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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었다 살아난 농부가 본 저승 (출처-천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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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00자 미만)

    "이보시오, 사자님! 나는 평생 흙만 파먹고 산 죄 없는 농부요! 어찌하여 나를 데려가려 하시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생지옥을 목격한 한 농부의 기막힌 이야기. 뜨거운 불길이 솟구치는 지옥도와 서늘한 염라대왕의 심판대 앞에서 그가 겪은 소름 끼치는 저승의 실체가 지금 펼쳐집니다. 과연 그는 이 무시무시한 저승을 탈출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1: 이승에서의 갑작스러운 죽음

    하늘은 원망스러울 만치 푸르고 높았으나,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는 숨통을 조일 듯이 매섭고 가혹했다. 매미들의 울음소리마저 더위에 지쳐 쇳소리처럼 귓가를 찢어대는 한여름의 한낮,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농부는 넓은 밭 한가운데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무거운 호미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삼베적삼을 흠뻑 적시다 못해 뚝뚝 떨어져 메마른 흙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잠시 그늘에 들어가 쉴 여유조차 없었다. 며칠 전부터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으나, 그저 고된 농사일 탓이려니 여기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이 밭을 다 매야 우리 늙으신 어머님 약재라도 한 첩 지어드릴 수 있을 터인데. 철없는 자식놈들 입에 풀칠이라도 시키려면 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호미를 놓을 수는 없지.'

    속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한 기괴한 이명이 터져 나오더니, 눈앞의 쨍쨍하던 햇빛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마치 귓가에서 북을 치듯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헉, 하는 밭은 숨을 토해내며 농부는 손에 쥐고 있던 호미를 떨어뜨렸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며 온 세상이 까맣게 암전되는가 싶더니,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뚱어리가 끓어오르는 흙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멀리서 새참을 이고 오던 아내가 기겁을 하며 달려오는 모습이 일렁이듯 보였고, 들일하던 이웃들이 사색이 되어 모여드는 소란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농부는 분명 자신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느꼈고 고통에 몸부림쳤건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너무나도 가벼워진 몸으로 허공에 둥둥 뜬 채 그 모든 참상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저기 흙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있는 사내는 분명 나인데, 어찌하여 나는 이곳에 서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단 말인가. 여보! 이웃 양반들! 내가 여기 버젓이 서 있소!'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기이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그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는 듯했다. 허둥지둥 달려온 아내가 쓰러진 육신을 부둥켜안고 피를 토하듯 오열하기 시작했지만, 농부는 아내의 어깨를 만질 수도,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었다. 자신의 손이 아내의 몸을 마치 안개처럼 허무하게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극심한 혼란과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치던 바로 그때였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무색할 만큼 온몸의 뼈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지독하게 서늘하고 음습한 냉기가 그의 등 뒤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농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빛 한 줌 스며들지 않을 만큼 새까만 도포 자락을 발끝까지 늘어뜨린 채 서 있는 두 사내였다. 그들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키가 장승처럼 훌쩍 컸고, 얼굴은 오랜 세월 피를 흘린 시체처럼 창백했으며, 깊게 파인 눈동자 속에는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사람의 뼈로 엮은 듯한 시퍼런 쇠사슬과 붉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명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순간 농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전설 속의 존재, 바로 이승의 삶을 거두어간다는 저승사자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네놈이 이 마을에 사는 소작농 김 아무개가 맞느냐."

    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쇳덩이가 긁히는 듯 기괴하고 차가웠다. 농부는 턱이 덜덜 떨려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할 수 없었으나,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사자는 가차 없이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명부에 적힌 네놈의 수명이 오늘 오시(午時)를 기해 모두 다하였으니, 우리와 함께 명부전으로 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아야겠다. 잔말 말고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저, 저승사자? 그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요! 나는 이제 겨우 마흔 줄에 접어들었고,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친 적 없이 소처럼 밭만 갈며 살았소! 늙어 눈이 어두우신 노모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어린 자식들이 내 두 손만 쳐다보고 있단 말이오! 내가 어찌 벌써 죽는단 말이오! 제발 살려주시오!"

    농부는 바닥에 엎드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려 애원했지만, 사자들은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찰그랑,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사자의 손을 떠난 시퍼런 쇠사슬이 마치 살아있는 독사처럼 허공을 가르더니 순식간에 농부의 목과 두 손목을 단단히 옭아맸다. 영혼을 직접 파고드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 억센 힘이 쇠사슬을 짐승 끌듯 무자비하게 낚아챘다.

