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제3 송제대왕과 한빙지옥(寒氷地獄)

    21일째, 부모에게 불효하거나 이웃을 냉대한 자들이 갇히는 영겁의 얼음산. 살이 얼어붙고 뼈가 부서지는 혹한 속에서 이승의 냉혹함을 뉘우치는 이야기.

    태그 (15개)

    #염라야담, #송제대왕, #한빙지옥, #얼음지옥, #시왕, #이십일일심판, #저승사자, #저승이야기, #불효, #효도, #권선징악, #인과응보, #모정, #오디오드라마, #옛날이야기
    #염라야담 #송제대왕 #한빙지옥 #얼음지옥 #시왕 #이십일일심판 #저승사자 #저승이야기 #불효 #효도 #권선징악 #인과응보 #모정 #오디오드라마 #옛날이야기

     

     

    후킹멘트 (283자)

    평생 홀어머니를 냉골에서 떨게 하고, 이웃도 나그네도 매몰차게 내쫓은 사내가 있었습니다. "내 것 내가 아끼는데 그게 무슨 죄냐"며 큰소리치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죽은 지 스무하루째, 눈앞에 하늘을 찌를 듯한 얼음산이 나타났습니다. 살이 얼어 터지고 뼈가 부서지는 한빙지옥. 정을 베푼 만큼만 얼음이 녹는다는데, 평생 아무에게도 온기를 나누지 않은 이 사내는 목까지 파묻히게 생겼습니다. 그때 뜻밖의 넋 하나가 대왕 앞에 나섭니다. 다름 아닌, 그가 얼려 죽인 어머니였습니다.

    ※ 1: 얼음장 같은 사내

    함경도 북청 땅, 개마고원 자락에 기대앉은 서릿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더랍니다. 이름값을 하느라 그랬는지, 그곳은 겨울이 유독 길고 매서웠지요. 시월이면 벌써 서리가 하얗게 앉고, 동짓달만 되면 처마 끝에 어른 팔뚝만 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추위 속에서도 서로 아궁이 불씨를 나누고, 김칫독을 함께 묻으며 오순도순 살았지요. 눈이 많이 오는 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군고구마를 나눠 먹고, 누구네 소가 새끼를 배면 온 동네가 제 일처럼 기뻐하는, 그런 인정 넘치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사내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은 한덕구라 하였습니다. 나이 마흔둘,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어 서릿골에서 그를 당할 자가 없었어요. 논밭도 제법 있고 소도 두 마리나 부리는, 남부럽지 않은 살림이었지요. 그런데 이 한덕구에게는 딱 한 가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모진 마음씨였습니다.

    한덕구에게는 홀어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나이 일흔이 넘어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노인이었지요. 젊어 남편을 여의고 삯바느질에 남의 밭일까지 하며 외아들 하나를 키워 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한덕구였어요. 어미는 제 입에 들어갈 것을 아껴 아들을 먹였고, 제 등이 시린 줄도 모르고 아들 등을 덮어 주었습니다.

    흉년 들던 어느 해에는, 어미가 제 밥그릇을 통째로 아들 앞에 밀어 놓고 굶은 적도 있었지요. 어린 덕구가 "어머니는 안 드세요?" 하고 물으면, 어미는 이렇게 웃었습니다.

    "난 아까 부엌에서 다 먹었단다. 어여 많이 먹고 쑥쑥 커라, 내 새끼."

    사실은 부뚜막에서 누룽지 몇 조각으로 배를 채운 것이었어요. 그렇게 제 살을 깎아 키운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한덕구가 어미를 어찌 대했는지 아십니까. 밥상은 늘 아랫목 저와 윗목 어미로 갈라 차렸는데, 어미 상에는 식은 밥에 짠지 한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반면 제 상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에 고깃국을 올렸지요. 어미가 곁에서 기침이라도 하면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아, 밥 먹는데 재수 없게 콜록거리긴. 저리 좀 가서 자슈."

