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까지 남을 위해 베푼 거지, 죽음 이후 밝혀진 그의 진짜 정체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나 죽음의 문턱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거지의 숨겨진 이야기
태그 (15개)
#염라대왕이야기, #저승이야기, #거지, #베풂, #조선야담, #민담, #죽음의문턱, #인간다움, #염라대왕, #저승사자, #환생, #전생의업, #선행, #조선귀신이야기, #권선징악
#염라대왕이야기 #저승이야기 #거지 #베풂 #조선야담 #민담 #죽음의문턱 #인간다움 #염라대왕 #저승사자 #환생 #전생의업 #선행 #조선귀신이야기 #권선징악


후킹멘트
조선 한양의 동대문 밖, 다리 아래에서 거적떼기 하나 덮고 살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내. 사람들은 그를 다리 밑 삼돌이라 불렀지요. 먹을 것이라곤 남이 버린 찬밥 한 덩이가 전부였고, 입은 것이라곤 누더기 한 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지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굶주린 사람을 보면, 자기가 먹던 찬밥을 반으로 뚝 쪼개어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그 없는 것마저 나누었습니다. 어느 겨울밤, 삼돌이가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거지 하나 죽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삼돌이가 저승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염라대왕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이 거지를 맞이한 것입니다. 오늘 밤, 저승의 문 앞에서 밝혀지는 한 거지의 진짜 정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1: 동대문 밖 다리 아래에서 살아가는 거지 삼돌이의 일상
조선 영조 무렵, 한양 동대문 밖에 개울이 하나 흘렀다. 큰 개울은 아니었다. 장마철이면 불어나고, 가뭄이 들면 바닥을 드러내는, 그저 그런 개울이었다. 그 개울 위에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장에 가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라 낮에는 제법 사람이 붐볐으나, 해가 지면 인적이 뚝 끊기는 곳이었다.
그 돌다리 아래에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거지였다. 이름은 삼돌이.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 본명이 그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사람들이 삼돌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삼돌이도 그 이름에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것이 이름이 된 것이다.
삼돌이의 살림이라고 할 것은 거적떼기 한 장과 깨진 사발 하나가 전부였다. 거적떼기는 이부자리이자 지붕이었고, 깨진 사발은 밥그릇이자 물그릇이었다. 그나마 거적떼기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고, 사발은 금이 가서 물을 담으면 졸졸 새어 나왔다. 옷이라고는 누더기 한 벌뿐이었는데,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때가 끼고 해져서, 옷이라기보다는 걸레에 가까웠다.
삼돌이의 하루는 단순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리 위로 올라가 장터 쪽으로 걸어갔다. 장터 어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푼 주는 사람도 있고, 못 본 척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삼돌이는 돈을 받으면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 말했고, 침을 뱉고 가는 사람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놈의 거지야, 멀쩡한 사지가 달렸으면 일을 해야지!"
간혹 이런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삼돌이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사실 삼돌이의 왼쪽 다리는 절뚝거렸다. 어릴 때 다친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본인도 기억하지 못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는 남의 집 머슴살이도, 장터의 짐꾼 노릇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손을 내미는 일뿐이었다.
해가 지면 장터에서 주워 모은 찬밥 부스러기를 깨진 사발에 담아 다리 밑으로 돌아갔다. 개울물에 찬밥을 말아 먹고, 거적떼기를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비가 오면 다리 밑이 질퍽해져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겨울이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밤을 새웠다. 이것이 삼돌이의 하루였고, 일 년이었고, 평생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삼돌이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하나 돌았다.
"그 거지 말이야,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아무리 춥고 배가 고파도, 그놈이 화를 내거나 남을 원망하는 것을 본 적이 있냐?"
"글쎄, 그러고 보니 없는 것 같네."
"그것뿐인 줄 아냐? 그놈이 자기 먹을 것을 남한테 나눠주는 것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뭐? 거지가 거지한테?"
"그래, 자기보다 더 굶주린 놈한테 밥을 반으로 쪼개서 주더라고."