    "시끄럽다! 생과 사는 오직 하늘의 뜻이요, 염라대왕의 엄명일 뿐이다. 미천한 인간 따위가 감히 이승에 미련을 두고 버티려 하느냐! 어서 걷지 못할까!"

    목을 조여오는 사슬에 끌려가며, 농부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흙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육신 위로 쓰러져 통곡하는 아내와, 영문도 모른 채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손을 뻗어보아도 잡히는 것은 서늘한 저승의 바람뿐. 이승의 따스한 풍경은 빛을 잃고 잿빛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농부는 절망의 나락으로 속절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 2: 저승사자와의 동행과 공포

    이승의 빛과 온기가 완전히 차단된 저승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적막과 잿빛 안개의 연속이었다. 하늘도, 땅도, 주변의 풍경도 오직 탁한 잿빛으로만 물들어 있어, 낮인지 밤인지, 혹은 자신이 며칠을 걸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기괴한 공간이었다. 영혼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들이 끄는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동안 농부의 발바닥은 날카로운 자갈과 가시덤불에 베인 듯 찢어지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두려움과 추위로 인해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길을 걷는 동안, 농부의 귓가에는 이승에서 가져온 온갖 잡념들이 맴돌았다. 남겨진 가족들은 장례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빌린 좁쌀 두 말은 어찌 갚을까, 올해 지어놓은 농사는 누가 수확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승에 대한 미련과 한탄이 눈물이 되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앞장서서 걷는 저승사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목석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사슬만 팽팽하게 당길 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야, 나는 평생토록 개미 한 마리 함부로 밟아 죽인 적이 없는데 지옥에 갈 리가 없지. 하지만 염라대왕이라는 분이 내 억울함을 알아주실까...'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 걷던 중, 갑자기 훅 하고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에 농부는 헛구역질을 하며 멈칫거렸다. 고기를 썩히는 듯한 비린내와 오래된 피 냄새가 섞인, 이승에서는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끔찍한 냄새였다. 잿빛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농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거무튀튀하고 끈적이는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끝없이 흘러가는 거대한 강이었다. 이승과 저승의 완전한 경계를 가르는 강, 바로 이승의 기억을 씻어내고 저승의 율법에 묶이게 만든다는 황천강(황泉江)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황천강의 풍경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거무죽죽한 강물 위로는 뼈가 훤히 드러나거나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매달린 수많은 원귀들이 둥둥 떠올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강을 채 건너지 못하고 영원한 고통 속에 갇힌 영혼들이었다. 강기슭에는 온몸이 찢긴 채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원통함을 부르짖는 자들이 가득했다.

    "자, 이제부터 이 강을 건널 것이다. 강물 속에 있는 것들은 이승의 기운을 탐하는 악귀들이니, 절대 밑을 내려다보거나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발을 헛디뎌 강물 속으로 끌려들어가 영영 구천을 떠도는 악귀가 되어도 우리는 절대 구해줄 수 없다."

    사자의 차가운 경고에 농부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들의 뒤를 따라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지독한 한기가 영혼의 중심부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 한가운데로 접어들수록 수심은 깊어졌고, 끈적이는 강물은 마치 수천 개의 손이 다리를 휘감는 것처럼 무겁고 끔찍했다.

    "아이고! 내 새끼 두고 내 어찌 간단 말이오!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뜨거워! 살려줘! 누가 나 좀 여기서 꺼내주시오! 억울하다, 억울해!"

    사방에서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는 원귀들의 비명소리가 농부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앞만 보며 걷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때였다. 불쑥 강물 밑바닥에서 창백하고 뼈마저 으스러진 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억센 힘으로 농부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본 농부의 눈앞에, 반쪽 얼굴이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몰골의 원귀가 텅 빈 눈동자로 농부를 올려다보며 애원하고 있었다.

    "따뜻해... 이승의 냄새가 나... 나를 데려가 주오... 이 차가운 강물 속에 더는 있기 싫소... 당신의 그 따뜻한 몸뚱어리를 내게 다오!"

    원귀는 농부의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며 입을 쩍 벌렸고, 시궁창 냄새가 훅 끼쳐왔다.

    "으아아악! 이, 이거 놓으시오! 제발 저리 가란 말이오!"

