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도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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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절 법당 한쪽 벽에 걸린 그 그림. 불길 속에서 울부짖는 죄인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형벌의 파노라마. 조선의 백성들은 그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며 다짐했습니다. 악한 마음을 먹지 않겠노라고. 욕망을 품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그 그림을 가장 오래, 가장 뜨거운 눈으로 바라본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지옥의 불길보다 더 뜨거운 것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여인들. 남편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정절이라는 이름의 형틀에 묶여, 숨쉬는 것조차 죄가 되는 삶을 견뎌야 했던 여인들. 그녀들에게 지옥도의 불길은 공포가 아니라 유혹이었습니다. 차라리 저 불길에 뛰어들면 이 차가운 방보다는 따뜻하지 않을까.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그 유혹에 응답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십 년을 돌부처로 살다가 담장 하나를 넘어 짐승처럼 뜨거워진 여인.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지옥도 한 장에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그 붉은 결말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 1 - 오프닝 이미지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산사의 밤, 낡은 전각의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산바람이 촛불을 위태롭게 흔들어댑니다. 불꽃이 허우적거릴 때마다 벽 위의 그림자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뒤틀고, 전각 안에는 종이와 먹과 오래된 향 냄새가 켜켜이 내려앉아 숨이 막힐 지경이옵니다. 그 희미한 빛의 경계 아래, 뼈마디가 굵은 늙은 화승 하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붓을 잡고 있습니다. 벼루에 갓 갈아낸 주사 물감은 붉고 진득하여, 마치 방금 살아있는 짐승의 목에서 뽑아낸 생피처럼 걸쭉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화승의 손끝이 떨립니다. 나이가 들어 떨리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려야 할 것의 무게가 손을 짓누르는 것이옵니다. 누런 종이 위에 붓이 닿을 때마다, 불길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죄인들의 형상이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살점이 타며 진물이 흐르는 몸뚱이, 칼날 위를 맨발로 걷다 뼈가 드러난 발바닥, 펄펄 끓는 가마솥 속에서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영혼들. 화승은 그 잔혹한 풍경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려 넣지만, 유독 한 곳에서 붓이 머뭇거립니다.
지옥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여인의 얼굴이옵니다.
'이 여인의 눈을 어찌 그리란 말이냐.'
화승의 독백이 전각 안에 메아리칩니다. 붓끝에 맺힌 주사 물감 한 방울이 똑, 종이 위로 떨어집니다. 붉은 핏방울이 여인의 눈가를 적시는 순간, 세상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돌아갑니다. 산사의 전각이 녹아내리고, 먹 냄새가 사라지고, 화승의 거친 숨소리가 멀어집니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규칙적인 바느질 소리입니다.
또각. 또각. 또각.
바늘이 질긴 천을 뚫고 지나가는 그 날카로운 소리가 적막 속에서 맥박처럼 울리고 있습니다. 조선의 어느 깊은 양반가 안방.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운 그곳에서, 한 여인이 미동도 없이 앉아 바늘을 놀리고 있습니다. 등 뒤로 켜놓은 등잔의 기름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창호지 너머로는 아직 어둠이 내려앉은 마당이 보입니다. 그녀의 손은 기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만, 벽에 비친 그림자는 지옥도의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처럼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습니다.
또각. 바늘이 천을 찌릅니다. 또각. 지옥의 형구가 죄인의 살을 관통합니다. 소리가 겹칩니다. 경계가 무너집니다. 이 여인의 바느질은 생활이 아니옵니다. 자신의 영혼을 한 땀 한 땀 꿰매어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두려는 최후의 저항이옵니다.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구나.'
여인의 독백에는 원망도, 슬픔도 없습니다. 오직 뼛속까지 스민 체념만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옵니다. 건넛방에서 사내의 코 고는 소리가 둔탁하게 새어 나옵니다. 술과 여인의 향이 뒤엉킨 채 잠든 남편. 그가 아내의 방으로 발을 옮긴 것이 언제였는지, 여인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이란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이방인. 아니, 이방인보다도 못한, 이름만 남은 빈 족자 같은 존재이옵니다.
바늘이 멈춥니다. 여인의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배어 나옵니다. 하얀 천 위에 붉은 점 하나가 번집니다. 그녀는 그 붉은 얼룩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마치 지옥도 위에 떨어진 화승의 주사 물감처럼, 그 작은 핏방울 하나가 조선이라는 거대한 질서의 감옥 안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여인의 비극적인 서막을 소리 없이 알리고 있습니다.
※ 2 - 주제 제시
사랑이 죄라면, 이 지옥도는 조선의 모든 뜨거운 심장을 거두어 기록한 슬픈 명부가 될 것이옵니다.