※ 2: 자기보다 더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삼돌이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삼돌이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기보다 더 굶주린 사람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삼돌이가 장터에서 어렵사리 얻어온 찬밥 한 덩이를 사발에 담아 다리 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손을 내밀어 겨우 얻은 것이었다. 오늘은 이것이 아침이자 점심이자 저녁이었다. 삼돌이의 배에서는 종일 꼬르륵 소리가 났고, 침이 마른 입안에서 찬밥 냄새가 꿀 냄새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리 밑에 웬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맨발에 옷은 남루했고, 볼이 쑥 들어가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는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이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아이.
삼돌이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얘야, 왜 우느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고, 코가 질질 흘렀다.
"배가 고파요."
그 한마디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배가 고프다. 삼돌이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손에 든 찬밥 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굶주린 배가 다시 한번 꼬르륵 소리를 냈다.
삼돌이는 찬밥을 반으로 쪼갰다. 오른손에 반, 왼손에 반. 그리고 오른손의 반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라."
아이가 멈칫했다. 고개를 들어 삼돌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도 배고프잖아요."
"배고프지. 하지만 네가 더 배고프잖아."
아이가 찬밥을 받아 들었다. 허겁지겁 입에 넣는 아이를 보며 삼돌이도 남은 반쪽을 입에 넣었다. 반쪽은 턱없이 적었다. 한 입이면 사라질 양이었다. 삼돌이의 배는 여전히 고팠으나,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속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배는 비어 있는데, 가슴은 차는 느낌. 삼돌이는 이 느낌을 설명할 줄 몰랐으나, 그것이 좋다는 것은 알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에서 쓰러진 늙은 거지에게 자기 몫의 밥을 건넨 적도 있고, 굶주려 우는 아낙에게 장터에서 얻어온 떡을 통째로 준 적도 있었다. 삼돌이는 가진 것이 없었으나, 없는 것 가운데서도 반을 나누었다. 아니, 때로는 반이 아니라 전부를 나누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놈은 진짜 모르겠다. 자기도 굶어 죽게 생겼으면서 남을 챙기는 게 말이 되냐."
"바보 아냐? 거지가 거지한테 베풀면 뭐가 남는데."
"바보가 맞지. 그런데 이상하게, 저 바보를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해져."
"왜?"
"모르겠어. 그냥 불편해. 나는 가진 게 저 거지보다 백 배는 많은데, 남한테 밥 한 술 떠준 적이 없으니까."
삼돌이는 그런 말이 오가는 줄도 몰랐다. 알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삼돌이에게 나누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밥을 나누고, 추운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내주는 것. 그것이 삼돌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이것 하나는 할 수 있지. 반을 쪼개는 것. 그것마저 못 하면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야.'
※ 3: 혹한의 밤, 삼돌이가 자신의 거적을 남에게 덮어주고 얼어 죽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다. 영조 말년, 한양에 기록적인 한파가 닥쳤다. 개울물이 꽁꽁 얼어붙고, 다리 위에는 눈이 한 자나 쌓였다. 바람은 칼날 같았고, 밤이면 기온이 떨어져 숨을 쉬면 코털이 얼었다.
다리 밑 삼돌이의 처지는 처참했다. 거적떼기 한 장으로는 이 추위를 버틸 수 없었다. 손가락이 곱아 펴지지 않았고, 발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는 추위에 더 뻣뻣해져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장터에 나가 구걸을 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겨울은 넘기기 어렵겠구나.'
삼돌이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자기 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먹지 못한 지 사흘째였고, 물도 이틀째 마시지 못했다. 개울물이 얼어붙어 깨뜨릴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얗고 고요한 눈이, 소리 없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삼돌이가 거적떼기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다리 밑으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노파였다.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굽었으며,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노파는 다리 밑에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신음을 흘렸다.
"아이고, 추워. 아이고, 이를 어째."
삼돌이가 노파를 보았다. 노파의 옷은 삼돌이보다도 얇았다. 맨발이었고, 손이 파랗게 얼어 있었다. 이대로 밤을 새면 노파는 틀림없이 얼어 죽을 것이었다.
삼돌이는 일어나려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팔을 짚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덮고 있던 거적떼기를 끌어다 노파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할머니, 이거 덮으시오."
노파가 눈을 떴다. 놀란 눈이었다.
"이걸 네가 덮어야지. 너도 추울 텐데."
