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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 오관대왕과 검수지옥(劍樹地獄) 『시왕생칠경』

    28일째, 위기에 처한 이를 돕지 않은 자들이 떨어지는 곳. 나뭇잎이 시퍼런 칼날로 이루어진 숲에서 살점이 찢기는 고통을 겪는 망자들의 참혹한 형벌.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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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85자)

    "세상은 각자도생이여. 나서는 놈이 바보지." 물에 빠진 아이도, 얼어 가는 노인도 못 본 척하며 평생 '나만 아니면 그만'으로 산 뱃사공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작 제가 강물에 빠지자,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지요. 죽은 지 스무여드레째, 눈앞에 나뭇잎이 온통 시퍼런 칼날인 검수지옥의 숲이 나타났습니다. 능히 도울 수 있었는데 외면한 목숨의 무게만큼 살점이 찢기는 곳. 그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승에서 누군가, 이 얼음 사공을 구하러 강물에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가 죽게 만든 아이의 형이 말이지요.

    ※ 1: 얼음 사공

    전라도 나주 땅, 영산강 나루터 곁에 버들나루라는 마을이 있었더랍니다. 강을 오가는 배가 많아 사람 왕래가 잦은 곳이었지요. 나루터에는 늘 봇짐 진 장사꾼이며 과거 보러 가는 선비, 친정 가는 아낙들로 북적였습니다. 강가에는 이름처럼 늘어진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서, 봄이면 연둣빛 실가지가 강물에 살랑살랑 닿았지요. 그런 곳이다 보니 인심도 후해서, 낯선 나그네라도 굶는 꼴은 못 보는 마을이었어요. 배가 끊긴 밤에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제 집에 재워 주겠다 나설 정도였습니다.

    그런 마을에 오만복이라는 뱃사공이 하나 살았습니다. 나이 마흔다섯, 강물 위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이라 팔뚝이 굵고 물길을 훤히 꿰고 있었지요. 영산강 물살이 어디가 세고 어디가 잔잔한지, 어느 여울에 소용돌이가 이는지를 손금 보듯 알았습니다. 헤엄도 물개처럼 쳐서, 버들나루에서 오만복만큼 물에 능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사공에게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흉보는 버릇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마음보였습니다.

    남이 곤경에 처해도 오만복은 절대 나서는 법이 없었어요.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려도 "괜히 나섰다 나까지 빠지면 어쩌누" 하며 슬그머니 뒷걸음쳤고, 길에서 누가 강도를 만나 얻어맞아도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 봉변당하지" 하며 못 본 척 지나쳤습니다. 그러고는 늘 이렇게 뇌까렸지요.

    "세상은 각자도생이여. 제 목숨 제가 챙기는 거지, 누가 남을 챙겨. 나서는 놈이 바보인 게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장마철에 영산강 물이 크게 불었는데, 강 건너편에서 웬 아이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었어요. 마침 오만복이 빈 배를 대 놓고 쉬고 있었지요.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사공! 어서 배 좀 저어 가 보게! 아이가 떠내려가네!"

    그런데 오만복은 노를 잡기는커녕 뒷짐을 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살이 저리 센데 내가 어찌 가. 나까지 뒤집히면 누가 책임질 거유. 그리고 저 아이가 우리 마을 아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뭉그적거리는 사이, 아이는 그만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배를 저어 갔으면 물길을 훤히 아는 오만복이 충분히 건질 수 있는 거리였어요. 그런데도 노 한 번 잡지 않은 겁니다. 나중에 아이 시신이 하류에서 건져졌을 때, 그 어미가 실성한 사람처럼 강가에 주저앉아 통곡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오만복을 손가락질했습니다.

    "자네가 배만 저어 갔어도 그 아이는 살았어. 자네만큼 물에 능한 사람이 어딨나."

    "뱃사공이 물에 빠진 아이를 못 본 척하다니, 그게 사람인가."

