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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문 앞에서 글을 읽는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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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골방에 틀어박혀 오직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만 읽던 고지식한 샌님 선비 강문수가 있었습니다. 세상 물정은 도통 모른 채 글공부에만 매진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과로로 요절하고 말았는데요. 사후세계로 끌려간 이 별난 선비는 무시무시한 불길이 치솟는 지옥문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서 책을 꺼내 유유히 글을 읽는 기행을 벌입니다. 선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낭랑한 글소리에 신비로운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와 지옥의 귀졸들마저 쩔쩔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마침내 저승의 최고 심판관인 염라대왕이 직접 나서게 됩니다. 과연 염라대왕은 죄 하나 짓지 않고 오직 글만 읽은 이 엉뚱한 선비에게 어떤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렸을까요? 유쾌한 해학과 가슴 깊은 깨달음이 있는 조선시대 저승 야담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1: 책갈피에 코를 박고 요절한 외고집 샌님 강문수

    충청도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에 강문수라는 서른 살 먹은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소문난 책벌레이자 고지식한 샌님이었습니다. 어찌나 책 읽기에만 빠져 있었던지,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소나기가 다 쓸어가도 책장 넘기는 손길 한 번 멈추는 법이 없었고, 지붕에 구멍이 뚫려 빗물이 방 안으로 줄줄 새어 들어와도 우산을 펴 들고 앉아 공자 말씀과 맹자 말씀만 외우는 위인이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늙은 노모가 홀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가세는 날이 갈수록 기울어 부엌의 쌀독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늙은 어머니가 남의 집 밭을 매어주고 얻어온 보리쌀 한 줌으로 겨우 멀건 죽을 쑤어 연명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어느 매서운 겨울밤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칼바람이 쌩쌩 불어 문풍지가 귀신 울음소리처럼 떨리고 있었지만, 강문수는 얇은 무명 도포 하나를 걸친 채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정좌하고 앉아 논어(論語)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습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암, 그렇고말고.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성현의 깊은 뜻을 깨우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때,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노모가 김이 희미하게 나는 멀건 시래기죽 한 사발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노모의 손등은 추위와 거친 노동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피가 맺혀 있었습니다.

    "아가, 문수야. 방이 왜 이리 냉골이냐. 아궁이에 넣을 장작이 다 떨어져 솔가리 몇 개만 겨우 지폈더니 온기가 돌지 않는구나. 얼른 이 죽이라도 뜨거울 때 한 술 뜨고 자거라. 그러다 정말 큰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강문수는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소자는 지금 옛 성현의 말씀 속에 담긴 천하의 이치를 깨닫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 와 있사옵니다. 공자님께서도 도를 깨우치기 전에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소자가 기필코 이 책만 다 읽고 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통달하여 나라의 큰 재목이 될 터이니, 먹는 것 따위로 소자의 공부하는 흐름을 끊지 말아 주시옵소서."

    '휴우, 저 녀석의 고집을 누가 꺾을꼬. 죽은 영감도 저리 책만 붙들고 앉아 있다가 젊은 나이에 가슴앓이로 세상을 뜨더니, 아들 녀석마저 제 아비 전철을 밟을까 봐 내 가슴이 다 타들어 가는구나.'

    노모는 차마 아들을 더 나무라지 못하고, 죽 사발을 방구석에 조용히 내려놓은 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방을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나가자 강문수는 다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사흘 밤낮을 잠 한 숨 자지 않고 물 한 모금으로 버텨온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눈앞의 검은 글자들이 개미 떼처럼 기어 다니며 흐릿해지더니, 강문수의 가슴속에서 갑자기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크윽...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직 대학(大學)의 마지막 장이 두 장이나 남았는데... 여기서 눈이 감기면 아니 된다. 성현의 말씀을 다 읽어야 하는데..."

    '아아, 내 평생 도둑질 한 번 하지 않고, 거짓말 한 번 입에 담지 않았으며, 오직 글만 읽으며 깨끗하게 살았는데 왜 이리 숨이 가빠오는 것인가. 조금만 더, 딱 한 줄만 더 읽으면 되는데...'

