄가 그림처럼 떠오르니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더랍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점잖고 어질어 보이던 이들이, 이 관문에 이르러서야 감춰 두었던 본색이 드러나 벌벌 떠는 일이 허다했더랍니다.

    그날 송제대왕 앞에 한 사내가 불려 왔으니, 이승에서는 인망 두터운 마을의 어른으로 통하던 자였습니다. 겉으로는 늘 반듯한 도포 차림에 점잖은 말씨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를 우러러보았지요. 초상이 나면 앞장서 조문하고, 잔치가 열리면 덕담을 아끼지 않으니, 누구도 그의 속을 의심하지 않았더랍니다.

    한데 송제대왕 앞에 선 그의 낯빛이 어찌 된 일인지 흙빛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들라. 송제대왕의 광에서는 네가 어둠 속에서 저지른 일들을 묻겠노라. 사람의 눈은 속였을지 몰라도, 저승의 눈은 결코 속이지 못하느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판정 벽면에 흐릿한 그림 하나가 서서히 떠올랐더랍니다. 그것은 깊은 밤, 사내가 이웃의 논둑을 몰래 허물어 제 논으로 물길을 돌리던 광경이었지요. 가뭄이 들었을 적, 겉으로는 이웃을 위로하는 척하며 밤이면 남몰래 그 집 물꼬를 막아 제 논만 채웠던 것입니다.

    "이, 이것은 다 지난 일이고,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모른다? 저 논둑 아래 잠든 미물들이 보았고, 밤하늘의 달이 보았으며, 무엇보다 네 스스로가 알고 있지 않느냐. 세상에 완전히 감춰지는 죄란 없느니라."

    벽면의 그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더랍니다. 이번엔 사내가 곤경에 처한 먼 친척의 땅문서를 슬쩍 고쳐 제 것으로 만든 일이며, 겉으로는 후덕한 척하며 뒤로는 아랫사람의 품삯을 야박하게 떼어먹은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지요. 마을에서 그토록 우러름을 받던 어른의 감춰진 민낯이, 송제대왕의 광에서 남김없이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그림은 또 하나를 비추었더랍니다. 병든 노비가 몸져눕자 약 한 첩 지어 주기는커녕, 밥만 축낸다며 헛간으로 내쫓아 끝내 얼어 죽게 한 일이었지요. 그 노비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원망하던 그 눈빛이, 벽면에 또렷이 되살아나자 사내는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더랍니다.

    "그, 그 일까지…! 그건 오래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기억하고 있느니라.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저승에서 지워지지 않는 법이지."

    사내는 그예 무릎을 꿇고 흐느꼈더랍니다.

    "소인이… 소인이 어리석었나이다. 사람들의 눈만 가리면 되는 줄 알았지, 이렇게 낱낱이 남을 줄은 몰랐사옵니다. 겉으로 어진 척하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았나이다."

    송제대왕은 그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네 가장 큰 죄니라. 남을 속인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질다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린 죄지. 참으로 어진 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제 도리를 지키는 법이거늘, 너는 밝은 곳에서만 어진 체하였으니 그 위선의 값을 치러야 하느니라."

    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더랍니다. 이승에서 쌓아 올린 그 두터운 인망도, 저승의 벽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송제대왕의 광을 나서는 사내의 어깨는 앞선 관문에서보다 더욱 축 처져 있었더랍니다. 이렇듯 세 번째 관문은, 사람의 눈을 피해 저지른 은밀한 죄와 어진 척 꾸민 위선이 저승에서 어떻게 되비치는지를 준엄하게 일깨워 주는 곳이었지요. 겉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도 속이 검으면 저승의 벽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법이니,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마음가짐이야말로 참으로 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이 보지 않아도 제 양심을 속이지 말라는 그 서릿발 같은 가르침을, 우리 또한 깊이 새겨 둘 일이지요. 자, 이 넋은 네 번째 관문에서 또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요.

    4화 ── 업저울로 죄를 다는 오관대왕의 무서운 심판

    세 이레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네 이레째 되는 날 네 번째 오관대왕의 심판정에 이른다지요. 이 오관대왕의 광에는 저승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저울 하나가 놓여 있었으니, 그 이름을 업저울, 곧 업칭이라 하였더랍니다.

    이 업저울로 말할 것 같으면, 죽은 이가 이승에서 지은 선업과 악업을 양쪽 접시에 얹어 그 무게를 다는 저울이었지요. 착한 일이 무거우면 선한 쪽으로 바늘이 기울고, 나쁜 일이 무거우면 악한 쪽으로 바늘이 기우니,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받을 벌과 복이 정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오관대왕 앞에 한 여인이 불려 왔더랍니다. 이승에서는 몹시도 가난하게 살다 간 여인이었지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삯바느질로 근근이 자식들을 키우느라, 평생 제 몸 하나 편히 쉴 날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은 업저울 앞에 서서 잔뜩 겁을 먹었더랍니다.