    그래도 오만복은 눈 하나 깜짝 안 했습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목청을 높였어요.

    "내가 그 아이를 밀어 넣었소? 물에 빠진 건 그 아이 팔자지 내 탓이 아니잖유. 나더러 목숨 걸고 남을 구하라니, 그런 억지가 어딨소. 내 목숨이 그 아이 목숨보다 가볍소?"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눈보라 치는 겨울밤, 병든 노인이 오만복네 사립문 앞에 쓰러져 신음해도 그는 방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처음엔 문틈으로 내다보기까지 했어요. 노인이 "물 한 모금만…… 방 한 귀퉁이만……" 하고 애원하는 걸 다 듣고도 말이지요.

    "밤중에 남 집 앞에서 죽는 소리 좀 그만하슈.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네. 딴 집 가 보슈."

    그러고는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결국 그 노인은 새벽에 문 앞에서 숨을 거두었지요. 아침에 나가 보니 노인이 오만복네 사립문을 붙든 채 얼어 있었는데, 오만복은 시신을 치우기 귀찮다고 툴툴거리기까지 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다들 물동이를 이고 달려가는데도 오만복은 제 집 마당만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불이야 남의 집 불이지. 우리 집만 안 옮겨붙으면 그만이여. 괜히 남 불 끄러 갔다가 화상이라도 입으면 누가 책임져."

    그 불로 이웃집 세간이 다 타 버리고, 미처 못 빠져나온 사람까지 크게 다쳤지요. 그런데도 오만복은 제 집 지붕에 물만 끼얹고는 태연했습니다.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사는 오만복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얼음 사공'이라 불렀습니다. 사람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그 냉정함이 얼음장 같다고요. 아이들은 오만복이 지나가면 슬금슬금 피했고, 어른들도 웬만해선 그 배를 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만복 자신은 제가 잘 산다고 여겼습니다. 남 일에 안 끼어드니 봉변당할 일 없고, 남 도우느라 손해 볼 일 없으니 이만한 처세가 어딨냐는 거지요.

    "봐라, 저 오지랖 넓은 것들. 남 돕는다고 설쳐 봤자 제 몸만 축나지. 나처럼 딱 내 앞가림만 하는 게 상책이여."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오만복이 나루터에서 손님을 태우고 강을 건너던 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물살이 거세졌습니다. 배가 크게 휘청하는 순간, 오만복은 그만 중심을 잃고 강물에 빠지고 말았어요. 헤엄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지만, 하필 다리에 쥐가 났던 겁니다. 물개처럼 헤엄치던 사공이 제 다리 하나에 발목이 잡힌 셈이지요.

    "사, 사람 살려! 나 좀 건져 주시오! 노, 노를 좀 내밀어 주시오!"

    오만복이 허우적거리며 소리쳤습니다. 배까지는 팔 하나 뻗으면 닿을 거리였어요. 손님 중 누구 하나만 노를 내밀어 줬어도 살 수 있었지요. 그런데 배에 탄 손님들이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어요.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괜히 나섰다 나까지 빠지면 어쩌누. 각자도생 아니겠소. 저 사공이 늘 하던 말대로 말이오."

    그 말은, 오만복이 평생 입에 달고 살던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두고 그가 했던 말, 문 앞에 쓰러진 노인을 두고 그가 했던 말. 그 말이 이제 부메랑처럼 돌아와 제 목을 조른 겁니다. 오만복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들으며, 영산강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 순간까지도, 오만복은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렸지요. 하지만 아무도 내밀어 주지 않았습니다.

    ※ 2: 스무여드레째, 칼날의 숲

    오만복이 눈을 떠 보니 어둑어둑한 길 위였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안 되는데, 사방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오만복은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렸지요.

    '여기가 어디여. 나 분명 강물에 빠졌는데.'

    그때 저만치서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사내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손에는 시퍼런 낫을 하나 들었는데, 그 서슬이 어찌나 시린지 보기만 해도 오싹했어요. 저승차사였습니다.