    결국 강문수는 그토록 아끼던 책 위에 코를 박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것으로 서른 해의 짧은 이승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가운 방 안에 스산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저승사자 강림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강림이 명부를 펼쳐 들고 죽은 강문수의 몸을 지팡이로 툭 치자, 강문수의 영혼이 스르륵 몸에서 빠져나와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죽은 육신을 보면 통곡하며 살려달라고 매달리기 마련인데, 강문수의 영혼은 자기 시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닥에 펼쳐진 책만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이런 변이 있나! 내가 그새 잠이 들었단 말인가? 아니, 왜 내 손이 책장을 통과하는 것이야!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하는데 왜 종이가 잡히지 않는단 말이냐!"

    어이가 없어진 저승사자 강림이 헛기침을 크게 하며 앞으로 나섰습니다.

    "에헴! 망자 강문수는 듣거라. 너는 이승에서의 명줄이 다하여 방금 숨을 거두었느니라. 나는 너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러 온 저승차사 강림이다. 미련을 버리고 어서 나를 따라나서거라."

    강문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저승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무서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눈을 반짝이며 자기 품속을 뒤적거렸습니다. 다행히 그가 평생 품에 안고 자던 작은 수첩 크기의 성현 어록집 한 권이 그의 영혼과 함께 따라와 품속에 들어있었습니다. 책을 확인한 강문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강림에게 정중하게 읍을 하였습니다.

    "아하, 귀공이 바로 옛 문헌에 기록된 명부의 사자이시군요. 반갑소이다. 소생이 과로하여 요절한 모양이나,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명이니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다만 소생이 아직 다 외우지 못한 구절이 남아 있으니, 저승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 책을 마저 읽으며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허허, 내 수천 년 동안 저승차사 노릇을 하며 울고불고 도망치는 놈, 뇌물 주겠다는 놈은 수도 없이 보았어도, 저승길에 책 읽으며 가겠다고 허락을 구하는 별난 샌님은 처음 보는구나!'

    강림은 기가 막혀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차피 순순히 따라오니 손해 볼 것은 없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음대로 하거라. 대신 저승길은 험하고 무서운 곳이니 걸음이 처지면 내 가차 없이 오라로 묶어 끌고 갈 줄 알아라!"

    "예, 사자 공의 배려에 감사하옵니다. 자, 그럼 어디 아까 읽던 대목을 이어서 봐야겠군.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그리하여 조선 팔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무시무시한 저승사자가 앞장서 걸어가고, 그 뒤를 갓 쓴 선비 영혼이 오라 한 줄 묶이지 않은 채 책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흥얼흥얼 글을 읽으며 소풍 가듯 유유자적하게 사후세계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 2: 삼도천 나루터와 지옥문 앞을 뒤흔든 낭랑한 글소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공포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늘은 피를 뿌려놓은 듯 검붉었고, 발밑에는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돋아나 있었으며, 사방에서는 이승에서 죄를 짓고 끌려온 망자들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이윽고 망자들이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넓고 검은 강, 삼도천 나루터에 도착했습니다. 강물 속에는 집채만 한 독사들과 아귀들이 입을 벌리고 우글거렸고, 나루터에 모인 수백 명의 망자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나 좀 살려주시오! 나는 못 건너가오!"

    "이 무서운 강에 빠지면 뼈도 못 추린다는데 어찌 건너란 말이냐!"

    망자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 강문수만이 나루터 구석에 얌전히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옆자리의 뚱뚱한 부자 망자가 강문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습니다.

    "이보시오, 선비 양반! 지금 눈앞에 저 끔찍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강물이 보이지 않소? 저승 뱃사공에게 줄 노잣돈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리 태평하게 책만 보고 있는 것이오?"

    강문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한 구절을 짚으며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어허, 시끄럽소이다. 옛 성현께서 이르시기를 군자탄탄(君子坦坦)이요 소인장척척(小人長戚戚)이라 하였소. 군자는 언제나 마음이 평탄하고 넓으나, 소인배는 늘 근심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이지요. 내가 평생 남의 물건 탐낸 적 없고,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인 적 없으며, 오직 성현의 도리만 닦았거늘 사후세계라 한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조용히 하시고 댁도 마음이나 어지럽히지 마시오."

