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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얼굴 없는 지옥도, 진짜 범인은 / 지옥도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부제
절에 가면 한 번은 보았을 법하지만 돌아서면 이상하리만큼 기억나지 않는 지옥도. 조선의 한 화공이 빛바랜 그림을 복원하던 밤, 그림 속 저승사자가 걸어 나와 그에게 잊어버린 얼굴 하나를 찾아 달라고 한다.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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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절에 걸린 지옥도를 자세히 본 적이 있으십니까? 분명 혀를 뽑는 옥졸도, 불길 속 죄인도 보았는데 돌아서면 얼굴 하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그림은 죽은 자의 벌이 아니라, 산 자가 애써 잊어버린 일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1: 얼굴 없는 지옥도
늦가을의 해가 기울자 백운산 중턱의 귀명사에는 찬 안개가 내려앉았다. 낡은 풍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맑은 쇳소리가 빈 마당을 건너갔다. 한양에서 온 화공 윤서진은 법당 서쪽 벽 앞에 사다리를 세우고 빛바랜 그림을 올려다보았다.
그림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붉은 얼굴의 옥졸들이 죄인들을 끌고 다녔다. 불타는 수레와 얼음산, 칼날이 돋은 나무도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무서운 장면보다 이상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흐릿했다.
“스님, 이 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입니까?”
등불을 들고 있던 노승 혜각이 가늘게 눈을 떴다.
“백 년은 넘었을 게요. 절에 불이 두 번 나고 산사태가 세 번 났는데도 저 그림만은 살아남았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간신히 매달려 있는 듯합니다. 안료는 들뜨고 비단은 썩었습니다. 특히 가운데 죄인의 얼굴은 붓으로 지운 것처럼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공을 부른 것이 아니겠소.”
서진은 사다리를 내려와 안료 상자를 열었다. 주사와 석록, 황토와 먹을 가지런히 늘어놓았지만 선뜻 붓을 들지 못했다. 그림 한가운데 무릎을 꿇은 여인은 흰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쪽진 머리에는 나무비녀 하나가 꽂혀 있었다. 몸과 옷은 또렷한데 얼굴만 희뿌연 안개로 덮여 있었다.
“본래 얼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덧칠해서 지웠습니다.”
“그럴 리가.”
“먹빛 아래에 살색 안료가 남아 있습니다. 눈과 코가 있던 흔적도 보이고요.”
혜각은 등잔을 조금 낮추었다. 불빛이 흔들리자 그림 속 여인의 고개도 아주 조금 움직인 듯했다. 서진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여인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스님은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모르오.”
대답이 지나치게 빨랐다. 서진이 고개를 돌리자 혜각은 헛기침을 하며 법당 문밖을 바라보았다.
“절 아랫마을 노인들이라면 알지도 모르지. 하지만 괜한 것을 캐묻지는 마시오. 오래된 그림에는 오래된 사연이 붙고, 오래된 사연에는 대개 산 사람의 체면이 붙는 법이니.”
“그림을 고치려면 사연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 얼굴이나 그려 넣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얼굴은 그리지 마시오.”
“그러면 복원이 아닙니다.”
“내가 부탁한 것은 찢어진 곳을 잇고 색을 살려 달라는 것이오. 사라진 얼굴까지 불러오라는 뜻은 아니었소.”
서진은 혜각의 굳은 표정을 가만히 살폈다. 그때 법당 뒤쪽에서 무언가 긁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마른 붓이 비단 위를 지나가는 듯한 소리였다.
“절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산문을 닫았으니 우리 둘뿐이오.”
“쥐인가 봅니다.”
“이 절의 쥐는 붓을 들 줄 모르오.”
혜각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지 않았다. 그는 등잔을 서진에게 건네고 서둘러 법당을 나갔다.
“해가 지면 그림을 천으로 덮으시오. 자정 종이 울리기 전에 방으로 돌아가고.”
“밤에는 작업하면 안 됩니까?”
“저 그림은 밤눈이 밝소.”
혜각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서진은 피식 웃었다.
‘백 년 묵은 그림이 밤눈까지 밝다니, 산사에서는 바람도 도를 닦는 모양이군.’
그는 가는 붓에 미지근한 아교를 묻혀 들뜬 안료를 눌렀다. 염라대왕의 관을 고치고, 옥졸의 붉은 소매를 살리고, 무너진 지옥문 가장자리를 이어 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법당 안은 고요해졌다. 바람 소리조차 문턱 앞에서 멎은 듯했다.
그때 얼굴 없는 여인의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검은 물방울이 맺혔다. 먹물이 비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서진은 황급히 헝겊으로 받쳤다.
“이상하군. 마른 지 백 년 된 먹에서 물이 나오다니.”
손끝에 닿은 먹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먹물이 손바닥 위에서 가느다란 획으로 번지더니 글자 하나를 만들었다.
井.
우물 정 자였다.
서진은 놀라 손을 털었다. 글자는 곧 흐트러졌지만 손바닥에는 오래된 우물물 같은 냄새가 남았다. 눅눅한 흙과 이끼, 녹슨 쇠붙이의 냄새였다.
법당 바깥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내 어머니 얼굴을 보았소?”
서진은 붓을 떨어뜨렸다.
“누구냐?”
문을 열고 마당을 살폈지만 사람은 없었다. 안개 사이로 돌계단만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산문은 굵은 빗장으로 잠겨 있었다.
“장난하지 말고 나오너라.”
“얼굴을 찾으면 이름도 찾아 주시오.”
이번에는 법당 안에서 들렸다. 서진이 돌아보자 지옥도 아래에 작은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누런 저고리에 짧은 바지를 입었고, 머리는 조그맣게 상투를 틀었다. 아이의 맨발에서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서 들어왔느냐?”
“나는 들어온 적이 없소. 늘 여기에 있었소.”