    겨울이 되어도 어미 방에는 불을 넉넉히 때 주지 않았습니다. 아궁이에 장작 두어 개비 넣어 주고는 아까워서 벌벌 떨었지요. 노인이 냉골에서 밤새 덜덜 떨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면, 한덕구는 그 방문 앞을 지나며 혀를 찼습니다.

    "늙은이가 잠도 많어. 저러고도 밥은 꼬박꼬박 축내니, 원."

    한번은 어미가 하도 추워 며느리한테 장작 한 개비만 더 넣어 달라 사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본 한덕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요.

    "어머니는 장작이 공짜인 줄 아슈? 그거 다 돈이유, 돈! 이불 뒤집어쓰고 자면 될 것을 뭘 자꾸 불을 달래."

    그러고는 아궁이 앞에 쌓인 장작을 죄다 제 방 쪽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어미는 그날 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도 밤새 오들오들 떨었지요.

    동네 사람들이 보다 못해 한마디 하면 되레 눈을 부라렸어요.

    "내 어미 내가 건사하는데 왜들 참견이야. 안 굶기고 안 내쫓는 것만 해도 효자지."

    어디 어미한테만 그랬겠습니까. 이웃한테는 더 매몰찼습니다. 흉년이 들어 옆집에서 양식을 꾸러 오면 문전박대가 예사였지요.

    "우리 식구 먹을 것도 빠듯한데 무슨 소리유. 딴 데 가 보슈."

    곳간에 곡식이 그득한데도 그랬습니다. 눈 쌓인 겨울밤, 길 잃은 나그네가 하룻밤 재워 달라 사립문을 두드려도 한덕구는 몽둥이부터 들고 나왔어요.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남의 집 문을 두드려. 썩 꺼지지 못해!"

    그 나그네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사정했습니다.

    "이보시오, 밖이 너무 추워 얼어 죽게 생겼소.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부탁이오."

    "헛간은 우리 소가 자는 데야. 소보다 못한 놈이 어딜. 저리 가!"

    그러고는 매정하게 사립문을 닫아걸었지요. 그렇게 쫓겨난 나그네가 그해 겨울, 마을 어귀 고갯마루에서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린 채로 꽁꽁 언 모습이었어요. 사람들은 수군거렸지요.

    "한덕구가 헛간 문만 열어 줬어도 저 사람이 안 죽었을 텐데."

    "쯧쯧, 사람 속이 어찌 저리 얼음장 같을꼬. 개마고원 얼음보다 더 차네그려."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한덕구는 눈 하나 깜짝 안 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뇌까렸지요.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제 팔자지 내 알 바요? 남 사정 봐주다간 내 살림 거덜 나지."

    그러던 한덕구의 어미가 그해 혹독한 겨울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습니다. 냉골에서 밤새 앓다가,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눈을 감은 겁니다. 그날도 어미는 며느리를 통해 아들에게 불 좀 때 달라 부탁했지만, 한덕구는 "며칠만 참으슈, 봄 오면 안 추워" 하고는 제 방 문을 닫아 버렸지요. 어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며느리한테 전해 들었는데, 이런 말이었다지요.

    "덕구야, 날이 참 춥구나. 방이 왜 이리 시리냐…… 그래도 우리 덕구 손발은 안 시렸으면 좋겠다."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 걱정을 한 겁니다. 그런데도 한덕구는 어미 장례를 치르면서 곡 한 번 시원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례 비용이 아깝다고 투덜거렸어요.

    "산 사람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죽은 사람한테 뭘 그리 쓰누."

    그러고는 어미가 덮던 낡은 이불이며 옷가지를 죄다 아궁이에 넣어 태워 버렸습니다. 남 주기도 아깝다면서요.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몸서리를 쳤지요.

    그런데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겁니다. 어미가 죽고 딱 사흘째 되던 날 밤, 한덕구가 곳간에서 곡식 섬을 세다가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졌습니다. 그러고는 그 길로 숨이 끊어졌지요. 평생 냉골에서 어미를 떨게 하더니, 정작 저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죽지도 못하고 찬 곳간 바닥에서 숨을 거둔 겁니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어미가 냉골에서 떤 값을 아들이 곳간 바닥에서 치르는구먼."