    '나같이 미천하고 가진 것 없는 계집이 무슨 선업을 쌓았겠나. 부처님께 시주 한 번 넉넉히 해 본 적 없고, 큰 공덕을 베푼 일도 없으니… 필경 저 저울이 나쁜 쪽으로 기울고 말겠지.'

    이윽고 저승사자가 여인의 악업을 저울 한쪽 접시에 얹었습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지은 자잘한 허물들이 얹히니, 접시가 제법 묵직하게 내려앉았지요. 여인은 눈을 질끈 감았더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승사자가 반대쪽 접시에 여인의 선업을 하나둘 얹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더랍니다. 얹히는 것마다 하나같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었지요. 배고픈 걸인에게 식은 보리밥 한 술 나눠 준 일, 길에 쓰러진 병자에게 물 한 모금 떠다 준 일, 헐벗은 이웃 아이에게 제 자식 옷을 벗어 입힌 일, 우는 아이를 달래 준 일…

    그런 자잘한 선행들이 하나씩 얹힐 때마다, 저울 접시가 조금씩, 조금씩 내려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마침내 선업 쪽 접시가 악업 쪽을 훌쩍 눌러 내리며, 저울 바늘이 선한 쪽으로 기우뚱 기울고 말았더랍니다.

    여인은 제 눈을 의심하며 물었지요.

    "대왕마님,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이옵니까. 소인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남에게 이렇다 할 큰 공덕을 베푼 적이 없사온데…"

    오관대왕은 그 여인을 인자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일렀습니다.

    "네가 큰 공덕이라 여기지 않았을 뿐, 저 업저울은 그 무게를 정확히 아느니라. 굶주린 이에게 나눠 준 밥 한 술, 목마른 이에게 건넨 물 한 모금이 어찌 하찮겠느냐. 그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겼으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토록 무거운 선업이 된 것이니라. 큰 재물을 내던 부자의 시주보다, 없는 살림에 나눈 네 밥 한 술이 이 저울에선 더 무거운 법이지."

    여인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더랍니다. 평생 가난하고 고달팠던 제 삶이, 저승의 저울 앞에서는 이토록 값진 것이었다니. 그 자잘한 나눔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자, 여인은 그만 안도의 눈물을 쏟고 말았지요.

    여인의 뒤를 이어, 이번엔 이승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사내가 업저울 앞에 섰더랍니다. 사내는 제법 거들먹거리며 아뢰었지요.

    "소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승에서 큰 절에 기와를 올리고 불상에 금칠을 하는 데 은자를 아끼지 않았사옵니다. 잔치를 열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기도 여러 번이었으니, 소인의 선업이 어찌 가볍겠나이까."

    저승사자가 사내의 선업을 저울에 얹었습니다. 과연 큰 시주와 잔치가 얹히니 접시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듯하였지요. 한데 오관대왕이 가만히 지켜보다 물었더랍니다.

    "네 그 시주와 잔치에, 진정 남을 위하는 마음이 담겼더냐. 아니면 제 이름을 드높이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려는 마음이 담겼더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내의 선업이 얹힌 접시가 스르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베푸는 척하였으나 속으로는 제 잇속과 허명을 좇았던 그 마음이 드러나니, 아무리 큰 재물을 내었어도 저울은 그것을 무겁게 쳐 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도리어 아랫사람을 모질게 부리고 인색하게 굴었던 악업이 무겁게 얹히니, 저울 바늘은 그예 악한 쪽으로 기울고 말았더랍니다.

    "이, 이럴 수가! 내 그토록 많은 재물을 내었거늘, 저 미천한 계집보다 못하다니!"

    오관대왕이 준엄히 일렀습니다.

    "저울은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진심을 다느니라. 허명을 좇아 베푼 천 냥보다, 진심으로 나눈 밥 한 술이 더 무거운 법이지. 네 이 이치를 몰랐으니, 그것이 바로 네 가장 큰 어리석음이니라."

    오관대왕의 업저울은 이렇듯, 이승에서의 삶을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의 진심으로 재는 곳이었더랍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선행이라도 진심이 담겼으면 저승의 저울은 그 무게를 결코 놓치지 않으니, 오늘 우리가 무심히 베푸는 작은 친절 하나도 언젠가는 이렇듯 값진 무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 이 두 넋은 다섯 번째 관문에서 또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5화 ── 드디어 염라대왕 광명왕전, 저승 최고의 심판대에 서다

    네 이레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다섯 이레째 되는 날 마침내 다섯 번째 염라대왕의 광명왕전에 다다른다지요. 저승 열 분 대왕 가운데 그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이 바로 이 염라대왕이시니, 그 심판정의 위엄이 어떠하였을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더랍니다.

    광명왕전에 들어서면, 그 앞에 저승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었지요. 하나는 살아온 죄가 그림처럼 낱낱이 되비치는 커다란 거울, 업경대요. 다른 하나는 세상 모든 이의 행실이 빠짐없이 적힌 저승 장부였습니다. 이 둘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그 어떤 변명도 티끌만큼의 소용이 없었더랍니다.