아이가 지옥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림 한구석, 삼도천을 건너는 사람들 사이에 아이와 똑같은 옷차림의 작은 형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 속 아이에게도 얼굴이 없었다.
서진의 목덜미로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기억나지 않소.”
“어머니의 이름은?”
“그것도 모두가 잊었소.”
“모두라니?”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분명 보이는데 돌아서면 눈과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만난 사람처럼 윤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종이 세 번 울리기 전에 그림을 덮지 마시오. 덮으면 또 잊게 되오.”
“무엇을 잊는다는 말이냐?”
“우물에 버린 것을.”
멀리서 둔중한 종소리가 울렸다. 한 번이었다.
서진이 놀라 창밖을 보는 순간 아이가 사라졌다. 바닥에는 검은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지옥도 앞에서 시작해 법당 뒤편의 작은 문으로 이어졌다. 서진이 문을 열자 잡초에 파묻힌 산길과 돌로 막아 놓은 폐우물이 나타났다.
두 번째 종이 울렸다.
우물 위의 돌무더기 사이에서 붉은 댕기 한 조각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동시에 지옥도 속 저승사자의 검은 갓끈이 길게 늘어지더니 그림 바깥으로 천천히 흘러나왔다.
서진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림 속 저승사자가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윤서진, 붓을 놓지 마라.”
세 번째 종이 울리기 직전, 지옥도 전체가 검은 물결처럼 출렁였다.
※ 2: 그림 밖으로 나온 저승사자
세 번째 종소리가 산을 울렸다. 등잔불이 한꺼번에 꺼지고 법당 안은 먹물을 풀어 놓은 듯 어두워졌다. 서진은 더듬거리며 부싯돌을 찾았다. 그러나 손에 잡힌 것은 차가운 쇠사슬이었다.
철컥.
쇠사슬 반대편에서 낮은 한숨이 들렸다.
“산 사람 하나 데려가는 데 준비물이 어찌 이리 많은지.”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 두 송이가 피어났다. 불빛 아래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검은 갓을 눌러썼고, 한 손에는 쇠사슬을, 다른 손에는 두툼한 장부를 들고 있었다.
서진은 벽에 등을 붙였다.
“누구시오?”
“보면 모르겠느냐?”
“밤중에 남의 법당에 들어와 쇠사슬을 흔드는 사람을 어찌 압니까?”
“요즘 산 사람들은 눈치까지 장부에 적어 줘야 아는군.”
사내가 허리춤에서 나무패를 꺼냈다. 저승 차사라는 네 글자가 푸른빛으로 떠올랐다.
“저승사자?”
“놀라는 모양이 영 시원찮다.”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더 어떻게 놀랍니까?”
“비명이라도 한 번 질러야 내 체면이 서지.”
“스님이 주무시는데 소란을 피울 수는 없지요.”
저승사자는 장부에 무언가를 적었다.
“윤서진. 마흔둘. 직업은 화공. 겁은 많으나 예의는 있음. 죽을 때가 아닌데도 저승사자에게 말대꾸함.”
“죽을 때가 아니라면 이 쇠사슬부터 치우시오.”
“데려갈 사람에게 쓰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릴까 봐 내가 허리에 묶은 것이지.”
저승사자가 쇠사슬 끝을 들어 보였다. 끝에는 작은 술병이 매달려 있었다.
“저승에서도 술을 마십니까?”
“마시면 안 되니까 묶어 둔 것이다.”
서진은 기가 막혔지만 조금 전까지 얼어붙었던 숨이 풀렸다. 저승사자는 장부를 덮고 지옥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림 속 얼굴 없는 여인을 한참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이 그림을 누가 고치라고 했느냐?”
“귀명사의 혜각 스님이 부탁했습니다.”
“얼굴도 그리라 하더냐?”
“얼굴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산 사람은 참으로 영리해. 기억하고 싶은 것만 제사 지내고, 잊고 싶은 것은 귀신 탓으로 돌리지.”
“저 여인이 누구입니까?”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네 일이다.”
“나는 화공이지 포도청 군관이 아닙니다.”
“화공이기에 부른 것이다. 군관은 죄인을 보고, 화공은 얼굴을 보니까.”
저승사자는 그림 속 지옥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종이에 그려진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안쪽에서는 붉은 불길 대신 희뿌연 안개가 흘러나왔다. 멀리 수많은 등불이 강물처럼 이어져 있었다.
“들어가자.”
“어디를 말입니까?”
“그림 속.”
“사양하겠습니다.”
“염라대왕께서 기다리신다.”
“더욱 사양하겠습니다.”
저승사자는 장부를 펼쳐 서진의 이름 옆을 손톱으로 짚었다.
“지금 따라오면 구경이고, 훗날 따라오면 이사다. 어느 쪽이 좋으냐?”
서진은 그림 속 문과 쇠사슬을 번갈아 보았다.
‘구경이라지만 저승 구경을 다녀와 멀쩡했다는 사람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돌아올 수 있습니까?”
“해 뜨기 전에는.”
“해가 뜨면요?”
“절에서 네 장례를 준비하겠지.”
“그 말을 먼저 했어야 하지 않소!”
저승사자는 서진의 소매를 잡고 그림 속으로 성큼 들어갔다. 발밑이 꺼지며 몸이 허공으로 떨어졌다. 서진이 눈을 감았다 뜨자 법당은 사라지고 넓은 돌길이 펼쳐져 있었다.
길 양옆에는 죽은 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갓을 쓴 양반도 있었고, 지게를 진 농부와 쪽진 머리의 아낙도 있었다. 모두 조선의 한복 차림이었으나 옷자락은 안개처럼 희미했다.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울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어떤 노인은 보따리에서 떡을 꺼내 옆 사람과 나누었고, 한 사내는 죽어서도 새치기를 하다가 옥졸에게 끌려 맨 뒤로 갔다.