    농부는 기겁을 하며 발버둥을 쳤고, 그 소란에 뒤를 돌아본 사자가 들고 있던 육모방망이를 거칠게 치켜들었다. 퍼억! 하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육모방망이가 원귀의 머리통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귀를 찢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원귀는 검붉은 핏물을 내뿜으며 다시 깊고 어두운 강물 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그 잔혹하고 끔찍한 광경에 농부의 심장은 멎을 듯이 요동쳤고 두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사자들은 마치 흔한 벌레 한 마리를 쫓아낸 듯 무심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쇠사슬을 거칠게 당기며 호통을 쳤다.

    "잔말 말고 앞만 보고 건너라 하지 않았더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저놈들과 함께 영원한 강물 속의 고기밥이 될 것이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는 내내, 농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지독한 공포와 살고 싶다는 본능만이 가득했다. 황천강의 썩은 물결을 지나 맞은편 잿빛 언덕에 다다랐을 때, 농부는 자신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세계, 저승 땅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았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 3: 지옥의 끔찍한 실상 목격

    황천강을 지나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 언덕을 넘자마자, 갑자기 하늘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며 시뻘건 불길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 타오르는 섬뜩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매캐한 유황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발을 딛고 있는 땅조차 마치 불에 달궈진 쇠판처럼 뜨거워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이곳이 바로 생전에 지은 온갖 죄업을 낱낱이 심판하고 그에 합당한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는 지옥의 초입, 형벌의 골짜기였다.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지옥도는 한낱 평범한 농부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고 기괴했다. 저 멀리 하늘 높이 솟구친 불기둥들 사이로 집채만 한 거대한 무쇠 가마솥 수십 개가 시뻘건 용암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뾰족한 뿔이 돋친 흉측한 옥졸들이 늘어서서, 사람들의 영혼을 긴 쇠스랑으로 찌르고 꿰어 가마솥 안으로 무자비하게 던져 넣고 있었다. 펄펄 끓는 기름과 쇳물 속으로 떨어진 자들은 살갗이 순식간에 벗겨지고 뼈가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죽지 못한 채,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귀를 찢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살려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제발 이 불 속에서 나를 꺼내주시오! 아이고 뜨거워라!"

    끝없이 메아리치는 처절한 울음소리와 비명에 농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지옥의 끔찍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자들이 거칠게 쇠사슬을 당겨 농부를 끌고 가는 길목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이 자행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칼날이 숲을 이룬 검수도산(劍樹刀山) 위를 알몸으로 오르게 하여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자들이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전에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은 자들을 기둥에 묶어놓고 옥졸들이 시뻘겋게 달군 쇳덩이로 그들의 혓바닥을 길게 뽑아내어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갈듯 찢어발기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처절한 단말마가 웅장한 교향곡처럼 지옥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기 저 불길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들을 보아라. 생전에 힘없는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이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탐욕스러운 자들이다. 저들은 저렇게 평생 구리 기둥에 묶여 살이 타고 뼈가 녹는 고통을 천 년 동안 겪어야 하지. 그리고 저쪽에서 톱으로 몸이 썰리는 자들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반목한 자들이다."

    저승사자가 무심하게 턱짓으로 지옥의 풍경을 가리키며 서늘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농부는 생전에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탐관오리들과 소작농의 쌀을 착취하던 악독한 지주들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혹시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은 작은 죄가 발목을 잡아 저 끔찍한 불구덩이에 던져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나, 나는... 나는 정말 억울하오! 나는 평생토록 배운 것 없이 농사만 지으며 개미 한 마리 함부로 죽인 적 없이 정직하게 살았소! 제발 나를 저런 끔찍한 곳에 던져넣지 말아 주시오! 우리 어머니를 두고 내가 어찌 저런 벌을 받는단 말이오!"

    농부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들바들 떨며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자, 사자 중 하나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놈의 죄가 얼마나 깊고 무거운지는 명부전의 대왕마마께서 명부를 보고 낱낱이 판단하실 일이다. 지옥의 형벌 구경은 여기까지 였으니, 이제 그만 입을 다물고 대왕의 지엄한 심판을 받으러 가자꾸나."

