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거짓말을 한 사또… 그런데 ‘업경대’에 비친 진실에 염라대왕이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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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때, 충청도 어느 고을에 백성들이 벌벌 떠는 사또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박경수. 이 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눈만 뜨면 백성의 재물을 탐하는 탐관오리 중의 탐관오리였습니다. 억울한 백성이 호소를 하면 뇌물을 바친 쪽의 손을 들어주고, 감찰이 나올라치면 장부를 조작하여 빠져나가기를 밥 먹듯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승에서 아무리 교활하게 살아도 저승에서까지 거짓말이 통할까요? 사또가 죽어 저승에 끌려갔을 때, 그 앞에 떡하니 앉아 있는 분은 바로 이 세상 모든 거짓과 죄를 꿰뚫어 보는 분, 염라대왕이었습니다. 업경대라는 거울 앞에서 사또의 평생 거짓말이 낱낱이 벗겨지는 그 순간,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부터 그 소름 돋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1: 사또의 탐욕스러운 모습과 백성들의 고통
옛날, 조선 숙종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의 일이다. 충청도 남쪽 끝자락, 산이 높고 물이 맑아 그야말로 살기 좋은 고을이 하나 있었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냇물에는 은빛 물고기가 첨벙첨벙 뛰어놀았으니, 하늘이 복을 내린 땅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고을 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심이 후하여, 이웃끼리 밥 한 그릇도 나누어 먹으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을에 새 사또가 부임한 뒤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새 사또 오신 지 석 달밖에 안 됐는디, 벌써 장터가 반이나 줄었구먼."
"쉿, 조심해. 사또 귀가 얼마나 밝은디. 괜히 입방아 찧었다가 곤장 맞으려고?"
백성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 부임한 사또의 이름은 박경수. 한양에서 벼슬을 얻어 내려왔는데, 그 벼슬이란 것이 제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아비의 재산으로 이리저리 줄을 대고, 웃전에 뇌물을 잔뜩 바쳐서 겨우 얻어낸 자리였다. 과거 시험은 번번이 떨어졌으되, 돈으로 못 살 것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자였다.
'이 고을이 꽤 살림이 넉넉하다 했더니, 과연 그렇구나. 논밭도 기름지고, 장터도 번성하니... 이 정도면 내 주머니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겠어.'
박경수는 부임 첫날부터 동헌 마루에 떡하니 앉아 고을의 전답 장부를 펼쳐 보며 눈을 번뜩였다. 그에게 백성의 안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얼마나 거두어들일 수 있는가, 그것만이 관심사였다.
부임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박 사또는 세금을 두 배로 올렸다. 명목은 그럴듯했다.
"올해 조정에서 큰 공사가 있어 특별 부세를 거두라는 명이 내려왔다.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조정에서 그런 명을 내린 적이 없었다. 박 사또가 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꾸며낸 것이었다. 거짓 공문을 직접 만들어 아전들에게 보여주며, 마치 한양에서 내려온 것인 양 위세를 부렸다.
"사또 나으리, 올해 가뭄이 심해서 수확이 반도 안 됩니다. 제발 세금을 좀 낮춰 주십시오."
늙은 농부가 무릎을 꿇고 호소했지만, 박 사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뭐? 수확이 반이라고? 내가 직접 들판을 보았는데, 벼가 누렇게 잘 익었더구나. 네놈이 곡식을 숨겨놓고 거짓말을 하는 게지. 포졸아, 이놈을 끌어내어 곤장 열 대를 쳐라!"
억울한 농부의 등짝에 곤장이 떨어졌다. 매 한 대 한 대에 농부의 신음이 동헌 밖까지 울려 퍼졌다. 이 광경을 본 다른 백성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감히 사또에게 대들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불쌍한 것들, 꼼짝 못하고 바치는 꼴이라니. 이래서 벼슬이 좋은 거야.'
박 사또는 동헌 안쪽 깊숙한 곳에 따로 궤짝을 마련하여, 거두어들인 재물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금붙이, 비단, 쌀가마니... 그 양이 나날이 불어갔다. 고을 아전들도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박 사또가 떡고물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하나둘 눈을 감고 말았다.
밤이면 박 사또는 기생을 불러 술판을 벌이며 흥청망청했다. 관아 밖으로 풍악 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그 소리를 듣는 백성들의 마음은 미어졌다.