절 마당에 내걸린 지옥도 앞에서 백성들은 고개를 조아리고 두 손을 모읍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 던져진 영혼들이 하늘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그 그림 위로, 여인들의 한숨이 안개처럼 내려앉습니다. 죽어서 얻는 극락의 평온보다 살아서 느끼는 단 한 순간의 온기가 더 절실했던 여인들. 사람들은 말합니다. 법도를 어기고 욕망을 품은 자는 칼의 숲을 지나고 불의 강을 건너 영원한 고통에 빠질 것이라고. 혀를 길게 뽑혀 밭을 가는 발설지옥, 펄펄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지는 화탕지옥, 살이 무한히 찢기고 다시 붙는 도산지옥. 그 이름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형벌들이 열여섯 겹 지옥의 칸칸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서 겪는 지옥과 죽어서 가는 지옥 중에 어느 쪽이 더 잔혹한 것이옵니까.'
얼음처럼 차가운 방 안에서 스스로를 돌부처로 가두고 살아야 했던 여인에게, 지옥의 불길은 오히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따스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의 손길은 벌써 수년째 닿지 않고, 웃음소리는 기방에서만 울리며, 안방에는 오직 등잔 기름 타는 냄새와 바느질 소리만이 그녀의 벗이 되어주는 그 삶. 기방의 여인 냄새를 잔뜩 묻혀 온 남편의 저고리를 세탁하며, 자신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사랑의 향기를 비누물에 지우는 그 삶.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일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꽃처럼 피어날 수 있다면, 그 대가가 천 년의 형벌이라 해도 기꺼이 받겠다는 독한 맹세가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 조용히 일렁입니다. 세상이 규정한 범죄의 리스트가 지옥도의 칸칸을 채워갈 때,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도식 사이에서 오직 자신만의 사랑이라는 문장을 써 내려가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죄에 대한 기록이 아니옵니다. 가장 잔혹한 형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에 대한 증언이옵니다. 지옥도의 그림 속 여인은 울고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웃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옵니다.
※ 3 - 설정
십 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았습니다.
혼례를 올린 날, 그녀의 나이 열여섯이었습니다. 족두리 아래로 보이는 세상은 붉은 비단으로 가려져 있었고, 신랑의 얼굴은 초례청의 촛불 사이로 아련하게 비쳤습니다. 그때의 가슴 떨림이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킨 달콤한 전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떨림은 첫날밤, 남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등을 돌리고 잠들어버린 순간 씨앗째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그 후로 십 년.
그녀에게 허락된 세계라고는 사방이 막힌 안방의 네 벽과, 무겁게 내려앉은 가례의 전통뿐이었습니다. 아침이면 남편의 의복을 정돈하되, 그 옷에 밴 낯선 여인의 분 냄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낮이면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되, 살림의 공로는 오직 남편의 위세 덕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밤이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바느질에 몰두하되, 왜 기다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허망한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의 일상이 아니라, 서서히 풍화되어 가는 돌부처의 고행과도 같았습니다.
건넛방에서는 남편이 기방에서 데려온 여인과 웃음꽃을 피우며 술잔을 기울이는 소리가 담장을 넘었습니다. 기생의 가야금 소리에 맞춰 남편이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발자국 소리, 여인의 교성이 밤공기를 타고 안방까지 흘러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바늘을 놀렸습니다. 한 땀, 한 땀, 한 땀. 찌르고, 당기고, 매듭짓고. 마치 자신의 귀를 바느질로 꿰매어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처럼.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영혼은 지옥도의 가장 깊은 곳,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작은 숨소리조차 비명이 되는 한빙지옥처럼 서서히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화려한 비단 옷은 의복이 아니라 살아있는 육신을 짓누르는 수의에 가까웠습니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매일 같은 모양이었고, 마당의 나무들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녀의 시간은 십 년 전 혼례를 올리던 그날에 멈춰 있었습니다.
스물여섯. 아직 피지 못한 꽃이 시들어가는 나이.
시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여필종부라. 남편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아내는 안에서 덕을 쌓으면 그만이니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입술은 꿰맨 자리처럼 굳게 닫혔고, 가슴 한가운데 뚫린 구멍은 바느질로 메워지지 않는 채 점점 더 크게 벌어져만 갔습니다. 그 공허의 한복판으로 차가운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쳐 들어왔고, 그녀는 이제 추위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감각이 무뎌져 있었습니다.
십 년. 삼천육백오십 개의 밤을 홀로 보내며, 그녀는 자신이 사람인지 가구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4 - 사건 발생
그러던 어느 깊은 밤이었습니다.
유월의 공기가 축축하게 내려앉은 밤. 남편은 또 기방에 나가 빈자리를 남겼고,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잔 아래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늘이 천을 뚫는 소리. 등잔 기름이 타는 소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 그녀의 밤을 채우는 소리란 늘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적막을 깨고 들려온 것은 전혀 다른 소리였습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넛편 작은 초가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청아한 글 읽는 소리. 낮고 부드러운 남정네의 음성이 시 한 수를 읊고 있었습니다. 이백의 「월하독작」이었습니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함께할 벗 없이 홀로 마시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와 합하여 셋이 되었구나."