“저승은 생각보다 조용하군요.”
“산 사람들이 지옥도를 너무 요란하게 그려 놓았지. 하루에도 수천 명씩 들어오는데 계속 소리 지르면 관리들이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
“불구덩이와 칼산은 없습니까?”
“있기는 있다. 다만 먼저 장부부터 확인한다. 억울한 사람을 불구덩이에 넣었다가 꺼내려면 시말서를 열 장이나 써야 하거든.”
돌길 끝에는 검은 강이 흘렀다. 강가의 주막에서는 흰머리 노파가 뜨거운 숭늉을 나눠 주고 있었다. 서진이 가까이 가자 노파가 빈 그릇을 내밀었다.
“산 사람은 마시면 안 된다.”
저승사자가 막아섰다.
“목이 마른데 한 모금만 마시면 안 됩니까?”
“망각의 강물로 끓인 숭늉이다. 마시면 네 이름부터 잊는다.”
노파가 껄껄 웃었다.
“이름을 잊으면 편하지. 빚쟁이도 못 찾고 원수도 못 찾으니.”
“원수만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집도 못 찾을 것 아닙니까?”
“눈치는 있네. 그냥 냄새만 맡고 가.”
구수한 숭늉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 향기 속에 오래전 어머니가 끓여 주던 아침밥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서진은 저도 모르게 그릇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강 건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마시면 어머니 얼굴을 잊어요.”
법당에서 보았던 아이가 나룻배 위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얼굴은 보이는 듯하다가 흐려졌다. 아이는 붉은 댕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그림 속 여인이냐?”
“그랬던 것 같소.”
“어째서 기억하지 못하지?”
“마을 사람들이 잊을 때마다 나도 조금씩 잊었소.”
사공이 노를 저었다. 나룻배가 강 건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서진이 뒤따라가려 하자 저승사자가 팔을 붙잡았다.
“저 아이는 죽은 지 삼십 년이 넘었다.”
“어머니는요?”
“장부에는 없다.”
“죽었다면 장부에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가 온 것이다.”
두 사람은 강을 건너 거대한 성문 앞에 도착했다. 문 위에는 업경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문지기 옥졸이 서진을 보더니 기다란 붓을 들이밀었다.
“죽은 자는 이름을 대라. 산 자는 들어온 까닭을 대라.”
“저도 모릅니다.”
“까닭 없음.”
옥졸이 나무패에 그렇게 적으려 하자 저승사자가 붓을 빼앗았다.
“지옥도의 잃어버린 얼굴 때문에 왔다.”
옥졸의 표정이 굳었다.
“또 그 얼굴이오?”
“전에도 누가 왔습니까?”
서진이 묻자 옥졸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승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몇 명이나 왔지?”
“삼십 년 동안 열일곱 명이 왔소. 승려도 왔고, 화공도 왔고, 마을 원로도 왔지.”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돌아갔소.”
“그렇다면 얼굴을 알아낸 사람도 있겠군요.”
옥졸은 대답하지 않고 성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산처럼 쌓인 장부와 수백 개의 거울이 늘어서 있었다. 거울마다 산 사람들의 지나간 일이 소리 없이 비쳤다.
가장 큰 거울 앞에 혜각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진은 숨을 삼켰다.
“스님?”
혜각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손에는 지옥도를 덮으라며 건넸던 천이 들려 있었다.
“오지 말라고 했거늘.”
“스님이 어째서 저승에 계십니까?”
“나는 죽은 적이 없네.”
“그럼 저처럼 불려온 것입니까?”
혜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삼십 년 전부터 이곳을 떠나지 못했네.”
그 순간 수백 개의 거울에 같은 장면이 비쳤다. 비 내리는 밤, 우물가에 모인 마을 사람들, 포승줄에 묶인 여인, 울면서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아이.
그러나 여인의 얼굴만은 모든 거울에서 하얗게 비어 있었다.
※ 3: 염라전의 빈 장부
북소리가 세 번 울리자 업경전의 문이 열렸다. 거울에 비치던 장면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산처럼 쌓인 장부들이 스스로 펼쳐졌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넓은 전각을 채웠다.
전각 가장 높은 자리에는 검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다. 붉은 관복 위에 금빛 띠를 두르고 있었지만, 책상에는 위엄과 어울리지 않게 장부와 붓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음.”
뿔 달린 옥졸 하나가 장부를 읽었다.
“김억복, 평생 이웃집 닭을 자기 닭이라 우긴 죄가 스물한 번입니다.”
염라대왕이 이마를 짚었다.
“닭은 몇 마리였느냐?”
“한 마리인데 스물한 번 우겼습니다.”
“닭 한 마리로 장부를 세 장이나 쓰게 하다니. 닭에게 사과하고 저승 닭장 청소를 스무 날 시켜라.”
“한 번이 모자랍니다.”
“마지막 하루는 달걀을 돌려주지 않은 벌로 남겨 둬라.”
옥졸이 죄인을 데리고 나가자 염라대왕은 서진을 바라보았다.
“산 자가 왔구나.”
서진은 급히 무릎을 꿇었다.
“한양의 화공 윤서진이 염라대왕을 뵙습니다.”
“네가 윤서진이냐? 그림은 제법 그린다더구나.”
“제 그림을 보셨습니까?”
“죽은 화공들이 여기서도 서로 잘 그렸다고 다투니 보기 싫어도 보게 된다. 누구는 산수에 뛰어나다 하고 누구는 호랑이 털을 잘 그린다며 백 년째 싸우고 있지.”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다. 죽은 자라면 무릎 꿇기 전에 장부부터 내밀었을 것이다.”