    그날 염라대왕 앞에 두 넋이 나란히 불려 왔더랍니다. 하나는 이승에서 힘깨나 쓰며 남을 짓밟고 살던 토호였고, 다른 하나는 평생 남의 병을 고치며 살다 간 가난한 의원이었지요.

    먼저 토호가 업경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이승에서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되레 큰소리를 쳤더랍니다.

    "내 이승에서 고을을 주름잡던 사람이오. 여기서도 그리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외다!"

    염라대왕은 대꾸도 없이 그저 업경대를 가리켰지요. 그러자 거울 속에 토호의 지난 삶이 그림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더랍니다. 힘없는 이의 논밭을 빼앗던 일, 제게 대드는 이를 관가에 무고하여 옥에 가둔 일, 흉년에 곱절의 이자를 물려 백성의 등골을 빼먹던 일…. 그 하나하나가 거울에 생생히 비치니, 그토록 뻣뻣하던 토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했지요.

    "저, 저것은…!"

    "보아라. 업경대는 결코 거짓을 비추지 않느니라. 네 저지른 일이 저기 낱낱이 있거늘, 무슨 변명을 늘어놓겠느냐."

    염라대왕이 이번엔 저승 장부를 펼쳤더랍니다. 그 장부에는 토호에게 논밭을 빼앗기고 통곡하던 이들의 이름이며, 그의 무고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요. 그 원망의 목소리가 장부에서 웅웅 울려 나오는 듯하니, 토호는 그예 다리가 풀려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더랍니다.

    "자, 잘못했소이다! 내 이승에서의 힘을 믿고 너무 함부로 살았소! 부디 한 번만…"

    "이제 와 비는구나. 허나 네게 짓밟힌 이들이 흘린 눈물은 그리 쉽게 마르지 않느니라. 네 이승에서 그 많은 힘과 재물을 얻고도, 어찌 단 한 번 그것으로 남을 이롭게 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느냐. 힘이란 남을 짓밟으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한 이를 감싸라 주어진 것이거늘."

    토호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떨구었더랍니다. 이승에서 그토록 위세 등등하던 그가, 저승의 거울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넋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번엔 가난한 의원이 업경대 앞에 섰습니다. 의원은 잔뜩 움츠러들어 아뢰었지요.

    "소인은 그저 병자를 돌보다 간 미천한 의원일 뿐이옵니다. 가진 것 없어 이렇다 할 공덕도 쌓지 못하였사오니…"

    한데 업경대에 그의 삶이 비치자, 광명왕전 안에 은은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더랍니다. 한밤중에도 아픈 이가 부르면 마다 않고 달려가던 모습이며, 약값 없는 가난한 이에겐 값을 받지 않고 약을 지어 주던 모습이며, 돌림병이 돌 적에 제 몸 사리지 않고 병자를 돌보다 그예 병을 얻어 세상을 뜬 모습까지…. 그 삶이 어찌나 맑고 따뜻하던지, 지켜보던 저승사자들마저 고개를 숙였지요.

    염라대왕이 저승 장부를 펼치니, 이번엔 의원의 손에 목숨을 건진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더랍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가 의원을 향한 고마움으로 빛나고 있었지요.

    염라대왕은 그 의원을 인자하게 내려다보며 일렀습니다.

    "네 스스로는 미천하다 하나, 업경대와 장부가 네 삶을 이토록 밝게 비추는구나. 남의 목숨을 살린 손은 저승에서도 결코 어둡지 않느니라. 두려워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길을 가라."

    두 넋의 갈린 운명을 지켜보며, 광명왕전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옷깃을 여몄더랍니다. 염라대왕의 심판정은 이렇듯, 이승에서 쌓은 힘과 재물이 아니라 오직 지은 대로 되비치는 곳이었지요. 업경대는 거짓을 모르고 저승 장부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니, 오늘 우리의 삶도 언젠가 저 맑은 거울 앞에 고스란히 비칠 것을 생각하면, 어찌 하루하루를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자, 이 두 넋은 여섯 번째 관문에서 또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요.

    6화 ── 쇠구슬을 삼키게 하는 변성대왕의 심판정

    다섯 이레의 관문, 그 지엄한 염라대왕의 광명왕전을 지난 넋은, 죽어 여섯 이레째 되는 날 여섯 번째 변성대왕의 심판정에 다다른다지요. 이 변성대왕의 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승에서 혀로 지은 죄, 곧 거짓말과 이간질과 모함으로 남을 해한 죄를 다스리는 무서운 곳이었더랍니다.

    심판정 한켠에는 시뻘겋게 달군 쇠구슬이 화로 위에 그득 쌓여 있었지요. 변성대왕은 혀로 죄를 지은 자에게 이 쇠구슬을 삼키게 하여 그 죄를 씻게 한다지 뭡니까. 사람이 함부로 놀린 세 치 혀가 저승에서 어떤 값으로 돌아오는지를, 이 관문이 서릿발같이 일깨워 주는 것이었더랍니다.