    그 말에 부자 망자는 입을 떡 벌리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배에 올라타 강을 건너는 동안에도 배가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려 다른 망자들은 멀미와 공포에 바닥을 기었지만, 강문수는 배 한가운데 꼿꼿이 서서 흔들리는 장단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글만 외웠습니다.

    마침내 삼도천을 건너 염라대왕의 심판이 열리는 명부전 앞, 거대한 지옥문에 당도했습니다. 무쇠로 만들어진 백 척 높이의 지옥문 양옆으로는 시뻘건 불길이 화산처럼 솟구치고 있었고, 문 앞에는 소의 머리를 한 우두(牛頭) 귀졸과 말의 머리를 한 마두(馬頭) 귀졸 수십 명이 거대한 삼지창과 쇠몽둥이를 들고 망자들을 줄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이, 강림 차사! 오늘 잡아 온 놈들은 거기 구석에 꿇어앉혀 두고 명부나 먼저 안으로 접수하고 오게! 대왕마마께서 앞선 재판이 길어져 조금 지체되신다네!"

    우두 귀졸의 우렁찬 고함에 강림 차사는 망자들에게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엄포를 놓은 뒤 명부전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차사가 사라지자마자 귀졸들은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다며 쇠몽둥이를 바닥에 쾅쾅 내려치며 망자들에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크하하하! 이 죄 많은 인간 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들고 있느냐! 당장 바닥에 이마를 박고 엎드리지 못할까! 삐딱하게 앉은 놈들은 대왕마마 앞에 가기도 전에 내 쇠몽둥이로 등뼈를 먼저 부러뜨려 놓겠다!"

    귀졸들의 서슬 퍼런 협박에 모든 망자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딱 한 명, 강문수만은 엎드리기는커녕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지옥문 바로 옆에 솟아있는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걸어갔습니다.

    '오호라, 저기 불길이 솟아오르는 기둥 옆 바위에 앉으면 불빛이 환해서 책 글씨가 아주 잘 보이겠구나. 아까 삼도천 건널 때는 어두워서 눈이 침침했는데 마침 잘되었군.'

    강문수는 지옥의 불길이 타오르는 화로 기둥 바로 밑 바위에 엉덩이를 털고 단정히 앉더니, 또다시 책을 펴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성현의 경전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이르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르느니라! 도라고 하는 것은 잠시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니라!"

    적막하고 공포스러워야 할 지옥문 앞에 느닷없이 맑고 청아한 서당 글소리가 울려 퍼지자, 망자들은 물론이요 쇠몽둥이를 들고 설쳐대던 귀졸들까지 어안이벙벙해져서 일제히 강문수를 쳐다보았습니다.

    성질 급한 마두 귀졸이 콧김을 씩씩 뿜으며 강문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삼지창을 들이대었습니다.

    "네 이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여기가 네놈 집 안방인 줄 아느냐? 감히 지옥문 앞에서 요망한 글소리를 내어 지옥의 위엄을 깎아내리다니! 내 당장 네놈의 주둥이를 찢어놓겠다!"

    그러나 강문수는 눈앞에 들이닥친 시퍼런 삼지창 날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귀졸을 올려다보며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어허, 무례하도다! 귀공은 비록 저승의 관원이나 지금 소생이 읽고 있는 것은 천하의 도리를 담은 옛 성현의 말씀이오! 성현의 말씀 앞에서는 천자도 옷깃을 여미는 법이거늘, 어디서 무식하게 창끝을 들이밀며 고성방가를 지른단 말이오! 물러서서 조용히 경청하시오!"

    "뭐, 뭐라? 이 미친 샌님 녀석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에잇, 맛 좀 봐라!"

    분노한 마두 귀졸이 삼지창을 높이 들어 강문수의 머리를 내리찍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강문수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다음 구절을 크게 외웠습니다.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느니라!"

    그 글소리가 강문수의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책장 위에서 눈부신 황금빛 글자들이 나비 떼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강문수의 몸 주변에 둥글고 찬란한 빛의 방패를 만들어냈습니다. 평생 사심 없이 오직 그 글귀만을 믿고 외워온 선비의 순수한 정신력과 성현의 바른 기운이 사후세계의 음기와 부딪혀 거대한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었습니다.