"괜찮소. 나는 젊으니까 버틸 수 있소."
젊다고 했으나, 삼돌이의 얼굴은 이미 사십 줄에 접어든 사내의 것이었다. 젊지도 않았고, 버틸 수 있지도 않았다. 그것을 삼돌이도 알고 있었다. 거적떼기마저 없으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삼돌이는 거적떼기를 내주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거적떼기. 자기 목숨을 이어줄 수도 있었을 그 한 장을.
'할머니가 살아야지. 나야 뭐, 살아봤자 거지인데.'
삼돌이는 다리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차가운 돌이 등에 닿았다. 눈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추웠다. 뼛속까지 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자 추운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감각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무릎으로, 허리로, 가슴으로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이게 죽는 거구나.'
삼돌이는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평생 가진 것 없이 살았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노파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적떼기를 덮어주었으니 새벽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이 오면 누군가가 발견해줄 것이다.
눈이 감겼다. 삼돌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눈발이 그 미소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다리 밑에서 삼돌이가 발견되었다. 싸늘하게 식은 채, 다리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노파는 거적떼기를 덮은 채 살아 있었다. 사람들이 노파를 일으켜 세웠을 때, 노파가 삼돌이를 가리키며 울었다.
"이 사람이 살려줬어요. 자기가 덮고 있던 것을 나한테 덮어주고, 자기는 맨몸으로 밤을 새운 거예요."
사람들이 삼돌이를 내려다보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 위에, 미소가 남아 있었다.
※ 4: 삼돌이의 혼이 저승사자를 따라 황천길을 걷다
삼돌이의 눈앞이 하얘졌다.
아니, 하얀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얗다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길이 하나 나타났다. 좁고 긴 길이었다. 양옆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만 길이 뻗어 있었다. 삼돌이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맨발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까지 뼛속을 파고들던 한기가 사라져 있었다. 왼쪽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평생 절뚝거리던 그 다리가, 지금은 멀쩡했다.
"따라오너라."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삼돌이가 고개를 들었다.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었으며, 갓을 눌러 쓰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얼굴이 있는 것 같은데 형체가 흐릿해서 분간할 수 없었다. 손에는 쇠사슬이 들려 있었으나, 삼돌이를 묶고 있지는 않았다.
저승사자였다.
삼돌이는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할 수 없으나, 알았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 길이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앞에 선 자가 저승사자라는 것을.
"나, 죽은 겁니까?"
"그렇다."
"아."
삼돌이의 반응은 담담했다. 통곡도, 두려움도, 억울함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저, 그 할머니는요? 다리 밑에 있던 할머니. 그 할머니는 살았습니까?"
저승사자가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으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살았다."
"아, 다행이다."
삼돌이가 웃었다. 죽어서 저승길을 걸으면서, 다행이라고 웃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승사자도 오래 이 일을 해왔으나, 이런 혼은 처음이었다.
'이자는 대체 무엇인가. 죽은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기 걱정보다 남을 걱정하는 혼이라니.'
저승사자는 말없이 앞서 걸었고, 삼돌이는 뒤를 따랐다. 길은 점점 넓어졌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빛은 푸르스름했다. 도깨비불 같기도 하고, 반딧불 같기도 한 빛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이상하게 축축하고 무거운 바람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 신음소리, 원망하는 소리, 용서를 비는 소리가 뒤섞여 바람에 실려왔다.
"이 소리는 뭡니까?"
"저승에 오는 혼들의 소리다. 모두 각자의 죄와 한을 안고 이 길을 걷는다."
삼돌이는 귀를 기울였다. 슬픈 소리였다. 삼돌이의 가슴이 아려왔다. 자기도 죽은 혼인데, 남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 이상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저 혼들은 많이 괴로운 겁니까?"
"각자의 업에 따라 다르다."
"업이라. 나는 업이랄 것도 없겠지요. 거지였으니. 살면서 한 것이라곤 구걸밖에 없으니."
저승사자가 또 한 번 멈추었다.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갓 아래로 흐릿한 얼굴이 보였는데, 그 얼굴 위에 무엇인가가 스쳤다. 표정이 있었다면, 그것은 놀라움에 가까웠을 것이다.