    그날 변성대왕 앞에 한 사내가 끌려 나왔으니, 이승에서는 입담 좋기로 소문난 자였습니다. 남의 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두 집 사이를 갈라놓고, 없는 말을 지어내어 멀쩡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기를 밥 먹듯 하던 자였지요.

    변성대왕이 준엄히 물었습니다.

    "너는 이승에서 그 혀로 무슨 짓을 하였느냐. 낱낱이 고하라."

    사내는 여전히 뻔뻔하게 둘러댔지요.

    "소인이야 그저 들은 대로 옮겼을 뿐이옵니다. 말이란 게 본디 이 사람 저 사람 거치며 부풀려지는 것이지, 소인이 무슨 큰 죄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판정 벽면에 한 광경이 떠올랐더랍니다. 사내가 관가에 나아가 거짓으로 증언하는 모습이었지요.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 젊은이를 두고, 사내가 뇌물 몇 푼에 눈이 멀어 "내 그자가 훔치는 것을 똑똑히 보았소" 하고 거짓 증언을 하니, 그 젊은이는 끝내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 저것은…!"

    벽면의 광경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더랍니다. 사내가 지어낸 헛소문에 정숙한 아낙이 손가락질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며, 그의 이간질에 의좋던 형제가 원수가 되어 등을 돌린 일까지…. 사내의 혀끝에서 나온 거짓말들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가 낱낱이 되비쳤지요.

    그뿐이겠습니까. 사내는 이웃의 딸이 시집갈 적에도 없는 흉을 지어내어, 다 된 혼사를 깨뜨려 놓은 일이 있었더랍니다. 그 처녀가 억울한 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평생을 홀로 늙어 간 사연까지 벽면에 떠오르니, 심판정에 모인 넋들이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지요.

    억울하게 죽은 젊은이의 넋이 그 심판정 한켠에 서서, 사내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더랍니다. 사내는 그제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지요.

    "내, 내가… 그저 몇 푼에 눈이 멀어 한 거짓말이 사람을 죽였단 말이오…?"

    변성대왕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하니라. 칼로 벤 상처는 아물기라도 하지만, 혀로 벤 상처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 가고도 흔적조차 남지 않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가 바로 그 세 치 혀니라. 너는 그 혀로 여럿을 죽음으로 몰았으니, 이제 그 죄를 씻어야 하느니라."

    사내가 벌벌 떨며 쇠구슬 앞에 끌려가는데, 변성대왕이 문득 그를 멈춰 세웠더랍니다.

    "허나 묻겠다. 너는 살아생전, 단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해 참된 말을 한 적이 있느냐."

    사내는 한참을 떨다가, 겨우 기어드는 목소리로 아뢰었지요.

    "소인이… 딱 한 번, 억울하게 매를 맞던 아이를 두고 '그 아이는 잘못이 없소' 하고 사실대로 말한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만은 이문도 없이, 그저 아이가 불쌍하여 나선 것이었지요. 그 한마디로 아이는 매를 면했사옵니다."

    변성대왕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한마디 참된 말이 그나마 네 혀에 남은 유일한 빛이로구나. 말이란 이렇듯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법이다. 너는 그 이치를 너무 늦게 깨달았으니, 그 대가를 치른 뒤에야 다음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지켜보던 넋들은 저마다 제 입을 가만히 가렸더랍니다. 이렇듯 변성대왕의 심판정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저승에서 얼마나 무거운 죄가 되는지를 뼈아프게 일깨워 주는 곳이었지요. 남을 헐뜯고 이간질하는 말은 결국 제 혀를 태우는 쇠구슬이 되어 돌아오고, 남을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어둠 속의 등불이 되어 돌아오나니, 우리 또한 오늘 하루 내뱉는 말 한마디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자, 이 넋은 일곱 번째 관문에서 또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7화 ── 어느 문으로 다시 태어날지 정해지는 태산대왕전

    여섯 이레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일곱 이레째 되는 날 일곱 번째 태산대왕의 심판정에 이른다지요. 이 태산대왕의 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선 여섯 관문에서 죄와 공덕을 낱낱이 가려낸 뒤, 이제 그 넋이 어느 문으로 다시 태어날지를 정하는 참으로 중대한 곳이었더랍니다.

    태산대왕의 광에는 여섯 갈래로 난 커다란 문이 있었으니, 지옥으로 가는 문,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귀의 문, 짐승으로 나는 축생의 문, 싸움이 그치지 않는 아수라의 문, 다시 사람으로 나는 인간의 문, 그리고 복락을 누리는 천상의 문이 그것이었지요. 죽은 넋이 이승에서 어찌 살았느냐에 따라, 이 여섯 문 가운데 하나로 발길이 정해지는 것이었더랍니다.