    "전라도 나주 버들나루 오만복. 데리러 왔다."

    오만복은 그제야 자기가 죽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이 사공, 죽어서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렇게 따졌어요.

    "아니, 내가 왜 죽어야 하오? 나는 평생 남한테 해코지 한번 안 하고 산 사람이오. 남의 것 훔친 적도, 사람 때린 적도 없단 말이오. 뭔가 잘못된 거 아니오?"

    "잘못된 것 없다. 명부에 네 이름이 올랐으니 온 게지. 오늘이 스무여드레째다."

    "스무여드레째?"

    "죽은 지 이레마다 대왕 한 분씩 뵙는 게 저승 법도다. 이레 전엔 제일전, 열나흘 전엔 제이전, 스무하루 전엔 제삼전을 지났을 것 아니냐. 오늘은 제사전에 들 차례다."

    오만복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칼날 산과 끓는 솥과 얼음산을 지나온 것 같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배짱을 부렸지요. 나야 사람 죽인 적도, 도둑질한 적도, 부모 구박한 적도 없다고요. 실제로 그럭저럭 넘어가기도 했고요.

    '이번에도 뭐, 별일 있겠어. 나는 그저 남 일에 안 끼어들었을 뿐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오만복은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뭐가 걸린다고 이러시우. 남 일에 참견 안 한 게 죄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딨소."

    차사가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서늘하더랍니다.

    "참견을 안 한 게 죄가 아니라, 구할 수 있었는데 안 구한 게 죄지. 그 차이를 네가 곧 알게 될 게다."

    "구할 수 있었는데 안 구한 죄라니, 그런 죄가 세상에 어딨소. 안 한 것도 죄면 억울해서 어찌 사우."

    "허, 안 한 것이 죄가 아니라고? 물에 빠진 아이를 두고 노 한 번 안 저은 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 죄냐. 네 배 하나면 그 아이가 살았어. 네 손 하나면 그 노인이 얼어 죽지 않았고. 너는 매번 손을 가지고도 내밀지 않았다. 그것이 죄가 아니라면, 이 저승에 죄인이 어디 있겠느냐."

    오만복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속으로는 여전히 억울했어요.

    '남을 안 도운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남 해친 놈들이나 벌 받을 것이지.'

    차사가 앞장서서 걷는데, 길 양옆으로 다른 망자들도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망자들, 하나같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살점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걸음은 계속 옮기고 있었지요. 오만복은 그 모습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그 상처투성이 망자들 틈에서, 오만복은 낯익은 얼굴을 하나 보았습니다. 몇 해 전 눈보라 치던 밤, 자기 집 사립문 앞에서 얼어 죽은 그 병든 노인이었어요. 노인이 오만복을 알아보고는 원망 어린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았지요. 오만복은 얼른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습니다.

    '저, 저 노인이 왜 여기 있어. 재수 없게.'

    가슴이 뜨끔했지만, 오만복은 애써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앞쪽에서 서걱서걱, 무언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같았어요.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그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치고는 너무 날카롭고 쇳소리가 섞여 있었거든요.

    이윽고 길이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오만복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습니다.

    눈앞에 거대한 숲이 하나 펼쳐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숲이 아니었어요. 나무는 시커먼 무쇠 줄기였고, 가지마다 매달린 나뭇잎이 전부 시퍼런 칼날이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칼날 잎사귀들이 서걱서걱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냈지요. 햇빛도 없는데 칼날마다 서늘한 빛이 번뜩였습니다. 숲이 어찌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 위로는 검은 까마귀 떼가 빙빙 돌며 울어 댔어요.

    그 칼날 숲 속으로 사람들이 떠밀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칼날 잎사귀가 살점을 베어 냈어요. 팔이 찢기고 등이 갈라지고, 얼굴에도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지를 않는 겁니다. 살이 찢기면 다시 아물고, 아물면 또 찢기기를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었지요. 여기서도 이미 죽은 몸이니, 그 고통이 영영 끝나지 않는 겁니다. 숲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데, 그 소리가 칼날 스치는 쇳소리와 뒤섞여 온 벌판에 울려 퍼졌습니다.