"네 업은 네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삼돌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길 끝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검은 나무로 된 높은 문이었다. 문 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삼돌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으므로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안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들어가거라."
삼돌이가 문 안으로 들어섰다. 저승의 문이 그의 뒤에서 닫혔다.
※ 5: 염라대왕이 직접 일어나 삼돌이를 맞이하며 업경대에 비친 진실
문 안은 넓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전각이었다. 바닥은 검은 돌로 되어 있었고, 기둥은 붉은 칠이 되어 있었는데, 그 붉은색이 보통의 붉은색이 아니었다. 핏빛이라 해야 할까, 석양빛이라 해야 할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색이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꽃이 전각 안을 으스스한 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전각의 정면에 높은 단이 있었고, 그 위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의자라기보다는 옥좌에 가까웠다. 검은 나무에 금빛 무늬가 새겨진, 크고 무거운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염라대왕이었다.
삼돌이는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크고 위엄 있는 형상이었다. 얼굴은 준엄했으나 무섭지는 않았다. 눈이 깊었다. 천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것 같은 깊은 눈이었다. 그 눈 안에 자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픔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삼돌이가 바닥에 엎드리려 했다. 거지였으므로, 높은 사람 앞에서는 엎드리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삼돌이를 멈추었다.
그리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전각 안의 공기가 흔들렸다. 양옆에 도열해 있던 저승의 관리들, 판관과 녹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염라대왕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망자를 맞이하는 일은, 저승이 열린 이래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이 높은 단 위에서 삼돌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낮고 깊은 목소리였다. 천둥처럼 울리되, 귀를 아프게 하지 않는 소리였다.
"네가 삼돌이냐."
"예, 그렇습니다."
"네 생을 비추어 보겠다. 업경대를 가져오너라."
전각의 한쪽에서 커다란 거울이 옮겨져 왔다. 업경대. 죽은 자의 일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살아 있을 때 한 모든 일이, 이 거울에 남김없이 드러난다. 거짓이 통하지 않는 거울.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울.
업경대가 삼돌이 앞에 놓였다. 거울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그 안에 장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장터 어귀에서 손을 내미는 삼돌이의 모습이 보였다. 침을 맞고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찬밥을 반으로 쪼개어 아이에게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쓰러진 늙은 거지에게 자기 몫의 밥을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굶주려 우는 아낙에게 떡을 통째로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비 오는 날, 다리 밑에 떠내려온 강아지를 건져 품에 안고 밤새 온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내리는 겨울밤에 자기 거적떼기를 노파에게 덮어주고 맨몸으로 얼어 죽는 모습이 비쳤다.
거울이 멈추었다. 전각 안이 고요해졌다.
삼돌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었다. 거지의 삶. 가진 것 없이, 이름도 없이 살다 간 삶. 삼돌이 자신은 대단한 것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나누었을 뿐이고, 추운 사람에게 거적을 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염라대왕의 눈가에 무엇인가가 번뜩였다. 빛이었다. 촛불이 반사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 염라대왕의 깊은 눈 속에 무엇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삼돌이야."
"예."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아느냐."
"저요? 저는 그냥 거지입니다. 다리 밑에 살던 거지."
염라대왕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는 거지가 아니다."
※ 6: 삼돌이의 전생이 드러나고, 그의 삶이 시험이었음이 밝혀지다
삼돌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거지가 아니라니. 평생을 거지로 살았는데, 거지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염라대왕이 업경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울의 표면이 다시 물결쳤다. 그런데 이번에 비친 것은 삼돌이의 삶이 아니었다. 삼돌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전생의 모습이 거울 안에 펼쳐진 것이었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보였다.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고, 하인을 부리는 양반이었다. 충청도의 큰 부자.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산도 있었다. 고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최 부자라 불렀다.
그런데 이 최 부자의 행실이 업경대에 낱낱이 비치기 시작했다. 소작인들에게 가혹한 소작료를 거둬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굶주린 백성이 쌀을 꾸어달라 애원하는데 문전박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풀뿌리를 캐먹을 때, 곳간에 쌀이 썩어가는데도 한 톨도 내놓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종들을 때리고, 빚을 갚지 못한 가난한 이의 자식을 종으로 삼고, 가진 것을 움켜쥔 채 남에게는 한 푼도 베풀지 않는 삶.