    콰아앙!

    마두 귀졸의 삼지창이 황금빛 광채에 부딪히는 순간,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삼지창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마두 귀졸이 저만치 나동그라졌습니다.

    "으아아악! 내 손! 내 손이 타들어 간다! 저, 저게 무슨 괴이한 빛이냐!"

    "이놈을 포위해라! 다 같이 덤벼서 저 무엄한 선비를 묶어버려라!"

    우두 귀졸과 수십 명의 옥졸들이 떼로 몰려들어 사슬과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강문수가 태연하게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을 때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한자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귀졸들의 이마와 가슴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퍽! 퍽! 쨍그랑!

    "으악! '인(仁)' 자에 맞았더니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아이고 나 죽네! '의(義)' 자가 날아와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구나!"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무시무시하던 지옥문 앞은 강문수가 읽는 글소리에 뿜어져 나온 상서로운 빛으로 환하게 밝아졌고, 천하무적이라던 지옥의 귀졸들은 문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부들부들 떨며 귀를 막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 3: 염라대왕의 호출과 명부전을 가득 채운 기묘한 설전

    지옥문 앞의 소란은 곧장 명부전 깊숙한 곳에서 재판을 주재하던 염라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판관들과 함께 망자들의 죄업을 살피던 염라대왕은 밖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글소리와 귀졸들의 비명 소리에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습니다.

    "대체 지옥문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어느 간 큰 악귀가 난동을 부리기에 귀졸들이 저리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것인지 당장 알아보고 오너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뿔이 부러지고 갑옷이 그을린 우두 귀졸이 명부전 안으로 헐레벌떡 기어 들어와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고했습니다.

    "대, 대왕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악귀가 아니라 오늘 새로 들어온 강문수라는 조선의 샌님 선비 한 놈이 지옥문 앞 바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사옵니다!"

    염라대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리며 되물었습니다.

    "뭐라? 고작 선비 한 놈이 책을 읽는 것이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시끄럽게 굴면 쇠몽둥이로 다리를 꺾어 조용히 시키면 될 것이 아니냐!"

    "그, 그게 아니옵니다, 마마! 그 선비 녀석이 성현의 글귀를 한 줄 읽을 때마다 입에서 시퍼런... 아니, 눈부신 황금빛 글자들이 튀어나와 소인들의 삼지창을 부러뜨리고 몸을 두들겨 패는 바람에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겠사옵니다! 게다가 지옥불 기운까지 그 글소리에 눌려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사옵니다!"

    그 말에 명부전 안에 있던 최 판관과 저승 시왕들의 보좌관들이 모두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염라대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입가에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허허, 거참 기이한 노릇이로구나! 내 수만 년 동안 저승을 다스리며 칼 쓰는 장수나 도술 부리는 도사는 보았어도, 오직 글 읽는 소리 하나로 지옥의 귀졸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 선비는 처음 듣는다. 그자의 생전 기록이 적힌 명부를 이리 가져와 보아라!"

    최 판관이 두꺼운 명부 책을 뒤적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뢰었습니다.

    "대왕마마, 이 강문수라는 자의 명부가 참으로 괴이하옵니다. 서른 해를 살다 왔는데,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등 십악(十惡)에 해당하는 죄목이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고 백지처럼 깨끗하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냐?"

    "예, 나쁜 짓을 한 기록도 없사오나, 남을 돕거나 세상을 이롭게 한 선행의 기록 또한 단 한 줄도 없사옵니다! 오직 일곱 살 때부터 서른 살 죽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방 안에서 책만 읽었다는 기록뿐이옵니다!"

    염라대왕은 무릎을 탁 치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선행도 백지요, 악행도 백지라! 오직 책만 읽다 죽은 무결점의 백지 인간이란 말이지? 좋다, 내 직접 그 별난 선비의 얼굴을 보고 학문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 보아야겠다. 귀졸들은 무기를 거두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그 강문수라는 선비를 내 앞으로 모셔 오너라!"