    산 위에서는 시퍼런 칼을 든 옥졸들이 서서, 숲에서 빠져나오려는 자들을 도로 안으로 몰아넣었어요. 어떤 망자는 칼날 나무를 붙들고 매달려 울부짖었지만, 그럴수록 칼날이 손바닥을 파고들 뿐이었지요.

    "저, 저기가 어디요."

    오만복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차사가 대답했지요.

    "검수지옥이다. 제사전 오관대왕께서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한 죄를 다스리는 곳이지. 물에 빠진 이를 못 본 척한 자, 위험에 처한 이를 구하지 않은 자, 도울 수 있었는데 돕지 않은 자, 그런 자들이 저 칼날 숲에 던져진다."

    그 말에 오만복은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물에 빠진 이를 못 본 척한 자. 딱 자기 이야기였으니까요. 떠내려가던 그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스쳤습니다.

    "저기 사람들이 왜 저리 상처가 다 다르오? 어떤 이는 팔만, 어떤 이는 온몸이……."

    "외면한 목숨의 무게만큼 칼이 베기 때문이다. 사정이 딱해 어쩔 수 없이 못 도운 자는 팔에 생채기만 나고, 능히 구할 수 있었는데도 제 몸 사리느라 외면한 자는…… 온몸이 갈가리 찢긴다."

    오만복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능히 구할 수 있었는데도 외면한 자. 물에 빠진 아이도, 문 앞에 쓰러진 노인도, 다 자기가 능히 도울 수 있었던 목숨이었으니까요.

    '아니야. 나는 그저 내 몸을 지킨 것뿐인데. 남을 해친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죄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저 앞 잿빛 궁궐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렸습니다.

    "제사전 오관대왕 입정이시오. 이십팔일 망자들은 들라."

    ※ 3: 제4전 오관대왕, 빈 업경

    잿빛 궁궐 문이 육중하게 열렸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어요. 기둥마다 시퍼런 칼날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는 크고 작은 칼들이 거꾸로 매달려 번뜩였습니다. 좌우로 갑옷 입은 옥졸들이 창을 들고 늘어섰고, 정면 높은 자리에 한 분이 앉아 계셨지요. 서걱거리는 칼날 숲의 쇳소리가 궁궐 안까지 아득히 들려와, 서 있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습니다.

    잿빛 곤룡포에 칼날 무늬가 수놓인 관을 쓰고, 눈매가 칼처럼 날카로운 어른이었습니다. 그 눈빛에 서리면 뱃속까지 베이는 것 같았어요. 제사전 오관대왕이었습니다. 이 대왕은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한 죄, 곧 능히 도울 수 있었는데도 돕지 않은 죄를 다스리는 분이지요. 세상에 나쁜 짓을 저지른 죄인은 많으나, 옳은 일을 하지 않은 죄인은 제 죄를 모르는 법이라, 이 대왕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제 죄를 깨닫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 곁에는 진명이라는 판관이 서서 두꺼운 장부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궐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세워져 있었어요. 업경대였습니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살아생전 남을 외면한 순간들이 낱낱이 비쳐 나오는 거울이었지요. 외면한 목숨이 무거울수록 칼날 숲을 깊이 지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라도 나주 버들나루, 뱃사공 오만복. 앞으로 나오라."

    오만복은 쭈뼛쭈뼛 걸어 나갔습니다. 그래도 여태 부리던 배짱을 버리지 못하고 넙죽 엎드려 아뢰었지요.

    "대왕마마, 소인은 평생 남한테 손해 한번 안 끼친 사람입니다. 남의 것 훔치지도, 사람 해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앞가림만 하고 조용히 산 죄밖에 없으니, 부디 굽어살펴 주십시오."