    사자들의 억센 손길에 이끌려 억지로 몸을 일으킨 농부의 시선 끝에, 저 멀리 솟아오른 거대한 잿빛 산맥 위로 하늘을 뚫을 듯 위압적인 자태를 뽐내는 검은 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붕의 기와는 흑룡의 비늘처럼 번쩍였고, 입구에는 산처럼 거대한 수문장들이 무시무시한 도끼와 창을 든 채 양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전각 안에서는 벼락이 치는 듯한 웅장하고도 끔찍한 호통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로 죽은 자들의 모든 죄업을 저울에 달아 심판하는 저승의 절대 군주, 염라대왕이 머무는 명부전(冥府殿)이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명부전의 거대한 문을 보며, 농부는 자신의 운명이 끝자락에 다다랐음을 직감하고 숨을 죽였다.

    ※ 4: 심판과 명부의 오류 발견

    명부전의 육중하고 거대한 흑단나무 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양옆으로 열렸다. 그 순간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이고도 무거운 기운에 농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천장에 닿을 듯 끝없이 높이 솟은 거대한 기둥들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흑룡과 기괴한 요괴들의 형상이 붉은 단청으로 끔찍하리만치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고, 전각 내부는 서늘하고도 음산한 푸른빛이 감도는 안개로 자욱하게 채워져 있었다. 사자들의 쇠사슬에 질질 끌려오던 농부는 텅 빈 전각의 한가운데로 매정하게 내동댕이쳐졌고, 그의 무릎과 이마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거칠게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전각의 가장 깊고 높은 곳,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매캐한 향 연기 사이로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어둠을 엮어 만든 듯한 칠흑의 용포를 두른 채 위압적으로 버티고 앉은 자, 바로 저승의 절대 주인이자 모든 죽은 자들의 죄업을 저울에 달아 심판하는 염라대왕이었다. 그의 두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시뻘건 횃불처럼 형형하게 타오르며 빛나고 있었고, 그 시선이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농부는 자신의 하찮은 영혼이 낱낱이 꿰뚫리고 찢겨나가는 듯한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염라대왕의 좌우로는 산더미처럼 쌓인 두꺼운 명부를 든 판관들이 창백한 얼굴로 도열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무시무시한 형벌 도구를 쥔 귀졸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어 털끝만큼의 자비나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 곳임을 짐작게 했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요리조리 눈을 굴리느냐! 당장 바닥에 납작 엎드려 대왕마마의 하해와 같은 지엄한 심판을 기다리지 못할까!"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옥졸의 끔찍한 호통에 농부는 혼비백산하여 바닥에 거머리처럼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웅크렸다. 이윽고 염라대왕이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굵고 장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전각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승에서 온 죄인 김 아무개는 똑똑히 듣거라. 너는 살아생전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오직 제 잇속만 챙기며 탐욕스럽게 살았다. 가난한 이웃의 밭을 억지로 빼앗아 눈물짓게 하였으며, 무엇보다 늙고 병든 부모를 모시지 않고 구박한 불효의 죄가 천지에 사무칠 만큼 무겁고도 깊다. 이에 명부에 적힌 저승의 율법대로 너의 명줄을 거두어, 저 지옥의 펄펄 끓는 뜨거운 기름 가마솥 속에서 천 년간 그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선고가 떨어지자마자 농부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심장이 멎는 듯했다. 불효라니? 이웃의 밭을 빼앗고 탐욕을 부렸다니? 평생토록 허리가 휘어지라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으로 살면서도, 늙은 노모의 봉양을 위해 제 입에 들어가는 쌀 한 톨조차 아끼고 희생했던 자신이었다. 가난한 이웃과 보리개떡 하나라도 나누어 먹으며 눈물겨운 정을 쌓아왔건만, 지옥에서 본 그 끔찍한 형벌들이 자신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에 공포를 넘어선 지독한 억울함이 목구멍을 타고 거칠게 치솟았다. 농부는 두려움도 죽음도 잊은 채 피가 나도록 이마를 대리석 바닥에 쾅쾅 찧으며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대왕마마! 억울하옵니다!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인은 평생토록 가난한 소작농으로 뼈 빠지게 흙만 파먹고 살며 남의 물건은 지푸라기 하나 탐낸 적이 없사옵니다! 홀로 계신 늙은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제 입에 들어가는 밥물조차 아끼며 병구완을 하였거늘, 어찌 소인에게 천인공노할 불효와 탐욕의 죄를 씌우신단 말씀이옵니까! 저는 이웃의 밭을 빼앗을 힘도, 재물도 없는 힘없는 촌부에 불과하옵니다! 이는 필시 무언가 큰 착오가 있는 것이옵니다! 제발 명부를 다시 살펴 주시옵소서!"