그것은 마치 한겨울의 단단한 얼음을 단번에 깨뜨리는 무거운 망치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한 음조, 시 구절의 가락에 실린 서글픔과 따스함이 뒤섞인 그 목소리는, 그녀의 굳어버린 심장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습니다.
바늘이 멈추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십 년간 죽어 있던 감각이라는 것들이 일시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습니다. 귀가 뜨거워졌습니다. 볼이 달아올랐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마그마처럼 들끓으며 치밀어 올랐습니다. 손에 쥔 바늘이 가늘게 떨리다 천 위에 툭 떨어졌지만, 그녀는 그것을 줍지 않았습니다.
'이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 내 가슴이 이토록 요란하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발이 먼저 움직인 것이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 그녀를 끌고 간 것이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달빛 아래 정적만이 가득한 마당으로 맨발을 내디뎠습니다. 차가운 흙이 발바닥에 닿았지만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직 담장 너머에서 흘러오는 그 목소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소리인 것처럼 그녀의 온 감각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담장에 다가섰습니다. 손바닥을 벽에 대었습니다. 차가운 돌담의 표면 너머로, 서생의 목소리가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녀의 등줄기가 서늘하게 저렸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법도가 금지한 달콤한 독이었으며,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서 온 초대장이었습니다.
'욕망.'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그 단어를 또렷하게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담장 아래, 무성한 수풀 사이로 가려져 있던 작은 개구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나 고양이가 드나들 만한 좁은 틈. 그 비루한 구멍이 그녀에게는 전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문이 되어, 달빛 아래 어둡게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 5 - 고민
치마폭을 움켜쥔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떨렸습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뛰쳐나올 것 같은 두근거림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동시에 그녀를 휘감았습니다. 한 발을 내딛으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옵니다.
'이 구멍을 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존경받는 양반가의 안주인이 아니게 되리라.'
지옥도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사음(邪淫)의 죄목 아래 그려진 여인들. 펄펄 끓는 가마솥의 화탕지옥에 던져져 살점이 벗겨지며 비명을 지르는 형상, 날카로운 칼날이 돋아난 산을 맨발로 걸으며 피를 흘리는 모습, 뜨겁게 달궈진 쇠기둥에 안겨 온몸이 지져지는 참혹한 광경. 어릴 적 절에서 본 그 그림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 그녀의 발목을 움켜잡았습니다.
가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옵니다. 삼백 년을 이어온 종가의 이름에 씻을 수 없는 먹칠을 한 년이라는 비난이 화살처럼 쏟아질 것이옵니다.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초리, 문중 어른들의 싸늘한 판결, 동네 여인네들의 수군거림. 그리고 들키는 날. 멍석말이 끝에 등뼈가 부러지거나, 차가운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자결을 강요받을 것이 자명했습니다.
'돌아가라. 제자리로 돌아가 바늘을 들어라. 그것이 네 분수니라.'
이성이 외칩니다. 교육이 외칩니다.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의 가르침이, 열녀문의 차가운 돌기둥이, 조선 오백 년의 예법이 그녀의 발을 붙잡고 끌어당깁니다.
하지만 그 순간, 담장 너머에서 다시 들려온 낮은 숨소리와 종이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온 영혼을 소용돌이처럼 끌어당겼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얼어 죽기 직전의 나그네에게 들려오는 화톳불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십 년이다. 십 년을 견뎠다. 그런데 앞으로도 십 년을, 이십 년을, 이 방에서 바늘만 쥐고 죽어가란 말인가.'
갈망이 공포를 눌러버린 순간이 왔습니다. 정절의 무게보다, 지금 당장 저 너머에 있는 한 인간의 온기를 만져보고 싶다는 갈증이 훨씬 더 무겁게 그녀를 짓눌렀습니다. 죽어서 가는 지옥이 무서워 살아서 지옥 같은 삶을 견디는 것이, 과연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옵니까.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습니다. 소리 없이. 십 년 동안 연습해온 소리 없는 울음으로. 그리고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 개구멍 앞의 차가운 진흙 위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의 생명과 처음 느껴본 심장의 고동 사이에서 격렬하게 흔들렸습니다.
달빛이 개구멍 위로 비스듬히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치 길을 밝혀주듯이.
※ 6 - 2막 진입
결국 그녀는 몸을 낮추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당의를 벗어 담장 아래 수풀 위에 던졌습니다. 속적삼 하나만을 걸친 몸으로, 차가운 흙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십 년간 얽매어온 조선의 모든 명분과 예법과 체면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처절하고도 거룩한 의식이었습니다.
좁은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축축한 흙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깨가 돌벽에 걸려 살이 쓸렸고, 뺨이 거친 돌 모서리에 긁혀 따가웠습니다. 손톱 밑에 흙이 파고들었습니다. 비단치마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무릎 아래로 찢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통보다 기묘한 해방감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개구멍을 기어가고 있구나.'