    이 여섯 문은 저마다 빛깔이 사뭇 달랐더랍니다. 천상의 문에서는 오색구름과 은은한 풍악이 흘러나오고, 인간의 문에서는 따뜻한 봄볕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지요. 허나 지옥의 문에서는 시뻘건 불길과 신음이 새어 나오고, 아귀의 문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의 울부짖음이 흘러나오니, 그 앞에 선 넋들은 하나같이 제 발길이 어느 문으로 향할지 몰라 벌벌 떨었더랍니다.

    그날 태산대왕 앞에 한 사내가 불려 왔습니다. 이승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으되, 오직 제 배 채우는 일에만 골몰하던 자였지요. 곳간에 곡식이 썩어 나가도 굶주린 이웃에게 한 톨 나눌 줄 몰랐고, 오로지 먹고 또 먹고 그러모으는 데만 평생을 바친 자였습니다.

    태산대왕이 저승 판관이 올린 두루마리를 살피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더랍니다.

    "네 죄가 큰 살생이나 도둑질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평생 오직 제 배만 채우고 그러모으는 데만 마음을 쏟았구나. 남과 나눌 줄 모르고, 베풀 줄 모르며, 오직 탐욕으로만 살았으니…"

    그러고는 태산대왕이 아귀의 문을 가리켰지요. 그 문 너머로는 배는 산더미같이 부풀었으되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좁아, 아무리 먹어도 늘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귀들의 모습이 보였더랍니다.

    "이, 이럴 수가! 소인이 언제 남을 해쳤단 말입니까! 그저 부지런히 모았을 뿐인데!"

    "바로 그 끝없는 탐욕이 너를 저 아귀의 문으로 이끄는 것이니라. 이승에서 아무리 먹어도 만족을 몰랐듯, 저 문으로 들면 영영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지. 이는 벌이 아니라, 네가 살아온 그대로가 그 모습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이니라."

    사내는 그제야 땅을 치며 후회했더랍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남과 나누며 살았어도 이 문 앞에 서지 않았으련만.

    "대왕마님, 소인이 어리석었나이다! 곳간에 곡식이 그득해도 배고픈 이웃을 못 본 척했고, 재물이 넘쳐도 한 푼 베풀 줄 몰랐사옵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이제 와 깨달아도 이미 이승에서의 삶은 끝났느니라. 허나 그 뉘우침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니, 저 문 너머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뼈저리게 새기거라. 무릇 사람이 그러모으기만 하고 나눌 줄 모르면, 그 재물이 도리어 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는 것을."

    사내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아귀의 문으로 걸어 들어갔더랍니다.

    이번엔 한 늙은 아낙이 태산대왕 앞에 섰습니다. 이승에서 자식도 없이 홀로 늙어, 남의 집 부엌일을 거들며 근근이 살아온 가난한 여인이었지요. 그럼에도 제 밥을 덜어 동네 굶는 아이들을 먹이고, 병든 이가 있으면 밤새 곁을 지켜 주던 마음 고운 사람이었더랍니다.

    태산대왕이 그 두루마리를 살피더니, 낯빛이 한결 부드러워졌지요.

    "너는 가진 것 없이도 늘 나누며 살았고, 제 몸 고달파도 남을 먼저 살폈구나. 그 어진 마음이 이 두루마리에 가득하니…"

    그러고는 태산대왕이 인간의 문을 활짝 열어 가리켰습니다. 그 문 너머로는 따뜻한 봄볕이 드는 어느 집의 정경이 보였더랍니다.

    "너는 다시 사람으로 나되, 이번엔 복 있는 집에 태어나 사랑받으며 살게 될 것이니라. 네가 이승에서 베푼 그 온기가, 다음 생의 복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것이지."

    늙은 아낙은 그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인간의 문으로 들어섰더랍니다. 이렇듯 태산대왕의 심판정은, 이승에서의 삶이 다음 생의 모습을 정한다는 준엄한 이치를 일깨워 주는 곳이었지요. 오늘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곧 다음 생의 문을 정하는 것이니, 어찌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 수 있겠습니까. 자, 이 넋들은 여덟 번째 관문에서 또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8화 ── 백 일째 열리는 평등대왕의 저울질, 그 공평한 심판

    일곱 이레의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백 일째 되는 날 여덟 번째 평등대왕의 심판정에 다다른다지요. 이 평등대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이름 그대로 이승의 귀천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오직 지은 대로만 공평하게 갚는 분이었더랍니다.

    이승에서는 양반이니 상놈이니, 부자니 가난뱅이니 하는 신분의 벽이 하늘과 땅처럼 갈렸으나, 평등대왕의 광에 이르면 그런 것이 티끌만큼도 소용이 없었지요. 벼슬이 높았든 낮았든, 재물이 많았든 적었든, 오직 이승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았느냐만이 저울에 오를 뿐이었더랍니다.

    그날 평등대왕 앞에 두 넋이 나란히 불려 왔습니다. 하나는 이승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지체 높은 양반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양반 집에서 평생 종살이한 늙은 하인이었지요.