    잠시 후, 명부전의 거대한 청동 문이 열리고 강문수가 뒷짐을 진 채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단상 위에는 산채만 한 덩치에 면류관을 쓰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위엄을 뿜어내는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고, 좌우로는 무시무시한 판관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 보통의 망자라면 오줌을 지리며 기절할 법한 삼엄한 분위기였으나, 강문수는 단상 앞에 우뚝 서더니 갓을 고쳐 쓰고는 허리를 굽혀 완벽한 사대부의 예법으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승의 유생 강문수, 명부의 주인이신 염라대왕 전하를 뵙사옵니다. 소생이 밖에서 글을 읽느라 소란을 피운 점은 너그러이 용서하시옵소서."

    염라대왕은 조금도 떨지 않는 강문수의 태도에 감탄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네가 바로 지옥의 귀졸들을 글소리로 물리쳤다는 강문수렷다! 여기가 어디라고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그리 당당한 것이냐? 내 호통 한 번이면 네놈의 영혼이 가루가 되어 흩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강문수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맑은 눈으로 염라대왕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대왕마마,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부끄러운 바가 없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두렵지 않다'고 하였사옵니다. 소생은 이승에서 서른 해를 사는 동안 남의 재물을 탐낸 적도, 남을 해친 적도, 거짓된 말을 입에 담은 적도 없사옵니다. 죄를 지은 소인배들이야 형벌이 두려워 벌벌 떨겠지만, 성현의 도리를 지키며 결백하게 살아온 소생이 공명정대하신 대왕마마 앞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겠나이까?"

    청산유수 같은 대답에 판관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염라대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호오, 네가 그토록 성현의 도리를 잘 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묻겠다. 너는 평생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는데, 네가 읽은 그 수많은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강문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을 펴고 막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아니겠습니까! 먼저 내 몸과 마음을 티끌 없이 깨끗하게 닦아 성현의 경지에 이르고, 나아가 집안을 가지런히 한 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소생이 평생토록 목숨을 바쳐 추구해 온 유학의 대도(大道)이옵니다!"

    강문수의 목소리가 명부전 기둥을 울릴 만큼 당당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스스로 완벽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한 강문수의 얼굴에는 은근한 자부심마저 감돌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을 들은 염라대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습니다. 대신 명부전 전체가 얼어붙을 듯한 서늘하고도 준엄한 기운이 대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입으로는 참으로 번지르르하게 성현의 말씀을 잘도 읊는구나! 그렇다면 네가 정말로 네 몸을 바르게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는지, 내 저승의 거울로 똑똑히 확인해 보겠다! 여봐라, 이 자의 앞에 업경대(業鏡臺)를 대령하라!"

    ※ 4: 업경대 속에 비친 반쪽짜리 삶과 염라대왕의 일갈

    염라대왕의 호령이 떨어지자, 귀졸들이 집채만 한 크기의 둥근 구리 거울인 업경대를 끌고 와 강문수의 눈앞에 우뚝 세웠습니다. 거울 표면이 푸른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강문수가 이승에서 살았던 서른 해의 세월이 마치 그림자극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강문수는 처음에는 뒷짐을 진 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흥, 보나 마나 내가 밤낮으로 졸음을 참아가며 꼿꼿하게 앉아 책을 읽는 숭고한 모습만 비칠 터인데 무엇이 걱정인가.'

    과연 거울 속에는 강문수가 어릴 때부터 죽는 날까지 골방에 앉아 쉼 없이 책을 읽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염라대왕이 손가락으로 거울을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거울아, 이 미련한 선비가 앉아 있는 골방 안이 아니라, 그 골방 문밖의 풍경을 비추어라!"