염라대왕이 손을 내밀자 서진 앞에 낡은 장부 한 권이 떨어졌다. 표지는 젖었다 마른 듯 울퉁불퉁했고, 가운데에는 백운산 귀명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서진이 장부를 펼쳤다. 삼십 년 전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했으나 한 장만 텅 비어 있었다. 빈 종이 가운데 우물 정 자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저 페이지가 왜 비어 있습니까?”
“이름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저승의 장부에서도 이름을 지울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이 잊는다고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마을이 입을 맞추고,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고, 제사도 끊고, 무덤마저 없애면 이름이 흐려진다.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가 저승에 도착할 때 들고 오는 마지막 등불이니라.”
서진은 빈 장부를 만져 보았다. 종이 아래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염라대왕은 혜각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해라.”
혜각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상투를 틀고 푸른 도포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사내였다. 승려가 되기 전의 혜각이었다.
“삼십 년 전, 백운산 아랫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네. 논은 갈라지고 우물까지 말랐지. 그래도 마을의 대지주 조만석 집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했네.”
“조만석이라면 귀명사에 시주를 많이 한다는 그 어른입니까?”
“지금은 아들 조태근이 재산을 물려받았지. 만석은 흉년에도 쌀을 내놓지 않았네. 오히려 값이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한 되에 세 배를 받았어.”
거울 속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빈 바가지를 들고 조만석의 대문 앞에 모였다. 하인들은 몽둥이로 사람들을 밀어냈다. 그때 쪽진 머리에 나무비녀를 꽂은 여인이 앞으로 나왔다. 여인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역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 여인은 조만석 집의 곳간지기였네. 남편을 일찍 잃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살았지. 어느 밤, 곳간 문을 열어 굶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네.”
서진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도둑으로 몰렸겠군요.”
“조만석은 곡식을 나눠 준 죄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했네. 여인은 그가 관아에 바쳐야 할 구휼미까지 숨겨 팔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
거울 속 조만석이 여인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죄를 인정하면 아들은 살려 주겠다는 몸짓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마을 사람들은 곡식을 받아먹고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네. 조만석은 여인이 곳간에 불을 지르고 금붙이를 훔쳤다고 거짓말했어. 관아에 넘기면 장부가 드러날까 두려워 마을에서 몰래 벌을 내렸지.”
“우물에 버렸습니까?”
혜각의 어깨가 떨렸다.
“돌을 매달아 폐우물에 넣었네.”
서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스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까?”
“나는 조만석의 서기였어. 거짓 자백서를 쓴 사람이 바로 나였네.”
“그래서 출가한 것입니까?”
“죄에서 달아나려고 머리를 깎았지. 불경을 외우면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네. 하지만 절에 들어온 첫날, 법당의 지옥도에서 그 여인의 얼굴을 보았어. 화공에게 부탁해 먹으로 얼굴을 덮은 것도 나였네.”
혜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네. 그림에서 얼굴을 지운 뒤 여인의 이름까지 기억나지 않았어. 나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그랬지. 분명 함께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름도, 목소리도, 얼굴도 사라졌네.”
“아이도 우물에 버려졌습니까?”
“아이는 달아났네. 어머니를 구하려 산길을 뛰어 내려가다가 폭우에 휩쓸렸지.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서진은 법당에서 만난 아이가 들고 있던 붉은 댕기를 떠올렸다. 아이는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찾아 달라고 했다.
“스님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이제까지 밝히지 않았습니까?”
“조만석의 아들이 절과 마을을 먹여 살리고 있네. 그 집에서 곡식을 끊으면 늙은 사람과 아이들부터 굶게 돼. 나는 또다시 겁을 냈지.”
“남을 살리기 위한 침묵이라고 생각했습니까?”
혜각은 대답하지 못했다.
염라대왕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전각이 쿵 하고 울렸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산 사람은 침묵에 좋은 이름을 붙이길 좋아한다. 가족을 위해서, 마을을 위해서, 이미 지난 일이어서.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자에게 지난 일이란 없다.”
저승사자가 빈 장부를 집어 서진에게 건넸다.
“해 뜨기 전까지 여인의 이름을 찾아 적어야 한다.”
“이름을 어떻게 찾습니까?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이름은 입으로만 남지 않는다. 손때 묻은 물건에도 남고, 밟고 살던 땅에도 남고, 끝내 전하지 못한 말에도 남는다.”
염라대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세 개의 물건이 허공에 나타났다. 부러진 나무비녀, 붉은 댕기, 그리고 절반이 타버린 곡식 장부였다.
“이 세 가지가 산 자의 세상에 남아 있다. 비녀는 우물 아래에, 댕기는 아이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장부는 죄를 지은 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다.”
“모두 찾아야 합니까?”
“이름은 세 조각으로 흩어졌다. 하나라도 빠지면 장부에 적을 수 없다.”
서진은 세 물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찾으면 그 여인은 어떻게 됩니까?”
“비로소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심판은 벌을 주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억울함을 풀고 길을 열어 주는 일도 심판이다. 저 여인은 이름이 없어 삼십 년 동안 저승 문턱에도 들어오지 못했다.”
“찾지 못하면요?”
염라대왕 뒤편의 거대한 거울에 귀명사의 지옥도가 떠올랐다. 그림 가장자리부터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얼굴 없는 여인은 완전히 사라진다. 아이도 어머니를 기다리며 망각의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옥도에 남은 빈자리에는 진실을 알면서 침묵한 자의 얼굴이 들어가겠지.”
거울 속 빈 얼굴이 천천히 혜각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 서진의 얼굴로 바뀌었다.
서진은 놀라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 제 얼굴이 들어갑니까? 저는 오늘 처음 들은 일입니다.”
“오늘 들었으니 이제는 아는 자가 되었다.”
염라대왕의 말이 전각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르고 지나친 죄보다 알고도 외면한 죄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첫닭이었다. 해 뜨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그림으로 돌아가는 문을 열었다.