조선 최고의 양반가 종부가, 개와 고양이가 드나드는 구멍을 기어서 넘고 있다는 그 비루한 자각이 수치가 아니라 통쾌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십 년간 높은 상투관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교자상에 음식을 날랐던 그 격식의 무게가 진흙과 함께 벗겨져 나갔습니다.
구멍을 빠져나와 반대편 땅을 딛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이곳의 공기는 달랐습니다. 풀 냄새가 더 짙었고, 별이 더 가까이 보였고, 자신의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안방의 세계는 담장 저편으로 사라지고,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새로운 영토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유교적 덕목이 지배하는 이승의 거처를 떠나, 인간의 원초적 갈망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욕망의 망명지로 들어선 것이옵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을 넘었습니다. 돌아갈 길은 개구멍을 기어오는 그 순간 스스로 지워버린 것이옵니다.
흙 묻은 속적삼을 툭툭 털며 일어선 그녀의 눈앞에, 낮은 등불 아래 책을 읽던 서생의 방이 보였습니다. 창호지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 하나.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책장을 넘기는 형상. 그 그림자를 보는 순간, 그녀의 심장이 주먹처럼 쥐어짜이며 요동쳤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지옥의 입구에 들어선 망자처럼 온몸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태어난 아이처럼, 생전 처음 세상 빛을 마주한 갓난아이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진흙 묻은 맨발이 서생의 방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발자국 하나하나가 조선의 법도 위에 남기는 반역의 도장이었습니다.
※ 7 - B 이야기
서생의 방 안은 종이 냄새와 낡은 먹의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문을 열었을 때, 아니, 문을 열기도 전에 서생이 먼저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창호지에 비친 여인의 그림자를 보고 천천히 문을 밀어 연 서생의 눈과, 흙투성이 속적삼 차림으로 서 있는 그녀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멈추었습니다.
서생은 젊었습니다. 스물대여섯쯤 되었을까. 각이 진 턱선과 깊은 눈, 그리고 글을 많이 읽은 사람 특유의 맑으면서도 깊은 눈빛. 낡은 도포를 걸친 마른 어깨 위로 등잔불이 따스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여 이 양반가 옆 초가에 셋방을 얻어 글을 읽는 가난한 선비. 그것이 그녀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안방에서의 죽은 침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탐색하고, 서로의 영혼에 닿으려 애쓰는 팽팽한 긴장. 살아있는 침묵이었습니다.
서생은 그녀의 더럽혀진 옷자락과 긁힌 뺨, 손톱 밑에 끼인 흙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감춰진 그녀의 시린 영혼을 먼저 읽어내듯, 말없이 몸을 비켜 방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습니다.
그녀의 손이 차사발을 받았습니다. 손가락이 떨려 차가 흔들렸습니다. 서생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 위를 감싸 흔들림을 잡아주었습니다.
뜨거웠습니다.
십 년 만에 느끼는 타인의 체온. 남편의 손길도 아닌, 시어머니의 손길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온기. 그 따뜻함이 손끝에서 시작되어 팔을 타고, 어깨를 넘어, 가슴 한복판까지 밀려들어왔습니다.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목구멍이 조여왔습니다.
"울어도 됩니다."
서생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리 없이 울던 십 년의 버릇이 무너지며, 방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습니다. 서생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습니다. 거칠지 않게, 성급하지 않게, 마치 부서질 듯 여린 것을 다루듯이.
울음이 잦아들고, 차를 마시고, 서생이 나지막이 시를 읊어주었습니다. 업경대라는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죄가 낱낱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서생의 눈동자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고귀했습니다. 법도나 가문 같은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의 고독을 나누는 시간. 그것은 그녀가 살아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생의 손끝이 그녀의 거친 손등 위를 조심스럽게 스칠 때, 그녀는 십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살결이 얼마나 예민하고 뜨거운지를 깨달았습니다. 손등 위로 지나간 서생의 손가락 끝이 남긴 자리가 화인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서생의 손을 잡았습니다. 잡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지만,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생도 놓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손이 등잔불 아래서 포개져 있었습니다. 거칠고 마른 서생의 손과, 바느질로 굳은살이 박인 그녀의 손. 아름다운 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맞잡은 손이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유혹을 넘어선, 영혼과 영혼이 닿는 접점이었습니다.
※ 8 - 재미 구간
밀회가 반복될수록 그녀의 대담함은 날개를 단 듯 커져만 갔습니다.
매일 밤 자정이 넘으면 그녀는 소리 없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능숙해진 발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 아래 개구멍 앞에 섰습니다. 첫날밤의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 당의를 벗고 개구멍을 빠져나가는 그 비루한 의식이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일종의 환희, 전율이 되었습니다. 좁은 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속적삼 아래로 흙이 살결을 스치는 감촉조차 은밀한 쾌감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퍼졌습니다.