    먼저 양반이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나섰더랍니다. 죽어서도 제 신분이 어디 가겠느냐는 듯,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아뢰었지요.

    "대왕마님, 소인은 이승에서 대대로 벼슬을 지낸 명문가의 양반이올시다. 저 미천한 종놈과 어찌 같은 자리에 세우십니까. 마땅히 소인을 먼저, 그리고 후하게 대접하심이 도리가 아니겠나이까."

    평등대왕은 그 말에 서늘한 눈길로 양반을 굽어보았더랍니다.

    "양반? 명문가? 그런 것은 이승의 허울일 뿐, 이 평등대왕의 광에서는 아무런 값도 없느니라. 나는 오직 네가 그 지체 높은 신분으로 무엇을 하였는지를 물을 뿐이다."

    그러고는 평등대왕이 두루마리를 펼치니, 양반의 지난 삶이 낱낱이 드러났지요. 아랫사람을 종처럼 부리고도 품삯을 떼먹은 일, 흉년에 곳간을 걸어 잠그고 굶주린 소작농을 내쫓은 일, 제 뜻에 거스르는 종을 매질하여 병들게 한 일…. 지체 높은 양반이랍시고 누린 것은 많았으되, 그 지위로 남을 이롭게 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더랍니다.

    "이는… 이는 다 그 시절의 법도가 그러하였으니…"

    "법도를 핑계 삼지 말라. 같은 양반이라도 아랫사람을 어질게 거둔 이가 있고, 어려운 이를 살뜰히 보살핀 이가 있느니라. 너는 그 높은 자리를 오직 남을 짓밟는 데만 썼으니, 그 죄가 도리어 낮은 자보다 무겁다. 많이 가진 자에게는 많이 물을 것이요, 높은 자리에 있던 자에게는 더 무겁게 물을 것이니라."

    양반은 그제야 낯빛이 하얗게 질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더랍니다. 이승에서 그토록 우러름을 받던 그 지체와 문벌이, 저승의 저울 앞에서는 도리어 무거운 짐이 되어 제 목을 조를 줄, 그는 살아생전 꿈에도 몰랐던 것이지요. 도포 자락을 아무리 여며 보아도, 그 안에 담긴 것이 텅 비어 있으니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번엔 늙은 하인이 잔뜩 움츠러들어 앞으로 나왔더랍니다. 평생 남의 집 종으로 살며 매질과 설움을 견뎌 온 그였지요.

    "소인은… 그저 미천한 종으로 태어나 종으로 늙어 죽은 몸이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어, 이렇다 할 공덕을 쌓지 못하였사오니 부디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한데 평등대왕이 그 두루마리를 살피더니, 낯빛이 환해졌더랍니다. 하인은 비록 종의 신분이었으나, 제 몫의 밥을 덜어 더 굶주린 종들을 먹이고, 주인의 매를 대신 맞아 어린 종을 감싸 주며, 병든 동무의 병수발을 마다 않던 어진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보아라. 너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어진 마음으로 살았구나. 신분이 미천하다 하여 그 마음까지 미천한 것은 결코 아니니라. 도리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남을 보살핀 네 마음이야말로, 저 지체 높은 양반의 그것보다 백 배는 값진 것이니라."

    늙은 하인은 그 말에 그만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더랍니다. 이승에서 평생 사람 대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매질과 설움만 견뎌 온 그였건만, 저승에 와서야 비로소 제 어진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것이지요.

    "소인 같은 종놈의 삶에도… 그런 값이 있었사옵니까…"

    "있고말고. 저승의 저울은 신분을 보지 않고 오직 마음을 보느니라. 네 그 설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 이제 고개를 들고 떳떳이 다음 길로 나아가거라."

    두 넋의 갈린 처지를 지켜보며, 심판정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옷깃을 여몄더랍니다. 이렇듯 평등대왕의 심판정은, 이승의 신분과 지위가 저승에서는 한낱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오직 그 사람됨만이 참된 값어치라는 것을 준엄하게 일깨워 주는 곳이었지요. 높든 낮든, 가졌든 못 가졌든,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마음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자, 이 두 넋은 아홉 번째 관문에서 또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9화 ── 죽은 지 일 년, 도시대왕 앞에서 마주한 마지막 참회

    여덟 관문을 지난 넋은, 죽어 한 해가 되는 날, 곧 첫 제삿날인 소상에 아홉 번째 도시대왕의 심판정에 이른다지요. 이 도시대왕의 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선 여덟 대왕을 거치며 죄가 무거워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넋에게, 마지막으로 참회할 기회를 주는 곳이었더랍니다.

    그래서 이 도시대왕을 두고 저승에서는 자비로운 대왕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아무리 죄가 무거운 넋이라도, 이 관문에서 진심으로 뉘우치면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하였으니 말입니다. 다만 그 참회가 참된 것인지 거짓인지는, 도시대왕의 밝은 눈이 낱낱이 꿰뚫어 보았더랍니다.