    대왕의 말이 끝나자 거울 속의 화면이 골방의 창호지 문을 통과해 마당과 부엌, 그리고 마을 길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비친 광경을 본 강문수의 두 눈이 점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강문수가 방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인(仁)의 근본이니라!"라고 큰소리로 책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부엌 아궁이 앞에서 늙은 어머니가 피가 터진 손으로 언 시래기를 다듬으며 기침을 토해내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글소리에 방해가 될까 봐 입안에 수건을 물고 숨죽여 기침을 참다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강문수가 방 안에서 "백성의 굶주림을 내 아픔처럼 여기는 것이 군자의 마음이다!"라고 외치고 있을 때, 대문 밖에서는 사흘을 굶은 이웃집 어린 남매가 혹시 찬밥 한 술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기웃거리다가, 강문수의 추상같은 글소리에 겁을 먹고 눈물을 흘리며 빈손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홍수로 무너진 다리를 고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통나무를 나르고 있었지만, 강문수는 "선비가 천한 노동을 하면 학문의 기품이 떨어진다"며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방 안에서 강문수가 숨을 거두던 그날 밤, 아들에게 줄 죽을 쑤고 돌아온 노모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는 처절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이 미련하고 불쌍한 내 새끼야! 어미 호강시켜 준다고 평생 따뜻한 밥 한 공기 편히 못 먹고 저 차가운 책만 끌어안고 있다가, 이 늙은 어미를 홀로 두고 먼저 가면 나는 어찌 살란 말이냐! 내가 이 험한 세상을 누구를 의지해 살란 말이냐!"

    홀로 남겨진 늙은 어머니가 불도 꺼진 차가운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소리가 명부전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강문수는 마치 머리를 커다란 망치로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성현의 어록집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창백한 얼굴 위로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손이 저리도 험하게 갈라져 있었던가? 내가 성현의 효도를 글로 외우는 동안, 정작 내 어머니는 부엌에서 피를 토하며 울고 계셨단 말인가!'

    그때, 단상 위의 염라대왕이 벼락같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네 이놈, 강문수야! 똑똑히 보았느냐! 너는 네 손으로 직접 남을 때리거나 훔치지 않았다 하여 죄가 없다고 자부했겠지! 허나 내 눈에는 네놈이 평생 읽은 그 수만 권의 책이 한낱 종이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문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일갈했습니다.

    "효도를 글로만 읽고 늙은 어미의 굽은 등 한 번 쓸어주지 않은 불효! 인의(仁義)를 입으로만 떠들고 대문 밖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웃에게 밥 한 술 나누어 주지 않은 무자비! 세상을 구제한다는 학문을 한다면서 정작 마을의 무너진 다리 하나 고치는 데 손끝 하나 보태지 않은 이기심! 이것이 어찌 성현의 도리란 말이냐!"

    대왕의 호통 소리에 명부전의 기둥들이 우르르 흔들렸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강문수의 책에서 더 이상 황금빛 광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모순과 부끄러움을 깨달은 순간, 그 글을 지탱하던 헛된 자부심이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왕마마... 소생이... 소생이 어리석었사옵니다..."

    염라대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고 있는 강문수를 향해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습니다.

    "성현께서 글을 남기신 이유는 그 글을 머리에 담아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라 한 것이지, 네놈처럼 방구석에 앉아 자기만 깨끗한 척 목에 힘주라고 남긴 것이 아니다! 씨앗을 만 석이나 창고에 쌓아두면 무엇 하느냐! 땅에 심어 싹을 틔우지 않으면 그 씨앗은 썩어 문드러질 뿐이다! 너의 죄는 바로 '실천하지 않은 헛된 학문의 죄'요, '외면과 무관심의 업보'이니라!"

    ※ 5: 깨달음의 눈물과 사후세계에서 내려진 특별한 판결

    염라대왕의 준엄하고도 뼈아픈 꾸짖음 앞에 강문수는 마침내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직 이성적인 선비로만 살아왔던 그의 눈에서 뜨거운 참회의 피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아, 대왕마마! 소생이 죄인이옵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대역죄인이옵니다! 소생은 눈을 뜨고도 코앞의 어머니를 보지 못한 장님이었으며, 귀를 열고도 이웃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한 귀머거리였사옵니다! 성현의 말씀을 방패 삼아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오직 나 혼자만 고결한 척 위선을 떨었으니,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겠나이까!"