서생의 방문을 여는 순간부터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첫날은 손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어깨에 기대어 시를 들었습니다. 셋째 날, 서생이 그녀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대었을 때, 그녀의 온몸에 벼락이 친 듯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감각들이 한꺼번에 녹아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뒤로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서생의 입술이 이마에서 눈가로, 눈가에서 볼로, 볼에서 목덜미로 내려올 때마다 그녀의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습니다. 서생의 거친 손가락이 속적삼의 고름을 풀 때, 그녀는 몸을 움츠리면서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생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더 깊이 이끌었습니다. 하얀 속적삼이 어깨 아래로 미끄러지는 찰나, 등잔불에 비친 자신의 어깨 위로 서생의 입술 그림자가 내려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구나.'
서생의 손바닥이 그녀의 등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척추를 따라 한 마디 한 마디 세어가듯 느린 손길. 십 년간 누구도 만져주지 않았던 살결 위로, 서생의 체온이 강물처럼 흘러들었습니다. 그녀의 등 위에서 서생의 손가락이 한 글자 한 글자 시를 쓰듯 움직일 때마다, 입술 사이로 자신도 모르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십 년간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종류의 소리였습니다. 바느질하며 삼키고 삼켰던 한숨이, 비로소 살아있는 숨결이 되어 터져 나오는 소리.
지옥도 속에서 거짓말을 한 자의 혀를 길게 뽑아 밭을 간다는 발설지옥의 끔찍한 그림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혀로 서생의 이름을 부르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서생의 귓가에 닿는 그녀의 숨결은 조선의 그 어떤 시보다도 뜨겁고 절실했습니다.
법도라는 서슬 퍼런 칼날 위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듯, 두 사람의 몸은 금기된 열기로 매일 밤 달아올랐습니다. 서생의 입술이 쇄골을 지나 가슴 위를 훑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사회적 낙인들이 불길에 던져진 종이처럼 하나씩 타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생의 손이 치마 끈을 풀어 헤칠 때마다, 양반가 종부라는 껍데기가 한 겹씩 벗겨져 나갔습니다. 그 아래서 드러나는 것은 어떤 이름도, 어떤 신분도 아닌, 뜨겁게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의 벌거벗은 갈망이었습니다.
"죽더라도 꽃으로 피어보고 죽겠다."
이불을 끌어안은 채 서생의 가슴에 이마를 묻고 속삭인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서생의 품 안에서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임을 온몸의 세포로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서생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눈을 마주칠 때, 그 깊고 다정한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죄인이 아니라 사랑받는 여인이었습니다.
때로는 들킬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인의 기침 소리에 숨을 죽이고, 개구멍을 빠져나와 담장 아래 엎드려 심장이 터질 듯한 공포를 견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마저 그들의 밀회를 더욱 달콤하게 만드는 양념이 되었습니다. 금지된 열매는 달콤했고, 그 대가로 치러야 할 업보는 저 멀리 있는 환상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의 온기는 강렬했습니다.
※ 9 - 중간 전환점
하지만 달콤한 꿈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안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던 그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것도 한밤중에. 아내의 잠자리를 확인하려는 듯,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으로 방 안을 훑었습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잠든 척했지만,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남편에게 들릴까 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향 냄새였습니다.
서생의 방에 배어 있던 낡은 먹과 종이의 향. 그것이 그녀의 옷가지와 머리카락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남편의 코가 먼저 알아챈 것이옵니다.
"이 냄새가 무엇이냐."
남편이 그녀의 저고리 깃을 움켜쥐고 코를 박으며 물었을 때, 그녀의 피가 얼어붙었습니다. "등잔 기름이 새 것으로 바뀌어 그런 듯합니다." 거짓말이 입에서 굴러 나왔지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습니다. 남편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다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집 안의 공기가 변했습니다.
하인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빨래를 하던 비녀가 그녀의 속적삼에 묻은 흙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당을 쓸던 노비가 개구멍 근처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쪼그려 앉아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양반가의 일상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파멸의 징조가 독사처럼 고개를 들고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안방에 놓인 지옥도 병풍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음의 죄를 짓고 고통받는 여인의 형상이 그려진 그 칸. 어느 날 남편이 술에 취해 돌아와 그 병풍 앞에 서더니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이 지옥도 속 년의 상이 어찌 우리 집 안방 마님을 닮은 것 같느냐."
그녀의 심장이 바닥으로 꺼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비틀거리며 건넛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한마디가 귓속에 박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서생과의 밀회 중에도 그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고, 서생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온몸이 바늘방석에 앉은 듯 따끔거렸습니다. 사랑의 환희가 컸던 만큼,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의 농도도 짙어졌습니다.
남편의 의심은 횃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판 함정 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 10 - 위기 압박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양반댁 마님이 밤마다 담을 넘는다더라."