    "인과응보라더니, 저승 문턱이 코앞이로세."

    그렇게 한덕구는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 2: 스무하루째, 얼음산의 벌판

    한덕구가 눈을 떠 보니 사방이 온통 허옇게 얼어붙은 벌판이었습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얼음이 쩌억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어요. 살을 에는 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 뼛속까지 시렸습니다. 한덕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지요.

    '허, 여기가 어디길래 이리 춥누. 서릿골 겨울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그때 저만치서 흰 도포에 흰 갓을 쓴 사내 하나가 걸어왔습니다. 온통 눈밭인데 그 옷이 어찌나 하얀지 잘 보이지도 않았어요. 손에는 서릿발이 돋은 쇠사슬을 들고 있었지요. 저승차사였습니다.

    "함경도 북청 서릿골 한덕구. 데리러 왔다."

    한덕구는 그제야 자기가 죽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이 사내, 죽어서도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었어요.

    "아니, 내가 벌써 죽었단 말이오? 나같이 멀쩡한 사람이 왜? 뭔가 잘못된 거 아니오? 나 아직 곳간 곡식도 다 못 세었는데."

    "곡식 걱정할 때가 아니다. 명부에 네 이름이 올랐으니 갈 때가 된 게지. 오늘이 스무하루째다."

    "스무하루째라니?"

    "죽은 지 이레마다 대왕 한 분씩 뵙는 게 저승 법도다. 이레 전엔 제일전, 열나흘 전엔 제이전을 지났을 것 아니냐. 오늘은 제삼전에 들 차례다."

    한덕구는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무슨 칼날 산과 끓는 솥을 지나온 것 같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살생을 한 적도, 도둑질을 한 적도 없어 그럭저럭 넘어갔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일 없겠거니 하고 배짱을 부렸지요.

    '나야 남의 물건 훔친 적도 없고, 사람 죽인 적도 없는데. 뭐 걸릴 게 있어야지. 이번에도 슬쩍 넘어가면 그만이지.'

    한덕구는 오히려 차사한테 큰소리를 쳤습니다.

    "거참, 나 같은 사람을 뭐 하러 데려와서 이 고생을 시키우. 얼른 대왕인지 뭔지 만나서 후딱 끝냅시다. 나 추운 거 딱 질색이니까."

    차사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서늘하더랍니다.

    "추운 게 질색이라. 허, 그거 참 안됐구나. 네가 갈 곳이 어딘지 알면 그 소리가 쏙 들어갈 텐데."

    차사가 앞장서서 걷는데, 걸음을 옮길수록 추위가 더 지독해졌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눈을 뜨기도 힘들었어요. 길 양옆으로 다른 망자들도 줄지어 걸어가는데, 하나같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입술이 새파랗게 얼었고, 어떤 이는 손발이 곱아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요.

    한덕구는 그 사람들 틈에서 낯익은 얼굴을 하나 보았습니다. 몇 해 전 자기 집 문을 두드렸다가 쫓겨나 고갯마루에서 얼어 죽은 그 나그네였어요. 그 나그네가 한덕구를 알아보고는 부르르 떨더랍니다. 원망이 사무친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았지요. 한덕구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습니다.

    '저, 저놈이 왜 여기 있어. 재수 없게. 저놈이 나를 알아보면 안 되는데.'

    가슴이 뜨끔했지만, 한덕구는 애써 모른 척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눈보라 너머로 거대한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흰 구름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그게 산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흙산도 돌산도 아니었습니다. 온통 새파란 얼음으로 뒤덮인,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얼음산이었지요. 얼음 속에 푸른빛이 감돌아, 보고만 있어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산비탈에는 헐벗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얼어붙어 있었어요. 어떤 이는 허리까지 얼음에 파묻혔고, 어떤 이는 온몸이 얼음 기둥이 되어 눈만 껌뻑이고 있었습니다. 살이 얼어 터지고, 얼어 터진 자리가 다시 얼어붙기를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지요. 여기서도 사람이 죽지를 않으니, 그 고통이 영영 끝나지 않는 겁니다.