“선택해라. 지금 돌아가 붓을 놓으면 오늘 일을 꿈으로 잊게 해 주마. 대신 지옥도의 빈 얼굴이 누구로 채워질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서진은 빈 장부를 품에 넣었다.
‘나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다. 남의 죄를 밝혀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저 얼굴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면, 앞으로 그리는 모든 눈이 나를 바라볼 것이다.’
“갑시다.”
“어디로?”
“우물로 가야지요. 화공은 빈 얼굴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저승사자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좋다. 다만 서둘러라. 산 자들이 감춘 것은 귀신이 감춘 것보다 찾기 어려우니.”
문을 나서기 전, 서진은 혜각을 돌아보았다.
“스님도 함께 가셔야 합니다.”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네.”
“그럼 기다리십시오. 이번에는 얼굴을 지우는 먹이 아니라, 이름을 되살리는 먹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순간 빈 장부 한가운데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번지는 물자국 속에서 희미한 글자의 첫 획이 나타났다.
위쪽은 풀 초 자처럼 보였고, 아래쪽에는 달 월 자의 흔적이 있었다.
저승사자가 그 글자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저 이름…… 내가 본 적이 있다.”
“어디에서 말입니까?”
“저승 장부가 아니다.”
그의 시선이 절반 타버린 곡식 장부로 향했다.
“삼십 년 전, 산 자의 사망 명부에서 지워진 이름이다.”
두 사람이 문을 통과하자 지옥문이 닫혔다. 다시 귀명사 법당으로 돌아온 서진 앞에서 지옥도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림 속 얼굴 없는 여인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법당 뒤편의 폐우물을 가리켰다.
우물 밖에서는 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해가 뜨기 전에 우물을 완전히 메우고 있었다.
※ 4: 우물 아래 감춰진 이름
서진과 저승사자가 법당 뒤편으로 달려 나갔다. 새벽 안개 속에서 횃불 세 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장정들이 폐우물 안으로 돌과 흙을 쏟아붓고 있었고,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사내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만석의 아들 조태근이었다.
“이 꼭두새벽에 절 우물은 왜 메우는 것이오?”
서진의 외침에 장정들이 삽질을 멈췄다. 조태근은 놀라는 대신 느긋하게 수염을 쓸었다.
“낮에는 절을 찾는 사람이 많아 일을 하기 어렵소. 오래된 우물에 아이가 빠질까 염려되어 메우는 것이니, 화공께서는 그림이나 살피시오.”
“삼십 년 동안 그대로 둔 우물을 하필 오늘 메우는 이유가 무엇이오?”
“삼십 년 동안 사고가 없었다고 내일도 없으리란 법은 없지.”
“우물 밑에 감추어 둔 것이 있겠지요.”
조태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한양에서 왔다는 화공이 남의 집안일까지 그려 보려는 모양이군.”
저승사자가 서진 옆에서 장부를 펼쳤다. 장정들은 그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저 사내의 남은 수명이 제법 길구나. 죄를 더 쌓을 시간이 넉넉하겠어.”
“지금 농담할 때요?”
“농담이 아니다. 장부 쓸 생각에 벌써 손목이 아프다.”
서진은 우물 앞으로 다가갔다. 장정 하나가 삽을 가로막았다.
“비키시오. 절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이오.”
“누구의 허락이오?”
“혜각 스님의 허락이지.”
“그 스님은 지금 대답할 수 없는 곳에 계시오.”
조태근이 손짓하자 장정 둘이 서진의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산사의 종이 저절로 울렸다. 우물 속에서 찬바람이 솟구쳤고, 횃불이 모두 꺼졌다. 장정들은 귀신이 나왔다며 서로를 밀치다가 돌계단 아래로 달아났다.
조태근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나 애써 자리를 지켰다.
“이런 요사스러운 짓으로 나를 겁줄 수 있을 것 같으냐?”
“겁을 주는 것은 내가 아닌 듯하오.”
우물 속에서 여인의 낮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였다. 조태근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 노래를 어떻게…….”
“알고 있군요.”
“모른다.”
“아버지에게 들었습니까?”
“시끄럽다!”
조태근이 서진을 밀치고 달아났다. 허리춤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떨어졌지만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열쇠에는 조씨 가문의 매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서진은 밧줄을 허리에 감고 우물 아래로 내려갔다. 저승사자는 우물 가장자리에 앉아 장부만 넘겼다.
“같이 내려오지 않소?”
“나는 높은 곳도 무섭고 깊은 곳도 무섭다.”
“저승사자가 겁이 많군요.”
“죽지 않으니 더 조심하는 것이다.”
우물 벽은 물기와 이끼로 미끄러웠다. 바닥 가까이에 이르자 돌 사이로 붉은 천 조각이 보였다. 서진이 흙을 걷어 내자 녹슨 쇠고리에 묶인 밧줄과 작은 나무비녀가 드러났다.
비녀 끝에는 草 자가 새겨져 있었다.
“풀 초 자입니다.”
위에서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이름의 첫 조각이구나.”
그때 서진의 손끝에 사람의 손가락뼈가 닿았다. 그는 숨을 멈추고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 냈다. 유골은 무거운 돌에 묶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께에는 낡은 염낭이 남아 있었다.
서진이 염낭을 열자 곡식 몇 알과 작은 목패가 나왔다. 목패 한쪽에는 어린아이의 어설픈 글씨가 칼로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 초…….
나머지는 썩어 알아볼 수 없었다. 서진의 눈앞이 갑자기 흔들렸다. 비 내리던 밤, 차가운 손이 자신의 등을 떠미는 광경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동아, 달아나거라. 뒤돌아보지 마.”
여인의 목소리였다.
서진은 우물 벽을 움켜쥐었다.
‘방금 누구의 기억을 본 것이지?’