처음에는 속삭임이었습니다. 우물가에서, 빨래터에서, 장터의 구석진 곳에서 입술만 달싹거리며 오가는 말. 하지만 소문이란 것은 살을 먹고 자라는 짐승과 같아서,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붙고 꼬리가 달렸습니다. "개구멍으로 기어 넘어간다더라." "속적삼 바람으로 간다더라." "상대가 옆집 서생이래." 사실과 허구가 뒤엉킨 흉측한 이야기가 마을을 잠식해 갔습니다.
남편은 이제 대놓고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밥상을 뒤엎고, 사발을 집어 던지고, 안방의 문지방을 발로 걷어차며 포효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사나운 노비 셋을 불러 아내의 행적을 쫓도록 명했습니다. 그녀가 매일 밤 넘나들던 개구멍 주변에는 가시덤불이 촘촘히 설치되었고, 담장 밖에는 횃불을 든 보초가 서기 시작했습니다.
갈 수 없었습니다.
지옥도의 검수지옥처럼, 그녀가 딛는 모든 곳이 날카로운 칼날 숲으로 변해버린 듯한 압박감이 목을 조여왔습니다. 방문을 열면 노비의 눈이 번뜩이고, 마당에 나서면 하인들의 시선이 등에 꽂혔습니다. 남편은 지옥의 옥졸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안방 문 앞을 지키기 시작했고, 그녀는 자신의 방에 갇힌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생은 무사한 것인가. 혹시라도 해를 당하지는 않았는가.'
담장 너머에서 더 이상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서생이 도망친 것인지, 붙잡힌 것인지, 살아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불확실함이 칼날보다 깊이 가슴을 에었습니다.
밤마다 밖에서 횃불을 든 무리들이 이 잡듯 마을을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개 짖는 소리, 남정네들의 고함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가 담장을 넘어 안방까지 흘러들 때마다, 횃불의 불빛이 창호지를 붉게 물들일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바느질을 하려 해도 손이 떨려 바늘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바늘이 세 번째 손가락을 찔렀을 때, 그녀는 바늘을 내던지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차라리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
위기는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와 그녀의 가녀린 성벽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파도 자체가 아니라,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자신의 갈망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11 - 최악의 순간
결국 운명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보름달이 뜬 밤. 남편이 기방에 갔다는 하인의 귀띔을 듣자마자, 그녀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움직였습니다. 가시덤불을 맨손으로 헤치고, 손바닥이 찢어지는 고통도 아랑곳없이 개구멍을 빠져나갔습니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서생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서생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 얼굴은 수척해져 있었습니다. 그도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것이 역력했습니다. 서로를 본 순간,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녀가 서생의 품으로 안겨들었고, 서생의 팔이 그녀를 감쌌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붙잡고 떨었습니다. 기쁨인지 공포인지 분간할 수 없는 떨림이 두 몸을 관통했습니다.
서생의 입술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녀의 찢어진 손바닥 위로 서생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았습니다. 피 맛이 입술에 번졌지만 서생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서생의 저고리 고름을 잡아당겼습니다. 급하게,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두 사람을 휘감았습니다.
서생의 손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 속적삼을 밀어냈습니다. 달빛이 창호지를 통과해 그녀의 드러난 어깨 위에 은빛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서생의 입술이 그 은빛 위를 따라 쇄골을 지나 가슴 위를 훑어 내릴 때, 그녀는 서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목을 뒤로 젖혔습니다. 거친 숨이 서로의 숨결과 뒤엉켰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 해도 좋다. 이 순간만은.'
바로 그때.
쾅.
방문이 거칠게 부서졌습니다. 경첩이 뜯겨 나가며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횃불의 붉은 빛이 방 안을 순식간에 삼켰습니다. 남편이 서 있었습니다. 기방에 간 것이 아니라, 함정을 판 것이옵니다. 눈이 핏발이 선 남편 뒤로 몽둥이를 든 노비 대여섯이 방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네 이년! 감히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고 이따위 짓을 벌이느냐!"
남편의 포효가 벼락처럼 방 안을 울렸습니다. 서생이 그녀를 등 뒤로 감싸려 했지만, 노비들이 달려들어 서생의 팔을 비틀고 바닥으로 내팽개쳤습니다. 서생의 등 위로 몽둥이가 무자비하게 내리쳤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 서생의 이를 악무는 신음 소리.
"그만! 그만하시오! 이 사람은 잘못이 없소!"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머리채를 잡은 손이 그녀를 방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차가운 마당의 돌바닥 위에 내팽개쳐진 그녀 앞으로, 시어머니와 문중 어른들의 싸늘한 얼굴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횃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올랐고, 그 붉은 빛 아래 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가문의 수치로다. 은장도를 내려라."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칼날보다 차가웠습니다. 은장도 하나가 그녀의 무릎 앞에 던져졌습니다. 달그락, 차가운 금속이 돌바닥 위에서 울렸습니다.
서생의 신음 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녀는 무릎 꿇은 채,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으깨지는 과정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생지옥이었습니다.
※ 12 - 영혼의 밤
차디찬 광 안에 갇힌 그녀는 홀로 어둠을 마주했습니다.