    농부의 처절하고도 피맺힌 절규에 전각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고, 염라대왕의 짙고 굵은 눈썹이 불쾌한 듯 꿈틀거렸다. 감히 지엄한 저승의 심판 앞에서 자신의 판결에 토를 달며 항변하는 영혼은 수백 년 만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은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옆에 서 있던 최 판관을 향해 싸늘하게 고갯짓을 했다.

    "저 미천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죽어서도 제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감히 대왕 앞집에서 거짓을 고하며 혓바닥을 놀리는구나. 당장 명부를 다시 펼쳐 저놈의 생년월일과 거주지, 그리고 생전의 행적을 낱낱이 소리 내어 읽어 저놈의 입을 다물게 하라!"

    최 판관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꺼운 명부의 책장을 황급히 넘기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넘어가는 서늘한 소리만이 텅 빈 전각 안을 위태롭게 채우던 중, 갑자기 판관의 손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우뚝 멈췄다. 글씨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판관의 안색이 순식간에 핏기가 가시며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명부를 덮고는 염라대왕의 발아래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대, 대왕마마... 크, 큰일 났사옵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명부에 적힌 죗값이 무거운 죄인 김 아무개는 윗마을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사는 부농(富農)이옵고, 사자들이 끌고 온 저 자는 아랫마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사는 가난한 소작농 김 아무개가 맞사옵니다! 이름 석 자와 태어난 해, 달, 날짜는 완전히 같사오나, 사는 곳과 신분이 전혀 다른 동명이인이옵니다! 사자들이 생년월일과 이름만 보고 윗마을 부자 대신 아랫마을의 엉뚱하고 무고한 생사람의 혼을 잡아 온 것이옵니다!"

    "무엇이라? 내 엄중한 명을 받드는 사자들이 감히 엉뚱한 자의 명줄을 끊어왔단 말이냐!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거리란 말이냐!"

    염라대왕의 분노 서린 일갈이 터져 나오자 명부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맹렬하게 흔들렸고, 천장의 단청에서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잘못 잡아온 사자들은 사색이 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고, 농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엎드린 채 서럽고도 기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다행이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내가 저 끔찍한 기름 가마솥에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구나. 불쌍한 우리 어머님과 불쌍한 내 처자식을 다시 볼 수 있겠구나!'

    "쯧쯧, 아무리 하루에도 수만 명을 거두어들이는 저승의 일이라도 어찌 이리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단 말인가. 무고한 자의 숨통을 끊어 끌고 와 저 참혹한 지옥의 풍경을 보게 했으니, 이 자가 겪었을 두려움과 절망이 얼마나 컸겠는가. 여봐라! 어서 저 자의 몸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당장 풀고, 단숨에 이승으로 다시 돌려보내도록 하라! 만약 저 자의 육신이 이미 썩어 문드러지거나 땅에 매장되어 혼이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면, 너희 사자들의 목을 베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처넣을 것이다!"

    염라대왕의 불호령이 떨어지자마자, 농부의 목과 손목을 뼛속까지 파고들며 옥죄고 있던 차가운 쇠사슬이 마치 환상처럼 거짓말같이 스르르 풀려 바닥으로 바스라져 내렸다.

    ※ 5: 이승으로의 귀환

    "서둘러야 한다! 이승의 육신이 완전히 온기를 잃고 딱딱하게 굳어 흙 속에 묻히기 전에 당장 혼을 밀어 넣어야만 해! 지체할 시간이 없다!"

    농부를 엉뚱하게 잡아와 염라대왕의 진노를 산 저승사자들은 이제껏 보였던 그 차갑고 거만하며 피도 눈물도 없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둥대고 있었다. 그들은 농부의 쇠사슬을 풀자마자 농부의 양팔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미친 듯이 이승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올 때 느꼈던 발바닥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나, 온몸을 옥죄던 황천강의 썩은 내를 느낄 새조차 없었다. 주변의 잿빛 안개와 기괴하고 참혹했던 지옥의 풍경들이 마치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로 스쳐 지나갔다.

    '내가 다시 살아난다! 이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지옥을 벗어나 다시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어서 빨리 가야 해, 가족들이 나를 묻어버리기 전에 어서 가야 해!'