    강문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홀로 남겨진 노모의 앙상한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대왕마마, 소생의 죄가 이토록 무거우니 당장 저 끓는 가마솥 지옥에 던지시거나 혀를 뽑는 발설지옥에 보내어 천년만년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허나... 허나 소생이 지옥불에 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승에 홀로 남겨져 굶어 돌아가실 제 불쌍한 노모를 누가 돌본단 말입니까! 불효막심한 이 자식이 어미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으니, 이 죄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진심으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통곡하는 강문수의 울음소리에, 명부전 안의 판관들도 코끝이 찡해져 고개를 숙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강문수가 흘린 참회의 눈물이 명부전 바닥에 떨어지자, 아까의 차갑고 오만한 금빛과는 전혀 다른, 따뜻하고 은은한 연둣빛 기운이 그의 몸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그것은 죽은 학문이 마침내 참된 인간애와 만나 살아있는 지혜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단상 위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염라대왕의 매서운 눈빛이 어느덧 깊고 온화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대왕은 다시 자리에 앉아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강문수야, 고개를 들라."

    강문수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자, 염라대왕이 앞에 놓인 명부 책을 탁 덮으며 말했습니다.

    "만약 네가 끝까지 네 학문의 정당성만 주장하며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면, 나는 너를 가장 어두운 흑암지옥에 가두어 영원히 혼자 글만 읽게 만들었을 것이다. 허나 네가 업경대를 보고 스스로의 무지함과 불효를 깨달아 진심으로 피눈물을 흘렸으니, 네가 평생 읽은 그 성현의 글들이 비로소 네 가슴속으로 내려와 진짜 싹을 틔운 것이로다."

    "대왕마마..."

    "네 죄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너의 본성만큼은 맑고 곧으니 그냥 지옥에 썩히기에는 네 머릿속에 든 학문이 참으로 아깝구나. 하여, 나 염라대왕은 너에게 전무후무한 특별 판결을 내리겠다!"

    염라대왕이 판결봉을 들어 바닥을 쾅 내려치자, 명부전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렸습니다.

    "망자 강문수는 듣거라! 나는 너의 지옥 형벌을 유예하고, 너에게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십 년의 수명을 추가로 부여하노라! 너는 지금 즉시 이승의 육신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네가 지난 서른 해 동안 머릿속에만 쌓아두었던 그 수만 권의 지식을 모두 밖으로 꺼내어, 늙은 어미를 봉양하고 굶주린 백성들의 배를 채우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남김없이 쓰고 오너라!"

    뜻밖의 판결에 강문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대왕을 바라보았습니다.

    "대, 대왕마마! 소생 같은 죄인에게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실 기회를 주신단 말씀이옵니까?"

    "그렇다! 다만 명심하거라. 이것은 상이 아니라 네가 치러야 할 이승에서의 형벌이자 숙제이니라! 사십 년 뒤 네가 다시 이 명부전 앞에 섰을 때, 네 손바닥이 어머니의 손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지 않고, 네 도포 자락에 백성들의 땀 냄새가 배어 있지 않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무간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알겠느냐!"

    강문수는 감격에 겨워 바닥에 엎드려 세 번 큰절을 올렸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마마! 소생, 대왕마마의 높으신 가르침을 뼈에 새겨, 이승에 돌아가는 즉시 골방의 문을 부수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겠사옵니다! 살아있는 학문이 무엇인지 제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겠나이다!"

    "좋다! 강림 차사는 어서 저 깨달은 선비를 데리고 이승으로 달음박질치거라! 저 가엾은 노모가 아들의 관 뚜껑에 못을 박기 전에 어서 돌려보내야 할 것이 아니냐!"

    염라대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휘젓자, 강문수의 몸이 따뜻한 빛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사후세계의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듯 솟구쳐 올랐습니다.

    ※ 6: 관 뚜껑을 박차고 일어난 선비,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다

    한편 이승의 강문수 집 마당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조촐하게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상여도 마련하지 못하고, 거친 소나무 판자로 짠 얇은 관 하나가 마당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노모는 관을 부여잡고 사흘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목이 쉬어라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문수야... 이제 이 관 뚜껑을 덮으면 내 새끼 얼굴을 영영 다시는 못 보는구나. 저승길 추운데 솜옷 한 벌 입혀 보내지 못하는 이 어미 가슴이 무너진다..."