    그날 도시대왕 앞에 한 사내가 불려 왔습니다. 이승에서 젊은 시절 노름과 술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늙은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채 속만 썩이다 세상을 뜬 자였지요. 그 죄가 가볍지 않아 앞선 관문에서도 여러 번 무거운 벌을 받았더랍니다.

    도시대왕이 두루마리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너는 이승에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제 한 몸 향락에 빠져 살았구나. 이제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진정 네 잘못을 뉘우치느냐."

    사내는 그 자리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더랍니다.

    "뉘우치옵니다… 뼈에 사무치도록 뉘우치옵니다. 병드신 어머니가 미음 한 술 넘기지 못하고 저를 기다리실 적에, 소인은 노름판을 전전하였사옵니다.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실 적에도 소인은 술에 취해 곁을 지키지 못하였지요. 그 불효를 어찌 말로 다 하겠나이까…"

    "이제 와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싶으냐. 허나 참된 뉘우침은 그 자체로 값이 있는 법이니라. 다시 한 번 묻겠다. 만일 네게 이승에서의 하루가 다시 주어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사내는 목이 메어 겨우 말을 이었더랍니다.

    "단 하루라도 주어진다면… 어머니 무릎을 베고 지난날의 잘못을 빌겠나이다. 아버지 손을 잡고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올리겠나이다. 노름과 술이 다 무엇이라고, 그 소중한 세월을 그리 허투루 흘려보냈는지… 이제야 그것이 사무치옵니다."

    그 참회가 어찌나 절절하던지, 도시대왕도 잠시 말을 잃었더랍니다. 바로 그때, 심판정 저편에서 은은한 향내가 감돌며 한 줄기 따뜻한 빛이 스며들어 왔지요. 도시대왕이 그 빛을 바라보더니, 문득 사내에게 일렀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아라. 마침 오늘이 네 첫 제삿날이로구나. 이승에 남은 네 자식이, 너를 위해 정성껏 제사상을 차리고 있느니라."

    사내가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보니, 저 빛 속에 제 어린 자식이 보였더랍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정성껏 상을 차리고, "아버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소서" 하며 절을 올리는 그 모습이었지요. 살아생전 못난 아비였건만, 자식은 그런 아비를 원망하기는커녕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 위에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자식이 며칠을 아껴 마련한 나물이며 떡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더랍니다. 어린 자식이 서툰 손으로 향을 사르고,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 살아 계실 적 제대로 못 모신 것이 한이 됩니다. 저승에서나마 편안하시길 빕니다" 하고 흐느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것이… 저 어린것이 이 못난 아비를 위해…"

    도시대왕이 나직이 말했더랍니다.

    "보아라. 네가 이승에서 지은 죄는 무거우나, 네 진심 어린 참회와 저 자식의 정성이 네 죄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 주는구나. 산 자의 정성과 죽은 자의 뉘우침이 만나면, 저승의 무거운 문도 한 뼘쯤은 가벼워지는 법이니라."

    사내는 자식의 절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오열했더랍니다. 뒤늦은 참회가 지난 죄를 다 씻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 진심만은 저승에까지 닿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도시대왕의 심판정은, 아무리 늦었어도 참된 뉘우침에는 반드시 그만한 자비가 따른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었더랍니다. 또한 이승에 남은 이들의 정성이 저승 간 이의 길을 밝혀 준다 하였으니, 먼저 가신 분을 기리는 마음이 어찌 헛되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효도하지 못한 한이 사무치거든, 지금이라도 곁에 계신 부모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뉘우침은 늦을수록 아픈 법이니 말이지요. 자, 이 넋은 마지막 열 번째 관문에서 어떤 심판을 마주하게 될까요.

    10화 ── 여섯 갈래 윤회의 문 앞에 선 오도전륜대왕전

    아홉 관문을 모두 지난 넋은, 죽어 삼 년째 되는 날, 곧 대상의 날에 마지막 열 번째 오도전륜대왕의 심판정에 다다른다지요. 이 오도전륜대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앞선 아홉 대왕이 낱낱이 가려낸 죄와 공덕을 모두 헤아려, 그 넋이 여섯 갈래 윤회의 문 가운데 어디로 다시 태어날지를 최종으로 결정하는 분이었더랍니다.

    그러니 이 관문은 저승 여정의 끝이자,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이 갈리는 곳이었지요. 지옥으로 떨어질지, 아귀나 축생으로 날지, 아수라로 날지, 다시 사람으로 날지, 아니면 천상의 복락을 누릴지, 그 모든 것이 이 오도전륜대왕의 한마디로 정해지는 것이었더랍니다.

    그날 마지막 관문에 한 넋이 이르렀으니, 바로 맨 처음 진광대왕 앞에서 제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던 그 사내였습니다. 이승에서 약삭빠르게 살며 남의 것을 슬쩍하고 곤경에 처한 이를 못 본 척하던, 바로 그 사내 말이지요. 지난 삼 년, 그는 아홉 관문을 지나며 제 죄를 낱낱이 마주하고 뼈아프게 뉘우쳤더랍니다.