    농부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듯한 엄청난 속도 속에서도, 오직 살아 돌아가겠다는 맹렬한 희망 하나만을 품고 사자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필사적으로 허공을 내달렸다. 차갑고 습한 저승의 공기를 뚫고 이승의 경계에 다다를수록 희미하게나마 따뜻한 뙤약볕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탁한 안개가 완전히 걷히면서 익숙하고도 그리운 고향 마을의 산천초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등줄기를 태우며 원망스러웠던 여름날의 뜨거운 풍경이, 지금 농부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 만큼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의 빛으로 다가왔다.

    사자들은 단 1초라도 지체할 틈 없이 농부의 혼을 질개끌듯 이끌고 그가 살던 아랫마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런데 집 안팎의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벌써 며칠의 시간이 흘렀는지, 마당에는 하얀 소창 천이 을씨년스럽게 쳐져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며 침통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얇은 칠성판 위에 누운 채 거적때기로 덮인 익숙한 자신의 몸뚱어리가 미동도 없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 곁에서는 굵은 삼베 상복을 입은 아내가 땅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피를 토하듯 통곡하고 있었고, 어린 자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목놓아 울부짖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노모는 이미 눈물조차 말라버린 채 혼절하여 방구석에 쓰러져 이웃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아이고, 여보! 이 야속한 양반아! 평생 남의 집 흙바닥에서 소처럼 일만 하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면, 남은 노모와 핏덩이 같은 자식들은 어찌 살라고 혼자 눈을 감았소! 차라리 나를 데려갈 것이지, 이 몹쓸 양반아!"

    아내의 애끓는 곡소리를 듣자 농부의 가슴이 수만 개의 바늘에 찔린 듯 미어지게 아파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눈물범벅이 된 아내의 어깨를 꽉 감싸 안고 내가 여기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왔노라, 울지 말라고 소리쳐 외치고 싶었지만, 온전한 영혼의 상태인 그가 이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간절한 손길은 아내의 몸을 마치 차가운 안개처럼 허무하게 통과해버릴 뿐이었다.

    "시간이 없다! 어리석은 미련을 버려라! 이미 염습(殮襲)이 끝나고 시신을 묶어 입관을 준비하려 하지 않느냐! 저 육신이 단단한 관 속에 들어가 무심한 쇠못이 박히는 순간, 다시는 혼이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사태가 다급해짐을 깨달은 저승사자가 농부의 등짝을 거칠고 억센 손으로 떠밀며 소리쳤다.

    "어서 저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어리 속으로 네놈의 혼을 던져 넣어라!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너는 돌아갈 곳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 악귀가 될 것이고, 우리는 염라대왕마마의 진노를 사 끔찍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어서 몸속으로 뛰어들어라!"

    농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누워 있는 싸늘한 육신을 향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몸을 날리는 순간, 마치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엄청난 흡인력이 그의 영혼을 맹렬하게 집어삼켰다. 깊고 어두운 심연의 물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듯한 지독한 어지러움이 덮쳤고, 이내 얼음장처럼 차갑고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육신의 감각이 전신을 빈틈없이 옭아매기 시작했다. 코끝으로는 그토록 끔찍했던 유황 냄새 대신 짙은 향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들어왔고, 귓가에는 아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수백 리 밖으로 아득하게 멀어졌다가 다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귓전을 강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분리되었던 영혼과 육신이 다시 하나로 억지로 얽혀 들어가는 그 뼈를 깎는 듯한 고통스러운 찰나의 순간, 농부는 온 힘을 다해 굳어버린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참았던 뜨거운 숨을 밖으로 토해냈다.

    ※ 6: 새로운 삶과 저승의 교훈

    "커으으윽! 허억, 헉! 후우욱!"

    죽은 자의 침묵만이 감돌던 방 한가운데, 칠성판 위에 눕혀져 있던 시신의 입에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거칠고 깊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얇은 하얀 소창 천이 풀무질을 하듯 크게 들썩이더니, 뻣뻣하게 굳어 핏기 하나 없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짚단을 움켜쥐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애끓게 울려 퍼지던 곡소리가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뚝 멎었고, 숨 막히는 정적이 초가집을 짓눌렀다. 울다 지쳐 넋을 놓고 있던 아내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 찢어질 듯 커졌고, 염을 돕기 위해 모여 있던 이웃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극도의 공포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어, 엄니! 아, 아부지 손이 움직였슈! 아부지 가슴이 뛴다구유! 아부지가 살아나셨나 봐유!"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쥐고 울던 어린 아들의 새된 외침에 사람들은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 염습까지 마친 시체가 살아났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자도 있었고, 사지가 마비된 듯 바닥을 기며 방문을 박차고 도망가는 자도 있었다. 아비규환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아내만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덮고 있던 하얀 천을 조심스럽고도 다급하게 걷어내었다.