    산 위에서는 얼음처럼 새하얀 옥졸들이 서릿발 채찍을 들고 서서, 얼어붙은 자들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신음이 들려왔는데, 그 소리가 바람에 섞여 온 벌판에 울려 퍼졌어요. 어찌나 애처로운지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시렸습니다.

    "저, 저기가 어디요."

    한덕구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배짱을 부리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어요. 차사가 대답했습니다.

    "한빙지옥이다. 제삼전 송제대왕께서 정 없이 산 죄를 다스리는 곳이지. 부모에게 불효한 자, 이웃을 냉대한 자, 굶주린 이를 문전박대한 자, 그런 자들이 저 얼음산에 갇힌다."

    그 말에 한덕구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한 자, 이웃을 냉대한 자. 하나하나가 다 자기 이야기였으니까요.

    "저기 사람들이 왜 저리 다르게 얼어 있소? 어떤 이는 발목만, 어떤 이는 목까지……."

    "정을 베푼 만큼 얼음이 녹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남에게 따뜻한 밥 한 술, 아궁이 불씨 하나라도 나눈 자는 발목만 잠기고, 가진 것이 넘치는데도 마음이 얼음장 같아 아무에게도 온기를 나누지 않은 자는…… 목까지 얼어붙는다."

    한덕구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살아생전 남에게 온기를 나눈 일이 있던가. 아무리 헤아려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오히려 어미 방에 불도 안 때 주고, 이웃도 나그네도 다 쫓아낸 일만 생각났지요. 어미가 마지막으로 "방이 왜 이리 시리냐"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렸습니다.

    '아니야. 나는 남의 것 훔친 것도 아니고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그냥 좀 인색하게 산 것뿐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내 것 내가 아껴 쓴 게 죄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이가 딱딱 부딪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 얼음산 꼭대기에 유난히 눈에 띄는 자리가 하나 보였어요. 다른 데보다도 더 새파랗게, 더 두껍게 얼어붙은 자리였습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미리 비워 둔 것처럼 말이지요. 한덕구는 그 자리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저 꼭대기 빈자리는…… 뭐요?"

    차사는 대답 대신 그저 한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도 무서웠지요.

    바로 그때, 저 앞 하얀 궁궐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렸습니다.

    "제삼전 송제대왕 입정이시오. 이십일일 망자들은 들라."

    ※ 3: 제3전 송제대왕, 빈 거울

    하얀 궁궐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서릿발이 돋아 반짝였어요. 기둥이며 대들보에 하얀 성에가 두껍게 끼어 있었고, 바닥은 거울처럼 매끈한 얼음이었습니다. 좌우로 흰 갑옷 입은 옥졸들이 창을 들고 늘어섰고, 정면 높은 자리에 한 분이 앉아 계셨지요.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데도, 그 궁궐에는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시리게 하는 무언가가 감돌았습니다.

    서리처럼 새하얀 곤룡포에 얼음 결정이 수놓인 관을 쓰고, 수염에도 눈서리가 하얗게 앉은 어른이었습니다. 눈빛은 얼음장처럼 서늘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이상하게도 슬픔 같은 것이 어려 있었어요. 제삼전 송제대왕이었습니다. 이 대왕은 정 없이 산 죄, 곧 불효와 냉대와 박정의 죄를 다스리는 분이지요. 사람이 사람에게 마땅히 나눠야 할 온기를 저버린 자들이 이 앞에 서는 겁니다.

    그 곁에는 설강이라는 판관이 서서 새하얀 장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궐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얼음 거울이 하나 세워져 있었어요. 사람이 그 앞에 서면, 살아생전 남에게 어떤 온기를 나눴는지, 혹은 어떤 냉기를 뿌렸는지가 그대로 비쳐 나오는 거울이었습니다. 그 거울에 온기가 많이 비칠수록 얼음이 얕게 잠기고, 냉기만 가득할수록 얼음에 깊이 파묻히는 것이었지요.

    "함경도 북청 서릿골, 한덕구. 앞으로 나오라."