    오관대왕이 그 말을 듣더니 서늘하게 웃으셨습니다.

    "제 앞가림만 하고 산 죄밖에 없다……. 참으로 많이도 듣는 변명이로구나. 진명은 업경을 밝혀라."

    진명 판관이 손을 들자, 업경대가 스르르 밝아졌습니다. 그 안에 장맛비 쏟아지던 영산강이 떠올랐어요. 물살에 떠내려가며 살려 달라 손을 뻗는 어린아이. 그리고 강가에 빈 배를 대 놓고 뒷짐 진 채 지켜보던 오만복의 모습이 나란히 비쳤습니다.

    거울 속 오만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물살이 저리 센데 내가 어찌 가. 저 아이가 우리 마을 아이도 아닌데 뭘."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물 위로 손을 뻗다가 스르르 가라앉는 장면에서, 오만복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업경대는 인정사정없이 장면을 이어 갔습니다. 눈보라 속 사립문 앞에서 얼어 가던 노인, 그리고 문틈으로 내다보며 이불을 뒤집어쓰던 오만복. 불길에 휩싸인 이웃집을 두고 제 집 지붕에만 물을 끼얹던 오만복. 하나하나가 다 오만복이 능히 살릴 수 있었던 목숨들이었습니다. 그가 조금만 손을 움직였으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었지요.

    그 장면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까 저승길에서 마주친 그 노인의 원망 어린 눈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진명은 저자의 죄를 읽어라."

    진명 판관이 장부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산강에 빠진 아이를 능히 구할 수 있었으나 배를 젓지 않아 죽게 한 죄. 눈보라 치는 밤 사립문 앞의 병든 노인을 외면하여 얼어 죽게 한 죄. 이웃집 불을 못 본 척하여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죄. 그 밖에 물에 빠진 이, 강도 만난 이, 병들어 쓰러진 이를 외면한 것이 도합 서른일곱 차례."

    읽는 소리가 이어질수록 오만복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저 장부에 자기가 외면한 순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대, 대왕마마. 그건…… 제가 그들을 해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

    오관대왕의 목소리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 서슬에 천장에 매달린 칼들이 쟁강쟁강 흔들렸어요.

    "물에 빠진 아이 앞에서 네가 가만히 있었기에 그 아이가 죽었다. 네 손이 움직였으면 살았을 목숨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죄가 있느니라. 하나는 나쁜 짓을 저지른 죄, 또 하나는 옳은 일을 하지 않은 죄. 사람들은 앞엣것만 죄인 줄 알지만, 저 칼날 숲은 뒤엣것으로 가득하다. 네가 뻗지 않은 그 손 하나하나가, 저 칼날이 되어 너를 벨 것이다."

    오만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오관대왕의 다음 말이 더욱 뼈아팠습니다.

    "너는 늘 '각자도생'을 입에 달고 살았다지. 제 목숨 제가 챙기는 게 세상 이치라고. 그런데 네가 물에 빠졌을 때, 배에 탄 자들이 바로 그 말을 하며 너를 외면했다. 네가 뿌린 씨를 네가 거둔 게야. 만일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산다면, 물에 빠진 자는 누구도 건지지 않고, 쓰러진 자는 누구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겠느냐, 짐승 사는 세상이겠느냐."

    오만복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대왕의 말이 칼날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지요.

    "저 업경에 네가 평생 내민 손이 몇 번이나 되는지 비춰 보아라. 남을 위해 뻗은 손 말이다."

    업경대가 다시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어요. 텅 빈 화면만 서늘하게 빛날 뿐이었습니다. 평생 오만복이 남을 위해 내민 손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겁니다. 오만복 자신도 그 텅 빈 거울을 보고 아득해졌지요. 정말로 평생 남에게 손 한 번 내민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이토록 텅 빈 업경도 오랜만이로구나. 저자를 검수지옥 가장 깊은 곳으로 보내라. 서른일곱 목숨의 무게만큼, 칼날 숲을 지나게……."