광이라는 곳은 원래 곡식과 세간을 넣어두는 곳이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갇힌 것은 곡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이었습니다.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습니다. 은장도가 치마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허벅지를 통해 전해져 왔습니다.
먼지 쌓인 구석에 낡은 지옥도 한 장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쓸모없다 여겨 광에 처박아둔 것이었을 테지만, 달빛이 지붕 틈새로 스며들어 그 그림 위에 희미하게 내려앉았을 때, 그녀의 눈에 지옥도 속 죄인들의 형상이 들어왔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팔을 벌린 여인, 칼날 위를 걷다 쓰러진 사내, 혀가 뽑히는 고통에 입을 벌린 늙은이. 그 잔혹한 형벌의 파노라마가 달빛 아래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핏기 없는 얼굴로 그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죄인들의 표정이 고통만은 아니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길 속의 여인은 괴로워하면서도 어딘가 해탈한 듯한 묘한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으니 이 고통마저 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죄인이라 부르며 손가락질하지만, 어쩌면 그들 또한 자신처럼 단 한 번의 뜨거운 삶을 원했던 이들이 아니었겠습니까.
'남들이 말하는 죄라는 것이, 사실은 이 숨 막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했던 몸부림이었던 게지.'
그 깨달음이 어둠 속에서 등잔불처럼 켜졌습니다. 십 년간 죽어있던 인형으로 사느니, 단 하루를 죄인으로 살더라도 인간으로 죽겠다는 자신의 선택. 그것이 틀린 것이었는가. 아니. 그것이 틀렸다면, 그렇다면 옳은 것은 무엇인가. 넋이 빠진 인형처럼 바느질만 하다 방 안에서 늙어 죽는 것이 옳은 것이란 말인가.
은장도의 날을 달빛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반짝이는 칼날 위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습니다. 초췌하고 핏기 없는 얼굴. 하지만 그 눈만은 살아 있었습니다. 서생의 품에서 되찾은 생명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칼로 죽는 것은,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닌가.'
절망의 바닥을 찍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죽는 것은 도망이고, 사는 것이 싸움이라는 것을. 은장도로 자결하는 것은 남편에게, 가문에게, 조선의 법도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머리를 가다듬었습니다. 손톱 밑의 흙을 떼어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등을 꼿꼿이 세웠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 13 - 3막 진입
새벽이 밝아오자, 부인은 손에 쥐고 있던 은장도를 바닥으로 던졌습니다.
달그랑. 차가운 금속이 흙바닥 위를 굴러가 구석에 멈추었습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은 저들이 원하는 비겁한 해결책일 뿐이다. 나는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마치겠다.'
광 구석에 놓여 있던 물그릇에 손을 담갔습니다. 차가운 물이 찢어진 손바닥의 상처를 쓰렸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두 손으로 물을 떠 얼굴을 씻었습니다. 밤새 흘린 눈물의 자국, 마당에서 끌려다닌 먼지, 절망의 밤이 남긴 모든 흔적을 씻어냈습니다.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정갈하게 쪽을 지었습니다. 비녀가 없어 치마 끈을 뽑아 머리를 동여맸습니다. 볼품은 없었지만, 흔들리지 않는 의지만큼은 그 어떤 비녀보다 단단했습니다.
그리고 광 한쪽에 쌓여 있던 보따리 속에서 그것을 꺼냈습니다.
십 년 전 혼례 때 입었던 붉은 비단 활옷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다시는 입을 일 없을 것이니라"라며 광에 처넣었던 바로 그 옷. 먹이 죽고 주름이 잡혀 있었지만, 붉은 비단의 빛깔만은 세월이 바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그 옷을 펼쳐 입었습니다. 소매를 통과시키고, 깃을 여미고, 고름을 맸습니다. 흙 묻은 속적삼 위에 붉은 비단이 겹쳐지자, 거울이 없어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인의 수의가 아니라,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러 나가는 장군의 갑옷이라는 것을.
광 문 앞에 섰습니다.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녀의 처결을 기다리며 모여든 문중 어른들, 남편, 하인들, 그리고 구경꾼. 마당 가득 메운 차가운 시선들이 문 너머로 느껴졌습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옵니다. 무릎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떨리는 무릎에 힘을 주며 광 문을 스스로 밀어 젖혔습니다.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마당에 가득 선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놀라움, 분노, 조소, 연민. 온갖 표정이 뒤섞인 얼굴들 사이로, 남편의 핏발 선 눈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입술이 경멸로 비틀려 있었습니다. 문중 어른들은 팔짱을 낀 채 재판관의 위엄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십 개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그녀는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붉은 활옷이 아침 햇살에 타오르듯 빛났습니다. 두 걸음. 세 걸음. 마당 한가운데를 향해, 그녀는 위축되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이제 그녀는 지옥도의 칸에 갇힌 희생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집필하는 작가가 되어 최후의 무대로 나서고 있었습니다.