    한덕구는 쭈뼛쭈뼛 걸어 나갔습니다. 얼음 바닥이 어찌나 찬지 발바닥이 쩍쩍 들러붙었어요. 그래도 배짱을 버리지 않고 넙죽 엎드려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은 남의 것을 훔친 적도, 사람을 해친 적도 없습니다. 그저 제 살림 아끼며 조용히 산 죄밖에 없으니, 부디 굽어살펴 주십시오."

    송제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나직이 한숨을 쉬셨습니다.

    "제 살림 아끼며 산 죄밖에 없다……. 그 말, 참으로 많이도 듣는구나. 설강은 거울을 밝혀라."

    설강 판관이 손을 들자, 얼음 거울이 스르르 밝아졌습니다. 그 안에 한덕구네 집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어미가 냉골에서 떨던 그 겨울밤이었습니다.

    거울 속 어미는 홑이불 하나로 몸을 감싸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서리는 방에서, 노인은 굽은 손으로 아들 방 쪽을 향해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덕구야, 춥지는 않니. 이 어미는 괜찮다만…… 우리 덕구는 안 추워야 할 텐데."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아랫목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코를 골며 자는 한덕구가 나타났습니다. 그 방은 장작을 얼마나 지폈는지 후끈후끈했어요. 어미 방과 아들 방이 나란히 비치니, 한쪽은 서리가 끼고 한쪽은 김이 오르는 그 대비가 더욱 참혹했습니다. 한덕구는 그 광경을 보고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습니다.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던 거지요.

    "또한."

    설강 판관이 장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미를 윗목에 앉히고 식은 밥에 짠지만 올린 것이 이십 년. 어미 방에 불을 아껴 냉골에 두어 끝내 얼어 죽게 한 죄. 어미가 마지막으로 청한 장작 한 개비마저 거절한 죄."

    읽는 소리가 이어질수록 한덕구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저 장부에 자기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이웃이 양식을 꾸러 오면 문전박대한 것이 헤아릴 수 없고, 눈보라 치는 밤 하룻밤 재워 달라 청한 나그네를 몽둥이로 쫓아내 얼어 죽게 한 죄. 어미가 남긴 이불과 옷가지를, 남 주기 아깝다 하여 모조리 불태운 죄."

    그 대목에서 한덕구의 무릎이 툭 꺾였습니다. 아까 저승길에서 마주친 그 나그네의 원망 어린 눈이 떠올랐거든요.

    "대, 대왕마마. 그건…… 그건 제 것을 제가 아낀 것뿐이라……."

    "네 것을 네가 아꼈다?"

    송제대왕의 목소리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 서슬에 궁궐의 성에가 쩌억 소리를 내며 갈라졌어요.

    "곳간에 곡식이 썩어 나는데도 굶주린 이웃을 내쳤고, 장작이 산더미인데도 낳아 준 어미를 냉골에서 얼려 죽였다. 그것이 아낌이더냐. 그것은 아낌이 아니라 얼음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땅히 나눠야 할 온기를, 너는 평생 단 한 번도 나누지 않았어. 도둑은 남의 것을 빼앗지만, 너는 남에게 줄 것을 주지 않았다. 어느 쪽이 더 모진 죄인지 아느냐."

    한덕구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저 얼음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 뿐이었지요. 그런데 송제대왕의 다음 말이 더욱 뼈아팠습니다.

    "칼로 사람을 베면 그 상처는 눈에 보인다. 허나 정을 베풀지 않아 사람을 얼려 죽이면, 그 상처는 아무도 못 본다. 그래서 너 같은 자들이 제 죄를 모르는 게야. '나는 아무도 안 죽였다' 하면서 말이지. 허나 저 한빙지옥에 갇힌 자들이 모두 그런 자들이다.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도, 마음이 얼음장 같아 남을 얼려 죽인 자들이야."

    그 말에 한덕구는 온몸이 떨렸습니다. 저 얼음산에 갇힌 사람들이 다 자기 같은 이들이라니, 그리고 자기도 곧 저기 갇힐 거라니 말이지요.

    송제대왕이 얼음 거울을 가리키셨습니다.