"저 소리 좀 들어보소. 우리는 내일 먹을 쌀도 없는디, 사또는 밤마다 잔치구먼."
"참아야제. 임기가 끝나면 갈 낀게..."
한 백성이 주먹을 불끈 쥐며 분을 삭였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박 사또의 탐욕은 끝을 모르고, 고을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박 사또를 하늘이 과연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이 고을에 드리운 먹구름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 2: 윤씨의 땅을 빼앗는 억울한 재판과 노비 돌쇠의 목격
박 사또가 부임한 지 반년이 지나자, 고을에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고을 남쪽에 윤씨 성을 가진 과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혼자서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처지였는데, 다행히 남편이 남겨준 논 세 마지기가 있어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다. 봄이면 모를 심고, 가을이면 벼를 베어, 그 쌀로 아들 먹이고 제 입에 풀칠하는 것이 윤씨의 한 해 살림 전부였다. 그 논이 바로 윤씨에게는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 논에 욕심을 낸 자가 있었으니, 바로 고을 최대 부호 최영감이었다. 최영감은 이미 논밭을 수십 마지기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심이 끝이 없는 자였다.
'윤씨네 논이 내 논 바로 옆에 붙어 있는디, 저것만 내 것이 되면 한 들판을 통째로 가지는 것 아닌가. 과부년이 홀로 무엇을 하겠어. 시기가 좋구만.'
최영감은 예전부터 그 논을 탐내고 있었지만, 남의 땅을 빼앗을 명분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온 사또가 뇌물에 약하다는 소문을 듣고, 꾀를 부리기로 마음먹었다. 슬금슬금 관아로 찾아간 것이다.
"사또 나으리, 소인이 변변치 않은 것이나마 정성을 올리고자 하옵니다."
최영감이 내민 것은 금 열 냥이 든 보자기였다. 박 사또의 눈이 반짝 빛났다. 금덩이가 촛불 아래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허허, 이게 무슨 큰 예물이라고.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다름이 아니오라, 과부 윤씨네 논 세 마지기가 원래 소인의 선대 땅인데, 윤씨 남편이 살아생전에 빌려 농사를 짓던 것이옵니다. 이제 돌려받고자 송사를 올리려 하는디, 사또께서 밝은 판결을 내려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었다. 그 논은 윤씨 남편의 아버지 대부터 일궈온 땅이었고, 문서도 분명히 윤씨네 앞으로 되어 있었다. 고을 사람들 가운데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박 사또에게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금 열 냥이라... 나쁘지 않군. 거기에 좀 더 얹어서 스무 냥쯤 받아내면 되겠구만.'
"음, 사연이 기구하구나. 내 한번 살펴보겠으니, 송사를 올려라."
며칠 뒤, 동헌에서 재판이 열렸다. 과부 윤씨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다리로 동헌에 들어섰다. 아들은 겨우 대여섯 살 남짓한 어린것이었는데, 엄마의 손을 잡은 작은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사또 나으리, 소녀의 논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옵니다. 여기 문서도 있사옵니다. 제발 살펴주시옵소서."
윤씨는 낡지만 분명한 글씨가 적힌 전답 문서를 내밀었다. 종이는 세월에 바랬지만 글씨는 또렷했고, 관인까지 찍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윤씨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박 사또는 문서를 힐끗 보더니, 일부러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문서가 진짜인지 어찌 알겠느냐? 종이가 이리 낡고 글씨가 흐린 것을 보니, 누가 위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구나."
"아니옵니다! 이것은 소녀의 시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것이옵니다. 동네 어른들도 다 아는 사실이옵니다!"
윤씨가 울먹이며 호소했지만, 박 사또는 이미 마음을 정해놓은 뒤였다.
"조용히 하라! 본관이 살펴보니, 최 영감의 주장이 이치에 맞다. 논 세 마지기는 원주인인 최 영감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사또 나으리! 그 논이 없으면 저와 어린 자식은 굶어 죽사옵니다! 제발, 제발 다시 살펴주시옵소서!"
윤씨가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절하며 울부짖었다. 이마에서 피가 배어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또 절했다. 옆에 서 있던 어린 아들도 엄마의 울음에 겁을 먹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동헌에 모인 백성들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시끄럽다! 판결은 이미 났다. 더 떠들면 관장죄로 다스리겠다. 물러가라!"