그가 유골과 비녀를 천에 싸서 올라오자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서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아이를 동이라고 불렀소.”
“그 아이 이름이 동이였던 모양이군.”
“그런데 마치 내가 그 아이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저승사자의 장부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윤서진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글자가 잠시 떠올랐다.
조동.
저승사자는 급히 장부를 덮었다.
“다음 물건부터 찾자.”
“방금 무엇을 본 것이오?”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내 장부에 다른 이름이 있었지요?”
저승사자는 대답하지 않고 산길 아래를 가리켰다. 골짜기 너머 숯가마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다. 붉은 댕기가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숯가마로 향했다. 버려진 가마 옆에는 등이 굽은 노인이 장작을 쪼개고 있었다. 서진을 본 노인은 도끼를 놓치고 입을 벌렸다.
“설마…… 동이냐?”
“저를 아십니까?”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서진의 왼쪽 귀를 만졌다. 귓불에는 작게 갈라진 흉터가 있었다.
“맞구나. 그날 계곡에서 건져 낸 아이야. 열병을 앓고 이름도 고향도 잊었지. 지나가던 화공 부부가 아이를 거두어 한양으로 데려갔어.”
서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자신을 길러 준 부모는 늘 길에서 버려진 아이를 데려왔다고만 말했다. 그 이상을 물으면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고, 아버지는 붓을 쥐여 주며 지난 일보다 앞으로 그릴 그림이 중요하다고 했다.
노인은 숯가마 벽의 돌 하나를 뽑았다. 그 안에서 빛바랜 붉은 댕기와 어린아이의 짚신 한 짝이 나왔다. 댕기 끝에는 고운 바느질로 月 자가 수놓여 있었다.
“달 월 자.”
초와 월. 잊힌 여인의 이름은 초월이었다.
서진이 댕기를 쥐는 순간, 닫혀 있던 기억이 물밀듯 돌아왔다. 어머니의 얼굴, 따뜻한 손, 쌀 한 줌을 아이에게 나눠 주던 미소가 선명해졌다.
“초월…… 내 어머니 이름은 초월이었소.”
붉은 댕기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때 산 아래 조씨 집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저승사자가 코를 찡그렸다.
“곡식 장부를 태우고 있다.”
서진은 비녀와 댕기를 품에 넣고 일어섰다.
“남은 이름 한 조각이 저 불 속에 있겠군요.”
“불이 장부를 삼키면 증거가 사라진다.”
“아니오. 삼십 년 동안 얼굴을 잊고 살았지만, 이제는 기억났습니다.”
서진은 어머니의 유골을 등에 단단히 멨다.
“이번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두고 달아나지 않을 것이오.”
※ 5: 산 자들이 만든 지옥
조씨 집의 곡식창고에서는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솟았다. 하인들이 우물물을 길어 나르는 척했지만, 물동이에는 물이 절반도 담겨 있지 않았다. 불을 끄는 시늉만 하며 오래된 장부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진은 창고 앞으로 달려가 조태근의 멱살을 붙잡았다.
“무엇을 태웠소?”
“불난 집에 뛰어들 생각이냐? 미치고 싶으면 혼자 미쳐라.”
“당신 아버지가 훔친 구휼미 장부요. 초월이라는 여인을 죽이고 빼앗은 곡식의 기록 말이오.”
초월이라는 이름이 울리자 마당에 모인 노인들이 술렁거렸다. 누군가는 놀라 입을 막았고, 누군가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잊힌 이름이 돌아오자 굳게 잠겨 있던 기억도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초월이라면 곳간을 지키던 그 과부 아닌가?”
“동이라는 아들도 있었지.”
“도둑질하고 달아났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우리 집에 쌀을 준 사람이 그 여인이었어.”
조태근이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저 화공을 당장 끌어내라! 죽은 아비를 모욕하는 자다!”
하인들이 다가왔지만 서진의 등에 싸인 유골을 보고 멈칫했다. 천 밖으로 나무비녀가 삐져나와 있었다. 늙은 아낙 하나가 비녀를 알아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만들어 준 비녀야. 초월이가 남편 제삿날 꽂겠다며 가져갔지.”
조태근은 발을 굴렀다.
“썩은 나무비녀 하나로 무슨 죄를 증명한다는 것이냐?”
“장부가 증명할 것이오.”
“장부는 불 속에 있다. 네가 가져올 수 있다면 가져와 보아라!”
창고 지붕이 무너지며 불티가 솟구쳤다. 저승사자가 서진 옆에서 혀를 찼다.
“나는 죽은 자만 데려간다. 불구덩이에 들어간 산 사람을 꺼내는 일은 맡지 않는다.”
“누가 함께 들어가 달랬소?”
서진은 물독에 몸을 적신 뒤 젖은 포목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저승사자가 그의 소매를 움켜잡았다.
“네가 죽으면 어머니 이름을 장부에 적을 사람이 없다.”
“저 안에 들어갈 문이 하나 더 있소.”
서진은 조태근이 떨어뜨린 열쇠를 꺼냈다. 매화 문양은 창고 옆 작은 사당의 자물쇠와 같았다. 불은 곡식창고에서 시작됐지만 연기가 사당 바닥 틈으로도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열쇠를 돌리자 사당 문이 열렸다. 안에는 조만석의 위패와 제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저승사자는 위패 뒤를 가리켰다.
“죄지은 자의 가장 가까운 곳. 죽은 뒤에도 제 이름 앞에 숨겼군.”
서진이 위패를 들어내자 벽 안쪽에 작은 철문이 나타났다. 철문 너머에는 곡식창고로 이어지는 비밀방이 있었다. 방 안에는 은전 상자와 땅문서, 절반 타버린 장부들이 쌓여 있었다.
조태근이 뒤따라 들어와 서진의 앞을 막았다.