    "저 거울에 네가 평생 나눈 온기가 모여 있다. 얼마나 되는지 보아라."

    거울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어요. 텅 빈 새하얀 화면만 서늘하게 빛날 뿐이었습니다. 한덕구가 평생 남에게 나눈 온기가, 단 한 톨도 없었던 겁니다. 한덕구 자신도 그 텅 빈 거울을 보고 아득해졌지요. 정말로 평생 남에게 따뜻한 것 하나 나눈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이토록 텅 빈 거울도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저자를 한빙지옥 가장 높은 자리, 가장 두껍게 언 곳에 가두어라. 목까지 얼음에 파묻어……."

    송제대왕이 판결을 내리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궁궐 밖에서 옥졸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아뢰었지요.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한 넋이 스스로 이 앞에 나서겠다 하옵니다."

    "넋이? 누구의 넋이냐."

    "저자의…… 어미 되는 넋이옵니다."

    그 말에 한덕구가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요.

    ※ 4: 얼음을 녹인 눈물

    궁궐 문이 다시 열리고,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습니다.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바로 한덕구의 어미였어요. 한덕구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혔습니다.

    '어, 어머니가 왜…… 나를 벌 주러 오셨나. 그동안 쌓인 원한을 풀러 오셨나.'

    한덕구는 어미가 자기를 고발하러 온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지요. 평생을 냉골에서 떨게 하고, 마지막 장작 한 개비마저 거절해 얼어 죽게 만든 아들이었으니까요.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을 겁니다.

    그런데 어미는 송제대왕 앞에 엎드리더니,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왕마마, 이 늙은 것이 감히 아뢰옵니다. 부디 제 아들 덕구의 죄를 조금만 덜어 주십시오."

    궁궐 안이 술렁였습니다. 한덕구도 제 귀를 의심했지요.

    "네 아들이 너를 냉골에서 얼려 죽였거늘, 어찌 그 죄를 덜어 달라 하느냐."

    "압니다, 대왕마마. 제 아들이 모진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나…… 그 아이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한덕구가 예닐곱 살 되던 해, 큰 흉년이 들어 온 마을이 굶주렸더랍니다. 그때 어미가 병까지 얻어 몸져눕자, 어린 덕구가 엄동설한에 맨발로 눈밭을 헤매며 언 나물이라도 캐 오려 했다는 겁니다. 손이 얼어 터지도록 눈을 파헤쳐 칡뿌리 하나를 캐 와서는, 그걸 어미 입에 넣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지요.

    "엄마, 이거 먹고 얼른 나아. 내가 크면 엄마 배부르게 해 줄게.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해 줄게."

    그 말을 하던 아이가, 어쩌다 저리 얼음장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어미는 그게 다 제 탓이라 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너무 모질게 키웠습니다.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아들만은 굶지 말라고, 남에게 퍼 주지 말라고, 뭐든 움켜쥐라고만 가르쳤습니다. '남 사정 봐주다간 우리가 굶는다', '정 주면 손해 본다', 그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했지요. 아이가 냉정해진 건 제가 그리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죄의 절반은 이 어미의 것입니다, 대왕마마."

    그러면서 어미는 얼음 거울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대왕마마, 제 아들이 평생 나눈 온기가 없다 하셨지요. 허나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저 거울에 비치지 않은 그 한 번을, 이 어미가 증언하겠습니다."

    어미가 거울에 손을 대자, 텅 비었던 화면에 무언가가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바로, 눈밭에서 칡뿌리를 캐 어미 입에 넣어 주던 어린 덕구의 모습이었어요. 손이 얼어 터진 줄도 모르고, 제가 먹을 것을 어미에게 내밀던 그 온기. 그것이 한덕구가 평생 나눈 유일한 온기였던 겁니다.

    그 장면을 본 한덕구가, 그제야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살아생전 어미가 냉골에서 떨 때도, 얼어 죽었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이었지요.

    "어머니…… 어머니!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을 어디다 다 팽개치고…… 어머니를 그리 얼려 죽였습니다.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한덕구가 얼음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했습니다. 그 눈물이 얼음 바닥에 떨어지는데, 신기하게도 그 자리의 얼음이 사르르 녹기 시작했어요. 뜨거운 눈물이 지옥의 얼음을 녹인 겁니다.