이 광경을 관아 뒤편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관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노비 돌쇠였다. 돌쇠는 며칠 전 최영감이 사또에게 금을 건네는 장면을 몰래 목격한 터였다.
'저 불쌍한 과부에게 어찌 저리 할 수가 있는가. 눈이 있으면서도 못 본 척, 귀가 있으면서도 못 들은 척... 하늘이 무심하시지, 하늘이 무심해...'
돌쇠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노비의 신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제 목숨이 위태로울 판이었다. 다만 이 일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언젠가 하늘이 이 원한을 풀어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그날 밤, 윤씨는 빈 들판 가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었다. 맑은 달빛이 그녀의 눈물 위로 쏟아졌지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이 엄마의 치마폭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엄마, 왜 울어? 배고파서 울어?"
그 한마디에 윤씨의 울음이 더 터져 나왔다. 들판 위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 3: 사또의 탐욕이 극에 달하고
윤씨의 논을 빼앗은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맛을 들인 박 사또는 그 뒤로 더욱 대담하게 백성들의 것을 빼앗기 시작했다.
산골 마을의 꿀을 가져오라 하고, 바닷가 마을의 건어물을 상납하라 하고, 산삼이 난다는 소문이 들리면 산을 뒤지게 하여 제 것으로 챙겼다. 심지어 혼례를 앞둔 집에까지 축의금을 내놓으라며 아전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찰 암행어사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문에도 박 사또는 코방귀를 뀌었다.
"걱정 말거라. 한양에 줄을 대놓았으니, 어사가 이 고을까지 올 리가 없다."
'설령 온다 해도, 장부는 이미 깔끔하게 꾸며놓았으니 걸릴 것이 없지.'
박 사또는 아전 김 서방을 시켜 이중 장부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장부에는 세금 수입과 지출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졌고, 실제 수탈한 내역은 별도의 장부에 적어 침소 벽장 깊숙이 감추어두었다. 제 꾀에 스스로 감탄하며, 박 사또는 날마다 더 교활해져 갔다.
그해 여름, 특히 심한 일이 있었다. 장마가 지고 나서 고을 곳곳에서 둑이 무너져 논밭이 물에 잠겼다. 마을마다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해 농사를 망친 백성들이 둑 수리를 위해 관가에 도움을 청했지만, 박 사또는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했다.
"둑 수리 비용으로 각 호마다 쌀 한 가마니씩 거두어라."
실제로 둑 수리에 쓰인 쌀은 고작 서너 가마니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박 사또의 창고로 들어갔다. 이미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이 부세는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쌀 한 가마니가 없어 굶는 집도 있었다.
"아이고, 차라리 이 고을을 떠나고 싶구먼. 허나 전답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여."
"그러게 말여. 사또가 바뀌기만을 하늘에 빌 수밖에..."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밤마다 산신당에 올라가 사또가 떠나기를 비는 아낙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원성이 과연 하늘에 닿았는지,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가을밤이었다. 박 사또가 여느 때처럼 기생을 불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한창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부르려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훅 꺼졌다. 바깥에는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이었는데 말이다.
"무, 무슨 바람이냐? 어서 불을 켜라!"
포졸이 허둥지둥 불을 켜는 사이, 박 사또는 방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희끄무레한 형체가 서 있다가 스르르 사라졌다. 그 형체가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았다. 곤장을 맞던 늙은 농부... 아니, 땅바닥에 이마를 찧던 과부 윤씨인가.
'지, 지금 뭐가 지나간 거야? 아니야,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거겠지.'
박 사또는 소름이 끼쳤지만, 술기운을 빌려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허, 바람에 그림자가 비친 것이겠지. 아무것도 아니야. 자, 술이나 더 따르거라."
그런데 그날 밤부터 박 사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사흘이 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얼굴은 핏기를 잃고, 손발이 차갑게 식어갔다.
"의원을 불러라! 어서 의원을!"
급히 불려 온 의원이 맥을 짚어보았으나, 고개를 내저었다.
"기이하옵니다. 맥이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뛰고, 열이 오르다가 갑자기 식고... 소인이 의술을 배운 지 삼십 년이나, 이런 증세는 처음 봅니다. 이것은 보통 병이 아니라, 혹시 원한에 의한..."
"닥쳐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약이나 지어 오너라!"
박 사또는 의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원한이라니? 설마 그 사람들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병세는 나아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깊어갔다. 온갖 약을 써보고, 굿까지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 사또의 얼굴은 초처럼 노랗게 변했고,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갔다.