    "여, 여보...? 당신 참말로 살아난 거요? 숨이 붙어 있는 거요? 귀신이 아니오?"

    농부는 천근만근 무거운 바위라도 얹어놓은 듯한 눈꺼풀을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들어 올렸다. 초점을 잃고 흐릿했던 시야가 서서히 맑아지며, 그 너머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애처로운 얼굴이 보였다. 코끝을 찌르던 지옥의 유황 냄새 대신, 가난한 초가집 특유의 퀴퀴하지만 포근한 흙내음과 마른 짚단 냄새가 폐부를 깊숙이 채웠다. 살아 돌아온 것이다. 염라대왕의 서늘하고 끔찍한 전각도, 끝없는 비명이 메아리치던 불지옥도 아닌, 그가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하던 가난하지만 따뜻한 자신의 이승 집이었다.

    "물... 시원한 물 좀 다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구나..."

    그의 쩍쩍 갈라진 쇳소리에 아내는 그제야 남편이 귀신이 아니라 진정 생명력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 돌아왔음을 깨닫고, 남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세상이 떠나가라 오열하며 그를 꽉 끌어안았다. 한바탕 이웃들이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는 큰 소동이 지나간 후, 농부는 아내가 먹여주는 미지근한 물로 마른 목을 축이고 까끌까끌한 미음을 몇 숟갈 넘기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방 안을 빙 둘러앉아 숨을 죽이고 자신을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과 훌쩍이는 가족들을 향해, 자신이 며칠 동안 겪은 끔찍하고도 기막힌 저승의 이야기를 천천히, 그러나 아주 생생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며 악귀들이 득실거리는 황천강의 썩은 물결, 살아생전 남의 것을 탐내고 이웃을 괴롭히며 악행을 일삼던 자들이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과 톱날 위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던 형벌의 골짜기의 참상, 그리고 자신을 부자 동명이인으로 착각하여 잘못 잡아갔다며 불호령을 치던 무시무시하고도 위압적인 염라대왕의 모습까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생하고도 소름 끼치는 지옥의 묘사에 마을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고, 깊은 공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비록 가난하여 가진 것은 낡고 흙 묻은 쟁기 하나뿐이나, 평생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정직하게 땀 흘려 살아온 것이 그 끔찍한 지옥을 벗어나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유일한 동아줄이었구나.'

    "이웃 여러분, 똑똑히 들으시오. 사람이 숨을 거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가고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었소. 저승의 심판은 우리 머리카락 한 올에 묻은 작은 죄악조차 결코 놓치지 않을 만큼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었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탐욕을 부린 자는, 그보다 천 배 만 배 끔찍한 고통을 죽어서 영원토록 받아야 합디다.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소. 우리가 이승에서 겪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 고단함은 저승의 형벌에 비하면 한낱 찰나의 가벼운 꿈에 불과한 것이오. 부디, 부디 남에게 베풀며 착하고 바르게들 사시오."

    농부의 피를 토하듯 간절하고도 서늘한 당부는 좁은 방 안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끔찍한 지옥을 목격하고 돌아온 농부의 기이한 이야기는 곧 바람을 타고 온 고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소문을 들은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악독한 지주들은 자신들이 죽어 겪게 될 끔찍한 형벌이 두려워 밤잠을 설치며 떨었고, 앞다투어 곳간을 열어 가난한 이를 구제하며 지난날의 악행을 참회하기 시작했다. 비록 억울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농부의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몸은 고단했지만, 그의 굽은 등과 흙투성이 얼굴에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깊은 평온함과 생에 대한 무한한 감사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떠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기적처럼 두 번째로 주어진 이 귀중하고 눈부신 이승의 삶을 감사하며 묵묵히, 그리고 바르게 가꾸어 나갔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천예록의 '죽었다 살아난 농부' 이야기, 어떠셨나요? 억울하게 끌려간 저승에서 마주한 끔찍한 지옥의 풍경과 준엄한 염라대왕의 심판이 서늘한 교훈을 안겨주는 야담이었습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더욱 기묘하고 재미있는 조선의 숨겨진 야사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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