“그것을 내놓아라.”
“그래서 우물을 메우고 창고에 불을 질렀소?”
“내가 벌인 일이 아니다. 모두 아버지가 한 짓이다.”
“그러면서 그 재산은 물려받았군요.”
“아버지의 죄까지 아들이 갚아야 하느냐?”
“죄를 물려받을 필요는 없소. 하지만 죄로 모은 재산을 지키려고 다시 죄를 짓는 순간, 그것은 당신의 죄가 되지.”
조태근은 숨겨 둔 몽둥이를 휘둘렀다. 서진이 몸을 피하자 몽둥이가 기름등잔을 쳤다. 불길이 비밀방 문을 막았다. 조태근은 은전 상자를 끌어안고 출구를 찾았지만 짙은 연기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살려다오! 은전은 모두 주겠다!”
“은전이 길을 알려 주지는 않소.”
서진은 조태근의 손에서 상자를 빼앗아 내던졌다. 뚜껑이 열리며 은전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는 조태근의 허리띠를 붙잡고 낮은 통로를 기어갔다. 뒤에서 불길이 따라붙었지만 두 사람은 무너진 벽의 틈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마당에 쓰러진 조태근은 기침을 하면서도 서진이 안고 나온 장부를 빼앗으려 했다. 그때 혜각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저승에서 돌아온 그의 얼굴은 하룻밤 사이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만하게.”
“스님은 우리 집의 은혜를 잊었소?”
“은혜라 부른 곡식이 누구에게서 빼앗은 것인지 이제야 똑똑히 기억났네.”
혜각은 마을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초월은 도둑이 아니오. 흉년 때 여러분에게 곡식을 나누어 준 사람이오. 나는 조만석의 명을 받아 거짓 자백서를 썼고, 초월을 우물로 끌고 가는 데 앞장섰소.”
마당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혜각은 품에서 삼십 년 동안 간직한 인장을 꺼냈다.
“거짓 자백서에 찍었던 내 인장이오. 관아에 가서 모든 죄를 고하겠소.”
서진은 불에 그을린 장부를 펼쳤다. 구휼미를 사사로이 팔아넘긴 날짜와 수량, 돈을 받은 관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삐뚤빼뚤한 필체로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초월은 곡식을 훔치지 않았다. 내가 시켜 굶주린 백성에게 내주었다.
아래에는 조만석의 동생 조만길이라는 이름과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조만길은 형의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달아났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증인이 있었군요.”
마을 원로 하나가 고개를 떨구었다.
“증인은 더 있었소. 우리 모두가 증인이었지. 하지만 쌀 한 말을 더 받겠다는 약속에 입을 다물었소.”
다른 노인이 눈물을 훔쳤다.
“초월이 준 쌀로 내 자식이 살았는데, 나는 그 여인이 끌려갈 때 문을 닫았어.”
“나도 그랬네.”
“우리도 죄인이야.”
조태근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지나간 일을 들추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 순간 산사의 종소리가 마을까지 내려왔다. 서진에게만 보이는 저승 문이 마당 한가운데 열렸다. 문 안에는 얼굴 없는 초월과 붉은 댕기를 든 아이가 서 있었다.
서진은 붉은 댕기를 높이 들어 보였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소. 하지만 우리가 기억을 돌려드릴 수는 있소.”
저승 문 앞의 아이가 서진을 바라보았다. 흐릿하던 얼굴이 어린 시절 서진의 얼굴로 변했다.
“아저씨가 나였구나.”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를 두고 도망친 것이 아니오. 어머니가 살라고 보낸 것이오.”
아이의 형상이 따뜻한 빛으로 흩어져 서진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잊고 있던 마지막 기억이 돌아왔다. 비 오는 산길에서 어머니가 아이의 손에 붉은 댕기를 쥐여 주며 웃고 있었다.
“동아, 살아서 내 이름을 불러 다오. 그것이면 된다.”
서진은 유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 초월의 이름을 불렀고, 다른 이들이 뒤따라 불렀다.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번질 때마다 지옥도의 빈 얼굴에도 눈과 코, 다정한 미소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장부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졌다.
해 뜨기까지 반 시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초월의 이름은 찾았지만, 저승의 빈 장부에 산 자의 증언이 적히지 않았다. 마지막 심판은 염라전에서 열어야 한다.”
※ 6: 기억하는 자의 극락
서진은 초월의 유골과 세 가지 증거를 품에 안고 귀명사 법당으로 돌아왔다. 조태근과 혜각, 그리고 사건을 기억해 낸 마을 노인들도 뒤를 따랐다. 동쪽 산등성이가 붉어지고 있었다.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옥도 앞에 서자 저승사자가 쇠사슬로 바닥을 세 번 쳤다. 그림 속 지옥문이 열리고 차가운 안개가 법당을 채웠다. 이번에는 서진뿐 아니라 진실을 기억한 사람들에게도 문이 보였다.
조태근은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저곳에 갈 수 없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오. 증언하러 가는 것이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인데 왜 내가 가야 하느냐?”
“당신은 우물을 메우고 장부를 태웠소. 아버지의 죄를 감추려 한 당신의 몫이 있소.”
혜각이 먼저 지옥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노인들도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뒤따랐다. 조태근은 달아나려 했지만 지옥도에서 뻗어 나온 검은 갓끈이 그의 발목을 감았다.
“산 사람을 쇠사슬로 묶지는 않는다더니!”
저승사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쇠사슬은 안 썼다. 갓끈이다.”
일행이 업경전에 들어서자 염라대왕 앞의 빈 장부가 저절로 펼쳐졌다. 서진은 나무비녀와 붉은 댕기, 불탄 곡식 장부를 차례로 올려놓았다.
“잊힌 여인의 이름은 초월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구휼미를 나누어 주었다가 도둑으로 몰려 죽었습니다.”