부임한 지 꼭 일 년이 되던 날 밤이었다. 박 사또는 침상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으리, 정신 차리시옵소서! 나으리!"
하인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마치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희미해져 갔다.
'이상하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은데...'
그리고 박경수 사또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방 안에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승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었다.
※ 4: 차사에게 끌려 저승에 도착한 사또가 염라대왕 앞에 서다
눈을 감았다고 생각한 순간, 박경수는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전혀 달랐다. 관아의 침상도, 하인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둑한 길이 앞으로 쭉 뻗어 있었다. 길 양편으로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뿌연 것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어디선가 낯선 새의 울음 같기도 하고 사람의 신음 같기도 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 여기가 어디냐?"
박경수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제 목소리가 어찌나 공허하던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대답 대신 등 뒤에서 쇳소리가 쨍그랑 울렸다.
"일어나라. 갈 길이 멀다."
돌아보니, 검은 도포를 입고 삿갓을 눌러쓴 사내가 서 있었다. 키가 장대처럼 크고, 얼굴이 핏기 없이 창백했다. 눈은 깊은 동굴처럼 까맣고, 입꼬리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 손에는 쇠사슬을 들고 있었는데, 그 사슬의 끝이 바로 박경수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네, 네놈이 누구냐! 나는 충청도 고을의 사또다! 감히 사또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허, 이승에서의 벼슬 따위가 여기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내가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싸늘하던지, 박경수의 등줄기로 찬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저승차사다. 네 수명이 다하여 데리러 온 것이니, 순순히 따라오너라."
"저, 저승이라고? 말도 안 돼!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것은 꿈이야, 분명 꿈이라고!"
박경수는 발버둥을 쳤다. 이승에서 벼슬아치로 호령하던 위세는 간데없고, 겁에 질린 목소리가 허공에 떨렸다. 사슬을 끊어보려 있는 힘껏 잡아당겨 보았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수명이 다한 자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하느니라."
차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사슬을 당겨 앞으로 걸어갔다.
쇠사슬에 이끌려 걷기 시작한 박경수의 눈에 기이한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길 양편으로 흐느끼는 사람들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어떤 이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어떤 이는 피투성이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들이 하나같이 박경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어딘가 낯익었다. 고을에서 보았던 얼굴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 저자들은 뭐야?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박경수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나절은 걸은 것 같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인 것 같기도 한 시간이 흘렀다. 안개 속에서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맣고 육중한 대문이었는데, 높이가 열 길은 되어 보였고, 문 위에 커다란 금빛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 저게..."
'시왕전.' 염라대왕이 죄인을 심판하는 곳이라는 것은, 이승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죽어서 나쁜 짓을 했으면 지옥에 간다고, 염라대왕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고. 그때는 코웃음을 쳤건만, 지금 직접 눈앞에 보니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문이 끼이익 하고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어찌나 서늘하던지, 한여름에도 살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차사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자, 넓디넓은 대전이 나타났다. 대전 좌우로 저승의 관리들이 도열해 있었고, 바닥에는 핏빛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전의 정면 높은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키가 두어 길은 되어 보이는 거구에, 관을 쓰고 금빛 도포를 두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근엄한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박경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 눈이... 마치 뼈 속까지, 아니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충청도 고을 사또 박경수, 이리 나오너라."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기둥이 진동하고, 바닥이 울렸다.
박경수의 무릎이 저도 모르게 꺾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짓말로 한평생을 살아온 자가, 모든 거짓을 꿰뚫어 보는 자 앞에 선 것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어, 어떡하지... 여기서도 잘만 둘러대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에도 박경수의 머릿속에는 거짓말을 궁리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이승에서 평생 거짓말로 위기를 넘겨온 자의 습성이 죽어서도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 5: 업경대 거울이 모든 죄를 비추다
염라대왕이 박경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묘한 빛이었는데, 마치 겨울 한밤의 모닥불 같았다. 따스함이 아니라 무엇이든 태워버릴 수 있는 불꽃. 박경수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었다. 바닥이 어찌나 차가운지 이마가 얼얼했다.
"박경수, 너는 이승에서 무슨 벼슬을 했느냐?"
우레 같은 목소리에 박경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예... 소, 소인은 충청도 고을의 사또를 지냈사옵니다."
"사또라. 백성을 다스리고 보살피는 자리가 아니더냐. 그 직분을 어떻게 수행했느냐?"