※ 14 - 결말
수많은 눈총과 수군거림 속에서, 부인은 남편의 코앞까지 걸어가 멈춰 섰습니다.
마당에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조차 멈춘 듯한, 숨 막히는 침묵. 남편의 눈이 그녀의 붉은 활옷을 보고 경악으로 벌어졌습니다. 혼례복이옵니다. 이 미친년이 혼례복을 입고 나왔단 말인가. 그 당혹감이 분노로 바뀌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나으리."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습니다. 맑고 또렷했습니다. 십 년간 쌓인 침묵을 깨는 첫 번째 말.
"당신이 강요한 십 년의 바느질보다, 내가 선택한 저 서생과의 하룻밤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소."
마당이 술렁거렸습니다. 감히. 감히 이런 말을.
"나를 지옥으로 보낸다 했소? 나는 이미 당신과 보낸 그 무덤 같은 방에서 십 년이나 지옥을 맛보았소. 한빙지옥이 따로 없었소."
남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손이 허리춤의 칼자루를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이 그 손을 공중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당신은 기방에서 기생의 치마를 들춰도 풍류라 하고, 첩을 셋이나 들여도 남자의 도리라 하였소. 허나 내가 단 한 사람을 사랑한 것은 지옥에 갈 죄라 하시오? 지옥도에 기록될 범죄라 하시오?"
여인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습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여인들의 입술이 달싹거렸습니다. 누군가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은장도를 던져주었지. 자결하여 수치를 씻으라고. 허나 나는 죽지 않겠소. 죽어서 당신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열녀가 되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소."
시어머니가 벌떡 일어섰지만, 부인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이자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지옥의 불길이 두렵지 않소. 나는 이미 그 불길 속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으니. 그러니 이제 나는 기꺼이 나의 불길 속으로 걸어가겠소."
그녀의 당당한 선언에 마당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칼자루를 쥔 남편의 손이 그녀의 서슬 퍼런 눈빛에 눌려 허공에서 멈추어 떨렸습니다. 그 눈 속에 비친 것은 미친 여인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각오로 무장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연못가에서 처음 서생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 밤, 가슴이 뛰기 시작하던 그 순간의 미소. 그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그녀는 횃불을 든 무리 사이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며 그녀의 길을 터주었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잡지 못했습니다. 잡을 수 없었습니다. 불길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을, 누가 감히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대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붉은 활옷이 빛 속에서 타오르듯 빛났습니다. 지옥도의 불꽃처럼. 하지만 그 불꽃은 형벌이 아니라 광배(光背)였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불길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죄인을 벌해야 할 자리에서, 벌을 주는 자들이 오히려 얼어붙어 버린 것이옵니다.
※ 15 - 마지막 장면
시간은 다시 흘러 고요한 산사의 새벽으로 돌아옵니다.
늙은 화승의 붓이 멈추었습니다. 벼루의 주사 물감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촛불은 마지막 심지를 태우며 간당간당 흔들리고 있습니다. 화승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완성된 지옥도를 내려다봅니다.
수많은 죄인이 고통에 울부짖는 참혹한 풍경. 화탕지옥의 끓는 가마솥, 도산지옥의 칼날 숲, 한빙지옥의 끝없는 얼음벌판. 하지만 그 지옥의 한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이 다릅니다.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 불길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발치에서는 연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녀를 감싼 불길은 형벌이 아니라, 부처의 등 뒤를 감싸는 광배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화승이 떨리는 손으로 붓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립니다.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니로다. 스스로 지옥을 선택하여, 그곳을 자신의 정토로 바꾸어 버린 것이로다."
창 밖에서 산사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맹, 맹, 맹. 깊고 둥근 종소리가 산골짜기를 따라 멀리멀리 퍼져갑니다. 전각 안의 촛불이 마지막으로 한 번 밝게 타오르더니 사그라듭니다. 어둠이 방을 채우지만, 지옥도 위의 여인의 미소만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종이 위에서 붉은 꽃이 되어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처럼.
지옥도 한 장에 조선의 범죄 리스트가 다 들어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이제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은 알게 될 것이옵니다.
그 리스트의 가장 밑바닥에는, 목숨과 바꾼 뜨거운 사랑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을.
산바람이 전각의 문틈으로 빠져나가며, 지옥도 위의 주사 물감 냄새를 산 아래로 실어 나릅니다. 그 붉은 향기는 새벽 안개에 섞여, 어딘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또 다른 여인의 코끝에 닿을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엔딩
지옥도 속 여인은 아직도 웃고 있습니다. 불길 한가운데서, 연꽃을 밟고 서서. 조선의 법도가 그녀를 죄인이라 불렀지만, 오백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법도가 아니라 그녀의 미소입니다. 사랑이 죄라면 기꺼이 지옥을 택하겠다던 그 한마디가, 종이 위의 붉은 물감보다 오래도록 살아남아 이 밤, 당신의 귓가에 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