    송제대왕이 그 광경을 한참 내려다보시더니, 나직이 입을 여셨습니다.

    "한덕구. 너는 낳아 준 어미를 얼려 죽인 자다.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아. 마땅히 한빙지옥 가장 두꺼운 얼음에 갇혀 영겁을 떨어야 할 것이다."

    한덕구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허나."

    대왕이 말을 이으셨습니다.

    "네 어미가 제 죄의 절반을 짊어지겠다 하고, 네 눈물이 이 지옥의 얼음을 녹였다. 얼어붙은 네 마음에도 온기가 한 조각 남아 있었던 게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에게 매질당하고도 그 자식을 용서하는 어미의 정만큼 뜨거운 것은 이 저승 어디에도 없느니라."

    송제대왕이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한덕구를 한빙지옥에 넣되, 가장 두꺼운 얼음이 아니라 발목까지만 잠기는 자리에 백 일을 두어라. 네가 어미를 떨게 한 겨울의 수만큼 추위를 견디게 하라. 백 일이 지나거든 다시 사람으로 나게 하되, 이번에는 병든 홀어미를 모시는 가난한 집 자식으로 나게 하라. 부모를 봉양하는 정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몸으로 배우게 하라."

    그러고는 어미를 향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셨습니다.

    "그리고 네 어미의 정은 참으로 갸륵하다. 이 어미는 냉골에서 떨다 죽었으되, 그 마음만은 이 저승에서 가장 따뜻하구나. 어미는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다시는 춥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게 하라."

    한덕구가 어미에게 기어가 그 발치에 매달렸습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어찌 용서하십니까. 어찌……."

    어미는 굽은 손으로 아들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살아생전 그토록 시렸던 그 손이, 이승에서보다 훨씬 따뜻했지요.

    "덕구야, 어미는 널 원망한 적이 없단다. 다음 생에는 부디 따뜻한 사람으로 살거라. 남의 손도 잡아 주고, 남의 등도 덮어 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으로."

    그렇게 어미는 빛 속으로 사라졌고, 한덕구는 옥졸에게 이끌려 얼음산으로 향했습니다. 발목까지만 잠기는 그 자리에서, 한덕구는 백 일 동안 어미의 마지막 말만 되뇌었다고 합니다.

    훗날 서릿골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한덕구가 죽고 이십 년쯤 지나, 가난한 집에 사내아이가 하나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자라 병든 홀어미를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모셨는지 온 고을에 소문이 났다는 겁니다. 한겨울이면 제 몸으로 어미 이불을 데워 드리고, 아무리 없는 살림에도 나그네를 마다하지 않았지요. 눈보라 치는 밤이면 오히려 사립문을 활짝 열어 두고, 길 잃은 이가 있거든 언제든 들라고 등불을 내걸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그 효자는 늘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게 별거요? 서로 언 손 녹여 주는 게 사람이지. 문 하나 열어 주는 게 뭐가 그리 아깝다고."

    그 따뜻한 효자가 누구였는지는, 여러분도 이제 짐작하시겠지요. 얼음보다 차가웠던 그 마음이, 어미의 정 하나로 이렇게 따뜻하게 다시 피어난 겁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284자)

    죽은 지 스무하루째, 제삼전 송제대왕 앞에서는 정 없이 산 죄를 심판한다 전합니다. 그 곁엔 살이 얼고 뼈가 부서지는 한빙지옥의 얼음산이 서 있지요. 오늘 이야기가 일러 주는 것은 이렇습니다. 칼로 벤 상처는 눈에 보이나, 정을 주지 않아 얼린 상처는 아무도 못 본다는 것. 그리고 자식에게 얼어 죽고도 그 자식을 용서한 어미의 정 한 조각이, 지옥의 얼음마저 녹인다는 것. 오늘 내 곁의 누군가는 춥지 않은지요.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레, 제사전 오관대왕 앞에서 뵙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