바로 이때, 박경수의 오래된 습성이 발동했다. 이승에서 감찰관 앞에서, 상관 앞에서, 백성 앞에서 수없이 해왔던 바로 그 습성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소인은 비록 미천한 재주이오나, 밤낮으로 백성을 위해 힘썼사옵니다. 세금을 낮추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흉년이 들면 관곡을 풀어 굶주린 이들을 구제하였사옵니다. 원통한 송사가 있으면 공정하게 판결하여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하였사옵니다. 백성들이 소인을 어버이처럼 따랐사옵니다."
박경수는 말하면서 차츰 자신감을 되찾았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에도 여유가 번졌다. 이승에서도 감찰 앞에서 이렇게 해서 번번이 넘어가지 않았던가.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매끄러웠고, 이야기의 앞뒤가 척척 맞아들어갔다.
'그래, 여기도 결국 말빨이야. 잘만 둘러대면 되는 거라고. 이 혀 하나면 어디서든 살아남는다고.'
그러나 염라대왕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박경수의 말이 끝나자, 대전 안에 잠시 고요가 흘렀다. 그 고요가 어찌나 깊던지, 심장 뛰는 소리가 대전 끝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염라대왕이 왼손을 천천히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래? 네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직접 확인해 보겠다. 업경대를 가져오너라!"
순간, 대전 한쪽에서 커다란 거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되는 거대한 거울이었는데, 테두리에 금과 은으로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었다. 거울 표면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대전 안을 감싸자, 어둡던 공간이 한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이것이 업경대다. 이 거울은 사람의 일생을 비추는 거울이니라. 살아생전 행한 모든 일이 이 안에 낱낱이 담겨 있다. 어떤 거짓말로도, 어떤 꾀로도 이 거울을 속일 수는 없느니라."
박경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까지 차올랐던 자신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업, 업경대라고? 이승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그것이 정말로 있단 말이야?'
거울 표면이 물결치듯 일렁이더니, 그 안에 장면이 떠올랐다. 박경수가 부임 첫날 동헌에서 전답 장부를 보며 탐욕에 불타는 눈빛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거짓 공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없는 세금을 거두는 장면, 늙은 농부에게 거짓말쟁이라며 곤장을 치는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농부의 신음 소리까지 그대로 들렸다.
"아, 아닙니다! 저것은... 사정이 있었사옵니다!"
박경수가 외쳤지만, 거울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으로 비친 장면은 과부 윤씨의 재판이었다. 최영감에게서 금을 받는 장면, 윤씨의 문서를 일부러 무시하고 엉터리 판결을 내리는 장면, 윤씨가 어린 아들과 함께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장면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재현되었다.
"저건... 저건..."
박경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거울은 자비가 없었다. 수해 복구 비용을 착복하는 장면, 기생과 술판을 벌이며 흥청망청하는 장면, 이중 장부를 만들어 감추는 장면... 일 년간의 악행이 한 편의 그림두루마리처럼 쉼 없이 흘러갔다. 거울 속에서 울리는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대전 안을 가득 채웠다.
대전 안에 모여 있던 저승의 관리들이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다.
박경수는 바닥에 엎어져 머리를 조아렸다. 더 이상 거짓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업경대 앞에서는 백 마디 거짓말도 한 줌의 가치가 없었다.
"네놈의 혀는 이승에서 사람을 속이는 데는 쓸모가 있었을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느니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자, 이제 변명이 아닌 사실을 말해보거라. 네가 스스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더 보여주어야 하겠느냐?"
박경수는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평생 거짓말만 해온 혀가 이제야 진실을 말하려 하니, 혀가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거짓은 물 흐르듯 나오건만, 진실 한마디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 6: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또의 최후 변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대전 안의 공기가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경수가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데, 염라대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죄를 네 입으로 말하기 어렵다면, 네게 피해를 입은 자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여라. 증인들을 들여보내라!"
대전의 문이 열리자, 줄지어 들어오는 이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박경수는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승에서 스쳐 지나갔던 얼굴들이었다. 아니,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짓밟아 놓고 잊어버린 얼굴들이었다.
맨 앞에 선 사람은 곤장을 맞았던 늙은 농부였다. 이승에서 그 일 이후 병이 깊어져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사또 나으리라 불렀던 자여. 나는 그해 가뭄에 수확이 반도 안 되어 사정을 말한 것인데, 거짓말쟁이라며 곤장을 맞았소. 등짝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앓다가 결국 이곳까지 왔소. 내 남은 식구들은 그 뒤로 더 기댈 곳이 없어졌소."