    관문마다 그는 제가 이승에서 저지른 일들을 다시 마주해야 했지요. 홀어미의 곡식을 훔친 일, 못 본 척 지나친 병든 이, 무심히 내뱉은 모진 말 한마디….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며, 사내는 관문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더 낮아지고, 조금씩 더 겸허해졌더랍니다. 처음의 그 뻔뻔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그저 지난날이 부끄럽고 사무칠 뿐이었지요.

    오도전륜대왕이 아홉 대왕의 심판을 적은 두툼한 장부를 펼치며 물었습니다.

    "너는 이승에서 적잖은 허물을 지었느니라. 도둑질도 하였고, 남을 못 본 척도 하였지. 허나 아홉 관문을 지나는 동안, 너는 죄를 감추지 않고 스스로 인정하였으며, 진심으로 뉘우쳤더구나. 그것이 참이더냐."

    사내는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지요.

    "참이옵니다. 소인, 살아생전에는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그저 제 잇속만 좇았사옵니다. 허나 저승의 관문들을 지나며, 제가 무심히 저지른 일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나이다. 다시 사람으로 날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결코 그리 살지 않겠나이다."

    오도전륜대왕이 장부의 한 대목을 짚었더랍니다. 그것은 사내가 눈보라 치던 겨울, 길에 쓰러진 낯선 늙은이에게 제 봇짐 속 주먹밥 하나를 내어 준 일이었지요. 진광대왕의 광에서 처음 떠올랐던 그 작은 선행 말입니다.

    "보아라. 네가 무심히 베푼 이 주먹밥 하나가, 지난 삼 년 내내 네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었느니라. 그 작은 온기가 없었다면 네 길은 사뭇 어두웠을 것이다. 티끌 같은 선행 하나가 이토록 큰 빛이 될 줄, 너는 몰랐겠지."

    그러고는 오도전륜대왕이 여섯 문 가운데 인간의 문을 가만히 가리켰더랍니다. 그 문 너머로는 따뜻한 봄볕이 드는 어느 마을의 정경이 아련히 펼쳐져 있었지요.

    "너는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감추지 않았고, 뉘우칠 줄 알았으며, 작으나마 남을 도운 마음을 품었느니라. 그리하여 다시 사람으로 나되, 이번 생에는 지난날의 깨달음을 품고 어질게 살 기회를 주노라. 부디 이번에는 그 마음 잃지 말거라."

    사내는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몇 번이고 절을 올렸더랍니다.

    "이 크나큰 은혜, 다음 생에서 반드시 어질게 살아 갚겠나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어려운 이를 못 본 척하지 않으며, 제가 받은 이 자비를 남에게 두루 베풀겠나이다!"

    그렇게 사내가 인간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니, 그 뒷모습이 처음 저승에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달라 보였더랍니다. 두려움에 떨던 넋이, 이제는 새로운 삶을 향한 다짐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열 분 대왕의 심판정을 지나는 저승길은, 죄지은 이를 벌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제 삶을 돌아보고 뉘우쳐 다시 어질게 살라 이끄는 길이기도 하였더랍니다. 죽은 뒤의 세계가 이토록 낱낱이 우리 삶을 되비친다면, 우리 또한 오늘 하루를 어찌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남에게 베푼 작은 온기 하나, 정직하게 산 하루 하루가, 언젠가 저 저승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니 말이지요. 이로써 시왕의 심판정 열 곳을 두루 돌아보는 저승지도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 유튜브 엔딩멘트 (241자)

    열 분 대왕의 심판정을 지나는 저승길은, 죄지은 이를 벌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제 삶을 돌아보고 다시 어질게 살라 이끄는 길이었습니다. 업경대는 거짓을 모르고 저승 장부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지요. 오늘 우리가 베푼 작은 온기 하나, 정직하게 산 하루가 언젠가 저 저승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좋아요'와 '구독'으로 함께해 주시고, 다음 저승지도 이야기에서 또 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시길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English, 16:9, no text, colored pencil)

    A dark, awe-inspiring Joseon-era underworld judgment hall. At the center, King Yeomra (Yeomra-daewang) sits high on a throne wearing crimson royal robes (곤룡포) and a beaded ceremonial crown (면류관), gazing down with solemn authority. Beside the throne stands a great mirror of karma (업경대) faintly reflecting scenes of a past life, and an open ledger of the dead. Below, a frightened soul in worn white hanbok with a topknot (sangtu) kneels on the stone floor. Two grim reapers (저승사자) in black robes (검은 도포) and traditional black hats (갓) stand guard on either side. Eerie bluish mist and a single ominous shaft of light, deep shadows, heavy and mysterious atmosphere. Colored pencil illustration style, 16:9 ratio, no text. Joseon-era Korean setting only; no foreigners, no foreign backgrounds, no modern elements, no ali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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