    마을 목수가 눈시울을 붉히며 관 뚜껑을 덮고 막 커다란 무쇠 못을 대고 망치질을 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쾅! 우지끈!

    갑자기 관 안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나더니, 덮어놓았던 관 뚜껑이 허공으로 번쩍 들려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의를 입은 강문수가 "크하아!" 하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습니다.

    "으아아악! 귀신이다! 죽은 문수가 살아났다!"

    망치를 들고 있던 목수가 기절초풍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고, 마당에 있던 동네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대문 밖으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노모만은 도망치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무, 문수야? 네가 정말 살아난 것이냐? 꿈이 아니냐? 내 새끼 심장이 다시 뛰는구나!"

    강문수는 눈을 깜빡이며 앞을 보더니, 거칠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갈라진 손등을 발견하고는 관 밖으로 맨발로 뛰어내려와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죽은 자의 냉기가 아니라 화로처럼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불효자 문수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사흘 동안 얼마나 추우셨습니까, 얼마나 배가 고프셨습니까!"

    평생 어머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고지식한 샌님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어머니의 언 손을 제 품속에 넣어 녹여주자, 노모와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날 이후로 강문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이 평생 틀어박혀 있던 골방의 문짝을 뜯어내어 아궁이의 장작으로 패서 넣었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책들을 마당으로 꺼내어, 농사법과 의학,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골라내어 밤낮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이란 종이 위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의 손을 거칠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이지!"

    강문수는 비단 도포를 벗어던지고 거친 베옷을 입은 채 직접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해 왔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어머니의 방을 절절 끓게 만들었고, 마을의 무너진 다리를 고치는 일에 제일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가뭄이 들었을 때는 산의 수맥을 찾아 우물을 파주었고, 역병이 돌 때는 옛 의서를 뒤져 약초를 캐다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또한 저녁이면 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되, 반드시 "글을 배우거든 먼저 부모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이웃과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어라"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렇게 삼 년 동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 강문수는, 마침내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 시험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의 실제 삶과 아픔을 몸소 겪으며 무르익은 그의 답안지는 임금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그는 장원급제하여 고을의 사또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관아에 부임한 강문수는 책상에 앉아 보고만 받는 사또가 아니라, 직접 짚신을 신고 논밭을 누비며 백성들의 손을 잡아주는 조선 최고의 애민(愛民) 목민관이 되었습니다. 그의 손바닥은 염라대왕과 약속했던 대로 농부들보다 더 거칠게 굳은살이 박였고, 그의 관복 자락에는 언제나 백성들의 땀 냄새와 흙냄새가 구수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흔 살까지 장수하며 호강을 누리신 노모를 평안히 보내드리고, 강문수 또한 약속된 사십 년의 세월을 꽉 채워 일흔 살이 되던 해에 많은 백성들의 축복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다시 찾아간 명부전 앞에는 이번에도 우두와 마두 귀졸이 서 있었으나, 그들은 강문수를 보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깍듯이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명부전 안에서 그를 맞이한 염라대왕은, 거칠게 갈라진 강문수의 두 손을 잡고 산채만 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장하도다, 강문수야! 네 손바닥에 박인 그 굳은살이야말로 이승의 그 어떤 경전보다 더 빛나는 참된 성현의 글귀이니라! 이제 내 너를 가장 높고 평안한 천상 세계로 보내주마!"

    지옥문 앞에서 글을 읽던 엉뚱한 샌님 선비가 저승의 호통을 듣고 돌아와 진짜 어른이자 참된 선비로 거듭났다는 이 유쾌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며 오늘날까지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준비한 《지옥문 앞에서 글을 읽는 선비》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평생 나쁜 짓 한 번 하지 않고 성현의 말씀만 읽었으니 당연히 복을 받을 줄 알았던 선비가, 오히려 '실천하지 않은 죄'와 '가족과 이웃을 외면한 죄'로 염라대왕의 불호령을 맞았다는 대목이 참으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머리로만 아는 백 마디 좋은 말보다, 오늘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이웃에게 건네는 작은 친절 하나가 훨씬 더 값진 선행이라는 뜻이겠지요.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댓글은 다음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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