농부의 목소리는 분노가 아닌 깊은 슬픔으로 잠겨 있었다. 소리를 지르지도, 저주를 퍼붓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어조로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박경수의 가슴을 더 깊이 찔렀다.
두 번째로 나선 이는 수해 때 둑 수리를 청원했던 마을 이장이었다.
"소인의 마을은 둑이 무너져 논밭이 다 물에 잠겼건만, 사또는 수리 비용을 명목으로 쌀을 거두어 제 창고에 넣었습니다. 그 겨울에 마을에서 세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노인과 젖먹이 아기, 그리고 소인이옵니다. 소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줄 식량을 구하러 산을 넘다가 눈보라에 얼어 죽었습니다."
세 번째는 윤씨의 남편이었다.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그가 저승에서 아내의 억울한 일을 지켜본 것이었다.
"내 아내와 어린 자식에게 논 세 마지기가 전부였소. 그것을 뇌물 먹고 빼앗은 자, 당신에게 내 가족의 눈물값을 어찌 치르겠소? 저승에서 아내가 빈 들판에 주저앉아 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일인지 당신은 알겠소?"
증인이 이어졌다. 억울하게 곤장을 맞은 젊은이, 없는 세금에 시달리다 야반도주한 끝에 산에서 얼어 죽은 노인, 사또의 횡포에 삶을 포기하려 했던 과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박경수의 몸에 곤장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내리꽂혔다.
박경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승에서는 이 사람들의 울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왔건만, 이제 이곳에서 직접 대면하니, 가슴 한가운데가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네놈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또가 아니라, 백성을 잡아먹는 호랑이였느니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대전을 가득 채웠다.
"이제 마지막으로 네게 기회를 주마. 할 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박경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을 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업경대에 모든 것이 비친 마당에, 이 사람들의 눈을 마주한 마당에, 더 이상 어떤 거짓을 지어낼 수 있겠는가.
"소... 소인이 죄를 지었사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백성을 괴롭혔사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사옵니다. 소인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한 뒤, 박경수는 고개를 들어 증인들을 바라보았다.
"허나... 소인에게 한 가지만 여쭙겠사옵니다. 소인이 이 벌을 다 받고 나면... 이승에 남은 그 사람들은... 과부 윤씨의 논은... 돌아가게 됩니까?"
뜻밖의 질문이었다. 대전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저승의 관리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이 진정 네 걱정이냐? 아니면 형벌을 줄이려는 또 하나의 꾀냐?"
박경수는 고개를 떨구었다.
"소인도...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그 무게가 느껴지옵니다. 이승에서는 그 무게를 느끼지 못했사옵니다. 아니, 느끼지 않으려 했사옵니다."
염라대왕은 한참 동안 박경수를 내려다보았다. 수천 년을 이 자리에서 죄인을 심판해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도 깊은 눈빛이었다.
"네 뒤늦은 뉘우침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업경대가 비춰 줄 것이다."
거울이 다시 한번 빛났다. 이번에 비친 것은 지옥의 장면이 아니라, 박경수의 어린 시절이었다.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배고픔에 울던 어린 아이. 아비가 돈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던 소년. 어느 순간부터 가난하면 진다는 신념이 굳어진 청년의 눈빛. 거짓말은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고, 나중에는 습관이 되었고, 마침내는 본성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로다."
염라대왕이 나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형벌을 내리겠다!"
※ 7: 고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다
"박경수!"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대전 기둥을 울렸다. 대전 안의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고, 바닥에 새겨진 핏빛 글자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너는 이승에서 사또의 직분을 맡고도 백성을 수탈하고, 무고한 자에게 형벌을 내리고, 거짓으로 장부를 꾸미고, 뇌물을 받아 억울한 판결을 내렸다.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박경수는 바닥에 이마를 대고 벌벌 떠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거짓말을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너에게 세 가지 벌을 내리노라."
대전 안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증인들도, 관리들도, 차사도 숨을 죽이고 염라대왕의 입을 바라보았다.
"첫째, 거짓말로 남을 속인 죄를 물어, 네 혀에 불가시를 박아 오백 년 동안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네 혀가 뱉은 거짓말의 수만큼 고통이 따를 것이다."