    오관대왕이 판결을 내리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궁궐 밖에서 옥졸 하나가 급히 뛰어 들어와 아뢰었지요.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승에서 한 사람이 저자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하옵니다."

    "목숨을 걸어? 그게 무슨 소리냐."

    "저자가 물에 빠진 지금, 이승에서 누군가 그를 건지려 강물에 뛰어들었다 하옵니다."

    그 말에 오만복이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 4: 원수가 내민 손

    오관대왕이 진명 판관에게 물으셨습니다.

    "이승의 일을 소상히 아뢰어라. 누가 저자를 건지려 뛰어들었단 말이냐."

    진명 판관이 업경대를 다시 비추자, 이승의 영산강이 떠올랐습니다. 오만복이 물에 빠져 가라앉는 그 강가에, 한 젊은이가 옷을 벗어 던지고 물에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어요. 헤엄이 서툰지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젊은이는 필사적으로 오만복이 가라앉은 자리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 젊은이가 누구인고 하니, 몇 해 전 오만복이 못 본 척했던, 물에 빠져 죽은 그 아이의 형이었습니다. 동생을 잃고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청년이었지요. 동생이 죽은 뒤로 그 어미는 실성한 사람처럼 강가만 맴돌았고, 청년은 그런 어미를 부축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 왔습니다. 오만복이 배만 저어 갔어도 동생이 살았으리라는 걸, 청년은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오만복이야말로 이 청년에게는 둘도 없는 원수였던 겁니다.

    "저자가 제 동생을 외면한 자가 아니냐. 원수나 다름없거늘, 어찌 그 원수를 구하려 뛰어든단 말이냐."

    오관대왕이 의아해하셨습니다. 진명 판관이 그 젊은이의 마음을 아뢰었지요.

    "저 젊은이가 그날 마침 나루터를 지나다 사공이 물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하옵니다. 처음엔 저자가 원수인지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옵니다. '저자는 내 동생을 죽게 한 자다. 그냥 두어도 하늘의 벌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지요. 허나 물속으로 가라앉는 사공을 보는 순간, 동생이 물에 빠지던 그 장면이 겹쳐 보였다 하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음먹었다 하옵니다. '내 동생이 물에 빠졌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아 죽었다. 그 원통함을 내가 안다. 그러니 저 사공이 아무리 밉더라도, 나마저 손을 놓으면 내 동생 때처럼 또 한 사람이 그렇게 죽는다. 나는 그 꼴을 두 번 보지 않겠다.' 그러고는 옷을 벗어 던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하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만복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죽게 만든 아이의 형이, 바로 그 자기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고 물에 뛰어든 겁니다. 오만복이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 일을 말이지요.

    "어찌…… 어찌 그럴 수가. 내가 그 아이를 죽게 했는데. 그 원수인 나를……."

    오만복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살아생전 남의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그 얼음 사공이,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지요.

    업경대 속에서, 젊은이는 마침내 가라앉던 오만복의 옷깃을 붙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죽을힘을 다해 강가로 끌어냈어요. 두 사람 다 물을 잔뜩 먹어 초주검이 되었지만, 젊은이는 오만복의 가슴을 힘껏 눌러 물을 토하게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승에 누워 있던 오만복의 몸이 "커헉!" 하고 물을 토해 냈습니다. 숨이 되돌아온 겁니다.

    오관대왕이 그 광경을 한참 내려다보시더니, 나직이 입을 여셨습니다.

    "오만복. 너는 평생 남의 위기를 외면한 자다. 네가 뻗지 않은 손이 서른일곱. 그 죄로 마땅히 검수지옥 가장 깊은 곳을 헤매야 할 것이다."

    오만복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허나."

    대왕이 말을 이으셨습니다.