장부 위에 草月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초월의 이름 아래에는 아들 조동이라는 글자도 생겨났다. 곧 그 이름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와 윤서진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염라대왕이 서진을 내려다보았다.
“조동은 죽지 않았다. 계곡에서 구조되어 윤씨 화공 부부의 아들로 자랐구나. 너무 큰 공포 때문에 어린 시절을 잊었고, 마을 사람들이 초월을 잊으며 네 기억도 함께 잠긴 것이다.”
“그렇다면 법당에서 본 아이는 귀신이 아니었습니까?”
“네 안에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어머니의 얼굴을 찾을 때까지 망각의 강가를 헤매고 있었지.”
서진은 붉은 댕기를 가슴에 품었다. 평생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꼈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염라대왕은 혜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거짓 문서를 만들고 죄 없는 이를 죽음으로 몰았다.”
“어떤 벌도 받겠습니다.”
“벌은 죽은 뒤에 받으면 된다. 지금은 살아서 할 일이 남았다. 네가 쓴 거짓 글보다 더 많은 참된 글을 남겨라. 초월의 사연을 기록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절의 곡식을 나누어라.”
혜각은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남은 날을 모두 바치겠습니다.”
다음은 조태근이었다. 그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지키려 했을 뿐이오.”
염라대왕 앞의 업경대가 밝아졌다. 거울에는 조태근이 우물을 메우라 명하고, 장부에 불을 붙이고, 가난한 농부들의 땅을 빚 대신 빼앗는 모습이 차례로 비쳤다.
“사람은 누구나 조상의 것을 물려받는다. 밭도 물려받고 집도 물려받으며 좋은 이름도 물려받지. 그런데 죄로 얻은 재물은 받으면서 죄의 책임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구나.”
“그럼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는 것이오?”
“내놓을지는 네가 정해라. 저승은 산 자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네 선택이 장부에 그대로 적힐 뿐이다.”
조태근은 쌓여 가는 붉은 글씨를 보았다. 글자들은 뱀처럼 장부 위를 기어 그의 발밑까지 내려왔다. 그는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초월에게 빼앗은 곡식값과 그 돈으로 산 땅을 돌려주겠소. 흉년 때 땅을 잃은 집안에도 갚겠소.”
“말은 바람보다 가볍다.”
서진이 불탄 장부를 내밀었다.
“그러니 문서로 남기시오.”
염라대왕이 껄껄 웃었다.
“역시 화공보다 서기가 어울리겠구나.”
업경전의 긴장이 풀리며 옥졸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번졌다. 저승사자는 슬그머니 허리의 술병을 풀려다가 염라대왕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쇠사슬을 단단히 묶었다.
“초월을 들라.”
전각 문이 열리고 초월이 걸어 들어왔다. 지옥도에서 보았던 흰 저고리와 남색 치마 차림이었으나 이제 얼굴은 또렷했다. 서진의 기억 속 어머니와 똑같은 다정한 눈이었다.
“동아.”
서진은 마흔두 살의 사내가 아니라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어머니.”
“잘 자랐구나. 네 손에 사람의 얼굴을 살리는 재주가 생겼구나.”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살아 준 사람에게 늦었다고 말할 어미가 어디 있겠니.”
초월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길은 닿는 듯하면서도 봄바람처럼 지나갔다.
“나 때문에 원망만 품고 살지 마라. 곡식은 먹으라고 있는 것이고, 재주는 나누라고 있는 것이며, 기억은 미워하려고 남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남는 것이란다.”
염라대왕이 판결봉을 들었다.
“초월은 죄가 없다. 굶주린 백성을 살린 공덕으로 삼도천의 다리를 건너 편안한 길로 갈 것이다.”
전각 뒤편에 하얀 꽃이 핀 길이 열렸다. 초월은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았다.
“내 얼굴을 너무 예쁘게 그리지는 마라.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서진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주름 하나까지 그대로 그리겠습니다.”
“그건 또 너무 정직하구나.”
초월의 웃음소리가 꽃길 너머로 멀어졌다. 마지막 그림자가 사라지자 빈 장부가 금빛으로 빛나며 닫혔다.
서진과 마을 사람들이 법당으로 돌아왔을 때 아침 햇살이 지옥도를 비추고 있었다. 그림 속 불길과 칼산은 그대로였지만, 한가운데 초월의 얼굴이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벌받는 죄인이 아니라 굶주린 아이에게 쌀 한 그릇을 건네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뒤 조태근은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곡식창고를 마을 공동 곳간으로 내놓았다. 혜각은 초월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해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어 주었다. 서진은 귀명사에 머물며 낡은 지옥도를 새롭게 복원했다.
사람들은 불구덩이와 무서운 옥졸 앞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그림 한가운데의 쌀 한 그릇이었다.
누군가 서진에게 물었다.
“화공 어른, 지옥은 정말 저 그림처럼 생겼습니까?”
서진은 붓을 씻으며 미소 지었다.
“저승의 지옥은 염라대왕이 다스리니 억울한 사람을 다시 살핍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산 자들이 침묵으로 만드는 지옥이지요.”
“그럼 극락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진은 초월이 아이에게 쌀을 건네는 모습을 가리켰다.
“배고픈 이에게 밥 한 그릇 내어 주는 순간,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람이 불어 풍경이 맑게 울렸다. 지옥도 속 저승사자는 아무도 모르게 술병을 들어 보였고, 서진도 찻잔을 들어 답례했다.
그날 이후 귀명사의 지옥도를 본 사람들은 무서운 형벌보다 초월이라는 여인의 이름을 먼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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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에 그려진 가장 무서운 벌은 불길도 칼산도 아니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의 이름을 모두가 모른 척하며 지워 버리는 침묵이었지요.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남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해 주세요. 다음 야담에서도 따뜻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