박경수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오백 년이라니. 이승에서 평생 거짓 혀놀림으로 살아온 대가치고는 가혹하다고 느꼈지만,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선고는 계속되었다.
"둘째, 남의 재물을 탐하여 빼앗은 죄를 물어, 네 다음 생에서는 한평생 가난의 고통을 겪게 하리라.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직접 몸으로 느끼도록 하여라."
'오, 오백 년 동안 말을 못하고...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니...'
박경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것이 뉘우침의 눈물인지 두려움의 눈물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셋째, 네가 해를 끼친 백성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이승에 한 가지 징표를 남기겠노라."
이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벌이 아니라 이승에 대한 조치라니. 박경수는 물론, 대전 안의 모든 이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숨겨둔 재물의 소재를 이승에 알려, 빼앗긴 자들에게 돌려주도록 하겠다. 또한 네 죄상을 이승에 드러내어, 후임 사또가 너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로 삼으리라."
그리고 염라대왕은 돌쇠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이승에 살아 있는 그 노비 돌쇠에게 꿈을 통하여 사또가 숨긴 재물의 위치와 이중 장부의 존재를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끌고 가라."
차사가 박경수의 사슬을 잡아끌었다. 박경수는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염라대왕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이미 혀에 박힌 불가시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에서 굵은 눈물만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용서를 빌고 싶었을까, 감사를 전하고 싶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거짓말쟁이 사또 박경수는 그렇게 저승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승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관아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노비 돌쇠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우레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쇠야, 네가 목격한 것이 사실이니라. 동헌 마루 밑을 파 보아라. 또한 사또의 침소 벽장 안에 장부가 두 권 있으니, 그것을 찾아 새로 부임하는 사또에게 전하여라."
돌쇠는 벌떡 일어나 마을 이장과 함께 동헌으로 갔다. 마루 밑을 파자, 과연 금은보화가 가득 든 궤짝이 나왔다. 벽장 안에서는 이중 장부 두 권이 발견되었다.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광경을 보며 탄식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곧이어 부임한 새 사또는 다행히도 청렴한 분이었다. 이중 장부를 확인하고 사태의 전모를 파악한 새 사또는, 빼앗겼던 재물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과부 윤씨는 논 세 마지기를 되찾았고, 수해 피해 마을에는 밀린 지원이 이루어졌다.
윤씨는 논을 되찾은 날, 아들의 손을 잡고 들판에 나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이제 괜찮아. 이제 우리 괜찮아."
돌쇠는 그 공으로 양인의 신분을 얻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찌 된 거냐고? 꿈에서 알려주었다 했잖여."
"꿈이라... 그것이 보통 꿈이겠어? 분명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보내신 것이여."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이 이야기는 온 고을에 퍼져 나갔다. 장터에서, 나무 아래에서, 냇가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 뒤로 충청도 일대에서는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다.
이승에서 아무리 교활하게 속여도, 저승의 업경대는 절대로 속일 수 없다. 거짓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도, 그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 사또 하나가 탐욕을 부리면 수백 명의 백성이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은 하늘에 닿아 반드시 되돌아온다.
박경수 사또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며,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그러니 말이다. 사람은 살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거여. 이승에서 감쪽같이 속여도,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서면 다 들킨다. 업경대 앞에서는 벼슬도, 돈도, 말빨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여. 오직 진심만이 통하는 법이다."
맑은 달이 고을 위에 떠오르고, 저 멀리 산마루에서 솔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그 옛날의 원한이 비로소 풀려 돌아가는 것처럼, 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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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ramatic photorealistic cinematic scene set in a dark, cavernous underworld court from the Joseon dynasty era. In the center, a terrified middle-aged Korean magistrate in traditional Joseon official robes and gat hat kneels on a stone floor, trembling with fear. Before him on an elevated throne sits the imposing King Yeomra, a giant fearsome judge figure wearing an elaborate golden crown and dark ceremonial robes, glaring down with piercing supernatural eyes. To the side stands a massive ornate bronze mirror (the Eopgyeongdae) glowing with an eerie blue-green light, reflecting ghostly scenes of the magistrate's corrupt deeds. The atmosphere is dark and moody with dramatic rim lighting, wisps of supernatural fog, and flickering torchlight casting long shadows across ancient stone walls. 16:9 aspect ratio, photorealistic, cinematic lighting,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