최 부자는 예순에 죽었다. 산해진미를 먹고, 비단옷을 입고, 따뜻한 방에서 죽었다. 굶어 죽은 것도 아니고, 얼어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저승에 왔을 때, 업경대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다. 그의 삶은 탐욕으로 가득했고, 베풂은 단 한 줌도 없었다.
삼돌이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최 부자와 자기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다는 것을, 삼돌이는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저입니까?"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최 부자가 네 전생이다."
삼돌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생에 자기가 부자였다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 살던 양반이었다고. 그런데 왜, 이번 생에는 거지로 태어난 것인가.
"전생에서 너는 가진 것이 많았으되, 나눈 것은 없었다. 쌀이 곳간에 썩어가되 굶주린 이웃에게 한 톨도 내놓지 않았고, 돈이 궤짝에 넘치되 빚에 허덕이는 자에게 한 푼도 빌려주지 않았다. 가진 자가 나누지 않는 것은, 가지지 못한 자가 빼앗는 것보다 무거운 죄이니라."
삼돌이가 고개를 숙였다. 전생의 기억은 없었으나, 염라대왕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가진 자가 나누지 않는 것이, 빼앗는 것보다 무거운 죄라니. 그것은 삼돌이가 이번 생을 살며 본능처럼 느끼던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너에게 시험을 내렸다."
"시험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이번 생에서 너를 가장 가난한 자로 태어나게 하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로. 다리가 불편하여 일도 할 수 없는 몸으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래도 나눌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도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가. 그것이 시험이었다."
삼돌이가 고개를 들어 염라대왕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시험인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통과한 것이다."
염라대왕의 눈이 깊어졌다. 그 깊은 눈 속에 분명히, 무엇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자비라고 해야 할까, 존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감정이라 해야 할까.
"시험인 줄 알고 베푸는 것은 쉽다. 보상이 있을 줄 알고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인 줄 모르고, 보상이 없을 줄 알면서도, 자기 목숨 하나 남은 자리에서 거적떼기를 내주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 7: 삼돌이에게 내려진 저승의 판결과 이승에 남겨진 울림
전각 안이 고요했다. 판관과 녹사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승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염라대왕이 삼돌이에게 물었다.
"삼돌이야, 네게 한 가지 묻겠다. 원한이 있느냐."
"원한이요?"
"그렇다. 전생에서 부자로 살다가, 이번 생에서 거지로 태어났다. 평생을 굶주리고, 얼고, 천대받으며 살았다. 원한이 있을 법도 하다."
삼돌이는 한참 생각했다. 원한. 원한이라. 평생 굶주렸고, 평생 추웠고, 평생 업신여김을 당했다. 원한이 있어야 마땅한 삶이었다. 그런데 삼돌이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없다고?"
"예. 원한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고플 때 밥을 나눠주면 배고픈 게 조금 잊혔고, 추울 때 거적을 내주면 추운 게 조금 잊혔습니다. 남한테 뭔가를 줄 때마다 속이 따뜻해졌으니까요. 그게 제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원한을 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삼돌이를 내려다보았다. 천 년을 저승에 앉아 수많은 혼을 보아왔으되, 이런 대답을 하는 혼은 흔치 않았다.
"판결을 내리겠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전각 안에 울렸다. 판관이 붓을 들었고, 녹사가 저승의 장부를 펼쳤다.
"삼돌이. 전생의 죄업은 금생의 삶으로 모두 씻겼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나누었고, 목숨이 남은 마지막 순간에도 남을 살렸다. 이는 천 냥의 보시보다 무겁고, 백 권의 경전을 읽은 것보다 깊은 공덕이니라."
삼돌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네게 두 가지 길을 주겠다. 하나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다. 다시는 고통 없이, 다시는 굶주림 없이, 영원히 평안한 곳에서 쉬는 것이다."
삼돌이의 눈이 반짝였다. 극락. 고통이 없는 곳. 굶주리지 않는 곳. 평생 굶주리며 살았던 삼돌이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하나는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이번에는 가진 것이 있는 자로 태어난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전생의 실수를 반복하면, 다시 시험이 내려질 것이다."