    "네가 죽게 한 아이의 형이, 그 원한을 삼키고 너를 구하러 뛰어들었다. 원수를 구하는 그 손보다 더 뜨거운 손은 이 저승 어디에도 없느니라. 그 젊은이의 손이 지금 너를 이승으로 되돌려 놓았다. 하늘이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야. 이 뜻을 저버리겠느냐."

    "아, 아닙니다.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오만복이 얼음 같던 마음을 다 녹여 울부짖었습니다.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남의 목숨이 제 목숨만큼 무거운 줄을 몰랐습니다. 내민 손 하나가 사람을 살리는 줄을 몰랐습니다. 돌아가게만 해 주시면, 이제부터는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제일 먼저 뛰어들고, 쓰러진 이가 있으면 제일 먼저 손을 내밀겠습니다!"

    오관대왕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말, 명심하라. 네가 검수지옥에 들지 않는 것은 네 덕이 아니라, 너를 구한 그 젊은이의 덕이다. 그 빚을 이승에 돌아가 갚아라. 네가 앞으로 내미는 손 하나하나가, 오늘 저 젊은이가 너에게 내민 손의 빚을 갚는 것이니라."

    그러고는 붓을 들어 판결을 내리셨지요.

    "오만복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되, 그 목숨은 이제 저 혼자의 것이 아니다. 남을 구하라고 하늘이 되살린 목숨이니, 남은 평생을 그리 살게 하라."

    오만복이 큰절을 올리는 순간,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 나더랍니다.

    눈을 떠 보니 영산강 강가였습니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 그 젊은이 품에 안겨 있었어요. 젊은이도 초주검이 되어 헐떡이면서도, 오만복이 숨을 되찾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정신이 드십니까.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만복은 그 젊은이의 손을 붙들고 한참을 엉엉 울었습니다. 제가 죽게 만든 아이의 형에게, 목숨을 빚진 겁니다.

    그날 이후, 버들나루의 '얼음 사공'은 아주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강에서 누가 위험에 처하면 제일 먼저 노를 저어 달려갔고,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제 옷 벗을 새도 없이 뛰어들었지요. 눈보라 치는 밤이면 사립문을 활짝 열어 두고, 길 잃은 나그네를 아랫목에 재웠습니다. 한번은 급류에 휩쓸린 아이를 건지려다 저까지 죽을 뻔했는데, 물에서 겨우 살아 나와서는 이렇게 말했다지요.

    "내 목숨은 원래 강물에 놓고 온 목숨이여. 남 구하다 잃으면 그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지, 뭐가 아깝겄어."

    사람들은 그런 오만복을 두고, 이제는 '버들나루 지킴이'라 불렀습니다. 얼음처럼 차갑던 그 사공이, 강물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오만복은 죽는 날까지, 제 목숨을 구해 준 그 젊은이와 그 홀어머니를 친혈육처럼 모셨더랍니다. 못다 지킨 아이 몫까지, 평생 갚으며 살았던 게지요. 사람들이 어찌 그리 지극하냐 물으면, 오만복은 늘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안 내민 손 하나가 아이 하나를 잃게 했고, 그 아이 형이 내민 손 하나가 나를 살렸소. 손 하나가 그리 무거운 것을, 나는 반평생을 헛살고서야 알았지 뭐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289자)

    죽은 지 스무여드레째, 제사전 오관대왕 앞에서는 위기에 처한 이를 외면한 죄를 심판한다 전합니다. 그 곁엔 나뭇잎이 온통 시퍼런 칼날인 검수지옥의 숲이 서걱대지요. 오늘 이야기가 일러 주는 것은 이렇습니다. 세상엔 두 가지 죄가 있으니, 나쁜 짓을 저지른 죄와 옳은 일을 하지 않은 죄. 내가 뻗지 않은 손 하나가 사람을 잃게 하고, 원수를 향해 뻗은 손 하나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 오늘 내 곁에 손 내밀 이는 없는지요.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레, 제오전 염라대왕 앞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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