삼돌이가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극락의 편안함과 이승의 고단함. 선택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삼돌이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다리 밑에서 배가 고프다며 울던 아이의 얼굴. 그 아이에게 찬밥을 건넸을 때, 아이가 짓던 웃음. 그 웃음이 삼돌이의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극락을 마다하겠다는 것이냐?"
"극락에 가면 편하겠지요. 하지만 극락에서는 밥을 쪼개어 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배고픈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나눔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는 배고픈 사람이 있는 곳에서, 밥을 쪼개어 주며 살고 싶습니다."
전각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판관의 붓이 멈추었고, 녹사의 손이 멈추었다. 저승의 관리들이 삼돌이를 바라보았다. 극락을 마다하고 이승을 택하는 혼을, 그들은 본 적이 없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깊은 눈 속에, 분명히 미소가 있었다.
"좋다. 너를 이승으로 돌려보내겠다. 가거라, 삼돌이야. 아니,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삼돌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름입니까?"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염라대왕이 손을 들었다. 전각 안에 밝은 빛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삼돌이의 몸이 빛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서서히 사라져 갔다. 삼돌이는 마지막으로 염라대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빛이 삼돌이를 삼켰다. 저승의 전각에서 삼돌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염라대왕이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가진 것 없이도 나눌 줄 아는 자가 진정한 부자이니라. 천 냥을 가지고도 한 푼 나누지 못하는 자는 거지보다 가난한 것이고, 찬밥 한 덩이뿐이되 반을 쪼개어 줄 줄 아는 자는 부자보다 넉넉한 것이다."
이승에서는 봄이 오고 있었다. 동대문 밖 돌다리 아래, 삼돌이가 죽은 자리에 이름 모를 꽃이 하나 피어났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차가운 돌 틈 사이에서 노란 꽃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 여기 꽃이 피었네. 다리 밑에 꽃이라니."
"거기 그 거지가 죽은 자리 아녀?"
"그러게. 이상하네. 돌 틈에서 꽃이 피다니."
사람들은 한참 그 꽃을 내려다보다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아무 말 없이 피어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마을에 어떤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난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으되, 이상하게도 남에게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제 것을 반으로 쪼개어 친구에게 주고,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달려가 안아주는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그 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이 참 이상하네. 제가 먹던 것도 남한테 주고, 제가 입던 것도 남한테 벗어주네. 마치 옛날에 다리 밑에 살던 그 거지 삼돌이처럼."
진짜로 삼돌이가 환생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동대문 밖 돌다리 아래에 핀 그 노란 꽃은 해마다 봄이면 다시 피어났다고 한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는데,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어났다고 한다.
오늘 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찬밥 한 덩이를 반으로 쪼개는 일. 그것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서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삼돌이는 평생으로 보여주었지요. 어쩌면 진짜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나누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남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염라대왕 이야기, 다음 편에서 또 찾아뵙겠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A dramatic and emotional cinematic scene depicting the interior of the Korean afterlife judgment hall. In the center foreground, a thin, ragged Korean beggar in torn hemp clothing kneels humbly on a dark stone floor, seen from behind at a low angle. He is small and frail, his bare feet dirty, his clothes patched and worn. Before him, on a massive elevated dark wooden throne decorated with intricate gold Buddhist and traditional Korean motifs, sits Yeomra Daewang (the Korean King of the Underworld), a majestic and imposing figure wearing elaborate dark ceremonial robes with gold trim and a tall ornate crown. Yeomra is standing up from his throne in a gesture of respect toward the beggar, one hand slightly extended, his expression solemn and deeply moved. The vast hall stretches into darkness on either side, lined with towering red-lacquered pillars between which eerie blue-green ghostly flames float in bronze braziers. To one side, a large mystical bronze mirror (the Karma Mirror) glows with warm golden light, showing faint reflections of scenes from a life of kindness — a hand offering rice, a straw mat being placed over an old woman. The floor reflects the dim firelight. The overall atmosphere is awe-inspiring and reverent, mixing darkness with warm supernatural light. Photorealistic, ultra-detailed, cinematic composition, 16:9 aspect ratio,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with warm gold and cool blue-green tones, Korean Buddhist underworld aesthetic,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